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의 원인은 죄 행복의 원인은 의

 

1987. 5. 28. 새벽 (목)

 

본문:이사야 1장 18절∼20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런 옷을 입고 와서 여러분들에게 아무래도 변명을 안 하면 안 되겠습니다. 넥타이 매고 영 뭐 하기 싫어서 매고 또 벗어놓고 이걸 검은 걸 가지고서 일본 사람들 쓰미오리라 하는 작업복 그걸 외출복으로 되기 때문에 그거 하나 맞춰 입을라 하니까 또 말하기를 그거는 꼭 김일성 이 잠바 이런데 이거는 넥타이 이걸 이해를 하시이소. 왜 이 말 하느냐 하면 이 설교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보기를 똑 무대에 나선 사람같이 그래 보기 때문에 넥타이 하나 빼딱해도 그것 때문에 모든 사람이 빼딱하거나 어짜거나 밥을 먹고 난 다음에 어짜든지 진리만 배우면 좋지마는 안 그렇다 그거요. 그래서 내가 목사님이 이상한 옷 입고 강단에 서네 그랄까 싶어서 나는 맬 줄도 잘 모르고 이렇지 그 미국에 있는 딸들이 끼우는 걸 그걸 지금은 그걸 끼우는 것도 뭐 있는지 모르겠고 알롱달롱 넥타이지 검은 넥타이로 해 놓은 게 없어서 못하고 이해를 해 주십시오. 그래서 이 옷을 이런 것을 입었습니다. 넥타이 안 매기 위해서 예배드리고 난 다음에 양산동 편리해서 그랬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 신구약 성경으로 우리가 계약을 맺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하는 말입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오라 우리가 서로 의논해서 협작하자. 너와 나와 하나니까 너와 나와 이래 서로 협동해 가지고서 네 행복을 이루어 보자.

