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의 세상


선지자선교회 1984년 8월 7일 화후집회

 

본문 : 계 17:1-14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간부는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문화 이런 것들이 다 합해서 간부라고  이렇게 상징한 것인데 간부는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이 자기에게 간부가 되고 또  자기는 음행한 여인이 되어지는가 하는 것을 호세아서 2장을 가지고서 상고해서  우리가 대략 알았습니다.

 그리되면 우리는 하나님과 직접 대립하는 그런 입장을 우리가 스스로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택한 자로서는 배겨내지를 못합니다. 택한 사람이면 다 절단이  납니다.

 우리 구원의 순서를 잠깐 한번 또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한번 따라 해 봅시다.

우리 구원의 시작 첫째. 선택, 또 둘째는 중생, 또 셋째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신앙 시작, 그라고 나서는 이방인의 생활법, 이방인의 생활법 그 다음에는  신자의 생활법 그라고 나면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가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 인류 가운데는 선택을 입은 사람과 선택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택받은 사람인지 선택을 받지 안한 사람인지 그것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선택받은 사람은 때가 되면 중생하게 됩니다. 사람 중에는 선택받은  사람과 선택 안 받은 사람이 있고, 또, 선택을 받은 사람 중에도 중생이 된  사람이 있고 중생이 안 된 사람 있습니다. 또 중생된 사람 중에도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도 있고 아직까지 시작을 안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 중에도 성도의 법칙을 쓰는 사람도 있고 아직까지 믿는다고  하지마는 불신자의 법칙을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도의 법칙을 쓰는 사람  중에도 하나님의 그 영육의 축복을 현재에 받은 사람도 있고 또 영육의 축복을  받을 준비는 하고 아직까지 영육의 축복을 받지는 못한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도들이 성도의 생활 법칙을 사용하면 벌써 그것이 위치가 어떤 위치를 가지게  되는고 하니 성도들이 성도의 생활 법칙을 사용할 때에 교회의 위치를 가지게  됩니다. 교회의 위치는 하나님 밑에 모든 피조물 위의 위치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피조물이 이 위치를 가진 자를 해하지 못합니다. 혹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가지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그 범위 내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이루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시련은 하지마는 피해는  못하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들이 선택, 중생, 또 부르심을 입어서 신앙생활 시작한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그 사람이라면 피조물은 해하지를 못합니다. 또 창조주도  해하지 않습니다. 피조물들이 아무리 해하려고 피조물들이 한다 해도 절대  받지를 않습니다. 해할 수도 없고 해가 되어 지지도 않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선택을 받은 사람인지 안 받은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도를  전해야 되고, 또 그 사람이 아무리 예수님을 믿지 안하고 그래 그 반대를 한  무신론주의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도 선택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복음을  그 사람을 위해서 전할 것뿐입니다.

 또, 그 중생된 사람으로서도 그 사람이 예수 믿기를 시작하지 안했으니까 그  사람은 불택자인지 중생된 자인지 안 됐는지 그것도 모릅니다. 선택도 우리는  모르고 중생도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면 그것 보고서  선택과 중생을 입은 사람이라 그렇게 생각을 가지고 그 사람 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법칙을 지키면 저 사람은 영육에 성공할 사람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사람이라 그렇게 우리는 인정 할 수가 있고, 중생된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안 믿는 사람들의 그 법칙을 지키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 우리는 평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불신자의 방편도 모든 이 자연 만물을 사용합니다. 자연 만물을  사용하는 것은 불신자들도 물질도 그대로 신자나 꼭 같이 사용하고 사업도 같이  하고 활동도 같이 하고 직장도 같이 가지고 외부의 그 이용되고 있는 모든  만물이나 모든 그 사물은 같습니다.

 다 같은데, 다만 신자의 법은 어떤 법인고 하니 경건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높이고 두려워하고 섬기고 이 하나님이 지극히 크신 분인 것을 깨닫고 주님을  위하는 그것이 하나 있고. 주님을 위하는 것, 자기가 뭐 가정 생활하든지 사회  생활하든지 직장 생활하든지 어떤 사업을 하든지 자기는 주님을 위해서 해야  그것이 성도의 법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하는가? 주님을 위해서 성경 말씀대로 그렇게  사는 그것이 성도의 법칙입니다. 성도의 법칙은 그 두 가지만 지키면 됩니다.

자기 직장에서도 그 두 가지 지키고 사업에서도 그 두 가지 지키고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두 가지 지켜서 다 이렇게 불신자와 꼭 같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신자의 법칙은 어떤 것이 불신자의 법칙인고 하니 위하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 위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위하는 것 그것이 이제 다릅니다.

성도의 법칙은 하나님을 위하고 불신자의 법칙은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뭐  민족을 위한다 국가를 위한다 해도 그것은 잘못 계산해 그렇지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자기 민족이기 때문에 자기 국가이기 때문에 또 자기가 인생이기  때문에 인생을 위주로 하는 것도 분석해 들어가면 자기를 위주로 하는 것입니다.

 또 살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해서 말씀대로 살지 안하고 인간들의 그 지식대로  인간들의 지식대로 다시 말하면 자기 생각이나 모든 전인류의 지식대로 사는  그것이 불신자의 생활 법칙입니다. 그러면 다 같은 직장에 있어도 직장에  있으면서 한 사람은 인간 법을 사용하고 자기를 위해서 살고 신자는 주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법칙인 신구약 성경 말씀을 사용하면서 사는 이것이 각각  다릅니다.

 그런고로, 같은 동시에 동 장소에서 동일한 그 모든 사건에서 살아도 한 사람은  구원을 이루어 하늘로 올라가고 하나는 구원을 이루지 못해서 땅으로 내려가  버림을 당하는 그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생애 법칙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런 사물 이런 사회 저런 사회를 상대 할 때에  우리는 거기에 대해 같이 다 활동하고 사용하고 거기에서 살 수 있습니다. 다만  다른 것은 그 법칙만 다릅니다. 성도의 법칙은 오른편에 두 가지 불신자들의  법칙은 따져 들어가면 왼편에 두 가지 고것만 다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못할 거 없습니다. 일을 선택할 때에는 하나님의 법칙에  위반되었느냐 안 되었느냐 그것을 생각해 가지고 위반되지 안한 법칙이라면  그것을 택할 수 있는데, 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하기를 그러면 이 법칙은 하나님의  법대로도 살 수 있는 것인데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서 하나님을 위하는 생활을  여기에서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나님 위하는 생활이 힘이 들어도 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생활하기 힘이 들어도 할 수 있다고 하면 그거는 하나님이  자기로서 능히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 있는 자기의 자연입니다. 자기의  세상이요 자기의 자연인데, 거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법칙대로 살면 우리는 우리 할 일 다한 것입니다.

 그라면서 그만 그리 하면서 우리의 생활 문제가 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 할  터인데 생활 문제는 하나님에게 다 맡겨 놓고 내게 대한 거는 하나님에게 맡겨  놓고 자기로서 그 길 밖에는 갈 길이 없다 그 길이 자기에게 서는 가장 가까운  길이요, 또 자기로서 해야 될 그 일이라고 생각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장사도 할 수 있고 농사도 지을 수 있고 공 업도 할 수 있고 또 모든 교육도 할  수가 있고 어떤 그 행정들도 할 수 있고 직장 생활들도 할 수 있습니다. 또 그  결혼도 할 수 있고 가정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만 그것은 꼭 두 가지를 가지고서 언제든지 우리는 잣대를 삼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두 가지. 주를 위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은 신구약 성경 이 말씀의 법칙을 지켜서 이 법칙대로 사는 것 요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이 두 가지를 우리가 어렵다고 해서 변동하면 우리에게는 큰 화가  오게 됩니다. 이 두 가지를 변동 될 때에는 분석하면 음녀에게 미혹을 당했든지  그라면 간부에게 끌렸든지 하는 그런 것입니다.

 오전에 공부한 데서 간부는 하나님에게 대한 소망과 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그 모든 은혜, 이 하나님에게 받은 것과 하나님을 섬길 거, 하나님에게 받는  것을 하나님 외에 딴것을 섬기고 딴것에게 자기가 받았다고 인정하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벌써 그 사람은 간부에게 끌린 사람입니다.

 자기는 어떤 것이든지 만일 그 사람이 어떻게 해서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해 주신 것이요, 또 하나님만이 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어떤 피조물을 통해서 그렇게 했으면 그 피조물이 인격 존재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은혜의 기관으로 사용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  은혜의 기관을 소중히 여겨야 되고, 또 사람이 아닌 어떤 그 물질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면은 우리는 그 물질을 상대할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  주신 은혜의 기관으로 이용한 물질이기 때문에 그 물질도 소중히 여겨서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 신자들이 사는 법칙이 그렇게 복잡하거나 어려운 거 아닙니다. 복잡 하거나  어려운 거 아니고 아주 단순하고 그렇게 솔직합니다. 또 아주 신자의 생활을  하기도 쉽습니다. 쉬운데 왜 못하느냐 하면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맡길 것을  맡기지 안하고 제가 하지도 못할 것을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책임지지 못할 것을 책임지는 거기에서 낭파도 당하고 번민 고통 걱정과  모든 실패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그거 벗어 놓고 내게로 오라 그말은 책임을  지지 못 할 책임을 너희들이 지고 있는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또 수고하는  것은 자기네들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되지 자기가 못할 일 한다고 하면은 골만  빠지지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을 정해 줬는데 그 일을  해야 되지 할 수 없는 일은 못합니다.

 할 수 없는 일은 어떤게 할 수 없는 일인고 하니 세상에서 사는데 영에나  육에나 모든 일에 대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있는데 하나님만이 권세를 가지고 하는 그것을 제가 혼자 뭐 단독으로  제힘으로 할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그런 것이 다 잘못인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할 수 있는가? 우리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할 수 있는 일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과 하나님의 법칙대로 내 힘있는 대로  복종하는 거 이 두 가지만 할 수 있지 그 외에 크고 작은 모든 일 하나도 사람은  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데 자기는 월권하고 도리어 하나님이 하신  것을 제가 했다고 하나님 영광을 가로 뺏들어 가지고 하나님을 노엽게 해서  자기는 다 낭파만 당하지 아무 효력을 거두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은 그 말세라, 요한계시록 18장 4절, 5절에 보면 '이제 모두  바벨론이 다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서 다 무너졌다, 절단 났다 이런데 너희들은  그의 가운데에 멸망 가운데에 같이 멸망하지 말고 거기에서 나오너라, 멸망  가운데에 같이 멸망하지 말고 나오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그러면 그 멸망케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말씀하시기를 죄악이 하늘에까지 관영했다, 죄악이  하늘까지 가득 찼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악이 하늘까지 관영했다, 죄악이 하늘까지 관영했는데 하늘까지 관영한  사람이 빠지면 죽는 그 죄악이 땅에서 하늘에게까지 가득 차 가지고 있는데,  그러면 가득찬 죄악이 뭐인가? 그 죄악을 그 가운데 해석을 해 놨습니다. 그  죄악을 어떤 죄악인고 하니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며 자기를 사치스럽게  했든지 그만큼 그 값으로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말세에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는 죄악이 어떤 죄악인고 하니 그 죄악은 한말로 말하면  하나님을 위주로 하는 것을 자기 위주로 하는 그 죄악입니다. 하나님 위주로  하는 것을 자기 위주로 하는 그 죄악입니다.

 그러면, 그 죄악인데 음행의 포도주에 다 취했다 그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구약 성경 말씀의 이 지식을 이 교훈을 자기가 표준으로 삼지 안하고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그 명령인 이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지 아니하고 모두 인간들의 지식을 위주로 삼아 가지고서 그 지식을  자기의 지식으로 삼아 가지고 사는 이것 때문에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말세에 우리는 어떤 죄악으로 더불어 싸워야 될 것인가? 우리가 싸울  그 주를 위해서 싸울 죄악은 어떤 죄악인가? 우리가 주를 위해서 싸울 죄악은  어떤 죄악인가? 우리가 주를 위해서 싸울 죄악은 자기 위주 그것을 죽여서 주님  위주로 그래 사는 이 면을 제일 주력해야 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자기 법칙으로 삼지 안하고 인간 지식을 자기 법칙으로 삼는 이것을  고치도록 우리가 주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말세의 세상은 두 가지로 망하고 이 두 가지로 구원 얻습니다. 그저  지저분한 그 모든 걸 다 못 할지라도 금번 그 강령적으로 윤곽이 바로 되면 그  다음에 있는 그 모든 세포들은 다 바로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주 쉽고 어렵습니다. 쉬운 것은 여기에 무슨 다른 무엇이 들은  것이 아니고 자기 혼자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위하는 거 하나님  위하는 것으로서 이렇게 하면은 주인이 바꾸어집니다. 주인이 바꾸어지니까  하나님을 위주로 하면은 자기에게 대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책임지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나님 위주로 하지 안하고 자기 위주로 이렇게 하면 자기에 대한  책임은 자기가 지게 되고 하나님은 그 책임을 못 지고 내놓게 됩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 위주로 한다고 해도 그 법칙을 하나님의 말씀의 법칙대로  하면 그 법칙이 바로 되기 때문에 일이 잘 되는데 그 법칙을 인간 그 거짓말. 반  거짓말 인간 지식대로 이와같이 하면은 그 시공을 삐뚤어지게 하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다고 해도 그 일이 성공을 못합니다. 그거는 경건이  아닙니다. 경건은 주를 위해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경건입니다. 모든 해석을 다  붙여도 이거 둘이면 다 포함되고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세에 아주 위험한 일이 있습니다. 참 아가서에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라고 말한 것처럼 해가 지면 음지 양지가 없어집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우면 다 이는 뭐 진리라. 이는 비 진리라. 이거는 경건이라, 이거는  불경건이라 이렇게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전부 다 불경건으로-전부 경건으로  돼서 불경건을 가리지 못하는게 아니라-전부 불경건으로 다 됐기 때문에 그  경건이라 하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을 만치 그렇게 희귀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는 말은 자기 부인하라 말은 주님 위주로 하고 자기 위주로 하지 말고 자기  위주를 버리고 주님 위주로 바꾸라, 위주를 바꾸라는 말이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그말은 이렇게 하고서 주님의 법칙대로 자기가  살라고 하면 세상 법칙과 마찰이 돼 가지고서 어려운 것이 있을 때에 어려움이  있어서 죽으면 완성되는 것이고, 어려움이 있어서 손해 가는 것은 그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서 구속이 된 것이고. 또 어려움을 그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하고 그것이 존속하게 되면 그것은 임시적으로 그것을 하나님께서  다시 내게 돌려주신 것이니까 조심 있게 사용하면 좋은 결과도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썩은 것을 썩지 안한 것으로 바꾸어지는 것, 죽은 것이 살아 나는  것으로 바꾸어지는 것, 또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바꾸어지는 것, 욕 된 것이  영광스러운 거, 영광스러운 것으로 바꾸어지는 것, 모든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바꾸어지는 것,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으로 바꾸어지는 것, 불완전이  완전으로 바꾸어지는 것, 바꾸어지는 때에는 어떤 것으로 바꾸어지는고 하니  그것을 좀 바꾸어지는 것이 좀 어려운데 바꾸어지는 것은 일단 그것을 내놓아야  바꾸어집니다.

 내놓으면 바꾸어지는데 고것은 초등입니다. 내놓으면 바꾸어지는 것이 아주  초급이요, 내놓으면 바꾸어져. 또 그보다 높은 바꿈은 내놓으면 그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 경건을 지킬려고 하면은 그것이 그만 없어져 버립니다.

