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지키는 것

 

1984. 11. 25. 주일오후

 

 본문 : 말라기 3장 7절  만군의 여호라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여게 규례라는 말은 우리에게 법칙으로 주신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리켜서  규례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요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여 주여 할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면 그것이 곧 주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요 주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안하고 이 말씀을 모시고 이  말씀에게 복종하는 그것이 곧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보호를  입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지극히 큰 능력의 보호를 받았다고 모든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받는다 하는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함으로 하나님의 지극한 능력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모든 것을 충만히 구비해 가지고 계시는  이 하나님의 온갖 은혜를 우리가 받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버렸을 때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고 순종하는 이것을 버렸을 때에는  하나님의 온갖 은혜는 우리와 상관없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깨닫고 보면 우리가 세상에 참 성공될 일이 많고 유익될 일이  많지마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보다 더 성공되는 일이 없고 더 유익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미국이 한 번 쓰러졌을 때에 그 쓰러진 미국을 무디  선생이 그때 다시 일이 말하기를 믿음보다 더 큰 수입은 없다.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이보다 더 성공도 없고 수입도 없고 승리도 없다.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이것이 구속 받은 우리들로서 무상의 성공이며 무상의  승리며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이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더 수입되는 것이 없고 승리되는 것이 없고 성공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인간 중에 제일 큰 성공한 것은 믿음으로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복종하는 이거 하나 가지고 만사를  다 성공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돌아오라 말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돌아오라 말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데로 떠났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는 것이 주님을 떠나는  행위요 주님을 배반하는 행위입니다. 요것을 꼭 잡아야 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번연히 현실 당할 때에 요렇게 하는 것이 주의 말씀이요  요래 지금 하는 것은 주의 말씀을 어기는 것인데 하는 것을 그리가 그 대개는 알  수 있습니다. 고럴 때에 내게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만유의 대주재이신 주님을 내가 모시고 그분에게 내 모든 것을 맡기는 일이  됩니다. 그럴 때에 주님은 그 일을 맡으셔서 신실히 잘 해주십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아무래도 주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다  통계로 증거하고 또 내 생각에도 그러한 거와 같이 요 현실에서는 주의 말씀을  좀 저버리고 떠나서 이렇게 하지 안하면 이 환난을 면하지 못하겠고 또 이  궁지를 벗어나지 못하겠다 싶으기 때문에 그때에 하나님 말씀을 배반하고 자기나  어떤 인간의 생각대로 따라갑니다. 그것이 주님을 버리는 것이요 배반하는  것이요 떠나는 것이요 주님이 책임지신 온갖 책임을 '주님에게 책임 없습니다.

그 책임을 도로 찾아서 내가 지겠습니다.'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망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주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저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가는 그것은 그만 섞임 없는 전체가 망하는 일이요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 말씀을 기억합시다.

