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교만


선지자선교회 1985년 7월 1일 월새

 

본문 : 베드로전서 5장 5절∼9절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여기에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말씀했습니다. 허리를 동이면 온 전신이  뭉쳐져서 힘이 생깁니다. 허리띠를 풀어놓으면 몸의 힘이 집중될 수 없어  흐트러져서 약해지는 것입니다. 겸손으로 허리 동이라 그 말은 겸손 가지고 네게  있는 힘을 다 발휘할 수 있고 네 사명을 다 감당할 수 있도록 너를 힘있게  강하게 만들어라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면, 겸손은 어떤 것이 겸손인가? 그 밑에 간단하게 해석해 놨습니다.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능하신 손이라 말은,  주님이 모든 것을 다 주권하고 계십니다. 주권의 의지로 모든 것을 다  예정하시고 예정하신 것을 또 주권의 능력으로 성취를 하십니다. 개미 한 마리가  수염을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 혼자의 주권으로 그 모든 것을 하고 계시지 개미  저 단독으로는 못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줘야 하고, 또 공간에  용납해야 공간을 제가 사용을 해서 수염을 요리 조리 움직일 수가 있고, 또  활동을 주권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것에게 활동할 수 있게 해 줘야 그것이  움직이지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라 그렇게 우리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머리털까지 세시느니라'  주님이 말씀하셨고 머리털 하나의 희고 검게 하는 것도 너희들 자유로 하지  못한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한 것은 그 개별 섭리를 나타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데 우리가, 주님이 우리에게 계속 주시지 안하시면 우리는 생명이 끊어질  사람들입니다. 생명 일각의 보존도 우리 힘으로 하지 많고 주님이 해 주시는  것을 입어서 우리가 힘입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정신이라 하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의 정신을 주관하셔서 우리의 정신이 다 이런 모양 저런 모양 이런 정도  저런 정도로 되어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뽑아 버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진공입니다. 영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진공입니다. 우리는 진공  같은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었던 존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없었던 존재에게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하나씩 둘씩 주어서 가해서 보태서  건설하게 되면 우리들이 차차 차차 모든 것이 구비해서 건전한 사람도 되고  건전한 정신도 되고 건강한 몸도 되고 올바른 지식과 지혜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하나씩 채워 주시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나쁜 데 속한 것 악에 속한 것을 하나씩 둘씩 채우면 그 사람이 어떤  악인이라도, 어떤 어리석은 자라도, 어떤 정신 이상자라도, 어떤 불구의  무능자라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진공같은 우리인데 주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채우시느냐 나쁜  것을 채우시느냐 하는 거기에 우리가 달려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대해서는  어떻게 낮은 자라도 그와 나와 밑천이 같다는 것, 그런데 하나님이 날 불쌍히  여겨서 나에게 좋은 것 주셨고 그에게는 좋은 것 주시지 안했으니 그에게 대해서  교만할 것 아니고 우리는 자세를 부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안스럽게 여기고  자비와 긍휼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도 불쌍히 여기셔서 그도 그와 같이 해  주셨으면 좋겠다 하는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은혜의 빚을 지고 있는  우리들로서 합당한 정신이지 거기에 대해서 나는 무슨 스스로 내가 된 것처럼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이렇게 교만의 자세에 빠지는 그런 것을  가리켜 다 교만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바로  모르는 것이 교만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아는 것이 겸손이라는 것을 수십 번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자기를 알고 자기가 자기로서, 자기를 잊어버리지 말고 자기가  자기로서 사람 앞에도 나타나고 하나님 앞에도 나타난다면 하나님의 노를 끼치지  안하고 겸손한 사람이요 또 희망이 있는 사람이라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얼마든지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겠습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말해도 다른  사람은 내게 대해서 안다고 해도 외부만 알지 자기만이 아는 것은 다른 사람은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는 모를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행동에 대해서도 자기가 아는 그 모든 연약성과 허물과 죄악된  모든 것과 이런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은 모를지라도 주님은 보고 계시기에 주님  앞에서 자기가 자기로서 바로 나타나 가지고 그런 자로, 자기의 정상적인  자기로서 나타나 있지 안하고 벌써 시간 얼마 지나갔다고 자기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금방 어떤 살인 강도가 그만 당장에 제가 잊어 버렸다고 아주  성자와 성녀처럼 그렇게 가장을 해 가지고 오인하고 나타나는 그런 것이 다  교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과장하고 과인하고 과대 평가 하는 것이 그것이  다 교만이요, 겸손은 뭐 있는 것을 없다고 그렇게 하고 둘 있는걸 하나 있다는  것을 그 하나님이 겸손이라고 요구하는 것 아닙니다. 자기를 정상적으로 정평  정가하고 정상적인 자기가 자기로 알고, 사람은 모지 라도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그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라면 자기의 정상을 아는 사람이니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좋은 걸  진도 실족함이 없을 것이고, 또 무엇을 맡긴다고 해도 제가 할 일을 하고 못 할  것은 못하는 줄 알고 해 놓고도 또 제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순전히  주셔서 은혜를 줘서 저는 은혜의 기관이 되어 이런 것 저런 것 한 것이지,  우리에게는 털끝만한 힘도 없고 지혜도 없고 옳은 건 아무것도 없는 진공 같은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능하신 손아래 겸손하라' 너는 털끝만한 것도 할 수 없는 네가  순전히 하나님께서 은혜 주석서 그 은혜를 가지고 은혜 둘을 받으면 오히려 은혜  둘 생활하지 못하고 은혜 둘을 받으면 하나쯤이나 하든지 열이나 받으면 하나를  하든지 하나님이 좋은 일 하게 하는 그 모든 은혜 주신 것을 네가 삭감시켰고  은혜 역사를 가로막은 것뿐이지 네가 아무런 하나님이 하시는 데 도운 일이  없는데 네가 뭐 하는 것처럼 그렇게 교만해 가지고 네가 우쭐해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사람을 무시하고 또 네가 뭐한 것처럼 네 공로를 사울 왕처럼  기념하고 이렇게 망령을 부리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능하신 손 아래' 지극히 작은 것도 그분 혼자 주권의 능력으로  섭리하고 계시는 이 사실을 모르고 네가 뭐 한 것처럼 우쭐해 가지고 그렇게  하고 있으니 네가 그 행실을 회개하고 '능하신 손 아래' 주권의 능력으로 주권  의지로 예정해 놓은 것. 주권의 능력으로 당신이 너를 붙들어 섭리하시고 저런  무엇을 붙들어 섭리하셔 가지고 이루시는 그 능력 아래 겸손하라. 너를 네가  바로 알고 행동해라. 그전 때에 하나님 앞에 마찰이 없고 하나님이 하실 때에  얼마든지 은혜를 주실 수 있습니다. 제가 모르고 월권적으로 과대 평가하고  과인하고 날뛰고 있으니까 그 사람에게 은혜 주는 일도 중단할 뿐 아니라, 그  은혜를 주신 이를 모르고 주신 목적을 모르고 받은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주실  때 나에게 권세 주신 그 수권 범위가 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에 그  은혜에 대해서는 어떤 범위 내에서 어떤 면으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인데 벌써  받은 것을 모르고 또 어떻게 하라고 하는 용도도 모르고 월권해 가지고 날뛰고  있으니까 그 사람에게 주실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이미 가진 것도 그거 가지고  불장난을 하기 쉽다 말이오.

