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강해

2007.05.3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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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반석     번호 : 41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2/06/11 (화) PM 09:43:07  (수정 2006/02/19 (일) PM 10:26:57)    조회 : 279  

■ 십계명 강해

 

 - 백영희목회설교록으로 정재성목사 정리
      


머 리 말

본 설교집은 부산직할시 서구 동대신동 1가 382번지에 소재 한 서부교회에서 40년간 목회를 하시다가 순교하신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서, 본 설교집을 편저하게 된 목적은 말세를 당한 성도의 믿음을 강인한 믿음으로 양육하고 확립하기 위함인데, 본 설교집이 많은 성도에게 읽혀져 주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아름다운 열매, 곧 강인한 믿음으로 양육되며 확립되는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본 설교집을 편저하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본 설교집이 편저되기까지 물심양면으로 수고하여 주신 이 병준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후 1995년 4월
       서울 성덕교회에서
                                 편저자 목사 정재성


십계명 강해 (출애굽기 20장 3절 ∼ 17절)
날짜 : 79년 9월 2일 주일
본문 : 출애굽기 20장 1절 ∼ 11절 ⑴
.....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본문에 있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열 가지 계명을 주신 것 중에서 1계명에서 4계명까지를 말씀하신 것인데 열 가지 계명 중에서 이 네 가지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요, 그 다음 여섯 가지 계명은 사람에게 대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계명이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르는 것을 사람에게 알려서 '그대로 지켜라'고 명령하신 것으로서, 이 계명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도 있고,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도 있고, '인간과 사물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도 있고, 그리고 이런 모든 것과의 관계에서 동기가 어떠하며, 목적이 어떠하며, 그 결과가 어떠하며, 그 방편이 어떠한지 이렇게 여러 가지 면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에는 제 1계명과 제 2계명에 대하여 간단하게 증거 하고자 하는데 제 1계명은 어떤 것인고 하니, 3절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하신 이것입니다.
신(神)은 영물(靈物)인데, 영체(靈體)를 가진 신도 있고 영체를 가지지 아니한 신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물인 신이 사람에게 역사 할 때, 직접적으로 역사 하기도 하고 사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역사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물인 신이 사람을 점령하여 그 사람을 통해서 만물에게 역사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물인 신이 어떤 피조물을 점령하면 그 피조물을 자기의 수족(手足)처럼, 무기처럼, 군대처럼 사용하여 활동하고 역사 하는데 우주에는 신이 많지만 그 종류를 크게 나누면 두 가지로서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영물 중에 '천사'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 천사들 중에 하나님 앞에 범죄 하여 쫓겨난 천사들이 있으니 그 타락한 천사를 가리켜서 '사탄'이라, '마귀'라, '귀신'이라고 하는데 이런 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범죄 하여 타락한 천사의 무리가 인류 시조 에덴 동산 때에 뱀을 자기 것으로 이용하여 먼저 하와에게 이 뱀을 보내서 하와를 유혹하였고, 그 다음에는 유혹 받은 하와를 통해서 아담을 유혹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그 유혹을 받아서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과의 맺은 계약을 어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생육법으로 출생하는 전 인류는 아담이 신인 계약(神人 契約)을 어긴 데에 동참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정죄를 받았는데 이것이 원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외에는 하나님의 지으신 천사가 타락을 해서 된 신이 있는데 이것들 가운데서 제일이 되는 대장을 이름하기를 '사탄'이라고 하고 그 다음에 사탄의 부하로서 유혹하는 역사를 주관하는 것들을 이름하기를 '마귀'라 하고 그 다음에 지저분한 적은 면에서 활동하는 것들을 이름하기를 '귀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라고 하신 신은 한 분 뿐이신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그 숫자가 '천천이요, 만만이라'고 할 만큼 사탄에게 속한 것이 심히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천사들이 타락하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곳곳마다 사탄의 부하들이 파송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사건이든지, 어떤 물건이든지 이 사탄의 부하가 따르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 있는 것에게는 사람이든지, 사건이든지, 물건이든지 사탄의 부하인 마귀나 귀신이 붙을 수가 있는데 하나 둘만 붙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면에는 이런 귀신이 붙고, 저런 면에는 저런 귀신이 붙고, 여러 면으로 포위하고 있으니 세상은 이런 곳입니다.
그래서 이 마귀들의 포위 속에 있는 사람도 있고 벌써 마귀에게 삼켜져서 마귀의 것이 되어서 마귀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마귀에게 포위를 당해서 쉬지 않고 전투를 해도 패전하지 않고 항상 승리로 하루, 한달, 1년을 계속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마귀로 더불어 전투를 하다가 그만 실패해서 유혹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속이 없는 사람은 마귀의 것이 되고 난 다음에는 다시는 마귀에게서 해방 받지 못합니다. 마귀는 왕권을 가지고 그 사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대속하셨기 때문에 마귀가 왕권적으로 그 사람을 점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9절에 보면 '죄와 사탄이 왕 노릇을 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왕 노릇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택함을 받은 사람이 마귀로 더불어서 전투하다가 실수해서 마귀에게 패전하면, 마귀가 택함을 받은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일시적으로 왕 노릇을 합니다. 그러나 반성하고 회개하여 마귀를 물리치면, 마귀는 왕권적으로 머물러 있지 못하기 때문에 쫓겨나야 합니다.
택함 받은 자의 왕은, 택함 받은 자를 구속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왕권을 위임받아서 통치하시는 분은 성령이기 때문에 성령이 오셔서 역사 하시면 마귀는 물러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 1계명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하신 말씀은 '네가 다른 신들을 용납하지 말아라, 하나님만을 유일하신 신으로 모시고 이분에게 소속해서 살고 다른 신들을 네게 용납하지 말아라'고 하신 말씀인데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우리 믿는 사람이 다른 신들을 자기 속에 용납할 수도 있고 쫓아낼 수도 있는, 이런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신 것인데 '다른 신들을 용납하지 말라'는 말은 '이 세상에는 다른 신들이 얼마든지 가득 차서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입에서 말 한마디가 나오면, 그 말 한마디는 성령의 도움으로 나온 말이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사탄이나 사탄의 부하들인 마귀나 귀신으로 말미암아 나온 말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반드시 그 말의 배후에는 신이 붙어 있습니다. 신이 붙어 있지 않는 말은 없습니다. 말뿐만 아니고 성질도, 욕심도, 소원도, 행동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신 곧 사탄과, 사탄의 부하인 마귀와 귀신을 용납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첫째로는 마귀를 무서워하는 것인데 하나님께 소속하지 아니한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떻게 잘나고 위대하고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마귀의 부하가 되어 있고, 종이 되어 있으니 마귀는 이렇게 세력이 있고 강하지만 믿는 사람에게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창조주시요, 전지전능자시요, 주재 주권자시요, 믿는 사람을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 안에 계시기 때문에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른 신들 곧 마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것이, 다른 신을 용납하지 않는 것인데 우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다른 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벌써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요, 다른 신을 용납하는 것이요, 거기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마귀에게 소망을 두는 것인데 마귀를 용납하지 아니하는 것은 마귀에게 소망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하나님께 대하여 위반되는 생각, 소원, 성질, 기분, 감정, 고집, 계획, 말, 행동, 경영 이런 것을 물리치지 아니하고 용납하여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1계명을 지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고 하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위반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것인데, 우리 믿는 사람이 가치적으로, 권위적으로, 실력적으로, 제일 높으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신을 두려워하고 다른 신에게 소망을 두는 것은 제 1계명을 어기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신이 가득 차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으며 이것들이 사람을 포위해서 자기네 것으로 만들려고 전력을 기울입니다. 택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은 이미 마귀의 것이 되어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아무리 위대하고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택함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면 마귀의 것이요, 그 사람을 주관하는 자는 마귀입니다.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들도 마귀의 것이요, 그 사람들을 주관하는 자는 마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이렇게 두 종류의 신이 있는데 세상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것으로 되어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마귀의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지, 어느 하나의 것으로 되어 있지 않고 독립적으로 되어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마귀의 포위 속에서 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도 잘못하면 자기 자신이 마귀의 것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접촉할 수가 있는데 마귀가 사람들 속에 들어오는 것은 그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볼 때, 눈을 통해서 들어오고 그 사람이 귀로 무슨 말을 들을 때, 귀를 통해서 들어오고, 그 사람이 자기 속에 있는 온갖 요소를 움직일 때, 그 요소를 통하여 들어오고, 그 사람 속에 어떤 생각이 나올 때, 그 생각을 통하여 들어오고 성질이 나올 때, 그 성질을 통하여 들어옵니다.
그래서 자기 속에 마귀가 자리잡고 있는 사람도 있고, 자기 속에는 마귀가 없는 사람도 있고 마귀가 몸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있는데, 몸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의 수가 제일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 속에 하나님의 법도에 위반된 것이 있으면, 마귀가 그 속에서 역사하고 활동하지만, 그 사람이 하나님의 법도에 위반된 것을 회개하여 정리하면, 마귀는 그 사람 속에 있을 곳이 없기 때문에 즉시 그 사람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도 보면, 사람의 욕심 면에 대하여 책임 맡은 마귀가 있고, 성질 면에 대하여 책임 맡은 마귀가 있고, 명예 면에 대하여 책임 맡은 마귀가 있고, 안일 면에 대하여 책임 맡은 마귀가 있고, 물욕 면에 책임 맡은 마귀가 있고, 정욕 면에 책임 맡은 마귀가 있고, 생의 애착면에 대하여 책임 맡은 마귀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어떤 성질 면에서 범죄 하면, 성질 면에 책임 맡은 마귀가 그 죄를 통해서 그 사람의 성질 속에 들어가서 그 성질을 도구로 사용하여 역사 해서, 그 성질 면에서 죄를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 이렇게 죄에서 죄를 일으키고, 그리고 성질 면에 책임 맡은 마귀를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 이렇게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욕심 면에 대해서도 그러하고, 정욕 면에 대해서도 그러하고, 물욕면에 대해서도, 생의 애착면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마귀가 처음에 인간이 범죄 하지 아니했을 때는, 인간의 몸 밖에서 유혹하였고,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였을 때는 그들 안에 들어가서 역사 하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의 소유는 어떤 것인고 하니, 죄악이요, 마귀는 어떤 것에 대하여 세력을 가지는고 하니 하나님의 법도를 어긴, 그 죄를 범한 것에 대하여 세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서 죄를 범하면, 마귀는 그 사람에게 대하여 세력을 가지고 그 속에서 역사 하기 때문에, 자기 속에 있는 마귀를 물리치려고 하면 마귀의 것이 되어 있는 죄를 정리해야 합니다. 죄를 정리하기 전에는 물러가지 않습니다. 죄를 정리하면 당장에 물러갑니다. 즉시 물러갑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의 싸움은 어떤 것인 고하니, 자기 속에 마귀를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는 믿는 사람이 마귀를 용납하도록 하기 위하여 유혹도 하고 강압도 합니다. 그래서 이 유혹과 강압을 물리치는 싸움을 믿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8절에 보면 마귀가 예수님께 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네가 나한테 한번만 절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라고 하면서 복종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마귀를 보시고 '대주재이신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그분만 섬기라고 성경에 말씀했으니, 너는 물러가라'고 호령을 치시니까 마귀가 물러갔습니다.
그러므로 제 1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요, 하나님께 대하여 위반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는 것인데, 우리 믿는 사람은 제 1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본문 : 출애굽기 20장 3 ~ 6절 ⑵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지난 시간에도 본문에 있는 말씀을 증거 하였는데, 이 시간에 다시 증거 하고자 하는 것은 이 말씀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많이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용납해서 자기 속에 있도록 하는 그 원인이 무엇인고 하니, 그 원인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망치고 죽이는 것은 죄 뿐이요, 죄 외에는 사람을 망치고 불행케 하고 죽이는 것은 없는데, 사람이 하나님 외에 어떤 것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법도를 거역하면, 그것이 마귀를 용납하는 방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을 책임 맡은 마귀가 와서 "네가 하나님의 법도를 거역하지 아니하면, 네 가정이 굶어 죽는다. 믿음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돈이 없으면 네 가정은 절단 난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법도에 순종하는 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좋은 것인 줄 나도 안다. 그러나 돈이 있어야 밥도 먹고, 옷도 입고, 자녀 공부도 시키고, 편안하게 살 것이 아니냐?
네가 이번에 주일을 지킨다고 하면서 고집을 부리면 직장에서 쫓겨난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한다고 하면서 고집을 부리면 네 사업이 절단 난다.
신앙양심대로 살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면 네 출세가 절단 난다."고 하면서 위협을 주는데 이렇게 마귀가 위협을 줄 때, 사람들이 두려움을 가지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져야 망하고, 절단 나고, 죽는 것이지,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행한다고 하면, 천하 사람이 달려들어도 멸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죄 값으로만 망하고 죽는 것인데, 죄는 잘못되고 비뚤어진 것으로서,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속에 마귀나 귀신이 시장에 사람들이 들끓는 것처럼, 들끓을 수 가 있는데 믿는 사람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두려워하면 그것을 통하여 들어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는 것이, 마귀를 용납하는 방편입니다. 여기서 마귀가 믿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는데, 이것을 회개하려고 하면, 두려워하는 것을 없애야 합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돈이 없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고, "하나님이 안 계셔야 죽지, 돈이 없다고 죽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법도대로 행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적절하게 해주신다. 돈이 많이 있어 유익하면 많이 있게 하시고, 돈이 적게 있어 유익하면 적게 있게 하시고, 돈이 없어 유익하면 없게 하신다. 하나님께 모든 것이 주권 되어 있기 때문에 돈이 나의 생사에 아무런 권리가 없다."라고 하는 이것을 깨닫고 단정지으면 마귀가 나오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에게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을 소망하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마귀가 들어오게 되는 것인데,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소망하는 것이 마귀를 용납하는 방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에게는 다른 것은 없어도 이것만은 필요하다. 내가 다른 것은 없어도 살지만 내 생명만은 안 된다."고 하면서 그 어떤 것에게 소망을 가지면 마귀가 그것을 통하여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 외에 사업이나, 권세나, 직장이나, 지위나, 출세나, 명예나, 가정이나, 몸이나, 생명이나, 그 무엇이든지, 그것에게 소망을 두면 마귀가 그것을 통하여 믿는 사람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인데 우리 믿는 사람이 그런 것들에게 소망을 가지면 자기는 벌써 마귀와 접해서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강건하고 위대해도 하나님과 끊어지면 그만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되면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건강이 필요하면 건강을 주시고, 장수가 필요하면 장수를 주시고, 지위와 권세가 필요하면 그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요. 모든 것을 주권 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의 전 소망이 하나님 한 분께 집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의 전 소망이 하나님 한 분께 집결되어 가지고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것을 하나님의 법도대로 관리하고 취급해야 합니다. "이 사업은 이렇게 관리해라, 이 직장은 이렇게 감당해라. 이 물건은 이렇게 취급해라, 이 가정은 이렇게 꾸려서 나가라"고 명령하신 그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 있는 지위나, 권세나, 사업이나, 직장이나, 소유나, 가정이나, 활동 무대나, 몸이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이런 것에게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주신 것을 하나님의 법도대로 보관하고 관리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법도에 위반되게 관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관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고 하니 모든 것에 대한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인데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이렇게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은 우리 믿는 사람에게 대하여 당신의 소원대로 행하실 수가 있는 것인데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법도대로 취급하면 하나가 천으로 만으로 불어날 수도 있고 또 천이나 만이나 되는 것이 하나로 줄어질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전지 전능의 능력으로 있게도 없게도 작게도 크게도 많게도 적게도 하시는 것인데 우리 믿는 사람의 구원에 유익하도록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조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이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이렇게 살지 않고 "내가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도 이것만은 보존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도 이것만은 가져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도 이것만은 붙들어야 한다."고 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벌써 다른 신(神)인 사탄, 마귀, 귀신이 붙어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에게 절대성이 있고 다른 무엇이 유일한 것인 줄 알고 최고적인 소망을 두었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원수가 되었고 마귀와 결합되어 마귀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도에 위반된 것을 가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도에 위반된 생각, 소원, 성질, 감정, 욕심, 말, 행동 이런 것을 가지는 것인데 이런 것들을 물리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용납하면 마귀를 용납함이 되어 이제는 마귀가 역사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3절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인고 하니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소망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대하여 위반되는 것을 가지고 자기를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우리 믿는 사람이 다른 신들을 쫓아내려고 하면 얼마든지 쫓아낼 수가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제 1계명을 지키면 그 다음 10계명까지는 다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 1계명은 전 계명의 생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1계명에서 신은 두 가지밖에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 믿는 사람을 구원하신 하나님이시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지으신 영물들 중에 하나인 천사들이 자기의 지위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쫓겨났는데 이것들을 가리켜서 '사탄이라, 마귀라, 귀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귀의 대장을 사탄이라고 하는데 일설에 의하면 "천사장 루스벨이 타락해서 사탄이 되었다"라고 합니다. 지금은 미가엘이 천사장인데 천사장 루스벨이 타락을 하니까 그 밑에 있던 천사들이 한꺼번에 타락해서 마귀가 되고 귀신이 되었는데 이것들이 세상에 가득 차서 있고 모든 사람을 점령하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캄캄한 무인지경(無人之境)을 갈 때, "사나운 짐승이 나올까, 악한 사람이 나올까, 언덕에서 떨어질까"해서 두려워하는데 이것은 정상적인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을 캄캄한 밤중에 갈 때에 "이 세상에는 귀신이 가득히 찼는데 여기에 귀신이 나오면 어떻게 하겠나"라고 하면서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사람에게는 마귀가 용납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가득 찬 마귀가 우리 믿는 사람 속에 들어오려고 할 때, 사용하는 방편이 무엇인고 하니.

