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뿌리는 비유-하나님과의 온전한


선지자선교회 1989년 8월 5일 토새 

 

본문 : 마13:3-9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하나님에게는 우리에게 금생과 영원 무궁에 필요한 모든 것이 충만히 있습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금생 내세 영원에 영육의 모든 면에 필요한 것이  무한히 충만히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분과의 관계를 맺아서 그분의 것을 자기  것을 삼는 자라야 영원히 부강하지 그분의 것이 아닌 그분이 엿새 동안에 지으신  지음을 받은 그 어떤 것의 것을 자기 것을 삼았다 할지라도 그는 다 끊쳐지고  멸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완전하시고 모든 면에 충만하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과 자기와의  하나가 되는 이 연결은 뭘로 되는가? 연결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됩니다.

 말씀으로만 되는데 말씀 안에는 성령이 계셔서 먼저 말씀으로 연결되고 그  다음에는 또 성령으로 연결되고 이래서 말씀과 성령으로 연결되면 그는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이 어느 정도 연결이 되는가? 되어진 것은 하나님은 머리요 자신은  몸인, 머리와 몸이 한 몸임과 같이 그렇게 영원한 연결을 가집니다.

 그러면 그 연결을 가지는 그것은 언제든지 현실에서만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현실이 아니면 가지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연결을 가지는 순서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은 아는 것이요 지식하는 것인데 듣는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시키는 것은 곧 진리 영감뿐인데 진리 영감만이 연결을  시키는데 그러면 진리 영감이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을 시키면 연결시키는  기회는 언제인가? 그거는 언제나 현실뿐입니다. 딴 때는 없습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어떻게 연결시키는가? 우리 현실에는 보면은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 진리대로 그 시간 행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이런 어떤  피조물이나 자기나, 자기도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나 그런 것의 뜻대로 행하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하나님의 뜻이 하나 있고  하나님의 뜻 외에 모든 세상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그 인간의 뜻이 있고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 현실에서 인간의 뜻으로 행한 것은 하나님과는 끊겨지고 인간과의  연결이 되는 것이고 그때에 인간의 뜻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면은 그 현실이라는 그 현실에 행동한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현실 하나를 비유컨대 현실 하나를 지냈으면 연결 하나가 되고 둘 지냈으면 둘  연결이 되고 셋 지냈으면 셋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연결되는 데 있어서 하나가 한 종류가 연결되고 또 한 종류가 연결돼서  종별적으로 연결되는 것도 있고, 연결되는 그것이 강도적으로 한번 또 연결되고  재연결되고 또 삼연결되고 사연결되고 몇 번이든지 연결돼 가지고 연결이 강하게  되어지는 강도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예를 들어서 일생 동안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  현실에서 모든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이 도를 영접하는, 도는 하나님이신데 곧  그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 도를 영접하고 세상을 부인하고 그렇게 행동한  것이 한 번밖에 없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부활할 때에 하나님과 연결된 연결은  한 번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생 동안 연결이 비유컨대 그저 실내끼 한 낱만치 그렇게 연결된  사람도 있고, 두 낱만치 연결된 사람도 있고, 팔뚝같은 그런 밧줄 연결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자기와는 하나가 딱 돼 가지고서 그렇게  연결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이 되는  것으로서만 우리가 부강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생활은 어떤 생활인고 하니 받는 생활이 아니고 주는  생활입니다. 그러면 주는 생활이면 자기가 뭐 사람들에게, 요새는 수재로서 수재  의연금을 모두 다 어떤 사람들은 몇 억도 내고 이렇게 내서 모두 그렇게 의연을  하는 걸 봤습니다.

 뭐 어떤 재벌가들은 아무 재벌가라도 그 재벌가가 자기 것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생활을 할라고 하면은 자기에게 밑천이 있는 것 그것만큼만  주지 그 이상은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사람이 아무리 세상 것이 많다  할지라도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이병철씨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갑부지마는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는 자기는 권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주고 싶어서 줄 수 있는 것도 세상에 있는 동안에만 있지  세상을 떠날 때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은 언제든지  하나님도 영생하고 자기도 영생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받을 것도 영원히 받을  것이 있고 영원히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이 된  것만치만, 연결이 된 것만치만 하늘나라에서 주는 생활, 다른 사람을 돕는 생활,  다른 사람을 유익되게 하는 생활을 할 수 있지 하나님과 연결되지 안한 그거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 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늘에 가  가지고 영생하는 생활은 어떤 생활인고 하니 하나님은 영원히 주시는 일만 하지  하나님은 받는 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뭐 하나님에게 헌금한다 어짠다 하는  그런 것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 아니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함으로써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피조물들에게 돕는  자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했으니까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이요 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는 것이지 하나님이 그게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완전자요 창조주시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아무것도 우리에게서 받을 것을 하나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에게 연결된 것만치만 영원히 성도의 생활, 봉사 생활, 사랑 생활,  사랑은,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유익되게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은 영원히 주고 주셔서 남음이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만족이 뭐이냐? 주어서 만족이요 우리들이 잘 받는 그것만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다른 대접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잘 받는 것이 그것이  유일한 대접이오. 우리가 뭐 하나님께 바친다는 그것도 바치는 게 아니고  하나님에게 받는 거,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바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실 때에 내가 나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그것이 하나님에게 받는  것이오.