그러면 우리는 행복이 하나님하고 우리하고 둘이 협동하면 우리는 행복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께는 수입이 뭐입니까? 행복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께는 수입이 뭐입니까? 또 다 잊어버렸네. 하나님께는 뭐 어떤 수입입니까? 우리가 행복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말 있고 “떠나든지 거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자” 이렇게 하는 말씀 있는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딴게 없습니다. 우리가 육과 영, 금생과 내세 영원히 행복된 자 되는 것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그외에는 딴걸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체가 행복된 자 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하고 서로 이렇게 의논해서 협동하면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행복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에게는 기쁨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와같이 할라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 죄에서 그 죄 문제를 해결할 자 없지마는 하나님께서 계약에 선포해 놓으시기를 독생자를 보내서 대형으로 죄를 없앴고 대행으로 의를 세웠고 대화친으로서 화친케 하셨으니 이런 계약을 선포해 놨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서로 의논해 가지고 협동만 하면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은 죄인이라도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즐겨 순종하면”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렇게 의논을 하고 협동을 하면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네가 땅위에 있는 남은 여생의 행복이 갖추어 질 것이요 그러면 땅에 행복 갖추어지면 하늘의 행복이나 같이 갖추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바른 이치로 인해서 되는, 진리로 인해서 된 행복이기 때문에 땅에 행복되면 하늘에도 행복되고 육체에 행복되면 영의 행복도 되고 전체가 다 됩니다. 그거 왜? 참된 이치 진리요 영감으로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거절하여 배반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의논해서 서로 계약한 계약이 있기 때문에 대속한 게 있기 때문에 의논하고 협동하면 될 수 있는데 이 일을 하지 안하고 제 마음대로 이래도 제 주장대로 제 욕심대로 나아가면은 “칼에 삼키우리라” 환난으로 멸망받게 된다.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이 말은 보증하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신 말씀이다. 그 말씀 하신 건 천지는 변해도 변치 않는다 그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지난밤에도 말씀했거니와 신자와 불신자는 아주 다릅니다. 택자와 불택자는 아주 다릅니다. 교회 나오는 사람이라고 다 택자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불택자도 있습니다. 마귀란 놈이 불택자를 교회다 데려다 넣으면서 아주 마귀적인 행동을 하면서 예수를 믿구로 만들어 가지고 ‘봐라, 이래 믿는 사람도 아무 재앙도 받지 않지 않느냐? 재앙도 받지 안하고 환난도 없이 잘 되지 않느냐?’ 이렇게 말합니다. 그거는 안 믿는 사람들은 불택자는 하나님이 간섭하지 안하고 세상에서 죄를 짓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아주 죄도 극한 죄를 지으면 간섭하지마는 보통 죄 짓는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택한 자는 처음에 어렸을 때는 좀 차차 차차 이래 하지만 차차 차차 예수님을 믿어서 점점 의로운 사람이 되어갈수록이 털끝만한 죄도 냅두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와 가까운 그 친근한 사람은 죄를 용납하지마는 하나님은 친근할수록이 죄를 용납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옛날도 제사장이 죄를 지으면은 소로 가지고서 속죄제를 드려야 됩니다. 속죄제 소로 드리는 것은 온 민족이 범죄했을 때에 그 속죄제 드릴 때에는 소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범죄할 때는 뭐 비둘기로도 되고 양으로도 되고 이렇게 되지마는, 그러니까 제사장이나 이런 사람이 범죄한 것은 전민족이 범죄한 거와 같은 그런 그 중한 취급을 했고 또 형벌도 중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까이 갈수록이 자기와 친근해질수록 죄라 하는 것을 엄하게 단속해서 죄 없게 하시고 또 의를 충만하도록 그렇게 해 주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은 뭐이 사랑인고 하니 요한일서 4장 10절 이하에 보면은 “사랑은 여게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은 뭐이냐? 독생자를 보내 가지고서 이 죄를 없이 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과 서로 화친하게 만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죄가 있으면 멸해지기 때문에 죄를 없애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고 또 완전자 주재자 주권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하고 친목하게 만드는 그것이 그 사람을 행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상대방을 행복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배암의 사랑은 상대방을 행복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을 어짜든지 자기의 욕심대로 자기 것을 만들어야 만족하는 것이 그것이 배암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 권한 것도 저만 선악과 먹고 이 아담이 저와 같이 안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제 욕심으로서 아담을 제 사람 만들라고 그와 같이 선악과를 권했습니다.

또 선악과 권했는데 아담이 그 마귀의 사랑, 선악과 권할 때에 아담이 그 선악과 먹은 것은 이 선악과 안 먹으면 하와 떨굴까 싶어서 하와를 제 사람 만들라고 그와 같이 한 것이오. 전부 인간의 사랑은 뒤져보면은 내용은 다 그 썩고 더러운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두 가지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죄를 없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오. 죄를 없이 하는 것은 멸망을 없이 하는 것이 죄를 없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멸망을 없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오.

또 하나님과 화평하도록 하나님하고 한덩어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거는 모든 생명과 평강과 행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친한 그게 사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택한 자들이 믿지 안할 때는, 우리가 믿지 안할 때에는 배암의 사랑 가지고 사랑했었습니다. 어짜든지 사랑할수록이 그가 죄가 있으면 용납하고 묻어두고 숨겨두고 가리워 두고 이래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어짜든지 그에게 죄가 있으면 영과 육과 금생과 내세 모두 전체가 다 망하기 때문에 어짜든지 그것을 죄를 없이 할라고 애를 씁니다.

애를 쓰는데 숨어서 기도해서 없애도록 하고, 안 되면 눌러서 없애도록 하고, 안 되면 강조해서 없애도록 하고, 어짜든지 죄를 없앨라고 합니다. 죄를 없앨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한다 하면서 죄를 용납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그 사람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죄를 용납지 않는 것이 사랑이요, 죄를 청산해 주는 것이 사랑이요, 죄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사랑이오.

