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행심사의 기능


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26일 토새

 

본문 : 갈 6:6-8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여기 6절에 '가르치는 자나 가르침을 받는 자' 그러면 가르치는 자는 자기가  개인으로 가르치든지 혹은 교회의 대중에게 가르치든지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권유하는 사람이겠습니다. 또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그 권유를 듣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이것이 꼭 정해져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이 양면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양면을 가지고 있다 말은 가르치는 면도 우리가 다 가지고  있고 또 가르침을 받는 면도 우리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백 목사로 말하면 이  서부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만 되어 있는가? 만일 가르치는 사람만 되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반 쪼갱이의 사람입니다. 가르치는 면도 있지만 또 모든 사람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르치는 면만 가진 사람 하나도  없고 배우는 면만 가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가르치는 면과  가르침을 받는 면과의 이 양면을 가진 것이 우리 기독자들입니다. 만일 백  목사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면만 자기는 가지고 있어서 언제든지 가르치기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백 목사는 반 쪼가리 사람입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  하고 반 쪼가리 사람이니까 병신입니다. 반 쪼가리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갈라 놓으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못 삽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는가? 그는 뚜렷이 한 사람이 표 되어 있지 안하고  모든 서부교회 교인 전부에게 다 가르침을 받고, 그뿐만 아니라 안 믿는  불택자까지 심지어 무신론자까지. 또 저런 모든 불구자들까지 어떤 사람이라도  내게 대해서 가르칠 권리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다 스승으로 알고 있고 삼고 있고, 또 모든 사람을 만날 때에 이  사람에게서 내가 지금 배울 것이 무엇 인가 하는 언제든지 제자되는 면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 옳은 정상의 사람이요, 또 자기는 가르침을 받을 뿐만 아니라 또  가르칠 그런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기는  평생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전도도 한 번도 하지 안했고 또 말도 별로 잘 하지  안 하고 묻는 말 대답이나 하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은 말 안 하는 것이 지금  다른 사람에게 지금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말 안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고 그  사람의 모든 언행심사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로  말미암아 가르침을 받은 좋은 영향이나 나쁜 영향이나 다 사람들이 입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양면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하면 양면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양면  가지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면 그 사람은 반 쪼가리 사람이기 때문에 실은  병신입니다. 자기 마음에는 병신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서도 실은 병신입니다.

그러기에, 이 양면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언제든지 기억하고 '가르치는  일이니 조심해서 나는 가르치고 있다.' 내 언행심사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모든 사람에게서는 내가 배우기 싫다고 하든지 좋다고 하든지  반대를 해도 나는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에게  영향을 입히지 안하는 사람이 없고 또 사람에게서 그 영향을 입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주의를 해야 되지  주의하지 안하고 그저 껍데기로만 이렇게 생각했다가는 실패를 합니다.

 이 양면 가진 사람으로서 첫째 주의할 것이 무엇인가?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좋은 것이라 말은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들이든지 믿는 사람들이든지 다 좋고  나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래서, 모든 율법과 선지자를 아는 데는 그 율법을  알려면 신구약 성경을 알아야 되겠고, 뭐 세상법 그거는 상대하지 않기 때문에  그거는 상대할 그런 가치가 적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상대하면 그것은  의례히 다 완수가 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상대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  말씀이 율법인데 율법과 선지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를 다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 말은 네가 다른 사람이 너에게 이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싶은 그대로 네가 다른 사람에게 하면 잘 된다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니라' 하는 말씀은 인간이 자기가 '내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해 주면 좋겠나 하는 그것은 다  지혜로운 생각을 가지고 그래 하는데. 사람들이 자기에게 그렇게 해 주기만  원하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그와 같이 해 줄라고는 하지 안하는 거기서 실패가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네가 다른 사람이 네 게 어떻게 해 주면  좋겠다 하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해라. 그러면 자기가 안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 하는 그 이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고  안다는 말이오. 다른 사람이 너에게 어떻게 너를 대우해 주었으면 좋겠다. 네게  대해서 어떻게 지금 행해 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대로 네가 다른 사람에게 하면  된다. 이것이 막바로 성경이요 이것이 막바로 모든 선지자들이 교훈한 교훈이 다  그렇게 말했소  이러니까 사람들이 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가르침 받는 사람들이 아는 데 좋은  것을 압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해 주는 것은 좋은 것을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고 또 자기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을 해 주기가, 심술이 나서 좋은 것을 해  주기가 싫고 하니까 아는 나쁜 것을 해 줍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는 나쁜 대우를 하고 또 다른 사람이 자기 대우는 잘하기를 바라는  것이니까 좋은 것도 알고 나쁜 것도 사람들 이 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다 알 수 있다 하는 것을 여기서 말합니다. 알 수  있다.

 알 수 있는데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좋은 것을 함께 하라.' 하니까. 다 좋은  것을 믿는 사람도 좋은 것을 알고 또 나쁜 것도 알고, 나쁜 것은 대개 좋은 것은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좋은 것 해 주기를 원하는,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해  주기를 원하는 고거는 다 좋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싶은 그것은 다 보면 좋은 것을 촐촐 추려서 가렸다.

