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피의자 심문 조서 제 1

  선지자선교회

() 치안유지법 위반죄 피의 사건에 대하여 소화 151022일 여수경찰서 사법 경찰이 조선총독부 전라남도 형사 금성구옹의 입회 하에 피의자에 대해서 심문하기를 좌()와 여히함.

 

 

아버지는 여수경찰서에서 미결수로 잇을 때도 때때로 끌려 나가서 동방요배, 신사참배, 정오묵도 등을 거부하느라고 죽을힘을 다해 천신만고 끝에 싸워 이겨 나왔는데 앞으로 광주형무소로 가면 1년 반을 더 엄청난 고초를 당할 것이 뻔한 일이다. 복역 죄수는 형무소 안에 엄연한 규칙이 있는 지라 이 일을 어떻게 이겨 낼 것인가? 인간의 육신을 가진 아버지는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부터 아버지는 하나님께 매달려 목을 메고 있는 힘을 다해 결사적으로 부르짖기 시작했다. 주님! 나도 인간입니다. 어떤 악형이 부딪칠지라도 싸워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주 위해 받는 아픔은 주 위해 사는 자의 면치 못 할 일이오며 내 몸의 석 되 밖에 안 되는 피는 주 위해 쏟고 이 백 개의 뼈는 주 위해 다 부러뜨리면 내 할 일 다 한 것이외다.

 

모든 걱정 근심은 내 알 바 아니오니 주님 이끄시는 대로 따르리이다. ! 주여 용맹을 주옵소서! 이렇게 7일 간을 기도하고 나니 마음은 강철 같이 강해지고 더 큰 힘을 얻었던 것이다. 그 후 그리고 10여일 후 광주지방법원으로 기소되어 갔다. 광주형무소에서도 동방요배, 신사참배, 정오묵도 등이 꼬리를 물고 부딪칠 때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아픔을 생각하며 싸워나갔다.

 

물론 그러자니 많은 고초가 뒤따른다. 그들은 고함치며 때리기도 하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신앙의 절개를 꺾으려고 했지만 이를 이겨내는 데는 그 만큼 괴로움과 핍박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어찌 글로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는 형기 만료일인 1943517일에도 풀려 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것이다. 16개월을 광주형무소에서 보냈지만 아버지의 신앙에는 티끌만한 변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사국에서는 아버지의 신앙문제를 놓고 재검토했다. 손 목사는 밖에 나가면 도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할 것이 뻔하니 절대로 내 보내면 안되겠다고 하여 예방구금소로 보내야겠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렇게 옥고를 치르고도 전향을 거부하여 종신형 언도를 받은 것이다. 당시 상황은 아버지가 그 해 68일에 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면 상세히 알 수 있다.

 

손꼽아 기다리던 517일에 얼마나 놀라셨으며 근심하셨나이까? 붕초 양원은 무슨 말로서 어떻게 위안을 드리리이까? 아무 도리 없사옵고 다만 아브라함과 욥 같이 반석 같은 그 신앙으로 스스로 위안과 복을 받으시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520일에 예방 구금소로 가야된다는 언도를 받았습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변함 없이 신앙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20일에 항고서를 대구복심법원에 접수할 것입니다. 그리한 것은 불편이나 고통을 면해 보려는 생각에서가 아니고 대구 가서 그곳 간수들에게 성경 교리를 증거(전도)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아마 이 달 20일 경이나 그믐 안으로 대구에 가면 8월중으로 끝이 나서 경성구금소로 갈 것입니다. 경성의 서대문 형무소 안에 있는 예방구금소로 가게 됩니다.

 

구금소에서 편지나 면회는 매월 누구나 몇 번이고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만은 자유롭게 생활 한다하니 염려하지 마시고, 만주에 있는 동생 집에 가실 때는 면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가 종신형을 받은 후 99일 적은 시다.

 

가을 까마귀 뭇 떼들은 때를 찾아 날아오고

삼월 삼일 왔던 제비 고향 강남 찾아가나

고향 떠난 옥중 고객 돌아갈 길 막연하다.

아침저녁 찬바람 가을 소식 전해주고

천고마비(天高馬肥) 금풍냉월(金風冷月)

낙엽 또한 귀근(歸根)하되

고향 떠난 3년 너머 돌아갈 길 막연하다.

우주 만유 모든 징조 인생 가을 전해주고

억천만인 모든 죄악 심판주를 촉진하되

준비 없는 이내 몸은 천당 고향 막연하다.

 

광주형무소에 있을 때이다. 만기가 가까워져갈 무렵에 형무소 측에서는 아버지의 신앙을 꺾는데 갖은 방법을 동원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 이것을 이용할 생각으로 한날 소장이 만주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의 아들이 지금 몸도 약해져서 죽게 되었으니 어서 고집 꺾고 신사참배해서 나오도록 좀 하시오 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이 편지를 읽은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옥중에서 죽으면 죽었지 신사참배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정반대의 글을 썼다.

 

이 편지를 본 소장은 요 괘씸한 하며 아버지에게 다가와서 당신 아버지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가정이 풍비박산 났으니 고집 꺾고 어서 나와서 가정을 회복시키라고 씌어 있소 하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런 술수에 넘어 갈 아버지가 아니었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내 아버지의 가르침이었소. 내 아버지가 그런 말씀하실 리 없소. 어디 편지 좀 봅시다.

그러자, 소장은 편지를 확 집어 던지면서 이런 같은 아버지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만. 하고 화를 벌컥 내며 나가버렸다.

 

이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편지를 읽은 박상건 목사님(만주에서 할아버지 장례식을 인도한 목사)이 훗날 들려 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