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3계단 믿음

 

1988. 12. 30. 금밤

 

본문 히브리서 11장 8절∼12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오늘 저녁에는 간단하게 그저 요령만 증거할 터이니까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정신을 딱 차려서 간추려 가져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그는 참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는 전무후무한 존귀한  영광스러운 그런 걸음을 걸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일반 부정 모혈로 난  사람으로서는 제일 귀한 걸음을 걸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이렇게 영광스럽고 존귀한 승리의 걸음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인도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되 혹 한 달에 한 번 우리에게 나타나셔 가지고, '이렇게 해라' 그렇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또 하루 한 번쯤 나타나셔 가지고 '야 네가 이렇게  해 라' 이렇게 인도하시고 지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 십니다. 계속 우리를  끊임없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잘 모르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을 공연히 이렇게 만들어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지 뭐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 우리 많은 사람 개개의 사람을 하나 하나  어떻게 인도하시느냐? 일생 동안 한 번 흑 인도하시거나 두 번 인도하시거나  하면 하지마는 매일 시간마다 인도하신다고 하니 그런 말은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말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을 합니다 내가 며칠 전에 어떤 목사하고  통화를 했는데 씻 목사님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데 뭐 형체를 가졌습니까 눈에  보입니까? 우리의 귀로 들리도록 말을 합니까!' 이렇게 하는 말을 내가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자기에게 눈에 보이는 것만치 귀에 들리는 것만치  손으로 만져보는 것 만치 이만치 감각이나 확실성이 없다면 그 사람 믿는 생활은  다 헛 생활입니다. 손으로 만지는 것보다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분명하고 확고한 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속일 수도 있고 어떻게라도 할 수  있지마는 하나님과 관계는 조금도 거게 헛되고 거짓된 그런 것을 할 수 없는  것이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하는 것을 여러 분들에게  증거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계속 인도하시면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계속 인도하고 계시는데 계속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속 현실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현실은 누구 누구 사람과 뭣 뭣 사건 그런 것이 주 뭉쳐서 현실이 됐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것들이 내 현실을 만들어 줬다 그렇게들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안 지식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크고 작고 한 그 현실, 바쁜  현실이든지 사람들이 보기에 뭐 아주 인간이 말하기를 저주스러운 현실이라  불행스러운 현실이라 원망 불평 기사 뭐 사람들은 그 현실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제 생각대로 마음대로 이렇게 생각을 하지마는 현실은 인간이 만드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이 만드는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시는 데에 거게  인간도 이용을 당하고 짐승도 이용을 당하고, 물건도 이용을 당하고, 사건들도  이용을 당하고, 이용을 당하니까 그것이 만든 것인 줄 알지마는 그 짐승이나  사람이나 물건이나 사건이나 그런 것들을 다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내  현실에다가 다 종합을 시켜 가지고 그 것들이 합해서 내 현실을 만들어 내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섭리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지 아니한 현실은 하나도 없다 하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못 믿는 사람, 이것을 안 믿으면 하나님의 인도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심령이 어두워지고 마귀 유혹을 받아서  현실은 분명히 제가 만들고 누가 만 들지 못하고 자기 마음에는 이런 현실을  계획했지마는 계획한 그대로 현실이 되는 현실은 없습니다. 또 사람이 어떤  현실을 조성해 보려고 했지마는 그대로 되는 거는 없습니다. 사람이 어리석어  그렇지. 자세히 살펴보면 그대로 되지 않고 자기 현실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것은  순전히 객관 역사로 만들어진다 하는 것을 우리가 맑은 심령으로서는 환하게  깨닫게 됩니다. 껍데기 어두운 심령은 그렇게 느끼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깨달아지든지 안 깨달아지든지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믿어야 됩니다. 깨닫고 믿는 사람은 더우기 반석 같고 깨닫고 믿는 사람은  요동이 없습니다. 깨닫지 못하고 그저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무조건 믿는 사람은  어린 신앙이기 때문에 그 신앙은 흔들리기 쉽고 자주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현실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 단독이 만들어 주시는  현실이라는 이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그 현실에 대한 오묘의 가치와 그 현실을  하나님이 만들어서 그 현실을 통하여 나에게 구원 역사하시는 지극히 큰 광대한  그 역사를 자기는 흔적도 찾아보지 못 하게 됩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여러분들이 믿으십시오. 이해를 못 하 거든 그저 믿으십시오.