경경 지킬려 함으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아서 없어지고 내가 포기해서 없어지고,  박해 당해서 없어지고. 포기해서 없어지고. 어째 없어지든지 없어지는 그런  방편을 통해서만 살아나는 것이지 달리는 살아나는 길이 없습니다.

 그거는 왜 그런고 하니 인간법에 소속한 것이 진리법에 속해 소속을 옮기기  때문에 인간법에 있는 데서는 거기에서는 없어지고 진리법으로 옮기기 때문에  여기에는 없어졌고 여기에는 생겨지는 것입니다.

 또, 인간 위주로 했던 것이 주님 위주로 하면 인간 위주의 거기에는 없어져야  주님 위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의 하나님 위주, 또 진리대로의 요 두 가지를 지키는 것에  전심전력을 기울일 것이고, 그것이 그렇게 지키는데 그것이 존속되느냐? 또  그것이 어떻게 반은 존속되고 반은 손해를 보느냐 다 절단나느냐? 이렇게 우리는  그 형편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것이 그 잠깐 그런 어려움은 당했지마는 어려움은  당했지마는 그것이 무슨 변동으로 반으로도 없어졌거나 그렇지 안하고 그저 내가  그렇게 취급하기를 주님을 위주로 또 주님의 법칙대로 그렇게 하니까 그것이  절단 날 뻔했는데 절단이 나지 안하고 그것이 다행스럽게 유지가 되었습니다.

 유지가 됐으면 그것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때에 일시 그 멸망의 멸망을 받지  안하고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요. 가지고 있는 것만 일반은 없어지고 반은  그대로 가지고 있게 되면 반은 완성이 된 것이고 반은 자기가 원수에게 뺏기지  안하고 보관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없어져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완전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에 주를 위함이냐 나를 위하느냐? 또  하나님이 주신 이 법칙을 사용하느냐, 인간의 법칙을 사용하느냐? 이 두  가지에만 구별해 가지고서 주력할 일이지 우리가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또  그대로 유지됐으면 좋겠다. 또 그대로 유지가 됐으면 좋겠다. 반만 유지됐으면  좋겠다. 그런 것은 우리가 할 일은 아닙니다. 거기에 대해서 관심을 안 가져야  됩니다. 관심을 가지면 마귀라면 고걸 끈으로 잡아 가지고서 우리를 유도해서  실패케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평안한 것은 그때 그것을 하나님께 맡겨 버려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뭐 내가 지킬 것은 두 가지 뿐인데, 이것만하면 당장 없어지든지  절절 흘려서 없어지든지, 그대로 있든지 말든지, 있으면 또 내가 그것 가지고 또  두 가지 할 것, 또 없어졌으면 완성 된 것.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복잡하지 말고 아주 간단하게 살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레위기 11장에는 쪽발로 걸어가라 한 것은 두 가지로만 언제든지  생각하면 됩니다. 이것이 그 하나님 위주냐 피조물 위주냐? 자기가 하나님  위주로서 있던 사람이 자기가 어떤 애인이 있어서 애인을 위해서 애이 위주로  했습니다. 애인도 제 애인이기 때문에 그 위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자기  위한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이 하나님 위주로 했다가서 민족 전민족을 위해서 한다 하면은 다른  거 위하는 것 같지마는 내나 제 민족이기 때문에 제가 위하는 것이니까 자기  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위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느냐, 자기를 위하느냐 요 둘밖에는  없습니다. 고 뒤의 두 가지 선을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  두 가지로만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하나님 위하는 것이냐, 이것이 날 위하는  것이냐? 내가 어디 날 위해 전 인류를 위하는데 날 위하는 교회를 위하는데  그렇게 아무리 더듬어 봤자 그 두 가지 밖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나는 나 위하는 게 아니라 교회 위한다. 교회 위하면 그것이 하나님 위함이  되든지 널 위함이 되든지 그것도 또 그 교회를 위한다 해도 거기에 들어가 봐라.

들어가서 하나님 위하느냐, 널 위하느냐 둘 중에 하나이지 그 두 선 밖에는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위주로 하느냐 하나님 위해서  하느냐 자기를 위해서 하느냐 요걸 구별 할 것.

 또 내가 위하는 법칙을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느냐 인간의 그 지식의 법칙을  사용하느냐 요거 둘 요 둘만 구별하고 나머지기는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거는 다 하나님께 맡겨놓고 하나님이 처리할 일이지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뭐  이렇게 저렇다 그렇게 하면은 안 됩니다. 뭐이든지 요 둘 로만 구별하면은  대단히 구별하기가 단순하고 그렇게 간단하게 모든 것이 해결되게 되는  것입니다.

 오전에 하나님께서 제일 노여워하신 거 제일 노여워해서 다 그것을 뺏들어  버리고 하나님께서 벌거벗겨서 아주 절단을 냈는데 하나님이 성도에게 대해서  제일 미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일 미워하는 것이 호세아서 2 장 전장에 제일  미워하는 것이 뭐였지요?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간부가 줬다고 생각하는 고거 제일 노여워합니다. 하나님이  제일 노여워해요.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간부가 줬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이 제일 노여워하시오.

 둘째로 노여워하시는 것은 뭐입니까? 둘째로 노여워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이 어짜는 거, 하나님이, (여기 중간반 학생들이 총명이 있을 때인데 답  못하면 헛일이다 낙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간부 섬기는 것, 하나님이 주시는 거 가지고 간부 섬기는 거 요거  하나님이 노여워하십니다. 그것이 외부를 말하는데 그것이 뭐이냐? 총칭해서  말하면 하나님은 전부를 다 기울여서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은 지금 받을 권리가 있고 우리는 또 전부 하나님의 것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도들이 사는 그 정상적인 생활은 누구든지 주의  구속을 받은 사람이라면 자, 뭐입니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또 목숨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이거 다 해 가지고 뭐합니까? 주님 사랑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것이 뭐 어려운 것이 아니요. 이거 특별히 잘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거 안 하면 죄입니다. 이거 안 하면 사망이 그. 이거 안 하면  사망이오. 이거 하면 직해야 사는 것이라 말이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뭐 이렇게 모든 걸 다 해서 전부 주님 사랑하는 데에 다  기울여서 전부를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면 제가 무슨 특수한 일이 나 하고  별스러운 일이나 하고 참 남이 못한 무슨 좋은 일이라고 큰일 한 줄 알아도  아니야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이요 마땅한 예의요 법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안 하는 그것은 다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 죄가 되고 당연한 법칙으로 되어 있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구속하시기를  그렇게 구속하셨기 때문에 큰 구속을 받아서 주의 것이 돼서 지옥의 것이 천국의  것이 됐고 마귀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히 사망할 것이 영생을  가지게 된 우리가 됐습니다. 아주 죄악의 더러운 것이 우리가 깨끗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것인고로 그렇게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모든 걸 다해서 사는  것이 뭐 별스러운 일 큰 일 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 그  말이오.

 자, 요한 계시록 17장 찾읍시다. 사백 십 육 폐이지. 요한계시록 17장 본문을  죽 주해 해 내려 갈 터인데 자세히 보면서 본문 주해하는 것을 잘 듣도록  합시다. 요 상징적이기 때문에 상징적이기 때문에 아주 해석하기 가 어렵습니다.

 제가 서울서 여기 17장 언제 설교를 할 때에 거기에 어떤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다른 것은 그저 저를 신앙의 동지로 알고 선배로 알고 배우기를  꺼리지 안했는데 요한계시록 17장 한군데 해석을 하는 것을 보고서 '그거 그렇지  않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고 그 다음부터 그분이 그 목사님 성경 해석하는 것을  잘 인정할 수가 없다 이래 가지고 그 뒤부터 따르지 않는데 그분을 내가 지금  만날 수 있으면 좀 한번 만났으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물어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나 잘못되면 하나 잘못된 그 쓴 뿌리가 들어서 자기 전  생활을 망칩니다. 하나 잘못 깨달은 그것이 전 신앙생활을 다 망쳐 버리고  맙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단자가 많이 틀린 것이 이단자가 아니오, 이단자가 틀린 줄 안  자는 이단자가 안 됩니다. 틀린 줄 알고 하는 자는 그것 틀린 줄 알기 때문에  자기 속에 전적을 기울여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 앞에는 그렇게 말하지마는  속으로는 이거 틀렸다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어느 기회에 회개하고 돌아올 수가  있지마는 자기는 그 옳은 줄 알고 하기 때문에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그 인간을 이래도 해석하고 저래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해석은 모든  해석이 다 하나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어디든지 그거 들어맞아야 됩니다.

들어맞아야 그거 바로 되는 것이지 여기에는 이런데 저게는 저러면 안  들어맞으면 안 된다 그 말이오. 성경 연구할 때에 정반대 되는 그 절수를 찾아야  됩니다. 반대되는 걸 찾아 가지고서 고 반대되는 걸 찾아 가지고 반대되는 것이  나중에 일치가 되는 때가 옵니다. 일치가 되는 때가 오면 그까지 나가면 그것이  바른 깨달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여기에 대접이라 하는  것은 재앙을 말합니다. 급속한 말세 재앙. 급속한 말세 재앙을 말하는 것인데 그  성도에게 닥치는 재앙, 일반 인류에게 다 닥치는 재앙. 이 세상에서 재앙이  내리면 흉년 재앙을 내려도 같이 만나고 전쟁 재앙을 만나도 같이 만나고 모든  이 세상에 말세가 되어 갈수록 하나님의 재앙이 심해지는데  그 재앙을 만날 때에 성도에게 만나는 재앙은 다 유월절 재앙입니다. 한 번  따라 합시다. 성도에게 오는 재앙은 전부 유월절 재앙이다! 성도에게 오는  재앙은! 전부 유월절 재앙이다! 유월절 재앙 아닌 재앙은 없습니다.

 뭐 어떤 재앙이든지 그 어려움은 물론 신불신자가 다 과거 6·25도 그 재앙이  아닙니까? 이차 대전 때에 우리가 다 모두 다 안 믿는 사람들도 오만 경제면이나  모든 면에 곤고 당한 그런 것도 재앙이요 흉년 닥치는 것도 재앙이요 또 무슨  종교전이 나타나는 것도 어려움 당하는 것도 환난이요 재앙입니다. 그러면 이런  모든 환난 재앙 이것은 다 유월절 환난이요 유월절 재앙인데 성도의 재앙은  전부가 다 유월절 재앙이요 환난은 다 유월절 환난이라 그거 말하는 것은  그러기에 성도들은 어떤 환난이 오든지 환난은 다 성도에게 오는 환난은 유월절  환난이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하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 유월절 환난이라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 환난으로 멸망을 시키기  위해서. 그 환난을 주님이 일으키는게 아니라 환난은 주님이 일으키신 것인데  환난을 일으키신 것은 멸망시키기 위해서 환난을 일으키신 것이 아니고 그  환난은 성도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어느 정도까지 해방이 됐든지 거기에서 또  해방시키기 위해서 또 거기에서 더 좋은 자유를 주기 위해서 해방과 자유를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앙인 것입니다.

 성도의 재앙 환난은 어떤 것이든지 자기가 뭐 암병에 걸렸든지 무슨 신체 안에  무슨 일이 있든지 가정에 무슨 일이 있는지 또 사회나 자기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어떤 것이 있다 할지라도 성도에게 오는 모든 어려움은 다 유월절  어려움, 유월절 재앙들이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그것은 유월절 열 가지  재앙을 내린 그 재앙은 애굽 사람에게는 해치는 재앙이 됐고 큰 손해를 보는  재앙이 됐지마는 성도들에게는 그 재앙이 해방을 일으키는 그 재앙이 되었고  자유를 얻게 된 재앙이 되었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서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하는 재앙이 됐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은 먼저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이런 사실을 깨닫고 먼저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요것을 가져야 됩니다. 그저 무식하게 그냥 기뻐해야 된다  그거는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대로 왜 이 어려움을 지금 기뻐해야 되나, 이 어려움이 와 왔느냐 뭣  때문에 왔느냐? 이 어려움이 나를 해방시킬려고 왔다, 자유 줄라고 왔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밀접하게 만들라고서 왔다, 이렇게 말하는데 과연 그게  참말이냐 그러냐 안 그러냐 하는 것을 자기가 분석해서 생각해보면은 과연 이로  인해서 내가 주님과 멀어졌던 것이 가까워지게 됐고 이러므로서 이 모든 세상  모든 사욕 모든 더러운 욕심에서 해방이 된 것이 분명하고 여기에서 진리와  영감대로 사는 그 자유의 힘이 조금 더 성장하게 됐다 하는 것을 자기가 분명히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어려움이 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의 거울인데 우리의  거울인데 우리의 거울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했느냐 그럴 때 그 재앙  내릴 때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고거  했습니다. 딴거 안 했어요. 그거만 하면, 그때 무슨 재앙을 면하려고 다른 노력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복종하고 기다리는 것 뿐이라. 요것만 하니까 그 모든 문제가  화가 되지 안하고 유익이 됐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은 참 살기 편습니다. 알고 보면 참 편해요. 성도 들이  모두 근심 걱정하고 있는 것은 누가 그렇게 했느냐 하면은 제가 들어서 근심을  만들었고 제가 들어서 걱정을 만들었고 제가 들어서 함정을 파고 파묻혀  가지고서 아주 죽을 욕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잘못된 일은 뭐이냐? 잘못된 일은 죄되는 일이라 그말이요 잘못된  일이 죄되는 일이라. 바로 되지 안하고 삐뚤어지는 일은 다 죄 되는 일이라.

그것이 자기에게 유익 못 할 그 유익되지 못할 일은 그거 다 죄되는 일이라,  유익되지 못할 일은 다 죄 되는 일이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유익되지 못할  일은 다 잘못된 일이다. 잘못된 일은 자기에게 유익이 될 수가 없다 하는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잘못된 일만 안하면 해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참 평안한 생활입니다. 어떤 일이라도 어떤 환난이 와도 누가 왜 걱정 안 하냐?  주님이 내게 대해 다 맡았는데, 야, 이러면 내 몸이 어찌 되나, 생명이 어찌  되나, 가정이 어찌 되나? 아, 내게 모든 것은 내 것은 다 주님에게 다 맡겨놨다.

나에게는 둘 뿐이라. 둘 뿐이라, 배가 고파도 두 가지 배가 불러도 두 가지 병이  들어도 두 가지 감옥에 갇혀도 두 가지 사형을 받아도 두 가지 뭐 어떻게 뭐이  돼도 나 할거는 두 가지 뿐이라, 모든 거 주님에게 맡겨 놓고 요렇게 살면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처리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인내의 온전함을 이루라. 우리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인내인데 하나님께서 요렇게 신앙생활을 계속하지 못할 어려움을 또 주고 고거  제일 연단해 가지고 고서 신앙생활 지키면 또 어려움이 오고 자꾸 이렇게 교체해  가지고서 어려움을 자꾸 바꾸어 주십니다. 바꾸어 주시는 데도 그 어려움이  골고루 바꾸어지니까 골고루 어려움에서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그 연단이  되어지더라 그거요.

 또, 차차 어려움을 주니까 그 어려움에서 신앙 지킬 수 있는 그것이 되니까  어려움에도 신앙 지키니까 쉬울 때 신앙 지키는 것보다도 어려움에 신앙  지키니까 신앙이 더 강하다 그거요. 그래 가지고서 어떤 그 어려움 이든지  자기의 신앙이 꺾어지지 안 할 수 있는 그런 어려움이라도 어떤 어려움이라도  신앙이 꺾어지지 안하고 지킨다고 하면 그 사람은 그 어려움 그것이 자기 집  안에서 어려움이라 할지라도 그 어려움은 한 덩어리입니다.