첫째로는 우리 믿는 사람을 두렵게 만들어서 믿는 사람이 두려워하면 두려워하는 그것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마귀가 사용하는 그 방편은 두려움인 것입니다. 마귀가 돈으로 병으로 권세로 지위로 직장으로 가정으로 몸으로 생명으로 온갖 것으로 우리 믿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지만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으로 두려움을 준다고 해도 그것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이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주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천하가 두려워하는 것이라고도 해도 우리 믿는 사람을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죄를 용납하기 전에는 우리 믿는 사람을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 외에 어떤 것을 두려워할 때는 이미 귀신이 붙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물리치면 마귀가 우리 믿는 사람 속에 들어와서 믿는 사람을 자기의 군대로 삼아서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을 물리치면 그렇게 됩니다.

둘째로는 하나님 외에 어떤 것을 소망하게 하여 그것을 소망하면 소망하는 그것을 통하여 들어오는 것인데 마귀가 사용하는 방편은 소망인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세상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법도대로 또는 영감이 우리 믿는 사람의 양심을 통해서 감동시켜 주시는 대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세상 것이 자기에게 있어야 좋을지 없어야 좋을지 또 있으면 어느 정도 있어야 좋을지 또 어떤 종류의 것이 있어야 좋을지 여기에 대하여 모릅니다.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이 세상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취하라고 하시면 취하고 버리라고 하시면 버리고 주라고 하시면 주고, 주지 말라고 하시면 하나도 주지 않겠다.'라고 이렇게 작정하면 마귀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셋째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도에 대하여 위반되고 비뚤어지게 행하면 그것을 통하여 들어오는 것인데 마귀가 사용하는 그 방편은 하나님의 법도에 위반되게 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이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법도에 위반된 접선을 가지고 위반되게 행동하면 마귀가 그것을 통하여 들어옵니다.
그런데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우리 믿는 사람이 다른 신을 쫓아내려고 하면 얼마든지 쫓아낼 수가 있는 이런 권세가 우리 믿는 사람에게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을 입은 사람에게는 이런 권세가 있습니다. 이런 권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마귀가 가득 차서 있는데 귀신이 가득 차서 있는데 사람이 무슨 말을 한마디해도 하나님으로 더불어 접해서 하는 말이 있고 마귀로 더불어 접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혼자서 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을 상대하여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하는 말이 마귀를 접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면 그 사람에게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기가 그 사람을 영접해도 그 사람 속에 있는 마귀를 용납하지 않고 쫓아내어야 하겠는데 그 사람의 말을 반증하면 그 사람 속에 있는 마귀를  쫓아내지만 그 사람을 잃어버리게 되는 그런 경우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속으로 기도합니다. '주님이여, 마귀가 저 사람의 말을 통하여 내 속으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저 사람의 말을 인정하지도 않고 용납하지도 않고 그 사람의 말에 미혹도 받지 않고 피동도 되지 않습니다.'라고 하면서 그 사람의 하는 말에 옳은 것은 받아 드리는 것처럼 하고 틀린 말은 물리치지도 않고 받아 드리지도 않고 그저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하는 말 중에 옳은 말이 섞여 있어도 이 말은 그 사람 속에 있는 마귀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방편상(方便上)하는 말이기 때문에 이 말은 반 거짓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속으로는 그 사람의 말을 인정하지 않고 용납하지 않고 그 사람의 말에 피동 되지 않으면 마귀는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는 '내가 이 사람에게 대해서 이번에는 헛일이구나'라고 하면서 물러가고 다음에는 다른 면으로 화살을 겨눕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사람이나 일이나 물건이나 만물을 접촉할 때 거기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접촉되는 것이 있고 다른 신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접촉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구별해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오는 것은 용납하고 다른 신으로 인하여 자기에게 오는 것은 용납하지 않고 물리쳐야 하는데 이것이 제 1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1계명을 지키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처럼 완전한 인격과 행위를 가지게 되는데 우리 믿는 사람은 이것을 목표로 삼고 이것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산천초목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이것보다는 완전한 인격과 행위를 갖추어 가진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 더 좋고 이것보다는 하나님을 구경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사람을 접촉하든지 일을 접촉하든지 물건을 접촉하든지 어떤 움직임을 보든지 껍데기만 보고 상대하면 안됩니다. 이것들의 내부에는, 그 이면에는 하나님도 거기에 관련을 가지고 계시고 마귀도 거기에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이 이런 것을 접촉하고 상대하고 관계를 가질 때마다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마귀를 몰아내고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 1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2계명은 어떤 것인고 하니,
4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신들이 있고 이 우주에는 이미 존재한 것들이 있는데, 신들이 이미 존재한 이것들에게 접촉하여서 이것들을 통하여 우리 믿는 사람에게 접선하는 것을 제 1계명에 속한 것으로 말씀하셨고, 제 2계명은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가 무엇을 만들었든지 어떤 사람이 무엇을 만들었든지 사람이 만든 여기에 신이 접해서 그것을 통하여 자기에게 오는 것을 제 2계명에 속한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무슨 사업을 하면 그 사업을 하루, 이틀, 사흘 이렇게 사업을 하는 동안, 거기에 마귀가 접선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접선을 하기도 하는데 마귀가 거기에 접선이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고 하니 그것이 차차 우상이 됩니다.

그런데 5절에 '절한다'라고 하는 말씀은 "숭배한다, 높인다"라고 하는 말씀이요, '절한다'라고 하는 말씀은 "거기에 소망을 둔다"라고 하는 말씀인데 자기 사업이나 직장이나 가정이나 지위와 권세나 기술이나 지식은 자기가 만든 것이지만 여기에 사탄, 마귀, 귀신 이것이 접하게 되면 우상이 됩니다. 그리고 우상이 되면 그것에게 절하게 됩니다. 그것을 숭배하게 됩니다. 또 그것을 섬기게 됩니다. 그것이 "자기를 살린다"라고 하면서 거기에 소망을 두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사업이나 지위나 권세나 가정이나 지식이나 직장이나 기술은 자기가 없는 가운데서 만들었으니까 자기는 그것에게 대하여 창조자요, 제작자요, 주인공이기 때문에 자기는 그것들보다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들 곧 자기가 만들어 놓은 것들이 자기보다 위에 있고 자기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네가 사업에게 대하여 거슬리면 너와 네 가정이 굶어서 죽는다. 이 직장에게 거슬리면 당장에 네 가정이 굶어서 죽는다"라고 하면서 두려움을 줍니다. 그렇게 되면 벌써 마귀가 자리를 잡고 자기는 그것에게 대하여 주인공 노릇, 왕 노릇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 이제는 그것이 소망을 줍니다. "사업이 아니면 직장이 아니면 네 자녀를 교육시키지 못한다, 좋은 옷을 입지 못한다, 좋은 음식을 먹지 못한다, 좋은 집에 살지 못한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고 자기가 노력하여 만든 그것에게 소망을 가지게 되고 이제는 그것에게 따라서 행동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소망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마련한 그것에게 소망을 두고 그것에게 따라서 행동을 합니다. 이것이 제 2계명을 범하는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요,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4절 중간에 보면 '하늘에 있는 것의 형상이나 땅에 있는 것의 형상이나 물 속에 있는 것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좋은 옷이나 인형이나 조각품이나, 이런 것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이런 것을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습니다. '우상 되게 만들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제 2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만일에 그 사람이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업이 커져 갈수록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더 커지고 하나님을 숭배하고 높임이 더욱더 커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에 관계되는 일이 하나 생겨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사업에 손해가 오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 유익이 되는 이런 형편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이제까지 신앙으로 사업을 하면서 경험과 체험한 일이 있기 때문에 사업에 손해 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는 것이 더 두려워서 자기 사업에 손해가 되어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자기 사업이 성공해도, "이만하면 되었다. 이만하면 내 생활이 넉넉하다."고 하면서, 자기 사업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을 더욱더 소망하고 자기 사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소망함이 분산되지 않고 식어지지 않고 성글어지지 않고 점점 튼튼해집니다.

또, 자기 사업을 하나님의 계명대로 관리합니다. 사업 때문에 계명을 위반하지 않습니다. 집회 참석도 사업 때문에 방해받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제 2계명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우상을 만들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사업은 우상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업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직장에 대해서도 그러하고 지위에 대해서도 그러하고 가정에 대해서도 그러하고 지식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그러면 제 2계명을 범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자기 사업이 커져 갈수록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차차 없어지고 자기 사업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고 크게 여겨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것보다 사업의 손해를 더 크게 여기고 두려워합니다.
또, 자기 사업이 성공하니까 "이만하면 의식주에는 넉넉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소망하던 마음이 차차 없어지고 사업을 더욱더 소망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은 없어도 되지만 이 사업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또, 자기 사업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많은 제재를 받고 방해를 받고 사업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사업이 바빠서, 내 사업이 이래서"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사업 때문에 많은 방해를 받고 사업 따라 움직이지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제 2계명을 범하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갈수록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소망함이 더 강해지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피동 됨이 견고해지는데 어떤 사람은 갈수록 세상을 더 두려워하고 세상 것을 소망함이 더 강해지고 세상 것에게 피동 됨이 더 견고해집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장 13절에 '악한 자들은 점점 악해지고 속이는 자들은 점점 속인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피조물 중심으로 점점 나아가고, 세상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을 점점 두려워하게 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계시록 22장 11절에도 보면,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지금 우리 믿는 사람은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지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있는지 여기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고 확정을 지어야 합니다.
인간의 생사 화복은 하나님 한 분께 주권 되어 있습니다. 사업이나 직장이나 출세나 지식이나 기술이나 사회나 나라나 어떤 배경에게 주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한 분께 주권 되어 있습니다.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 한 분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없애려고 하시면 당장에 없앨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91편 14절에 보면 '하나님을 이런 하나님으로 알고 사랑하고 높이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어려움을 당하면 구원하신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하나님으로 알고 믿고 사랑하고 높이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본문 : 출애굽기 20장 3절 ~ 6절 ⑶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지난 시간에도 이 말씀을 증거 하였습니다. 영계에는 타락하고 범죄 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 한 것들을 전부 몰아내셨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영계에서 쫓겨나 온 것들이 우주에 자리를 잡고 이 물질계를 타락시키려고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神)은 없는 곳이 없고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들을 말하는 것은 이방 종교에서 말하는 범신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은 신이 아닙니다. 신으로 지음 받은 것은 처음부터 신으로 지음 받은 것인데 영물인 것입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영계에 있었는데 영계에서 범죄 함으로 본 지위에서 타락하여 공중으로 쫓겨났고 공중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유혹시키려고 온갖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 처음에는 우주밖에 있었는데 에덴 동산에 있는 인류 시조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타락시키기 위해서 우주 안으로 들어와서 인류 시조 아담과 하와를 유혹시킨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공은 사람인데 이것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시켜서 넘어지게 한 후로는 우주는 이것의 것이 되었는데 이것은 타락한 천사인 악령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탄이요 마귀입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통치권을 사탄에게 완전히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우주는 사람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고 사람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인간이 하나님의 계약을 어긴 것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음으로 완전히 해결을 하였고 또 악령과 싸워서 승리함으로 완전히 해결하였습니다.
그런데 악령이 세상에 있는 것을 이용하여 역사하고 있습니다. 만물에게 접해서 만물을 이용하여 활동하고 있지만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자기의 가장 민첩한 군대로 삼아서 인간구원운동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우주 안에 있고 만물 안에 있고 불신자 안에서 역사하고 중생 된 믿는 사람 안에서도 역사 하지만 왕권을 가지고 내주 하여 역사 하지 못하고 패잔병이 되어서 유혹적으로 역사 합니다.

