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지 나뉠 이유

 

1987. 6. 18. 새벽 <목>

 

본문:마태복음 10장 16절∼42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리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리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지식이 깨달음을 낳고, 깨달음이 사상을 낳고, 사상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사람을 낳는 것입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서로 대립이 되고 분쟁이 있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이 서로 뚤뚤 뭉쳐서 화평을 일으킬려고 온 것이 아니다 내가 온 것은 서로 불목을 일으킬라고 내가 왔다” 어떤 덩어리를 쪼개서 대립이 되도록 그렇게 불목을 일으킬려고 오셨는가? ‘부모와 자녀 사이를 갈라서 불목하도록, 형과 동생의 사이를 갈라서 불목하도록, 가족과 가족 사이를 갈라서 불목하도록 내가 왔다. 내가 무슨 두 쪼가리를 하나되도록 하기 위해서 온 줄로 생각지 말아라. 하나를 둘로 쪼개기 위해서 내가 왔노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왜 하나가 갈라지게 되느냐? 갈라지게 되는 이유는 타락 후에 마귀와 죄와 사망과 하나님의 원수와 똘똘 뭉쳐 하나된 이것을 여게서 갈라내 가지고 살리려고 하니까 거게는 쪼개지지 아니하고는 안 되고 또 불목이 생기지 않고는 안 되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불목을 일으켰고 예수님이 쪼갰고 예수님이 대립되게 하셨으니 이것은 우리가 이해를 하든지 못 하든지 예수님이 하신 그 불목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불목이라고 다 나쁜 게 아니고 화목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라 사망으로 한덩어리 된 것은 거게서 갈라져서 살아나는 것이 좋겠고 또 생명으로 한덩어리 된 것을 갈라서 쪼개는 그것은 나쁜 것이 되겠습니다.

요게 대해서 확정을 짓지 못한 자는 그 자는 팔방미인의 신앙입니다. 암만 해 봤자 그거 뭐 천명 만명 억만명 있어봤자 그게 그것이지 하나도 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들이 뭣 때문에 이렇게 자꾸 나뉘어지는가? 돈 때문에 나뉘어지는가? 아닙니다. 돈 때문에 나뉘어지면 그것은 예수님이 나눈 것 아닙니다. 인정으로 나뉘어지는가? 인정으로 나뉘어지는 것도 예수님이 나뉘게 하신 것 아닙니다.

욕심으로 나뉘어지는가? 이런 소욕, 이런 것을 자기가 소욕하고 지금 이런 소욕을 가지고 저런 소욕을 가진 소욕 때문에 이와같이 나뉘어지는가? 이것도 예수님이 나눈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권세 때문에 나뉘어지는가? 이것도 예수님이 나눈 것은 아닙니다.

대개는 여게 속해 가지고 날뛰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도 죽이고 십자가에 못박고 욕심도 십자가에 못박으라” 했습니다. 또 자기를 중심한 자기도 부인하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누신 것은 잘못된 지식으로 하나되어 있는 것을 거게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나누게 된 것입니다. 또 삐뚤어진 깨달음으로 한덩어리 된 것을 바른 깨달음으로 나누게 된 것입니다. 또 삐뚤어진 그 사상 뭉텅이를 바른 사상으로 쪼개서 나누게 하신 것입니다. 또 삐뚤어진 뭉친 행동을 바른 행동으로 갈라낸 것입니다. 또 사망의 사람을 생명의 사람으로 사람을 갈라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쪼개신 쪼갬입니다.

우리는 시발이 지식에서부터인데 지식이 무슨 지식인가? 신구약 성경 영감계시 지식입니다. 영감 지식이라 말은 악령의 감화의 지식이 아니고 성령의 감화의 지식인데, 사색 지식이 아니고 계시 지식이라 말은 인간이 자꾸 궁구해 가지고 연구해서 이렇게 얻어진 지식이 아니고 객관에서 이렇게 열어 보여 줘서 열 계자 보일 시자, 열어 보여 주셔서 받은 지식입니다.