그러나 자기는 다른 사람에게 행할려는 것은 좋은 것이 혹 끼어 있을 수 있지만  대개는 나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중심이라는 여기에서 모두가 다 고장이  나 가지고 그런 것이지 좋은 것 나쁜 것을 안다, 그것을 여기서 표시했습니다.

 좋은 것 나쁜 것을 아니까, 가르침을 받는 자나 가르치는 자나 이 쌍방이 다 이  양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좋고 나쁜 것은 안다. 그러니까, 그건 말할  필요가 없고 좋고 나쁜 것은 다 알고 있다. 뭐 성경을 몰라서 못 한다, 그게  아니다. 성경을 성경을 모를 게 아니라 네 속에 벌써 하나님의 율법도 있고  선지자들이 교훈한 것도 다 있고 네 속에 다 있다. 네 속에 다 있는데, 와 그게  어두워졌느냐?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행할 때에는 그게 네가 다른 사함에게  그렇게 좋은 것을 하려고 하지 안하기 때문에 어두워졌고. 또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항상 좋은 것만 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너에게 원수가 되어지고 너로서' 다 대립이 되어지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좋은 것 나쁜 것은 다 알고 있으니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가르침을  받는 자나 가르치는 자는 다 자기가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을 취해야 되는데,  다 가르치고 또 가르침을 받고 이렇게 양면을 가지고 있는 너희 인생들이다.

너희 인생들인데, 너희 인생들은 나쁜 것 좋은 것을 네가 알 수 있다. 나쁜 것  좋은 것을 네가 알 수 있으니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취해라.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취해라.

 그러면,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취하면 어떻게 취하느냐? 네가 좋은 것을,  좋은 것을 네가 먼저 하고 다른 사람에게 또 좋은 것을 하도록 그렇게 해라.

네가 가르치는 면에 있어서 항상 나쁜 것을 취하지 말고 좋은 것을 취하고. 좋은  것을 취해서 네가 먼저 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가르치라. 네가 하고  가르쳐야 되지, 하지 안하고 가르치면 그것은 하나님의 법칙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배우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자기는 배울 때에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이랬기 때문에, 행하라  했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도 자기가 가르침과 행함이 같이 있어야 되고, 또  배우는 사람도 그 배우는 것과 행함이 같이 있어야 되지, 배우는 것만 있고  행함이 없어도 안 되고 가르치는 것만 있고 행함이 없어도 안 된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가르치고 배우는 이 양면을 가지고 있는데, 양면 가지고  있는 이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 나쁜 것 좋은 것 둘이 있으니까 다  같이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택해라 하는 그것 하나 교훈 했고, 그러면,  좋은 것을 택하는데 네가 가르치는 너도 그 좋은 것 네가 가르치는 것과 네  행함이 같이 있어야 되지, 행하지는 안하고 가르치기만 하면 안 된다. 또 네가  배우는 사람도 네가 배우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배우는 너도 배우는  그거와 행함이 같이 있어야 되고 또 가르치는 너도 가르침과 행함이 같이 있어야  된다. 같이 있어야 되는 데, 네게는 '둘을 알고 있다. 나쁜 것 좋은 것을 알고  있다. 이러니까,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을 가르치고 좋은 것을 배우도록  하는데, 가르치는 자도 배우는 자도 다 행함을 같이 해서 이래 해야 되지 행함이  없는, 네가 배우는 것도 행함이 없으면 다 그것이 사망을 이루고, 가르치는 것도  네가 허함이 없이 가르치면 사망을 이루고 하는 것이니까, 사람들은 다 가르치고  배우는 이 양면을 가지고 있는데, 가르치고 배우는 데에 너거가 가르치고 배울  것이 네게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나쁜 것이고 하나는 좋은 것이다. 이러니까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을 가르쳐라. 가르치는 데에는 꼭 행함이 함께 해야  된다. 가르치는 자도 자기가 행하고 가르쳐야 되고 또 배우는 자도 또 배울 때에  자기는 행하고 배운 대로 행하고. 행함과 배움이 함께 있지 안하면 안 된다,  그것을 요게 서론적으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 배우는 것 아주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있는 것,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서. 가지고 있으면서 써 먹는 사람은 심히 드문 것을 오늘 아침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가르치는 면과 배우는 면 이 양면을 가졌다. 양면을  가졌는데,어떤 것을 가르치며 어떤 것을 배우느냐? 거기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둘이 있다. 둘이 있는데, 좋은 것을 주고받아라. 좋은 것을  주고받아라, 그것을 여기에 말했습니다. 좋은 것을 주고받는데 주고받는 그거와  요 행함이 같이 있어야 된다.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그 말은 행하라  그말입니다. 행함이 같이 해야 된다.

 그러면, 양면을 가졌다. 가르치고 배우는 양연을 가졌다. 양면을 가졌는데,  네가 또 가르침을 받는 면을 가졌고 가르치는 면도 가졌고 두 면을 가졌는데,  네가 가르칠 것 가르침을 받을 것 요 또 두 가지가 있다. 가르침을 받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네가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 뭐? 좋은 것과 나쁜 것 두 가지를  가지고 있는데, 네가 거기서 이 두 가지를 두 가지 가졌으니까 좋은 것도  가르치고 나쁜 것도 가르치고 그렇게 하지 말고 네가 거기서는 선별을 해야  된다. 하나는 버리고 하나는 취해야 된다. 좋은 것은 네가 춰하고 나쁜 것은  버려야 된다. 네가 배울 때도 나쁜 것은 배우지 말고 좋은 것을 배워라.