 이 세계의 어려움은 한 덩어리요 마귀하고 한 덩어리인데 자기에게 닥친 그  어려움을 무슨 어려움이 닥친 것을 다 믿음으로 이겨서 어려워도 거기에서  신앙을 지키는 고것을 계속만 하면 그 사람은 온전하고 구비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요, 모든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하나님에게 다 상속을 받은  사람이요 넉넉히 그것을 관리하고 처리할 수 있는 그런 자격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의 재앙은 유월절의 재앙이라 이것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성도의 재앙은 어떤 재앙이든지 어떤 환난이든지 성도의  환난은 성도의 재앙은 다 유월절 재앙이라 다만 하나님이 시킨 대로 하지도  안하고 양을 잡아 피를 뿌리지 안하고서 달리하니까 안 됐지 양 잡아 피  뿌리니까 유월절로서 다른 사람들은 다 죽였지마는 넘어 가서 유월절이라 하니  유월절 절기라 말이 아니고 넘을 유(逾)자 넘을 월(越)자 양 피 바른 집은 훌떡  뛰어 넘었다고 그래 유월절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주님만을 바리보고 의지하고 그분의 명령대로만 순종하면 그만  다입니다. 요것을 단정을 짓고 단정을 짓고 자기 현실, 현실 생활에서 고것에  실행을 하려고 애를 써봐요. 그러면 우리가 허튼 데 쓰면 안돼. 애를 쓸 때에는  언제든지 주님의 피안에서 애를 써야 됩니다.

 주 안에서 주님의 피안에서 애를 쓴 것은. 뭐 피안에서 애를 쓴다 말은 주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으로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됐고 내 속에는 성령님과  진리와 내 안에서 역사를 하고 주님의 피가 역사를 하고 하는 이것을 자기가  깨닫고 그런 입장 처지 소속인 것을 알고 자기가 행하는 것은 성령이 자기를  뒷받침해 주시고 진리가 자기를 뒷받침해 주고-전지전능이 뒷받침해 주시는  요것을 믿을 때에 능력이 오고 안 믿을 때에는 능력이 안옵니다. 인정할 때에  능력이 와 가지고 이르며 인정 안 하면 헛일이오.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많은 물 위에  이거 뭐라고 배웠지요? 많은 물 위에 ○○○목사님 많은 물위가 뭐입니까? 많은  나라, 많은 백성, 많은 방언, 많은 이 전인류, 많은 전 인류를 떡 타고 앉았는  것이 음녀입니다. 그래 이 음녀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유혹시키는  그 매혹성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데 이 문화의 고 매력에 끌려서 하나님  잊어버리면 고것이 뭣 됩니까? 예, 고게 뭣 돼요? 음녀, 고 음녀 돼.

 또 고걸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고 고것을 고게서 하나님 말씀 지키는 데에  이용합니다. 고게서 고거 없으면 말씀 못 지키는데 고 어려운 문제에서 또  고게서 말씀 한번 지켜보고 여기에서 아주 유혹에 빠지기 쉬운 유혹에 빠지기  쉬운 고것이 오니까 고것에 유혹이 빠지지 안하고, 또 말씀 지켜보고 여기에서는  낙망하기 쉬운 낙망할 만한 그런 어려움을 닥쳤는데 낙망할 만한 어려움 닥치는  고게서 자기는 믿음을 지켜보고 그렇게 하면은 고것이 모든 거 다 뭣이 됩니까?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간단하요. 선물이 돼요.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에 있는 온갖 그것을 나 위해 믿음 지키는 그 장소로  믿음 지키는 장소로, 믿음을 만드는 공장으로. 믿음을 연습하는 그 연습장으로  믿음을 배우는 학교로, 믿음을 기르는 양성소로, 믿음을 빛내는 연단소로 이렇게  이 세상을 받으면 그것이 다 선물이 되어지는 것, 하나님의 선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그 음녀의 받을  심판을 보이는데 음녀가 무슨 심판 받았습니까? 무슨 심판 받았지요? 그 심판  받은 거 어디 있습니까? 16절에 있네요. '네가 본바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음녀를 미워하여' 그러면 '이 세상이 그것을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이러니까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들을 유혹시킨 그 세상 찬란한 문화를 저거 손으로 저거 손으로 저거 발로  저거 힘으로 그것을 와싹 다 태워서 없애 버립니다. 바싹 깨워서 없애 버립니다.

앞으로 온 세상을 누가 태울 건가? 하나님께서 그걸 시켜 가지고서 모두  짐승하고 일곱 머리 열 뿔로 가지고서 그런 것을 태우도록 하십니다.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이제 음행을 했습니다. 음행한 것은 뭐이냐? 벌써 그거하고  그거하고 둘이 딱 들어붙어 가지고 딱 들어붙고 하나님은 벌써 멀리 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땅의 임금들이 다 음행했다 그 말은, 임금은 뭐이냐? 자주자  제 마음대로 하는 자, 잘난 자, 똑똑한 자, 유식한 자, 권세 있는 자, 돈 많은  자 이 사람들이 그것이라 그거요.

 이런데,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는 것보다는 쉽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수 있소. 없소? 안 된다 그 말이오. 안돼. 그거 뭣을 말하는  것입니까? 부자라 하는 것은 세상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 그런 거 있는 것을  가리켜서 부자라 말한 것입니다.

 돈 있는 것도 부자요 권세 있는 것도 부자요 지식 있는 것도 부자요 또 얼굴 잘  난 것도 부자요 또 젊음이 많은 거 살 날이 많은 것도 부자요 살 날 많은 것도  부자라. 그 세월 부자라. 이렇게 부자인데 그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보다 그 천국 들어가기가 더 어렵다. 천국에 들어갈려 하면은 그것을 다  부인해야 되는데 그게 매이지 안하고 그게 소속하지 안하고 그것이 간부가  안돼야 되는데 그렇게 하기가 부인하기가 그렇게 어렵다 그 말이오. 그렇게  부인하기가 그렇게 어려워요.

 있어도 있어도 그것이 자기를 행복되게 하거나 유익되게 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그거는 아니고 그것은 자기에게 유익되게 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거라도  아니고 그거는 뭐입니까? 그 많은 부자 있는 그거는 뭐할려고 바로 쓰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면 바로 쓰는 것입니까?  자기에게 있는 부자. 지식이든지 재산이든지 권세든지 용모든지 젊음이든지  그것을 다 자기를 위해서 쓰고, 또 그것이 하나님 대신이 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그거 하나님 대신돼 가지고 있어. 그거 있으니까 그것 가지고 뭐 예수  믿는 것도 될 줄로 이래 생각하니까 그거 가지고는 하나님하실 일을 못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다만 얼마라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게 소망하는 그  소망을 버리기가 그만치 어렵다 그 말이오. 거기에 소망을 버리기가 그만치  어렵고 의지하는 그거 의지해서 버리기가 그만치 어렵다 그거요. 또, 그것은  그것을 주를 섬기는 데에만 이용해야 되는 건데 그것을 주님을 섬기는 데에만  이용해 그렇게 어렵다 말이오.

 하늘나라 들어갈라 하면은 그것을 주님 섬기는 데에만 이용해야 되고 그것을  믿고 의지하지는 하나도 안 해야 되고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만 그것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데에 이용만 해야 되는 것이 그것이 천국 가는  길인데, 그 세 가지 하기가 제일 어렵다 그 말이오. 그것을 의지하지 아니하기가  어렵고 바라보지 안하기가 어렵고 애착하지 안하기가 어렵고 그것을 다 전부  주님을 섬기는 일에만 사용하는 그 일이 천국 가는 것인데 그 일 하기가 그렇게  어렵다 그 말이오.

 그러면 일이 된다 말입니까, 안 된다 말입니까?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보다 어려우니까 된다 말이오 안 된다 말이소? 안 된다 말이오. 그라면 안 되면  우리는 어쩔건고? 안 되면 어쩝니까?  그 모든 것을 부인하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부인하기가 어려워요 있는 것  만치 좋은 동시에 불행스러워. 참 바로 하면 그게 보배이지마는 잘 못되면  손해라. 무엇이든지 보배로운 것 만치 그것은 다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는 할 수 없어 주님이 그렇게 말씀했어.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네가 기도해라 내가 해 주겠다.' 그렇게 계약이 있다 말이 오고 계약 가지고  저는 기도할 때마다 고것을 자주 말합니다. '주님이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가  시행해 주겠다. 말씀하지 안했습니까? 이 계약을 믿습니다.' 다른 계약은 잘  지키지 안하면서 그 계약은 자꾸 하나님 앞에 구해. '주인 이 이 계약하지  안했습니까? 내 이름으로 기도해라. 내가 시행하겠다고 계약하지 안했습니까? 이  계약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말해놓고 자꾸 그라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고서 계약했기 때문에 이 계약이 있으니까 당신이  계약을 어길 수가 있나?  이라고 '구하는 자마다 얻을 것이라 하는 이것도 하나님께서 계약 아닙니까?  이러니까 내가 구하니까 나도 얻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두 성구를 내가 자꾸  말합니다. 구하는 자마다 주실라고 했고 다 얻는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해 주겠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이런 일은  사람이 못 하니 하나님께 해 달라고 기도해야 되지 기도 안 하는 그런 거는  안돼요. 그러니까 모든 이 구원에 속한 것은 구원에 속한 것은 사람은 여러모로  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학자들 가운데에 이 구원 이루는 것이 순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새것으로만 구원이 되어지느냐? 땅의 것을 이것도 구원이 될 수가 있느냐?  새로운 창조 하늘의 것에서 내려온 새것만 되게 되느냐? 그렇게 서로 교리  다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 전지전능자가 한 그  가치성에 있는 그것이라야 완전하고. 완전한 것이라야 우리 구원이 되어진다  하는 그런 면에서 말을 하는 것인데 그 하나님이 안 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의 이루는 그런 것은 하나님 외에는 할 자격이  없어요.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요. 하나님 외에는 우리 힘으로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런 거 저런 거 어려운 일하는 것 같지마는 하나님이 안  해주시면 아무것도 못 해.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우리에게는 썩는 것 밖에는  하는 일이 없어요. 다른 거는 하지 못해요. 하나님이 해 주셔야지 하지.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해 주심을 받는 것이 우리의 지혜요 능력이라 말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심을 받는 데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시도록 해  주심을 받는 데에는 그 방편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두  가지, 두 가지 해 주심을 받는 것이 방편이 두 가지라. 두 가지 방편을 말해  보십시오. 하나 뭐이지? 기도하는 거, 한 가지, 또 한 가지는 뭐이요? 인내,  인내. 주시도록 기다리고 있어야만 되는구만 안 기다리면 안 되지.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거 그러면 또 하나는 인내하는 거 할 까요? 인내하는 거 그거  중요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는 것이요. 하나님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자기가 인정하는 것이요.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맺은 계약을 자기가 인정하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로  모든 일 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기도하고 다 맡겨놓고 기도하고 해 주도록 기다리면 됩니다. 기도와 인내  두 가지면 됩니다.

 2절에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그러면 이 잘난 사람들은 단 음행했고 아주 날쌘 거와  같지마는 세상에서 날쌘 이 세상에서 아주 눈치 있고 날쌔서 아주 민첩하게  날쌔게 아주 지혜롭게 그렇게 처세를 합니다. 그 처세하는 그것을 보고서 그야  그 사람 참 음행 잘 하네, 아주 그렇게 음녀하고 잘 사귄다 이렇게 보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보는 눈이 있어야 돼요.

 그걸 부러워하면, 음행의 포도주를 마신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음행의  포도주를 마신 사람은 어떤 사람이요? 그거 보고서 부러워해서 부러워서 자기도  지금 그와 같이 그 길 갈라고 하는 그 사람이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사람이라.

전부가 다 세상 소망, 세상 목적, 세상 위주 자기를 위해서 세상을 소망하고  하는 그 전부에 다 도취됐다 그 말입니다.

 우리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안해야 됩니다. 그 말은 위의 것  위주로 위의 것 표준으로 땅의 것을 희생해서 위의 것을 만드는 재료로 비용으로  삼아라 그 말이오. 우리의 그 소득과 수입은 위의 것을 소원하는 그것이 우리의  수입이지 땅의 소득은 암만 얻어봤자 그것을 잘못 관리하면 뒤에 가서 화가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요런 것도 요 배우고 난 다음에 자기가 이  세상에 나가봐요. 보면 이제 다 보면 자기는 모르니까 자기는 모르니까 다른  사람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아. 저 사람 음행의 포도주에 대개 취했다. 음행의  포도주에 대개 취했다. 막 바쁩니다. 분주 복잡하고 야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죄를 지어 가면서 공부를 하고 하나님 말씀을 어 겨서  죄를 지어 가면서 공부하는 것을 볼 때에 그 사람이 지금 어디 취했습니까?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사람이요. 하나님께서 공부할 수 있도록 형편과 사정과  처지를 다 하나님이 줘서 아무래도 거기에는 저는 공부하는 것이 좋지  공부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될 터인데 공부하지 않는 그 자는 그것이  또 다른 면으로 죄를 범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안일주의의 그  병이 걸린 사람입니다. 그 죄를 범하고 있는 사람이오.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성령이 광야로 간다, 사람들이  타락하고 난 다음에는 광야에 가 가지고서 타이른다고 했지요. 호세아서에 보면  사람들이 그렇게 아주 간부에게 도취돼 가지고서 그렇게 아주 멸망 길을  걸어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뺏들어 버리고 욕을 단단히 보이고 난 다음에  마지막으로 아주 버려서 죽였습니까. 어쨌습니까? 어디로 갔어? 빈들판으로 가지  안했어? 빈들판으로 데리고 갔어. 가 가지고서 타이르고 또 가르치고 타이르고  가르치고 그래 가지고 거기에서야 이제 정신을 차려 가지고 바로 믿도록 그렇게  해 가지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광야로 가니라' '그 성령이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이 나를 하는 것은  사도 요한입니다. 사도 요한인데 계시록에 보면 광야에 가 가지고서 큰 일을  많이 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 광야라 하는 것은 외로운 곳이요. 무의무탁의 외로운 곳이요. 또 자기가  뭣을 방어를 한다든지 안보의 무슨 방편을 취해놨다든지 자기의 아무 설비해  놓은 것이 하나도 없고 자기의 설비해 놓은 것이 하나도 없고 자기 협조할 것이  하나도 없고 의지할 거. 바라볼 거, 또 조그만치라도 자기에게 필요한 거 그런  거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그것이 광야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것으로  성령이 데리고 가 가지고서 이제 거기에서 성령이 교훈하시고 거기에서 바른  길을 걸어가도록 이렇게 하십니다.

