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필드, 벤자민 브렉킨리지


선지자선교회

(Warfield, Benjamin Breckinridge : 1851-1921 )

 

미국의 프린스톤 신학의 주요 옹호자인 워필드는 1851년 켄터키 주의 렉싱턴(Lexington)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목축업에 종사한 부농이었으며, 그의 모친은 로버트 브렉킨리지(Robert Breckinridge)의 딸이었다. 브렉킨리지는 두 권의 조직 신학 작품을 집필한 학식 있는 장로교 목사이면서 동시에 노예제를 반대한 사람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후 1868년에 워필드는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였으며, 그후 프린스턴 신학교에 진학하였다. 신학교 재학 당시 그는 연로한 찰스 핫지(Charles Hodge)의 지도하에 공부하였다. 그러나 그는 목회를 위한 훈련을 받기로 결단하기 전에 이미 과학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으며, 그의 전 생애 동안 과학 분야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였다.

한편 1876년에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한 워필드는 잠시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그후 그는 볼티모어에서 짧은 기간 동안 부목사로 시무하였으며, 1878년에는 펜실베니아 주의 앨러게이니(Allegheny)에 위치한 웨스턴 신학교로부터 신약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거기서 그는 최근에 재발견된 디다케(Didache)에 대한 연구로 유명해졌다. 아울러 1886년에 그는 신약 본문비평 입문(Introduction to the Textual Criticism of the New Testament, 1886)이라는 소책자를 저술하였는데, 이 작품은 대서양 양 진영에서 9판을 거듭할 정도로 대단히 유용한 작품임이 입증되었다. 그의 학문성과 교수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1887년에 아키발드 알렉산더 핫지(Archibald Alexander and Polemic Theology)의 뒤를 이어 프린스톤 신학교의 교훈적이고 논쟁적인 신학(Didactic and Polemic Theology)을 가르치는 교수로 초빙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줄곧 강의하다가 1921216일 별세하였다.

활동적인 목회자라기보다는 지적인 신학자였던 워필드는 프린스톤에서 교수로 재임하는 동안 수많은 소논문들, 논평들, 소책자들 그리고 학자들과 평신도를 위한 연구서들을 집필하였다. 특히 그는 그의 저서들을 통하여 성경과 칼빈주의 그리고 종교적인 체험의 본질이라는 세 가지 분야에 대해서 다루었다.

우선 미국에서 성경에 대한 고등 비평적인 견해가 인기를 끌고 있었을 때, 워필드는 다른 신학자들과 더불어 성경의 신적인 영감성과 완전한 진리성을 좀더 정확하게 정의하고자 하였다. 1881년 그는 A. A, 핫지와 함께 영감(Inspiration)이라는 중요한 소논문을 장로교 평론”(Presbyterian Review)에 발표하여 그 자신의 입장을 천명하였다. 이 논문에서 그는 성경의 자증성에 대해서 정성껏 탐구하였다. 그의 결론은 성경이 말할 때 하나님도 말씀하신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그는 100권을 넘는 성경에 관한 저서들을 집필하였는데, 그 책들을 통하여 그는 계속해서 성경 권위에 대한 성경에 자체의 증언에 집중하였다. 아울러 그는 무오성이라는 용어가 기계적인 영감설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오히려 그는 성경적인 영감은 인간적인 활동과 성령의 역사가 함께 일어남을 포함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가, 과도한 인간적인 기원을 전제하지 않는 한, 적절한 것임을 의미한다.

성경에 대한 워필드의 확신은 그 당시에 널리 인정받고 있었음으로 잘 알려져 있었던 반면, 그가 개혁주의 신학을 지지하였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 미국 장로교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수정할 것인지의 여부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을 때, 그는 그 신앙고백서의 의미를 신중하게 연구함으로써 대응하였다. 그 연구의 결론은 16세기와 17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은 교회를 위한 건전한 지침을 제공하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현대 신학을 위해서 신앙고백서를 함부로 변경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임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워필드는 신앙고백에 관한 논문들을 저술하였을 뿐만 아니라 칼빈주의 사상에 관한 통찰력 있는 많은 연구서들을 내놓았으며, 어거스틴(Augustine)과 같은 초대 교회사의 인물들에 대한 학문적인 논문들도 출간하였다. 이러한 모든 작품들은 초대 교회의 신학적인 원리들이 현재에도 충분히 유용하다는 그의 신념을 잘 드러내 준다. 1904년 그는 이러한 신념을을 칼빈주의는 그 자체의 순결성에 있어서 충분한 근거가 있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결한 종교를 상상하여야만 하는데, 그 종교가 바로 칼빈주의이다.”라는 말로 요약하였다.

종교적인 체험에 대한 워필드의 확신은 성경에 대한 그의 견해와 칼빈주의에 대한 그의 열정에서 비롯된 산물이었다. 그는 정통주의에 대한 두 가지 중요한 적대자로 현대주의와 경건주의를 지명하였다. 한편으로 성경과 신앙고백을 넘어서서 시대 정신을 찬양하는 현대주의에 대항하여, 그는 종교를 진화론적인 낙관론이나 자아의 낭만주의적이 의식에 근거를 두는 행위를 반박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를 단순히 동력인으로 취급하고 성령을 개인적인 속임수를 위해서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대중적인 경건주의에 대항하여, 그는 현대적인 근본주의의 천박함을 비난하는 소책자와 아울러 완전주의(Perfectionism)를 가장하는 행위를 반박하는 저서를 집필하였다. 이러한 저술 작업을 통하여 워필드는 하나님의 사역의 객관성을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객관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그의 말씀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은혜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설교와 기도 그리고 성만찬을 교회에 허락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이 객관적으로 제공하신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내적인 주관성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착각에 빠진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역을 비웃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실로 워필드는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의 도전에 대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일 뿐만 아니라 기록과 권위 면에 있어서도 성경이 무오한 기록임을 논증한 변증 신학자였다. 그는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와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그리고 스코트 제임스 오르(Scott James Orr)와 같은 당대의 사람들과 함께 가장 위대한 현대의 보수적인 칼빈주의 신학자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출처: 정성구/ 개혁주의 인명사전/ 총신대학교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