그런데 이 마귀의 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사람마다 마귀 신(神)이 접해 가지고 있으며 모든 만물에게도 접해서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대해서도 이런 면을 접한 신이 있고 저런 면을 접한 신이 있어서 물욕면을 담당한 신이 있고, 공명욕(功名慾)을 담당한 신이 있고, 이런 성질 저런 성질을 담당한 신이 있고, 이런 취미 저런 취미를 담당한 신이 있고, 이런 소원 저런 소원을 담당한 신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지음 받을 때 여러 가지 요소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런 요소 요소마다 신이 접해서 이것들을 이용하여 활동하고 역사 합니다. 그리고 마귀는 믿는 사람의 몸 안에서 역사 하는 것도 있고 믿는 사람의 몸 밖에서 역사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몸 안에서 역사 하는 마귀를 믿는 사람이 쫓아내려고 하면 얼마든지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이 마귀는 믿는 사람에게 대해서는 왕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이 마귀를 쫓아내려고 하면 얼마든지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속을 입지 못한 사람은 마귀에게 영원히 종으로 되어 있고 지옥에 가서도 마귀의 종으로 마귀와 함께 형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마귀를 쫓아내려고 하면 마귀가 타고 들어온 죄를 회개해야 하는데 믿는 사람이 마귀를 아무리 쫓아내려고 해도 마귀의 것이 되어 있는 그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마귀가 쫓겨나지 않습니다. 회개하면 쫓겨납니다. 마귀는 믿는 사람의 주위에 첩첩이 둘러싸서 있으면서 이런 기회 저런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기회가 오면 미혹시켜서 범죄 하게 하고, 범죄 하면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마귀가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주관하는 그런 사람도 있고 또 마귀가 그 사람 속에 있다가 그 사람이 회개하므로 쫓겨나 오는 그런 사람도 있고 또 자기 안에 있는 마귀를 쫓아내고 자기밖에 있는 마귀와 싸우고 있는 그런 사람도 있고 부분적으로 쫓아내어서 마귀가 부분적으로 남아서 역사 하는 그런 사람도 있는데 마귀는 정말로 무서운 존재입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강한 존재입니다. 천하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구속을 입지 아니한 사람은 마귀에게 삼켜서 마귀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사탄은 천사장으로 있던 것이 범죄 해서 타락하여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지음 받은 것이지만 모든 천사들 위에 뛰어난 실력을 가졌던 천사장이었는데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하여 영계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영계에서 쫓겨난 사탄이 우주에 들어와서 사람을 넘어트리고 우주의 왕권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까지는 사탄이 왕권을 가지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 왕권을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3절에 보면,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신들 이것은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이 알 것은 마귀의 숫자, 귀신의 숫자가 심히 많다고 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방 종교에서 말하는 범신론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지으신 천사로서 영계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범죄 해서 영계에서 쫓겨나 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것들이 나무에도 붙고 돌에도 붙고 물고기에도 붙고 벌레에게도 붙고 사람이나 짐승에게도 붙고 이렇게 해서 그것들을 주관하고 이용해서 믿는 사람이 하나님과 결합되는 구원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는데, 어떤 때는 마귀가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일예배를 바르게 드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금요일부터 역사 합니다. 그래도 되지 않으면 토요일에도 역사 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주일 아침에 기습적으로 역사를 합니다. 어떤 때는 교회를 망치기 위하여 그 교회를 책임진 목사를 넘어뜨립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이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이것을 통하여 저것을 넘어뜨리고 저것을 통하여 이것을 넘어뜨리는데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고 옆에서 돌발적으로 습격하는 우회적으로 습격하는 경우도 있어서 마귀의 전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씀하신 여기에 다른 신들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존재인데 이것은 영물로서 하나님께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물이 영계에 있을 때 타락하여 영계에서 쫓겨난 후에 우주 안에 들어와서 직접 사람에게 역사 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 하게 하고, 또 자기 군대로 삼은 이것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역사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 하게 하는데, 마귀는 사람들의 사정과 형편을 잘 압니다. "이 사람에게는 어떤 것이 장점이며 어떤 것이 단점인지"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물욕이 강하다, 저 사람은 식욕이 강하다, 이 사람은 생의 애착욕이 강하다, 저 사람은 정욕이 강하다, 저 사람은 안일욕이 강하다." 이렇게 사람에게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을 넘어지게 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그 기회가 오면 번개같이 역사 하여 그 사람의 장점이든지 단점이든지 어떤 강한 점이든지 약한 점이든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이용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쥐가 들어 있는 구멍을 발견하면 그 쥐를 잡기 위하여 기회를 노리는데 어떤 고양이는 이틀 동안을 죽은 듯이 기회를 노리다가 기어코 쥐를 잡고야 맙니다. 이와 같이 마귀가 사람을 넘어지게 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사람 속에서 쫓겨났다고 해서 그 사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밖에서 가만히 노리고 있습니다. "저 사람의 단점은 이것이니 어떤 사람을 보내어서 어떤 말을 하면 저 사람은 그 말에 충격을 받고 자극을 받아서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고 이렇게 계획을 세워서 어떤 사람을 보냅니다. "저 사람은 반갑고 귀한 손님을 만나면 정신 없이 좋아하니 반갑고 귀한 손님을 보내서 서로 반갑다고 정신 없이 좋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도록 하자"고 이렇게 계획을 세워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그 기회가 오면 반갑고 귀한 손님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그 사람에게 듣기에 좋은 말을 해서 그 사람을 넘어지게 할 수가 있다고 하면 듣기에 좋은 말을 하게 하고 그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해서 그 사람을 넘어지게 할 수가 있다면 나쁜 말을 하게 하고 무지한 말을 해서 그 사람을 넘어지게 할 수가 있다면 무지한 말을 하게 하고 악한 말을 해서 그 사람을 넘어지게 할 수가 있다고 하면 악한 말을 하게 하고 그 사람에게 밉상을 지겨야 그 사람을 넘어지게 할 수가 있다고 하면 밉상을 지기게 하고 곱상을 지겨야 그 사람을 넘어지게 할 수가 있다고 하면 곱상을 지기게 합니다. 이렇게 마귀는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역사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이 눈을 떠서 살펴보면 자기의 상대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거기에 따른 마귀는, 거기에 따른 귀신은 상당히 많습니다. 바글바글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어떤 물건 하나를 취급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마귀가 붙어 옵니다. 반면에 성령도 함께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갑(甲)이라고 하는 사람의 가정에 가서는 성령으로 하여금 그 가정에 함께 계시도록 하여 그 가정이 구원을 이루도록 합니다. 이와 반대로 어떤 사람은 갑이라고 하는 사람의 가정에 가서 마귀로 하여금 그 가정에 함께 하도록 하여 그 가정으로 하여금 구원을 이루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 가정에 어떤 사람이 찾아오면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이것은 껍데기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그 사람이 자기 가정에 올 때 성령을 모시고 오는지 마귀를 가지고 오는지 이 면을 심사해서 자기 가정의 구원이 손해보지 않도록 기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많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믿는 사람이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별별 마귀를 별별 귀신을 가지고 옵니다.
돈 귀신을 뭉쳐서 오기도 하고, 명예귀신을 뭉쳐서 오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이간을 붙여서 원수를 맺게 하는 귀신을 뭉쳐서 오기도 하고, 허영귀신을 뭉쳐서 오기도 하고, 허욕귀신을 뭉쳐서 오기도 하고, 음행귀신을 뭉쳐서 오기도 하고, 이렇게 별별 귀신들을 데리고 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마귀를, 귀신을 뭉쳐서 가지고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친한 사람이 찾아왔는데 자세히 보니까 어떤 귀신을 뭉쳐서 왔습니다. 그때 그 사람의 말을 인정하고 받아 드리게 되면 그 사람이 뭉쳐서 가지고 온 귀신이 자기 속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속으로 기도합니다. "주님이여, 이 사람이 귀신을 뭉쳐서 내게 와서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는데, 나로 하여금 이 사람이 뭉쳐서 가지고 온 귀신을 내 속에 받아 드리지 아니하도록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조심하면 그 사람의 말에 미혹되지 아니합니다. 겉으로는 그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하여 그 사람의 말을 받아 드리는 것처럼 해도 속으로는 미혹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귀신은 말을 통해서 귀로 들어오고 눈으로 보는데서 들어오고 또 자기 속에서 자기의 요소가 움직일 때 그것을 통하여 들어오는데 마귀는, 귀신은 숫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아주 무섭고 인간보다 강합니다. 택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나 안 믿는 사람들이나 성령이 없는 사람들로서 마귀의 사람, 귀신의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도,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평신도도 마귀에게 다스림을 받을 때도 있고 성령에게 다스림을 받을 때도 있는 것인데 성령에게 다스림을 받았다고 해서 언제나 성령에게 다스림을 받는 것도 아니고 마귀에게 다스림을 받았다고 해서 언제나 마귀에게 다스림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마귀가 접했다가 금방 성령이 접하시고 성령이 접했다가 금방 마귀가 접하고 이렇게 성령과 마귀가 교체되는 것이 신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이 말 한마디 잘못하는데서 마귀의 자식이 되고 그것을 회개하는데서 즉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생각 하나, 소원하나, 뜻 하나를 잘못 가졌을 때, 말 한마디를 잘못했을 때, 성품 하나를 잘못 사용하였을 때, 행동 하나를 잘못하였을 때 자기는 마귀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강한 신이 많은데 이것을 크게 나누면 두 종류뿐입니다. 하나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주재 주권 하시는 하나님이시요, 또 하나는 사탄, 마귀, 귀신인데 이것들은 하나님의 지으신 천사들로서 타락한 것들입니다. 처음에는 이것들이 영계에서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수종(隨從)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하여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것들을 영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이 영계에서 쫓겨 나와 가지고 우주에 들어오게 되었고 우주에 들어와서 권세를 잡고 있었습니다. 공중에서 권세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시므로 이것들을 공중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이것들의 활동 무대가 좁아졌고 활동 기간이 얼마 남지 아니했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해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라도 미혹하려고 맹렬히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귀가 믿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왕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강압(强壓)하지 못하고 강제하지 못합니다. 다만 패잔병과 같이 믿는 사람을 이렇게 유혹을 하고 저렇게 유혹을 해서 자기 것이 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마귀와 합작하여 많은 죄를 지었다고 해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회개하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죄 지은 것을 깊이 반성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됩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잘못해서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마귀와 합작을 하여 죄를 많이 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형벌 받아 죽기까지 하시므로 내게 사죄를 주셨는데 내가 사죄 받은 자로 살지 못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욕되게 하는 이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이여 깊이 반성하고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이렇게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마귀는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골에 혼자 가도 어떤 때 어떤 곳에 가도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의 소유는 어떤 것인 고하니 죄가 마귀의 소유인데 우리 믿는 사람 속에 죄가 있으면 그 속에 마귀의 것이 있기 때문에 마귀가 들어오게 되는 것인데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마귀를 보고 귀신을 보고 "나가라"고 아무리 기도하고 소리를 질러도 소용없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마귀,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은 이것들의 소유로 되어 있는 죄를 없애야 합니다.
자기 속에 마귀의 것이 없으면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가 우리 믿는 사람을 미혹시켜서 죄를 짓게 하여 마귀의 것이 믿는 사람 속에 있도록 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면 마귀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본문 : 출애굽기 20장 3절 ~ 6절 ⑷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지난 시간에 우리 믿는 사람이 마귀, 귀신을 받아 드리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임을 간단하게 증거 하였는데 세 가지로 증거 하였습니다.

첫째로는 마귀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마귀를 두려워하면 벌써 마귀를 영접한 것이요, 귀신을 영접한 것이요, 하나님을 물리친 것이기 때문에 마귀가 그 사람 속에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마귀에게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귀신에게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귀신이 우리를 돌보아 주면 우리의 하는 일이 잘되겠지" 이렇게 마귀에게 귀신에게 소망을 가지면 이것들이 들어가게 됩니다.

셋째로는 마귀의 움직이는 대로 귀신의 움직이는 대로 거기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마귀의 움직이는 대로 거기에 따라서 움직이면 마귀가 즉시 들어가서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귀가 사람으로 하여금 두렵게 만들려고 하는데는 어떻게 하는고 하니 마귀는 세상 왕이요, 세상은 마귀 것이라, 마귀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이용합니다. 그리하여 사람을 통해서 두렵게 만들기도 하고, 돈을 통해서 두렵게 만들기도 하고, 부모를 통해서 두렵게 만들기도 하고, 남편을 통해서 두렵게 만들기도 하고, 상관을 통해서 두렵게 만들기도 하고, 질병을 통해서 두렵게 만들기도 하고, 목숨을 가지고 두렵게 만들기도 하고, 사업을 가지고 두렵게 만들기도 하고, 별별 것으로 두렵게 만듭니다.

그런데 마귀가 하나님 외에 어떤 것을 가지고 두렵게 하면 사람은 다 두려움을 가지는데 두려움을 가지는 도수가 다릅니다. 사람마다 같은 것이 아니고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두려워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두려워하고, 이렇게 두려워하는 그 정도가 사람마다 각각 다른데 마지막에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을 움직여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사라의 딸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예수님을 바로 믿어서 구원을 잘 이루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인데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보면 하나님 외에 두려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로 보든지 세상의 통계로 보든지 세상법으로 보든지 두려워할 만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덕을 끼치기 위해서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지 속에는 하나님 한 분만이 두려운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잃지 않고 사람에게 덕을 끼쳐서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지 않고 그 사람을 복음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지 속에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두려운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께 거리끼는 것이라면 전체는 두려움뿐이지만 하나님 한 분께 대하여 거리낌이 없다고 하면 세상 것들이 한데 뭉쳐서 달려든다고 해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습니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외에 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거기에는 마귀가 붙어 있습니다. 귀신이 붙어 있습니다. 이렇게 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것에게 끌려가게 됩니다. 사람은 좋은 것에게도 끌리지만 두려운 것에게도 끌립니다. 좋은 것에게 끌리는 것과 두려운 것에게 끌리는 것,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강한 고하니 두려운 것에게 끌리는 것이 강합니다. 두려움의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에게로 끌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두려운 것 중에서도 덜 두려운 것이 있고, 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고 제일 두려운 것이 있으면 사람은 제일 두려운 것에게로 끌려가고 그것의 종이 되고 마는 것인데 하나님을 제일 두려워하고 하나님 외에는 두려운 것이 없다고 하면 하나님 외에 어떤 것에게도 온전히 자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한 분만이 두렵기 때문에 하나님께 거리끼지 아니하려고 하나님과 대립되지 아니하려고 하나님과 멀어지지 아니하려고 노력하고 그 다음에는 인간 구원에 힘을 씁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을 두려워할 때는 반드시 거기는 마귀가 붙어서 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을 두려워할 때는 반드시 거기는 귀신이 붙어서 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직장이 떨어지겠다. 내가 이렇게 하면 사업이 절단 나겠다. 내가 이렇게 하면 무엇 무엇이 절단 나겠다."라고 하면서, 하나님보다 이런 것, 저런 것들 더 두려워하면 거기에 벌써 마귀가 붙어서 귀신이 붙어서 범죄라는 화살을 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두려움을 받아 드리면 그 다음부터는 자기의 하는 일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올 때, 성경 말씀을 가지고 두려움의 줄을 끊고 영감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과 해결을 지우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되었으면 이런 것이 두려움을 주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권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마음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이렇게 확정하면 그 두려움을 통해서 들어오는 마귀를 막을 수가 있습니다.

또 소망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소망하면 반드시 거기에는 귀신이 붙어서 옵니다. 마귀가 붙어서 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것은 얼마든지 소망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주셨으니까 아내가 자기 남편을 소망할 수가 있고, 하나님께서 부모를 주셨으니까 자녀들이 자기 부모를 소망할 수가 있고, 하나님께서 상관을 주셨으니까 부하들이 자기 상관을 소망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직장을 주셨으니까 자기 직장을 소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거슬리면서 이런 것들을 소망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어겨도 이것만은 없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계명은 어겨도 이것만은 가져야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가면서 소망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하면 거기는 벌써 마귀가 접하여 있습니다. 귀신이 접하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소망하는 것을 밝히 분석하고 깨달아서 "이것은 아무리 많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없게 하시면 당장에 없어진다. 이것은 하나도 없어도 하나님께서 있게 하시면 당장에 있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소망할 수가 없다."고 단정을 지으면 소망을 통해서 들어오는 귀신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소망을 통해서 들어오는 마귀를 막을 수가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 믿는 사람 속에 있는 요소를 잘 알기 때문에 이 요소에 충격을 주어서 넘어지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믿는 사람이 친한 사람과 재미있게 노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가면서 재미있게 노는 것은 나쁜 것이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거슬리지 않고 합당하게 노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믿는 사람이 친한 사람과 재미있게 노는 것의 동기가 죄 되지 않고, 목적이 죄 되지 않고, 방편이 죄 되지 않지만, 마귀가 친한 사람을 계속적으로 보내어서 재미있게 노는 도수를 점점 높이도록 만드는데 이렇게 도수를 점점 높이도록 만들어서 재미있게 노는데 전부를 기울이게 하므로 조금씩 삐뚤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어디까지 탈선되게 하고 탈선되면 탈선된 것을 통하여 그 사람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3절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다른 신(神)들을 네 안에 거처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신 이 말씀이 제일 중요한 말씀인데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만이 자기 안에 계시도록 해야 하고, 이 하나님과 교제해야 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하고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신을 자기 안에 용납하고 거처하도록 하면 그 다음부터 자기의 모든 생활이 안 믿는 사람과 같은 생활이 됩니다.

그런데 제 1계명에서 말씀하신 신은 제 2계명에서 말씀하신 우상이라고 하는 신과는 다른 것입니다. 마귀가 그 사람의 만든 것에게 접해서 작용하는 것을 가리켜서 제 2계명에 '우상'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만든 것에게 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만드신 우주 만물 그대로의 것들에게 접하여 작용하는 것을 가리켜서 제 1계명에 '다른 신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물귀신이라, 용왕 신이라, 바람귀신이라, 달 귀신이라, 해 귀신이라, 북두칠성귀신이라, 무슨 귀신이라."고 말하는데 그것들은 다른 신들이 우주 만물에게 접해서 그것들을 통하여 역사 하는 것인데, 마귀는 처음에는 천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는데 영계에서 쫓겨나서 우주에 들어오게 되었고 우주에 들어온 후에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키고 아담이 가지고 있던 우주 통치권을 빼앗아 가졌기 때문에 우주의 왕이요, 우주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주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보존되고 운행되고 있지만 이용하기는 마귀가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이 모든 것들을 이용하여 우리 믿는 사람들을 넘어뜨리려고 삼킬 자를 찾는 우는 사자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날뛰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가서 어떻게 하면 삼키는 수입이 있는지." 이렇게 대상을 찾고 기회를 노리다가 기회가 잡히면 번개같이 달려듭니다.
그런데 마귀는 두 가지로 역사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창조하신 우주 만물, 그대로의 것을 붙들고 이용해서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역사를 하고 또 하나는 사람의 만든 그것에게 접해서 그것을 이용하여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역사를 합니다.

그런데 깊은 산 속에 있는 절에 가면 금속이나 나무나 돌로서 만든 부처들이 있는데 이것은 제 1계명에게 속한 귀신이 아니고 제 2계명에 속한 귀신인 것입니다.
사람의 만든 것은 사업도 있고 가정도 있고 문화도 있고 직장도 있고 집도 있고 기술도 있고 지식도 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마귀가 붙습니다. 귀신이 붙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붙으면, 귀신이 붙으면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인하여 살지 못하고 마귀, 귀신으로 인하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지금도 불신자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신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신은 제 1계명에 속한 신도 있고 제 2계명에 속한 신도 있는데 사람이 어떤 회사를 경영하면 거기에 마귀, 귀신이 붙으려고 애를 씁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가, 귀신이 그 회사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대하여 삐뚤어진 일만 하도록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회사에 들어가려고 첩첩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회사가 마귀에게 귀신에게 접했는지 접하지 아니했는지 무엇을 보고서 알 수가 있는가?

첫째로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 회사의 경영이 잘못될까"하여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절하는 두려움, 숭배적 두려움, 다시 말하면 "자기 회사의 모든 경영이 잘못될까"하여 두려워하는 것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 이것은 좋은 것이 아니고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거리껴도 회사에게 거리끼면 안 된다. 하나님과는 멀어져도 회사와는 멀어지면 안 된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아니해도 되지만 회사가 무너지면 안 된다."고 이렇게 회사에 대한 두려움, 이것은 숭배적인 두려움인데 숭배적인 두려움 곧 하나님보다도 더 두려워하면 그 회사는 벌써 마귀의 회사, 귀신의 회사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회사를 경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회사를 더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해도 회사의 비위를 맞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대적하는 일이 있어도 회사의 형편에 맞추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해도 회사의 형편에 따라서 사는 사람이 됩니다.

둘째로는 소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보다 자기 회사를 더 소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여도 이 회사만 있으면 된다, 하나님만이 도와주지 아니해도 이 회사만 있으면 된다."고 이렇게 하나님보다 회사를 더 소망하면 이 회사에는 벌써 마귀가, 귀신이 붙어서 있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주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자기의 만든 것을 섬기는 것인데 곧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이 세상 것을 소망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좋은 것입니다. "내가 이 사업을 얼마 동안 열심히 경영하면, 사업이 어느 정도 크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직장에서 열심히 근무하면 몇 해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다."라고 이렇게 소망을 가지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 말하는 "소망"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거리끼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서라도 이것만은 반드시 이루어야 하겠다. 가져야 하겠다."라고 하는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현실, 어떤 분위기를 만드시는고 하니, "자기의 소망을 이루려고 하면, 하나님께 거리끼게 되고,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려고 하면 자기의 소망하는 것을 던져야 하는" 이런 현실을 만드시는데, 그때에 "마귀가 붙은 소망인지, 마귀가 붙지 않은 소망인지" 이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만났을 때, 자기가 무엇을 소망하고, 무엇에게 애착을 가진 것이지만 하나님께 거리끼고,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야 한다고 하면, 소망하고 애착하던 것을 당장에 던져 버린다고 하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거리끼고, 하나님의 법도를 어길 바에야 나의 소망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나의 애착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나"라고 하면서, 당장에 던져 버린다고 하면 이것은 마귀가 붙지 아니한 소망이요, 우상적인 소망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서라도 이것은 이루어야 하겠다. 이것은 가져야 하겠다. 주일을 범하는 일이 있더라도 이것은 이루어야 하겠다"고 하는 이것은 마귀가 붙은 소망인 것입니다. 제 2계명에 속한 우상적인 소망인 것입니다.