 주님의 말씀을 배반하는 것이 주님 배반하는 것이요 주님을 떠나는 것이요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할 때에 어떻게 주님께로 돌아가겠습니까 할 때에  돌아가는 것을 몇 가지 규례를 들어서 거게 한 일곱가지 말했습니다. '이것을  지켜라. 이거 지키는 것이 내게로 돌아오는 것이요 이거 지키는 것이 나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요 이거 지키는 내가 너에게 대한 모든 것을 책임 다  지겠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13절, 13절, 3장 13절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찬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이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냐, 그분을 두려워하고 그분만 사모하고 그분만 바라 보고 그분만  의지한 것이 뭐이 유익하냐, 하나님 배반하고 얼마든지 교만하여 제 마음대로  하는 자들이 다 복이 있고 그 사람들이 다 의식주에 넉넉하고 평안하게 살고  웃으며 기쁘면서 즐거우며 사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서 슬퍼하며 그 계명을  지키며 그분을 두려워 떨면서 사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느냐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16절에, '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였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날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나를 섬기는 그들을 아끼리니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때가 있습니다. 그저 임시 보고 가깝게 생각하나 하나님 두려워하고 섬기는  자와 하나님을 멸시하고 뭐 말씀대로 해 봤자 무슨 소용 있나, 말씀을 어기는  것이 잘된다 하고서 패역을 부리는 그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데 얼마 동안  참고 있지마는서도 하나님께서 한 마디의 거역도 한 마디의 당신 위해서 수고한  것도 결단코 잊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다 그것이 기념책에 기록됐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알고 섬기는 그 일을 영원히 그것을 이렇게 섬긴 자에게 이런  영광이 있다 하는 것을 영원히 나타낼 것을 말합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나라냐 하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참지 못할 걸 참고  손해 안 볼 걸 손해 보고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부릴 오기를 부리지  못하고 부릴 세도를 부리시 못하고 제 마음대로 제 욕심대로 제 중심대로 하지  못하고 떨면서 그분의 명령에 복종한 그 자를 영원히 영원히 하나님이 존영하게  기념해서 이는 일으키겠다 하는 그의 신앙 행위를 영원히 찬양하고 영원히  대우하고 영원히 존귀하게 누리도록 나타내는 그것이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세상에서 주를 위해서 산 자의 그 공로를 영원히 기념하는 것이  하늘나라요. 지옥은 하나님을 업신 여긴 것을 영원히 보복하는 것이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은 양면이 있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업신 여긴 그것만치  하늘나라에 가서는 답답한 꼴을 당합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그 하나  하나에 정확한 심판에서 다 제거해 버리고 나니까 부활은 하기는 했지마는서도  자유할 만한 아무 기능이 없는 그런 무지 무능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나는 주의 계명 지키지 아니했으므로 이렇게 무지 무능한 자 됐습니다. 이렇게  수치스럽고 가련한 자 됐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복종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그를 위해서 수고한 그 생활한 그것을 저렇게 나타내고 기념 받고  있다고 하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전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어떤 것이라 하는 것을  간단하게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것을 새겨서 하나님과 동행해 보면 하나님이  자기와 동행하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과  자기가 동행하는 것을 상상적이 아니고 어떤 추상적이니 의논적이 아니고 다  실질적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동행하는 거. 