또 그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것은 어떤 게 부요하게 하는 것이냐? 하나님께 대해서 바르도록,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지도록, 하나님의 처음에는 법도에 가까워지고, 법도에 가까워지면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그 사람을 자꾸 하나님과 가까워져서 의롭게 만드는 그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 하면서 죄를 그대로 범하도록 죄 가운데에 있도록 내비두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망치는 것입니다. 배암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짜든지 그 사람을 기도하고 이렇게 저렇게 노력해서 그 사람이 상하지 안하도록 이렇게 슬슬 해 가지고서 그 죄를 해결하도록 하고 그래 가지고 안 될 때에는 나중에 그뭐 사생결단해 가지고서 생명을 바쳐도 그 죄를 해결시켜야 된다, 해방시켜야 된다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들은 지도하는 것이 어짜든지 그 속에 죄가 있는 그놈을 뽑아버릴라고 애를 씁니다. 그거 뽑아버리지 안하면 그 사람 망하기 때문에 망하는 것을 볼 수가 없고 망하는 것을 내비두는 것은 그거 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전도하는 것도 뭣 때문에 전도하느냐? 이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을 하나님과 화친시키기 위해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자를 죄 가운데서 구출하지 안하고 죄를 지어도 그대로 내비두는 것은 그 사람을 망치게 하는 것이라. 죄를 두고는 망하지 안할 수가 없습니다. 왜? 인간들은 그걸 모르기 때문에 속아서 이라지만 하나님은 보고 계시기 때문에 죄 있는 자에게 멸망을 주지 안할 수가 없습니다. 죄 있는 자에게 멸망을 주지 안할 수가 없어. 죄 있는 자에게 망하고 죽는 일을 주지 안할 수 없어. 망하고 죽는 일 외에는 줄 수가 없어.

이라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냥 안 되니까 당신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서 죽기까지 형벌받아 가지고 우리 죄를 도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두고도 행복을 줄 수 있고 죄를 두고도 영생을 줄 수 있다면은 독생자가 올 이유가 없습니다. 당신이 죽어서라도 죄를 멸하기 전에는 우리를 멸망에서 구출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행복을 주는 데에는, 생명과 행복을 주는 데에는 하나님의 법을 다 지키는 의를 가지지 안하면 줄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될 것을 지키지 못하니까 우리 대신 하나님이 사람되어 가지고서 내 대신 주님이 하나님의 법을 다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법을 지키지 안한 자라도 예수님의 공로만 믿으면 과거에 지은 죄나 모든 것도 다 해결되고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과거에 순종하지 못한 것도 다 해결되고 우리가 순종하지 않은 것도 다 순종한 것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 우리는 형을 받지 않았지만 대신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받아서 우리에게 죄를 없이 해 주신 이 공로를 벗지 안하고 믿는 그날부터 자기가 죄를 범하지 안하고 이 공로를 벗지 안하면 우리는 죄가 없는 자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죄를 깨닫고 회개하거든 용서해 줘라”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우리들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지마는 연약해서 죄를 범합니다. 죄를 범하거든 얼른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그 죄를 회개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하나님께서 그 공로로서 그 죄를 사하시고 화가 오지 않도록 막아 있습니다. 그러나 축복은 주지 않습니다.

또 우리를 축복 주시기 위해서 당신이 대신 행해 가지고 의를 줬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형으로, 대신 형벌 받음으로써 사죄 주신 이 사죄를 벗지 안하면 우리가 죄가 없게 되고, 현실에서 이 사죄를 안 벗을라 하면 마귀 요놈이 와 가지고서 사죄를 벗도록 하고, 전부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의 일꾼이요 예수 믿는 가운데서도 성령으로 살지 안하는 건 전부 마귀 일꾼이기 때문에 마귀 일꾼을 동원시켜 가지고 어짜든지 우리를 죄를 범하도록 만드는 것은 예수님이 사죄의 공로를 벗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의를 행하지 못하도록 이 모든 마귀 역꾼들이 역사하는 것은 뭣 때문이냐?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대신 행함으로써 칭의, 의를 주신 이 의를 벗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에 사죄가 벗어져 버리고 우리가 의를 행치 안할 때에 칭의가 벗어져 버립니다. 이러니까 벗어지면은 우리는 멸망하고 하나님의 축복은 중단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그럴 때에 예수님의 공로를 생각하고 깨닫고 자기가 죄를 회개하면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은 죄를 지었을지라도 ‘내가 이제까지는 잘못 됐다. 이제는 다시 이 죄를 범하지 않겠다.’ 하고서 ‘주님이여, 이 죄를 내가 다시 범하지 않겠습니다. 사해 주십시오.’ 하고 범하지 안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죄 없는 사람이 됩니다.