 그런고로, 믿는 사람은 광야와 같은 것을 다른 말로 해서 골방이라 성소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네가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아버지에게 구하라 그리하면 그가 주시리라.' 이랬는데. 골방에도 아무도 없고  주님만이 계시는 그 곳에 들어가는 것이 골방이요 광야도 아무도 없고 주님만이  계시는 그곳이 광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는 광야 생활을 자주 해야 되고, 또 골방 생활을 자 주  해야 됩니다. 어쩌든지 자기의 믿을 거 의지할 거 바라볼, 거 그런 것이  아무것도 없이 툴툴 털어 버리고 주님 한 분만이 바라볼 수 있고 의지할 수 있고  그분 한 분 밖에 없는 그 세계에 자주 들어가야 됩니다. 자주 들어가야  돼집니다. 이런 연습을 자꾸 하면 성도는 자다 깨도 아무것도 주여 내가 의지할  것이 뭐 있으며 바라볼 것이 뭐 있으며 내가 뭐 어데다가 맡기고 지도를  받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내게는 당신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그런 고독한 자리 외로운 자리에  있어야 되지 사돈 팔촌까지 막 줄줄 걸려 가지고서 이렇게 해서 그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모든 칡발 얽히듯이 얽혀 가지고 있는 것은 얽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뭐인가? 그게 뭐인가? 얽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뭐입니까? 칡발 얽힌 듯이 얽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어요? 내가 이래도 못 하고 저래도 못 하고 얽혀 가지고.

있는 거 그거 모두 다 이 세상이라 그 말이오.

 세상에 얽혀 가지고 있으면 그만치 밧줄이 하나 얽히면 자유가 없습니다.

그만치 끌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리끼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아비 친척 본토를 떠나라' 말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시험 드는 사람들도 있는데. 제가 보니까 이 혈육의 친척이라 하는  이것이 참 바로 해결 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말한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쨌든지 우리 구원을 이루는 데에 방해하는 것이면 그것은 내가 멀리해야 될 내  구원을 방해하는 그 대적이 그 사람들 속에 들어 가지고서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거니까, 우리 구원에 방해되는 그것은 우리의 대적인데 우리의 대 적을  보고 낙심할 것인가? 아니오. 우리 대적인데, 우리 대적인 그 큰 대적은  우리에게 무슨 일하며, 적은 대적은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하며, 우리의 대적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무슨 결과를 만듭니까? 우리의 대적은 우리에게 뭐합니까?  결과적으로. 해방과 자유 그 하나님으로 더불어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뿐이요.

그러니까 이러나 저러나 신앙을 가진 자에게는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인도하신다' 하는 그 찬송에 있는 대로 그저 이 믿음만 가지면 모든 것이 다  바로 되고 복되지 안할 것은 하나도, 안할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광야로 가니라' 광야에 가서 보니까 눈이 떨어졌습니다. 광야에 가서 보니까  음녀의 받을 심판을 암만 봐야 모르는데 데리고 가서 광야에 떡 따라가 가지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광야에 가 가지고 이래 보니까 그만 음녀의 받을 심판이  환하게 다 보였어, 다 보였어.

 이제 '그 문들을 열고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가 라' 그  땅에 있는 것을 하나님이 다 징벌하실 때까지 잠깐 이 골방에서 숨 어 있어라  그렇게 이사야 26장에 말씀하신 '문들을 열고' 그말은 이 세상에서 밀실로  들어가라, 광야로 들어가라, 하나님 한분만이 한분만이 너의 상대되고 모든  상대를 다 헤치고 버리고 하나님 한분만을 상대돼 가지고 그분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또 그분으로 더불어 인연을 맺고 그분으로 더불어 약속하고 같이  동행해서 출발 할 수 있는 그 자리에 자주 들어가라 그 말입니다.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붉은 빛 짐승을 탔다  이거는 짐승은 짐승은 무엇을 가르치는고 하니 이 세상을 가리켰는데, 그  마귀에게 속하여 있는 세상 마귀의 지도를 받고 있는 세상 마귀에게 속하여 있는  세상을 가리켜서 짐승이라 그렇게 여기에 상징을 한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한 세상, 마귀에게 지배를 받는 세상, 그러나 성도는 그것을  마귀에게 속하지 안하고 자기에게 속해지도록 이렇게 만들기 위해서 밭을 사는  것입니다. 밭을 사는 것, 자기 세상을 삽니다. 자기 세상을 사는 데는 그 모든  것이 자기에게 필요하게 유효하게 이용의 결과가 맺어지도록 그렇게 하려고 하는  데는 댓가를 내야 되니까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야 그것을 취하게 되지 부인하지  안하면 취하게 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붉은 빛 짐승을 탔다' 짐승은 악령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을 가리켜서  짐승이라 이렇게 말했는데, 붉은 빛 짐승이라, 계시록에 붉은 릿 이라하는 것은  노기를 가리켜서 붉은 용, 붉은 용, 붉은 빛 짐승 이렇게 말한 것은 다 노기를  가지고 악독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라.

 그러면 그 음녀가 지금은 타고 있으니까 그 짐승이 타고 있으니 지금 태워  가지고서 이와 같이 하고 있지마는 마지막에는 그 노기를 해 가지고서 위에  그것을 음녀를 태워 버리고 살을 완전히 먹고 완전히 불살라 버리고 만다.

 그러기에, 이 세상은 이것은 다 붉은 그 용들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요. 붉은 빛  짐승들입니다. 이거는 다 피를 흘리고 다 노기해서 사람을 살해하고 멸살시키는  그런 결론을 말하면 그런 세상이라. 사람을 살해하는 세상이라 그 말입니다.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다 그말은 무엇을 참람이라고 말하는고 하니 자존자 조물주  그분을 부인하려는 것이 가득 찼다 그 말이오. 조물주, 자존자, 조물주, 주권주,  주재주, 이분을 그 부인하는 것들이 뭐 거기에는 그 몸에 가득히 쓰여 있다  말이오.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다. 이런데 하나님 아닌 것이 하나님처럼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것을 제가 가지고 있는 듯이 하기 때문에  다 이거 참람이라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만이 인간에 대해서 행복되게도 할 수 있고. 또 모든 것을 다  이렇게 저렇게 처리해서 엎을 수도 있고 덮을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고 건설  할 수도 있고 이렇지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제가 전부 다 아는 것처럼  이렇게 한다 말이오.

 그거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데 하나님이 파괴시키면, 파괴시키면 이놈이  얼른 파괴시킬 때까지는 모르고, 파괴 할 때는 치가 들어서 파괴하면 내가  파괴하겠다. 이라고. 파괴하고 나면 내가 파괴했다 이렇게 말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것을 제가 한 양으로 이렇게 드러내 가지고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그 존대를 받도록 이렇게 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나도 주권적으로 저는 아무것도  할 힘이 없어요. 사람을 하는 것은 유혹시키는 것, 유혹시키는 거, 꼬우고 휘어  파고 협박하는 거, 위협과 협박해도 그것도 저는 하나도 못 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성도는 네가 아무리 죽인다고 아무리 말해도 주님이 허락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의 생명도 꼼짝 못 하고 네 머리털 하나도 너는 네 자유는  못 한다. 주님이 네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간섭하고 주권하고 계신다. 요렇게  단정을 딱 지으면 마귀 그놈이 그 사람에게는 그런 거 가지고 위협하지는  안해요.

 참람된 이름이라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 주권을 세상 제가 할 수  있는 것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참 그런가 하고서 그게 미혹 받아 가지고  세상에게 압도도 당하고 그게 소속도 당하고 점령도 당하고 거기에서 모든  정조를 뺏기기도 하고 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악령의 이름을 가리켜서 뭐라고 말했어요? 어? 불한당, 불한당  불한당이라 말은 땀 흘리지 안하고 다른 사람이 해 놓은 것을 제가 가로 뺏들어  차지하는 것이 불한당 도적들이라. 불한당은 도적 아닙니까? 불한당 땀 흘리지  안하는 무리들이라. 땀 흘리지 안하고 제것 만드는 무리들이라 그 말이오.

 저는 한내끼도 하지도 안하는 것이 하나님이 하셨는데 제가 한 양으로 이래 해  가지고서 사람 하나를 이렇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못해요. 지금은  주님이 왕이 되셨기 때문에 신자에게 대해서는 사탕이 왕 노릇을 못합니다.

마귀가 왕노릇을 못 하고 죄도 왕노릇을 못 하고 사망도 왕노릇을 못합니다.

옆에서 짓식짓식 하면서 침노는 하지 절대적인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지를  안해요. 왜? 주님이 점령하셨기 때문에, 불택자, 예수님이 대속을 하지 안 한자,  예수님이 책임지지 안한 불택자에 대해서는 영원히 왕입니다. 사탄은 영원히  왕이 돼 버렸어요.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이 짐승에게는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다, 세상 마귀가 주관하고 있는 이 세상에는 일곱 머리가 있다, 그 일곱  머리를 가리켜서 일곱 산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일곱 머리라 하는 것은 그 모든 통치 사상이나 또 어떤 종교 사상이나 또 무슨  그 철학 사상이나 그 정치사상이나 어떤 것이든지 굵닥굵닥한 원리적으로  원리적으로 그 사상의 근본되는 근본되는. 높은 산은 밑에 발취에 작은 산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 모든 사상 가운데 많은 사상이 그 사상에게 다  근거하고 그 사상이 소속해 가지고 많은 사상을 거느리고 있는 그 모든  굵닥굵닥한 대표적인 그런 사상을 가리켜서 일곱 머리라 그렇게 여기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불교니 이런 것도 하나의 일곱 머리 가운데에 하나로 들어 있고 또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나 이런 것도 일곱 머리 가운데 하나 들어 있고 이 거 다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열 뿔이 있다는 것은 열 뿔은 그 성경에서 힘을  가리켜서 많이 말했습니다. 뿔은 힘을 말하는 것인데 열 뿔이라 하는 것은 땅에  있는 힘 전부를 총칭해서 열 뿔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힘은 우리가 종류를 보면 그 참 종류가 많지요? 돈의 힘도 있고 지식의  힘도 있고 사람의 힘도 있고 언변의 힘도 있고 또 정치의 힘도 있고 과학의 힘도  있고 종교의 힘도 있고 사상의 힘도 있고 도덕의 힘도 있고 그 모든 윤리의 힘도  있고 별별 힘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힘 전부를 가리켜서 열 뿔이라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짐승이 몇 가지가지고 있어요? 짐승이 몇 가지 가지고 있어요?  손가락으로 가르쳐 봐요. 이래 쑥 들어 봐요. 두 가지 가지고 있어요. 두 가지.

일곱 머리와 열 뿔 두 가지를 가지고 있소. 그런데 짐승 한 마리에게 일곱  머리가 달려 있고 열 뿔이 그게 달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한  마리라 짐승 한 마리는 한 마리인데 거기에 일곱 머리와 열 뿔이 달려 가지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그 여자는 그 여자가 어떤 여자입니까? 음녀 그 여자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유혹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아들 준비로 아버지에게  상속받을 거, 아버지의 받을 것을 받지 못하게 하는 그런 유혹시키는 그런  세상의 인간의 마음을 다 끌어 가지고 그만 하나님에게 소망 두고 이룰 그 모든  시간과 정력과 모든 것을 이제 땅에 있는 매력적인 그것을 취하는데 다  오용하도록 잘못 쓰도록 그렇게 만든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 여자가 그 여자인데 그 여자가 '자주 빛과' 자주빛이라  하는 이 자주빛 옷을 입었는데 자주 빛은 어떤 것이냐? 옛날에는 왕 들이 입는  왕복을 가리켜서 자주 옷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왕복, 그러면 이거는 아주  호화로운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아주 영광스럽고 호화로운 그 외모를 세상 이 이십 세기 문화이면 문화 이런  것들이 아주 외모가 모든 사람들이 보면 아주 두려워하면서 홀딱 반 할만한 그런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거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붉은빛 옷 아주 영광스럽고 존영스러운 그 외모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붉은 빛 옷을 입었다, 그것은 사람을  살해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노기로써 멸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자세히 보면 구출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이오.

 그러면, 그걸 따라서 사람들이 해도 그걸 취하느라고 일생을 다 바쳐 봤자  일생을 다 바쳐서 그걸 취해서 그걸 취해서 모든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저 음녀로  참 부자라, 그런 것으로 아주 제 일인자라, 제일 공로자라. 권위자라' 이렇게  말해도 저는 일생을 속고 마지막에 숨 딱 질때는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네가 수고한 것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있나뇨?' 하면은  '아멘. 과연 그러합니다.' 하고 떠나게 된다 그 말이오. 어리석은 일입니다.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금으로 꾸몄다 말은 이거는  야, 영원하다. 사람들은 이십 세기의 문화나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필요한 그  모든 것을 가리켜서 이거는 영영히 있다, 영영히 있다, 이거는 뭐 이것이 뭐  노아 홍수 때 있다 하는 그 말은 모두 거짓말로 압니다. 노아 홍수 때 이것이 다  끌어 엎어져 가지고 없어지게 됐는데, 지금 있는 것은 경건치 안한 자들을  심판하실 날까지 모든 것을 간수해 두었다가 갑자기 이 모든 것을 불로 살라  가지고 다 원소로 돌아가게 한다고 이렇게 말씀을 했지마는 사람은 이 말씀을 다  부인한다 그 말이오. 거짓말로 듣고 있어요  그런데 금으로 꾸몄다 그 말은 여기에는 금으로 꾸몄다 말은 불멸성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금으로 꾸몄다. 아주 불멸할 존재로 사람들이 이렇게 세상은 튼튼하게  이 세상이 위험천만이라, 아, 바람 앞에 있는 등불처럼 그 운명이라 하는 그  생명이라 하는 것이 위험천만하다 그렇게 보이지 안하고 이는 반석 중에  반석이요 이거 지구 땅 덩어리같이 이거는 영원불변의 요동 없는 것이라  사람들이 이렇게 인식을 하고 있다 그 말이오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모든 보배로운 거 보석 진주는 다 이 보물들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이 음녀는 모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거, 보배로 여기는 거 그런 것으로 가득 꾸며놨다 말이오. 그런 걸로  가득 꾸몄기 때문에 사람들이 안 반할 수가 없고. 그 탐하지 안 할 수가 없고  좋아하지 안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는 그 믿음, 하나님을 향한  소망, 하나님을 향한 기쁨, 즐거움, 하나님을 향하는 그 열심, 하나님을 향하는  깨어 있는 맘 그런 마음이 세상 무엇에게 가 가지고 조그마치라도 그게 흐려지면  그게 벌써 음녀에 내가 접선이 돼 가지고 음녀의 유혹을 받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산다씽은 미국에 갔을 때에도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고 자기가 그 불란서 가  가지고서 불란서 그 거리를 지나면서 잠깐 동안 호화찬란한 데 대해 가지고서  잠깐 동안 네 시간 동안 주님을 잊어 버렸다고. 네 시간 동안 주님을 잊어  버려서 항상 그것 때문에 울면서 그만 네 시간이라도 음행했다 그거요. 산다씽도  음행했오. 산다씽도 네 시간 동안 그만 음행을 해 버렸오. 그래 가지고 그걸  원통히 여기고 회개하는 그런 것을 책에 기록한 것을 봤습니다.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꾸몄다 그 말은 이 세상에 이 모든 문화 그런  것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고 마음을 쏵 뺏들 만한 그런 모두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기에 미혹 받아서 하나님에게 마땅히 기울일 것을  거기에 기울이고 하나님께 바라볼 것을 마땅히 거기에 바라보고 하나님을 좋아할  것을 마땅히 그걸 좋아하고서 이래 가지고서 그만 완전히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리 돌아가는 그런 결과를 맺는 것을 가리켜서 음녀라고 그렇게 말을 하고.

 '꾸미고 손에 금잔을 들었는데' 여기에 묘합니다. 손에 금잔을 그 음녀가  손에다가 금잔을 들고 있어요. 금잔은 뭐이냐? 그 속에는 아주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가증과 음행이 그 금잔 속에  가득히 들었더라. 금잔에는 술 붓는 것이 잔 아닙니까? 그 속에는 이런 것이  가득 차 있더라.

