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1980. 7. 25. 금새

 

본문 : 야고보서 1장 22절 - 25절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2절에 보면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 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 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도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도라고 하는 것은 길인데 길  도(道)자 도인데 내라는 사람이 어떤 순위로 살아가며 또 행위가 어떤 방향으로  향하여 가는가 하는 그 인간이 만들어지는 길, 또 인간이 행동하는 길, 인간이  일을 이루어 맺는 이루는 길, 그 길을 가르쳐서 도라고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며 곧 참 사람인 예수님과 다른 부분을 고쳐가야 할  우리들이며, 예수님과 기능이 다른 그 면을 고쳐서 같게 하여 갈 우리들이며,  예수님과 행위와 결과가 다른 것을 고쳐서 갖게 해 갈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바로 알면 모든 것이 되어지고 자신을 바로 모르면 모든 것이  실패됩니다. 자기라는 자신은 그것이 아들 계산하는 수로 말하면 피가수요,  근본수요 그 다음에는 거기다 보태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계산을 할 때에 처음이 하나도 되었으면 어떤 것을 보태든지  하나 보태면 둘 되고 둘 보태면 서이되고 열 보태면 열 하나 됩니다. 또 자신이  둘이 되면은 하나 보태면 서이되고 둘 보태면 너이 될 것입니다.

 또 처음에 자신이 아무것도 없는 영, 진공, 영이라면 하나 보태면 하나되고 둘  보태면 둘 되고, 셋 보태면 셋 되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완전히 부인해서 자신을 인정할 만한 자기가 되지 못하고 허무한  자기라는 것, 참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인 이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은 자기는 아무것도 없는 공과같은 영, 돌벵이 말이요.

영과같은 자기가 되어 놓으면 그 영과 같은 자기에게 하나님을 보탠다고 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영에게 하나 보태면 둘 됩니까 하나 됩니까? 하나 되지요.

영에게 백을 보태면 그것이 얼마 됩니까? 내나 백 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완전히 부인한 자는 하나님과 자기와 합하면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부인되는 중에도  십분의 구는 부인이 되고 십분의 일이 부인되지 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자기와 합하면 하나님뿐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과 자기와 둘이  합해서 그 답이 나오겠습니까? 하나님과 자기하고 합해 가지고 답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도 그러하고 만물도 그러합니다. 자기에게 가해지는 자기와  연결되는 그 어떤 것이든지 연결되는 그 연결되는 그것을 그대로 바로 알고 바로  상대하고 바로 관계를 가지는 데에는 자기를 부인하는 데에서 그게 바로 됩니다.

 자기를 부인치 아니하면 모든 객관이라는 그 객관은 객관 그대로 있지 안하고  자기가 진공이 안됐기 때문에 모든 객관은 객관 그대로 되지 안하고 내게는 그  객관들이 변해져 가지고서 상대하게 됩니다.

 요거 조금 알아듣기 어려운 말인 것 같은데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 아닌 모든  객관을 상대할 때에 객관 그것을 그대로 상대해야 됩니다. 악한자는 악한 그대로  선한자는 선한 그대로 가치있는 거는 가치있는 그대로 가치가 적은 건 적은  그대로 자기 아닌 모든 것을 자기가 접할 때에 모든 것, 그것을 그 사실 그대로  진상 그대로 실체 그대로 내가 알고 상대할려고 하면 어떻게 돼야 됩니까?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는 데에서 악인은 악인으로 알고 선인은 선인으로 알고  망할 것은 망할 것으로 알고 살 것은 살 것으로 알고, 자, 망하고 죽는 망하는  것, 죽는 것, 죽이게 하는 것 살리게 하는 그런 것이 자기 주관입니까 자기 아닌  객관입니까? 그 객관이지요. 객관인데 죽음을 죽음으로 볼려고 생명을 생명으로  볼려고, 나를 속이는 자는 속이는 자로 그대로 볼려고 나를 유익되게 하는자는  유익되게 하는 그대로 볼려고 그러면 내가 아닌 객관이 어떤 것이든지 그  진상대로 진상대로 사실대로 그 실체대로 그대로 내가 그것을 바로 알고 바로  상대하고 바른 관계를 맺고 거기 대해서 바른 지식을 가지고 바른 목적을 가지고  바른 행동을 해서 바른 관계를 가져서 바른 관계를 가지면 나를 속이는 자에게는  어떻게 관계를 가지는 것, 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까? 나를 속이는 자에게는  내가 그에게 아는 나를 속이는 자이니 이에게 내가 속지 안해야겠다 하여  속지안는 그것이 나를 속이는 자에게는 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또 나를 유익되게 하는 자인데 유익되게 하는 자에게 내가 관계를 가질 때에  이가 나를 해할 자라, 이가 나를 해할 자라. 이렇게 생각을 가지고 그 사람을  대하면 그 관계가 바로 됐습니까 잘못 됐습니까? 잘못 됐지요. 내가 이제 뭘  말했지. 속이는 자, 말했어. 해하는 자 말했어 속이는 자 말했지, 해하는 자.