우리의 현실은 하나님이 하나 하나 만들어서 현실에서 현실로 자꾸 만들어  가지고 끌고 가신다 하는 것을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현실을 하나님이 만드시면 어떻게 그것이 나를 인도하시는 것이라고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도 하고 마귀의 인도를 받기도 하고 자유로 그렇게 인도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든지 마귀의 인도를 받든지 둘의 인도 중에 하나는 받고 잇지  안 받는 일은 없습니다.

현실에는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내 주장대로, 내 성 질대로, 내  감정대로 내가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데 뭘 뭐 하나님의 인도를 받느니 마귀  인도를 받느니 그렇게 말하는가 하는 그런 어두운 억척같은 그런 생각을 가진  어두운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면 마귀 인도. 마귀 인도가  아니면 하나님 인도 이 둘뿐입니다. 현실을 하나님이 주시는데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고? 그 현실을 주시고 요 현실에는 네가 이렇게 해라.'  하는 하나님의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 하나님의 제도. 있을 때에  하나님의 법칙 제도, 하나님의 뜻이 뭐인가? 내가 닥친 이 현실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요것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를 찾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고대로 실행을 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또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고대로 실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인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자기가  그대로 하려고 하지 일고 현실을 닥쳤을 때에 거게서 돈을 생각하든지 사람을  생각하든지 무슨 사건 성사를 생각하든지 어떤 걸 생각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 뭐이냐? 여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뭐이겠느냐? 여게서는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게 되겠느냐? 이것을 생각한 거 그 외의  것은 무슨 생각을 가지든지,  거게서 뭐 공부를 하든지, 장사를 하든지. 무슨 사업을 하든지, 활동을 하든지,  무슨 재미있는 일을 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고  뜻대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고 그 외의 다른 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거는 전부 배암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말해서 사람 말을 듣고 가든지 자기 뭐 속에 나오는 자기 감정으로, 자기  욕심으로, 자기 생각으로 하든지 어쨌든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고대로 행해 가는 고거 외의 거는 전부 배암의 인도입니다. 마귀의 인도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말해도 마귀의 인도요, 친구가 말해도 마귀 인도요. 자기의 상관이  말해도 마귀의 인도요, 전부는 마귀 인도입니다.

 왜? 하나님의 인도받는 사람들 외에는 전부 마귀의 군병이 돼 가지고 마귀의  부하, 마귀의 군대가 돼가지고 마귀의 심부름꾼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 받는 거 외에는 뭐 천 가지 만 가지의 원인이 있어서 그렇게 행했다  할지라도 그 전체는 다 마귀의 인도받는 것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확정을 지워  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이 현실을 주신 것은, 요  현실을 주신 것은 요 현실에는 '네가 또 요렇게 해라.' 또 저 현실을 주시면 또 '저  현실에는 그렇게 해라.' 현실을 당신이 바꾸어 주심에 따라서 고 현실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다가 보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현실을  주시는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그와 같이 하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졸졸 따 라가서 가게 되고,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외에 다른 것을  어떤 것을 따라 가지고 행하게 되면 그거는 하나님의 인도를 정반대하는 그  행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일이 아니면 마귀 인도 받는  일이라. 하나님의 인도 받는 일은 생명과 평안의 결과를 맺는 것이고, 마귀 인도를  받는 것은 전부 사망의 그 결과를 맺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마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않는 그 전부는 다 사망의 결과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뭐 안 찾아가는 사람이 없어. 사망의 결과로 가지 않는 그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그러면 오늘 밤에 지금 제 일호는 뭐이냐? '하나님의 인도를 우리가  따라가자.' 하는 그것을 첫째로 지금 말씀했습니다 요것을 기억하고,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를, 우리가 어떤 게 하나님의 인도다. 하나님의 인도는 현실을  만들어 줘 가지고 고 현실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이요, 고 현실이 닥쳤을 때에 그 현실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 현실에서 그저 자기 주관대로 원망 불평 또 뭐 이런 거  저런 거 욕심을 내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 외에 다른 것을 찾아서  움직이는 것은 다 멸망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공부하라 할 때도 있고, 밥먹으라 할  때도 있고, 자라 할 때도 있고, 쉬라 한 때도 있고, 놀라 할 때도 있고 또 일하라  할 때도 있고 하나님이 그때 그 때 당신이 당신의 인도를 우리에게, 당신의 뜻이  당신의 인도인데 그 뜻을 주셔서 그 뜻대로 행하면 곧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니 그것은 선지의 인도라. 그거는 다 영생하는 인도라. 이런데 요것을 첫째  오늘 저녁에 배우고.