가르치는 너도 나쁜 것은 가르치지 말고 좋은 것을 가르치라. 이러니까 그라면서  그 행함이 함께 있어야 된다. 그 행함이 없으면, 가르치는 자도 행함 없이  가르치면 헛일이고, 가르침을 받는 자도 행함 없이 가르침을 받으면 소용없다.

좋은 것을 행하는 것은, 그것은 좋은 것을 사람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데, 좋은  것을 하는 이는 하나님의 성령이 와야 좋은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 도 하나님의 율법과 선지자를 다 알고 있다 하는 것은 그 속에 생의  애착심이 있고, 생의 본능이 있다 말이오. 생의 본능이 있고, 거기에 고 사랑만  있으면, 생의 본능과 사랑 요 둘을 합하면 필연적으로 좋고 나쁜 것을 다  선택하고 다 지식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인은 어리석지만 어머니는 아주 지혜롭습니다. 그 아이에게  대해서는. 아무리 지혜 있는 의사라 할지라도 그 아이에 대해서는 어머니만치  지혜를 가지지를 못합니다. 고거는 뭣 때문이냐?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의사가  생각지 못하는 것까지 어머니는 다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살고 싶은  생의 애착이 있고 또 거기에다가 자타를 사랑하는 사랑만 있으면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다 알 수 있는 그런 지식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양면을 가졌다. 양면을 가졌는데, 또  좋은 것과 나쁜 것 요 두 가지 지식을 가졌다. 그러니까 가르침과 가르침을 받는  양면 다 해라. 버리지 말고 이 양면을 다 해야 된다. 네가 배우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해야 되니까 이 양면을 다 가져야 된다. 또 네가 알고 있는  것은 좋은 것도 알고 있고 나쁜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는 지금 반  쪼가리를 버려라.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만 네가 택해라. 그라고 그 다음에는  또 가르치는 자도 행함과 연결이 돼야 되고 가르침을 받는 자도 행함과 연결이  돼야 되지 행함과 연결이 없으면 그것은 하나의 공기를 파동시키는 것이고,  공기를 파동시키는 것뿐이고, 또 자기를 정죄하는 것뿐이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뿐이지 실상의 결과는 하나도 없다. 왜 없게 되느냐? 없는 것은,  그것은, 지식은, 지식은 지식으로 전달되고 행함은 행함으로 전달되고 이렇게  전달되기 때문에. '지식에 행함이 같이 동행하지 안하면 이 지식은 정죄하는  지식이 되고 다 그것은 사망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행함이 동행하지 안하면  너는 지식만 자꾸 이래 가르치고 있으니까 그 결과는 자꾸 정죄만 자꾸  이루어지고 사망의 결과만 이루어지지 아무 소용이 없다. 내 앞에서 아무리 뭐  듣는 듯이 어떻게 한다고 할지라도 네가 행하는 그 행함 이상은 되어지지를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목자가 양을 불러 내놓고 앞서 가면 따라오지, 제가 가다가 서면  양이 설 것이고 앞서 가면 갈 것이고, 십 리 갔으면 양이 십 리 따라왔고 백 리  갔으면 백 리 따라 왔지. 너는 가지 안하는데 양은 가는 그런 일은 절대 없다  하는 것을 고정적으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거는 서론입니다. 서론이고, 간단하게 본론을 지금 말하겠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스스로 속이지 마라 말은 자기가 자기에게 다른 사람이  자기를 속이는 것은 속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은 자기를 속이지 못합니다.

요것이 하나님께서 아주 전지한 지혜로 만들어 놓은 법칙입니다. 다른 사람은  자기를 속이지 못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속이지.

 다른 사람이 나를 속여서 나를 꾀어서 속였습니다. 속였으면 내가 그 속임을  받아 가지고 사람들 보기에 해를 보는 것 같으나, 해를 보는 것 같으나 고 실상  해는 사람 보기에만 해지 해는 그 속이는 사람 그 사람에게 그 해를 딱  돌립니다.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을 꾀어서 이렇게 하는데 그 사람이 속였으면  속이는 그 속임을 제가 받아도, 제가 속임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속임 받은  데에서 그것으로 끝장나는 것은 아니고, 속임을 받아 가지고, 속임을 받아서  그걸 제가 옳다고 주장할 때에 제게서부터 그것이 이루어집니다. 옳다고 주장을  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꾸 속기만 합니다. 속기만  하면 망하는 것 같지만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어리석은 사람의 자손은  잘되기 때문에 '어리석은 선조는, 어리석은 선조는 자손의 거름이 되고 지혜로운  선조는 자식을 망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이 그 결과로 남이 그 사람을 속여서,  속일 때 그 사람에게 어리석어서 속습니다. 속으나 사람 보기에는 속았으니까,  그 사람이 해를 본 것 같지만 그 해는 전부 속인 그 사람에게 다 가도록  하나님께서 다 정리를 해서. '요거는 네가 받아야 될 것이라.' 해서 정리하기  때문에 잘나고 위대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다 자자손손이 망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일어서고, 이 세상에 모순된 것 어리석은 사람은 올라가고 지혜로운  사람은 내려가는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 세상은 그 윤회주의라.'  만당이 있으면 골짝이 있고 골짝이 있으면 만당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게  아니고 행한 대로 보응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범한 대로  보응이라. 그러기 때문에, 제가 안 받으면 자손에게도 꼭 제가 지은 죄는 제게로  돌아가지 다른 사람에게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 속는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속이지 말라 보응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지 않는다.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다. 무시를 당하지 안한다. 암만 하나님을 무시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무시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하실 일은 착착 한다. 하나님이 절대  불변적인 원인과 결과의 인과보응, '또 그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시는 것,  이것을 뭐 털끝만치도 거기에, 거기에 조그만치라도 착 오나 그런 게 없습니다.

