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부인

 

1989. 1. 14. 토새.

 

본문: 눅 9:18-26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경계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18절로부터 19절에 있는 말씀은 이것은 성령이 인용을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용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이 인용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모든 교계에 있는 그 사람들이 말하는 그걸 하나님이 이렇게  인간들이 말하고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하기 때문에 그 말은 사람들의 말인데  하나님이 인용하셔서 기록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예수관이 한갖되지 못하고 여러가지로 그렇게 말을 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시기를 '너희들은 나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이러니까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경계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이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한  이 대답이 바로 대답했다는 바로 알고 있다는 것을 주님이 긍정하신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리스도라 이렇게 베드로의 대답이 바로 된  대답이요 바로 안 대답입니다.

 이런데 마태복음 16장 16절에는 보면 '이것을 너에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그말은 이 혈육을 가진 사람이 아니요' 그 말씀입니다. 혈육이 아니요 하는  것은 인간 단독의 말이 아니라 인간 단독으로서 너에게 알게 해 준 것이 아니라,  네가 인간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하는 말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에게 알려 주신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우리들에게 알려 주는  역사를 하고 있는 하나님이신 성령, 하나님의 영 이, 아버지 의, 영이 너에게 알게  해 주셨다. 아버지의 영은, 곧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요 아들의 영입니다. 또  성령이십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알게 해 주셨다 그렇게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가르쳐 주신 것을 베드로를 통해서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는 말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선지자요, 하나님의 왕이니이다. 하나님이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세우신 그리스도니이다 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이는 기름 부음이라는 뜻인데 이 뜻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을 다스리는 신정 국가 때에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면서  기름 부는 역사로 제사장, 선지, 왕직을 장립시킬 때에 기름을 부으시는 역사를  하셔서 그리스도직은 곧 이 세 가지 직책을 가진 이름이라 그렇게 그 뒤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따라서 우리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는 영원 전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영원 전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말은 홀로 하나님만 계시고 아무것도 없는 그때에 하나님의 이름인데  곧 하나님의 이 직책 가진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직책을 가진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래서, 그때는 하나님이 목적도 정하시지 않으셨고, 예정도 안 하셨고, 물론  창조도 안 됐고, 선택도 안 됐고 하나님만 홀로 계실 때에 그때에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영원 전 하나님의 이름인데 직책을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그리스도라 그렇게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6장 16절 이하에는 베드로가 대답을 할 때에 베드로 대답이  아니고, 아버지의 영이 베드로에게 알려 줘서 베드로가 아버지의 영의 가르침을  받아 아버지의 영이 베드로를 이용해서 나타내신 그 이름입니다. 가르쳐 주신  이름인데 그때는 말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는 말은 내나  여게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시이다' 그렇게 말했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는, 살아계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그 본체의 권위를 가리켜서 살아계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아계신다는 이 살아계심은 곧 다른 말로 말하면 완전  능력이라 하는 그런 뜻을 가졌습니다. 나는 원어를 모르기 때문에 원어 보고  말하는 게 아니고, 성경에 기록한 대로 영감 받아 깨달은 대로 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그는 완전하시고 무한하시고 영원하심을 나타내서, 이는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했다 말이오. 베드로가 말한 게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  그렇게 가르쳤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이 뜻은 전지 전능의 완전의  하나님이시라 이것을 뜻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이라 이랬습니다.

 여게 살아계신다는 이 생명은 완전을 말하고 지극히 큰 능력을 말합니다. 능력을  가리켜서 여게 생명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아계신, 살아계심이라 말은  완전하시고 그 능력이나 권세나 영광이나 모든 것이 영원하시다,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다 하는 그런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서 살아계심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왜 이 말을 하는고 하니 기독교는 어떤 것이 기독교라는 것을 지금 다 뿌럭지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기독교 통일 문제가 나오고 이 모든 교파들이 다 통합해  가지고 살자는 이런 마귀 장난들이 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완전히  파묻혔습니다. 기독교는 완전히 파묻혔고, 그렇다고 아주 파묻힌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세계 여게 저게에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기독교를 나타내고  있는데, 기독교의 근본을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기독교의 근본을 말하기 위해서  말합니다.