셋째로는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피동으로 행동하지 아니하고 자기나,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물이나, 한 말로 하면 피조물에게 피동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어떤 피조물을 하나님보다도 더 두려워하는 이 두려움을 버려야 합니다. 마귀가 온갖 종류의 두려움을 가지고 와서 우리 믿는 사람을 두렵게 할 때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게 대해서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마귀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어떤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소망하는 이 소망을 버려야 합니다. 마귀가 온갖 종류의 소망들을 가지고 와서 우리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소망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소망하게 할 때, 하나님만 소망하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소망하지 아니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마귀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 안됩니다. 자기 속에 죄가 있으면 정리해야 합니다. 죄는 마귀의 것이기 때문에 죄를 정리하면 마귀가 쫓겨나게 되고 마귀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가 사람 속에서 5년, 10년, 20년 이렇게 주장하고 역사 했을지라도 중생 된 사람은 마귀를 배척하면 당장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죄짓는 마음을 당장에 돌이켜서 회개하고 지은 죄를 주님께 고해서 용서함을 받으면, 마귀는 즉시 쫓겨나야 합니다. 마귀는 믿는 사람에게서 왕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마귀는 하나님께서 이미 지어 놓으신 자연 만물들을 이용하여, 믿는 사람들 속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제 1계명에 속한 마귀요, 또 사람들이 인공을 가해서 만들어 놓은 것, 거기에 접해서 그것들을 통하여 우리 믿는 사람 속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제 2계명에 속한 마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우리 믿는 사람 속에 들어오기 위해서, 믿는 사람과 싸움을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전법은 무엇인고 하니, 세 가지로서 하나는 두려움이라고 하는 전법이요, 또 하나는 소망이라고 하는 전법이요, 또 하나는 행동이라고 하는 전법입니다. 마귀는 이 세 가지 전법을 가지고 믿는 사람과 싸워서 믿는 사람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을 점령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이 마귀를 쫓아내는 방법도 세 가지인데, 하나는 피조물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제일로 두려워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피조물을 소망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제일로 소망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피동 되지 않고 하나님께 피동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이 세 가지를 알면 마귀를 방어할 수 있고, 자기 안에 있는 마귀를 쫓아낼 수가 있고 이길 수가 있습니다.









날짜 : 79년 9월 3일 월요일 새벽
본문 : 출애굽기 20장 3절 ~ 6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께 지음 받은 천사들 중에서 하나님 앞에 범죄 하므로 타락한 천사들이 사탄이 되고, 또 사탄의 부하인 마귀가 되고, 모든 잡신이 된 것인데, 이것들의 숫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하나님께 쫓겨남을 받아서 영계에서 물질계인 우주로 내려오게 되었고 우주에 내려온 후에는 영계는 범죄나 타락이 없는 세계로 완전히 창조된 것인데, 하늘나라는 범죄나 타락이 전혀 없는 세계로 창조가 완료된 세계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주에 쫓겨서 내려온 사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주에도 있을 수가 없도록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는 패잔병이 되어서, 믿는 사람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그때는 무저갱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이 땅위에는 천년왕국이 시작되는데 그때는 마귀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착하여 범죄 하는 일이 없고 짐승들도 맹수로서 악하거나 사나운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자가 풀을 먹고, 사자와 독사와 어린아이가 한 자리서 같이 놀게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짐승들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본질과 본성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하신 원형대로 살지 않고 변질되어서 살게 된 것은 순전히 다른 신들, 곧 타락한 천사인 마귀로 인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천년왕국 시대에는 마귀가 갇히고 없기 때문에 그때의 사람은 성자 성녀와 같이 착하게 되고 짐승들도 착하게 되지만 천년왕국이 끝이 나면 하나님께서 무저갱에 가두어 두었던 수많은 마귀, 귀신들을 내어놓으십니다.

그러면 이것들이 각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유혹하고 충격 하여서 죄를 짓도록 만듭니다. 그리하여 마귀의 유혹을 받은 사람들이 마귀와 함께 부활한 성도들을 대적합니다. 무엇 때문에 대적하는가? 예수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을 빼앗겼고 자기네들은 갇혔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한 성도들은 마귀와 마귀의 유혹을 받은 사람이 조금도 해할 수 없는 존재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그들의 해침을 받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들을 전부 멸하고 마귀와 마귀 편에서 일하던 자들이 지옥 유황불에 가서 영원히 형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으로서 지상에서는 혈육을 가진 인간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년왕국 시대에 살아서 남아 있는 사람은 구원받은 성도가 아닙니다. 성도들은 전부 부활하고 하나님께서 번식 인종으로 남겨 두신 인간으로서 천국 구원이 없는 사람이요, 지옥에 갈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번식 인종으로 남은 이 사람들이 천년왕국 시대에 자녀를 출산하는데 한 사람이 굉장히 많은 자녀를 출산하게 되고 수명이 천년이나 되는데, 백세에 죽으면 "어린 아이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교파에서는 "믿는 사람은 천년왕국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하면 "첫째 부활은 영광스럽지만 그것은 지났고 이제 남은 것은 땅 부활뿐인데 땅 부활은 천년왕국이다. 그리고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말씀하신 144,000명 뿐이요, 이 숫자는 다 찼기 때문에 그 외에 사람은 참여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천년왕국에서 고생 없이 평안하게 자녀 낳고 산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 중에서 육체의 소망을 가진 사람, 땅에 소망을 가진 사람, 신령한 면에 소망을 가지지 못한 사람, 하나님의 불택자, 이런 사람들이 미혹을 받아서 거기로 기울어지는데 옛날 전도관이나 여호와의 증인에서 천년왕국 구원을 말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에는 수많은 다른 신들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은, 수많은 다른 신들이 사람들을 미혹하여 멸망시켜 놓은 데서 인간을 구출하기 위함이요, 다른 신들이 인간을 멸망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요, 다른 신들을 몰아내기 위함인데, 다른 신들, 곧 마귀가, 귀신이 사람들을 해칠 때는 직접적으로 해치는 것도 있고 간접적으로 해치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간접적으로 해치는데도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신, 그대로의 것을 통하여 해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을 통하여 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자연 만물"이라고 하는데, 인간이 가공하지 않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의 것에게 마귀가 붙은 것, 귀신이 붙은 것은 '우상'이라고 하지 않고 '다른 신'이라고 하는데 제 1계명에 속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큰 바위를 보고, 아름드리 큰 나무를 보고, 태양을 보고, 바다를 보고, 강을 보고, 거기에 "신이 있다."고 하면서 음식을 해 놓고서 빌고, 엎드려 절을 합니다. 이것은 제 1계명에 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돌을 아름답게 깍아서 거기에 엎드려 절을 하는 것, 흙이나 쇠로 무엇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엎드려 절하는 것, 이것은 제 2계명에 속한 것인데 우리 믿는 사람은 제 1계명에 속한 신(神)도, 제 2계명에 속한 신(神)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3절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하신 말씀은 '다른 신들을 네게 거처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신 말씀인데 우리는 제 1계명이나 제 2계명에 속한 신을 우리 안에 거처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 1계명에 속한 신을 용납하는 것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요, 제 2계명에 속한 신을 용납하는 것도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5절 중간에 보면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고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은 어떤 것인 고하니, 인간이 만들어 놓은 거기에 붙은 마귀, 귀신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요, 또 인간들이 가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하신 그대로 있는 자연 만물에게 붙은 마귀, 귀신을 용납하고 섬기는 것도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죄를 갚되 다시 말하면 그 사람에게 삐뚤어지게 행한 것에 그 값을 치르되, 자손의 삼사 대까지 보응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냥 계명을 지키는 자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도 하나님을 사랑치 않고 계명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기를 끌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가 있고, 사업을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가 있고 직장을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가 있고, 결혼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 사기 행위를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서 환심을 사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가 있는데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경건은 아닙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인데, 경건이 아닌 것은 언제든지 변동되기 마련인 것입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은 돈에 변동이 생기면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는 것에도 변동이 생기고, 자기 중심으로 하나님 계명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무슨 변동이 오게 되면 계명대로 순종하는 것에 변동이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변동하시기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함에 있어서 조금도 변동이 없습니다. 자기에게 어떤 변동이 와도, 자기 사업에 손해가 와도, 자기 처세에 손해가 와도 상관하지 않고 변동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외에 그 무엇을 중심하고 위주로 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변동될는지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람의 순종을 완전한 순종으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귀신은 숫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마가복음 5장 1절 이하에 보면, 군대귀신이 어떤 사람에게 붙었는데 그 귀신들이 예수님의 명령으로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2천 마리나 되는 돼지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그 귀신들이 돼지 한 마리에게 귀신 하나씩 들어갔는지, 돼지 한 마리에게 둘씩 들어갔는지 돼지 한 마리에게 귀신 열씩 들어갔는지, 여기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돼지 한 마리에게 귀신이 하나씩 들어갔으면 귀신이 2천이요, 귀신이 열씩 들어갔으면 귀신이 2만이나 될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귀신의 숫자가 많은 것은 틀림이 없는데 귀신들이 돼지들에게 들어가니까 정신이 확 변해져서, 물에 뛰어든 것입니다. 돼지가 본능으로 사는 짐승이지만 물에 들어가면 죽는 줄 알기 때문에 다른 때 같으면 사람이 물에다가 집어넣으려고 하면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도망을 칠 것인데 귀신이 들어가니까 스스로 물에 뛰어 들어가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구별할 것 없이 귀신이 그 속에 들어가면 자기에게 정상적인 생명의 길을 버리고 망하는 길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2천 마리나 되는 돼지에게 들어간 수많은 귀신들은 군대 귀신들린 한 사람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서 나온 귀신들이 2천 마리나 되는 돼지에게 나누어 들어간 것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 수많은 귀신들이 붙어 있고 포위하여 있는데,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가니까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집을 두고 시체를 묻어 놓은 무덤에 가서 시체와 함께 지내고 돌로 자기 몸을 쳐서 상하게 하는데, 이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비정상적인데, 이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믿는 사람 속에 귀신이 들어오면, 자기의 인격과 행위를 병들게 합니다. 그리하여 생각도, 소원도, 계획도, 비판도, 평가도, 행동도 거꾸로 되게 하고, 오해하고, 곡해(曲解)하고, 잘못 생각하고, 잘못 소원하고, 잘못 보고, 잘못 듣고, 잘못 말하고, 잘못 행동하고, 망할 짓만 하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잘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귀신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면 당장에 변하여 집니다.

그런데 귀신이 어디로 들어오는고 하니 남의 말을 들을 때 귀로 들어오고, 무엇을 볼 때 눈으로 들어오고, 무엇을 접촉할 때 감각으로 들어옵니다. 다윗은 이 귀신에게 끌려서 실패한 일이 있었는데 이 귀신이 다윗에게 들어온 것은 다윗의 눈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르막을 올라가다가 나뭇가지에게 눈을 맞았습니다. 그러니까 귀신이 이 사람을 따라 다니다가 이 사람 속에 분한 마음을 일으키면서 "지금 화가 많이 나겠지, 나뭇가지를 당장에 끊어 버려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나뭇가지를 거머쥐고 끊어 버리려고 하다가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봅니다. "나뭇가지에게 눈을 맞은 것은, 나뭇가지에게 잘못됨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게 있다. 가만히 서서 있는 나무에게 무슨 잘못이 있나, 이 길을 나만 지나다니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그 사람들은 괜찮은데 내가 맞은 것은 나무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게 잘못이 있다. 그러니까 화가 난다고 나뭇가지를 끊으면 이것은 감정으로 악으로 하는 것이지 정당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나뭇가지를 놓으면 귀신이 달아납니다.

그런데 그때에 화가 난다고 감정이 난다고 나뭇가지를 끊어 버리면 이것은 악으로 끊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통해서 귀신이 들어오고 귀신이 들어오면 귀신이 그 사람을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접촉하는 것을 통해서 귀신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때는 자기 속에 있는 요소가 다른 사물들을 접촉할 때 그 요소가 발동하는 것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그런데 귀신은 굉장히 재치가 있고, 빠르고, 수단이 좋고, 믿는 사람을 삼키려고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보면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으니 너는 깨어서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믿는 사람은 조심 있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안 믿을 때는 순전히 귀신에게 끌려서 자멸하는 행동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절 이하에 보면 '너희의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악령을 말합니다. 이것이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곧 안 믿는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데, 안 믿을 때는 귀신이 자기 속에 들어와서 역사 하였고, 자기는 귀신을 따라서 자멸 행위를 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귀신이 이렇게 힘이 강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김일성이가 아무리 억세다고 해도, 등소평이가 아무리 뱃심이 좋다고 해도, 그들은 귀신의 시키는 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귀신이 그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신론을 주장하고, 유물주의 사상을 주장하지만 귀신이 그들을 보고 "무신론을 주장해라, 유물주의를 주장해라."고 시키니까 그대로 순종을 하면서, 자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신은 눈으로, 귀로, 접촉으로, 어떤 요소의 발동으로 들어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잘못했을 때나, 잘했을 때, 그 틈을 타고 들어오고 자신이 변동되면 변동되는 그 틈을 타고서 들어옵니다. 이렇게 마귀가, 귀신이 우리 믿는 사람 속에 들어오려고 틈을 찾다가 틈이 생기면 지체하지 않고 들어와서 삼키려고 하는데 우리 믿는 사람이 좋은 것을 보아도, 나쁜 것을 보아도, 거기에 귀신이 접해 있고 그것을 통해서 귀신이 들어오니까 언제나 조심해야 하고,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마귀를, 귀신을 대적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쉬지 않고 역사하고 있는데 사람은 쉬는 시간이 있고 노는 시간이 있지만 마귀는 쉬는 시간, 노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근신하라, 항상 깨어 있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날짜 : 79년 9월 4일 화요일 새벽
본문 : 출애굽기 20장 3절 ~ 6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타락한 천사들이 마귀인데 이 마귀 가운데서 머리가 되는 자를 '사탄이라, 악령이라'하고 거기에 속한 자를 '마귀라, 귀신이라, 악신이라'고 표시하였는데 이것들의 숫자가 심히 많아서 한 사람에게 많은 귀신이 접하여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 중에는 많은 귀신들에게 포위되어서 싸우는 사람도 있고 마귀가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 독립적으로는 살수가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해도 그 사람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에게 통치를 받든지, 그렇지 않으면 악령에게 통치를 받든지 어느 하나에게 통치를 받고 있지 자기 단독으로 있는 일은 없습니다.

이렇게 마귀의 숫자가 심히 많고, 그 실력이 하나님 다음으로 강해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라고 해도 그 사람이 마지막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까지 따라 다니면서 미혹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마귀는 그 사람이 천국 문에 오른발을 드려다 놓고 왼발이 남아 있으면 왼발이 천국 문에 들어가서 천국 문을 닫을 때까지 놓지 않고 붙들고 미혹한다."라고 말했는데 이 사람은 경험에서 그렇게 말한 것으로서 마귀는 이렇게 끈질기게 역사 합니다.

