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신사참배 도전앞에 선 주기철목사

 

1253_758_5946.jpg 선지자선교회

 주기철 목사 웅천교회 시무-경남노회 종교교육지도자 하기 수양회(1930)

 

한국교회사를 한 번이라도 연구한 이들이라면 신사참배 문제는 1930년대 접어들어 한국교회가 만난 최대의 위기였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전국에 신사를 건립하며 용의주도하게 신사참배를 준비해 온 일제는 19316월 만주사변이 발생하고부터 신사참배를 노골적으로 강요하기 시작했다.

언론은 일제의 깊은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다. 동아일보는 혹은 거울로 혹은 구술로 혹은 칼로……모양을 만들어 모셔 두고 신이 여기에 있다 하여 이에 대하여 숭배하며 또는 기도함은 모두 우상숭배라며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을 가하다 정간을 당했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일제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속간하자 1925318일 사설에서 신사참배 강요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신사에 대하여 일본인이 숭고한 경의를 표하는 것은 일본민족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일본인만 위하는 신사에 대하여 일본인 이외에 민족이 일본인과 같은 감정으로 신사 존중하기를 바라지 못할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고 외쳤다.

일제는 누누이 신사가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고 단지 국가에 대한 예식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었다. 동아일보는 신사참배가 단지 국가에 대한 예식에 불과하다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일제의 검열과 통제 아래 언제나 폐간의 위협을 받고 있는 언론이 국민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일하게 일제에 대항할 조직은 교회밖에 없었다.

장로교 총회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앞에 결집된 의견을 피력했다. 1932917일 일제가 평양의 만주출정용사 위령제에 미션스쿨 전 학생들이 참배할 것을 지시하자 총회는 기독교 학교 생도는 타종교식전(他宗敎式典)에 참열함을 불허(不許)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총회적인 차원에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선 것이다. 총회는 1935년 정인과, 염봉남, 이인식, 장규명, 관신근, 이학봉, 오천영을 연구위원으로 임명하였다.

일제의 신사참배 앞에 소양 주기철 목사는 분명한 입장을 피력했다. 신사참배의 도전 앞에 한 치의 양보나 타협이 없었다. 그는 성서대로의 신앙, 성서가 가르치는 대로의 사역을 통해 암울한 역사적 현실을 넘어 조국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직시하였다. 소양에게 불의와의 타협은 곧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신앙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한국교회가 이런 역사적 섭리를 거슬러 올라가 타협한다고 해도, 소양만은 결코 그럴 수 없었다. 1934년의 설교, 죽음의 준비는 이런 소양의 신앙적 결단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일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매일 매일 자기를 쳐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복종하는 것, 불의한 시대에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 조국의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역사적 혜안으로 관조하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진정한 이 시대의 예언자의 모습이리라.

193551일부터 5일까지 약 200여 명의 장로교 목사, 선교사들이 일제 총독정치의 식민화 정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금강산에서 모였다. 여기서 소양은 예언자의 권위라는 설교를 통해 예언자적 혜안을 가지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의 횡포에 항거했다. 구약의 참 선지자들은 불의의 세력 앞에 타협하지 않고 문제들을 고발했던 시대의 선각자들이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황폐를 고발한 구약의 엘리야가 그랬고, 평안하다, 잘되어 간다고 집권당국에 아부하는 자들이 득실거리는 당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대를 고발하고 경계했던 예레미야가 그랬으며, 생살여탈의 대권을 잡은 임금 앞에서 그 죄를 책망했던 세례 요한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기독교 2천 년의 역사 속에 불의를 불의라고 외쳤던 일사각오의 신앙인들, 피의 여왕 메리 앞에 굴하지 않았던 존 낙스, 교황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성경과 신앙의 양심을 따라 종교개혁운동을 전개했던 마르틴 루터,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제네바에서 신정정치를 실현했던 존 칼빈, 모두 시대에 살면서 당대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들이었다. 일본 천황의 숭배 곧 그것은 배도의 길이며, 망국이라고 외쳤던 주기철의 용기, 그것은 엘리야, 예레미야, 그리고 세례 요한의 용기, 바로 그것이었다.