 둘째로는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데에 주의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데에, 여게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하는 말 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에 고 현실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 딱 받고 또  고다음에 인도받고 이랬지 이렇게 인도를 받으면 '그 결과가 어찌 되느냐?' 하는  그런 것을 아브라함이 생각해 보지를 않았습니다. 요것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인도를 받을 때에 그때 이 인도를 따라서 가면 어데로 가나 그 결과가 어찌  되느냐? 그것을 아브라함은 생각지 않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그저 현실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대로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첫째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데에 큰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는  잘 받는데, 또 받다가 그만 안 받고 다 돼 가다가 그만 실패를 합니다. 속담에 뭐  '나 돼 가는 죽에 코빠졌다.' 한다고 하지마는 그와 마찬가지로 이거 다 돼 가는  일에 그만 실패를 하고 만다 그시오. 왜 실패하느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에게 인도를 받아 가야 되는데, 길 바를 제가 알려고 애를 쓰고 갈 바를  제가 비판해 보고 '아이고, 이 인도받으면 내가 이 결과되겠다. 저 인도 받으면 저  결과되겠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라 하는 그것을  제가 비판하고 평가해 가지고 이렇다 결정을 지우는 여기에서 다 사람들은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 생각대로 그대로 되느냐? 그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어쨌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에 이렇게 인도받아 사면 그  결과가 어찌 되겠나?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  아닙니다. 고걸 생각지 말아야 됩니다 요걸 하나 우리가 작정을 해야 됩니다 '내가  이렇게 인도받으면 앞으로 학생이라면 공부하는 장래가 어찌 되겠느냐?'  가정이라면 '가정 장래가 어찌 되겠나?' '사업의 장래가 어찌 되겠느냐?' 이런 것을  생각하는 그것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고 그것은 우리가 모릅니다. 우리가 어떤  현실에 하나님의 뜻대로 할 때에 그다음이 어찌 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것은  주권자이신 전능자이신 그분이 인도하시는 그분이 또 그다음 현실을 만들어서  이래 주지 내가 이러면 고다음 현실은 이래 된다 하는 그것으로써 우리의 지식  그 한계 있는 한계점 안에서 그것이 결정되는 일이 아니고, 주님의 그 주권으로  모든 것을 결정해 나가기 때문에 한 일 초의 다음도 우리는 모르고 또 한 치  너머도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알려고 하지 말고 어떤 것이 와 가지고 '봐라, 네가 이렇게  지금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 이리 된다 저리 된다.' 하는 것이 천하에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 아닌 사람들은 전부 마귀의 군병이요, 일군들이기 때문에 그  수많은 사람들은 다 마귀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도록 자꾸만  지금 거게서 유혹을 줍니다. 뭐라고 유혹을 줍니까? '네가 인도받으면 이리 된다  저리 된다.' 해 가지고 인도를 받으면 그다음이 어찌 된다 하는 것을 자꾸만  말하는 그것은 마귀라는 것을 우리가 단정을 지워야 됩니다. 내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 찾아서 그대로 행했으면  그다음에는 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대로 내가 따라갈 것이고,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다가 그다음에 죽어도 그만 그것으로 자기의 생명이 끝나도  그만, 자기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순종했으면 그것으로서 자기는 그  현실에서 성공입니다. 그 이상 성공이 없습니다. 그게 성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나가는 데에는 첫째로 주의할 것이  인도 따라가면 그다음이 어찌 되느냐? 갈 바를 자기가 생각하고, 갈 바를 찾고.