 불장난 한다 그 말은 요새 많이 쓰는 말인데 불장난하면 성냥 한 개 가지고  이렇게 아이들이 잘못해 가지고 뭐 여러 수십억의 재산이 전소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무 철없이 모르고 벌로 행동해 가지고 큰 일을 나타낸다  말이오. 우리 장생골 기도실에도 지금 불장난을 해 가지고 그런 것입니다.

이래서. 그것 때문에 ○○목사하고 ○○목사님하고 두 분을. 두 분은 양산동에  왔다가 가지고 오다가, 토요일날 오다가 못 와서 길가에 차안에서 자고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또 오늘 벌써 두시에 또 거창을 떠났습니다. 대구로 가서  ○○목사 같이 가도록. 또 서울에서도 내가 너무 일찍하면 안 될 터이니까  네시에 서울에서 ○○○목사님에게서 걱정이 돼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런데, 철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를 과대 평가하고 뭐 제가 한 공로처럼  우쭐하지, 사람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니까 무슨 하나님처럼 아주 전능의  전권의 그런 권세를 가진 것처럼 고자세하지 사람들을 무시해서 멸시해서 이래  가지고 그 현장에서 망치 들고 서로 싸우는 그런 일도 있었고 또 뭐 오는  사람에게 아주 고자세로 가지고 인격을 멸시해서 그렇게 아주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그런 행동들도 많이 있었고 뭐 별별 부정한 행동이 있었는데, 제가  오늘 새벽에도 기도를 할 때 가만 생각해 보니까 반일 이 일을 하나님이, 그  공기와 분위기를 볼 때에 너무 우쭐해 가지고 서 그만 일사천리로 돼 놓니까  저거가 하나님처럼, 어떻게 겸손히 은혜 받아 가지고 조심하지는 안하고 암만  주의를 시켜도 뭐 우쭐해 가지고 이래 되다 보니까 만일 그대로 공사가  진행됐다고 하면 공사하다가 인명 피해가 몇이나 생기지 않겠느냐 하는 그런  생각이 제게 들었습니다.