 나를 해할려는 자, 속이는 자, 그 사람이라 말이요. 그러면 그 사람에게 바른  관계를 가질려면 속일려는 자가 속일려는 그대로 내가 알고, 속일려고 이는  속일려는 자다. 나를 해하려는 자다 하는 것을 내가 바로 알고 그 사람에게  관계를 바로 가지면 어떻습니까?  내가 그 사람이 나를 속일자요 속이는 자인 줄 알고 그 사람에게 속지않는 것이  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까 속는 것이 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까? 예,  속지않는 것이 바른 관계를 가지지요 또 이 사람 나를 속이는 사람이라, 그걸  알고 관계를 가져서 속이지 않으면 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이지요.

 또 이 물건은 나에게 참 유익을 줄 물건입니다. 유익을 줄 물건이면 그 유익을  주는 물건을 유익을 줄 물건으로 내가 관계를 가지면 내가 그렇게 지식하고  그렇게 알고 그렇게 관계를 가지면 유익 줄 물건을 유익 줄 물건으로 내가 알고  관계를 가지면 그 관계가 바로 된 겁니까 잘못된 겁니까? 예 말좀 해봐요. 바로  된 것이지요. 또 유익 줄 물건인데 이 물건이 자기에게 해 줄 것으로 알고,  알았으면 그 아는 것이 바로 알았습니까 잘못 알았습니까? 잘못 알았지요. 내가  이제 유익 줄 것 말했소. 해줄 것 말했소. 유익 줄 것 말했나요.

 그러면 유익 줄 그 물건인데 자기가 이 물건이 나에게 유익 줄 것이라 유익 줄  물건이니까 이는 나에게 유익 줄 물건인 줄 알고 그렇게 상대하면 그 상대는  바로 된 것이지요. 유익 줄 물건인데 자기에게 해를 줄 그런 물건으로 알고  알았으면 아는 게 바로 알았습니까 뭡니까? 잘못 알았지요.

 유익 줄 물건을 유익 줄 물건으로 알고 상대하면 바로 알고 상대한 것이고 유익  줄 물건을 자기에게 해 줄 물건으로 그렇게 알고 상대했으면 그 아는 것과  상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물건이나 나라나 한 가지입니다. 나라도 그러합니다. 또 사람도 그러합니다.

사건도 그러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이나 사건이나 나라나 지방이나 때나  그것이 자기에게 유익 줄 것인지 해를 줄 것인지 유익 줄 게 아니면 해를 줄  것이고 해를 줄 것이 아니면 유익을 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기 어렵습니다. 유익을 줄 것을 유익 줄 것으로 자기가 알고  그렇게 행하면 그것은 참 바로 행한 것이고 해를 줄 것을 해를 줄 것으로 알고  그렇게 행하면 또 그것도 바로된 것이지요. 이런데 유익 줄 것을 해를 줄 것으로  알고 해를 줄 것을 유익 줄 것으로 알고 자기가 행동했으면 그것은 잘못알고  잘못한 것이지요.

 그러면 내가 자기 단독만이 자기 주관입니다. 자기 주관 자기 주관 아닌 다른  모든 것, 모든 다른 것, 모든 다른 것을 그것을 그 사실 그대로 진상 그대로  실제 그대로 그것을 틀림없이 그대로 바로 된 그대로 사실 그대로 실상 그대로  실제 그대로 바로아는 그것을 변동되지 안하고 바로아는 그대로 그 방편이  무엇이지요? 그 방편이 무엇이지요?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좀 알기 어려운 말이 되어놔서 여러분들이 잘 퍼뜩 설득이 안될 것 같아서 내가  말하는 건데 자, 여기 이제 숫자가 표가 있습니다. 표가 있는데 한 일(一)자 쓴  표도 있고 일 십(十)자 쓴 표도 있고 또 백이라는 백이라고 쓴 표도 있고  천이라고 쓴 표도 있고 만이라고 쓴 표도 있고 표가 꽉 찼습니다.