또 갈 바가 어찌 되겠나 연구를 하고, 또 건방지게 거기다가 살 바를 결정을  지우고, 이렇게 되면 어찌 된다 결정을 지우고, 이 모든 것이 다 언어도단의 아주  참람된 행위지 믿음의 행위는 아닙니다.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 들어갈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입니다. 그  현실에서는 그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라.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라  하는데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아닙니까? 그 현실에서는 더듬을 것 없이  '나는 기도합니다' '기도하지 마라' '아이구 나는 기도합니다. 기도 안 하겠습니까  기도합니다.' 한다는 것이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 말이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아마 그 파사 나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공통  비판이 다 그랬을 것이라. '인제 저거는 죽는다. 저거는 사자구덩이 들어가서  저거는 죽는다.' 그것이 공통적인 비판 아니겠소? 순종하면 사자밥이 된다 하는  것은 공통적인 다 통계 비판이요 평가지마는 그대로 안 됐다 그말이오.

들어갔는데 죽지 않고 그 이튿날 조금도 상하지 않고 다니엘은 살아나오지  안했습니까?  그거 뭘 보이는 것인가? 너희들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때에 이렇게 하면 어찌  된다는 너거 좁은 소견의 의견대로 이리 된다 저리 된다 하는 그런 비판에서  결정지우는 그것이 너희들이 다 믿음 없는 자실하는 행위요, 또 그것을 생각해 볼  것도 없다 말이오. 생각해 보는 것도 금물이다 생각해 볼 것도 없고 더군다나 더  생각해 가지고 어떻게 될 거라고 네가 결정을 지우는 건 더 가증스러운 일이고,  또 결정을 지울 뿐만 아니라 이거 불리하니까 '어라, 순종하다 안 되겠다. 순종을  그만 말아야 되겠다.' 그거 다 참람된 짓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아브라함의  신앙에서 요걸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따르는 데에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그는 그저  뿍뿍 시키는 현실 헌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순종하는 고것뿐이지 그  외에는 넘어가지도 안했고 아무것도 미달도 없고 고대로만 뿍뿍 걸어갔다 그거요.

그렇게 걸어갔는데. 인간의 예측이나 예상이나 그 모든 예판이 이것이 맞지 않는  것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미 속에 들어갔으니까 그거야 모든 사람이  예측이나 예판이,불에 타서 죽었다' 의례히 불에 타서 죽도록 했고, 또 불에 타서  죽을 것이고 불에 들어갔으니까 불에 타서 죽었다고 모든 사람이 생각하지마는  타서 죽었느냐? 안 죽고 불냄새도 나지 않지 안챘느냐? 이것이 뭘 말하느냐?  하나님의 인도는 모든 자연의 능력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서  움직이지 그 사람이 하나님에 게 벌써 순종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이 그 사람과 같이 해서 하나님 주권에 따라서 움직이지 피조물의 그 역사의  통계나 그런 것이 기게 법하지 못한다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고 또 인간들이  예측한 것이 다 이렇게 정반대로 틀리지 않느냐 하는 그런 것을 우리에게 반성을  시켜서 믿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요걸 하나 단단히 기억합니다.