조금도 틀림없이 고 정확하게 갚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기에 그 범위를  좁게 잡기 때문에 그 범위에서 당장에 인과보응이 안 되니까 '그거  이상하다.'하는 것이지 범위를 하나님이 잡는 대로 범위를 잡으면  인과보응이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혜 있는 사람들은 그랍니다. 사람들이 망하는 걸 보고는  안심해. 망하는 걸 보고는 '아, 그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 이렇게 보고 흥하는  걸 보고는 '아. 그 사람들 위험한데' 그렇게 말합니다. 왜? 망함으로써 망할  것의 원인이 정리되기 때문에 그 결과는 좋지 않겠나 생각하는 것이고, 흥하는  걸 보고는 흥하는 그 결과가 뭐이냐? 망할 것을 흥하는데서 만들기 때문에  흥함의 끄트머리는 망하고 망함의 끄트머리는 흥하게 된다. 그렇게 인과의  보응을 그렇게 정확하게 보고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이  없이, 착착 정리하신다. 하나도 틀림이 없이 정확하게. 하나님은 이 사무에  태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의무에 대해서 게을이 없습니다. 게을이 없고  그저 시간도 어기지 안하고 정확하게, 종별도 모든 선악을 정확하게 판단을 하되  꼭 시간도 정확하게 잡아서, 고 일은 열 시간 잡을 것이면 열 시간 잡을 것,  스물 시간 잡을 것이면 스물 시간 잡을 것, 그것도 시간도 정확하고 종별도  정확하고 판단도 정확하고 평가도 정가하고 또 보응도 정확하고 정확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정확하신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을 사람들은 불교에서 마치  부처 갖다 놓고 섬기는 것같이 그렇게 사람들은 하나님을 생각하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고 정확 하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사람은, 그러면, 요 행함을  가리켜서 말했는데 시간이 없으니까요 행함을 가지고 말했는데 행함에 대해서  주의할 것은, 사람들의 행함이 무엇인가? 행함은 말 그것이 행함입니다. 말  그것이 행함입니다. 또 자기의 고깃덩어리로 행하는 그것도 행함입니다. 또  자기의 마음, 마음의 움직이는 그것이 행함입니다. 또 자기의 모든 생각의  움직임 그것이 행함입니다.

 그러면, 육체로 행하는 것을 두 가지를 말했고. 또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두  가지로 말했습니다. 말도 육체로 행하는 것이요 또 수족이나 이런 행동으로 하는  것도 육체로 행하는 것이요, 또 마음의 움직임도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요 생각의  이런 계획이나 저런 계획이나 뭐 이런 걸 좋아하고 저런 걸 싫어하고 이런 욕심  저런 욕심 그런 것 다 그것이 다 마음의 작용인데, 마음이 행하는 것 두 가지  말하고 육체가 행하는 것 두 가지 말하는 것은 요거 두 가지가 다라는 말이  아니고. 요 두 가지를 말 하는 것은 전부 가운데서 요 두 가지를 예를 들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언행 심사 요거는 그만 다 일반  세상에서도 통계가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계 그것을 기억하면 기억하기가  쉽겠습니다.