 먼저 ○○교회 집을 지을 때에 내가 ○○교회 ○○○목사님, 지금은 인제 철이  들어서 안 그렇습니다. 그때에 '네가 날뛰는 거 보니까 아무래도 사고 내겠다.

네가 그래 가지고는 집이 되는 게 아니다.' 그것을 권찰회 모인 권찰회 앞에서  말했습니다. '네가 사고 생긴다. 이러니까 함부래 네가 정신 차려서 회개를 하고  새 정신 가지고 시작해야지 그라면 안 된다' 그런 말을 내가 몇 번 누누이  했습니다. 이래도 뭐 '지으면 되지 그럴 게 뭐 있는가' 이래 가지고 하다가 그때  슬라브를 하다가 슬라브가 팍 내려앉았습니다. 그때 뭐 만일 하나님이 치워  주셔서 그렇지, 그 밑에 의례히 슬라브 하면 밑에 목수들은 들어가 가지고 뭐  고치고 이라고 하는 건데 푹 내려앉았으면 사람이 몇 명이 살해가 됐을지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위험을 가지지 안하도록, 그래 내려앉았습니다.

내려앉고 나니까 그만 그때는 겁이 나 가지고 뭐 이제는 안 지을 수도. 집도 다  뜯어서 예배 볼 자리도 없고 이러니까 '뭐 스레트로 그만 입히고 어짜고  하겠습니다.' 그 쪼그만한 일만 있어도 간이 콩낱 같은 꼼짝도 못하는 그런 콩낱  같은 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만 그렇게 들어와, 간이 커지면 그렇게 교만해  가지고 과잉된다 그거요. 그래서 그때 모두 연보해 가지고 슬라브 집을 즉시  짓기는 지었습니다. 지어서. 다른 교파들도 그런 어려움 당했으니까 그렇다고  돈을 연보를 해서 도움을 해 줬습니다. 해 준 걸 그 뒤에 도로 갚으라고 해서  갖다 갚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들의 정신을 보고 분위기를 보니까 그와 같이 만일  한다고 하면 '뭐 일도 아무래도 하면 다 되는데' 이래서. 목수 일도 어떻게  했는지 지금 내 생각에 목수 이들도 '그만 하면 되니까' 이래 가지고 부주의로  바로 내려앉을 그런 지금 목수 공사를 해 놓고 있지 않느냐, 또 하다가 이래 뭐  거석하면 야단을 지기고 이러니까. 사람이라고 하 것은 감정의 존재인데  이라다가 무슨 말하면, 그 날도 망치 들고 내가 그 분위기를 물으니까 그런 일  생겼는데 망치 들고 때렸으면, 기도원 짓다 가 사람을 망치로 때려서 죽였다  하면 그거 어찌 됩니까? 그거 뭐 짓고 못 짓는 게 아니라 그보다 더 큰일이 쌨다  말이오. 그 일이 얼마든지 날듯 날듯 한 그런 일이 뭐 하나 둘이 아니라. 그래서  그런 것을 내가 엊저녁에 써 가지고 여기에 두 청년을 보냈습니다. '그  ○○목사에게 편지를 가져가라. 가져가 이거 읽어 보고 좀 참고로 삼아라 그렇게  해서 보냈었는데 오늘 떠나서 예배 마치고 나면 또 전화를 해 가지고 주의할 걸  좀 주의를 줄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 아시기 때문에 교만하면 절단납니다. '야 이거' 큰  화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만일 이거 잘못 주의해서 하는 날이면 이 공사에 하나  기둥 하나 삐끌어져도 전부가 다 몰사하게 되는 것이니까 이거 어찌 되느냐'  이렇게 좀 자꾸 겸손히 주의 해야 되지 그만 일사천리로 되니까 뭐 교만해  가지고 뭐 모두 사람들의 정신이 다 비정상이 돼 가지고 있는 것 같애.