 또 둘째로는 뭐이냐? 9절에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너에게 주겠다 동으로 서로  보라 이 땅을 너에게 주겠다, 또 이삭에게도 주겠다, 야곱에게도 약속으로써  주겠다.' 이렇게 하나님이 확실히 아브라함에게도 주겠다고 단단히 말했지마는  과연 줬느냐?  주시겠다고 말씀했지마는 삼 대나 돼도 그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지 안했기  때문에 기게서는 남의 땅에서 그저 하나의 손 노릇으로서 남의 땅에 거게 남의  통치 아래에서 하나의 그저 피난민처럼 그렇게 그들이 살았지 하나님이 주신다  하는 그 땅을 자기들에게 자기 손에 붙여서 자기네들이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해서  관할해 가지고 살리라는 그런 것으로서 약속을 하신 것인데, 약속을 했지마는  나중에 막상 그 약속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삼 대나 그저 거지노릇하고, 물론  개인 재산이야 있지바는 그 지방을 제가 통치하고 그 지방에 왕과 같이 이와  같이 돼 가지고 통치할 터인데 거게 남의 땅에서 그저 손노릇하고 그냥 이렇게  평민으로 지냈지 하나도 얻지를 못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단단히 명문으로  약속했고, 구두로 약속했고 몇 번이나 약속을 한 그 약속한 것이 이제 그대로  되지 안했다 말이오. 약속한 것이 그대로 되지 안했어. 되지 않으니까 거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하나님이 거짓말한다. 약속대로 하지 않으신다. 약속대로  안 이루어진다. 원망도 할 것이고, 낙망도 할 것이고, 시비도 할 것이고, 의심도 할  것인데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는데 순종한 그 결과가 하나님 말씀하신  대로 안 됐다 그거요. 또 자기가 믿고 자기 견해대로 견해를 하고 믿은 그대로 안  됐다 그거요. 안 됐으니까, 안 됐으니까 그거는 불평할 수 있고 원망할 수 있고  낙망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떤 신앙을 가졌더냐? 10절에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그런데 그래도  낙망하지 않고 거게서 하나님이 처음에 말씀하신 대로 안 해 주는 것 보니까  '아이고, 하나님이 나 속였다. 또 하나님이 약속을 어겼다. 나를 안 주신다.' 이렇게  하지를 아니하고, 아브라함은 자기 믿는 대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되지  안했을 때에 그때에 안 되는 그 모든 안 되는 책임을, 안 되는 책임을 하나님에게  지워서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하셔 놓고 약속을 어긴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믿지  않고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요, 악속하고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분이요, 그분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약속해 놓고 그 일을 안 해 주실 것인가?  힘이 들어서 안 해 주실 것인가? 하나님이 실 없어서 안 해 주실 것인가?  하나님이 신실치 않아서 안 해 주실 것인가? 그렇지 않고 하나님은 전지 전능의  완전자요, 진실한 자요, 신실한 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말한 대로, 말을 하신  대로 고대로 나는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말하신 대로 안 된 그것은, 안 된 그것은,  말한 대로 안 된 그것은 하나님이 잘못이라고 책임을 지우지 않고, 하나님이 나  한테 거짓말 할 리가 없고 속일 리가 없고 변할 리가 없는데, 그분이 나한테  약속하신 대로 나는 요렇게 될 줄로 바라고 있는데 그렇게 안 되는 것은 '그분이  이보다 더, 이보다 더 좋은 것을 나에게 주시려고 벌써 그것을 마련하고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이것을 주시지 않는다.' 요렇게 믿은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요거 기억됩니까! 요거 이해가 돼요? 이거 이해가 됩니까? 요게  둘째로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믿을 때에 '요렇게 믿으면, 요렇게 믿으면 반드시 이런 보응이 올 것이다.

요렇게 믿으면 하나님이 우린 이런 상을 줄 것이다. 요렇게 믿으면 요런 이런  성공이 올 것이다.' 이리 이리 될 것이다 자기가 생각했는데 그대로 안 되는 일  많이 있습니다. 그대로 안 될 때에 사람들은 거게서 자기가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실 것이라 하는 자기의 견해가 어리고 약해서 고대로 자기 견해대로  이루어지지 안한 것이지 하나님이 불신해서 그렇게 이루어지지 안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바라는 것이 너무 범위 좁게 바랐고 너무 가치 적게 바랐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 큰 것을 주시기 위해서, 나에게 지금 말로 선포는  그래 놔도 그 선포보다 지극히 큰 것을 주시기 위해서 지금 예비하고 계시는데,  나는 조부라운 생각 가지고 내 조부라운 생각대로에 안 된다고 해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그만 불신하고 원망하고 그렇게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에게, 그  잘못된 점이 하나님에게 있다고 돌리는 이런 사람되기 쉬운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무 어리고 좁고 모든 것이 너무  유치하고 이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그것에 내가 도달하지 못해서  당신은 지금 말하자면 어떤 그 무슨 비유컨대 금덩이를 나에게 주시려고 지금  이래 '어떤 걸 내가 너에게 주겠다.' 이랬는데 나는 그 때에, 무슨 돈이나 몇 푼  주시리라.' 이렇게 바랐으니까 내가 바란 것과 당신이 주시려 하는 것이 그것이  너무도 거리 멀어서 나에게 더 귀한 것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인데,  '나는 너무 바란 것이 너무 유치하고 조부랍고 너무 아주 가치 적은 것을 내가  소망했다.' '하나님은 큰 것을 주시려고 하셨는데 내 견해는 너무 작은 것을 했기  때문에 내게 계산이 잘못됐다.' '하나님의 사랑이 허무한 게 아니라 하나님 사랑은  더 컸는데 내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이 너무 어리고 좀 빈약했다.' 하는  그것을 아브라함이 깨닫고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이러니까 가나안을 팔레스틴에 있는 가나안 그것을 주신다고 말은 했지마는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고 영원한 하늘나라를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했는데  가나안 안 됐다고 그만 낙망하지 않고 아브라함은 '영원히 진동되지 아니할 나라  변동되지 아니할 나라, 그 영영한 하늘나라를 자기에게 주시려고 이 아주 가치가  적은 이것을 주지 아니 하는 것은 영영한 그 변동 없는, 진동 없는, 그 나라를  나에게 주시려고 그래 이것을 주지 안한 것이다.' 그렇게 자기는 깨닫고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