 뭐 불교나 유교나 이런 이종교는 불교가 말하기를 예수님의 도성인신 하신  연조보다 앞에 있었다 유교도 앞에 있었다 이래 말하나 그는, 벌써 그분이 모든  존재를 창조하실 때에 그분이 창조하셨고, 그분이 창조하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기를 창조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 없이는 창조된 것이  하도 없었고 또 모든 힘이라 하는 것이 다 그에게 있었다, 생명이 그 안에 있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분의 소유이다' 하는 것을 요한  복음 1장에 나타냈습니다.

 이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이라, 이 무한하신 그 크심을 가리켜서 살 아 계심이라  이렇게 거게는 표시를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성경에서 하나님이 생명을  말하실 때에 이 생명은 하나님의 완전성, 무한성, 영원성 불변성, 단일성 특별히  사람들과 공통성 없는 하나님의 나타나신 그 형상 그 속성을 나타내서 여게는  살아계심이라 그렇게 계시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나님이라 말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홀로' 존재했다는 뜻을  가리켜서 하나님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주교에는 하느님이라  하고, 또 세상에서는 한울님이라는 것은 그들이 추측하고 추상해 가지고 말한  것이지 하나님이 친히 당신을 소개하신 이름은 아닙니다.

 이래서 하나님이라는 것은 하나라는 뜻을 우리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라는  뜻, 하나님. 홀로 존재했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존재로서는 그분 하나만이  존재했지 다른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아니한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는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이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서 나왔는데 이래서 요한복음 또 1장에는 '독생하신  하나님이라' 그렇게 말씀했어. 하나님이 홀로 낳은 하나님이라. 이래서, 독생자라  말은 성령으로 도성인신하신 잉태를 말하기 전 영원 전 하나님의 목적도, 선택도,  예정도, 창조도 아무것도 없는 하나님 홀로 계시는 그때에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뜻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홀로 계셔서 그분만 계셨지 아무것도 없을 때에 하나님만 홀로  계시는데 그분에게서 그 하나님에게서 나온 그리스도라 그말입니다. 아들이라는  것은 그에게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나온 것은 영원 전에 나왔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은 영원 전 이름입니다. 영원 전 이름인데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때는 하나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신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면 존재적으로 하나님이 계시고 아들이 계시고 이렇게 되어  있지 않고 함께 계셨다는 것을 또 나타냈습니다. 성경에 증거를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인 그 그리스도는 어떤 순서로 그렇게 하나님과  그 아들이 됐는지 그것은 우리는 모릅니다. 성경이 그렇게 기록한 그대로 우리는  알 것뿐이지 무한함을 우리 조부라운 우리들이 이렇게 저렇게 인간대로  생각했다가는 큰 과오에 빠지기 때문에 말할 수 없으나 그저 성경에 기록한 대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가  이렇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 아버지가 이렇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가르쳐 주신  그대로 우리는 배워서 기억하고 믿는 것이 그것이 바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는 말이나 주는 그리스도 시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그 근본을 말할 때 주님은 그리스도시라 주님은 제사장, 선지자,  왕이라. '주는' 하는 말은 곧 우리를 책임졌다 그말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주님은 우리를 영원히 책임져서 구원하실 구주신데 곧 제사장, 선지, 왕직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그런 뜻을 베드로는 몰랐으나 아버지의 영이 그에게  알려 준 그대로 고백한 것뿐입니다. 말을 가감한 게 아니고. 그래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주는 우리의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주라는 것을  성부의 영이 가르쳐 줬고 그런데 그분은 어떤 분이냐 근원을 말할 때에 '살아계신'  무한하신, 완전자이신,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을 가리켜서 살아계심이라고 말했고  하나님이라는 말은 홀로 존재했지 아무것도 없었고 홀로 자존해 계셨다, 스스로  또 계셨다고 성경에 말했어. 홀로 자존해 계시는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한 분이신 이분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분으로 인하여 난 이 세  가지 성직을 가진 분이시요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성부와 그 아들, 아들이  그리스도인데 곧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이 도성인신하시기 전 영원 전 성자의  이름이 곧 말씀이요, 또 그리스도라고 이렇게 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데 부자간이라고 그렇게 우리가 알아듣도록 그렇게 말했으나 그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는 요대로 알고 믿을  것뿐이지, 아들이니까 아버지가 먼저 있고, 우리로 말하면 아버지가 장성해 가지고  그 후에 잉태해서 아들 낳은 것처럼 이런 그 창조 이후의 모든 제도와 조직과  존재케 된 그런 모든 그 후의 것들을 가지고 그 위의 것은 우리가 추측하거나  추론하거나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존재가 있기 전 창조되기 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래서 여게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이래서 이런 것은  천 가지 만 가지로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자꾸 여러번 말하는 것은  이것은 이래도 저래도 말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이렇게 알아야 되지 달리 알면  안 된다는 그것을 똑똑히 못박듯이 그렇게 박기 위해서 지금 내가 여러번 말하는  것입니다.