죄 없는 사람이 되면은 이제까지, 죄 없는 사람이 되면은 이제까지 많은 멸망이 오고 많은 실패가 왔다가도 그 실패가 차차 차차 뿌리가 뽑히게 됩니다. 실패가 뿌리가 뽑히게 되고 멸망이 뿌리가 뽑히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은 이제 하나님이 입혀 주신 칭의를 입고 살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나님과 화친도 되고 의로운 사람이니까 차차 차차 생명과 행복이 자꾸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루어지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시느냐? 죄를 없애는 역사와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죄를 없애는 건 뭣 때문에? 죄를 없이 해야 멸망이 우리에게서 청산되고 멸망이 우리를 해하지 못합니다. 또 의를 우리에게 자꾸 건설되도록 해서 예수님의 칭의를 입고 있도록 해야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죄를 청산하는 그 역사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지공한 그 하나님으로서 지극히 공평된 하나님으로 우리를 사랑하시지마는 죄가 있으면 멸하지 안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는 그 멸망을 이것을 청산해서 멸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꾸 죄를 청산할라고 애를 씁니다. 또 하나님의 무한한 충만한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자꾸 의롭게 되도록 자꾸 할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니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은 사랑하는 부부에게, 사랑하는 형제에게, 사랑하는 부모에게, 사랑하는 자녀에게, 사랑하는 친구에게 사랑한다면 어짜든지 그 사람을 두 가지로 사랑해야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두 가지로 사랑해야 사랑하는 게 됩니다.

두 가지로 사랑하다니? 하나는 그 상대방을 죄에서 청산되어 죄에서 해방시키도록, 죄와 인연을 끊어서 죄가 없는 자 되도록 하는 것이 그 사랑이요 또 하나는 그 사람을 상대방을 의롭게 하는 것이 그것이 사랑입니다.

자, 하나님의 사랑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뻐뜩 들어 가리켜 봐요, 내가 좀 보도록. 뻐뜩 들어서. 녜, 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두 가지입니다. 죄를 청산하는 거,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거.

죄를 청산하는 길이 어데 있는가? 예수님의 사죄를 입지 않고는 청산이 안 됩니다. 칭의를 입지 안하고는 청산이 안 됩니다. 그는 사죄를 입으면 죄가 청산되지마는 사죄를 입었다 하고 죄를 범하고 있으면 그 사죄가 벗어나 버렸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어. 사죄와 상관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사죄는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입으면 됩니다. 입지마는 입고 안 벗어야 효력이 있지 입고 벗으면 효력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칭의도 자기가 의를 행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의를 양보하고 의를 뺏겼다 할지라도 제가 의롭게 살면은 즉시 하나님께서 그에게 칭의를 입혀 줍니다. 칭의를 입고 안 벗으면 완전한 의인이 됩니다. 사죄를 입고 벗지 않으면 완전한 의인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없으면 우리는 한번 죄인 됐으면 그 죄를 어떻게 앞으로 죄 안 짓는다 할지라도 과거에 지은 죄를 어떻게 할 것입니까? 죄 없는 자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자기가 오늘까지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이 시간에 완전한 죄 없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이 시간에 완전한 의인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일단 완전히 죄 없는 완전한 의인이 됩니다.

되지마는, 그러면 죄 없는 사람 됐고 의인 됐는데 그 무죄한 자의 평안, 모든 저주와 멸망이 벗겨지기 때문에 치료가 되기 때문에 평안합니다. 죄 없는 자의 평안과 또 의로운 자의 행복, 생명, 그것을 우리가 가져오는 데에는 실질적으로 예수님의 사죄를 입고 내가 벗지 안할 때에 그것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또 칭의를 입고 벗지 안할 때에 그게 시작됩니다. 아무리 입술로는 입고 마음으로 입었지마는 현실을 당했을 때 죄 지으면 사죄는 벗겨져 버립니다.