 이제 요 표는 하나라는 것이요, 요 표는 열이라는 것, 요 표는 스물이라는 것,  숫자가 있습니다. 그 수많은 숫자가 여기 있는 그 숫자하고 여기 있는 그것을 막  보태는데 그것이 보태서 보태 가지고서 답을 내는데 보태 가지고 답을 내는데  그게 기록된 열자 짜리로 열이라고 쓴 숫자는 보태니까 답이 열이 나오고 또  하나라고 쓴 표는 보태니까 답이 하나가 나오고 만이라고 쓴 표는 보태니까 답이  만이 나오고 이걸 보태니 저걸 보태니 보탠 그 숫자 그대로 답안이 나오는 데는  요 피가수인 숫자가 요 무슨 숫자가 되어야 됩니까 일이 되어야 됩니까 십이  되어야 됩니까 천이 되어야 됩니까? 영이 되어야 됩니까? 예, 영이 되어야  됩니다. 영이 되면은 어떤 숫자를 보태도 자, 영 더하기 거기다 이제 하나라는  숫자 보태든지 백이라는 숫자 보태든지 저 이꼬르 하고 난 다음에 답은 보탠 그  수하고 꼭 같습니다. 그럴라면 요게 뭐 되어야 되지요? 영이 되어야 됩니다.

영이 되면은 그것이 다 그 답대로 되는데 요게 영이 아니고 만일 하나가 되어  가지고 있으면 어찌 됩니까? 하나가 되어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을 보탤 때에  답안이 보탠 것과 어떻게 돼지요? 보탠 것 그대로 답안이 나옵니까 보탠 것이  하나가 더해 답안이 나옵니까? 하나 더해 답이 나옵니다. 그게 그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왜 만물을 모르게 되느냐? 왜 하나님을 모르게 되느냐?  모든 사물을 바로 모르게 되느냐? 모든 것을 접할 때에 그것을 바로 접하지  못하게 되느냐? 바로 알지 못하고 바로 행동하지 못하고 바른 올바른 결과를  맺지 못하게 되느냐? 왜 못하게 되느냐? 못하게 되는 이유가 뭐입니까?  인제 배워서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데에서 되어지는 것인데 여러분들이 지금  배워가지고 주입식으로 기억은 하지마는서도 거기에 대해 위치를 여러분들이  알기는 심히 어려울 것입니다. 잘 생각해서 요걸 바로 알아야 자기를 부인하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안하고 자기는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인데 거짓된 것이 하나로  남아있으면은 모든 걸 접한데서 전부 거짓이다 자기에게 거짓이 있는 것만치  모든 것을 접할 때는 그 답안에는 거짓이 나옵니다.

 자기와 그와 결합이 될 때는 그것이 나옵니다. 자기에게 거짓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어져 버리면 그러면 자기는 부인입니다. 없애버리면 어떤 걸 접해도 그  접한 답안은 꼭 정확하게 그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는 이것이 모든 성공의 근원이 되는 것인데 자기  부인을 인간이 하고 싶다고 되는 것 아니요. 자기가 그 부인이 되어집니까?  천하에 자기에게 대해서는 자기가 제일 자기를 사랑하고 제일 위하고 유익되게  하는 자인데 자기를 부인하고 싶습니까?  아무리 아버지 어머니가 믿어도 저만침은 안 믿습니다. 아무리 부부간을 믿어도  저만치는 안 믿소. 인간이 자기를 제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이 아무리 해를 줄라  해도 자기가 할 수 없는 그런 거는 그렇지마는서도 극단에 이르러서는 자기가  자기를 제일 사랑할 자는 자기고 제일 위할 자는 자기요. 자기를 참 속이지  안하고 그것이 끝까지 위할 자는 자기로 알지.