 여게 대해서, 그리스도론에 대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많이 말했지마는 삐뚤어지게  말한 것이 많고 옳게 말한 것은 거게 하나가 있거나 그렇지 뭐 둘 있는 거는  아닌 것입니다. 이래서,'하나님의 그리스도시라 말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말이요,  하나님의 선지자라 말이요, 하나님의 왕이라는 말인데 다른 데다가 말할 때에는  이분은 주라, 이분은 당신이 지으실 피조물의 주라 하셨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곧  제사장, 선지자, 왕이시요, 우리를 구원하실 제사장, 선지자 왕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살아계신이 라는 이 뜻을 사람들이 잘못 알고 별별  해석을 하기 쉽습니다. 살아계신이라 말은 여러분들이 그분의 무한히 크시고  완전하심을 나타내서 살아계심이라고 말했고, 하나님이라는 것은 스스로 자존하신  그 한 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이라고 말했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는 것은 그분의, 그분에게서 나왔다, 그러니까 나왔다 하면  그거는 우리 거석으로 봐서 우리가 나왔다는 말 하나 아들이라 말은 나왔다는 그  뜻을 말한 것인데 어떻게 나왔는지, 그가 먼저 있고 뒤에 생겼는지, 어떤 순서로  어떤 방편으로 아들이 됐는지, 같이 있었는지 직책만 어찌 됐는지 어쨌든지  아버지로 말미암아 난 것을 가리켜서 아들이니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의 구주요 그리스도라. 이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영원 전  하나님만이 홀로 계실 그때에 홀로 계시는 그 완전자이신 무한한 자이신  그분으로 말미암은, 그분으로 말미암은 그분의 아들인 제사장 선지 왕직을 가지신  하나님이라, 이러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름이오. 피조물의 이름이  아니오. 예수님은 피조물의 이름이오. 예수님은,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피조물이 일위가 됐을 때의 이름이기 때문에 피조물을 입은 후의 이름이지  그전의 이름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피조물 있기 전, 하나님의 예정도 있기 전,  목적도 있기 전 선택도 있기 전, 그 전에 하나님으로 이 제사장 선지직 왕직을  책임지고 계시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이렇게, 아버지의 영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그리스도가 이제, 그리스도가 도성인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도성인신 하셨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는 말씀은 제이위 성자를 말하는데  내나 그리스도가 도성인신 했다 말이나, 곧 성자가 도성인신 했다 말이나, 말씀이  도성인신 했다 말이나 꼭 같습니다. 도라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도라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신구약 성경 진리를 말하는  게 아니고 제이위 성자인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켜서 말씀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우리의 구원은 어데서부터 시작했느냐? 홀로 한 분이신 이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제사장, 선지자, 왕 그때부터 우리 구원은  움텄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이  권위를 가지시고 나타나셔서 우리를 영원 전 택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습니다. 우리가 택함을 받을 때에 그저 택함받은 게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언제? 홀로 하나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하나님의  제사장 선지자 왕인, 그때는 하나님의 목적도 예정도 없었는데 그 안에서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택했습니다. 우리의 예택이 곧 하나님의 목적이십니다. 목적이신  이 예택을 위해서 비로소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존재케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구원은 영원 전 하나님이 존재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이  움텄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면서 하나님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제사장 선지자 왕,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 거게서부터 우리  구원은 싹이 터서 움이 터서 시작됐고,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을  하셨고, 또 예정하신 대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창조한 지 그후에 창조 중에  생긴 것들이 모든 이종교의 존재들입니다. 창조할 때에 이 종교에 존재들이  생겨졌습니다. 그것이 생겨지기 전에 하나님의 예정에 들어 있던 것이 생겨졌는데,  기독교는 여게서부터 시발된 이 기독교인 것을 이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데 이 근원이 우리 기독자의 근원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이  그리스도 거게서부터 우리 구원이 시작된 것을 우리가 자꾸 명상하고 자꾸  익히고 익혀야 됩니다.