“두루마기를 씻는 자가 복이 있다” “내게서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그 흰옷이 뭐입니까? 흰옷을 뭣을 가리켜서 계시록에 말씀했습니까? 예수님의 사죄를 가리켜서 흰옷이라 말했습니다. 또 예수님의 칭의의 대속을 가리켜서 흰옷이라 이랬습니다. 흰옷은 사죄와 칭의의 예수님의 대속을 가리켜서 흰옷이라 말했어.

“흰옷을 사서 입어” 흰옷을 사서 입는 데는 뭘 주고 삽니까? 뭘 주고 사야 됩니까? “돈 없어도 사라” 했습니다. 사는 것은 자기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것 됐기 때문에 자기의 영육이 자기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이제 주님이 내 영육은 당신의 것인고로 당신 마음대로 하시지 내 마음대로 하지 않는 것, 자기의 영육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안하고 주께 바칠 때에 대속은 자기 것입니다.

대속은 자기 것이 됐다고 이렇게 말하면서도 영육은 제것으로서 제 마음대로 하고, 제 생각대로 하고, 제 욕심대로 하고, 제 주장대로 하고, 제 뜻대로 하는 것은 제것은 제것대로 있고 예수님의 대속은 대속대로 있기 때문에 바꿔지지를 안한다 말이오. 자기를 주님에게 바쳐서 주님의 것을 만들어야 주님의 대속은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너희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이것이 영적 예배니라” 하는 그것을 그전에 구역에는 번역하기를 “합리적 예배라” 했는데 나는 그 원어에 어떤지 우리 ○○○선생더러 ‘그래 원어를 가 봐라. 그라면 그 영적 예배라는 것이 뭐이냐?’ 영적 예배라는 것은 합리적 예배라는 그런 뜻으로서 돼 가지고 있더라고. 그게 옳습니다. 영적 예배라 하는 그거 좀 알아듣기가 어려워요. 말은 같은 말이오.

이러니까, 사랑하는 자에게는 죄를 없애는 것이 사랑하는 역사입니다. 그러면 우리 택자들은 몸의 불행이나, 사업의 불행이나, 가정의 불행이나, 어떤 불행이든지 불행은 전부 죄로 인해서 옵니다. 이러니까 그 불행을 암만 벗고자 해도 하나님이 안 벗겨 줍니다. 그 불행을 벗는 도리는 뭐냐 하면 내가 죄를 당장 요 시간에 죄를 딱 청산하고 어떤 죄라도 뭐 딱 끊고 죄 없고 딱 이래 버리면 그 시간부터 자기에게 있는 모든 멸망은 다 녹아져 버리고 맙니다. 멸망은 녹아지고 맙니다.

또 자기가 아무리 행복을 원하고 원한다 해도 절대 안 됩니다. 택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지금부터 의롭게 살고 죄를 범하지 안할 때에는 그때부터 하나님의 그 모든 생명과 축복이 자꾸 우리에게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를 청산하는 것과 의를 그에게 입혀 주는 것 건설하는 것 그 외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불택자와 같지 안하고, 불택자는 이 세상에 있는 지저분한 썩은 거 그거 가지고 이래 살지마는 택자들은 다 같은 돈이 있어도 택자들은 하늘 문을 열고 하늘에서 내려 주는 돈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자가 행복스러워지는 것은 옆의 사랑의 행복을 뺏들어다가 가지고 와서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 보고를 열고 너희들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준다” 하는 말씀은 그 말씀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자세히 생각해 보면은 믿는 사람이 잘 되는 것은, 하나가 망해야 하나가 잘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이 잘 되는 것은 망하지 않고 잘 됩니다. 옆의 사람 해치치 안하고 자기는 자기대로 하늘에서 새것으로서 잘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사랑이라는 것을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서, 배암의 사랑은 죄를 짓게 하는 것이 배암의 사랑입니다. 죄를 덮어 가리워 자라도록 하는 것이 배암의 사랑입니다.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부부간이라도, 부부간이라도 요거 사랑한다는 것이 그것이 그 결과가 죄가 되겠느냐 의가 되겠느냐 그것을 살펴 보면은 결과가 죄되는 것이 전부입니다.

