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기원에 대한 전설
전국(戰國)시대부터 한자는 중국인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황제(黃帝)의 사관(史官, 역사편수관)인 창힐(倉頡)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사람들의 사고를 널리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순자(荀子)』·『여씨춘추(呂氏春秋)』·『한비자(韓非子)』 등을 비롯하여 문자학의 경전적인 저작인 동한(東漢)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를 통해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한(漢)나라에 와서는 창힐을 신격화시키기까지 하였다.
선지자선교회
특히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지은 『회남자(淮南子)』에서는 창힐이 태어나면서 새의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쓸 줄 알았다고 치켜올리면서, 창힐이 한자를 창제하자 하늘에서 서속비가 내리고 천지신명이 밤새 울었다고 하였다(昔者蒼頡作書而天雨粟, 鬼夜哭). 이는 문화의 표지인 문자를 갖게된 중국인의 환희를 극대화한 허구적인 것이지만,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동감할 수 있는 감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의 승상인 이사(李斯)가 지은 글자공부책의 이름이 『창힐편(倉頡篇)』인 것으로 보아도 창힐에 대한 중국인의 관념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문자는 어느 한 시기에 갑자기, 또 어느 한 사람에 의해 갑자기 창조될 수는 없고, 축적된 문화의 구체적인 산물이다. 순자는 창힐이 한자를 창제하였다는 학설에 대해 문자는 '약정속성(約定俗成)'의 결과물이며 창힐은 그저 당시 통용되던 문자를 정리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약정속성'이란 문자의 창제과정에 수반하는 부호에 대한 약속과 사회적 승인을 축약한 말로 문자의 탄생과 사회적 공인에 대한 개념을 가장 합리적으로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