 음녀가 들고 있는데 음녀는 이렇게 꾸며서, 사람들이 그 음녀만 봐도 그만  혹하게 되버리는데, 또 음녀가 들고 있는 금잔이 있는데 이 금잔이 있다 그 말은  왜 금잔이라 하나? 그 계시록에 금이라고 해석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을 특별히  어떤 특수성을 가리켜서 금이라고 말합니까? 어떤 특수성. 금은 뭐로  상징했지요? 영원, 영원한 거, 금은 영원한 거 상징했어요 영원한 것을  상징했어요. 이런데 금잔이라, 금잔이라. 이것은 그 잔 속에 든 이거는 영원한  것이다 영원한 것이다 그 금잔 속에는 참람되고 가증한 것이 가득히 들었고,  음행의 것이 가득히 들었다.

 그런데, 이것은 무얼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사람을 음행케 하는 포도주가  담긴 그 잔을 말해서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이 지식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 세상에 있는 지식, 하나님의 지식의 빛 있는 지식 하나님의 지식 외에 있는  이 세상 지식 그 세상 지식은 어떤 그 지식이 뭘 가리키고 있는고 하니 하나님만  바라보는 거 하나님 회에 딴 거를 바라봐라.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  아니고 이 세상에 할 수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다 해서 인간이 하나님보다 위에  높은 자리에 앉아 있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인간이 할 수 있다고 하는  그런 것이 모두 참람된 말이오.

 또, '음행의 더러운 것이 가득찼다' 이는 그 잔에 있는 것은 마시면 음행하게  된다 그거요. 마시면 그만 이 세상이 제일이라 자꾸 세상으로만 자꾸 기울어져  가지고 세상 제일주의가 돼 버리고 만다 그거요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는데' 그 이마에  그 이마가 누구의 이마인고? 이런데 요것을 가지고 서울에 있는 ○○○목사님과  저와의 의사가 대립됐습니다. 그분은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로서 목사님이 된  분인데 참 귀한 분입니다. 잘 따라다녔는데 그 이마를. 그 이마는 인격성을  가리키는 건데, 이마는 인격성에 이마가 있지 지식이 이마가 있는가? 이래  가지고서 음녀의 이마라 이라고 저는 그 이마가 요 금잔 이마라, 금잔 이마.

금잔이 무슨 이마가 있는가 그 억설 같다. 그러나 그러기 때문에 알기 어려워.

 '그 이마에' 이 이마에 금잔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기록된  데에 이 비밀이라 말은 참 알기 어려운 것이라. 깊다 그 말이오. 비밀이라 말은  깊다 그 말이오. 여기 팔만대장경은 얼마나 깊다고 탑니까? 이 세상에 있는  지식이 모두 깊다 말이오. 이런 철학도 깊고 이런 과학도 깊고 뭐 어떻게 주워  말을 해 놨는지 참 이 지식이 땅에 가득 찼습니다.

 가득 찼는데, 그런 거 그런 거 하지마는 척 먼 데서 '보자 고게 조물주가  부인하나 안 하나고 한 마디에 정죄 딱 받습니다. 조물주가 부인 하나 안  하느냐? 그것이 조물주에게 이끌어 붙이느냐 조물주를 무시하게 하는 것이냐  조물주를 무시하는 것이냐? 조물주가 기뻐하겠느냐 안 기뻐하겠느냐? 다  기뻐하지 안하고 노여워할 것이라 말이오. 그 한 마디에 정죄 다 되어 버려요.

 그러면 거기에서 조물주를 가르치고 있느냐? 조물주를 모르게 가리고 있지  조물주를 가르치고 있지 안해요. 하나님의 심판은 그것도 몰라요 사람이 어디로  가는가? 아니 그것도 몰라요. 어데서 왔느냐? 그것도 몰라요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흑백이 세월이 지나가니까 다 밝혀지는 그것 요 누가 하느냐? 선과 그  악의 모든 죄와 의의 그 모든 책임지고 세상을 통치하는 직접으로 직영하고 있는  이 우주의 모든 피조물을 직영하고 있는 분이 누구냐? 직영하고 있는 분을  몰라요, 직영하고 있는 분이 내나 주님이시라 그 말이오. 주님 혼자 직영하고  있어요. 주님 혼자 운영하고 계시오.

 이러기 때문에, 시간이 시간에다가 지혜를 주시고 날이 날에다가 그 지식을  더해 준다는 것은 인간이 수사관이 암만해도 몰라요. 모르나 세월이 지나가면  그것이 다 폭로가 돼져요. 세월이 지나가면 차차 폭로가 되어져서 세월이 모든  비밀을 드러냈지 인간이 드러낸 거 없어. 그 뭐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 뭐 수사관  저거들이 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드러낼 것은 다 하나님이 드러내서 다 알아졌지  다른 이가 드러낸 게 아니라 그거요.

 그런데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이거는 참 모두 비밀이기  때문에 막 사람들이 대가리를 싸댕기고 그 속에 뭐이 들었는고 자꾸 헤쳐 볼라고  연구하려고 애를 쓰는데. 헤쳐 봤자 속에 들어가 봤자 꼬불꼬불하게 자꾸 이래  거석하니까 뭐 찾기만 어렵고 힘든 거 같고 뭐 보배 있는 거 같은데 가면  허위라. 전부 허무한 거 아무것도 없어요. 다 허무입니다.

 그러기에 그속에 다 무책임한 것이요 실상이 없는 것이요 끝이 없는 것이요  자꾸 사람이 개미 쳇바퀴 돈다는 식으로 사람이 요래 말하고 조래 말하고 요래  말하고 장 뺑뺑 돌아가 봤자 인간을 초월하지 못했고 인간을 초월하지 못했고  인간 수평선 밑에서 돌았고 사망을 초월 못하고 사망 수평선 아래서 돌았고  저주선을 모르고 저주 아래 돌았고 조물주를 붙들지 못했고 암만 찾아봐야  붙들지를 못했으니까 그것이 아주 옅은데도 심히 무저갱같이 깊다고 생각이  돼집니다.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큰 바벨론이라는 거는 18장에 가서 해석을 해  놨습니다. 큰 바벨론이라 하는 것은 고것이 고것이고 은잔에 들었는데 은잔에  들었는데 그 교훈인데 그 교훈 그것이 온 세상에고 안에 다 들었다. 자기네들  지식대로 세상에 보고 듣고 하는 모든 것을 똘똘 뭉쳐서 다 기록해 놓은 것이  세상 지식이다 그 말이오. 세상 지식이다, 은잔은 세상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지식은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지식은 하나님을 모르게 하는 것이요  참람되게 하는 것이요 가증스럽게 하는 것이요 음행케 하는 것들이 가득히 든  것인데 그것은 비밀이라 사람들이 알기 어렵다. 그래서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공부할 수 있어서 공부하게 되는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자기에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마는 죄를  지어 가면서라도 공부는 해야 되겠다. 신앙생활을 버려 가면서라도 공부는 해야  되겠다. 이렇게 하는 것은 벌써 그거 해야 내가 잘 산다, 그게 벌써 우상이  되어졌고 벌써 그것이 자기에게는 음녀가 되어졌다 말이오. 우상이 되어졌고  음녀가 되어졌고 간부가 되어져서 되어졌으니까 그 다음은 비참할 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순조롭게 주지 안하는 그런 지식을 가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지식 가짐으로 죄 많이 있으니까 토하여 내버리고 죄를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이 자연스럽게 주지 안하는 지식을 탐하는 것도 그  탐심이요 그것도 내나 악한 욕심이요 육체의 정욕이요 그거나 남의 물질  도적질하는 도적질하는 그 물욕이나 남의 아내나 그 남편이나 그런 걸 취하는  음욕이나 꼭 같은 그 마귀의 것이요 꼭 같은 욕심이요 다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식욕은 그것은 아주 젊잖은 욕심인 줄 알지마는 신앙 욕심도  같은 욕심도 같은 욕심이요. 신앙 욕심도 못 씁니다. 신앙 욕심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대로 현실에서 나는 그를 위하고 그의 법칙을 지키는 요것만이 나  할 일이지 그 외의 것은 나 할 일 아니라,  '내가 성자가 될는지 뭐 이 될는지 주여 날 어떻게 하든지 나 할 일은 당신만  어디서든지 더운 데서도 당신 위하고 추운 데서도 당신 위하고 배부를 때도 당신  위하고 또 물 속에서도 당신 위하고 죽음에서도 당신 위하고 무궁세계에서도  당신 위하고 나는 당신 위하는데 당신 위하는 법칙은 당신이 나에게 주시는  유일한 법칙인 이 말씀 요대로 위할 거 요거 외에는 나 할게 없습니다.'  '야, 이라면 네가 내려간다' '내려가고 안 내려가고 내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에게 맡겨. 당신이 좋은 대로 좋으면 내려가는 것이 좋으면  내려가게 할 것이고 올라가는 것이 좋으면 올라가게 할 것이지 내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 할 일 아닙니다.' 우리 할 일은 두 가지요거 뿐인 것입니다.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음녀들과 음녀, 그 음녀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은 책에서  나왔다 그 말이오. 세상 모든 지식에서 나왔다 그 말이오. 세상 지식에서 나온  이 모든 음녀가 세상 지식에서 나왔어. 세상 지식 그것이 다 음녀를 만들었어,  세상 지식 그것이 음녀를 만들었고, 또 예수 믿는 사람들도 세상 지식 그걸 무슨  수로 처해 가지고서 그래 가지 고만 음녀로 더불어 음행하고 말았다 그 말이오.

하나님 한 분이면 제일인데  그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 한 분으로 전부를 삼은 것이 에덴동산이요 앞으로  무궁세계에 가면은 뭐 세상 지식이 이 인간들 지식이 그때 하나라도 남아  있습니까,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다 그대로 있습니까? 성경에 뭐라고 말했어요?  한번 말해 봐요. 세상 지식이 뭐라고 했지요, 어떻다고? 폐하리라. 다 없어져  털끝 만한 것도 남아 있지 안하고 다 없애 버려요. 다 없어집니다.

 그것 다 없고, 이거 아니면 죽을 줄 알고 이거야 편하다 하지만 무궁세계는 이  세상은 하루 밤 나그네와 같고 그 내세에는 영원무궁 끝이 없는 세계인데 그렇게  긴 세계 넓은 세제 하늘과 땅이 통일되는 그 큰 세계 그 세계 이런 것은 하나도  없어도 삽니다. 이거 하나도 필요가 없어. 하나도 없어. 다 폐해 질 것들이라.

그저 하나님 한 분과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는 우리에게 주신 법칙 그거 하나만  가지면 다 돼 버려요.

 그러니까, 지금 그 나라에 가서 살 준비를 해서 그 나라의 생활을 익숙하게  숙달하는 사람이 있고 이 세상에서 썩어질 세상에 숙달할 수 있는데 공부는 많이  했는데 연습을 많이 했는데 이것 숙달 많이 했는데 숙달한게 그만 헛일이 돼  버렸어. 숙달한게 헛일이 돼 버렸어. 그 미련한 사람이 숙달한 거 그것이 영원히  쓰여집니다. 그러니 뭐 숙달하렵니까?  이러기 때문에, '경건을 연습하는 것은 금생과 내세에 유익이 있나니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지마는 그 챔피온 챔피온 해 봤자 몇 해나 될는지 올해  우리나라에 레스링 챔피온 탔던가 그랬지? 금메달. 그랬는데 몇 살 먹었다더라.

스물세 살? 스물세 살이면 이제 사 년만 지나면 스물일곱 살이요 스물일곱  살이면 틀림없이 떨어집니다. 그거야 이 삼 년 이 삼 년 뒤에는 발로 툭 차여  떨어지는 그놈을 그걸 뭐 거석하려고다. 육체의 것은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음녀들의 어미라' 음녀들이 다 거기에서 나왔다, 가증한 것들이다  거기에서 나왔더라 하였더라. 그러니까 그 이마는 그 이마는 뭐이냐 하면은 이  금잔. 이마입니다. 금잔 이마라 하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어때요? 금잔 이마라  하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어때요? 금잔 이마라 하는 거 이해가 돼요, 어때요?  금잔 이마라 하는 거 이해가 돼요? 여인의 이마라고 이해가 돼요?  땅의 있는 모든 가증한 것과 바벨론 그런 것이 다 그 금잔 그것이 바벨론이요  금잔에 든 그것이 바벨론이요 그게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데 어미인데  고 세상의 화려한 문화가 그것을 내놨다 할 게 아니라고 문화와 모든 세상의  음행케 하는 것이 어디서 나왔냐 하면은 세상 지식에게서 나왔습니다. 요  지식에서 나왔다는 것이 고것이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은 심령이 어두운  사람입니다. 지식에서 나왔습니다. 그 이마는 음녀의 이마가 아니고 금잔의  이마입니다.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그러면 이 여자는 음녀인데 이 음녀가 성도들을 잡아먹었다 그 말입니다.

성도들을 다 잡아 먹어서 성도들의 그 피와 증인들의 피에 취했다. 많이  잡아먹어서.

 이것은 그들이 순교한 것만을 가리켜 말한 것 아닙니다. 그 운동은 어쨌든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 생활하지 못 하게 이렇게 저렇게 유혹을 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들 생활할 것을 다  잡아 먹었다 그 말이오.

 이라다가 그래도 하나님의 아들들의 생활을 하면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생활을 하면은 마지막에는 어찌 됩니까? 순교한다 말이오. 그러면 순교자들도 이  안에 그 성도의 피와 증인의 피에 취했다 하는 성도의 피와 증인의 피에 취했다  그 말은 이제 이 유혹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아들 노릇을  못 하고 그만 음녀에게 다 잡아 먹혔다 그 말이오.

 음녀에게 다 잡아 먹혀서.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 성도들의 그  생명력을 다 이것에게 다 잡아 삼켜 버리고 안 삼키려 하는 자들은 나중에  순교까지도 다 나가게 됐다. 그러니까 이 음녀가 우리의 피와 살을 빨아 먹고  있어요. 우리를 다 잡아 우리의 피와 살을 빨아 먹고 있어.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음녀라는 걸 여러분들이 자꾸 느껴서 절실히 이게  느껴져야 됩니다. 음녀, 이게 확실히 느껴지고 확실히 실감이 되고 확실히  인식을 돼져야 됩니다.

 볼 때에 저기 음녀로구나. 내가 하나님을 향하는 그 하나님의 아들들의 준비를  하려 하는데 조게 들어 저 매력에 내가 끌렸구나. 텔레비전을 보고 아이구 내가  또 이 음녀에게 또 내가 접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아들의 이 정력을 다 뺏겨서  삼켰구나, 잡아먹혔구나, 한 시간 잡아먹히고 두 시간 잡아먹히고 세 시간  잡아먹히고 텔레비전은 보기 시작하면 세 시간 네 시간도 지겹지 안하는  모양이오.

 그러면, 세 시간 네 시간 잡아먹히는 시간이라. 세 시간 네 시간 하나님의  아들이 잡아 먹혔어. 세 시간 네 시간 아주 잡아 먹혔어. 잡아 먹혔다 말은 둘째  사망으로 완전히 죽었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아들들의 그 기능을 두 시간 세  시간 잡아 먹혀요. 그만 그 매력에 하나님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아들 노릇 안  했거든.