땅위에 모든 이종교는 다 그는 사색 지식입니다. 사색도 안 되니까 그들은 추측한 지식입니다. 추론의 지식입니다. 모든 이종교 그런 것은 다 이런 것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지식은 하나도 하나님이 그 본인은 모르는데 영감으로 보여 주시고 알려 주셔서 그것을 받아 가지고 기록한 것이 신구약 성경이요 또 자기 주관이 깨달은 게 아니고 객관인 성령이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협동해 가지고 깨닫게 할 때에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고로 지식이 다를 때에는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지식이 다른 데에 타협은 없습니다. 지식이 다르면 타협은 없습니다. 서로 타협해 둘이 하나된다 말이요, 타협은 없습니다. 여기에는 승패만 있습니다. 어느 것이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것만 있습니다. 여기에는 죽고 사는 것만 있습니다. 이 지식이 죽든지 저 지식이 죽든지, 그러면 진 지식은 죽을 것이고 이긴 지식은 살 것입니다. 타협은 없습니다.

또 깨달음도 그러합니다. 깨달음도 두 깨달음이 타협은 없고 반드시 그 방편이 고성능이든지 저성능이든지 반드시 투쟁은 있습니다. 투쟁이 없으면 벌써 어느 것이 죽었든지 죽고서 하나가 살아진, 살고 하나는 죽고 했기 때문에 이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타협은 없고 승패 생사 이것으로서 끝납니다. 투쟁으로서 이기든지 지든지 진 것은 죽고 이긴 것은 살고 이것으로 끝나지 둘이 타협이라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전투의 방편상 아주 속성으로 할 수도 있고 천천히 만성적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있으나 그것은 방편이지 그 투쟁이 중단된 것은 아닙니다.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래서 지식에 두 가지, 지식이 두 가지, 또 기독자들은 신구약 성경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깨달음의 두 가지, 깨달음의 두 가지로서 크게 나눠진 것은 천주교와 개혁교는 깨달음으로 크게 나눠졌습니다. 개혁교는 육십육 권에 한해서만 하나님의 계시요 정확무오로 이렇게 깨닫고 있는데 천주교에서는 ‘신구약 육십육 권도 그러하지마는 교황이 말하는 그 교황의 깨달음은 꼭 성경과같이 정확무오하다’ 그렇게 동일시하는 데에서 갈라졌습니다. 또 땅위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한 성경을 보면서 이렇게 수많은 종류로 갈래길이 났습니다.

이것은 기본구원에는 상관 없습니다. 택한 자면 그 사람이 믿든지 안 믿든지 믿다가 낙심을 했든지 그 사람이 뭐 안식교에 있든지 여호와의 증인에 있든지, 택한 자라면 그 사람이 미혹받아서 불교에 가 있든지, 천국 가고 못 가는 이것은 순전히 예수님이 담당하신 그 택한 자와 불택자에서 근거됩니다. 그외 딴것이 근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건설구원에 있어서는 교파가 중요합니다. 노선이 중요합니다. 왜? 그것은 벌써 같은 지식을 가지고 깨달음이 다른 데에서 갈라지기 때문에 그 깨달음은 바른 깨달음도 있고 잘못 깨달음도 있기 때문에 그 깨달음에는 벌써 그 사람의 사상이 생산되기 때문에, 깨달음에서 그 사람의 사상이 산출됩니다.

깨달음에서 그 사람의 사상이 산출되고 또 사상에서 그 사람의 행동이 산출됩니다. 또 그 사람의 행동에서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이상합니다. 행동에서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사람이 만들어진 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만들어 냅니다. 구원이다 멸망이다 하는 영원을 만들어 냅니다. 여기에서 건설구원의 성패가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교파들 있는 것도 인간의 감정으로 나뉜 그것도 많으나 그거는 예수님이 나눈 것 아닙니다. 또 자기의 무슨 사업이라는 사역적으로 나눈 것도, 이곳에서 전도해 가지고 여기 속했다, 또 우리도 총공회서 전도한 것은 총공회에 속한 교회라, 또 다른 교파서는 그 교파에서 전도한 것은 또 그 교파에 속한 교회다 그것도 예수님이 나눈 것 아닙니다.