‘죄되는 게 전부이면 부부간에 그라면 서로 동침하는 게 죄가?’ 아니오.

동침하는 거 “네 침소를 더럽다 하지 말아라” 했습니다. 그거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기 때문에, 그 침소라 하는 것은 뭐이냐? 우리가 정욕이 불타는 그 기회를 마귀가 이용해 가지고서 우리를 범죄케 하기 때문에 이 모든 범죄를 막는 것으로 결혼하고서 범죄를 막기 위해서, 다른 모든 범죄를 막기 위해서 범죄하지 않기 위해서 동침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요 거룩한 것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안하고, 그 범죄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또 자기 그 정욕을 내비두면 죄를 지을 판이면은 동침을 하고 그 죄를 짓지 안해도 동침하는 걸 취미로 삼아 가지고 자꾸 이렇게 음란스럽게 하는 것은 그거 음란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음행죄는 다른 남녀간에 범하는 것이 음행죄고 음란죄는 자기 부부로 더불어 범죄하는 죄가 음란죄입니다. 도수가 지나치면 다 음란죄라고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배암의 사랑은 보면은 모두 다 범죄케 하는 것이요 의를 멸하는 것이라, 의를 멸하는 것은 예를 들면은 이 주먹덩이만, 예를 비유컨대 주먹덩이만한 의를 요만한 것으로 바꾸어서 대의를 중의로, 큰 의를 중의로서 끌어내루는 것이 그것이 배암의 사랑입니다. 중등되는 의를 아주 작은 제일 최하의 의로 끌어내루는 것이 그것이 배암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의 방법입니다.

또 악은 처음에 조그만한 소악을, 소악을 중악으로 만드는 그것이 배암의 사랑입니다. 중악을 대악으로 만드는 그것이 배암의 사랑입니다. 이래 가지고서 새벽기도 나올라 하면은 이래 가지고서 그만 새벽기도 못 나오게 이래 가지고 곤해 가지고 떨어져서 새벽기도 못 나오게 합니다. 못 나오게 돼 버려.

이러니까 어짜든지 부부 생활도 딱 부부 약속을 해 놓고서 그래 가지고 어떻게 어떻게 우리 건강에는 어떻게 된다 하는 그걸 똑 양심상 그래 가지고 딱 날짜를 정해 놓고서 그렇게 모든 것을 철저하게, 그런 거는 육체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학적으로. 자기 건강에 꼭 과학적으로 다루어서 해야 되지 이것이, 그거 과학에 안 맞추면 결국은 신령한 면이 다 절단나고야 만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배암은 우리를 꾀우기를 대선을 중선으로, 중선을 소선으로, 소선을 무선으로, 또 무죄에서, 무죄에서 소죄로, 조그만한 죄로, 소죄에서 중죄로, 또 중죄에서 대죄로 이렇게 자꾸 끌어내루고 끌어올리고 하는 그것이 배암의 사랑이기 때문에 가만히 보면 알아요.

‘이로 인해서 성경을 오늘 좀 못 봤다. 오늘은 기도를 좀 못 하게 됐다.’ 그러면 그것이 다 배암의 사랑에서 다 그리 나옵니다. ‘내가 이 가족을 사랑하고 이라니까 가족들을 사랑해서 오늘 돈을 벌어 가지고 이래야 되니까 이 돈벌이 해야 되겠다.’ 돈벌이 좋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기까지 돈벌이 하는 것은, 죄를 짓기까지 돈벌이 하는 것은 죄로 만든 돈이 그 돈 먹으면 가족이 살이 찌겠소 망하겠소? 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죄와 의라 하는 것을 극히 구별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죄를, 죄가 섞여 오는 데에는, 죄가 섞여 오는 데에는 뭣이 섞여 옵니까? 나는 또 성을 잊어버렸어. 뭐이 섞여 오지? 죄가 섞여 오는 데에는 뭐이 섞여 오지요? 멸망이 섞여 옵니다. 죄가 섞여 오는 데는 멸망이 섞여 옵니다. 이러니까 그거 먹으면 죽어버려.