 뭐 세계의 신학들이 다 그래 쌓아도 그만 그 안에서는 생각해 보지를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존도 다 믿고 이러지마는 하나님이 계시해 놨기 때문에 그저  그런 것뿐이지 거게 대해서 별로이 기독자들이 명상을 안 합니다. 거게를 명상해  가지고 거게서부터 뻗어나와서 자꾸 이렇게 우리의 존재가 됐고, 우리 존재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그것을 근본부터 이렇게 해 나와서 거게서 나은 것이  아니면 다 잡것입니다.

 어제인가, 언제도 내가 그런 말했지마는, '주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라'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전부 다 포도나무를 해치는 것뿐이지 유익되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포도나무에 마구 보석을 포도나무에 막 주렁주렁 달아놨다 할지라도 그것도  포도나무에는 적입니다.

 아무리 빛깔 좋은 채색으로 옷을 해 입히고 뭐 도색을 해 놔도 그거는  포도나무를 해치고 죽이는 것뿐이지 딴것 없습니다. 꼭 포도나무에서 나을 때에  포도나무 속에서 진액이 나와 가지고 그 진액이 나와서 눈이 트고 눈이 터  가지고 또 그 진액으로 자라고 한 그것이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포도나무 비유에서는 특별히 포도나무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전부 가지에 해다,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기 때문에 기독자에게는 주님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은 전부  해독되는 것이지 유익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이것을 고려신학교에 다닐  때에 거게서 학생들끼리 앉아서 방안에서 예배를 보자고 해서 예배 볼 때에 내가  그때에 이 설교를 거게서 했습니다.

 또 기억하는지 몰라도 제가 저 삼봉산 갔다 오다가 전영창 교장이 학교 들어와  가지고 잠깐 좀 한 마디 전해 달라고 할 때에 그때 내가 포도나무 비유를 내가  거기서 증거를 했습니다. 해도 그분들은 무슨 말인지 '저거 무슨 별스러운 말한다'  이래 가지고 그들은 한 마디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 심령이 그만치 어두워.

그러나 그 뒤에는 차차 알 수가 있겠지요.

 어떤 사람이, 누가 말했는지 그건 나는 잊어버렸어. 서울에 와 가지고 미국에  간다 하던가? '설교록을 일 년 전에 어데 그 책을 뉘가 주기 때문에 일 년 전에  암만 읽어야 모르겠고 소용이 없어서 쓸데없는 말이라고 내던져 뒀는데, 일 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뭐 일 년인가 지나고 난 다음에 다시 보니까 보배라서 내가  찾아왔습니다.' '이 책을 어데 이 주소를 보고 있는데 이걸 구입하려면 어떻게  하면 구입하겠느냐?' 그렇게 구입 방편을 묻더라고.