그것은 나눈 것이나 지식이 같고, 깨달음이 같고, 사상이 같고, 행위가 같고, 사람이 같으면 같은 곳을 가는 것이고 같은 심판으로 판정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것을 잘 구별해서, 돈도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재산 다라도 양보할 수 있습니다. 또 자기의 몸도 양보할 수 있습니다. 생명도 양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 뺏겨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신구약 성경 도리 외에 다른 도리를 자기가 살기 위해서 받고 이 도리의 육십육 권을 양보할 수는 없습니다.

또 이 육십육 권을 자기가 믿는 자로서 거게 깨달음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옳은 깨달음은 하나지 둘이 있을 리는 절대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도 양보 못 합니다.

또 사상도 양보 못 하는 것입니다.

방편상 아무리 유하게 한다고 해도 행동도 양보 못 하는 것입니다.

왜? 이것은 막바로 주님하고 하나기 때문에 그 바른 깨달음을 양보하는 것은 주님을 내주는 신앙적 창기 행위요 교리적 창기 행위입니다. 신조와 교리적 창기 행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행동도 양보를 못합니다. 이럼으로 거게서 산출된 사람도 그것이 양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기에서 지난밤에 “둘 다 자라게 둬 둬라” 둘 다 자라게. 이렇게 악령이 주격체가 돼 가지고 기른 것이 있고, 가라지가 있고. 또 성령이 주격체 돼 가지고 기른 곡식이 있다. 이래서 마지막에는 그 모든 것이 다 심판해서 나누어서 하나는 멸하고 하나는 구원 얻는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세계에 가라지 곡식이 있다. 그것은 불택자와 택자가 가라지 곡식이다. 택자를 먼저 하나님이 정하셨는데 택자를 위해서 그 후에 불택자, 택자를 성취시키기 위해서 이용한, 외모는 같으나 속은 다른 불택자를 냈다. 택불택자가 이 세상에는 있다.

교회 안에도 가라지와 곡식이 있다. 곡식이 먼저요 가라지가 뒤다. 또 추수 때에는 가라지가 먼저 추수되고 곡식은 뒤에 추수된다.

또 한 교회 내에 가라지와 곡식이 섞여 있다. 둘 다 자라가고 있다.

또 한 사람 속에 두 세력이 자라가고 있다. 도고일장에 마고일장이라, 도가 하나 자라면은 마귀도 하나 자라고 있다. 자라가고 있다. 한 사람 속에도 자라가고 있다.

그래서 세상 끝에는 이 온 세계를 두 종류로 갈라서 하나는 하늘나라로 하나는 지옥으로 보낸다. 또 이 기독교라는 교파 안에서 하나는 지옥 보내고 하나는 천국 보낸다. 또 한 집안에서 이렇게 보낸다. 또 한 사람 속에서 한 사람은 천국 가고 한 사람은 지옥 가게 된다 이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이 나누신 것은 우리가 나눠야 되고 또 예수님이 나누지 아니한 것은 나누지 안해야 됩니다. 우리가 돈 때문에 나눠질 수 없습니다. 자기 재산을 홀트리 다 뺏기고 억울하게 당한다 해도 우리는 돈 그것 때문에 그 사람과 나눠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양보합니다.