 언행이라 하는 것은 말, 행함을 가리켜서 언행이라, 심사라 하는 것은 마음,  생각 이것을 심사라 하는 것이라. 그래 언행심사 언행심사가 자기의 행함인데,  요 잘 들어야 돼요. 언행심사가 자기의 행함인데, 사람들은 고 언행심사 가지고  무엇을 하리라 요렇게 생각하는 요 아주 착각을 버려야 됩니다. 요거 어려운  말입니다. 사람이 말을 가지고 무엇을 하리라고 생각하는 그것을 마귀가 줘  가지고 사람들의 말은 무슨 일을 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말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은 아무것도 못 합니다. 요거 지금 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나, 사람들의 말은 아무것도 못 합니다. 또 사람들의 행동이, 이  행동을 해 가지고 이것 저것 하는 줄 알지만 사람의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또 사람들의 그 마음도, 마음을 이래 먹고 저래 먹고 하면 이렇게  뭐이 되는 줄 알아도 마음도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또 생각이라는 것도 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언행심사는 아무것도 하는 기능이 없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단정을 지워야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귀에게 속아 가지고 이래 말만 하면 될 줄, 생각합니다. 요렇게  말을 요래 해서 다른 사람을 꾀든지 어짜든지 하면 그 사람이 내 말에 떨어져서  그라면 이 일이, 내가 거짓말하든지 수단 방법을 해 가지고 말로 요라면 그 일이  이루어지리라 이렇게 생각합니다. 또 자기가 아주 육신의 힘을 가지고 뭘 하면  이루어지리라 이렇게 생각합니다. 또 자기가 마음으로 기억하고 생각하고 이렇게  하면 뭐이 이루어지리라 이렇게 생각합니다. 언행심사는, 언행심사라 말은 육  체로 하는 것 두 가지, 마음으로 하는 것 두 가지를 말하는 것인데, 그 두  가지뿐 아니라 그만 마음이나 고깃덩어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 의  마음이나 고깃덩어리는 독단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얼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의 고깃덩어리나 마음을 가지고 무엇을 할 줄 알고 안 믿는 사람들은 전부  이 마음과 고깃덩어리 가지고 모든 일을 다 성취할 줄로 알고 마음과 고깃덩어리  가지고 모든 걸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본떠서 믿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을 유혹을 받아 가지고 그런 생각 가자는데 마음과 몸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다만 그것이, 몸과 마음이 그 사람의 모든 결과를 낸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결과 난 것을 보고 하는데. 몸과 마음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왜 마음과 몸 움직이는 대로 그대로 되어지느냐 하는 그것은 그 안에 다른  내용에 복잡한 이치가 있습니다. 이치는 뭐이냐? 이치는 자기가 말을. 말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해서, 하나님을 대적해서 말로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해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그 결과를 내는 것이 말입니다. 말로 가지고, 자기  말하는 그 말로써 하나님과 친근해지기도 하고 그 말로써 하나님과 원수도  됩니다. 이러니까 일은 하나님 혼자 모든 일 하십니다. 하나님 혼자 모든 일  하고 계시는데 하나님 혼자 모든 일 하지 인간은 심신의 단독 가지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다 미혹을 받아 그렇지, 하나님이 절대  주권을 가지고 하시지 인간은 인간의 몸이나 인간의 마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  다만 인간의 마음과 몸은 뭘 하느냐? 마음과 몸은 하나님을 자기가 모셔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좋은 것을 해 주실 수 있도록 그렇게 자기가 하나님을 친근히  하는 것이 마음이요 하나님을 대적해서 '하나님으로 더 불어 싸워 보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마음이요 하나님을 친근히 하는 것이 마음이요, 또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것을 해 주실 수 있도록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마을이요 몸이요. 또 하나님이 나를 멸하지 안할 수 없도록, 하나님이 나를  멸하도록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마음과 몸이라.

이러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과 몸은 어떤 작용을 하느냐? 마음과 몸이 이 모든  일들을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거 착각입니다. 망하는 사람도 망하는  것이 제가 망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망하게 했소. 흥하는 것도 하나님이  흥하게 했소. 이러기 때문에, 인간의, 언행심사라 말은 인간의 심신의 활동이라  그 말인데 언행심사라 말은 인간의 심신의 활동이라 그 말인데, 인간의 심신의  활동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만 인간의 그 마음과  몸은 그것은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좋은 것을  해 주시도록 할 수 있고, 하나님이 자기를 멸하도록 할 수 있고 하는 그것을, 그  작용을 하는 것이 그 심신이지 심신 독단은 아무것도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요것을 구별하지 안하기 때문에 마귀가 착각을 시켜 놓은 것으로써 사람들은  자기에게 무슨, 마음의 작용은 지식 같은 거는 마음의 작용이 되겠습니다.