 자, 따라합시다. 텔레비전은! 성도의! 피를 먹고 취한다! 텔레비전에게! 영생할  하나님의 아들의 기능을 다 잡아 먹혔다! 요거 기억하십시오. 한 시간 보거나 두  시간 보거나 암만 봐도 괜찮아. 뭐 텔레비전 보는 것이 나쁩니까? 텔레비전  보면서 성자될 수 있고 텔레비전 보면서 오히려 구원을 잘 이룰 수 있고  텔레비전 보면서 하나님께 대해서 더 가까이 나갈 수 있고 텔레비전 보면서  세상을 완전히 이용할 수도 있고 그거 됩니다.

 이러니까 그 하나님의 선물로 사용하느냐, 음녀로 사용하느냐 그게 문제라. 뭐  텔레비전 봄으로써 믿음이 더해질 수 있어요 텔레비전 보고 난 다음에 믿음이  더해지고 이제 각오가 더 서지고 이렇게 이놈해고 싸워야 되겠다. 하는 '마음이  강한 사람이 있고 고만 그 텔레비전 보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잊어버리고 그만 그 매력에 쏠려 가지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나님 깜박  잊어버리고 구원 깜짝 잊어버리고 그것에 취해 가지고서 그저 한 시간 두 시간  허허 허허 거리며 완전히 거기에 도취된 사람으로서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이래 가지고서 매일 매일 그 시간에 텔레비전 그 음녀에게 뺏긴 시간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텔레비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을 하나님의 선물로 이용할 수도 있고  텔레비전을 하나님께서 보통 계시로서 나에게 깨우쳐. 아 텔레비전 보고 깨닫는  것도 있어 보니까 춤을 추고 이래 자꾸 너울너울 하는데 그걸 보고서 인간이  저렇게 참 자기에게 실상 없는 저런 유혹을 받아 가지고 그만 저래 마다가  죽으니까 그거는 떠들어 쌓는 것이 뭐이냐면 나 죽는다고 죽을라고 발동치는 것,  마치 배암이 모가지가 끊기니까 이렇게 정신없이 날 뛰는 것 그 인생이 뭐인지는  모르고 인생으로서는 정신없이 날뛰고 있는 것들이라 말이오.

 그리고, 또 사람을 자꾸 유혹해서 사람을 하나님에게 집중되지 못하도록 자꾸  산심시키고 방탕시키고 고만 거기에 끌려 가지고 하나님도 진리도 잊어버리게  영영한 것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큰 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그것도 못하게  그것만 보고 있다가 보면 이 다음에 환난 와야 기도 시간 그것 다 뺏겨 버리지.

성경 볼 시간 다 뺏겨 버리지. 이러니까 이 앞에 환난이 왔으면 자기가 하루  삼십 분씩 꼭 기도해야 될 터인데 그거에게는 하루 세 시간 네 시간 다 뺏기면서  여기에는 바치지 못했으니까 자기 승리 생활을 그것에게 다 뺏겼다 말이오 그래  그게 날 잡아 먹었어.

 음녀가 성도의 피와 증인들의 피를 먹고서 취했더라. 얼마나 먹었든지 취했다  그 말이오. 이런 성경을 보고서 그런 것들을 볼 때에는 그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러면서 손해를 절대 보지 않습니다. 그것을 봄으로써 더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가고 더 각오가 돼지고 음녀에 대해서 더 대적심이 적대심이 더 강해진다  그거요.

'내가 그 여자를 보고서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이렇게 여자 이  음녀 이 모든 성도들의 피를 삼키고 있는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니 그 참  이상하다. 그거 어찌 그게 들어서 성도의 피를 그렇게 다 마시고 취해 가지고  있는가 하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이 비밀이 무엇을 가리켜 말합니까? 이 비밀은 그 셋이  똘똘 뭉쳐서 하나가 돼 가지고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그것이 여기의  결말이요 결론이요 여기의 주요 되는 제목인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저거끼리 이 놀음하고 저 놀음하는 것은 연극하는 거라. 연극은  자기네들이 짜 가지고 짜 가지고 이 놀음하고 저 놀음하고 이라는 것인데  그것보고 우는 것보고 울고 뭐 슬퍼하고 이라는 것은 그거 다 연극을 몰라서  그렇다 그거요.

 저거들이 보면 저거들이 서로 싸우고 이래 싸우고 이래 싸우고 하니까 그  대적인 줄 알았는데 아니야 그것이 뿌럭지는 하나라. 이 주의나 저주 의나 모든  것이 그거 다 세상이라 말이오.

 이 주의나 저 주의나 모두 세상이라 하늘나라 아니요 세상과 하늘나라뿐입니다.

세상과 하늘나라 둘 뿐이요 악령과 하나님 둘 뿐이요 죄와의 둘 뿐이요 멸망과  구원 둘 뿐이요.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이제 이 짐승이 무슨 짐승이라 무저갱에 갇혔던  짐승입니다.

 무저갱 무저갱에 갇혔던 짐승인데 그 무저갱에 갇혔던 짐승이 전에는 있었다가  지금은 없다 장차 나올 것이라 그 말은 이 무저갱이라 하는 것은 그 완전한 그  감옥이 아니고 감옥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저희가 하고 싶은 것은 백 개를  하고 싶으면 하나님께서 너는 오십 개만 해라. 너는 스무 개 만 해라. 성도들의  구원을 이루는 데에 방해되지 안할 정도로써 마귀에게 하도록 그 자유성을  허락해 주신 그 제한적 활동성을 가리켜서 무저갱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노아 홍수 전에는 하나님께서 무저갱에 있던 것을 다 내놔 너희  마음대로 한번 해 봐라. 이러니까 그때 뭐 얼마나 나와 가지고 성도를 꼬우고  이러니까 남아서 그때 꼬임받지 안한 성도가 몇이나 됐지요 몇이나 됐소?  여덟 명 그래 그때에는 다 내놔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연단해서 꼬울 대로 다  꼬우니까 전부 그 꼬임 받아 가지고 여덟 식구밖에는 안 남고 나머지기는 다  넘어갔던 것입니다.

 예수님 초림 때에도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도 하나님께서 무저갱 같은 그 신을  마귀를 내놓으니까 그 전에도 마귀가 있었지마는 권리를 이제는 권리의 범위를  넓혔다 말이오. 이거 제재하는 것이 없이 내놓으니까 그 때 다 꼬임 받아 가지고  그 메시아로 자기네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마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성도들  가운데 주님을 메시아로 모신 사람들이 노아 때보다 많지마는 극소수였습니다.

극소수.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이제 마지막으로 지금 아직 마귀란 놈이 지금 나 왔는지  안 나왔는지 모르겠소 . 지금 뭐 활동하고 이래 하는 것 보니까 아주 복음  운동같이 이래하고 있는데 나왔다 이렇게 볼 만치 그렇게 벌써 마귀들이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말이요.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폭넓게 활동하고 있고 범위 넓게  이러기 때문에 어느 귀신이 잡아갔는지도 모르게 그만 할 만치 범위 넓게 이래  가지고서 모두가 다 전체가 진리 운동이라. 이래 가지고 합세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합세 운동하는 것이 이것이 말세의 무저갱에 갇혔던 이 귀신이  나오고 난 다음에 합세 운동이 시작할 것을 동시에 시작될 것을 말씀했습니다.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이 앞에 이 다음에 그 무저갱에  갇혔던 제한적 권위를 가진 그 마귀가 이제는 전권을 가질 만치 이렇게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니까 그게 나와 가지고 마구 저희 군대를 새고 저거 운동을 하고  하나님의 운동을 대적하는 일을 하니까 대적이 되는지 대적이 안되는지도 모르고  범위 넓게 이렇게 활동하니까 그만 성도는 큰 그물 속에 들어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그물에 대이지 안 했다고 싸이지 안했다고 생각하는데 나중에 찾아 좁히니까  그물 속에 잡히고 말았다 말이오. 그러니까 너무 그물을 넓게 치니까 거기에도  자유 세계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할 만치 그렇게 아주 활동의 범위가 넓습니다.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지혜 있는  뜻이 여기에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산이요 일곱 왕이라. 왕은 권세를 말하고 산은 이렇게 사상적으로 높은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산 중에 제일 높은 산이 어떤 산이냐 하면은 시온산 제일 높은 산 그  시온산에서 생명의 법이 나오고 모든 백성들이 밑으로 다 영광을 가지고 기어  들어온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사상 중에는 제일 큰 사상이 기독교 이  사상이 제일 큰 사상입니다. 그 외에 그런 종류들이 있는데 요것은 일곱 머리라  하는 것을 자세히 생각해 보면 알고 열 뿔이라 하는 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말이오.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내나 그것이 나오지마는 그  일곱 머리, 일곱 사상이 나중에 똘똘 뭉쳐 가지고 일곱 사상을 통합을 시켜  가지고 일곱 사상을 통합을 시켜 가지고서 되는 것이니까 여덟째 왕이지마는  내나 일곱에서 나온 일곱 것이 통합된 것이 새로 통합된 것이 새로 그것이  여덤째 것인데 일곱째 것이 그런 사상 가지고 사람들을 시대 시대 유혹하다가  마지막에는 그런 것이 다 통합돼 가지고서 마지막으로 성도를 유혹하게 된다.

 12절에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이것도 힘을 말합니다.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짐승으로 더불어 일시 권세 받는다 그말은 짐승으로 더불어 권세 받는다,  짐승에게 권세를 받는 것이 아니고. 짐승과 함께 권세를 일시 동안 받는다  그말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권세를 줍니다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저희들이 한 뜻을, 일심 단결 돼 가지고서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이제 열 뿔과 일곱 머리 가 짐승에  맡깁니다. 짐승에게 준다는 말은 악령이 주관하는 이 세상에게 맡긴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모든 힘도 통합되고 사상도 통합되고 다 통합된 세상이 이제는 일시  동안 권세를 가지고 이와 같이 할 것이라.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가지지 안하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그러면 요 다음에 보면 자기 뜻을  가지고 하는 것을 17절에 말씀해 놨습니다.

 '짐승에게 주더라' 이러니까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됐다, 그러니까 '저희 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 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이래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운다 그말은 어린양은 교회를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기독교 기독교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데 어린양은 예수님을  말하고 범위 넓게는 교회를 말합니다.

 이제 이러면 참된 교회만 하나가 되지 안하지 참된 교회만 하나가 되지 안하지  그 나머지기는 전부 하나가 된다 그 말이오. 그 나머지기는 전부가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된다. 그래 가지고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운다.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데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이기신다 그말은 예수교는  예수교는 근본 창조하신 자존자가 창조보다도 앞서 당신의 목적을 정해 놓으시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정했고 창조했고 보존했고 섭리하고 관리하시고 이제  예수님이 대속하시고 오늘까지도 이렇게 섭리 관리 하셔 가지고서 이루어가는  근본 조물주 당신의 것이기 때문에 이 밑에 온 일곱 머리 열 뿔 해 봤자 얼마  됩니까?  그것이 지구 땅덩어리에 있는 것이지 영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얼마냐? 근본  그는 이거 다 탁월해서 그분 그분이 근본 역사를 하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다  이렇게 저렇게 만들고 서로 대립도 되고 충돌도 돼 가지고서 그런 조화 속에  이상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는 너무 비교 안 되는  근본이요 고차원의 것이기 때문에 그는 의례히 멸하지 못한다, 예수교와 대립될  것이 없다 그 말입니다.

 예수교와 대립될 것은 없고 예수교가 승리하기는 승리하는데 거기에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거기에 끌려 갈 사람도 있고 끌려가지 안할 사람도 있다.

 이래서 뭣 뭣이 합해 가지고 하나 됐습니까? 여기에, 여기에 뭣 뭣이 합해서  뜻이 하나 됐습니까? 짐승. 일곱 머리, 열 뿔 요것이 합해서 하나 됐는데  어쨌든지 여러분들이 해석을 달리 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지마는 요 달리  해석하면 다 틀립니다. 안 됩니다.

 요것은 나타나 있는 존재는 일곱 머리 열 뿔들이 다 왕이요 높은 산이요 다  이런 것들인데. 이것이 똘똘 뭉쳤는데 거기에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어린  양만 대립이 됐지 어린양 외에는 대립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서이나 너이나  있는 것 아니오. 어린 양과도 대립 이것도 대립 그런게 아니라 어린 양 외에는  전부 한 덩어리 됐다 그거요. 요걸 여러분들이 기억해요. 이라면 여기에 해석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말이오. 이걸 자꾸 마귀는 지금 못하게 합니다. 마귀는  못하게 복잡하게 해요.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한 덩어리가 됐어요. 한  덩어리가 됐는데 그 위에 그 상징한 것을 보면 확실하지가 않습니까?  이 일곱 산도 오묘하고 음녀도 오묘하고 또 광야도 오묘하고 그 금잔도  오묘하고 금잔 속에 든 것도 오묘하고 다 그 뭐 몰라 그렇지 확실하다 말이오.

말로 한 것보다 더 확실해요. 이래 가지고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데 그러면  이렇게 이 셋이 하나 됐다, 이 셋이 하나가 됐다 하는 요것을 언제든지  명심합시다.

 하나가 되고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운다. 싸우는데 어린 양은 이기지마는  거기에 따르는 자들 가운데서는 부르심을 입고, 부르심을 입는다 그 말은 예수  믿기 시작한, 부르심을 입는 것은 자기 주관이 영접하고 자기 주관에 관련하는  것을 가리켜 말하고 그 중생된 것은 자기 주관에는 관련이 없습니다. 자기  주관은 몰라요. 이 심신이라는 주관은 전혀 모릅니다. 모르고 부르심을 받은  것은 이것은 자기가 예수 믿기 시작한 것을 가리켜서 부르심을 받았다  이랬습니다.

 부르심을 받고 빼심을 얻었다 말은 택함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가진 사람이 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를 가진 사람 가운데 '진실한  사람들은 이기리로다' '진실한 사람은 이기리로다' 이랬는데 진실은, 거기에서  뭐 진실은 이 세상이 말한 진실 그런 것이 많지마는 진실의 정의는 어떤 것이  진실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준해서 고대로 이루어진 것이 진실의 행위입니다.

진실의 행위.

 그러면,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위주로 하라 하는 것이 성경이요 하나님  위주로 그만 상대하고 그만 바라보고 그에게만 맡기고 그에게만 복종하라 하는  것이 성경이라. 이래 성경대로 된 요것만이 진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성경대로의 마음. 성경대로의 지식, 성경대로의 행 위,  성경대로의 사람이 된 그것이 진실인데 이것은 어데까지나 그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하나가 돼 가지고 어린 양으로 싸울 때에 이때에 이기는 자가,  이기는 자가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합니다.

 이기는 자가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합니다. 이기는 자가 하늘과 땅의 것이  통치 될 때에 하늘나라에서 그 모든 만물을 관리하고 만물에게 중보자가 돼  가지고 만물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는 만물을 다스릴 수 있고 만물을 억압할 수  있는 만물에게 통치할 수 있는 만물을 누를 수 있는 꺾을 수 있는 만물 위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지 안한 사람이 아닌 자가 아니면 그걸 통치할 수 있는 그  권리를 못 가지는데 그 통치하는 권리를 가리켜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통치하고 있는데, 이것은 무슨 실력 가지고 되느냐? 진실 실력 가지고만 된다.