이러기 때문에 죄가 섞여 오는 돈을 벌어 가지고서 시퍼런 지화를 한주먹 갖다줘도 죄를 섞어 왔으면 그것은 안 먹습니다. ‘이거는 먹을 수 없다. 이거 먹으면 우리 가족이 다 죽는다. 다 죽기 때문에 이거 먹을 수 없다.’ 한주먹 가져오던 걸 나중에 빼빼 말라 가지고서 겨우 쌀이나 팔고 소금이나 가지고서 먹지 그 이상 먹을 수 없을 만치 돈을 적게 가져옵니다. 이래도 이거는 죄가 없는 그 돈이 왔으면은 그 돈은 뭣이 없는 돈입니까? 멸망이 없는 돈입니다.

죄가 없이 의롭게 뜻대로 하면서 벌어가지고 온 돈이면 그 돈에는 뭐이 섞여 있습니까? 뭐이 섞여 있어? 생명과 평강이 섞여 있습니다. 생명과 평강이 섞여 있어.

이러니까 죄와 멸망은 한덩어리요 의와 생명과 평강은 한덩어리입니다. 이러니까 생명과 평강을 원하면서도 자꾸 죄를 끌어닥치는 이거는 모순된 행위입니다. 자살 행위라. 이것을 가리켜서 자살 행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죄를 청산하고 의롭게 할라고 하면은, 죄를 청산하고 의롭게 할라고 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우리 죄를 청산시키고 의롭게 할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뭐 했소? 저○집사? ○집사 지혜는 있어. 내가 ○집사 내가 장점 봐요.

그 남편 엉망이같이 돌아다녀도 어짜든지 수습해 가지고서 남편에게 대해서 참 잘해서 남편을 구출할라고 애를 씁니다.

애를 쓰면 진리를 알아서 진리대로 해야 돼지는 것이지 진리 아니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리 남편 구원해 주십시오. 우리 남편 의롭게 살게 해 주옵소서.’ 자꾸 그래 애를 써요. 참말로 보면 현처라. 현처인데 꺼꾸로 현처라. 왜? 아무리 애를 써도 하나님이 밉상스러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네, 못된 것. 내가 네깟놈의 계집 내가 네 소리 듣겠나?’ 하고서 하나님이 진노하셔. 예배 볼 때는 꾸벅꾸벅 졸면서, 예배 볼 때 꾸벅꾸벅 졸면서 ‘하나님 하나님’ 발길로 탁 차 버릴 거라, 차는 걸 못 봐 그렇지.

어짜든지 우리는 이 죄는 멸망한다. 의는 산다. 의는 생명과 평강을 가져온다.

요것에 자꾸, 하루 뭐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래 가지고서 ‘죄가 섞이면 그 죄 섞인 거 죄 그것이 바로 멸망이다.’ 여러분들 암병 그거 들어 가지고서 잘 낫습니까? 안 나아. 하나님의 권능으로 나은 사람은, 권능으로 나은 사람은 어찌 돼요? 권능으로 나은 사람은 ‘이제 나았으니까 문제 없다’ 죄 지으면 대번 재발해. 권능으로 나은 사람은 그 죄를 청산하고 의롭게 되어 나았으니까 그 사람이 죄짓지 안하고 자꾸 의롭게 돼지면 이거 그 병은 점점 청산되고 점점 건강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여게 매달렸어.

멸망과 구원, 성공과 실패, 행복과 저주, 생명과 죽음 그거는 다 죄, 의 여게 매였습니다. 딴데 있지 안하요. 택자들의 멸망의 원인은 죄, 택자들의 행복의 원인은 의, 요걸 똑똑히 알고 언제든지 요걸로 구별해 가지고 더듬어 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를 청산하고 의를 건설해 주시고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몇 가지로 우리에게 치료하고 계십니까? 몇 가지로 치료하고 계십니까? 손가락으로? 또 다 잊어버렸다. ○○○선생? 안 보이게 요래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보이나? 한번 이름 불려서 유명해질라고.