 이렇게 이 중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여기 씨뿌리는 비유에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를 지난밤에 말씀을 했습니다.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을라고  하면, 그것은 결실 맺는다 말은 하나님과 결합이 된다 말입니다. 인인  관계점으로서도 하나님과 완전 결합이 되고 악령과 또 자기와의 관계점도 완전  결합이 되고, 또 자기가 하나님과의 관계점도 완전 결합이 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래 결실을 할라고 하면, 씨는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자기가 받았는데 어떻게  받았느냐? 그 계약의 말씀을 받은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 될 수 있는 방편을  배웠고, 들었고, 안 것뿐이지 연결되는 데에는 현실에서만 연결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연결될 수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첫째 길바닥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문화, 온 세상의 모든 지식이나 사상이나 주의나  주장이나 그건 것들을 다 합해서 길바닥이라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왕래한 그  차제라 그 말이오. 모든 사람들이 살아간 문화 시설이라 그 말이오. 온 세상의  이십세기의 문화 시설, 이 모든 문화 시설 이것을 다 부인해.

 이십세기의 문화 시설이라면 이십세기의 과학도 부인하고, 모든 윤리도 부인하고,  모든 도덕도 부인하고, 사상도 부인하고, 주의도 부인하고, 모든 정치나 모든  존재의 움직임의 그 사상들을 다 부인해 버려야 길바닥을 면한 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돌밭은 자기를 부인해 버려야,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에 세상 것을 부인해도 마지막에 자기에게 부딪히면 자기 부인이 안 돼서  실패합니다.

 또 덤불 밑에 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재리. 모든 세상 물질계의 모든 것을  부인해야 되는 것이니까 세상 부인하고 자기 부인하고 이십세기의 문화 부인하고  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라고 할 때에 그런 것이 방해할 때에 그런 것에게  방해를 당하지 안하는 것이 부인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그걸 얼마든지 이용할  수가 있지마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데에 이용을 하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데에 거게 피해를 보지 안하는 것이 그것이 부인해서 정리한  사람이라.

 이러니까 우리는 이번에도 하나님 말씀을 가서 들을 때에 어떻게 들어야  되겠는가? 내가 이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에 이 세상 이십 세기의 찬란한 굉장한  문화, 이 세상 지식 그것이 다 문화입니다. 뭐 테레비니 전기니 전화니 원자니  별별, 말씀대로 지키다가서 원자의 그 어떤 일로 인해 가지고서 자기가 말씀대로  지키지 못하고 거게 굴복하면은 그것도 내나 길바닥이라 그거요.

 이런 것을 다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현실에서 실행할 때에 연결이 되어지는  것이니까 이 세상 어떤 것에게도, 자기에게도 이 사회에게도 세상 문화에게도  침해를 받지 안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능가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가  받아 감당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이 말씀을 자기가 실행할라고 할 때에 그때가 어떤 때에 성공이  있는고 하니 열 처녀 비유에 보면은 밤중에, 제일 어두울 때 밤중에 그때 신랑이  옴으로써 기름을 가졌으나 그때까지 빛을 유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 실패했고  그때까지 빛을 유지한 사람들은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대로 그때 최고로 어두울 때도 등불을 드는 것은 하나님의  빛을 든 것이니까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대로 사는 그것이 빛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은 현실에 연결되는데 현실에 연결되는  중에서도 초저녁에 되지 안하고 밤중에 된다는 것은 최고로 그 말씀대로 행하기  어려운 그때가 무슨 때냐 하면 그 진리로서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되는 결실을  맺는 때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대개가 다 참 아주 어두움의 세력이 강한 때이기 때문에 가장  외로울 때, 가장 어려울 때, 가장 피곤할 때. 그럴 때지 그럴 때에 무슨 기분 좋은  거는 없어져 버립니다. 전부 기분 좋은 것도 없고 환경이 돕는 것도 없고, 주위  환경의 돕는 것도 없고. 무슨 경치 좋은 것도 다 없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을 받는 데에 우리가 물론 처음에 받을 때에는 좋은  경치도 필요하고. 한적한 곳도 필요하고, 또 많은 사람이 모여서 움직이는 것도  필요하고 다 필요하지마는 실상 이 말씀대로 실행의 결실을 맺는 밤중이 되는  때에는 가장 고적한 때요 고독한 때요 환경의 도움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는  때입니다.