 자기 위해 다른 사람이 위할 줄은 그렇게 아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마는 속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자기를 모르는 자기를 무식, 자기를 똑똑히 모르는  가운데에서 모든 계산은 다 틀려 버립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에게 있는 것은 천 원이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이 천 원  있소. 천 원이 있는데 물건을 살 때에 이천 원 있는 줄 알고 그 물건 샀으면 그  물건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못 산다 그거요. 자기를 모르고 모든 것을  경영하기 때문에 경영한 것이 다 실패가 됩니다. 또 자기를 모르고 소원하기  때문에 소원하는 것이 다 실패가 됩니다.

 자기를 모르고 행동했기 때문에 행동한 것이 다 실패가 됩니다. 왜 자기는  계산에 넣을 수 없는 자인데 자기는 만물보다 거짓된 것인데 계산에 넣을 수  없는 것인데 자기를 계산에 넣는 통에 모든 사람들이 다 실패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 버려라.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니 자기를  인해 버려라. 자기는 부인해 버려라 하는데 부인해 버리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실패되어지는 것이요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것은 왜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느냐 자기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대한 만 가지 성공이 자기를 바로 아는 것이 만 가지 성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차원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로 모르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도 아주 좀 어려운 말인데,  자기를 모르는 자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자는 모든 것을  알려고 하면 자기와 모든 것과 합하는 것 아니요 보태는 것 아니요 이거와 이거  보태는 것인데 자기가 틀려 있으니까 뭐 보태도 다 틀렸다 말이요.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모든 것을 아는 것이나 접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거기에  자기에게 틀린 게 없어야 그 모든 것이 다 틀리지 않는 결과가 나옵니다. 자기가  틀리면 모든 결과는 틀리는 결과가 나옵니다.

 그러기에 인간이 모든 실패하는 것이 자기를 모르는 거기에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해와가 왜 실패했습니까? 아담이 왜 실패했습니까? 우리  눈앞에 실패한 사람이 다라고 볼 수 있고 성공한 사람은 별로이 적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모든 사람이 다 실패해 그만 세상에 부귀 영화를 다 누리고 지위  권세를 다 가지고 건강 수명을 가졌는데 왜 그 사람이 생활에 실패인고, 그것이  성공같으나 마지막에는 실패가 된다 말이요 불택자 생활은 전체가 실패가 돼.

 왜 실패가 되는가? 자기를 몰랐기 때문에 자기를 왜 몰랐어 자기는 장생불사할  자가 아니라 그말이요. 생명에 대해 권리가 없어. 또 세상에서 언제까지나 살  그런 권리가 없어. 모든 것이 제한, 제한, 제한, 한정이 돼 가지고서 그 한정이  이제 다 차가는데 그걸 몰라. 자기를 몰랐기 때문에 한 일이 전부 헛일입니다.

 이게 좀 어려운 말인데 그래서 앞으로 계속하겠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데에서  모든 일이 실패가 되어지는데 자기 모르면 부모도 모르요. 부부도 모르요.

자기를 모르면 자기를 바로 알면 모든 것을 다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을 바로  알게 됩니다. 자기를 바로 알면 모든 것을 다 바로 알게 돼요. 자기를 모르면  모든 것을 모르게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아는 것만치 사람은 알고, 자기를 아는 것만치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것만치 일을 알고 자기를 모르는 것만침 하나님도 사람도 일도  모르는 사람됩니다. 아주 여러분들이 요 제목만 가지고 가십시오. 아주 어려운  말이 돼놔서 그렇게 여러날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알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는가? 요것만 간단하게  말하고, 자기를 알라고 하면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는가? 자기 얼굴을 볼려면  뭘로 보고 알지요? 거울 보면 알지요. 거울 보면 알고 다른 걸 보면 모르지요.

자기 낯에 점이 찍기는지 뭣이 묻었는지 어찌 압니까? 거울 보면 압니다. 거울  보면 아요.