 또 그가 세상을 떠날 때에도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지금 가나안 주신다고  말했지마는 가나안 자기 죽을 때까지도 주지 않고 하니까 하나님 믿을 수 없는  하나님 아닙니까? 이렇게 할 때에 아브라함은 '아니다. 내가 그 견해가 좁았지  하나님은 이런 걸로 주시지 않고 영원히 변동되지 안할 영원 완전 무궁한 그  나라를 나에게 주시려고 지금 이와같이 하고 지금 이것을 주시지 안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기 앞에 어찌 되느냐 하는 그런 것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이 어떻게 되든지 좋게 해 주실 것이라. 자기가 따라 나가다  큰 낭패가 져도 '왜 낭패가 졌느냐? 아이구 이거 하나님이 나 속였다.' 그런 것이  아니라 낭패가 지면 '이것이, 내가 몰라서 낭패 같지마는 이것이 반드시 나에게는  큰 복이 되리라.' 이렇게 자기 눈 앞에 있는 어떤 것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의심이  되지 않고 믿음이 요동치 않는 그런 믿음을 가졌고, 또 자기 앞에 아주 현재  환하게 드러나게 그 일이 다 틀려 버렸고, 아주 하나님을 의심할 만한 그렇게  완전한 그런 증거가 있기까지 그래 돼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거게서 너  하나님이 큰 거 좋은 걸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믿어서 더 믿어나가는 그런  신앙을 아브라함이 가졌던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간 바를 알지 못하고 믿었다는 요 아브라함의 신앙과, 약속을 삼  대나 약속했는데 약속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했을 때에 낙망하지 않고  더 하나님께서 그분은 신실한 분이요 또 나에게 거짓말 할 분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그분을 믿고 순종했으니까 그분이 나에게 이 처음에 내 생각대로 요걸 줄  것이라 하는데 안 주면 그분이 나를 속여서 안 주는 게 아니라 더 좋은 거  주시려고 나에게 지금 이거 주지 않기 때문에 더 좋은 걸 주실 거다 하는 것을  믿는 이 믿음을 가진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고.

 셋째로는 11절에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아들 낳겠다고 말했는데 뭐 아들  낳겠다고 말하는데 벌써 그러고 난 다음에 수십 년 지냈습니다. 아들 낳겠다고  말했는데 벌써 수십 년 지냈어. 한 근 삼십 년이 다 돼 가요. 아들 낳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아들은 낳아지지 않고 근 삼십 년이 돼 가니까 벌써 늙어서  쪼글쪼글한 할머니인데 하나님은 '아들 낳겠다.' 했는데 자꾸 늙어지고 벌써  쪼그라진 할머니가 돼 가는데도, 돼 가는데도 아브라함은 '이제 늙으니까 이제 다  낳았다.' 이렇게 생각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자기에게 아들을 주  실 것을 생가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그렇게 자기  보기에 이거는 뭐 현저히 이거는 참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라. 늙어서 벌써 자기도  백 세나 거의 됐지 자기 아내는 할머니가 돼 쪼글쪼글하게 지금 생전 아이도 못  낳는 사람이 쪼글쪼글 늙은 할머니가 됐는데 이거 될 리가 없다 말이오.