그런데 전 인류를 대표한 첫 아담이 마귀에게 패전하였기 때문에 마귀가 전 인류를 완전히 점령했고 마귀는 전 인류를 자기 마음대로 주장하고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후에는 마귀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대해서는 왕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대표하신 예수님으로 더불어 투쟁하여 예수님께 패전하고 예수님은 마귀를 이겼기 때문에 마귀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는 미혹만 하지 왕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최종까지 권세를 부리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가 마귀를 대항하려고 하면 대항할 수가 있고 마귀의 통치를 벗어나려고 하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 그런 자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택함을 받지 못한 불택자는 자유를 가지지 못하고, 영영히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서 해방을 받으려면 원죄와 본죄를 벗어나야 하는데, 예수님의 대속 공로가 아니면 원죄와 본죄를 벗을 수가 없기 때문에 불택자로서는 마귀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택함을 받은 사람은 마귀를 물리칠 수가 있고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에 3절에 보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등급(等級)대로 역사 합니다. 그 사람이 수양이 많으면 그 사람을 감당할 만한 마귀가 오고, 그 사람이 강하면 강한 것이 오고, 그 사람이 약하면 약한 것이 오고, 그 사람이 지능이 낮다고 하면 낮은 것이 오고, 그 사람이 지능적이라고 하면 지능이 높은 것이 옵니다. 그리하여 사람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한 분이신데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이 성령은 모든 사람의 정도에 따라서 역사 하십니다. 그 사람의 정도에 따라서 성령의 감동이 역사 하십니다. 그 사람이 어린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에게 합당하게 영감이 역사를 하시고 그 사람이 장성한 사람이라고 하면 영감이 그 사람에게 합당하게 역사 하십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장성해진다고 해도, 영감 역사가 남김없이 역사 할 수 있을 만큼 그 정도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무한하신 분이시요,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회개하고 믿음에서 성화가 된다고 해도, 성령의 역사를 남김없이 받을 수 있는 그 정도에까지 성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성령과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개별적으로 자기의 재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점점 장성해질수록 마귀도 교체해서 더 높고 장성한 마귀가 오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도가 한자나 자라면 마귀도 한자나 높은 것이 그 사람에게 붙는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사람을 접촉할 때, 그 사람이 불택자이든지 택자라도 아직까지 안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반드시 그 사람에게 마귀, 귀신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접촉하는 사람이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에게는 성령과 마귀가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가 성령으로 하여금 그 사람을 더 점령해서 성령의 사람으로 더욱더 만들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바쁜 일이나, 한가한 일이나, 어떤 물건이나, 거기에는 성령과 마귀가 함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떤 사람을 접촉하든지, 어떤 사건을 접촉하든지, 어떤 물건을 접촉하든지, 거기서 사람과 마귀, 사람과 성령, 사건과 마귀, 사건과 성령, 물건과 마귀, 물건과 성령 이렇게 접촉할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과 사람, 성령과 사건, 성령과 물건을 접촉하여 영접한다면 그것으로 인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고 그 결과가 좋아지고, 이와 반대로 마귀와 사람, 마귀와 사건, 마귀와 물건을 접촉하고 영접한다면 우리에게는 이것들을 접촉하기 전보다 더욱더 불리하게 되어서 살아 있는 그 기능들이 죽게 되는데 이것이 '둘째 사망의 해'인 것입니다. 우리는 일이나, 물건이나, 사람을 상대하고 접촉할 때 거기는 언제든지 성령과 마귀와 항상 함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 다음으로 강한 것인데 안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잘난 사람이든지, 못난 사람이든지, 유식한 사람이든지, 무식한 사람이든지, 선하다고 하는 사람이든지, 악하다고 하는 사람이든지, 그 전부는 마귀의 종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속을 입어서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이 마귀가 근방에도 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장 18절에 보면,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지키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銘心)하고 어떤 사람을 접촉하든지, 사건을 접촉하든지, 물건을 접촉하든지, 거기는 반드시 성령이 함께 계시고 마귀도 함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탄, 마귀, 귀신을 한 말로 말하면 "악령"인데, 이 악령은 영물로서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악령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사람도 접촉하고, 안 믿는 사람도 접촉하고, 좋은 일도 접촉하고, 나쁜 일도 접촉하고, 좋은 물건도 접촉하고, 나쁜 물건도 접촉하는데 거기는 언제든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접해서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하면 눈에 보여지는 그것만 상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상대하지 않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는 넘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접촉하는 거기는 신이 접해서 있다고 하는 이 사실을 생각하고 우리가 접촉하는 이것으로 인하여 성령으로 더욱더 충만하여지는지, 악령으로 더욱더 충만하여지는지 이것을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사소한 것이요, 보이는 것 이면에 보이지 않는 영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에 잘되고 잘못되는 것보다, 그 안에 있는 영에게 대하여 잘되고 잘못되는 것을 더욱더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에 손해가 된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이면에 악령과의 인연이 끊어지고 성령과의 인연이 맺어지고 더욱더 견고하게 된다고 하면, 이는 큰 유익을 보는 것이요, 또 눈에 보이는 것에 성공이 되고 유익이 된다고 해도 악령과의 인연이 끊어지고 성령과의 인연이 맺어진다고 하면, 눈에 보이는 것의 수입보다 천 배나, 만 배나 더 큰 성공, 더 큰 수입, 더 큰 소득을 가지는 것입니다.

또,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리 잘된다고 할지라도 그 이면에 성령을 배척하고 악령을 영접한다면 그 다음부터는 이것을 회개하여 던져 버리기 전에는 언제든지 악령이 자기를 주장하고 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지는데 우리 인간에게는 유한한 것이지만 자유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악령을 영접하고 성령을 배척하면 성령은 우리에게서 물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악령을 영접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악령이 우리의 언행심사(言行心事)를 주장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삐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도, 소원도, 계획도, 비판도, 평가도, 행동도, 경영도 삐뚤어지게 되는 것인데 삐뚤어진 것은 죄요, 죄 값은 사망으로서, 이렇게 되면 당장에 망하고 죽기도 하고, 당장에는 망하지 않고 죽지 않아도 '죄가 장성하면 사망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죄가 한 건, 두 건, 하루 이틀 모이면 마지막에는 사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의 손해보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의 손해를 더 두려워해야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의 성공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성공을 더 크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는 성령이 계시고, 또 악령이 있습니다. 진리가 있고 불법이 있습니다. 악령은 불법을 가지고 활동하고 성령은 진리를 가지고 역사 하시기 때문에 진리가 있는데는 성령이 계시고 불법이 있는데는 악령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람을 접촉하든지 어떤 사건을 접촉하든지 어떤 물건을 접촉하든지, 좋은 것을 접촉하든지, 나쁜 것을 접촉하든지, 한가할 때든지 바쁠 때든지, 큰 것이든지, 작은 것이든지, 많은 것이든지, 적은 것이든지 거기는 악령이 접하여 있고, 성령이 접하여 계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리 의인이라고 해도 악령은 그 사람에게서 떠나지 않고 언제든지 곁에 있고 성령도 그러한데, 악령이 그 사람에게서 언제 손을 떼는 고하니 그 사람의 호흡이 끊어져서 생명이 완전히 끊어지는 그 시간에 손을 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그 사람을 악령이 없는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가정에 좋은 일이 오면 "좋은 것이 왔다."고 무조건 좋아하거나 덤비면 안됩니다. "그 좋은 일과 악령이 함께 온 것인지, 그 좋은 일과 성령이 함께 오신 것인지" 이것을 심사해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 돈 뭉치가 오면, 돈 뭉치가 왔다고 무조건 받아 드릴 것 아닙니다. 돈 뭉치와 함께 악령도 오고, 성령도 함께 오시기 때문에 돈 뭉치 그것이야 문제가 되지 않지만 돈 뭉치를 통해서 악령을 영접하게 되든지, 성령을 영접하게 되든지,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하나를 하게 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또 사람이 찾아 올 때도, 그 사람이 혼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그 사람과 악령이 함께 오든지, 성령이 함께 오시든지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통하여 자기 집에 악령을 받아 드리든지 성령을 받아 드리든지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를 받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깨어 있어라'고 하신 말씀이 많이 있는데 이 말씀은 어떤 말씀 인고하니 "사람이 올 때나, 사건이 올 때나, 물건이 올 때는 반드시 악령과 성령이 함께 오기 때문에 거기서 심사를 잘하고 비판을 잘해서 악령을 물리치고 성령을 영접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심사(審査)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서 상대합니다. 그리고 어떤 집에 가정주부는 아침을 먹은 후에는 이웃집에 가서 한바탕 지글거리고 또 점심을 먹은 후에도 이웃집에 가서 한바탕 지글거리고 또 몇 군데 전화하고 이렇게 하는데 이것은 순전히 악령 역사요, 성령 역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여기에 대하여 심각하게 심사하고 비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 집에 반가운 분이 찾아오셨을 때, 반가운 분이라고 무조건 영접할 것이 아니라, 그분이 악령으로 말미암아서 오신 것인지,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오신 것인지, 이것을 심사하고 비판해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의 하는 말을, 그 사람의 하는 행동을, 그 사람의 움직이는 태도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펴서 그 사람이 악령으로 인해서 온 것이라고 하면, 거기서 대항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과 한 자리에 있어도, 그 사람을 만나지 아니한 것처럼, 그 사람에게 따라서 생각하지 말고, 말하지 말고, 행동하지 말고, 그 사람과 상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악령은 물러갑니다. 대항하면 대항할수록 악령은 강하게 역사 합니다.

예를 들면 "옴"은 점염성 피부병으로서 굉장히 근지럽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근지러워도 가만히 두면 며칠 안 가서 저절로 없어집니다. 그러나 긁으면 안됩니다. 옴병은 근지럽다고 해서 긁으면 더욱더 심하여 집니다. 옴병은 긁으면 긁을수록 심해집니다.
이와 같이 악령이 왔을 때는 아예(애초부터) 상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령이 어떤 일을 통하여 왔다고 하면 그 일을 만나지 않은 것처럼 해야 하고, 악령이 어떤 물건을 통해서 왔다고 하면, 그 물건을 보지 않은 것처럼 해야 합니다. 한 자리에 같이 있지만 보지 않은 것처럼 해야 하고 듣지 않은 것처럼 해야 하고 접촉하지 않은 것처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악령은 그 사람을, 그 물건을 가지고 다른 데로 가 버립니다.













날짜 : 79년 9월 5일 수요일 새벽
본문 : 출애굽기 20장 3절 ~ 6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사탄, 마귀, 귀신을 다른 말로 표시하면 악령이라고 말하는데, 악령은 처음에는 영계에서 빛의 일꾼으로 일하던 천사이었는데, 이것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천사들은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피조물의 위치에서 빛의 사역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가려고 하다가 하나님께 정죄를 받아서 빛의 일꾼으로 일하던 본 지위에서, 빛의 일꾼으로 일하지 못하고 어두움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러면 '어두움으로 쫓겨났다'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나님과의 연결을 가진 것이 빛이요,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연결이 없는 것이 어두움인데 "하나님과 연결이 없는, 자기 단독으로 움직이는 그런 위치로 쫓겨났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악령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말하면, 악령이 된 천사가 악령이 되기 전, 천사로 있을 때는 영계 중에도 광명한 곳에 있었는데 타락하여 정죄 받은 후에는 어두운 영계로 쫓겨났고 여기서 또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므로 영계에서 완전히 쫓겨나서, 물질계인 이 우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 우주에 들어온 악령이 무슨 일을 했는고 하니, 지구에 있는 에덴 동산에 와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미혹시켜서 타락하므로 사망하도록 하는 이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악령이 물질계인 이 우주에서 쫓겨나게 되면, 마지막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고 하니, '무저갱'이라고 하는 유황불 구렁텅이로 가야 하는데, 그때는 자기 부하로 이용한 모든 사람들을 인솔하고 유황불 구렁텅인 지옥으로 가서, 영원한 사망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사망이라고 하면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망이라는 말은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말하는데 사망에는 알맹이와 껍데기가 있습니다. 사망의 알맹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요, 사망의 껍데기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못하고 내일보다 모레가 더 못하고 금년보다 내년이 더 못하고 젊을 때보다 늙을 때가 더 못하고 늙을 때보다 죽을 때가 더 못하고 죽을 때보다 부활할 때가 더욱더 못하고 부활 때 보다 심판 때가 더 못하고 심판 때보다 영원히 살아갈수록 못해지는 것을 가리켜서 사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망이라는 것, 이것 하나만 바로 알아도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사망의 알맹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인데 아무리 무성한 나무라고 해도 그 둥치가 뿌리에서 끊어지면 차차 시들어서 마르고 죽어 가는 것처럼,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피조물이든지 하나님께 끊어지면 하루가 지나가면 그만큼 불리하게 되고 한 달이 지나가면 그만큼 불리하게 되고 1년이 지나가면 그만큼 불리하게 되고 10년이 지나가면 그만큼 불리하게 되고 100년이 지나가면 그만큼 불리하게 되고 1000년이 지나가면 그만큼 불리하게 되고, 이렇게 세월이 지나갈수록 불리하게 되는 것을 사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안 믿을 때나 지금도 안 믿는 사람들을 보고 "죽었다, 죽은 자들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오랫동안 살려고 온갖 면으로 투자하고 애를 쓰는데 아무런 효험도 없이 점점 늙어지고 쇠약해지고 마지막에는 흙 속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온갖 면으로 투자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노력하는데도 점점 불리하게 되어 마지막에는 흙 속인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죽었다, 죽은 자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영원한 생명의 알맹이는 하나님과 연결을 가지고 하나님을 인하여 영원히 사는 것인데,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하여 이것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껍데기는 무엇인고 하니,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고 잘되고, 금년보다 내년이 더 좋고 잘되고, 젊을 때보다 늙을 때가 더 좋고 잘되고 늙을 때보다 죽을 때가 더 좋고 잘되고 죽을 때보다 부활 때가 더 좋고 잘되고, 부활할 때보다 심판 때가 더 좋고 잘되고, 심판 때보다 무궁 세계에서는 더 좋고 잘되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더 좋고 잘되는 것인데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 보면 '좋은 날'이라고 말씀했는데 좋은 날은 세월이 지나갈수록 더 좋고 잘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데 힘을 기울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고 하니, 하늘나라에서 무제한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활동 무대를 마련하기 위함인데, 한번 순종하면 그만큼 활동 무대가 마련되고, 두 번 순종하면 그만큼 활동 무대가 마련되는 것인데, 순종하는 것만큼 활동 무대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계에서 쫓겨나서 우주에 들어온 악령이, 에덴 동산에서 인류 시조 아담을 범죄 하게 하므로, 인간을 이겼기 때문에 인간이 가지고 있던, 우주 통치권을 빼앗아 갔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완전 승리를 하시므로 빼앗겼던 우주 통치권을 도로 찾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악령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온갖 것으로 유혹하였고, 그렇게 해도 안되니까 온갖 핍박을 가하였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박는 고형을 가하였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시므로 운명하셨는데 이것으로서 악령을 완전히 이기시고 통치권을 도로 찾으신 것입니다.

이래서 지금은 악령이 우주 안에 있지만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예수님께 수종드는, 예수님의 부리시는 악령이 되어서, 예수님의 명령대로, 예수님께서 정해 주신 활동 범위 안에서 활동하지, 그 범위를 벗어나서 활동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명령대로 활동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악령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대하여 어떻게 역사 한다고 할지라도 그 역사는 예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의 구원에 유익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용하시는 그 이용에서 역사 하는 것이지, 믿는 사람에게 대하여 왕권을 가지고서 역사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악령이 우리 믿는 사람의 구원에 유익하도록 이용당하는 기간이 끝나면,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악령을 무저갱에 천년 동안 가두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년왕국 시대가 끝이 나면, 무저갱에 갇혀 있던 악령이 풀려나 와서 번식 인종들과 함께 성도들을 대항하고 대적하다가 하나님께 재앙을 받아서 망하고, 마지막에는 한꺼번에 유황불 구렁텅이로 던지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 시조인 아담이 악령으로 더불어 싸워서 패전하므로 멸망을 받았는데, 예수님께서 인류를 대표하여 악령과 싸워서 악령을 이기시므로 인류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악령을 이기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악령을 이긴 자로 대우를 받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악령과 싸워서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악령을 이기지 못했지만 악령을 이긴 자로 사죄 받은 자로, 칭의를 받은 자로 하나님과 화목을 가진 자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인류 시조 첫 아담의 패전으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게 되었고,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의 승리로 말미암아 생명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 성도들은 두 선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첫 아담이라는 선조를 가졌고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이라는 선조를 가졌는데 이렇게 우리 믿는 성도는 두 선조를 가졌기 때문에 우리 믿는 성도에게는 두 선조의 자손이 있게 되었으니 하나는 첫 아담의 자손인 혈육이요, 또 하나는 둘째 아담인 예수님의 자손인 신령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첫 아담의 자손이요, 첫 아담에게 속한 혈육의 사람인 아담을 닮은 것과 같이 신령한 사람은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야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47절 ~ 49절에 보면, '첫 아담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성도가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서 예수님처럼 되려고 하면, 악령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실 현실에서 악령과의 싸움에서 악령에게 지지 않고 악령에게 이겨야 하고 하나님의 보내신 성령께 소속해서 성령께 복종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서 예수님처럼 거룩하고 온전한 인격과 행위로 변화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악령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올 때는 무엇과 함께 오는고 하니, 사람이나, 일이나, 물건과 함께 옵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올 때도 무엇과 함께 오시는고 하니 사람이나, 일이나, 물건과 함께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을 상대하고 관계를 가진다고 하면, 자기와 그 사람, 1대1로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올 때는 그 사람만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과 성령과 악령, 이 셋이 옵니다. 어떤

사물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올 때도 그 사물만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물과 성령과 악령, 이 셋이 함께 옵니다.