이러니까, 우리도 기도하고 나도 그만큼 되니까 감사만 하고 기도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들고 간절한 마음 가지고 기도하지 못한 그런 죄를 나도 자복을 합니다.

또 뭐 양산동에 가 가지고 뭐 한다고 그래 놓으니까 양쪽에 일을 벌여트렸으니  내딴에는 그러면 거기 대해서는 기도하지 못하고 가 가지고 이리 저리 하다 보면  산에 가서 기도하는 시간도 별로가 없고 자꾸 그래 됐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해서 하나님이 뭐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하시면 누가 그걸  막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섭섭해하시면. 손을 떼시면 모든 것이 집중  사격하기 때문에 우리가 견뎌 배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노여워하신 것을 그것을 찾아야 되는데, 그래서 그 노여워한 것을 그것을  찾을라고 애를 쓰고 있고, 무슨 다른 일을 준비 할라고 애 쓰지 안하고 그것은  별로 생각지, 안하고 하나님의 노를 풀어야 되겠다는 데 대해서 지금 다 정신  일치가 돼 가지고 서로 찾으면서 겸손히 회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에게  모든 전권이 계시고 하니까 그분의 비위를 맞춰서 그분이 연약하고 아무것도  없는 진공 같은 나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아무것도 없는 무능한 무지한  나에게 당신이 좋은 지능으로 도와 주셔서 이렇게 해야 된다는 요 정상적인,  우리가, 우리는 피조물이요 우리는 진공 같은 자요 전적 죄와 허물로 부패해서  전적 부패한 완전히 죽었던 자이니까 이런 줄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서 시간에 따라서 순서적으로 때가 되면 너를 높이리라  때가 되면 이제 존영하게 되어질 터인데 미리 알고 그래 가지고 날뛰어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을 하나님께서, 사무엘상 15장 7절에 보면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기실  때에 하나님께서 왕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머리로 삼지 안했습니까? 이랬는데  왜 왕이 스스로 높아져 가지고 하나님을 노엽게 해 가지고 이렇게 멸망을  합니까?' 그라면, 그러고 난 다음에 우쭐해 가지고 기념비 세우고 기념비를  세워서 '아, 사울 왕이 성공했다.' 기념비 세우고 사무엘이 가니까 '아, 사무엘  선지여,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십시오.' '무엇 때문에?' '아, 사무엘 선지가  나한테 말한 것을 내가 다 백프로 다 충성을 해서 완료를 했기 때문에 나 때문에  사무엘 선지가 하나님 앞에 칭찬 받고 축복받을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노여워 해 가지고 사울 왕 망할 것을 지금 보고 기가 차서 갔는데 그런 소리  하기 때문에 사무엘이 기가 차서 '왕이여 하나님의 말씀을 좀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제사보다도 당신에게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겠소?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왕을 버려서 왕이 되지 못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그라고 난 다음에 비참하게 지내다가 다 자살로 죽지  안했습니까?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는 털끝만한 것도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게 대해서 뭘 하겠습니까?  '요거야 내게 대해서 내가 하지' 안 됩니다. 주님이 막으시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대해서 털끌만치도 자기로서는 유익하게 할 수는 없고 다  해치는 것뿐입니다. 인생 역사에 인류 시조 아담 하와로부터 내려오면서 인생이  자기를 자기 망친 일뿐이지 자기 구출한 일은 털끝만치도 한 일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너를 어떻게 할라고 잘할라고 네게 대해서 네가 책임지지  말고 다 '주님이 이걸 책임지시고 잘 해 주십시오' 주님에게 맡겨라.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맡기는 이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맡겨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너를 돌아봐야 되지  돌아보지 안하면 안 된다. '근신하라' 네가 조심 해라. 너는 항상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이니까, 지금도 또 죄와 허물로 죽는 자요 실수하는 자이니까 죄와  허물에 걸리지 안하도록 네가 조심해라. '깨어라' 깨어라 말은 네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이 주격이 돼 가지고 사는 것은 깨는 것이요 새사람이 되어  있긴 있지만 새사람이 자기가 자기 행동을 하지 안하고 생명은 들어 있지만 자는  자는 죽은 자와 꼭같지 않습니까? 네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으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의 힘을 가지고 거기에 피동돼서 살려고 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는 쉴새 없이, 우리가 바다에 빠졌을 때에 물 아닌 면이 하나도 없는 거와  같이 이렇게 마귀가 전면적으로 우리를 지금 집중 사격하고 있는 이것도 알지도  못하고 지금 철이 없어 날뛴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을 지도 못  합니다. 철없어 교만한 것이 이게 자꾸 머리를 대고 흔들어 재끼니 이거 어떻게  하겠소? 그거는 할 수 없어 하다가, 하다가 안되면 깨지도록 냅둬야 돼. 그거  코가 깨지든지 뭐 눈이 빠지든지 그라고 난 다음에라야 정신 차려. 그러니까  하나님도 할 수 없어 기독자들이 대개는 망해서 할 수 없는, 망하고 난 다음에  그때사 지금 그것이 푹 수그러져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다시 치료라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믿음 굳게 하라 말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또박 또박 하나씩 순종하는 것으로 굳게 해라. 네가 다른 거는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을 어떤 분이신 것을 네가 믿고 그분에게 대해 무식하지 말고 그분을  대해서 어떤 분이신 것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언행심사가 또박 또박 네가  순종하라 이거 외에는 마귀를 대적하는 길이 없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 앎이니라'  이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이래도 고생 저래도 고생하는 것인데 네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어렵다 해도 이거는 사는 어려움이오. 사는  어려움이요,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죽는 어려움 당한다. 죽는 일 하면서 어렵고  죽는 어려움 당하지만 너는 사는 어려움이니까 죽는 어려움보다는 사는 어려움이  낫지 않느냐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어짜든지 우리는 겸손합시다. 교만하면 안 됩니다. 할 수 없습니다.