만일 생명 문제가 있어도 생명 문제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지식 문제로는 나눠져야 합니다. 지식 문제로는 나눠져야 합니다. 또 깨달음의 문제로써는 나눠져야 합니다. 사상 문제로써는 나눠져야 합니다. 또 행동 문제로는 나눠져야 합니다. 왜? 이것은 사람이 멸망하는 사람과 구원 얻을 사람으로 이렇게 나눠지기 때문에 이것은 양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방편상 속도로 그렇게 아주 급속하게 이렇게 나누는 방편이 있고 아주 천천히 저속으로 나누는 방편 있는 그것은 다만 그 나누는 방편상, 또 거게서 실수하지 아니해서 손해보지 안하도록 하기 위해서 방편상 그래 하는 것이지 이것은 절대 타협은 없습니다. 둘은 하나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뭐 좀 속도가 빠르든지 느리든지 어쨌든지 그거는 차이 있지마는 타협은 없고 반드시 투쟁하고 승패하고, 이기든지 패하든지 하고 그 결과로는 죽고 사는 것이지 하나되지는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여게 말씀하시기를 37절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보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이것은 이 십자가는 어떤 것이 십자가인고 하니 자기를 보내신 이의 그의 뜻을 위하여, 자기를 보내신 이에게 속해 가지고 그의 뜻을 위하여 보내신 이와 대립된 그 대립으로서 이렇게 전투하고 분리하는 이 고난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고난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돈 뺏기지 않기 위해서 받는 고난, 돈을 벌기 위해서 받는 고난, 권세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 권세를 마련하기 위해서, 자기 공명을 세우기 위해서, 자기 공명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전투하는 것은 이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다만 주님은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아버지의 뜻을 세우려는 데에서 아버지의 뜻과 반대되는 그 악령으로 말미암아 오는 고난이 그것이 십자가의 고난이었습니다. 그 고난을 개의치 안하고 각오를 하지 안하는 사람은 주님에게 합당치 않습니다.

39절에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이것은 내나 같은 말입니다. 자기 목숨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주님에게 합당치 않습니다. 목숨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이 지식과 올바른 깨달음과, 깨달음도 둘인데 천이든지 만이든지 있는데 바른 깨달음은 꼭 하나지 둘은 있을 리가 절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리와 신조는 하나를 가지고 둘을 가지지 말라 하는 것이 그것이 여러분들이 어느 정도 소화를 하는지 모르지마는 그것을 아멘 하고서 잡지 못하면 천명 만명 있어봤자 기본구원뿐이지, 그것은 마귀의 이용물이나 되고 그저 하나님의 교회를 괴롭히기나 하지, 외식하는 자가 되고 말지 진실한 자는 안 됩니다.

목숨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은 지식,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목숨보다, 하나님의 지식에 바른 깨달음을 자기 목숨보다, 바른 사상을 자기 목숨보다, 바른 행동을 자기 목숨보다, 바른 사람으로 되는 이 성화구원 건설구원을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지 안하는 사람은 안 된다.

그러면 이것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바른 지식과, 바른 깨달음과, 바른 사상과, 바른 행동과, 바른 사람과 예수님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그는 머리요 교회는 몸이라” 하는 것은 하나된 그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지 그저 이름으로 예수 믿는다는 그걸 가지고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것을 잘 기억해서 그저 요걸 안 하는 사람들은 저도 죽고, 생명이 없으니까. 생명하고 사망하고, 사망 뭉텅이에, 사망 뭉텅이에 생명을 집어넣어 놨는데 그 생명이 변질돼 버리니까 거게는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요것을 가리켜서 생명 있는 겨자씨로 비유했습니다. 작은 겨자씨만 하나 심었는데 그것이 옮겨지지 안하고 죽지 안하고 뽑혀지지 안하고 변동되지 안하고 그대로 박혀 가지고 자라면은 나중에 나무, 먹는 나물이 나무가 돼 버렸습니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기회주의자 모든 이런 존재들이 다 거게 속해서 나중에는 거게 속해 가지고 그 영광을 위하고 그를 높이고 그에 속해서 그의 혜택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그 반대로 작은 누룩, 작은 누룩을 많은 가루에게 넣을 때에 가루가 누룩 기운으로 인해서 변질됩니다. 변질되면은, 처음에는 변질되면은 그것이 부풀면서 달고 단 다음에는 썩습니다.

누룩 이것도 누룩 비유도 이것을 “천국은” 했기 때문에 좋은 것으로 비유하는 깨달음도 있고 요것은 나쁜 사상, 나쁜, 성경 보고서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잘못 깨달은 잘못 깨달음 그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데 요거 하나로서 많은 것이 쪼개져 나갑니다.