그러면 진실의 실력은 뭐이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감 도리를 주신 계시  도리를 주셨으니까 영감 도리 유일한 법칙으로 우리에게 주신 영감 도리대로의  자기 영육의, 자기의 영육을 가진 사람이니까 영은 벌써 영감 도리의 영감대로  진리대로 중생됐기 때문에 그 영은 온전함을 이루었고 우리의 마음과  고깃덩어리의 문제인데 이 마음과 고깃덩어리가 성경 말씀대로의 마음 성경  말씀대로의 그 고깃덩어리 그러면 마음은 성경 말씀대로의 마음의 활동, 성경  말씀대로의 몸의 활동, 그러니까, 성경 말씀대로의 마음의 활동, 몸의 활동,  성경 말씀대로의 마음의 형태, 몸의 형태, 몸이 성경 말씀대로 됐고 마음이 성경  말씀대로 된 요 사람이 성경대로의 사람이라 그 말이오. 요것만이 이것을  이깁니다. 딴거 가지고는 이거 이 단체물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올수록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올수록 자꾸 하나님의 말씀은 멀어지고 가리워지고  숨겨지고 인간 말이 자꾸 나오게 됩니다.

 인간 말이 나와 가지고서 결국은 인간 말과 하나님 말하니까 그 천주교 하고  개혁교하고 둘이 합동 번역하면서 개혁교 대로 주장할라 하니까 안 된다, 그래서  천주교에서 소원하는 거 하나 들어 주면 개혁교에서 소원하는 거 둘을 들어  줬지마는 저거는 하나 들은 것도 큰 수입이라 그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인간 말들은 많이 해놓고 인간 말을 듣지 안하고 하나님  말씀만 듣는 자는 자연히 세상과 갈라지게 된다. 인간 말 듣지 안하고 하나님  말씀만 듣는 자는 자연히 갈라지게 돼요. 거기에서 갈라지게 돼요  갈라지나 이 세상이 우리 영주처라면 세상 실패는 영원한 실패가 되지마는 이  세상은 준비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이 준비하는 세상에 하나님과 진리 둘을 내가  취하기 위해서 세상 모든 걸 다 뺏기고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뺏겨서라도 이  두분만 자기 것으로 삼았으면 그는 하늘과 땅의 것이 자기 것이 됐고 하나님과  진리가 자기 것이 됐기 때문에 자기는 생명의 중보자가 되었으니까 그 모든  피조물은 그 앞에 복종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세가 되어 갈수록 자꾸 성경을 무시하게 돼요. 성경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말을 자꾸 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은 그 교리  신조도 중요하지마는 교리 신조 그것이 중요하나 교리 신조로 사람들이  기울어지면 안돼요.

 이래서, 제가 혹 가르치는 거는 하나의 교리라고 볼 수가 있고 하나 신조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인제 그 교리와 신조는 그것이 몇 해든지 몇 시기든지  계속해서 사회성과 역사성을 가져야 일반들이 교리로 다 채택하는 것인데.

그러나 그거는 다 교리는 교리입니다. 그거 다 깨달음인 것인 데 이 깨달음을  이걸 볼 때에 이 설교록을 내놓는 것은 앞으로 참 너무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때가 됐고 너무 성경대로 예수 믿는 것이 아주 없는 때가 되기 때문에 그때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놨다가서 들추어 보고 좀 깨달을 수 있으리라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안식교를 저는 그것은 이단이라고 정죄를 했습니다. '정죄했는데  나를 사랑하고 나를 돕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말을 하기를 그 안식교를 정죄를  이래 했는데 그게 아마 무리가 좀 일어날 것입니다. 그 책이나 가면 안식교에서  무리가 일어날 것입니다. 왜? 세계에서 벌써 미국 같은 데는 안식교를  이단이라고 그렇게 정죄를 하지는 않습니다. 또 이 한국에 서도 안식교를  정죄하고 이단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내가 고걸 약간 고쳤어요. 고치기는 뭐라고 고쳤는가 하면은 그 안식일  지키는데 구원의 근거가 있다,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 얻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거는 구원이 없다, 안식일을 구원의 근거로 삼는 이것은 교리상 이단이다 그렇게  내가 말을 고쳐서 그렇게 쓰도록 해 놨어요.

 이러니까, 지금 참 골동품이 보배라고 지금은 고고학에서 자꾸 뭣을 옛날 걸  발굴해 가지고 무엇이 문화재가 뭐이 한 점 나왔다 두 점 나왔다 자꾸 이렇게  말하는데 자꾸 이 세상이 이래 되기 때문에 옛날 것이 그립다 말이오. 옛날  것이. 이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백주년 뭐 선교 백주년이라고 우리나라 도를 받은  것이 백주년이라 하는데 나는 그 날수가 그대로 맞은지 안 맞은지 그거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지 우리나라에 전도 받은 것이 백 년이라 해서 백주년  기념의 그 행사를 한다고 그래 해 가지고서 그걸 모두 부산에서도 천이백만 원을  비용으로 써 가지고서 그렇게 행사를 한다고 이라면서 저 한데 편지도 오고 절  고문으로 떡 갔다 이랬는데 나는 고문될 만한 자격도 없고 거기에 대해서 아무  성의도 없는데 이래 놓고서 그 뒤에 연락이 오기를 이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들만 이래 가지고 제일 큰 교회들은 한 교회에서 돈 백만 원씩이나 이래  내가지고서 백주년 기념 그 축하를 하려고 이렇게 한다고 하는데 우리도 제일 큰  교회 중에 하나 들어갔다고 큰 교회 중에 하나라 이라면서 '백만 원 내줘야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데 지금 거기에 대해서 내가 대답을 못 했어요.

 대답 못 하고 우리는 본야 별명이 지게군 교회요 별명이 지게군 교회고 아주 그  가난뱅이 교회인데 그뭐 예배보는 면적은 넓지마는 그러니까 강단은 조그만한  강단 고것뿐이고 강단 옆에 가득 채워서 예배보고 이런데 예배당이 아니라  그거는 창고입니다. 아무래도 서부 교회 예배당은 창고라 하지 그 예배당이라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돈이 없고 이래 하니까 이름만 컸다 뿐이지 그러니까  그렇게 아마 기대했다가는 어그러질 터이니까 그저 적게 해도 우리의 성의대로  한 줄 알고 그걸 이해를 해 주십시오 그렇게만 말해놓고 답을 안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뭐 이런 운동 저런 운동 자꾸 이렇게 대해 가지고서 앞으로는 아주 성경  말씀을 희귀한 때가 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것이 그리워요. 그러니까  찬송도 어떤 목사 그런 목사 한번 봤어요. 그 ○○교회서 ○○교회서 교역자  무슨 하기 수양회 한다고 광고가 와서 거기에는 다 식사는 제공하고 그 여비는  안 주고 이런다 해서 한번 왔다 하며 자기는 고신이 아니면서 참석을 했다고  참석을 하고서 여기까지 온 김에 그 백 목사님 생각이 나서 찾아 왔다고서 한  시간 예배를 보고 난 다음에 여기에 신편 찬송 있으면 절 한 권 구해 주십시오  하는데 구해 주질 못했습니다.

 나는 많은 줄 알고 '아, 있을 걸' 이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악상 없어요, 그분이  '뭐하려고 구하느냐?' 이러니까 너무 이 찬송가가 전부 이 세상에 따라서 너무  유행이 돼 버렸습니다. 너무 유행이 돼 가지고 도무지 예수 믿는 참된 찬송의  흔적을 찾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신편 찬송이 있으면 그걸 좀 보고서 어떻게 좀  할까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걸 좀 구해달라고 그래 말합디다.

 그 면이 동지라 그 면이 동지라서 내가 종 좋게 하고서 그 다음에 전화도 하고  이렇게 해서 했었는데 우리 교단에서도 신편 찬송 또 합동 찬송 새찬송 이 세  가지를 두고서, 요새 나온 찬송은 무슨 찬송이라요? 어? 통일 찬송 통일 찬송  나왔는데 거기에서 여러분들이고 보고서 요 찬송은 참 있어야 되겠다. 하는 고런  은혜로운 찬송은 고 기록해 신편이면 신이라 해 가지고서 합동이면 합이라 해  가지고서 새찬송은 새라 해 가지고서 또 통일이면 통이라 하고서 그래 가지고  몇장 몇 장 요것은 요 우리 찬송으로 둥용 했으면 좋겠다. 고런 것을 여러  분들이 의견 있는 대로 다 해서 그 서부교회 편집실로 보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보내 주시면 그걸 주워 모아 가지고 어떻게 참 해서 너무 얼토당토 않는 그런  찬송이 많아요 이제 이러니까 자꾸 찬송가로 교회를 속화시킵니다. 또 성경  번역으로 교회를 속화시킵니다.

 이러니까, 뭐 하나님이 속화되지 안하게 해야 안 되지 그거 가지고 속화를 막을  수는 없지마는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하고서 하나님께 맡겨야 되고 하나님께  구해야 되는 것이지 우리가 할 일을 하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권능을 믿고서  맡긴다는 것은 그것이 막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되어지는 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래 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고런 좀 기록해서 보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거 나는 지금 한다는 말이 아니요 그래 돈 드는 것은 들여 가지고서  하면 싶은 데 그게 법적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다 편집해 논 것이니까 그것을  어떻게 법적으로 할 수가 있는지 그걸 몰라서 그 법적 문제를 몰라서 법적  문제를 밟아 가지고 할 수 있으면 하리라고 그렇게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제일 무서워할 것은 뭐이냐? 말세는 짐승, 일곱 머리, 열  뿔이 합해서 참된 기독교 외에는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 되기 때문에 한 덩어리  되는 것이 제일 삼가고 두려운 일인 것을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인식을 하고 가야  될 것입니다. 이 참된 기독교 외에는 전부 똘똘 뭉쳐서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지니까 한 덩어리 되어지는 이 세력이 무섭습니다. 그것을 말해서  인본주의의 단합이라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린 양으로 더불어 하는  것은 신본주의의 단합이라 이렇게 할 수가 있어.

 (앞으로 뭐 이렇게 될 때에 인본주의에 안따라 갈 수 있어 안따라 안따라 갈 수  있으면 생명을 내놔야 돼 그렇게 쉬운 줄 알아요 쉬운 거 아니야.) 이러니까,  이제 사람들이 물론 사람들이 화합하는 것은 좋습니다. 화합하는 것은 좋지마는  진리보다 좋지 않습니다. 화합하는 가치를 진리보다도 높이 평가하면 안 됩니다.

화합하기 위해서 진리를 버리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화합보다 더  좋은 것은 진리요 진리보다 더 좋은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버리고 진리 좋다고 진리를 위주로 택할 수 없고 인간  화합이 좋지마는 진리 버리고 인간 화합이 좋다고 그것을 따라 갈 수가 없는데  여러분들이요 화합 단체에 이기는 사람은 진실한 자만 이기는데 이기는 사람들은  다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고 이기는 사람들은 다 영광의 구원을 가지고  이긴 사람, 하나님과 피조물들에 환영과 존대를 받고 피조물들의 그 대상이  되어서 피조물들의 모든 기대가 되는 그 중보자가 됩니다. 주님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예수님이 중보자 신인양성일위가 우리 중보자 되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 아니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모든 피조물과 앞으로는 주님과의 그 사이의 그 교회가  중보자가 돼 가지고서 되는 것인데 그 중보자는 뭐이냐? 이긴 자들이 그때  중보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긴 자들이 선지자되고 왕되고 주님의 몸되고  지체되고 이렇게 등용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기는 자는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우리는 택함을 받았오.

우리는 중생돼서 벌써 신앙생활 시작한 사람들이오. 이제 진실만 있으면 됩니다.

진실의 뼈다귀가 뭐이지요? 진실의 뼈다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하나님의 말씀과 꼭 같은 마음, 하나님 말씀대로 된 그 행위, 하나님  말씀대로 된 그 지식, 하나님 말씀대로 된 행위, 하나님 말씀대로 된 그 사람,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이 그 속에 골자입니다. 골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딱  그래 가지고 그게 이거요.

 보면 아무리 단합해도 단합은 하나님 말씀에 틀렸는데 하나님 말씀에 틀렸는데  나는 할 수 없다 요거 가지고 승리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인간 비위니  단체니 세상에 이런 면이니 저런 면이니 하면은 그 면이 다 좋소. 완전하고  구비해서 뭐 부족함이 없이 좋은데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이 지식이라. 요  하나님의 지식에 틀렸느냐, 하나님의 지식에 일치되느냐? 요렇게 하는 행동이  하나님 말씀대로 된 행동이냐 안 행동이냐? 요렇게 된 이 모든 사람들이 성경이  가르친 성경에 표준한 그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냐 아니냐? 요것을 요 너덧  가지로 요렇게 하나님 말씀을 잣대로 삼아 가지고 살피면 그 사람은 환하게 틀린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자신 만만하게 승리하지마는 승리를 할라 해도 이리  가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천인 만인이 다 그렇게 다 가고 옳다 하는데 나 혼자  이렇게 이래 가지고 그걸 이길 수 없다 말이오.

 지금부터 아야 하나님의 말씀 기준으로서 말씀대로 된 그 지식이라야.

 말씀대로 된 행위라야, 말씀대로 된 사람이라야, 이 말씀이 근거된 것이라 야  이 심판을 이기고 이것이 하나님에게 속해서 승리하지 말씀을 떠나서 할 수 없다  요것만 강하게 잡으면 그때 가서 '말씀이 이런데' 하면은 그게서 악령들이  꾀우는 대로 '그렇지마는 이렇고 이렇다' 자꾸 변명을 해 나갈 것입니다. 변명에  떨어지지 안하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데에는 이 진리가 외부적인  유일한 법칙이요 그 내부에는 영감이 유일한 법칙입니다. 그라면 우리 영을 만날  수가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 이렇게 일곱 머리와 열 뿔과 짐승이 단합됐으니까 그 뭣  단합입니까? 국가 단합입니다. 네, 국가 단합이요, 문화 단합이요 인류  단합이요, 사상 단합이요. 종교 단합이요 정치 단합이요 모든 그 과학 단합이요.

모두 운동간의 전체가 똘똘 뭉쳐 가지고서 우리가 가는 길을 막을 때에 이길  용기가 있습니까? 어? 자 이길 용기가 있는 사람들 손 한 번 들어봐. 아, 저게  막 이래 든다. 예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를 못하고 있어요. 뭐 어데 일시에  무슨 그 경찰서에서만 그래 가지고 이 반대해도. 왜정 말년에 이거 뭐 신사  참배라 하는 거 그렇게 크지 안했습니다. 모두 직해야 부장들하고 싸우는 거  부장들하고 싸우는 거, 또 형사들하고 싸우는 거. 검사하고 싸우는 거 그  정도라. 그 뭐 판사에게 간 것도 별로 없어요. 야 그 찍해야 크게 말하면 그  조선에 있는 총독하고 싸우는 거라. 그 일본하고 싸워요. 고 얼마 됩니까?  지구상으로 말해도 그것 얼마 돼요? 일본에서도 또 단 합이 된 거 아니라 다  단합이 안 됐어, 그때, 그 정권자들 그들만 단합이 됐지 다른 사람은 일본  사람이 다 단합되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뭐 조그만한 거 가정에서 호주 하나가 반대를 해도 죽겠다. 살겠다. 썰썰 떨고  이라는데 자, 이 전체가 단합이 돼 가지고서 내가 가는 신앙 걸음을 바로 가지  못하게 막을 터이니까 그때 그 어려움이 얼마나 어려우냐 하는 것을 우리가 지금  추상해 봐야 됩니다. 해 봐야 되고 상상해 봐야 됩니다. 그것을 우리가 느껴  봐야 감상해 봐야 돼요. 실감해 봐야 됩니다.