자기와 같이 의논해 주는 거,  자기의 마음 움직임에 하나도 무관심하시지 안 하시고 하나 하나를 들어 주시는  거,  이러기 때문에, 어린 아이의 어머니가 하루 열 두 번 거짓말 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 어린 아이의 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어린 아이가 짹 거려도 뭐  발을 흔들어도 또 한 번 웃어도 그것이 그 아이의 심정을 똑똑히 아는 그 애착을  가진 그 어머니에게는 아이가 자기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거, 또 반갑다는 거, 또  싫다는 거 그런 모든 것을 자기는 어린 아이의 발표하지 않는 그 아이의 언어를  다 듣기 때문에 듣는 그대로 말하지마는서도 다른 사람은 그것이 들리지 안하기  때문에 거짓말 한다 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거짓말 아니요 진정  그 아이의 심정에서 우러나온 것을 소리 없는 그 말을 듣고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자기에게 대해서 행하시는 일을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미치괭이라고 할 만치 이 사람은 무슨 정신에 이상이 걸렸나  할 만치 '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해야 될 것이 어떻게 많은지 아,  이것도 정말 감사 안 할라 해도 주님이 분명히 나에게 감사할 일 했는데 감사 안  할 수가 없고, 또 이거는 내가 주님 앞에 거슬리는 일을 했는데 자복하지 안할  수 없고, 감사하고 자복하고 간구하고 뭐 의논을 하고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나를 간섭하시네. 나를 위해서 이것을 미리 예비해 놓으셨네.' 이라는 것이  모르는 자가 말할 때 에는 마치 어머니 거짓말 한다는 것처럼 모르는 자는 다  그거 거짓말로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것 때문에 인간들이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강퍅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세밀히 역사하시는 것을  무시하고 보이는 거 위주로 이렇게 나가는 이것은 참 강퍅해서 그 심령이 아무런  촉감이 없는 마비된 심령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는 일을 해 봐야 알고 터가 주님의 말씀을 한  마디 거슬릴 때에 그분이 섭섭해 그러는 그 안면을 본 자라야 알 수 있고 내가  어려움을 겪어 당신의 말씀을 하나 지킬 때에 그분이 좋아하시고 그 어려움 당한  그 어려움보다도 넘치는 위로를 자기에게 해 주는 것을 체험한 자가 알 수 있지  체험하지 못한 자는 알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가나안까지 가는 데에 순전히  이적으로 먹었고 이적으로 마셨고 이적으로 입었고 이적으로 싸웠고 이적으로  통과해서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거 우리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보이는  것으로 그와 같이 됐지마는서도 그 당시 그들은 그걸 몰랐습니다. 왜 그들이  사십 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있다가 다 멸망을 받고 가나안을 가지 못했던가?  그렇게 우리가 뒤를 돌아보고 그 성경 기록한 것을 보면은 '왜 이랬는데 못  믿어서 이럴까?' 이랬지마는서도 이스라엘은 믿지 못 했습니다. 믿지 못하고  시험하다가 다 멸망을 받았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 당시에 하나님이  그렇게 순전히 당신의 능력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그 과거  지났던 때 것은 지금 우리가 압니다. 오늘 우리에게 당한 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우리가 뭐 하는 것 같지마는서도 우리 하는 것은 당신이 내게 대해서 움직여  주시게 하는, 그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데에 지나지  못하지 우리가 하는 그거 가지고서 구원이 멸망하지 안하고 영생이 이루어지고  완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당신이 혼자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먹는 거와 같은 그 먹는 식품 안에 당신이 나에게 줘서 먹는  그것이 우리의 양식이요 우리의 다 영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 행하면 변화가 되고 우리 자체가 변화가 되고, 변화가  되면 하나님의 섭리의 그 종적을 알게 되고. 알게 된 자는 자기는 다시 죄의  종이 되지 안하고고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그 자유하는 사람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것이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헛되다고 하나님 말씀을 대항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것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은, 14장 21절에.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주님의 계명을  가지는 것은 자기에게 자꾸 바꾸어 오는 현실 현실이 순서를 따라서 부딪힐 때에  그 현실을 주의 계명 지키는 현실로 주님이 주시는 것인 줄 알고 그 현실에  주님의 계명대로 지키는 것이 다 영생이 되는 것이요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주님을 모셔 섬기는 것인 것을 알고 그 현실에 주의 말씀대로 지키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배우고 간직한 것을 가리켜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라고 말했습니다.