 그래 또 며칠 전에 저 호주에서 편지가 왔는데 거게 어떤 사람이 거게까지 이  설교록이 어데 가서 누구로부터 왔는지 그 설교록을 보고 말을 해서 그래 그것이  여게 호주 간 우리 교인 하나 간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만나 가지고 그  소식을 듣고 기쁜 소식이라 하면서 편지를 하면서 그 사람이 '어찌 하면 어떻게  돈을 부치며 어떻게 하면 그 책을 주문해서 받아 볼 수가 있느냐?'하는 것을  그렇게 하더라고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 기독교는 근본 위에서부터 이래 줄기가 나와 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종교는 다 진화 종교요 다 연구 종교요, 그러나 기독교는 위에서  내려 주는 계시 종교입니다.

 제가 OO신학교 다닐 쌔도 그것이 그들은 다 세계에 모든 신학들을 다 열람하고  공부했기 때문에 아는 분들인데 박윤선 목사님이 그때 가르칠 때인데 기독교는  이것은 우리들의 구원이, 우리들의 구원이라 하는 것은 우리 사람에게서 노력으로  나오나 이것은 위에서부터 나오나 이것이 지금 문제점이 있어 가지고 아직까지도  판결이 되지 않았다는 그런 말을 제가 그때에 들었습니다.

 이래서 '기독교의 우리 구원이라 하는 크고 작은 모든 구원이 인간들이 노력해  가지고 성장시키고 또 이것을 조립시키는 구원이냐?' '이거 하늘에서 왔다는 그런  말이 있는데 그를 믿을 수가 있겠느냐?' 이래서 제가 볼 때 그때에 하늘에서  왔다는 것은 한 이삼십 프로라면 다른 거는 칠팔십 프로의 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에 제가 신학교 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 같기  때문에 나는 눈이 번쩍 뜨였어. '아, 이런 말이 있구나. 이런 말이 있으니까 내가  그런 걸 주장해도 이거 괜찮겠구나' 왜? 나는 그때 오기 전에 '이는 순전히  하나님에게서 와서 우리 구원이 되는 것이지 땅의 것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  아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실 때에 그 구원을 받는 것뿐이다'  나는 포도나무 비유에서 내가 그거 깨달았기 때문에 제가 신학교 입학할 때에  다 입학 논문을 쓰라 했는데 논문 쓸 때에 나는 커다란 종이에다가 다른 것 안  쓰고, '뭐 하려고 이 OO신학교에 왔느냐?' 온 그 소감을 논문으로 기록해 내라  해저 모두 다 많이 기록해 냈는데, 나는 내기를 다른 거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고 '나는 포도나무에 대목가지가 되기 위해서 여기 OO 신학교 왔습니다.'  요래만 딱 기록해 보냈어.

 이러니까 그때에 그 교무실에서 그걸 보고 모두 자기네끼리 조롱을 많이 했어.

이게 논문이라고 이거 이걸 뭐 했다고 이러면서 조롱을 하고 아주 정죄를 하고  그랬습니다. 그들은 그걸 못 알아듣습니다. 이러니까 나는 그때 입학이 안  됐습니다. 안 됐는데 주남선 목사님이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입학을 주라고, 속을  요량하고 한번 시켜 보라고 그래 가지고 제가 거게서 입학을 했습니다. 그 말에  논문의 뜻을 지금도 그분들이 모를 것이오. 웃을 것이오.