 뭐 6·25때 그렇게 말해서 목사들 전부 도망 다 쳐 가지고서 이 부산으로 다  왔지마는 그거 찍해야 그 중공이나 소련이 조금 가담했다 하지마는 그 사람들은  가담해도 별로이 나서지 안했어. 직해야 이북 우리 같은 민족에서 이북이 한  덩어리 돼 가지고서 이 사상 반대로 말하는 그거라. 그게 뭐 뭐라더라? 새발의  피라. 새발의 피라 하던가 뭐 조그만한 거 새발의 피라하데 그것 모양으로  그것은 참 새발의 피라.

 이제 이 전체가 단합돼 가지고 우리 신앙 걸음을 가지 못하게 이 인본주의의  것을 신본주의로 그저 돈도 주고 꾀우고 탄압도 하고 위협도 하고 협박도 하고  꾀우기도 하고 이래 가지고 다 돌아갈 때에 그때에 그리 인본으로 돌아가지  안하고 신본 어린 양에게 속해 가지고 요동치 않는 사람이 누구냐? 그 사람은  세상을 이긴 사람이라, 그 사람 세상을 이긴 사람. 그 사람을 주님께서 이제  옳다 인정하시고 그 사람을 많은 것으로 그에게 줄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면, 그 이기는 방법은 딴거 없어요. 자기 의지로 못 이깁니다. 이길려거든  아야 성경 말씀대로의 아닌 행위라면 성경 말씀대로 안된 말이라면 성경  말씀대로의 안 된 지식이라면 성경 말씀대로 아닌 운동이라면 그 성경 말씀대로  된 그 인물들이 아니라면 아야 나는 거기에 따라가지 안하고 반대되는 이 성경  말씀을 네가 영생인 것을 알고, 이 성경 말씀은 네가 사망하는 거. 이 성경  말씀은 우리의 영생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성경 말씀대로 되는 것은 다 영생이요 이 성경 말씀을  어기면 죽는 것입니다. 이러면 어떤 자들이 대립이 된다 하는 그것을 지금 봐야  돼요. 지금 그 사상을 가지고서 보면 말은 하지 못해도 말은 하지 못해도 이  모든 운동들을 슬슬 보면 아, 어떻게 되겠다. 저 단체는 어느 운동으로 되겠다.

저 단체는 어느 운동으로 되겠다. 저 단체는 어느 운동으로 이것을 환하게 지금  미리 보고 단속할 수 있어.

 이러니까, 그 면에 있어서 예비하고 예비하고 예비해서 그 모든 것을 예비해  가지고 능가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사람은 능가할 터인데 능가하는 실력을  마련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만을 그 척도로 삼고 법칙으로 삼아 가지고  무엇이든지 요 말씀을 기준해 가지고 고게 어기는 것은 다 제거하고 다 포기하고  요 말씀대로 요 모든 것이 되어지기를 요 말씀만을 준해서 되는 요거 하나  가지고만 이깁니다.

 이러니까 오늘밤에는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마치고 가 가지고서 그걸 한번  생각해 봐요. 자 우리가 있는데 우리 그 지방 우리 동네 사람들이 내 신앙을  반대하면 어떻겠느냐? 고걸 좀 잘 생각해, 반대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각각  생각해. 동네 사람들이 반대하면 어떻겠느냐? 면 사람들이 반대하면 어떻겠느냐?  군 사람이 반대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우리 국가가 전부 다 반대하면 어찌  되겠느냐? 동양이 반대하면 어찌 되겠느냐? 이 모든 한국에 있는 기독교가 내  바른 길 걸어가는 걸 반대하면 어찌 되겠느냐? 자꾸 반대상을 만들어 봐요.

 이 반대하면 무슨 박해가 올 것이다 그럴 때는 나는 요렇게 또 하겠다. 요새 내  그 미국에서 올림픽 하는 거 내가 지금 영화에서 봤는데 보니까 그 모두 다  그렇더만, 막는 힘이라. 저 사람이 요랄 때는 요래 막아야 돼. 조 사람이 요랄  때는 요래 막아야 돼. 이러니까 외나 잘하는 사람 그 사람이 제바람에 넘어져.

그래 올 때 그걸 의지해. 제바람에 넘어져 쳐박히고 저 바람에 쳐 박히고  그러니까 이제 공격만 아니라 공격만 할 게 아니라 그 방어하는 먼저 방어가  있어야 돼. 먼저 방어가 있고 그 다음에 가서 공격해야 되니까 우리가 방어를 해  봐요.

 이래 올 때에 뭐로 방어하고 어떻게 방어하고 그 방어하는 그런 것을 많이  숙달해 가지고서 나는 방어하는 것을 방어하는 그 꾀를 열 가지를 준비 해  놨는데 원수는 날 공격해 오는 것이 다섯밖에 못 왔으면 내 준비하는데 남은  것이 몇 개 남았습니까? 다섯 것이 남아요. 이것이 우리 명상으로 된다 말이오.

우리 상상으로 되고 우리의 기도로 된다 말이오. 그렇게 또 자기 혼자 생각해  보고 생각해 보고 이렇게 원수들이 나에게 할 것도 내가 스스로 이렇게 한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되냐? 그럴 때 올 때 얼마나 어렵겠느냐? 내게  느껴보고 그렇게 어려울 때 나는 어떻게 해서 대항해서 이겨 나갈 수 있느냐?  자꾸 그것을 혼자도 연구하는 이것이 우리 할 일이라 그거요.

 이제까지 공부한 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그저 총괄적으로 말하면 그 음녀와  간부. 또 하나님의 선물, 그 음녀를 간부가 따라가는 것은 뭐이 따라 가느냐  하면은 하나님이 다 주시는 것을 전부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세상이 줬다고 세상이 뭣이 줬다고 눈에 보이는 그게 줬다고서.

 그 아이가 등신 아니요. 엄마가 밥을 떠 먹여 주는데 밥을 떠 먹여 주는데 그  어릴 때는 그렇지만 한 스무나문살 키워 놨는데 스무나문살 먹도록 장 밥을 떠  먹여야 되는데 밥을 떠먹이니까 너 밥을 누가 주지? 어? 나 밥주는 거 숟가락이  줘. 숟가락이 줘. 장 숟가락으로 떠 주니까, 야, 숟가락이 준 게 아니라  어머니가 숟가락으로 떠 줬다. 응 나는 숟가락이 주던데, 숟가락이 나 밥  주던데.

 그와 같은, 키워 봤자 아무 세근(주;철)이 없어 바보만 커는 모양으로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이런 거 저런 거 통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시는  거는 하나님뿐이십니다. '각양 좋은 선물과 은사는 빛들의 아버지에게서만  우리에게로 온다' 이랬습니다. 딴 데서 오지 않는다고 했어. 이랬는데 그 세상  이것 때문에 나는 공장 때문에 사는데 주일 지키면 공장 쫓겨나갈 텐데, 공장  때문에 사는데 나는 남편 때문에 사는데 나는 직장 때문에 사는데 나는 상관  때문에 사는데 돈 때문에 사는데 네 가 사는 것은 주님이 살려줘서 사는 것이지  돈 많이 두고도 오라하면 가야 돼 죽어야 돼.

 이러니까, 오직 우리에게 모든 필요한 것은 주님 한 분만이 가지고 계시고 그분  외에 우리에게 줄 권리 없어. 딴 거는 줄 권리가 하나도 없다는 걸 우리가  단정지어야 됩니다. 단정지어야 돼. 이것도 이 교회에서 드문 말이라. 이 말을  교회서 잘하지 않습니다. 교회서 이런 말 자꾸 하는 줄 압니까? 교회서 이런  말하면 미치괭이 목사라고 잘 받아 주지 안해요.

어쩌든지 이 세상에서 음녀를 자기 음녀를 잘 사귀어서 음녀 사귀는 법을 간부  사귀는 법을 이걸 말해 주면 좋아서 벙긋거리며 야 이 목사는 실력 있는 목사라.

그래 가지고서 그 ○○○씨가 그때 한강 모래사장에서 모일 때 그때 십만 명  모였다고 그 십만 명은 오늘 천만 명보다도 더 힘드는 모임입니다. 그때는 뭐 천  명 모이는 모임이 없었어요. 제가 서울에 가 가지고서 그때 모일 때 이천 명이  모였는데 이천 명은 서울 생긴 이후로 이천 명 모인 것은 처음이라 이렇게  말합디다.

 이랬는데, 십만 명 모였어. 십만 명 모였는데 그래 누가 말하기를 '이렇게 모두  다 사람들이 갈급하고 이러니까 졸 와 가지고서 여기 와 가지고서 외쳐야 된다'  이래서 ○○○씨 그 사모님이 저한테 처음 와서 저에게 말 하기 때문에 '집사님,  그들이 그렇게 갈급한게 아니요. 거기에서 참말로 진리를 한 시간을 증거하면 그  반 줄어지고 만일 하루를 증거하면 다 가 버리고 몇 사람 안 남을 것입니다.

그거 다 저거 일은 저거 볼 일이고 저거에게 저거 취미 저 그 구미가 따로 있지  그 진리를 다 갈급해 그런 것은 아닌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그때에 하는 것이 다 한국이 예루살렘이라 이래 가지고 계룡산에  가보니까 ○○○ 목사가 이제 새일 교회라 새일 나라라 이래 가지고서 그  예배당을 조그만한 하나 지어놓고 뭐 잔치를 해서 한번 잔치하면 거기에 사람들  모두 다 고기 떡을 막 포식을 시킨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라는데 그것이 다  계룡산 도읍 하는 것 정감록 비록에 계룡산 도읍 한다고. 계룡산에서 예수님이  오신다고, 계룡산에서 이 한국 민족이 제일 왕이 되고 그 왕 되면 제가 왕으로  된다 하는 이런 땅의 있는 순전한 욕심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  말이오.

 십사만 사천 구원은 하늘 부활 구원이고 이제 십사만 사천 구원은 벌써 다  됐고. 이제 모두 흰옷 입은 무리들은 땅에 있는 그 구원인데 모두 육체로 살아  가지고서 육체로 천 년 동안 산다 이러니까 아, 사람이 백 세만 산다해도 돈을  아끼지 안하고 막 돈을 들이붓는데 천 년 산다 하니 얼마 나 좋겠습니까? 이래서  땅에 있는 구원이라고 이래 가지고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이나 다 그런  사람들은 땅 부활을 말합니다. 하늘 부활은 십 사 만 사천이고 땅 부활은 그거는  흰옷 입은 무리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다른 성경을 보지  못했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 그런 사람들이 말하거들랑 그저 따라가지 말고  그 사람들이 말할 때는고 성구를 하나 가지고 그러면 요 성구는 그런 성구는  자기가 모르면 물어 가지고라도 요 성구의 결말을 지어. 결말을 짓고 그 성구를  거머쥐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그 성구로 다른 성구를 찾아 들어가면 그게 다  틀렸다 그 말이오. 그만 말이 다 틀려 버렸어요. 이러니까 고걸 틀린 것을,  발견돼 나가면은, 그 사람들은 언뜻 시작하기를 자. 그만 그거는 내비 두고, 자,  이거 자 합니다. 그럴 때 따라가면 안돼요. 그저 따라가면 안돼요. 그 유도  작전이 말이지요 원수하고 싸울 때 원수가 슬금슬금 지니까 자꾸 이래  쳐들어가니까 원수 쳐들어가고 쫓겨가는 줄 알고 들어갔는데 나중에 쫓아가다  보니까 팩 포위가 돼 가지고서 그만 잡혀 죽는다, 패전한다 말이오.

 그런 거 모양으로 자꾸 그렇게 따라가지 말고, 딱 그라면 '그러면 요것은 어찌  됩니까? 자기는 뭐라고 말했어요? 요거에 대해서 나는 요렇게 자기는 고렇게  말했지요. 붓으로 딱 쓰면서 요렇게 말했지요? 읽어보며 당신이 요렇게 말했지요  나는 요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요라고 요 도장을 찍으시오.' 이라면 도장을  찍고, '또 다른 문제 또 가지고 날이 많으니까 얼마든지 며칠이든지 모르면 또  연구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답을 해서 바른 걸 가집시다. 이라면 도장 찍고  그럽시다.' '도장은 무슨 도장' '아니 요거는 누가 틀렸나 안 틀렸나 또 성경  연구해 보면 뒤에 나올 것 아닙니까? 당신은 요래 증거하고 나는 요래 증거  하니까 성경 가지고 여기 상고를 해봅시다. 여기 당신이 그라면 싸인을 하나 해  놓으십시오.' 그라면 그만 도망쳐 버립니다.

 아이구야, 이거 하나라도 딱 따져 가지고서 틀리면 나중에 가서 책임지도록  이래 하는 것이니까 '아, 이거 안 됐다.' '하기 싫으면 마십시오. 당신하고 말  못 하겠어. 나는 가겠어.' 그래 갑니다. 아, 갈라면 가거라. 대번에 첫말에  캇트해 버리고 만다 그거요.

 그런고로, 참 지금 이단이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이단이 나오는 것이 진리를  위해서 이단이 나옵니다. 이단이 나와야 거짓부리는 다 이단에 속해서 다 합세돼  버리고 진리가 따로 나서지오. 그 이단도 진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이단을  내보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 지금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뭐야? 제일 지금 무서운 것이  뭐이지요? 자, 제일 무서운 것이 뭐인고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제일 무서운 거, 제일 주의하고 제일 무서운 것이 제일 무서운 것이 공산주의  일호 또 둘째로 무서운 것은 모든 이종교, 셋째로 무서운 것은 뭐 세상에 있는  기독교에 반대되는 사상들 넷째로 무서운 것은 기독교와 모든 것들이 다 다 한  덩어리 되는 것이 사호. 그런데  자, 일호가 제일 겁이나요. 이호가 겁이 나요, 삼호가 겁이 나요, 사호가 겁이  나요? 일호가 제일 겁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공산주의 가 제일 무서운  사람 하나도 안 들어. 이 호가 무서운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안 들어요.

삼호가 무서운 사람 손들어봐요? 사호가 무서운 사람 손들어봐요? 배우기는 바로  배웠구만. 저 뒤에 손 안 드는 사람 사호가 제일 무서워요. 자 따라합시다.

사호가! 제일 무섭다! 사호가 제일 무섭다! 통합이 제일 무섭다!  기독교 외에 전부가 한 덩어리 되는 그것이 무섭기 때문에 지금 합하는 것이  무섭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 합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인식하고 이래 있는데  합하는 것보다 진리가 더 좋습니다. 이러니까 합하는 것이 좋으나 진리 방편으로  주님 모시고 주님 모시고 진리의 방편으로 합해야 되지 진리로 결합이 돼야 되고  주님을 중심으로 모셔 가지고 이래야 하나 되는 것이지 주님과 진리도 버리고  인간끼리 합하면 이것을 바벨탑을 쌓는 것이라 그것입니다.

다 같이 찬송 하나 하고 이제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잠깐 여기서 기도하고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면서 이제까지 공부한 거 간부  공부했고 음녀 공부했고 하나님의 선물 공부했고, 또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한 덩어리 되는 거 공부했고,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거 공부했고.

진실한 자들만이 승리하는 거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마음놓고 이래 설교하지마는 조금 있으면 설교하면 당장에 끌려 가서  죽을는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설교한 것을 단단히 간직해 놓고 그때에  뒤에 장래에 내봐요. 내보면 어두움에 파묻히지 안 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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