지식이나 지혜나 총명이나 열심이나 또 지혜나 그런 것은 다 마음의  도구들입니다. 그걸 가진 사람, 또 육체의 건강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은 육체의  힘을 가진 사람은 그것 가지고 뭘 하리라고 생각하는 데 통통 속았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가진 사람은 그 마음 가지고 무엇을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마음의 부요한 사람 마음을 부요하게 부강하게 가진 사람은 다 망하고, 몸에  아주 부강을 가진 사람은, 몸의 아주 강건을 가진 사람은 망하고 오히려 마음의  빈약을 가지고 몸의 빈약을 가진 사람이 많이 성공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너희들의 부름을 살펴봐라. 육체로 보면 그렇게, 육체대로 보면 아주 모든 것이  구비한 사람으로서는 성공자가 적고, 기독교에서 성공자가 적고 아주 육체로  허무하고 빈약한 사람들 가운데 성공자가 많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 요걸 아십시오. 우리의 말에나 행동이나 마음이나 생각이나  하는 이거는, 이 네 가지를 말하는 것은 마음으로 말하면 뭐 마음, 생각, 뜻,  감정, 정서, 또 시기, 질투. 미움, 또 사랑. 또 쾌락 이것 전부 마음의 작용  아닙니까? 마음의 작용도 이거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의 작용을  대표적으로 이 둘을 들어서 말했고, 또 몸뚱이가 걸어가는 것도 있고 또 요렇게  두드리는 것도 있고 뭐 끊는 것도 있고 또 뭉치는 것도 있고 빻는 것도 있고 뭐  이 몸뚱이가 오만 작용 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나, 그걸 말. 행동 요 두  가지로 다 표시한 것은, 고기 덩어리의 전부 말이요, 우리 사람들의 마음과  고깃덩어리 이 둘. 이 둘은 자기의 그 이해 자기의 이롭고 해롭고 자기의 성공과  실패하는 그것은 이 심신은 단독이 아무것도 못한다. 다만. 다만 이것은 무슨,  심신은 무슨 작용을 하고 있느냐? 하나님을 영접하느냐 하나님을 대적하느냐  요것밖에는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요 마음이라는 것과 요 몸이라는 요것 가지고. 그게 왜? 그  마음과 몸 가진 그대로 마음과 몸이 그 사람의 흥망성쇠를 다 결정한다. 생사를  결정한다. 그러면, 심신이 그 사람의 생사를 추호라도 할 수 있느냐? 추호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또 흥망성쇠를 그 마음이나 몸이 할 수가  있느냐? 하지 못합니다. 못 하는데 마음과 몸 이것은 무슨 작용을 하느냐?  마음과 몸 이것이 작용하는 것은 다만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제를 맺는  그것뿐이다. 관계를 맺는 것뿐이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맺는 것뿐이니 그  마음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을 수도 있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자기의  원수로 삼을 수도 있고 또 자기의 몸이 하나님을 원수로 삼을 수도 있고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니,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자기 원수로 이렇게 삼는 거기서 그 결과의 승패가 나타나는 것이지 그 마음 과  몸뚱이 그 독단의 그것이 기능을 가지고 뭐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여기서  지금 오늘 아침에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비밀을 이 깊숙이 들어서 자기가 뭐 성경을 천 독을 읽는다고 해도  알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자기네들이 대대신학자가 된다고 알아지는 것  아니오. 이거는 꼭 자기가 실행하는, 실천하고 또 자기에게 현실에서 믿음을  지키는 거기서만 나오는 것이지 다른 데에서는 나오지를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사람의 마음과 몸, 이 둘은 그 독단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망하는 것도 하지 못하고 또 흥하는 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면 누가  하느냐? 하나님 혼자 하신다. 그러면, 하나님 혼자 하시면 우리에겐 상관이  없느냐? 상관이 있는 것은 네 마음과 몸이, 하나님이 너를 저주하게도 하고  축복하게도 하는 것이 네 마음과 몸 그것이 그 일을 작용하고 있다. 네 마음과  몸이 하나님을 네 원수로 삼아서 하나님을 대적하게도 하는 하나님이 네 대적이  되게도 하고 하나님이 너의 편이 되셔서 네 모든 것을 책임지게도 할 수가 있다.

 이래서 모든 믿음의 사람들, 아브라함이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의  몸으로 자기의 마음으로 무엇을 하려고 생각지를 안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롯은 자기가 소돔 들을 택한 것은 자기네들의 심신 가지고 무엇을 하리라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 롯이요, 아브라함은, 심신 가지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이니 하나님이 좋은 것 해 주시도록, 하나님 그분을  취해서 그분이 해 주실 수 있도록,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그 심신, 아브라함의  언행심사는 전부가 다 하나님 영접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좋은 것을 해  주시도록 하려는 그것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수단 방법을 부려서 아주 그렇게 사람을 이간. 붙여 가지고.

이간을 붙여 가지고 그 사람을 제 사람 만들고 거짓말 요런 수단을 붙여 가지고  사람들을 이용을 하고 그래 하는 것이. 그렇게 말로 가지고 그렇게 하면  이용하면 자기에게 수입이 있을 줄로 알고 또 그렇게 꾀를 써 가지고 하면 될  줄로 이렇게 알아서.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혀를 자기의 혀를 자기를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 뭐 거침없이 활동을 합니다. 자기 혀가 자기를 행복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자기 혀로 가지고 얼마든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혀의  활동을 하고 있고 또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자기가 '행동 하면 돼'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에 자기의 행동 가지고 무엇을 하리라고 생각해 가지고 그  행동을 그 모든 가리지 안하고 어짜든지 있는 전력을 기울여서 행동합니다. 또  자기 마음이나 생각이나 그런 것도 다 그렇게 합니다. 그것 가지고, 그것이  단독으로 하리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것 가지고 하려고 하는데 실은 그것은  털끝만치도 하지를 못합니다. 하지를 못하고, 다 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신데. 그 하는 행동이 하나님이 바싹 부수게 하면 부서지고 하나님이  그것을 아무리 작아도 키우게 하시면 키우고 이러니까, 키우고 또 없애는 것이  하나님에게요, 건설과 파괴가 하나님에게요 심히 뽑는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또  홍하고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요 지혜가 이거 뭐 보통 지혜가 아닌데 뭐 지금 별로  알아듣는 사람이 내가 보기에는 없어. 거기에 대해서 '아. 요렇다.' 딱 알아듣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자꾸 속습니다. 이러니까, 어리석게  껍데기만 보고, 껍데기 망했다고 망했습니까? 망하지 안했소. 껍데기가 흥했다고  흥한 줄 압니까? 흥하지 안했소. 그렇기 때문에, 성공 같은 실패가 있고 실패  같은 성공이 있다는 것을 그것을 가르쳐서, 잔치를 하고, 왕이, 잔치를 청해  놓고 모든 사람을 이래 왔는데 이 보니까 모든 사람들은 다 성공한 사람들은  오지 못했고 실패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만 끌려 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다 성공을 했고 성공한 사람들은 마지막에 왕이 와 가지고 진멸해 버렸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의 혀로 가지고 무엇을 하리라고, 또 자기의 마음 가지고 무엇을  하리라고, 자기의 행동 가지고 무엇을 하리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오판을 전혀  하지 말아야 됩니다. 다만 자기의 말, 행동, 마음, 생각 그것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에게 저주하게 할 수도 있고 축복하게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나를  원수로 삼아서 망치게도 할 수가 있고 나를 흥하게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교회들에게 어리석은 자가 다 그거 때문에 그래 가지고 그 뒤가 망하고 맙니다.

