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0 09:02
"중국문화는 어떤 조건과 토대 속에서 성립되었는가?" 이런 식으로 물음의 방향을 전환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하늘(天)'에 대한 중국인의 태도와 관점에 주목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늘에 대한 태도와 관점은 인류 문화사(문명사)의 존재론적 출발점을 이루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대 중국의 전적(典籍)에 등장하는 또 다른 구절 하나에 주목하게 되는데, 이 구절에서 문제는 보다 넓은 지평으로 확장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문(文)의 덕스러움이 크도다. 천지와 함께 생겨났으니 어찌 그런가? 무릇 하늘과 땅이 생겨나자 이어서 검은 색과 누런 색의 구별이 생겨났고 원형과 사각형의 구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해와 달은 백옥을 겹쳐 놓은 것과 같아서 하늘에 붙어있는 형상을 나타내고, 산과 하천은 비단에 새겨 놓은 자수와도 같아서 땅에 펼쳐져 있는 형상을 나타낸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아마도 도(道)의 무늬(文)이리라. 위를 쳐다보면 해와 달이 빛을 발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과 하천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으니, 이는 고상하고 비속한 것의 위계가 확정된 것으로, 그런고로 천지가 생겨난 것이구나.
이 대목은 고대 중국인들의 관념에 비친 일종의 세계지도라고 할 수 있다. 이 구절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중국문화'라고 부르는 통념의 덩어리나 체계가 탄생하는 울음소리 혹은 옹알이를 듣게 된다. 이 구절 속에 우리가 '중국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형성원리가 거의 온전한 형태로 응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그 형성원리는 무엇일까? 이제 그것을 더듬어보기 위해 우리는 수고스럽더라도 먼저 두어 경로의 샛길을 우회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우회과정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중국문화의 생리(生理)라고도 할 수 있고 혹은 중국문화의 체질(體質)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어떤 사태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을 통해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첫 번째 문제는 '文'이라는 글자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文이라는 글자는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먼저 文은 그저 단순한 '무늬' 내지는 '문양'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데,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론적인 질서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난 각종의 양상을 말한다. 이를 위의 인용문은 '도(道)의 무늬'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 도는 세계의 만물에 두루 작용하여 드러나지 않는 곳이 없다.
먼저 하늘에서는 하늘의 무늬(天文)가 생겨나고 땅에서는 땅의 무늬(地文)가 생겨나자, 이에 비로소 '천지의 마음'인 인간에게 인간의 무늬(人文)가 생겨났다. 이 모든 것은 최초의 원인, 즉 창조주의 작업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自然)' 만들어졌을 뿐이지만, 하늘의 무늬와 땅의 무늬와 인간의 무늬는 한 치도 어긋나거나 중복됨이 없이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다. 文을 '글월 문'으로 이해하는 우리네 편견으로는 '무늬'라거나 '문양'이라거나 하는 말들이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우리네 관념의 형성과정을 계보학적으로 고찰해보면 의외의 사태를 마주하게 된다.