 거울을 보고 보면 자기 얼굴을 알 수 있지요. 그러나 거울 떼 버리면 자기 얼굴  알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모르지요. 거울 보면 자기 얼굴 알 수 있고 거울 떼  버리면 자기 얼굴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 자기를 아는 그 인간을 아는 인간 거울은 무엇입니까?  인간을 알려면 인간 거울은 무엇이지요? 자기 얼굴을 알려면 이 거울을 보면  알지마는 자기라는 사람을 알려면 뭘 봐야 압니까? 자기라는 사람을 아는 자기를  보는 자기라는 사람을 보는 거울은 뭐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얼굴은 보고  알려면 거울 들여다 보면 알고, 또 자기라는 사람을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이라야  알게 됩니다. 그러면 딴 것 보고는 몰라요. 딴 것 보고는 모르는데 거울을  보고나서 거울 떼 버리면 또 자기를 잊어버리지요. 모르지요. 거울을 봐야  알지요. 거울만 보면 자기는 모릅니다.

 자기 얼굴 아는 사람 있습니까? 거울 봐야 알지요. 다른 사람 얼굴은 자기가  그려도 자기 얼굴은 자기가 못 그립니다. 자기 얼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요.

거울을 봐야 알지.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아는데는 하나님의 도로만 알지 딴거로는 모르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도를 성경을 읽을 때에 성경을 볼 때에 그때에 자기를 다소  알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 덮어놓으면은 그만 자기 모릅니다. 자기를 아는 것이  계속해야 자기에게 실패가 실패없는 것이 계속되고 성공이 계속되겠는데 자기를  계속 어떤 자인 것을 알려면 자기를 계속 어떤 자인 걸 똑똑히 알려면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적으로 똑똑히 바로 알려고 하면 그 아는 길이  뭐입니까? 아는 방편이 뭐이지요? 자기를 사정 붙이지 안하고 자기를 계속적으로  자기는 어떠한 자라는 것을 바로 알려고 하면 자기라는 것을 바로 아는데 자기를  알았다가 그러면 잊어버리면 그 다음 잊어버릴 때에 생활은 전체가 헛일이라.

자기를 바로 알면서 사는 것은 그것은 실패가 아니고 그거는 바로 되는데 자기를  아무리 알았다 할지라도 잊어 버렸으면 잊어버린 그때에 하는 일은 전부  실패입니다.

 자기를 잊어버린 그 자기를 잊어버리고 자기를 어떠한 사람인지 모르고 말이요.

자기를 어떠한 사람인줄 잊어버리고 말하는 것도 실패, 행동하는 것도 실패,  생각하는 것도 실패, 원하는 것도 실패, 모두가 다 실패입니다.

 자기를 꼭 바로 알고 행한 그것이라야 실패가 없지.

 그러니까 모든 성공은 자기를 바로 아는 데에 성공이 있습니다. 모든 실패는  자기를 모르는 거기에 모든 실패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를 뻐뜩 바로 알려면 어떻게 압니까? 자기를 뻐뜩 바로 알려면  무엇을 해야 자기를 뻐뜩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도를 봐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또 계속적으로 자기를 바로 알라하면 어떻게 하면 바로 알 수  있습니까? 도를 듣고 행하는 자가 아니라. 이것 보십시오.

 야고보서 1장 25절에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그 위에 거울 비유했습니다. 거울, 도를  거울로 비유했는데 그러기에 자기를 똑똑히 계속적으로 바로 아는 사람은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도를 듣는 데에서 자기도 알 수 있고 실행하는데  자기를 알 수 있는데 실행하는 사람은 자기를 실행이 끝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그 실행이 끝나기 전에는 자기를 계속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말씀대로 행하는 실행이 끝나버리면 끝나는 그 시간부터 자기에 대해서  완전 무식이 돼 버리고 맙니다. 실행이 끝날 때 끝나는 끝날 때에 자기 아는  지식이 자기에 대한 자기 지식, 자기를 아는 바로 아는 지식이 끝나 버리고 그쳐  버리고 실행을 시작할 때에 자기를 바로 아는 지식이 또 시작됩니다.

 그러기에 모든 성패는 자기를 바로 알고 모르는 데에서 성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로 아는 것은 하나님의 도를 들을 때에 그때에 바로 알고  그대로 실행할 때에 계속적으로 바로 압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실패하기 싫은 사람은 성공을 계속하고 싶은 사람은 자기가  도를 듣고 버리는 자가 되지 말고 요 도대로 행하는 요 일은 계속할 때에는 자기  일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계속합니다.

 자기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계속할 때에는 모든 움직임이 다 성공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요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지 모르면 안됩니다.

 오늘밤에 내일 아침에 계속해서 요 도를 가르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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