아마 어제도 설교하고 난 다음에 설교를 듣고 '저 목사님이 똑 아이들에게  대해서 하는 말같이 저렇게 한다.' 그거는 내가 한 말이 아니오. 하나님께서 다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뭐 인간들에게 못 할게 뭐 있겠소? 나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는 것이지, 설교를 듣는 것이지 내가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 아니오.

배우는 사람들이 배우는 태도 가지라 그말은 나한테 배우란 말 아니오. 하나님께  우리는 배우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배우는 태도로, 뭐 하나님 앞에 학생이 돼  가지고 일어서라면 일어서고 손 들라고 하면 손 들고 또 뭐 발언하라고 하면  발언하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겸손히 이렇게 해야 돼지는 것이지, 그만 '저  사람에게 배운다.' 사람에게 배울 게 뭐 있소? 모든 사람 나보다 다 나은  사람인데. 여기에 있는 사람 모든 사람 나보다 다 나아. 나보다 다 나은 것은  나보다 모두가 다 깨끗하고 모두가 다 거룩하고 모두가 다 진실하고 모두가 다  순진해요. 지식과 지혜가 더하면 번민이 더하다고 다른 사람 모르는 걸 아는  것만치 거기서 또 아는 꾀를 파기 쉽다 그말이오. 내 여러분들보다, 뭐 내가  진정 여러분들보다 털끝만치도 낫다고 생각지 안해. 낫다고 생각지 안해. 제일  여기, 이 가운데 제일 부족한 자라고 그렇게 느끼는 것을 내가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진정 내가 속에서 하나님 보실 때 그렇게 내가 알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나한테 배울 게 아니라 하나님한테 배우라 말인데 그것도 아마 오 해를 하면 '아  뭐 꼭 국민학교 학생들 놓고 선생이 말하듯이 그렇게 하고 있다' 국민학교  학생들도 그 선생이 말할 때 그를 상대방을 인격의 존대를 해서 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것인데,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야단도 치고 이렇지  내가 뭐 야단칠 권리가 뭐 있겠소? 그런 것도 '아 이거야 밑에 강의 들을라  하니까 용욕스럽다' 그렇게 아니꼬움을 가지는 그런 것도 마귀란 놈이 그렇게  가지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라 그말이오  어쨌든지 우리는 나그네 세상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 조심해서 후회 없을 모든  정비와 정돈을 해 가지고 주님을 맞이해야 됩니다. 오늘이 끝날인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는 뒤로 미루면 헛일입니다. 언제든지 죽을 그 시간도 뒤로  미뤘다가 죽으면 그만 그만 되는 것 아닙니까? 뭐 어떻게 할 것입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제는 재독에 참여한 사람이 283명이고, 주일 학교는 팔천 팔백 칠십 몇 명이  어제 나왔습니다. 아주 여러분들도 기도를 하고 반사 선생님들이 특별히 기도를  하고 내가 보니까 총무가 비가 온다 하니 걱정 났다 하면서 보니, 내가 보니까  산에 기도하러 간다고 어디 꽃마을에 가 가지고 토요일 밤에 기도도 하고 모두  야단을 지기고 이라니까 하나님 이 불쌍히 여겨서 팔 천 팔백 칠십, 한 팔천  구백 명쯤 나왔으니까 구천이 다 돼 갑니다.