 아합 왕이 아들이 칠십 명이고 그때 왕권을 가졌으니까 얼마나 행복되다고  생각했습니까? 그러나 그의 멸망은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래서, 아합 왕의  아들 칠십 명이 한 동시에 목을 다 끊겨서 한 광주리에 담겼던 것입니다. 아합  왕과 이세벨이 그렇게 참혹하게 망하지 안했습니까? 그거 우리에게 대해서  인간이 볼 수 없는, 그때 사람들은 못 봤지.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홍포 입은 부자와 또 나사로도 우리가 볼 수 없는  시간적으로 장구한 면을 우리에게 보인 것인데, 우리가 만일 이백 살만 살면  어북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백 살만 살면 뭐, 이백 살만 있다고 하면 그  인과보응을 환하게 볼 것이고, '아, 그 사람의 언행심사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안하고 언행심사 그것이 하나님으로 망치게도 하고 하나님으로 흥하게도 했구나.

이러니까 믿음의 사람들은 다 살펴보면 그 언행심사 가지고 하나님이 자기를 복  주시도록, 하나님이 자기를 복 주시도록 전부 하나님 교제한 것 언행심사는 전부  하나님 교제하는 거기에 다 들였다. 언행심사는 하나님 교제하는 데 거기에만  전용을 했고 거기에만 전무를 했고 거기에만 전력을 기울였다.' 이 믿음의  사람들은 위인들은 다 그래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망하는 자들은 보면 언행심사 가지고 무엇을 하리라고, 언행심사  독권으로 언행심사가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주권을 가진 자로. 뭐 하나님도  아무것도 없는 언행심사대로 하면 된다 하기 때문에 그 말에 대해서 수단을  가리지 안하고 그 행동에 대해서 수단을 가리지 안 하고 방법을 가리지  안합니다. 이러니까, 그거 다 자기에게 두고 가는 것이니 그 자기가 자기를  유익되게 하려는 그것으로써 그 언행심사를 했지만 언행심사로 자기 유익되게  하는 저는 하지도 못하는데 언행심사로 하나님이 자기를 망치도록 해 버렸으니  그 결과가 어찌 됩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스스로 속이지 말아라.

스스로 속이지 말아라.' 다 좋은 것 나쁜 것 다 알고 있다.

 이러기 때문에, 가르침과 배움 이 두 가지 이 양면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아라.

양면을 가지고 있는 데는 양면 지식을 가지고,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양면  지식에 대해서는 양면 지식에 대해서는 하나를 버려야 된다. 하나는 허하고  하나는 버려야 된다. 너는 또 가르치고 배우는 이 양면을 가져야 된다. 또 너는  행함이라는 행함은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나 꼭 같이 다 같이 가져야 된다.

버릴 것 가질 것을 이렇게 말을 하고 '스스로 속지 마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자기의 육체로 심은 자는' '육체로 심은 자는' 그 말은.

육체로 심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자기 심신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자는 다 사망을 이루었고. '성령으로 심은 자는' 하나님만이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하나님이 해 주시도록 그분을 교제하는  데에 전 비용을 다 들이는 사람은 그 사람은 다 영생을 거두었다 그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요 대표적으로 말했는데 언행심사, 말, 말 가지고  자꾸 자기를 망칩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들어 보면 그 사람 말 가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몽둥이 맞을 말만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하는 게 전부 하나님을 찌릅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하나님을  주먹으로 자꾸 쥐 박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하나님을 칼로 찌릅니다.

하나님을 칼로 찌른다고 하나님이 죽고 뭐 상하지는 안하지만 그 행동은  하나님이 다 보고 갚고 있습니다. '너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자기의 행함의 열매를 제가 먹으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행함에 그리하면 뭐이 있느냐? 그게 아니라 자기의 언행심사 행동이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맺는 것이 이것이 언행심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우리 기독자의 정당한 신앙.