○○○목사님의 둘째 딸이가? ‘하나님이 몇 가지로 치료해?’ 이라니까 요래 가지고, 인제 말하니까 쑥 올리니까 쑥 들려올라오네.

하나님이 택자들을 사랑하셔서 죄를 청산하고, 의를 건설하고, 또 자신을 하나님의 행복을 감당할 수 있는 완전자로 그렇게 자신의 실력을 갖추고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이 세 가지로 주시는 거, 이제 세 가지 말했습니다.

죄 청산, 의 건설, 또 자체 완전 그랬는데 하나 남았는데 하나 남은 거는 뭐입니까?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 이러니까 이 네 가지 가지고 하나님이 다 해 주시기 때문에 요 네 가지를 놓지 안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죄 청산은 어데 있습니까? 우리의 죄 청산은 어데 있어? 현실에 있어. 제가 앉아서 뭐 굴에 앉아서 암만 뭐 해도 안 돼. 죄 청산은, 굴에서 준비하는 것은 ‘앞으로 요렇게 할란다’ 하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고 준비하는 것이지 거게서 죄 청산되는 건 아니라.

죄 청산은 자기 현실을 닥쳤을 때에 그때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 당할 때 죄를 짓지 안하면 죄 그놈이 바짝 뿔라져 버려. 그 현실에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그 현실에서 죄를 짓지 안하고 딱 중단해 버리면 죄가 딱 우듬머리가 딱 뿔라져 버려. 또 그 현실에서 죄를 범하게 된 그 현실 올 때 죄를 범하지 안하면 그놈이 뿌럭지가 흔들흔들해. 또 한번 해. 몇번 안 해 뿌럭지가 확 패여서, 뿌리까지 확 패여서 드러나 버려.

이러니까 죄에서 우리가 해방되는 방편은 뭐인고 하니 현실에서 그 방편이 되는 것이고, 의를 우리가 완전히 의를 건설해 의를 마련하는 것도 현실에서 의를 만듭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죄가 정리되고 어떻게 하면 의가 건설됩니까? 저 뭐꼬? 의사? 현실에서 죄가 청산되고 의가 건설되는 것은 영감과 진리대로 행하면 됩니다. 또 현실에서 자신이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은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되는가? ○○○? 영감과 진리대로 하면은 자신이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또 하나님의 충만을 내가 받는 데에는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예, 야야, 인제 저것도 아이 애비라, 좀 있으면. 눈을 뜨고 해. 네가 나를 괴롭힐라고 하고 있어? 눈을 똑 뜨고 있으면 내가 애가 안 터지지. 눈 똑 떠 봐.

속으로 들으면서도 눈 찍 감고 있으면 ‘뭐라 하든지 내가 눈감고 있으면 인제 목사님이 한번 또 부를 거다. 부르면 또 올라간다.’ 그라면 그거 내게 마음에 부담 주는 그거 의라 죄라? 생각해 봐. 그라면 안 해야지.

하나님이 충만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것을 받는 방법도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대로 하는 것이라. 그러면 현실에서 진리대로 하는 데에서 몇 가지가 이루어집니까?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대로 하는 것에 몇 가지가 이루어집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가 이루어집니까? 네 가지가 이루어져. 놓지 말아요.

죄가 절단나. 죄를 제가 그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대로 행함으로 청산하지 달리 제가 청산할라고 암만 눈물 흘려도 안 됩니다. 그거는 청산하는 그 모든 준비를 하는 것이지 외나 청산은 현실에서 청산됩니다. 의도 현실에서 이루어집니다.

자체의 그 실력도 현실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충만을 실지로 받는 것도 현실에서 이루어집니다. 어떻게 하면 이루어지는가? 영감과 진리대로 순종하면 이루어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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