그거 하나를 제가 세울라 하면은 나중에 보면은, 진리는 하나요 불법도 하나요, 진리도 하나요 불법도 하나요, 불법 하나 가지면 모든 것이 불법 다 된다 하는 것입니다. 진리 하나를 가지고 양보하지 안하면 모든 대적들을 다 삼키게 된다.

겨자씨 그것은 여기 종조리 새는 잘 먹습니다. 먹는데 종조리 새는 겨자씨 그거 백 개라도 먹을 수 있습니다. 이만한 새지마는. 너무 겨자씨는 작기 때문에.

이렇지마는, 뽑히면 종조리새가 백 개라도 먹을 수 있는 그 겨자씨지마는 안 뽑히고 자라면 겨자씨 그 자람에 공중에 나는 모든 새들이 거게 속해 가지고 살게 되는 이런 승리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똑똑히 깨닫고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싸움은 무슨 싸움인가? 우리 싸움은 무슨 싸움이요? 자, 첫째 무슨 싸움이요? 녜, 처음에는 지식 싸움입니다. 지식 싸움. 신구약 성경 하나님의 지식 그 외에 모두 마귀 지식입니다. 알겠습니까? 지식 싸움.

그다음에 둘째 싸움은 뭐입니까, 인제? 다 같이 성경 믿는 사람 가운데서 깨달음의 싸움입니다.

그다음 싸움은 무슨 싸움이요? 사상 싸움이오.

그다음에는 무슨 싸움이요? 행동 싸움. 그뭐 돈 때문에 싸워. 행동은 부득이 그 행동을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행동을 안 할라면 하나님을 배반하기 때문에 이거는 부득이 울면서 돈도 양보하고 오만 것 다 양보하지마는 이 깨달음도 양보 못 하겠고, 행동도 양보 못 하겠고, 사상도 양보 못 하겠고, 이러니까 사람도 내가 양보해서 그 사람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리 되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되지, 여게서 방해되는 자가 누굽니까? 뭐라 했습니까, 여게서 방해되는 자가? 네 원수가 뭐라 했습니까? “자기 집안 식구리라” 이거 무슨 말이요? “식구리라” 이것으로 하나되지 아니한, 이것으로 하나되지 아니한 모든 다른 것들 가지고 하나된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돈으로든지 혈통으로든지 인정으로든지 사업으로든지, 똑똑히 알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저거 가지고 고집을 떠나?’ 이해 못 하는 사람은 고집이지마는 그것이 울면서도 주님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있는 것을 다 팔아서라도 이제 보화를 사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양성원 학생들은 이번에 공부하는 그것을 잘해서 하면 눈이 떨어집니다. 평생 예수 믿어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안 가지기 때문에 눈이 감겨 가지고 있으니까 다 소경이니까 이걸 모릅니다. 눈이 뜨이면, 눈이 뜨이면 눈뜬 대로는 봅니다.

많은 눈을 띄우는 것이기 때문에 잘 공부하면 이제 공부하고 난 다음에 자기네들이 또 그 실험을 해야 됩니다, 실험. 문서적인 연구하고 난 다음에는, 논리적인 문서적인 연구하고 난 다음에는 실험을 해야 그 진가를 알지 실험하지 안하면 모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여러분들이 시험해서 ‘보자, 한국 교회에 모든 사상이 어떠냐? 인물들이 어떠냐? 이것은 무엇이며 저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눈이 떨어져서 뭐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알게 되면은 과거에 이해 못 했던 전투를 알게 될 것이고, 과거에 무엇 때문에, 이해 못 하던 것은 모든 시대마다 신사참배라든지 그 6.25 의 공산주의라든지 그럴 때에 뭣 때문에 그렇게 싸울 필요가 있을까? 알고는 자기가 투쟁 안 할 수 없고, 알고는 양보할 수가 없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또 아는 거와, 아는 것. 아는 거와 능력이 같이 있습니다. 아는 거와 능력이 따로 있지 안해. 아는 것 버리면 능력 버렸어.