신앙생활 하라 그 말은 하나님께 피동되라 말인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어라. 하나님과 관계만 바로 맺으면 모든 피조물과 관계가 다 바로 맺어  집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가 무궁세계 가 가지고 억만 년 살았습니다. 억만  년을 살고 나니까, 억만 년을 살고 나니까 억만 년 후에 그때에 처음으로  개발되는 곳 이 있습니다. 억만 년 후에 처음으로 개발되는 곳이 있어. 처음으로  개발 되어서 '아 이거는 억 만 년 후의 일이니까 이것 처음 생긴 일이라.' 하고  억만 년 후에 개발된 그 자리를 갔습니다. 그 자리를 가서 보니까 그 자리에서  나를 환영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환영하고 있는 것은, 와 환영을 하겠소?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대속이 내게 대한 책임을 거기에까지  졌기 때문에, 우리가 시간적으로 말하면 영원까지를 당신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영원까지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존재로 말하면 모든 존재에 대한 것을 다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광대한 구속이라고, 이것을 다 말하지 못하니까 광대한  구속이라고 이래, 말을 할 때도 주님의 광대한 구속으로 이렇게 '주님의 구속의  광대함을 알게 해 주옵소서.' 하는 것은 그 억억만 년 후에 그분이 구속한 것을  내가 처음으로 보고 '아 주님이 여기에까지 나를 구속하셨구나. 여기까지 날  책임을 지셨구나. 이러니까, 누가 주님의 구속에 대해서 평생 가고 영원히 가도  다 모릅니다. 가보니까 또 있어. 내가 모르는 그 구석도 당신이 또 구속하고  있소. 또 그 세계도 구속하고 있소.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다만 하나님을 영접해서 내 언행심사는, 내 혀로 가지고  뭘 할 줄 알고, 말로 가지고 뭘 할 줄 알고 수단 방법을 가지고 간교를 부려  가지고 사람을 만나면 꾀어서 제 사람을 만들고 다른 사람을 헐고 삣고. 이  어리석은 자, 이 미친 자야! 이 미친 자야! 네가 미쳤다. 미쳤어! 네가 화약을  쥐고 불로 들어가도 분수가 있지 네가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을 얻으면 뭐 할  거냐? 그것 가지고 하나님이 네 원수되시니까 그 아무 힘없는 사람 하나 얻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 네가 원수가 되어지니까 네가 화약 짊어지고 불로  들어가는 것이지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러기 때문에, 성령의 사람들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령의 사람들의 사는 일을 세상  사람이 볼 때에는 '어리석다 미련하다.' 제 주관대로 비판하기 때문에 제  주관대로 판단하지만 언행심사는 다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 하나님을 나와  친밀하게 하는 것 그 외에 다른 것은 하지 못하니 내가 친밀하게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복의 역사를 쓸 것이고, 내가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이 나를 멸하실  것이고, 왜? '그러면, 하나님도 당신이 이기주의요 사욕쟁이로 구먼.' 하나님은  당신이 완전이기 때문에 완전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그것이 사랑하는  것이지 완전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한다면 원수가 되고 대적이 되고 멸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가 오늘 아침에는. 우리의 언행심사는 아무것도 자기에게 이해.

흥망성쇠, 생사에 대해서 하나도 하지 못한다. 우리의 심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시는데 내 언행심사의 내 심신은  하나님으로 나를 멸하게 하든지 나를 흥하게 하든지 고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그것이 이 언행심사다. 그러기 때문에 언행심사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에게  어떻게 하시도록 하는 고 작용을 하는 것이 언행심사이기 때문에, 인간의 흥망이  언행심사에 달렸다고 그렇게 그 결과적만 보고 말하고 있는데 그렇게 아는  사람들은 언행심사가 뭐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 떠나서 그  언행심사 단독으로 뭘해 볼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그것이 뭐냐?  육체로 심는 자이다. 그게 육체로 심는 자이다 말한 것입니다.

 가서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많이 생각하면 알아지고 그리 안 하면 모릅니다.

그렇게 쉽게 알아지는 줄 압니까? 몰라요. 내가 종종 말할 때에 이런 것을 좀  주석을 가 봐라. 주석. 사람들이 주석 보기는 힘쓰지만 주석에 암만 나비봐야  모릅니다. 없습니다. 모릅니다. 성경 암만 읽어야 모릅니다. 그것은 성령이  가르쳐 주시면 이 성경에 명문되어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영감이  아니면 성경을 깨달을 자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아라.' 자기가 자기를 속이지 맙시다. 자기 혀로 자기를  망치지 말고 자기 행동으로 자기를 망치지 말고, 자기의 마음보로 그 마음 써는  마음으로 자기를 망치지 말고, 자기의 생각으로 자기를 망치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면, 자기 언행심사가 자기를 망치고 흥하게 할 권리가 있나? 아무 권리  없지만 절대 주권하고 있는 그분에게 그분에게 대해서 자기를 망치게 흥하게  하는 그 일을 자기 언행심사가 만든다 그말이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자기 망치는 일만 언행심사가 했으니 하나님을 그런 하나님으로  만들어 놨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멸하는데 누가 어떻게 자기를 거기서  구출할 수가 있겠습니까?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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