 나는 꼭 내가 깨달은 대로, '주님은 포도나무요 나는 대목가지, 주님에게 속한  자로서 대목가지 큰 가지 되기 위해서 왔다' 하는 것이 내 속에 소원이 그것이기  때문에 논문을 그렇게 기록했던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기독교는 위에서 이렇게  나오는, 근원이 이렇기 때문에 그 근원을 잊어버리면 헛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꾸 이단이라고 말할 만치, 모든 이종교  도덕 사상 단체마다 다 부모에게 '효하라' 하는 효도를 말하는 것은 다 한다,  천하에 있는 모든 교훈을 다 듣고 효를 해도 그 효는 오계명 효는 아니다. 오계명  효는 아니다. 그 효는 다 불타 버리지 하나님이 상급 주지 않아. 그러나 이  오계명 효는 하나님이 복 주신다 했어.

 이거는 뭐이냐?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명령 따라서 효한 것이라야 되지 공자  따라서 효하고, 석가모니 따라서 효한 것은 그것은 껍데기는 같으나 그는  하나님에게는 상관없다, 이것도 한 자리에서 둘이 자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둔다 하는 그와같은 그 요소의 성질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는 걸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은 내가 참 자기와 자기 아닌 자기 이것을 구별하는 것을  말하려고 하다가 그것보다도 지금 이것이 더 급하다 해 가지고 언제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또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이 그리스도관, 신관, 우리 기독교의 근원관 이것을  바로 가져야 되기 때문에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가지면, 모든 신학들이 말한  거 저 껍데기 저 겉어머리 지금 겉어머리 저 모두 다 잎사귀를 거머쥐고 야단을  지기고 있는 것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성경 외에 딴것을 가지고 나가면 헛일입니다. 성경 버리고, 성경  버리고 딴데 나가는 것 그게 내나 하나님 버리는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을  보던 자들이 성경 버리고 신학 가 가지고, 성경은 버리고 신학 배우다가는 다 그  인본주의가 다 돼 가지고 다 헛일입니다. 권능이 속에 역사하지 않아. 회개해야  되지. 회개하지 않으면 안돼. 모든 학문 배워 가지고 내가 보니까 믿음이 하나도  없어. 믿음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뭐인지 몰라. 여게서 차차차 배워 가지고  하는,  내가 OOO목사도 여기 왔을 때에 내가 그분 볼 때에, 그분도 볼 때에 믿음이  하나도 없어. 하나님 몰라. 여기 와서 배워서 하나님 알았는데 하나님 알기를 잘  알고 나갔는지 모르겠어. OOO목사님도 내가 만날 때에 믿음 하나도 없어.

지식으로만 하지 하나님 뭐인지 몰라. 또 그 이상 뿌럭지는 몰라. 지금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그래 뭐 여게 지금 O 목사님 동생 OOO조사님 여기 있기  때문에 그거 다 전달할 줄 알아. 전달하고 다 가라고 하는 거라. 왜? 자기 옛날  나 처음에 만나러 나왔을 때에, 처음에 나왔을 때는 허무했는데 두 번 나올 때는  좀 낫고 그거 이 복음을 듣고 난 다음에는 그런 걸 들으면 소화가 되지마는 그  선진들은 깨달아서 말했지만 깨달은 그걸 책만 보고는 몰라요.

 이런데 이 생명을 가지고 난 다음에는 알아진다 말이오. 알고 난 다음에는  끝까지 알아야 될 터인데 조금 아니까 그만 왕이 되고 싶어서 조금 아니 이걸로  다인 줄 알고 지금 날뛰니 더 희망이 없어. 벌써 교만이라 하는 것은 쇠는 것이라,  쇤 것.

 이 식물이 쇤다 말을 뭐인지 알아요? 뻣뻣하게 나락이 쇳다 하는 말 알아?  연하고, 연하고 부들부들 연하면 자라지마는 벌써 끝터리가 땐땐하게 야물게  빡빡하면 그만 안 자랍니다. 굳어지면 안 자라. 쇤다 말은 굳어진다 말이라.