 계명을 가지고, 암만 외워도 그거는 가진 것 아닙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가지는 것은 나에게 이런 저런 상상 못 할 현실이 올 때에 그 현실 현실마다 요  계명대로 행하기 위해서 내게 미래적으로 어떤 현실이 오든지 고 현실은 요  계명대로 하기 위해서 계명 가지고 있는 것을 계명을 가지고라고 말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입으로 암만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니까  뭐 어째 사랑할까 해가지고서 애인처럼 사랑할까, 자녀처럼 사랑할까, 돈처럼  사랑할까 어떻게 말해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신구약 성경을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을 읽고 외우고 현실을 당할 때에 주의 말씀대로 사는 요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른데 더듬을 것이 아닙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이러면 이것이 주님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행위입니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행위입니다.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또 주님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나도 그를  사랑하여' 주님도 그 계명 지키는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그 사람에게 예수님은 누구라는 것을 그 사람에게  나타낸다. 그 사람이 예수님이 아닐지라도 그 사람 본 사람은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예수님의 꼭 예수님과 같은 예수님의 그 모형적 예수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칩니다. '나를 나타내리라' 그럴 때에 주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낼수 있고 당신의 죽으심을 나타낼 수 있고 당신의  부활하심을 나타낼 수 있고 당신의 그 승리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에 보면, 요한일서 5장, 신약 삼백 구십 삼 페이지. 요한일서 5장  2절에 '우리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킬 때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지킵니다. 그 계명 지키는게 하나님을 상랑하는 것입니다. 또 계명을  지킬 때에 뮈 달리 돈 보고 지키는 것 아니고 이것 저것 보고 지키는 것 아니고,  물론 자기 병 낫기 위해서 지키는 것도 좋지마는 또 그 지키면 모든 것이  형통해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함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러면 거게 다른 거는 다 거게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이라면 이렇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킬 때에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가졌을 때에 내가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 가질 때에 돈을 표준해서 관계 가지지 않고 무슨 사건을  표준해서 관계 가지지 얻고 지위나 뭣이나 형통을 위해서 관계를 가지지 안하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가질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가지는 그 일을 하면 한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 수 있고 자기가 참 형제를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랬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그 계명을 지키는 그것이 막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구약 상경 말씀을 하나님 사랑하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있는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있다가 현실을 닥칠 때에 그때 말씀대로 행하는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닥칠 때에 주님의 말씀대로 자기가 지켜  행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것이 주님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요  그것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됩니다. 그 사람이 권능이 있어시 하나님을  나타내게 됩니다. 주님을 나타내게 됩니다. '내가 그에게서' '내 계명을 지키는  그에게서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 그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 예수님이 승리한 승리를 그 사람도 할 수 있게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이러면 자기가 그래 지키면 계명을 지킬  때에 하나님의 자녀를 내가 사랑했다 하는 것이 확신이 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사랑을 뭘로 할 것이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  지키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착는 것입니다. 이 외에 다른 법칙이  없습니다. 이보다 나은 법칙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지키는  것보다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킴을 인해서 자기에게  영감이 올 때에 영감대로 또 행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것이요, 하나님과 독특한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이요,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요, 또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그 영광스러운 권위 있는 이 생명 역사를 나타냅니다.