 이런데도 자기 눈에 보기에 이거는 참 천부당 만부당이요 이거는 백에 하나도  될 만한 그런 일이 없는 이 역사에 모든 역사에 그런 일이 없는 이렇게 아주 안  되고 안 되고 안 될 그 허무한데도 거기에 밀려서 자기 믿음이 요동치 않고 그걸  꿰뚫어서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는다.' 아무리 늙어도 '변치 않는다.'  할머니가 죽었으면, 할머니가 장사 지냈으면 아브라함은 그랬을 거라. '할머니가  늙어서 장사 지냈으니까 이제는 헛일이다.' 아브라함은 낙심하지 안해. '장사  지내고 난 다응에 귀한 꼴 보겠네. 이제 며칠 만에 살리련가? 이거 삼 년 만에  살리련가?'  만일 삼 년을 무덤 속에 묻어 놨는데 안 나오면 '이제는 아들 못 낳는다.'  아브라함은 그런 신앙이 아니었어. '이제 삼 년이 됐으니까 벌써 썩어서 다 송장이  되고 물이 철철 흐를 건데 물이 철철 흐르는 송장이 일어나 가지고 아이 낳는 거  보겠다. 송장하고 나하고 동침해 가지고 이제 아들 낳겠다.' 그렇게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의심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의심이라는 게 전혀 없었어. 전부  믿는 것뿐이라. 이게 아브라함의 신앙이라.

 이래서 아브라함이 이 삼 계단의 신앙이라 하는 깃을 우리가 이 시간에 배워서  우리가 앞으로 믿어 나갈 때에 우리 앞에도 이 삼 계단의 이런 종류와 같은 그런  일이 있어도 그럴 때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믿는 믿음을 가질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분은 말해 놓은 일이 말하고 난 다음에 사람이 다 죽었으먼 헛일입니까? 다  죽었으면 말해 놓은 그분은 죽은 가운데 사람을 내 가지고도 합니다. 그분은 한번  약속했으면 약속한 것이 변함이 없습니다. 만일 사람을 통해서 하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죽어서 송장이 돼서 썩어 버렸으면 헛일입니까? 아니오. 썩어도 상관  었어. 썩고 또 썩어도 상관없어. 없어도 상관없어. 그분은 말했으면 그만입니다.

말했으면 변하지 않소.

 아브라함은 이 신앙을 가겼습니다. 뭐 말씀하고 난 다음에 뭣이 그대로 행하다가  보니까 그 앞에 이린 불행이 닥쳐 온다. 그것 가지고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따되게 인도하신다는 그 인도에 요동치 않고 의심치 안했고 조금이라도 낙망하지  안했고. 또 자기 눈 앞에 보기에 환하게 아주 환하게 틀렸어. 삼 대나 거기  손노릇 하고 지냈으니까 그렇게 눈 앞에 환하게 틀렸지마는 그래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신실은 기어코라도 이루어지지 이대로 안 이루어지지 않는다' '야  잔소리 말아라. 사람이 지금 죽어서 어떻게 되고 다 헛일인데 뭐 이루어진다  말이고?' '아니다. 죽기 아니라 아무리 죽어도 당신이 약속하신 말씀은 절대  변함이 없고 고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이 신앙을 가진 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순간도 놓지 아니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세밀히 인도하십니다. 세밀히 인도하시는데 인도하시는 게 무엇인가? 인도하시는  건 우리에게 현실을 주시는 것이 당신이 인도하시는 것인데 현실을 주실 때에  당신의 뜻을 찾아서 행하면 주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고. 현실 주실 때에 마귀의  뜻을 따라서 가면 하나님의 인도를 반대하는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은 다 영생인데 하나님 인도를 따라갈 때에  문제는 무슨 문제냐? 하나님 인도를 따라갈 때에 이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그저  뿍뿍 순종해 나가는 것과, 또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갈 때에 자기 눈 앞에 환하게  틀린 것이 뭐, 이거는 완전히 삼 대나 지나갔으니까 틀리고 틀리고 틀리고 완전히  틀려도 그 틀린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아니하는 것, 또  이거는 벌써 아이 낳는다 했는데 백 살이니까 쪼그라져서 할머니가 경수가  있겠소? 늙어 쪼그라진 할머니가 돼 가는데 할머니 돼 가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케 할 만한 그런 강한 세력 아니요? 그렇게 이 자연법 이런  것으로서 의심할 수 있는 강한 그런 의심의 세력이 왔지마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고 확신을 가졌어. 요게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녜,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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