어떤 사건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올 때도 그 사건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건과 성령과 악령, 이 셋이 함께 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을 상대하고 관계를 가질 때나 어떤 사건을 취급할 때나 어떤 물건을 취득할 때, 그런 것들만 상대하고 관계를 가지고 취급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것들과 성령과 악령, 이 셋을 한꺼번에 상대하고 관계를 가지고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 셋을 한꺼번에 상대하고 관계를 가지고 취급하는 데에서 무엇이 결정되는고 하니 성령과 악령이 사람이나 사건이나 물건을 앞잡이로 세우고 그런 것들을 이용하여 우리 믿는 사람 속에 들어오려고 하기 때문에 이 셋을 상대하고 관계를 가지고 취급하는 데에서 "성령을 영접하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악령을 영접하느냐"하는 이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이나, 악령이 사람, 일, 물건 이 셋을 앞 세워 가지고 그 뒤에서 그 배후에서 이 셋을 배후 조종하고 이용하여 믿는 사람 속에 들어와서 믿는 사람을 주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이 사람이나, 일이나, 물건을 상대하고, 관계를 가지고, 취급하는 데에서 악령을 배반하고 성령을 영접하게 되든지, 성령을 배반하고 악령을 영접하게 되든지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하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이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을 상대하고 관계를 가질 때나 어떤 사건 처리를 할 때나 어떤 물건을 취급할 때, 거기서 반드시 악령과 성령의 의견과, 지도와, 명령이 있는데 이 두 종류의 것은 언제든지 정반대요, 대립인 것입니다.
그때 성령의 의견대로, 지도대로, 명령대로 사람을 상대하고 사건을 처리하고 물건을 취급하면 악령을 배반하고 배척하고 성령을 영접하고 따르는 것이요, 이와 반대로 악령의 의견대로, 지도대로, 명령대로 사람을 상대하고 사건을 처리하고 물건을 취급하면 성령을 배반하고 배척하고 악령을 영접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돈 몇 푼 때문에 성령을 배반하고 배척하고 악령을 영접하고 따라갑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 때문에 성령을 배반하고 배척하고 악령을 영접하고 따라갑니다. 이래서 성령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수백 번 수천 번을 배반을 당하시고 배척을 당하시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까지 참고 기다리시지만 구원의 시기가 끝나면 배반당한 이 원수를 영원한 세계에서 심판하여 갚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건이나, 어떤 물건을 통하여 찾아온 성령이나 악령 중에서 "네가 성령을 영접하겠느냐, 악령을 영접하겠느냐"고 하는 이 갈림길이 있을 때마다 악령을 물리치고 성령을 영접한다고 하면 성령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갈림길이 있을 때마다 성령을 물리치고 악령을 영접하고 따른다고 하면 성령은 매우 섭섭해하시고 분하게 여기십니다. 부부간에도 남편이 생활 능력이 약하여 "생활난을 겪는다"고 해서 아내가 자기 남편을 배신하고 돈 많은 남자를 따라갈 때, 남편의 마음은 굉장히 섭섭하고, 분하고, 괘씸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을 두고서, 어떤 일을 두고서, 어떤 물건을 두고서 "네가 성령을 영접하겠느냐, 악령을 영접하겠느냐"고 할 때, 사람을 취하기 위해서 사건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돈을 자기 주머니에 넣기 위해서 "이번만은 어찌할 수가 없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믿음을 버리는 것이 성령을 배신하고 배척하고 악령을 영접하고 따르는 것인데, 성령은 이것을 분하게 생각하시고 잊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갚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사람과는 멀어지고 일에는 어려움이 있고 돈에는 손해가 되어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믿음을 가지므로 악령을 물리치고 성령을 영접하고 따르면 성령께서 무한히 기뻐하시고 영원히 보상하여 주십니다.
다니엘 6장 1절 이하를 보면 악령이 바벨론 나라의 관직자(官職者)들을 이용하고, 왕을 이용하여 다니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게 하므로 악령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한달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지 말라, 만일에 기도하면 사자 굴에 집어넣는다."고 하는 금령을 전국에 선포하였을 때,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가서 사자의 밥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악령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영접하고 따라갔으니 하나님이 너무나 기뻐하셔서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살려내실 뿐만 아니라 바벨론 전국에 하나님과 다니엘의 영광이 충만하게 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생애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성경 역사(歷史)에서나 기독교 역사에 믿음의 사람들과 같이 소유와 몸과 생명에 손해가 있어도, 일에 손해가 있어도,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계명대로 실행하는 이 믿음을 지키므로 악령을 물리치고 배격하고 성령을 영접하고 따라야 합니다. 이럴 때 성령께서 무한히 기뻐하시고, 고맙게 여기시고, 동행하여 주시고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히 보상하여 주실 것입니다.








날짜 : 79년 9월 6일 목요일 새벽
본문 : 출애굽기 20장 3절 ~ 6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4절에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절하고 섬기는 것은 무엇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을 보시고 "무슨 제작이든지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무슨 제작이든지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만 믿는 사람이 무엇을 만들어서 그것을 섬기고 그것에게 절하고 소망을 두면 안 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믿는 사람이 어떤 사업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금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업도 할 수가 있고 저런 사업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업이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업이 자기에게 우상이 되면 다시 말하면 사업과 하나님을 바꾸어서 그 사업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미워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원수를 갚으시되 자손 삼사 대까지 갚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 끝에 보면 말씀하여 놓으셨습니다.

타락한 천사가 마귀인데 대장이 되는 자를 사탄이라 하고 사탄의 부하로서 사람을 유혹시키는 것을 마귀라 하고 사람들을 혼잡하게 어지럽게 하는 자를 '귀신이라, 잡신이라'고 하는데 숫자가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주가 심히 큰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주 안에는 수많은 종류의 것들이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주와 영계를 비교하여 볼 때, 영계는 우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주보다 무한히 크고 영계는 우주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영물로서 영계를 통치하시고, 또 우주도 통치하십니다. 천사들 중에도 태양을 맡은 천사가 있고, 달을 맡은 천사가 있고 별을 맡은 천사가 있고, 지구를 맡은 천사가 있고, 바람을 맡은 천사가 있고, 비를 맡은 천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천사들이 악의 면(面)으로 세상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것은 주관하지 못하고 악의 면으로 주관하고 있는데 그 숫자가 심히 많고 그 세력은 인간보다 강합니다.

우리가 이 다음에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우리의 육체도 마귀보다 말할 수 없이 강하지만 지금은 마귀보다 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새사람으로 살 때는 심히 강합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강하지만 새사람을 잊어버리고 옛사람으로 살면 마귀의 세력보다 약합니다.

그런데 마귀가 처음에 에덴 동산에서 인류 시조 아담과 싸울 때, 아담이 마귀에게 패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마귀에게 지배를 받게 되었고 마귀는 인간에게 대하여 왕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후에는 마귀가 불택자들에게 대해서는 왕권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대해서는 왕권을 빼앗겼고 또 마귀는 예수님께 패전했기 때문에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께서 부리시는 종으로서, 택자의 구원을 이루는데 이용당하는 그 역할을 하지만, 택자들에게 대해서는 왕권적인 권세를 가지고 역사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귀신들이 사람을 미혹하는데, 택하신 자라도 미혹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4장 24절에 보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을 접촉하든지, 어떤 사건을 접촉하든지, 물건을 접촉하든지, 어떤 장소에서든지, 어떤 시기에서든지, 어떤 형편에서든지 거기에는 반드시 성령과 악령이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게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관계를 영원히 끊어 버리고 악령과 관계를 맺게 되든지, 이 두 가지 중에 하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안 믿는 사람도 무엇을 접촉하든지 거기는 하나님과 악령이 접하여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으로 접하여 있는고 하니 이 사람들은 이미 정죄 받았고 저주와 사망 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대해서 정죄의 하나님으로 심판의 하나님으로 접하여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사람들은 이미 정죄와 저주와 사망을 받았기 때문에 사망에서 사망으로, 정죄에서 정죄로, 심판에서 심판으로, 저주에서 저주로 점점 짙어져 가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의 하나님으로, 또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자연 은총, 일반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또 정죄하시는 하나님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상대하십니다.

그런데 자연 은총이라고 하는 말은 일반 은총이라는 말인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은 은총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대속 공로가 없이 받는 은총을 말하는 것입니다. 햇빛을 주시고 공기를 주시고 바람을 주시고 비를 주시고 또 이렇게 저렇게 활동하게 해서 살도록 하시는 것을 자연 은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오는 은총, 곧 진리와 영감, 영생의 구원에 관한 모든 역사를 특수 은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안 믿는 사람에게는 창조의 하나님으로, 자연 은총의 하나님으로 상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에게나 불택자에게 햇빛도, 공기도, 비도, 바람도 똑같이 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면으로 어려움이 없이 살도록 해 주십니다.

그리고 인류 시조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이 하나님께 정죄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정죄의 하나님으로 심판의 하나님으로 상대하시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대해서 심판할 것을 하나씩, 하나씩 행동록에 기록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으로 옮겨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대해서는 어떤 하나님으로 상대하시는가?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기 이전과 같이 구원의 하나님으로, 사랑의 하나님으로, 구속의 하나님으로, 긍휼의 하나님으로 상대를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택함을 받지 아니한 사람은 첫 아담의 정죄로 거기서 끝나 버렸지만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한번 더 자유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영에게 대해서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혀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시켜서 구원하셨고 심신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더 자유를 주셔서 구원의 하나님으로 사랑의 하나님으로, 특수 은총의 하나님으로 상대하십니다.

그리고 악령은 안 믿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왕으로 되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건이나, 어떤 물건을 상대하면 악령이 그 배후에서 왕권을 가지고 역사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에게 복종하도록 하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은 악령에게 복종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전체는 복종입니다.

그러나 택자로서 믿는 사람에게 대해서는 악령이 왕권을 가지고 상대하지 못합니다. 옛날 에덴 동산에서 악령이 하와를 상대할 때 왕권을 가지고 상대하지 못하고 하와를 유혹하여 넘어뜨린 것같이 택자에게 대해서는 그렇게 상대하는데, 악령이 불택자를 상대하는 것은 정복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불택자는 이미 악령의 것이기 때문에 악령이 불택자를 상대하는 것은 정복하기 위함이 아니고 이용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나 택자로서 중생된 자에게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택자는 악령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악령은 하나님의 택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상대하는데 이것이 둘째 투쟁인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 된 영은 벌써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완전히 승리했지만 또 마음과 몸은 법적으로는 해방을 받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도 악령으로 더불어 싸우고 있는데 자기의 만난 현실 현실에서 심신으로 된 육이 악령으로 더불어 싸워서 악령에게 패전하면 그때 사용된 육의 기능은 영원한 사망을 받게 됩니다.

악령에게 패전한 심신의 기능은 악령의 것이 되었고 그것은 악령과 함께 영원한 유황불에 들어가서 사망과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현실 현실을 통해서 영원히 우리 것이 되지 못하고 악령에게 빼앗겨서 영원히 악령의 것이 되어서 유황불에 들어가서 탈수도 있고 이와 반대로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현실 현실에서 악령과 싸워서 이기면 주님의 구속을 실질적으로 완전히 입게 되고, 입게 되면 그때 이기는데 이용된 심신의 기능은 다시는 악령과 싸울 것이 없고 영원히 우리의 기능으로서 무궁 세계에서 사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죄 하므로 악령에게 빼앗겼던 심신의 기능을 예수님께서 대속의 공로를 베푸심으로 다시 찾아 주셨는데 이것은 법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법적으로 다시 찾아 주신 이것을 실질적으로 "악령과 싸워서 이기느냐, 지느냐"고 하는 여기서, "영원히 우리 것이 되느냐, 영원히 빼앗기느냐"고 하는 이것이 결정되는 것인데 예수님의 구속을 입은 우리 믿는 사람은 이런 갈림길에 서서 있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이 자기 현실에서 악령에게 유혹을 받아서 악령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면 그때 관련된 심신의 기능은 영원한 사망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의 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째 사망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할 때 하나님께 정죄 받아 죽은 것인데 불택자들과 택자들이 첫째 사망을 한꺼번에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자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하여 첫째 사망의 해를 십자가에서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에 택자들은 첫째 사망의 해를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택자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못했기 때문에 첫째 사망의 해를 벗어나지를 못하였습니다. 첫째 사망에서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택자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없습니다. 첫째 사망으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이것은 일반 사람들이 말할 때는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잔다라고 말하는데 죽은 것은 하나님과 끊어진 것이요, 점점 불행스럽게 되는 것이요, 천해지는 것입니다.

산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요, 점점 행복스럽게 되는 것이요,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의 내부는 하나님과 끊어진 것이요, 죽음의 외부는 오늘보다 내일, 금년보다 내년이 점점 불행스러워지고, 고통스러워지고, 못나게 되고, 무능해지고, 어리석게 되고, 가난해지고, 천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내부는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요, 생명의 외부는 오늘보다 내일, 금년보다 내년, 금생보다 내생이 점점 좋아지고 행복스러워지고 존귀해지고 실력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불택자들은 첫째 사망에서 완전히 끝납니다. 하나님의 불택자로서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사람들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죽는 것이 아니고 자는 것인데 한숨 자고서는 예수님의 재림 때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때에 일어나면 어떤 존재로 일어나는고 하니 시간과 공간과 존재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는 심신으로 변화를 받아서 일어나는데 이렇게 변화된 몸, 곧 부활한 몸은 우주를 1초 동안에 수백 번이라도 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첫째 사망의 해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믿는 사람에게는 첫째 사망의 해가 없습니다. 영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첫째 사망의 해를 완전히 벗었고 둘째 사망의 해도 완전히 벗었습니다. 영은 사람에게 있어서 주체이기 때문에 주체인 영을 살리지 아니하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주체인 영을 살려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이 처음에 죽었을 때, 영이 잘못해서 죽은 것이 아니고, 영의 소유인 심신이 잘못하였을 때, 주격인 영이 자기의 소유인 심신을 책임진 주격 위치에서 하나님께 정죄 받아서 죽은 것인데, 하나님께서 죽은 영에게 대속의 공로를 입혀서 첫째 사망의 해를 완전히 벗겨 주셨고 둘째 사망의 해가 온다고 해도 조금도 상관이 없도록 해 주셨습니다.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는 존재인데 마음과 몸을 합해서 육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육신의 생각'이라고 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은 무엇을 말씀하신 것인고 하니, 영은 죽어 있고 마음이 주체가 되어서 생각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영이 살아 있어 마음이 영을 배반하고, 거역하고, 옛사람의 미혹을 받아서 마음이 자기 단독으로 생각을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마음이 왕인 것입니다.

그리고 '영의 생각'이라고 하는 말씀은 마음이 왕이 되어서 가지는 생각이 아니고 마음이 중생 된 영의 시키는 대로 가지는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영이 받고 또 영이 양심에게 명령하고 또 양심은 마음에게 명령할 때 마음이 그 명령에 따라서 가지는 생각을 말하는데 이것이 새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첫째 사망의 해를 완전히 벗었고 둘째 사망의 해도 완전히 벗었습니다. 그리고 심신인 육은 첫째 사망의 해를 벗었지만 둘째 사망의 해는 벗을 수도 있고 벗지 못할 수도 있는데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고 벗으려고 하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성령과 진리와 중생 된 영과 믿음의 사람 이 넷이 하나가 되어서, 심신에게 강제로 하지 않고 가르치고 권면하고 지도하고 책망해서 심신으로 하여금 자기의 만난 현실 현실에서 하나님과 영을 영접하고 거기에 따라야 하는데 심신이 하나님과 영을 영접하고 거기에 따라서 움직이고 적용되고 이용된 심신의 기능은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만난 현실에서 악령이 미혹할 때 그 미혹에 빠져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령을 따라서 옛사람을 따라서 살면 그때에 참가한 심신의 기능은 영원한 사망을 받게 되는 것인데 이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의 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택자에게는 첫째 사망의 해로 끝이 나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가 없고 중생 된 영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첫째 사망의 해도 둘째 사망의 해도 완전히 벗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해가 없고 심신의 기능만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을 수도 있고 안 받을 수도 있는 것인데, 심신의 기능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려고 하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고 하니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죽도록 충성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이어서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니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죽도록 충성하는 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결사적으로 충성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시간까지 충성을 계속하라는 말씀인데 이렇게 마지막에 숨을 거두는 시간까지 충성으로 계속해서 노력해야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을 상대하든지, 일을 상대하든지, 물건을 상대할 때, 거기는 성령도 접해 있고 악령도 접해 있습니다. 그리고 악령이 사람이나, 일이나 물건을 도구로 삼고 이용하여 우리 믿는 사람 속에 들어오려고 자극도, 충격도 줍니다.