 '그에게서 나를 나타내리라' 그 말은 '나를 나타내리라' 주님은 무슨 일  했습니까? 주님은 죄인을 구속하시고 타락한 저주받은 만물을 구원한 것이  주님의 하신 일입니다. 주를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지킨 그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요, 또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요.

아버지와 주님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요 그 사람이 주님이 하시는 구속 역사를  참으로 나타내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거 이것 두고 달리 자기가 다 몸을주고 생명을  주어서 불사르게 한다 할지라도 소용 없다 했습니다. 자기 몸을 주어서 형제를  위해서 불사르게 해도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뭐입니까? 사랑이 곧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을  죄에서 구출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데, 구출하는 것이 뭐입니까? 뭘로  구출합니까?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키는 이것이 그 사람을 구출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에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능력이 나타나서 구원을  시킵니다.

 내가 믿지 않는 남편을 구원하는 것은 그 남편에게 온갖 일을 다 잘 해 준다고  해도 안 됩니다. 온갖 것으로 대항해서 진리를 말한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남편을 대할 때에 주님을 사랑함으로 꼭 신앙 양심 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지킵니다. 맞아도 말씀대로 행하고. 칭찬해도 말씀대로 행하고, 말씀대로 그  남편을 대접하고, 말씀대로 그 남편을 공경하고 말씀대로 그 남편에게 발언하고,  말씀대로 남편 앞에서 행동하고, 말씀대로 남편 앞에서 금할 걸 금하고 버릴 걸  버리고 가질 걸 가지고, 주님을 봄으로 요 말씀대로 하는 그것이 유일로 그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요 남편을 구원하는 것이요 남편을 건지는 것이요 그것이  주님이 대속하신 그 일을 자기가 자기 가정에서 일에서 주님의 하시는 대속  역사를 그 사람을 통해서 그 가정에 나타내서 그 가정을 구출할 수 있다는 것을  여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후에 이 말씀을 기억합시다. 주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이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요, 버리는 것이. 주님의 말씀을 내가 지키는 것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사랑하는 것이요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요, 말씀 지키는 것이  주님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요 말씀 지키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말씀 지키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지킴으로 주님의  사랑을 받는 거 아니고 말씀 지킨 그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받다니?  말씀을 지킨 것은 주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라니? 말씀 지킨 것은 벌써 주님이  사랑하사 영생이 돼 버렸습니다. 그게 영생이라. 말씀을 지킨 그것이 성공이요  그것이 구원이요 그것이 영광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이 어디 있느뇨?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사랑입니다. 이 말씀을 내가  지켰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차지했습니다. 말씀을 버렸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물리쳤습니다. 이 말씀으로 형제에게 이 말씀으로 형제에게 상대해서 행하는  것이 그 형제를 내가 사랑한 것입니다. 그 형제를 주님이 날 구원하심 같이 내가  그 형제를 구원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헛되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 우리가 슬퍼하며  외로워하며 다른 사람들은 다 기분 좋게 마음대로 사는데 자기 혼자 끙끙  앓으면서 말씀대로 못 산 것을 후회를 하고 탄식하고 슬퍼하고 이렇게 말씀대로  살고 떨면서 이렇게 한 그것이 다 무슨 소용 있느냐? 악한 자가 잘 되고 교만한  자가 잘 되고 망령된 자가 잘되고 제 마음대로 하는 자가 잘 되지 뭐 하나님을  이렇게 계신다 하면서 뻘뻘 떨고 하나님을 상대해서 사모하고 지키고 하는  그것이 무슨 지혜 있느냐? 하나님에게 어데 지혜가 있겠느냐? 하나님의 눈이  있나 귀가 있나 입이 있나? 하나님이 뭘 보나? 하나님에게 무슨 감각이 있는  줄로 아느냐 하는 요것으로서 인생은 멸망을 받습나다.

 고게 보면 잠시 잠깐 후에는 의인들이 서로 말하는 거. 의인들이 이렇게 하나님  말씀 지키고 하는 것이 다 헛되다 하는 그 말 하는 걸 보고서 의인들이 보고  마음에 안타깝게 여기는 그 한 마디 한 마디를 당신이 기념책에 다 기록했다  그말이오. 기념책에 기록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부인하는데 자기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바라보면서 안타깝게  여기는 고 말 한 마디, 고 정성 하나 고것을 하나님께서 영원무궁토록 그것을  드러내서 당신이 기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 거게 기념책에, 기념책에  기록했다 이래. 기념 책에. 하늘나라는 이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부인하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대우하는 자의.

그의 그 행위를 영원 무궁토록 찬양하고 높이며 기념하는 이렇게 영광스럽게  영원히 드러내는 그 기념하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말씀을 버린 것이 주님을 버리고  배반하는 것이요, 말씀대로 행한 것이 무슨 소용 있나 하는 것이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요, 그런 속에서도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이 사실을 믿고 아브라함처럼 죽을 때까지 말씀 지킨 효력이 나타나지  안해도 하나님은 거짓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말씀대로 지키는 거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다 영생이 된 것이라. 요렇게 믿고 세상에서 죽을 때까지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도 그 분을 믿고 그분을 바라보고 믿어 영원히 끝없는 믿음.

두고 믿어 두고 있는 그 믿어 두고 있는 믿음을 가지고 떠나는 그 사람을 영원히  기념해서 일 년 믿은 사람, 십 년 믿은 사람, 인간이 믿기 어려울 때에 믿은  사람, 도무지 믿음 없을 때에 믿은 사람, 이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것인데  아브라함이 믿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이것을 통해서 승리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형제에게 대할 때에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형제와 상관을 가질 때에 인간 생각대로 가지지 안하고 그  형제와 상관을 가질 때에 그 형제에게 하나님 말씀대로 상관 가지는 것이 그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날 구원하신 구원을 그  형제에게 나타내서 구원해서 그 사람이 말씀대로 하는 고 행동 고걸 통해서 인간  구원하는 구원을 네 행동 통해서 내가 나타내겠다 그랬습니다. '나를 그를  통해서 나를 나타내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도들이 이렇게 말씀대로 살다가 낙심을 하는가? 우리는 그런 데에  낙심을 하지 맙시다.