 결실할 때는, 요거 잘 알아야 돼요. 환경의 도움이 하나도 없는 때요. 환경의  도움이. 환경의 뭐 사람의 권고하는 도움도, 또 모든 환경이 자기를 유리하게 하는  것도, 또 기분 좋은 환경도, 또 경치가 여기서 보다도 어데 한적한 경치 좋은 데  가면 말씀을 들어도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잘 들어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경치  좋은 데서 들어서 귀에 들어온 그 말씀을 가지고 실행할 때는 경치 좋은 거는  따라오지 못한다 말이오. 경치 좋은 거는 따라오지 못해.

 어떤 사람이 말씀을 전할 때에 고함을 질러서 힘있게 전하니까 그 말씀이  자기에게 알아지고 깨달아졌다 말이오. 깨달아졌으나 그 말씀대로 실효를 볼라고  할 때에는 그 고함 소리는 하나도 없다 말이오. 그 고함 소리는 하나도 없고  오히려 하나님 말씀대로 믿는다고 못 믿구로 하는 반대의 고함 소리가 난다  말이오. '예수를 잘 믿어라' 하는 고함 소리는 없어지고 '네가 믿으면 당장  죽인다' 하는 그런 방해하는 고함 소리가 크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도를 받는 데에는 환경 주위의 분위기, 또 무슨  소리, 또 어떤 사람, '이거는 목사님이 설교하니까 은혜가 된다.' 그 목사님도  그때 못 따라가요. 그때 없다 그 말이오. 목사님이고 아무것도 없어. 없고 다만  있기는 뭐이 있느냐 하면은 말씀만 있습니다. 말씀만. 말씀만 있는데 그 말씀을  고함도 큰 소리도 못 따라가고 경치 좋은 것도 못 따라가고, 그거는 다 없어져  버리고 꼭 빼빼 마른 말씀만 그때 남아 있다 말이오. 그러면 이 말씀을 자기가  생각하고 깨달을 때에, 자꾸 생각하고 깨달을 때에 그 현실이 어떤 현실이라도  이기고 남을 만한 능력이 말씀을 생각하는 가운데에 깨달음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자기 속에서 나오요. 자기 속에서 이 말씀을 깨달을 때에 '내가 이  말씀은 내 생명보다 귀하기 때문에 생명을 빼앗길지라도 나는 이 말씀은 뺏길  수가 없다' 하는 그것이 자기 속에 고요히 생각하는 그 속에서 나오고, 그러면  그럴 때에 자기에게 깨달아지게 할 때에 영감, 같이 했던 그 영감이 자기를 자꾸  감동시켜 '이 말씀은 네 생명보다도, 네 몸뚱이 보다도, 네 건강보다도, 네  가정보다도, 네 온 세상보다도 낫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너와 모든 세상은 이  말씀을 네가 뺏기지 안하고 말씀을 지켜 이 말씀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너와  결합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자하는 사람이 돼라.' 투자함으로써 끝나는 것이  그것이 순교요 마지막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자기가 강직할 것은  그 소리로 인해서 자기에 자극 받은 거, 강사의 고함 소리를 들었으니까 자기가  자극을, 감화를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거. 또 주위 환경이 고요하고 한적한 그런  경치 좋은 그런 뭣이 된 그런 걸로 인해서 은혜받은 것 그런 것 다 던져야  됩니다. 다 집어던져야 돼. 집어던져 버리고 다만 가질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더 믿어지게 하는 영감 요 두 가지만 딱 가지고 나머지기는 다  털어버려야 돼. 왜? 나머지기 그거는 내가 외나 승패가 결정되는 그때는 그것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들이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아예 그거는 제해 버리고  말씀만 가지면 말씀 안에 영감이 있어요.

