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30 18:24
■ 해와 같이 빛나리
주남선 목사님
저자 서문
한상동 목사님의 권유로 주남선 목사님의 전기작업을 착수한 것이 1971년 9월의 일이었다. 일생을 산 순교자로, 순교 일념으로 사신 주 목사님의 생애를 정리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기록으로 남겨 둔다는 것은 보람된 일이므로 기쁨으로 이 일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다 보니 대단한 작업이었다. 우선 연고자들을 찾아 만나는 일이 큰 부담이 되었다. 목회를 하는 사람으로 많은 시간을 내어 쏘다닌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뛰어 보았다. 자료 수집에 4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야기 배열에는 많은 참고 서적이 필요했다.
지역의 정확한 기록을 위하여 거창을 네 번이나 갔다. 그리고 합천, 함양의 여러 교회들을 다 순방하였다. 평양 형무소를 제외한 모든 곳을 다 둘러보았다.
집필에 들어가면서 특별 기도 주간을 정하고 기도하였다. 할 수 있는 대로 주 목사님 외의 것을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일념으로 집필을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꿈마다 주 목사님이 나타나시는 것이었다. 생전에 나는 주 목사님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꿈마다 나타나시는 주 목사님은 나에게 그의 독특한 장점들을 다 보여 주셨다. 그의 옷을 입으신 모습이며, 걸음걸이, 사람을 대하는 부드러운 얼굴 모습, 그리고 그의 말 음색까지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그의 붓글 솜씨까지 다 보여 주셨다.
평양 형무소 일들을 집필할 때 였다. 나는 밤마다 평양 형무소에서 살았다. 형무소의 모든 광경을 선명하게 구경한 것이다. 하도 신기해서 나는 한상동 목사님을 찾아가 평양 형무소에 대하여 대화하였다. 한 목사님은 형무소의 구조를 잊고 있었다. 내가 꿈에 본 것을 이야기 할 때 기억이 살아나 세밀한 도움을 주었다.
집필이 중간쯤 진행되었을 때부터 한상동 목사님은 몹시도 초조감을 보이면서 출간을 기다리셨다. 그런데 결국 목사님 별세 후에야 완성이 되어 출간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작업을 위해 주 목사님 자녀분들이 성심으로 뒷받침을 해 주셨다.
자녀들은 자신들의 가정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을 계면쩍게 생각하였지만 주 목사님은 한 가정의 아버지이기 전에 한국 교계에 큰 비중을 지닌 분이시며, 그를 통하여 나타나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기꺼이 출판이 되어졌다.
이제 책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신앙으로 살았으며, 어떻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여 주었는가를 잘 깨달아 그 신앙 산맥을 이어가기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1979, 9.20
저자 심군식
머리말
고려신학대학장 오병세 박사
외국 격언에 ?담배와 사람의 좋고 나쁜 것은 연기가 피고 난 다음에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사람이 죽으면 화장하는 나라에서 쓰는 격언인데, 담배가 타서 재가 되고 사람이 죽어 화장하여 재가 되고 난 다음에 그 담배와 사람의 참된 가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주남선 목사님이 별세한지 25년, 이제 기다리던 주 목사님의 전기가 나오게 됨을 늦게나마 다행으로 생각한다. 주 목사님은 ?오직 믿음?(Sola fide)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에게서 믿음을 빼 놓으면 흠모할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일관한 어른이었다.
필자가 주 목사님을 알게 된 것은 1946년 9월 고려신학교의 개교 때 부터이다. 주 목사님은 늘 한복을 입고 다니시는 것이 그 특색이었다. 검은 가운을 입으실 때도 양복을 입지 않으시고 한복 위에 가운을 입으셨다. 주 목사님은 부태가 나는 분은 아니고, 여윈 어른이었지만 악수하실 때 젊은 사람의 손이 아프도록 꼭 잡으셨다.
그 어른의 설교에는 많은 사투리가 섞여 나오고 웅변은 아니었으며, 부흥사도 아니었으나 그에게는 한 가지 특색이 있고, 강한 무기가 있었으니 곧 진실이었다. 그에게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 등은 찾아 볼 수 없는 것 같았다. 그 어른에게 시원스럽다든지, 훤하다는 것은 없어도 그에게서 참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어른은 평화스럽고, 말씀은 조용히 하였으나 어려움이 올 때에는 강철같은 신앙의 소유자였다. 참 외유내강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주 목사님은 자신을 나타낸다거나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선전효과와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너무나 자기 선전에 급급하는 이 시대에 주 목사님 같은 분이 사모가 된다. 그는 실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분이었다.
고려신학대학의 전신인 고려신학교의 두 분 설립자 중에 남은 한 분인 한상동 목사님이 별세하신 해에 주목사님의 전기가 나오게 된 것도 뜻이 있는 일이다. 그동안 고려신학대학 안에는 주남선 목사 기념관이 건립이 되어, 그의 신앙의 유산을 기념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목회자요, 문인인 심군식 목사님의 역작을 통해서 주 목사님의 생애와 그 신앙의 열매를 자세히 알 기회를 갖게 되어 독자 여러분과 함께 기뻐한다.
이 책을 읽고 독자 여러분도 다같이 주남선 목사님의 신앙의 대열에 가담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드리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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