그래서 악령이 어떤 사람을 이용해서 우리에게 온갖 억울한 말을 하고 촉분질을 하고 밉상을 지깁니다. 그때 그것을 대항하지 말고 가만히 두고 악령이 그 사람을 통해서 우리 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거기서 죄를 짓지 말고 기도하고 거기서 옳게 바르게 행하면 마귀가 들어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악령 역사가 점점 약해지고 곯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옴병이 났을 때, 긁지 않고 가만히 두면 저절로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갑(甲)이라는 사람과 을(乙)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을이라는 사람이 악령에게 피동 되어서 갑이라는 사람에게 충격을 줍니다. 그때 갑이라는 사람이 을이라는 사람 속에서 역사 하는 악령에게 충격 받지 않고 피동 되지 않으면 을이라는 사람 속에 있는 악령은 살이 점점 빠지고 마르고 곯아집니다. 그 사람을 주장하는 악령의 힘이 점점 약해집니다. 반면에 그 사람에게 성령이 역사 하기 때문에 성령의 감화 감동이 점점 강해지고, 성령이 점점 주장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악령이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상대방을 통해서 오는 악령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첫째로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가 모시고 있는 성령의 영향을 다문 얼마라도 상대방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0장 14절에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아무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서 전도할 때,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를 받지 아니하고 반대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하신 말씀은 사람들이 어리석기 때문에 기억하기가 쉽고 알아듣기가 쉽도록 하시기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인데 이 말씀은 무엇을 말씀하신 것인고 하니, '너희가 어디에 가서 전도를 하든지 그들이 전도를 받지 않으면 너희는 그들에게 전도로 하나님의 도만 전하여 주고 올 것이지 악령의 영향, 불신의 영향을 받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면 거기는 하나님의 도가 움이 트게 됩니다. 언젠가는 움이 트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도를 전하러 가서는 하나님의 도를 주지 못하고 악령의 도만 잔뜩 받아 가지고 옵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도를 전하러 갈 때는 믿는 사람이 되어서 갔는데 돌아올 때는 악령의 사람이 되어서 돌아옵니다. 이런 사람이 많은데 우리 믿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날짜 : 79년 9월 7일 금요일 새벽
본문 : 출애굽기 20장 3절 ~ 6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우리 믿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를 위해서 하면 안됩니다. 또 어떤 피조물을 위해서 해도 안됩니다. 순전히 주님만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만을 위해서 하는 것에도 직접적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 있고 또 간접적으로 주님만을 위해서 하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있는데 자기 가정을 잘 꾸려 가기 위해서 돈도 부지런히 벌고 온갖 어려움이 있어도 참고 절약도 하고 여러 가지 면으로 노력도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가정만을 위해서 하는 것도 있고, 또 자기는 믿는 사람이라, 자기 가정이 바로 서지 못하고 잘못된다고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지고 복음이 가리어질 것이기 때문에 자기 가정이 다른 가정에게 본이 되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복음의 빛이 더욱더 밝게 비치도록 하여 자기 가정으로 말미암아 많은 가정들이 복음을 받아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자기 가정을 위하는 것이 있는데,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은 돈을 사랑하고 "돈은 만능이라"고 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쓰기 위하여 열심히 벌고 절약하는 이런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가정에 경제에 어려움이 없어야 자기 가정이 바로 서겠고 자기 가정이 바로 서므로 다른 가정에게 본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겠고 복음이 막히지 아니하겠고 그래서 자기 가정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경제면으로 열심히 일하고 쓰고 싶어도 쓰지 않고 절약해서 경제면에 성공하므로 자기 가정을 바로 세워서 본이 되게 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하는 것의 동기가 하나님이라야 하고 그 일을 하는 것의 목적이 하나님이라야 하고 그 일을 하는 것의 방편이 하나님의 주신 방편이라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를 위해서 하면 안됩니다. 자기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지 한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그것이 막 바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바로 대적하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의 법도에 위반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도에 맞게 한다고 해도 그 일을 하는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위하는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의 법도에 위반되게 하지말고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무슨 행동을 해도 하나님의 법도에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서, "나는 이 말씀에 의지해서 이렇게 했습니다. 나는 저 말씀에 의지해서 저렇게 하였습니다."라고 말씀대로 행한 것을 내세울 때, 하나님의 말씀에게 인정받고 변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아야 합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보면, 어떤 사람이 국법을 위반하지 않고 그 법대로 살면, 다른 사람이 정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법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죄자를 재판할 때도 검사가 법조문에 의해서 범죄자를 송사하고 변호사도 법조문에 의해서 범죄자를 변호하고 판사도 법조문에 의해서 판결 선고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법조문대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성경이 법조문이기 때문에 성경 법대로 생활해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을 근거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구약 성경이 인정해 줄 수가 있고 신구약 성경이 변호하여 줄 수 있도록, 신구약 성경대로 행동하고, 생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이 세상 사람이 인정하고 견해(見解)하는 대로 행동하고 생활하면 안됩니다. 왜 그런 고하니,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성경 법대로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제직들이 모여서 교회의 제반 문제를 의논할 때도, 성경을 근거해서 의논해야 합니다. 성경을 근거하지 않고 자기 단독 생각대로 말하거나 주장하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단독 생각대로 말하기도 하고, 주장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기 주장대로 되지 아니하면 고집을 부리는데,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우리 교단에서, 총공회를 개최하여 공회원들이 모여서 제반 문제를 의논할 때, 공회원이 아무리 자기 의견을 말해도 그 의견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아무리 강하게 주장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성경을 근거하지 아니하면 발언권이 없고 모든 것을 성경을 근거해서 발언하고 판단하고 처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 개인 생활도 성경을 근거해서 해야 합니다. 자기 혼자서 생활을 해도 성경을 근거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들을 처리할 때는 신구약 성경을 근거해서 처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의논하고 처리할 때는 성경대로 의논하고 처리해야 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지금도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또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야 할 것이기 때문인데 우리 믿는 사람이 성경을 근거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생활한다고 하면, 한 말로 하면 전체가 성경적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정죄하지 못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이 모든 것을 성경적으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말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처리하고,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이 성경을 잘못 깨달아서 실수할 때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바로 깨닫도록 해 주시고 거기에 관련된 성구들을 깨닫도록 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이 자기 위신을 세우고, 체면을 세우고,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그리고 공연히 궤변적(詭辯的)으로 억지로 성경을 인용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을 바르게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오용한 성경을 잘못 이용하고 성경을 무시한 것으로 정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위하는 일이 되든지 간접으로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 되든지 어쨌든지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동기가 하나님이라야 하고 그 목적이 하나님이라야 합니다. 전부는 하나님을 위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9장 5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보시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니까, 그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보시고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믿는 사람은 부모님의 장례를 지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부모님께 효성을 다해야 합니다. 부모님 생시(生時)에 효성을 다 해야 하고, 생시에 효성을 다하지 못했으면 부모님 사후에라도 효성을 다해야 하는데 부모님 사후에 효성을 다하는 것보다 부모님 생시에 효성을 다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런데 부모님 생시에 효성을 다하지 못하였으면 부모님 사후에라도 효성을 다해야 하는데 부모님 사후에 효성을 다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고 하니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효성으로서는 부모의 장례를 지낼 때, 정성스럽게, 경건하게 지낼 것이요, 토장을 하였으면 1년에 몇 차례씩 묘소를 돌아보고 벌초도 해서 이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부모의 유해에 대하여 저렇게 정성스럽게 관리를 하는구나."라고 하면서 감동을 받게 해야 하고, 또 부모님 사후에라도 부모님께 욕이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범사에 조심하고 생활을 규모 있게 하여, 생활이 안정되고 가정이 평안하므로 영계에 계시는 부모님의 마음에 안심을 드리고, 기쁨을 드리고, 부모님으로 모든 존재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중심 하는 동기와 목적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어떤 유익이 있는고 하니,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요, 무한하신 분이시요,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시요, 깨끗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는 동기와 목적에서 일을 하면 하나님을 배우게 되고 하나님을 본받게 되고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을 본받으므로 자기 속에 있는 잘못되고 삐뚤어진 것이 하나씩, 하나씩 뽑혀지고 하나님을 닮아 가므로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지혜 있고, 능력 있고, 거룩하고, 깨끗한 인격과 행위를 이루어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영원토록 칭찬과 높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쌀을 채에 담아서 흔들면, 모래나 조그만 돌이 빠져서 나가고 쌀을 키에 부어서 까불면 쭉정이는 날아가고 쌀만 남아서 일등 쌀이 되는 것과 같이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위하는 동기와 목적으로 일을 하면, 하나님처럼 거룩하고 깨끗하고 온전한 인격과 행위를 가지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요, 무한하신 분이요, 거룩하신 분이시요, 깨끗하신 분이시요,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위하는 동기와 목적에서 살려고 하면 이 하나님께 거슬리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고 없애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원하시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갖추어 마련하다가 보니까, 하나님을 본받게 되고 닮게 되어서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영원토록 칭찬과 환영과 존귀를 받을 수 있는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인격과 행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를 위하면 점점 더러워집니다. 생각하는 것도 더러워지고 소원하는 것도 더러워지고 계획하는 것도 더러워지고 비판하는 것도 더러워지고 평가하는 것도 더러워지고 움직이는 것도 더러워지고 모든 면으로 점점 더러워집니다.

그런데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를 위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위하는 동기와 목적에서 일을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는 그 동기와 목적에서 일을 하되, 하나님께서 주신 그 방편대로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6절 처음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는' 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어떤 말씀인고 하니, "무슨 일을 하되, 하나님을 위하는 동기에서, 목적에서, 하나님의 주신 방편대로 한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지만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하는 동기와 목적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방편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 하지 않고 하나님 외에 어떤 피조물이나 자기 자신을 위하고 중심 하는 것은 악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위하고 중심 하는 것의 덩어리가 클수록 하나님의 정죄는 더욱더 크고 거기에 대한 보응은 크고 맹렬한 것입니다.









날짜 : 79년 9월 8일 토요일 새벽
본문 : 출애굽기 20장 3절 ~ 6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4절 중간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이 세상에 이미 있는 것을 가지고 무슨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철이나 나무나 돌이나 흙을 가지고 인형을 만들지 말아라, 어떤 조각품을 만들지 말아라, 어떤 도구를 만들지 말아라, 어떤 기구를 만들지 말아라, 어떤 공작물들을 말아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철이나 돌이나 나무나 흙으로 무엇을 만들되, 그것을 경외하고 소망하는 그런 것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신 말씀인데 아무리 건강한 몸이라고 해도 그것이 우상이 되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불행스럽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아무리 단란(團欒)한 가정이라고 해도 그것이 우상이 되면, 그것은 자기 가정을 불행스럽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만들어 놓은 것에는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자기가 시간을 투자하고 정력을 투자하고 자본을 투자하고 정성을 투자하여 만든 것에는 경외성과 소망성과 애정이 크게 작용합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해서 만든 것인데, 이것이 아니면, 나는 죽는다."고 하는 경외성이 크게 작용하고 "내가 이것을 어떻게 해서 만든 것인데 이것이라야 산다."고 하는 소망성이 크게 작용하고 "내가 어떻게 해서 만든 것인데 내게는 이것이 최고로 귀한 것이라."고 하는 애정이 크게 작용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는 이것이 우상이 되기 때문에 이것은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배반하고 미워하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고 배반하고 미워하는 그 죄를 갚으시되, 삼사 대까지 갚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4절 중간에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은 미워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신 말씀인데, 사람이 하나님을 미워하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미워하셔서 그 사람의 죄를 갚으시되, 하나님을 미워하는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복수하시되, 원수를 갚으시되 삼사 대까지 갚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6절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하는 그 동기와 목적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사탄, 마귀, 귀신의 수가 심히 많은데 이것들을 한 말로 하면 악령이라고 말하는데, 악령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행위는 전부가 자살 행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령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생각과 소원, 비판과 평가, 계획과 경영이 잘못되고 삐뚤어지고 거꾸로 되어져서 망하는 길로만 가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령이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자와 택하심을 받지 못한 자에게 대하여 관계를 가지는 것이 다른데, 악령이 택하심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대하여서는 왕권을 가지고 상대하고 관계를 가집니다. 그리하여 택하심을 받지 못한 자들로 하여금, 죄에서 죄로 불법에서 불법으로 저주에서 저주로 사망에서 사망으로 점점 타락시켜서 완전히 멸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대해서는 왕권을 가지고 상대하지 못하고 역사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대속이 있기 때문에 악령이 패잔병으로서 게릴라처럼 역사 하는데 범죄 하도록, 의를 행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과 결합이 끊어지도록 하는 이 역사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택하심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대해서는 어떤 하나님으로 접하고 계시는고 하니,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 그들에게 일반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접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대해서는 어떤 하나님으로 접하고 계시는가?
택자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 택자에게 일반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접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정죄하시는 하나님이 사죄를 주시는 하나님으로,
불의의 값을 치르게 하시는 하나님이 칭의를 주시는 하나님으로
하나님과 원수 됨으로 영원한 사망과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 영생하는 생명과 영원한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은 무엇을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는고 하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생명과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영은 대속과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단번에 완전히 입었지만 심신으로 되어 있는 육은 법적으로는 입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입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직까지 사망 아래에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0절 참조)

그런데 아직까지 사망 아래에 있는 육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질적으로 입으려고 하면 현실 현실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로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죄를 입었기 때문에 죄를 범하지 말고, 칭의를 입었기 때문에 불의를 행하지 말고 의를 행해야 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의 결합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동거 동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이 현실 현실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실질적으로 입으면, 그 심신이 어떤 심신으로 변화되는고 하니, 중생 된 영이 영계에서나 물질계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사역할 때 성능이 좋은 심신으로 변화를 받게 되는데 중생 된 영이 영계에서 영물들에게 대하여 사역할 때는 마음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사역하고 물질계에서 물질에게 대하여 사역할 때는 몸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사역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아무리 여러 면으로 지식이 풍부하고 다양한 실력을 가졌다고 해도 벙어리요, 귀머거리요, 수족이 불편한 불구자라고 하면 실력 발휘를 할 수 없고 귀나, 눈이나, 입이나, 수족이나, 어떤 도구가 있어야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처럼 중생 된 영이 아무리 하나님 다음 가는 실력을 가졌다고 해도 심신이 없으면 실력 발휘를 할 수가 없고 심신이 있어야 그것을 도구로 이용하여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생 된 영은 자기나 영계에서나, 물질계에서 영원히 자기의 도구로 사용할 심신을 성능 좋은 심신으로 변화를 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성능 좋은 심신으로 변화를 시키는 것은 오늘이라는 현실에서만 변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령은 심신을 변화시키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악령이 방해할 때 사용하는 방편은 어떤 것인가?
첫째로는 두려움이라는 방편을 사용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두려워하게 하는 방편을 사용합니다. 다시 말하면 악령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두려워하게 하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게 합니다.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굶게 된다. 천하게 된다. 사회에서 매장된다. 사업이 깨어진다. 가정이 깨어진다."라고 이렇게 별별 것으로 위협하고 협박을 해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두려워하게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부모를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 상관을 두려워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소망이라는 방편을 사용합니다. 하나님 외에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소망하게 하는 방편을 사용합니다. 사업 소망, 지식 소망, 기술 소망, 출세 소망, 재산 소망, 이런 것 저런 것을 소망하게 하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게 합니다. "네가 하나님만 소망하면 출세하지 못한다, 사업 성공을 못한다, 좋은 직장에 가지 못한다.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라고, 이렇게 하나님을 소망하지 말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소망하게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만을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세상 것을 소망하는 것은 그것들이 하나님보다 더 좋고 더 귀하기 때문에 소망하거나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소망하고 위해서 노력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에 세상 것에 소망을 가지고 위해서 노력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버리라고 명령하시면 아무런 미련 없이 당장에 집어던지는 것입니다. 세상 것 때문에 계명을 거역하지 않습니다. 세상 것 때문에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지 않습니다. 세상 것 때문에 신앙 양심을 더럽게 하지 않습니다.

셋째로는 악령은 애정이라는 방편을 사용합니다. 다시 말하면 악령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게 애착을 가지고 사랑하게 하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하는데 우리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이 자기 심신을 성능 좋은 기능을 가진 심신으로 변화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데 악령이 이것을 방해하려고 두려움이라는 방편, 소망이라는 방편, 애정이라는 방편으로 방해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맹렬하게 방해하는고 하니, 우는 사자가 삼킬 자를 찾기 위하여 맹렬하게 날뛰는 것같이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은 두려움을 구별하고, 소망을 구별하고, 애정을 구별해서 악령의 방해 역사를 이기므로 중생 된 영이 이 다음에 영계에서나 물질계에서나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실력 발휘를 할 때, 자기의 도구로 사용하는 심신을 성능 좋은 심신으로 변화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의 신앙 생애의 목적인 것입니다.









날짜 : 79년 9월 9일 주일 오전
본문 : 출애굽기 20장 7절 ~ 14절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지니라. 간음하지 말지니라.


7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열 가지 계명 중에 세 번째 계명인데, '여호와의 이름'은 인간에게 계약을 선포하시고, 선포하신 계약대로 하나 하나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이 계약을 선포하시고 선포하신 대로 이루어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경거망동하게 훼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 믿는 사람이 여름에 폭우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다고 하면, 그 폭우를 쏟아지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거기서 자기 할 일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 관련된 것이 어려움을 당한다고 하면, 그것이 좋게 해결되도록 기도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하시는 그 역사에 맞추어서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폭우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당했다고 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속단(速斷)하여,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한다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또 경제적 조건이 좋지 못하여, 의식주에 어려움을 당하는 형편이라고 하면, 그런 형편을 만나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거기서 자기 할 일은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요, 기도할 것이요,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어려움이 있다고 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또 세대가 점점 악하여 갈 때, 이 세대를 원망하거나 불평할 것이 아니고, 이런 악한 세대에서 자기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을 진실한 마음으로 찾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세대가 악하여지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지 말고 자기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지 못한 것, 이 세대를 위해서 기도하지 못한 것, 자기가 전해야 할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 자기가 의롭게 거룩하게 깨끗하게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림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 이것에 원인이 있는 줄 알고서,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복음을 전하고 의롭게 거룩하게 살아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세대가 점점 악해지는 그 원인을 다른 것에게서 찾고 세대가 점점 악해지는 그 책임을 다른 것에게 넘기고 자기는 세상을 욕하고 세대를 욕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세 번째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또 8절~11절에 안식일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네 번째 계명인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1차 창조를 마치시고 그것들에게 축복하신 날인데, 신약 시대에 와서는 주일로 변개 되었습니다.

