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와 신조와 행정의 관계성

2010.02.16 15:06

김반석 조회 수: 추천:

■ 교리와 신조와 행정의 관계성
선지자선교회
<서론>

교회의 행정은 교회가 가진 신조에서 나옵니다. 성경에서 교리가 나오고, 교리에서 신조가 나오고, 신조에서 행정이 나옵니다. 즉 성경 깨달음이 교리이며, 깨달은 대로 신앙하는 것이 신조이며, 신조대로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 행정입니다. 그렇기에 교리와 신조와 행정은 상관성을 가지면서 순서대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그 교회가 가진 교리가 어떤지 알려고 하면 그 교회가 가진 신조를 보면 알 수 있고, 그 교회의 신조가 어떤지 알려고 하면 그 교회가 가진 행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함은 그 교회의 실체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순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론>

그 교회가 교리 신조는 바르게 보수하고 있다고 하면서 다만 행정은 융통성이 필요하다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1년 2년이 지나면 별로 잘 표가 안 나는데 10년 20년이 지나면 그만 신조가 흐려지게 되고 교리는 명문으로는 붙들고 있으나 신조에 이르지 않는 교회가 되게 됩니다. 이러함을 주위에서 볼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마치 불나비가 불 가운데로 향해서 달라 드는 것같이 인본주의 속화를 향해서 달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진영이 가진 교리와 신조와 행정은 백영희목사님께서 세우셨다 할 수 있습니다.
교리는 피와 성령과 진리대로!
신조는 목숨보다 피와 성령과 진리 보수를!
행정은 신약 초대교회가 가진 행정대로!

역사 교회와 이 시대 교회가 가진 교리와 신조와 행정에서 성경적인 것은 그대로 받고, 미달된 부분은 성경에서 그 항목을 찾아서 보완을 하고, 새롭게 할 부분은 성경적으로 개혁해 나갑니다. 우리 진영이 가진 교리와 신조와 행정은 이러한 중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백영희목사님이 세우신 교리와 신조와 행정의 중심을 알면 현재 우리 진영의 교회가 어떤 중심으로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가지고 대해야 하는가 하는 자세가 정립됩니다.

그리고 우리 진영이 가진 교리와 신조와 행정이 교회사에서 어떤 선상에 있는가에 대해서 지난 교회사에 비추어 간략하게 대비해 보겠습니다. 가깝게는 일제 신사참배를 이긴 그 때 그 교회의 교리와 신조와 행정이 있었으니 장로회 ‘고려파’였습니다. 그리고 좀 멀게는 중세교회 시대에 성경대로 돌아가자는 개혁교회가 가진 교리와 신조와 행정이 있었으니 ‘칼빈주의’였습니다.

그러면 백영희목사님이 세우신 교리와 신조와 행정의 신앙노선은 개혁주의인 칼빈주의와 신사참배를 이긴 교려파가 가졌던 그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보수하고 계대하려는 신앙노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칼빈주의와 고려파가 가졌던 그 당시의 교리와 신조와 행정과는 그 나타난 외면적 차이는 있겠지만 내면적 중심은 같습니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감당하는 장자적 신앙 노선입니다.

역사교회와 세계교회가 외부는 시대별과 지역별로 차이가 있더라도 그 신앙노선 중심은 같기 때문에 그 시대를 감당하는 장자적 신앙노선에 선 교회이며 그 교회가 가진 교리와 신조와 행정입니다.

우리 진영이 백영희목사님께서 계실 때는 장자적 신앙노선을 잘 감당하다가 지금 오늘에 있어서는 잘 감당하지 못하는 진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함은 장자적 신앙노선이 되는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외부적으로는 가졌지만 그 중심을 분실했기 때문입니다.

<결론>

교리와 신조와 행정에 있어서 칼빈주의와 고려파가 가진 그 중심을 오늘 이 시대에 백영희목사님을 통하여 주님이 세우셨으니 이 신앙노선을 우리 진영이 보수하고 계대하여야 합니다. 시대마다 세우시는 장자적 신앙노선을 말입니다.

그러나 시대별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그 시대 그대로 가지자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감당하는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주셨으니 피와 성령과 진리대로의 중심은 변함없이 그대로 가지고 그 시대를 감당하는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시대를 감당하는 중심을 가지고 또한 현재 시대를 감당하는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은 영감과 진리가 인도하시는 대로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가지는 교계의 흐름이나 세상의 흐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또 중간 정도 섞는 것이 아니라 영감과 진리가 인도하시는 대로 가지는 것입니다.

영감과 진리는 시대와 상관없이 그 영감 그 진리이니 그 영감과 그 진리대로 가진 교리와 신조와 행정은 어느 시대와 상관없이 그대로입니다. 외부적 모양은 그 시대에 따라 주시는 모양이 있지만 말입니다.

이 시대의 주류 교회와 소통을 가지기 위해서 그들 교회가 가진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반반 섞었으면 하는 그 심정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영감과 진리와 소통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은 생각해 보셨는지요? 그렇기 때문에 부득불 힘 있는 대로는 양보하지 않고 보수하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