 말씀만 받아 가지고 요것만 꼭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평소에 생각해 봅니다. 이  말씀을 내가 시장에서 한번 생각해 봐. 시장에서 가만히 말씀을 생각하니까 지금  사고 팔고 하는 데에 이거 뭐 이해 문제가 많이 있지마는 말씀을 이래 생각해  보니까 '내가 뭐 장사가 되든지 안 되든지 정직하게 진실하게 하고 하나님을 내가  소망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맺는 이게 문제지 이거 뭐 한푼 속여서  거짓말 해 가지고 더 받는 게 문제가 아니고 뭐 이 세상에서 무슨 노벨상 받는  그까짓 게 문제가 아니다.' 이제 이 말씀은 하나님과 자기와 관계이기 때문에  모든 걸 창조하신 대주재이신 주권자이신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이분과의 관계가 되기 때문에 이분만 하나가 자기와 연결돼 놓으면 다 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보다 이 평가가 크다는 것을 자기가 깨달아집니다. 그때는 자기  마음에서 이 말씀을 새김질 할 때에 거게 속에 깨달음이 오고 깨달음에 성신의  감화가 오고 이러니까 밖에서 뭐 가두니 죽이니 해도 그까짓 게 들어오지를  안하고, 이제 내가 이 말씀대로 행하여 하나님과 연결되기 위해서 생명을  바쳤다면은 내게 이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됐고, 몸을 바쳤다면 이 몸은 하나님과  하나가 돼 버렸고, 내가 모든 이 세상 소유를 바쳤다면은 이 소유는 하나님과  연결됐기 때문에 이 연결이 성공이라는 요것을 깨달아질 때에 그 사람은 능히  이기고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에서 말씀대로 승리하는 것은 그 능력이 내 몸 밖에  있는 게 아니고 내 몸 안에 있습니다. 내 몸 안에 속에서 나옵니다. 속에서  나오는 그 능력이라야 세상을 이기지 내 속에서 나오지 안하고 주위 환경에 무슨  피동돼 가지고 오는 그까짓 건 다 없어지고 맙니다. 내 속에서 나오는 능력이라야  세상을 이기는데 내 속에 나오는 능력은 어데서 나오는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진리를 자꾸 생각하고 생각할 때에 진리 속에서 나오고 진리를 생각할 때 그  속에 성신의 감화가 있어 성신의 감화 속에서 나오고, 성신의 감화라면  하나님이요 진리라면 이거는 독자적 전능의 권리를 가지고 있고 성령이라면은  하나님의 전능의 권리를 가졌기 때문에 진리와 성령 속에서 나오는 그 힘이라야  세상을 다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긴 사람들은 그래 이겼다 말이오.

 그래서 기름을 가진 사람은 둥불을 들었고 기름 떨어진 사람은 안 돼. 기름이  뭐입니까? 기름이 진리와 영감이오. 그러니까 기름이 진리와 영감이니까 속에서  진리와 영감에서 자꾸 힘이 나오는 그 사람은 이 세상이 뭐라 하든지 진리와  영감대로 빛을 들 수가 있다 그거요. 그러니까 어짜든지 진실되게 은혜를 받아야  되지 진실되이 은혜받지 안하고 모두 껍데기로 하는 그런 것이 다 헛된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제는 성경 공부하러 온 학생이, 이 주일학생들이 방학 때에 돌아다니며 노는데  이거 여기서 공부를 가르치지 또 돌아다니면서 또 외우며 이라지 이라니까  어제는 이백사십구 명이 와서 공부를 계속해서 했습니다. 모두 이런 데 보내요,  이런 데. 뭐 세상에 뭐 서울대학 일본 동경제대 뭐 암만 그런 거 해 봤자 소용이  없어. 이러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시켜 줄 것은 이 진리인데  이 진리를 공부하는 데 거기 가치성을 느껴서 참여시키지 안하고 딴데 어만 데  시키는 그게 다 우리가 이 세상 배암에게 꼬여 가지고 그런 것이지 정상적인  그런 지혜가 아닙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이번은 지난 공과 내일은  한번 더 가르치게 됩니다. 그라고 하루 삼십 분 기도 또 은사 위치에 있는 분들은  자기 소속한 모든 무리들을 자기 마음 속에 넣어 놓고 길러야 할 것입니다.

 어제는 재독에 백오십 이 명이 참석을 했습니다. 또 단체로 기도한 것은 OOO  구역 교회에서 이십칠 명, OOO 구역 교회에서 팔 명 어제는 뭐 바빠서 여기  기록이 잘 안 됐어.

 '나는 이번에 가 가지고서 옥토에 뿌린 씨로 받을 수 있도록 나는 해야 되겠다.

 내가 이제 요번에는 가서 받은 말씀은 이 세상에게도, 내 자아에게도, 모든 세상  지걸거리는 모든 인간의 지식 지혜 문화에게도 내가 침노를 받지 않겠다. 침해를  받지 않겠다. 요런 것들을 극복하고 다 승리하겠다.' 하는 요 도리를 받아야지  딴거는 소용 없어. 뭐 조그만한 말 한 마디 해도 그만 그리 끌려가고, 또 감정에도  끌려가고 좀 이해에도 끌려가고, 죽인다 하면 그만 살 데로 끌려가고 이라는 그런  것은, 세상을 이기지 못 하는 도는 이렇게 영원한 구원은 이루어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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