주일은 주의 날인데, 주일은 어떤 날인고 하니,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1차 창조의 것이 영원한 사망과 고통, 영원한 멸망 가운데 빠졌는데,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하시므로 영원한 멸망에서 구출하시고 영원히 변동이나 진동이 없는 것으로, 신령한 것으로 다시 창조하시는 이 공로 설정을 완성하신 날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만에 살아나신 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에는 어떤 은혜와 능력을 받는고 하니,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평의 공로를 입혀 주셔서, 죄 없는 사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어 동거 동행을 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받고 인격과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깨끗하게 변화를 받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실상으로 이룰 수 있는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일을 바르게 지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엿새 동안에는 자기 일을 힘써 하고 주일에는 주일을 거룩하게 함에 방해되는 일은 중단하고 예배 처소에 와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설교를 듣고 기도하는, 이렇게 예배하는 중에 자기 자체가 변화를 받고 말씀을 받아서 간직하고 새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까지 의롭게 깨끗하게 살았다고 해도, 새로운 변화를 받아야 하는데 주일에 자기가 어느 면으로 어떻게 변화를 받아야 하며 어느 면이 아직까지 부족한지, 이것을 찾고 좀더 변화를 받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9절에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신 데서, '네 모든 일'은 무엇을 말씀하신 것인고 하니, 주일에 거룩하게 변화 받은 자체로 사는 것이요, 주일에 받은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이것이 자기 구원을 이루는 자기 일이기 때문에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하는데서 공장을 경영하는 사람은 물건을 만드는데서, 정치를 하는 사람은 나라를 다스리는데서, 예술을 하는 사람은 예술품을 제작하는데서, 학생은 공부하는데서, 공무원은 공직 수행(公職 遂行)에서 엿새 동안에 받은 말씀대로 실천하고 변화된 자체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엿새 동안에 변화된 자로 살다가 받은 말씀대로 살다가 실수하여 넘어졌으면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소망을 가지고 다시 변화된 자로 살고, 받은 말씀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엿새 동안은 네 모든 일을 힘써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주일 하루만 바로 지키는 것이 아니고, 엿새 동안도 바로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주일을 구별하여 바로 지키고, 엿새 동안을 바로 사는 것이 네 번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모든 면에 성공과 형통이 있어서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나게 됩니다. (이사야 56장 4절~8절, 58장 13절~14절)

또 12절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다섯 번째 계명으로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보존을 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푸신 부모가 기뻐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해서 부모를 섬기고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6장 2절~3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어떤 말씀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여러 가지 종류의 은혜를 베푸실 때, 직접적으로 베푸시는 경우도 있고, 간접적으로 무엇을 통하여 은혜를 베푸시는 경우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간접적으로 무엇을 통하여 은혜를 베푸실 때, 거기에 쓰여진 것은 은혜의 기간(機關)이기 때문에,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은혜의 기관을 생각해서 그 은혜를 잘 보존하고, 그리고 그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과 기관으로 쓰여진 것에게 후회가 되지 않고 하나님과 그 기관이 기뻐하고 만족하고 좋아하고 고맙게 여길 수가 있도록 은혜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그 다음에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과 은혜의 기관으로 쓰여진 그 사람을 존중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고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섬기는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그렇게 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자기의 수명도 길뿐만 아니라, 자기의 하는 일도 성공하고, 그 성공이 오래도록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부모라고 하신 말씀은 자기를 낳아서 길러 주신 분을 말씀하시는데, 자기에게 어떤 기술을 익혀 주신, 기술면으로 부모가 있겠고, 자기가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거기서 보호해 주신 보호 면으로 부모가 있겠고, 자기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했을 때, 경제면으로 도움을 주신 경제면으로 부모가 있겠고, 자기가 삐뚤어진 길로 갈 때, 곁에서 옳은 교훈과 책망으로 이끌어 주셔서, 자기를 온전한 인격과 행위를 가지도록 해주신 교훈 면으로 부모가 있겠고, 이렇게 여러 면으로 은혜를 베풀어주신 부모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은 어떤 면으로 얼마만큼의 은혜를 입었든지, 그 은혜의 분량에 관계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신 그분과 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고 항상 고맙게 생각하면서, 받은바 그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또 은혜를 베푸신 분이 은혜를 베푼 것이 후회가 되지 않고 잘했다고 만족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받은바 은혜에 합당한 언행 심사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모든 것에 성공과 형통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13절에 보면, '살인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여섯째 계명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 말씀하신 살인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끊어지게 하는 것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해하는 것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만 주라."고 하신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유익만 주어야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면 안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5절)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해치려고 할 때, 그 해를 받지 않기 위하여 방어할 수가 있고, 그 해를 피할 수가 있고, 해를 받지 않도록 노력은 할 수 있지만, 상대방에게 손해를 입혀서는 안됩니다. 손해를 입히면 살인이요, 상대방을 미워하면 살인이요, 상대방이 잘못되기를 원하면 그것도 살인인 것입니다.
마음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나 비판으로나 상대방을 해치면 살인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이 두 사람을 상대하여 이쪽 사람에게 유익 되게 하려고 하면, 저쪽 사람에게 손해가 되고, 저쪽 사람에게 유익 되게 하려고 하면, 이쪽 사람에게 손해가 되는 이런 경우를 만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의 법도대로 공평하게 상대하는 것이, 이쪽 사람에게도 저쪽 사람에게도 유익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해칠 권리가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권위적으로나, 명예적으로나, 활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자기 할 일이지, 해치는 것은 자기 할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살인인데, 성경에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은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마라.' (로마서 13장 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사랑의 빚만 지라고 하신 말씀인데, 이 말씀은 어떤 말씀인고 하니, 다른 사람에게 털끝만큼이라도 손해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고,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털끝만큼이라도 유익을 주도록 노력해서, 다만 얼마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가는 큰 손해를 막기 위하여, 방편적으로 작은 손해를 주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면 암병으로 죽을 사람을 수술하여 살리기 위해서, 암병이 든 그 부분을 도려내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 가는 큰 손해를 막기 위하여, 그 방편으로 작은 손해를 주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 사랑한 것입니다.

또 14절에 '간음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일곱 번째 계명으로서, 간음에는 크게 말하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영적 간음으로서, 이 세상과 세상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요, 또 하나는 육적 간음으로서 남녀가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서 비정상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영적 간음도 엄격하게 단속해야 되지만, 육적 간음도 더욱더 단속해야 합니다. 인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실패하게 된 것도, 남녀 이성 작용이 잘못되어서 선악과를 먹음으로 망하게 되었고, 창세기 6장 1절 이하에 보면, 노아 시대도 남녀 이성 작용이 잘못됨으로 멸망을 받았고, 창세기 19장 1절 이하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 성이 다른 죄도 있겠지만, 남녀 이성 작용이 잘못되어서, 유황불 비로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 1절~3절에 보면, 예수님의 재림 시에 이 세상도 남녀 이성 작용이 잘못됨으로 멸망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남녀 이성 면에 있어서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지금은 남녀 이성간에 비정상적인 관계가 노골적으로, 급속히 표출되고 있기 때문에 남녀 이성 면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날짜 : 79년 9월 9일 주일 오후
본문 : 출애굽기 20장 15절 ~ 17절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15절에 보면 '도적질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여덟 번째 계명으로서, 도적질은 어떤 것인고 하니, 자기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취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도적질에 있어서, 물질 면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권세면, 지위면, 명예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면으로 남의 것을 불법으로 취하는 것, 대가를 지불하지 아니하고 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적질에는 개인이 어떤 개인에게 대하여, 불법으로 개인의 것을 취하는 도적질이 있고, 또 어떤 개인이 어떤 단체에 대하여 그 단체의 것을 불법으로 취하는 도적질이 있고, 또 개인이 국가에 대하여 국가의 것을 불법으로 취하는 도적질이 있고, 그리고 어떤 단체나 국가에서 세운 법도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주재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도가 있는데, 이 법도를 벗어나서 무엇을 취하는 도적질이 있는데, 말라기 3장 8절에 보면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지 아니한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모든 면에 대하여 빠짐없이 강령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우리 믿는 사람은 신구약 성경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이런 것 저런 것을 취할 수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신구약 성경 법도를 벗어나서 이런 것 저런 것을 취하거나,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오면 안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믿는 사람이 무엇을 취했을 때, 어떤 개인이나, 어떤 단체에서나, 국가에서 그것을 보고, "잘했다"라고 찬성하고 동의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서 취한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도적질한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여덟 번째 계명을 범한 자로 정죄하십니다.
그런데 개인끼리 잘못한 것은 개인끼리 해결하면 되지만, 개인이 어떤 단체에 대하여 잘못했을 때는, 그 단체에서 해결하여 주기 전에는 개인 단독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개인이 국가에 대하여 잘못했을 때는, 국가가 해결하여 주기 전에는 어떤 개인이나, 어떤 단체로서는 해결되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어떤 개인이 개인에게 대하여, 어떤 단체에게 대하여 국가에게 대하여 잘못했을 때,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로 더불어 해결하였다고 해도, 하나님께 대하여 잘못하였을 때, 하나님으로 더불어 해결 받지 못하였다고 하면 그 면에 대해서는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에게 주신 성경 법도대로 행할 때 자기에게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배정하여 주신 것이요, 그것 외의 것은 어떤 것이든지 자기에게 오는 것은 자기를 망치는 화근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 자기에게 어떤 것이 많이 와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것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 어떤 것이 적게 와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것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 무엇이 오지 않아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지 못하게 하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대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은 일시적인 면만 보시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영원무궁을 보시고 우리 믿는 사람을 영원히 복되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물질이나 지위나 권세나 명예나 사업이나 직장이나 그 외에 여러 가지를 하나님의 법도대로 취하여 가지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서 취하여 가지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정상적이 아니고 도적질하는 것이요, 그 결과는 사망뿐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결과는 사망인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이 어린 사람은 하나님의 법도대로 실행해도, 재물이나 지위나 권세나 출세나 사업이나 직장이나 건강이나 그 외에 여러 가지 때문에, 하나님의 법도대로 실행하지만, 신앙이 장성한 사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 장성한 사람이 하나님의 법도대로 실행하는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하나님의 법도대로 실행할 때, 세상 것이 적게 오든지, 많이 오든지, 세상 것이 오지 않든지, 자기에게 있는 것이 없어지든지, 여기에는 상관하지 않고 또 자기는 부요하게 살든지 가난하게 살든지, 자기 할 일은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도대로 실행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할 때, 자기 앞에 부요가 오든지 가난이 오든지 평안이 오든지 고난이 오든지 이것에는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으로 자기 본분을 삼았는데, 그것을 가리켜서 히브리서 11장 8절에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라도 아낌없이, 서슴없이 버리고 양보하였습니다. 창세기 14장 1절 이하에 보면,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한, 4대 동맹국과 소돔 왕 베라를 중심으로 한, 5대 동맹국이 싯딤 골짜기에서 전쟁을 벌렸는데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한, 4대 동맹국이 승리하여 소돔 왕 베라를 중심으로 한, 5대 동맹국의 사람을 재물로 노략하여 본진(☞총지휘관이 있는 진영)으로 돌아갔는데, 그 중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롯의 재산도 노략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롯을 구출하기 위하여, 자기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집에서 훈련시킨 사병(私兵)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4대 동맹국을 쳐서 이기고, 포로 된 사람들과 빼앗겼던 재물을 전부 찾아서 돌아오는데, 소돔 왕 베라가 아브라함에게 와서, '사람은 내게로 돌려주고 물품은 가지고 가라.'고 명령조로 요청하였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자기가 마땅히 가져야 되는 물품이지만, 그것 때문에 "후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까"하여 그 많은 물품까지도 소돔 왕에게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4장 22절~23절에 아브라함이 소돔 왕에게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나니, 네 말이 내가 아브라함을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한 실이나, 신들매라도 취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하면서 전부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가정법을 지켜야 하고 그리고 가정법보다 더 큰 법인 사회법을 지켜야 하고 또 사회법보다 더 큰 법, 곧 국법을 지켜야 하는데, 이것은 불신자라도 지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문서로 기록해 주신 신구약 성경법을 지킬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 양심을 통하여 감화 감동시켜 주시는 영감의 은밀 법칙을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믿음 생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법과 사회법이 서로 마찰이 될 때는, 가정법보다 사회법이 더 크기 때문에 가정법을 버리고 사회법을 지켜야 하고 그리고 사회법과 국법이 마찰될 때는, 사회법보다 국법이 더 크기 때문에 사회법을 버리고 국법을 지켜야 하고, 국법과 성경법이 마찰될 때는 국법보다 성경법이 더 크기 때문에 성경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여덟 번째 계명 '도적질하지 말지니라.'고 하신 이것을 명심하고 최소한 이웃을 해치는 일은 안 해야 하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만 얼마라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어떤 사람이 은혜로 도움을 준다고 하면, 그 도움을 받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도움을 받는데서, 어떻게 하든지 노력하여 도움 받는 것을 면하고 자기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16절에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아홉 번째 계명으로서 '거짓 증거'라고 하신 말씀은, 다른 사람의 영육의 구원을 해치는 말을 '거짓 증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외부로 듣기에는 상대방을 위하는 말일지라도, 그 말의 동기와 목적이 상대방의 영육의 구원을 해치는 것이라고 하면, 그 말은 '거짓 증거', 곧 상대를 속이는 말이요, 거짓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성공은 어떤 것인 고하니, 자기의 인격과 행위가 온전하게 되어서, 모든 존재들에게 인정과 환영, 높임과 등용을 받는 것이요, 인간 실패는 어떤 것인고 하니 자기의 인격과 행위가 못 쓸 것으로 되어서, 모든 존재들에게 배척과 멸시와 천대를 받는 것인데, 인간 성공에 손해를 주는 말은 어떤 말이라도 거짓말로 정죄를 받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있다, 적은 것은 적다, 많은 것은 많다, 아는 것은 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라고 사실 그대로 말한다고 해도 그 말을 하는 것의 동기와 목적이 상대방의 인간 성공에 손해를 주고 인간 실패를 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면, 다시 말하면 인격 온전, 행위 온전에 손해를 주는 것이라고 하면, 그 말은 거짓 증거, 거짓말, 속이는 말로 정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없는 것을 있다, 있는 것을 없다, 아는 것을 모른다"라고 사실과는 다르게 말했다고 하면, 그것은 외부적으로 볼 때는 거짓말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사실대로 말한다고 하면, 상대방의 구원, 인간 성공, 인격 온전과 행위 온전을 이루는데 막대한 손해를 줄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구원에 유익을 주기 위한 동기와 목적에서 방편 상 사실과는 다르게 말한 것이요, 결과적으로 인격 성공, 행위 성공에 도움이 되었다면, 거짓말로 정죄 받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2장 1절 이하의 기생 라합을 참조할 것.)

또 17절에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열 번째 계명으로서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고 하신 말씀은, "네 이웃의 형편을 부러워하지 말고 네 형편을, 네 현실을 원망하지 말고, 네 현실에 합당하게 네 분수에, 네 지위에 맞도록 살아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자기 현실은 어떤 것인가? 자기가 성경 말씀대로, 신앙 양심대로 살 때, 자기에게 오는 현실이 자기 현실인데, 이것은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의 현실보다 더 좋은 것이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성경 말씀대로, 신앙 양심대로 살 때, 부요한 현실이 오든지, 가난한 현실이 오든지, 평안한 현실이 오든지, 고통스런 현실이 오든지,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선물로 주신 자기 현실이기 때문에, 자기에게는 제일 좋은 현실이요, 제일 복된 현실인데, 자기는 이 현실을 만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이 이렇게 자기 현실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현실을, 다른 사람의 형편을 부러워하고, 자기 현실, 자기 형편에 만족을 가지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한다면, 그것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고 하신 열 번째 계명을 범하는 것이요, 심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가, 물 속에서 활기차게 헤어 다니는 물고기의 형편이 좋게 보이고, 부러워서 자기도 물고기처럼 물 속에서 헤어 다니겠다고 물 속으로 뛰어들면, 얼마 안 가서 죽습니다.
산중의 왕인 호랑이가, 공중에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의 형편이, 좋게 보여지고 부러워서 높은 절벽 위에 올라가서 아래로 뛰어내리면 죽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믿는 사람이 자기 현실, 자기 형편에 불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형편, 다른 사람의 현실을 부러워하여 "그런 형편에서 살겠다"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서 나가면, 마지막에는 사망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믿는 사람이 성경 말씀대로 신앙 양심대로 살아갈 때, 자기에게 오는 현실, 형편이 자기 현실이요, 자기 처소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요, 자기에게 제일 좋은 것이요, 자기의 낙원이 되고 은신처가 되고, 피난처가 되는 것인데, 이 사실을 모르고 자기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현실을 부러워하면, 그것은 열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의 현실을 부러워하는 그것을 뽑지 않으면, 그것이 들어서 성경 말씀, 신앙 양심을 거슬리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마지막에는 사망과 고통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시간에 걸쳐서 열 가지 계명을 증거 하였는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이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자기에게 무거운 짐이 될 것이요, 이 계명들을 지켜본 사람은 무거운 짐이 되지 않고 자기에게 지혜와 능력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일반 사람과 다른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고 하니, 실력입니다. 일반 사람의 실력은 선천적으로 잘 타고나는 것과 후천적으로는 많이 배우는 것과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실력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아무리 선천적으로 잘 타고나도, 후천적으로 많이 배우고 많은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여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아니요, 그 사람이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 갖추어 가진 것이 없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함께 하여 도와주시면 천하를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고, 도와주시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고 도와주시는데 아무리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여 도와주시는 그 사람에게 비교하면, 억억만 분의 일도 안 되는 실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선천적으로 잘 타고나지 못하였다고, 후천적으로 많이 배우지 못하였다고 어떤 배경이 없다고 원망과 불평을 하지말고 좌절감을 가지지 말고, 용기와 담대를 가지고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의 영원한 실력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