현존하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문자인 갑골문(甲骨文)에서 文자는 두 팔을 벌린 사람의 가슴에 무언가가 그려진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서 가슴에 그려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쉽게 생각해서, 오늘날 일부 사람들의 몸에 새겨져 있는 문신을 떠올리면 된다. 그렇다면 문신을 새긴 사람이 천문이나 인문과 무슨 연관이 있었던 것일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야 하등의 연관도 없는 셈이지만, 고대에는 의외로 이 양자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에야 아무나 문신을 새길 수 있겠지만 고대에는 상황이 좀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특별한 권능을 지니거나 사회적으로 그것을 부여받은 사람이 아니면 문신을 새길 수 없었다. 그것이 하늘과 땅을 연결할 수 있는 특권과 능력을 지닌 자, 즉 제사장을 상징하는 기호였기 때문이다.1)
이처럼 단순한 무늬 혹은 문양을 의미하던 文자가 점차 인간의 의식이 성장해 감에 따라 의미가 부가되고 확장되어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질서 일반을 의미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주로 잘 짜여진 그물(pattern)이나 직물(texture)2)이라는 상징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 그물과 직물에서는 날줄(經)과 씨줄(緯)이 조화롭게 착종(錯綜)되어 있기 때문에 『주역·계사하(繫辭下)』에서는 "물상이 서로 얽혀 있는 까닭에 문이라 부른다.(物相雜, 故曰文.)"고 했고, 한(漢)나라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文자를 일러 '종으로 횡으로 얽힌 무늬(錯畵)'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문학'이니 '문인'이니 할 때의 '글월 문'에 버금가는 의미가 새로이 파생하는데, 이때 文은 우주론적인 질서를 지상에 구현하는 실천윤리적 행위를 의미하게 되며,3) 나아가 무공(武功)이나 무력(武力)에 대한 상대적 의미로 쓰여지게 된다.4)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두 번째 문제는 '天文', '地文', '人文'이라는 글자이다. 그런데 이 글자의 의미 역시 만만하지가 않다. 우리가 흔히 쓰는 '우주(宇宙)'라는 단어는 고대 중국의 맥락에서는 공간성과 시간성을 의미했다. 중국 문화사의 초기 전개과정에서 이것은 '천지(天地)'라는 개념의 형성과 직·간접적인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5) 그러나 "宇宙와 天地는 서로 독립된 실체로서의 두 사태가 아니다. 천지에 내재하는 우주, 즉 천지의 공간성과 시간성에 대하여, 우리는 고대인들의 매우 슬기로운 인식의 공통된 전제를 발견할 수 있다. 천지의 공간은 유한하다. 허나 천지의 시간은 무한하다.
다시 말해서 천지에 있어서는 시간은 무한성의 원리(Principle of Infinitude)로서, 공간은 유한성의 원리(Principle of Finitude)로서 상정되는 것이다. 천지의 시간의 무한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천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가치의 기준이 성립하지 않는다. 기준이란 일반적으로 영속성(Permanence)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대체로 시간성을 天에게, 공간성은 地에게 귀속시켰다. 天은 무한성의 상징이었고 地는 유한성의 상징이었다. 天은 動의 표상이요, 地는 靜의 표상이었다."6) 그러니까 천지라는 개념 속에는 지상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로서의 고대 중국인들이 가졌던 무한성과 영원성에 대한 태도와 염원이 담겨 있는 셈이다. 동시에 이 개념 속에는 앎의 영역 너머의 세계를 앎의 영역 안의 세계에 표상(vorstellen)하려는 고대 중국인들의 의지와 노력이 담겨 있다. 이러한 노력의 과정 속에서 인류 문화사(문명사)는 자신의 자리를 서서히 확보하게 된다.
하늘과 땅에 대한 고대 중국인들의 인식과 태도는 흔히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라는 말로 표현된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계는 세 가지 존재론적 요소 -천재(天才), 지재(地才), 인재(人才)-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 세 가지 요소는 각각 세 가지 인식론적 분할, 즉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인간(人間)으로 나타난다. 이 삼재론(三才論)과 삼간론(三間論)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 연결되어 있다는 일원론적 사유를 그 특징으로 한다.
여기서 하늘과 지상의 관계는 현상적으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잠재(潛在)와 현동(顯動)이라는 차원에서의 구분일 뿐 본질적으로는 동동한 위격(位格)을 지니고 있다. 이른바 '체용불이(體用不二)'의 모델이 그것이다.7) 그러니까 고대 중국인의 세계관 속에서 하늘과 땅은 일원적·연속적·화해적 관계로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을 염두에 두면서 다시 앞의 인용문으로 돌아가 보면, 이 세계지도의 전체 맥락이 보다 분명히 인식된다. 거기서 하늘의 질서와 땅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는 일원적·연속적·화해적 관계로 정위(定位)되어 서로를 허용하고 또 삼투하고 있다. 인류가 일구어낸 여느 문명에 이러한 허용과 삼투가 없었으랴만, 유독 중국문명은 우주적 일원성·연속성·화해성에 대한 유달스런 집착과 이것을 내면화하려는 고대 중국인들의 열망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우주론적 토대로부터 중국문화의 생리와 체질이 서서히 주형(鑄型)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