굳어지면 안 자라. 연한 순같이 겸손해야 자라지 겸손치 않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됐다 하면 자라지 못하요. 그것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어. 자기는 모르는 것 알지 못하는 거 지금 이게 자꾸 있고, 또 하나님이  기르시는 거는 뭐이냐? 이제 다 알았는데 또 하나님은 '아, 이거 뭐인지 모르겠다'  자꾸 모르는 것이 자꾸 나오고, 또 그러니 자꾸 나와서 자꾸 기도하고 이러니까  또 알아지고, 또 모르는 게 자꾸 나오고, 모르는 게 자꾸 나오고 알아지는 게 자꾸  나오고 이래서 깨달음이 자라지 않으면 그 사람의 구원은 동결돼 가지고 있는  것이지 성장기는 아닌 것입니다.

 이 모두 다 우리 진영에도 교역자들이 있는데 거의 다 자라서 빳빳하게 굳어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왕이 되려고 굳어져 있지 아무것도 자기 겸손이 없어.

전부 왕되고자 하는 것 뿐이라, 이러니까 참 탄식입니다. 이거는 뭐 내가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인간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르친 것도 내가 가르친 게 아니고 하나님이 가르쳤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 반사선생님들이 공과 외우고 실천해서 경험하고 체험한  지식을 본문과 겸해서 가르쳐야 아이를 먹이는 젖이 됩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으면 안 됩니다.

 어쩌든지 앞으로는 복잡해서 벌써 우리 한국은 이 한국이라 하는 이 나라가  사회주의로 기울어집니다. 사회주의로 기울어지니까 모두 지금 OOO씨도 지금  일본에 사회주의 만나기 위해서 일본 들어간다 하는 그런 말이 신문에, 나는  하나님께서 신문 잘 안 보는 데도 보면 꼭 그런 것만 보여 주셔, 어쩐지. 그런  거는 하나도 빠짐 없이 나에게 보여 주셔서 알게 해요. 또 이거 뭐 이 사회주의로  지금 기울어지는데 이게 뭐이 될런지 그런 거는 지금 말하지 못해.

 기독교는 사회주의로 벌써 이렇게 자꾸 기울어져서 벌써 사회주의 다 됐어. 내가  서울을 속화됐다하는 말은 기독교 사회주의 됐다 말이오. 똑똑히 말하면. 이래서  뭐 안 됐다고 이래 하지마는 자기가 된 줄 알면, 된 줄 알면 헤어날 것이고 안 될  것이고, 된 줄 알면 안 될 것이고, 안 됐다고 생각하면 자기는 뭐 일사천리로  달음질하고 가속도로 도망을 쳐서 이렇게 사회주의로 나가는 데도 그것을  정지시킬 힘이 없습니다.

 지금은 이래 말하지마는 좀 있으면 말 못 해요. 좀 있으면, 좀 있으면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할런지 복 있게 하려면 내가 증거한 이 말 때문에 죽임을 받아야  그래야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와 같은 그 제물이 되어져. 지금은 다 할 수 있는데  좀 있으면 이런 말을 못 해요. 할 수가 있는 줄 압니까? 못 해.

 왜? 교회들이 못 하게 하고 사회들이 못 하게 해요. 사회보다도 교회들이 못하게  해서 그때 박해를 당하게 된다 그거요. 그냥 아무나 따나 뭐 영웅심 가지고 뭐  다른 사람에게 뭐 이상한 말 하기 위해서 하는 그런 게 아니라. 나도 하나님이  증거하라 하기 때문에 증거하지 그런 말 하면 고통스러운 줄 알지마는 그래도  지난밤에 말씀같이 예수님이 원하심같이 그 원하는 사람이라면 관계가 없지요.

 가서 외우는 것 가지고 안 돼요. 외우고 자꾸 거기서 생각하면 깊이 깊이 자기가  깨달아 들어가는 데는 양심이라야 눈이 밝지 양심 눈이 아니면 못 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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