 잠깐 한 군데 읽어 봅니다.

 '너는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기를' 에스겔 19장  1절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기를 네 어미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 엎드리어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고 다음에 5절 이하에 보면 그런 말씀을 또 기록해 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업신 여기는 세상이  되지마는서도 하나님은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어리석지를 마십시오. 여게  암사자라 말은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사자처럼  강퍅하고 이래 가지고서 젊은 사자를 만드는 것처럼 자기나 자기 부하를 만들어  가지고서 이러니까 눈에 보이는 데에 만사형통이라. 만사형통이고 청청하니까  청청하니까 무엇이든지 자기가 삼켜서 먹을라고 삼켰지마는서도 사람을 삼킬  때에 이방이 그를 잡아서 함정으로 몰아 넣어 가지고 꿰어서 갈고리로 꿰어  가지고서 하나는 애굽으로 보냈고 하나는 바벨론으로 보냈다 이랬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악을 행해도 악을 행해도 하나님께서 그 악에 대해서 그  불신자의 악을 행하는 것을 그리 갚지 않습니다. 지옥 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불신자가 악을 행하는 걸 그리 갚지 않습니다. 또 믿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악을  행해도 징계는 있지마는서도 그렇게 갚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 참사람,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을 해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방을 동원해 가지고서 그 사람을 잡아 함정으로 끌어 가지고서 갈고리를 꿰서  애굽으로 바벨론으로 보낸다 하는 것은 이 세상에게 한없는 천대와 곤욕을  받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복수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은 눈동자와 같이 아끼신다고 말 했습니다.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지키는 것이 일시에 보기에 그때에 무슨  형통이 없다고 그렇게 우리는 속단적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고로, 말씀을 지키면서 여러 가지 억울함이 있어도 그럴 때에 주님을 찾는  그것이 하나님의 기념책에 다 기록이 됩니다.

 그런고로, 말씀을 지키는 것이 주님을 모시는 것이요 섬기는 것이요 사랑하는  것이요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그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것이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법칙이라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과 동챙하는 이것을 놓지 맙시다. 주님과 동행 하는 것.

말씀과 동챙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함이니라. 영감과 동행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라. 사죄와 동행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라. 칭의와  동행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라. 대속의 화친과 동행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라. 이것을 내 현실에서 버리지 아니할 때에 그것이 전지  전능자이시며 대주재이시며 주권자이시며 개별 섭리자이신 자존자이신 주님과  막바로 동행하는 것이요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거 외에는  인간의 승리가 없고 인간의 성화가 없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보다 더 성화가  없고 더 성장이 없고 더 성공이 없고 더 큰 수입이 없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아무래도 이제는 바쁠 때나 틈날 때나 주님 잊어 버리지 말고 주님과 동행하는  이 일에 힘씁시다. 이렇게 평소에 연습하면 앞으로 참 불벼락이 떨어질 때에  불시험을 닥칠 때에도 주님과 동행하는 일이 쉽게 됩니다. 불시험을 닥칠 때에도  주님을 잊어 버리지 안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주님과 동행할  때에 전지자와 동행이요 전능자와 동행이요 대주재와 동행이요 주권자와  동행이기 때문에 거게는 아무 악한 자가 가까이 오지를 못한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동행하지 못한 거. 환난 때에 아무리 부르짖어야 내가 내 주관이  부인하기 때문에 동행이 안 됩니다. 나는 아무리 동행할라 해도 제가 동행한다  하지마는서도 자기가 자기가 주님을 부인하기 때문에 동행이 되지 않습니다.

평소에 주님과 동행하는 일을 연습해서 자기가 주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고  동행을 부인하는 이 자를 죽여서 없애 버려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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