내가 어제 저 양산동에 가 가지고 어떤 정신 이상자를 만났는데 그 사람에게 내가 권고한 것이 ‘너는 과학적으로 약으로써 할 수 있으니까 약으로 하는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무엇이든지 하든지 해라. 또 네가 네 맘대로 둘을 할라면 둘을 가지고 해라. 둘도 할 수 있다. 이런데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것은 다만 그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네가 깨달으면은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 주님 만날라고 애쓰는 것이 바로 깨달을라고 애쓰는 것이다. 바른 깨달음을 잡고 놓지 않는 것이 주님 놓지 안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주님 오시면 다 된다.’ 요것 가지고 치료하는 걸 말했습니다.

이번에 대구에서도 보니까, 어제도 신고함 보니까 열 몇 장인가 나왔는데 그뭐 흉측한 병들 다 나았지마는 ‘내가 신고하면 이거 나았다 하다가 안 낫을라?’ 이러니까 못 써내고 이래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낫기는 나았는데 이 벌받을까 싶어서, 벌받을까 싶어서 그래 써내는 그런 악한 자들이 있어. 얼마나 주님의 하시는 일을 그렇게 업신여겼는가? 저 깨질까 싶어서, 저 위신 떨어질까 싶어서.

그 모든 데에서 주님은 털끝만한 것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그대로 공평되게 정평으로 보응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가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너는 네 감정에 속한 인간이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감정 하나만 대이면 안 돼. 헛일이라. 그걸 죽어야 돼. 그거 안 죽이면 헛일이라. 그까짓 거 인간 열심이 무슨 소용 있소? 자기 감정을 두고서, 감정을 두고서 제가 바른 길을 걸어갈라고? 마귀란 놈은 그걸 잘 알기 때문에 감정을 일으키는 그런 일이 얼마나, 수백 수천도 넘은데 그걸 제가 죽이지 안하고 거게 따라서 움직이는 자는 바른 길 못 합니다! 요것을 알아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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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4 4가지 기억할 것/ 요한복음 8장 42절-48절/ 870619금야 선지자 2015.10.21
5493 4가지 기억할 것/ 에베소서 1장 3절-14절/ 870915화새 선지자 2015.10.21
» 4가지 나뉠 이유/ 마태복음 10장 16절-42절/ 870618목새 선지자 2015.10.21
5491 4가지 다해 주와 이웃을 사랑하면/ 누가복음 10장 25절-37절/ 870703금야 선지자 2015.10.21
5490 4가지 대적/ 요한복음 16장 33절/ 871011주새 선지자 2015.10.21
5489 4가지 도리/ 누가복음 5장 1절-11절/ 870123금야 선지자 2015.10.21
5488 4가지 작정할 것/ 요한일서 3장 16절-24절/ 830608수야 선지자 2015.10.21
5487 4가지 정권에 대한 평가기준/ 로마서 1장 18절-25절/ 870622월새 선지자 2015.10.21
5486 4가지 주기위한 3가지 방편/ 이사야 1장 18절-20절/ 870527수야 선지자 2015.10.21
5485 4가지 준비/ 마태복음 25장 10절-13절/ 880528토새 선지자 2015.10.21
5484 4가지 큰 구원/ 히브리서 2장 1절-4절/ 880927화새 선지자 2015.10.21
5483 5가지 가르침/ 누가복음 16장 9절-13절/ 880308화새 선지자 2015.10.21
5482 5가지 가르침/ 히브리 12장 1절-5절/ 880102토새 선지자 2015.10.21
5481 5가지 가르침/ 창세기 2장 15절-17절/ 880203수야 선지자 2015.10.21
5480 5가지 깨달을 것/ 누가복음 16장 9절-13절/ 880304금새 선지자 2015.10.21
5479 5가지 믿음이면 눈 떠/ 마가복음 10장 46절-52절/ 870220금새 선지자 2015.10.21
5478 5가지 배경/ 요한계시록 3장 1절-3절/ 860508목새집회 선지자 2015.10.21
5477 5가지 실력/ 야고보서 1장 12절/ 860915월새 선지자 201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