경계의 태세를 늦추지 않으며, 목사 수양회를 감시하던 일제 경찰관이 중지!라고 외치자 소양의 설교는 중단되었다. 그러나 소양은 천황제의 사신 우상성, 그리고 그 국체의 독신성(瀆神性)을 고발하는 하나님의 종의 자세, 거기에 비로소 진실한 목사, 충실한 예언자의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교계 지도자들과 일경 앞에 천명해 모인 이들의 의지를 새롭게 결집시켰다.

19335월 조강지처 안갑수와 사별한 소양은 2년 후 193511월 우여곡절 끝에 그가 시무하던 문창교회의 집사로 있던 강직한 여인 오정모와 재혼하고, 바로 그 다음달 평양신학교 사경회 강사로 초빙받아 후배들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순교자의 결단을 담은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193512월 평양장로회신학교 사경회 때 한 일사각오의 설교는 소양의 예언자적 혜안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설교다.

예수를 따라서 일사각오, 타인을 위한 일사각오, 부활진리를 위한 일사각오, 그것은 예수 안에서의 죽음이 진정한 생의 출발이며, 부활을 위한 입문임을 선포한 것이다. 예수를 버리는 것이 죽는 길이며, 오히려 예수를 따라 죽는 것이 정말 사는 것이며, 죄인을 위해 죽기까지 피 흘리시고 자신의 생명을 주신 그 남을 위한 희생, 그것이 바로 이 시대 우리가 따라야 할 가르침이다. 죽음 저 너머에 보여 주시는 부활의 희망, 바로 그것이 죽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될 이유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설이 그리스도 생애 속에서 살아 있는 진리로 승화되었듯이, 죽음과 그 너머의 부활이 소양의 전 인격 속에 완전히 하나로 용해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소양은 예수의 말씀 그대로를 자신의 주어진 실존 속에서 행동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남을 위한 희생을 본받아 타인을 위한 일사각오의 신앙구현, 불의의 도전 앞에 순교를 각오하고 외치는 진리의 소리, 그것은 이 시대를 찬란하게 여명하는 광야의 소리이며, 잠들어 있는 수많은 영혼들을 각성시켜 하나님의 섭리를 조망하게 만드는 이 시대의 나팔이었다. 그의 순교자적 결단의 신앙은 평신의 학생들만 아니라 그곳에 참석한 평신의 교수들, 특히 박형룡에게 엄청난 도전을 주었다. 이 소식이 산정현교회 당회원들에게도 알려졌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박형룡이 볼 때 산정현교회를 지켜 줄 적격자는 주기철밖에 없었다. 박형룡은 이미 3년 전 경남노회 신학수양회를 통해 소양이 이단과 자유주의 사상에 대해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복음적인 신앙의 목회자임을 확인한 데다, 최근의 초량교회와 마산문창교회에서의 목회, 그리고 총회에서의 그의 지도력으로 이미 교계에 잘 알려진 차제에 산정현교회 후임자로의 추천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당회에 산정현교회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가 바로 주기철 목사라며 그의 청빙을 강하게 권했던 것이다.

몇 년 전 교역자 수양회에서, 다시 평신의 사경회에서 소양의 예언자적 혜안과 순교자적 결단, 탁월한 인격, 그리고 보수 신앙의 뿌리를 재확인한 박형룡은 몇 개월 후 소양에게 한 통의 편지를 발송했다. 19363월 한 달 간의 일본 순회집회를 마치고 돌아온 소양에게 평신의 박형룡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송창근 목사가 사임했으니 후임문제를 상의했으면 좋겠다며 산정현교회 담임목사로의 청빙을 타진하는 편지였다. 산정현교회로부터 청빙 요청을 받은 소양은 그를 향한 거룩한 부르심으로 받아들이고 주저하지 않고 문창을 떠나 평양으로 올라왔다.

-박용규교수, 한국교회와 민족을 깨운 평양산정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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