 과거에 보면 구천 몇 십 명까지 올라가고 난 다음에 나는 병났고, 구천 몇 십  명까지 올라가고 나서 그만 병났고 병나고 난 다음에 자꾸 내려왔습니다. 제가  팔십 이 년에 병들어 가지고 오래 동안 거석했는데 팔십이 년 팔월 첫째 주일  그때에 주일 학생이 구천 얼마인가 나왔습니다. 고라고 난 다음에 내가 고 주일  오후 예배보고 난 다음에 병나 가지고 팔 월 집회를 가지 못하고 그만 그때  꺼꾸러졌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꺼꾸러져서 자꾸 얼마동안 유지하다가  내려오고 내려와 가지고 오천 얼마까지 주일 학생들이 내려왔었습니다. 지금 또  자꾸 주일 학생이 올라가는데, 올라가고 모두 교회도 이러고 하는데 자꾸 내가  주의를 안 해서 자꾸 간들간들합니다. 이제 뭐 이런 일 저런 일 자꾸 겹쳐  가지고 되는 일이니까 자꾸 겹친 일이 돼 놓으니까 자꾸 사람이 피곤해집니다.

여러분들 보기에는 뭐 그것뿐이지만 안팎에 그 겹친 일을 여러분들에게 다  말하면 하나만 말해도 여러분들은 감당 못 할 그런 어려운 난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뭐 미국에서 가족들이 어려운 일 이런 거 저런 거 다 인간으로  생각하면 밤새도록 잠 못 잘 만한 그런 일들이 뭐 하나 둘 아니라 가득 차고, 또  이런 일 저런 일 자꾸 이래서 뭣이 업쳐 잡습니다.

 이래도 그저 하나님이 감당할 힘을 주시기 때문에, 내게는 제일 뭐이냐? '아  내가 일하는 게 이거 참 너무 되게 한다. 과로한다. 이거 무던이 했다 내가 일을  많이 한다' 이러면 그것이 지금 꺼꾸러지기 시작하는 것이고 인제 교만이 나오는  것이고. '이런데 사람들이 날 알아주지 못한다' 하면 그때는 벌써 꺼꾸러져  버리고 하는 것인데. 여러분들이 날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날 위해  기도하는 것이 왜? 여러분들 잘되고 교회 잘되고, 또 나도 여러분들 위해  기도하고, 기도를 해야 되지 기도하지 안하면 모든 것이 다 합병증으로 말이오,  이런 거 저런 거 합해 가지고 합병이 돼 가지고 와서 부딪히면 감당하지 못하기  쉽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교역자와 교인의 그 비밀을 요한계시록 1장에 말씀했습니다. 나  망하는 게 여러분들 망하는 것이고 여러분들 망하는 것이 원인은 내가 망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망하는 것이고 내가 죄 지으면 여러분들 죄짓고 내가  의로우면 여러분들 의로워지고 내가 아무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가로막지 안해야  그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바로 가지 눈동자에 조그만 한 것 하나 있으면 보이지  않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여러 분들 사이에 내가 지금 들어  있기 때문에 내가 시커머이 가루어지면, 가루어지면 조그만 한 게 가루면  교인들에게는 많은 숫자가 어두워집니다. 이러니까 교역자가 교인의 생명과 같고  눈과 같고 귀와 같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하지 안하면  여러분들이 손해 갑니다. 나도 또 여러분들 위해서 기도하고.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허물이 있는 그거는 그 허물 있는 그것은 내게 있는 허물이 확대가  돼 가지고 나갔기 때문에 이제 허물 있는 그걸 보고 '아, 내게 이렇게 이게 뭐  있구나' 하는 것을 찾는 것이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신 비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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