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대할 때


선지자선교회 1983년 7월 23일 토새

 

본문 : 요 6:63-64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우리에게 주신 이 계시 말씀은 곧 성령님이시요 또 생명입니다. 이 말씀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셔 가지고 이 말씀과 함께 역사하십니다 또 이 말씀 안에는  생명이 내주합니다. 이는 도성인신하신 신인양성일위이신 주님은 하나님과 멸망  중에 있던 우리와의 그 사이에 중보자시요 또 대제사장이시요 또 선지자요  왕이십니다. 그런고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모시지 않고는 하나님과  연결할 자가 없고 또 하나님과 연결되기 전에는 죽은 피조물이 살아나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하는 이 영은 성령을 말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무엇이든지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성령만이 살릴 수 있지 성령 외에  딴것은 살리지를 못합니다. 만일 딴것이 살리는 수가 있다 할지라도 그 살아난  것은 내나 죽을 생명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살아나도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살리시는 것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리십니다.

 그런고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우리에게 있는 온갖 죽은 요소를 살리는 것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온갖 요소를 살리는 것도 성령님만이 살릴 수  있고 또 우리의 육의 온갖 요소도 성령님만이 살릴 수 있습니다. 또 마음의 모든  기능도 성령님만이 살리고 몸의 기능도 성령님만이 살립니다. 또 마음과 몸의  모든 활동도 성령님만이 살립니다. 다른 것은 살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동이 살아나야 하고, 행동이 살아나는 데는 기능이  살아나야 되고, 기능이 살아나는 데는 마음의 온갖 그, 마음이나 몸의 온갖  요소들이 살아나야 됩니다.

 그러면 그 요소와 기능과 또 기능의 작용이 각각 달라서 요소 없는 것이 기능을  갖출 수 없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 있어야 무슨 다른 이 세상적 기능이라도  가지지 그 사람이 벌써 죽어서 심신이 없어졌으면 세상적 그 기능을 갖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과 몸의 요소는 그것은 하나의 도구와 같다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면 의의 도구가 되고 죄에 드리면 죄의 도구가 된다' 이랬는데  우리의 그 심신의 요소가 살아나는 것도 성령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살아나고, 또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는 것도 성령님으로만 살아날 수 있고, 또 심신의 그 모든  활동 행위, 그 행위에, 방편을 통하여 행위가 되게 되고 법을 통하여 행위가  되겠는데 행위도 성령님으로만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죽은 것이 살아나는 데는 성령님으로만 살아날 수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성령님만이 살릴 수 있지 성령님의 반대는 뭣인고 하니 육입니다.

'육은 무익하니라'  육은 어떤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은 다 육입니다. 그 사람이 도덕을 말해도 육이고, 윤리를 말해도  육이고, 철학을 말해도 육이고, 또 이종교 어떤 종교를 말해도 육이고, 말을  해도 육이요, 행동해도 육이요, 건설해도 육적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유익도 주지 못하고 다 사망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살리는 것은 성령님이라 육은 무익하다' 그러면 육은 성령님 없는  마음 몸 그것이 육인데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어도 성령님으로 역사할 때가  있고 또 성령님으로 하지 안 하고 역연 옛사람 육으로 활동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택한 자로 중생되어 부름을 받은 사람으로도 영으로 살 때 있고  육으로 살 때 있습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떤 깨끗한 위대한 신앙  생활을 했다 할지라도 지금은 또 그 사람이 육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영으로 산다고 그것이 보증되는 것 아니고 죽는 날까지는 영으로 살다가 육으로  살다가 이것이 자꾸 변동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으로 시작해  가지고 육체로 마친다' 또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요 육체의 생각은 망  하고 죽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육은 무익하니라' 중생된 사람도 성령으로 살지 아니하고 육으로  살면 그것은 하나도 자기에게 유익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없고  마귀에게만 유익이 있고 지옥에 갈 것만 키우고 많게 하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우리가 이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 택한 사람이라도 영으로 살지 아니하고 육으로 살면  그것이 하나도 자타에게 무익한 것 손해가는 것 뿐인데 하물며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육입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사람도 조심 안 하면 영으로 살지 못하고 육으로  살기 쉬운데 중생되지아니한 사람은 그 전부가 으례히 다 육입니다.

 그러기에 '육은 무익하니라' 말은 이익이 없다 말은 손해라 그말입니다. 육은  손해보인다. 우리가 요 간단한 성구 같지마는 여게 모든 것이 다 결정되고  포함됐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그러기에 성령님 외에는 우리의 이 육의 요소 심신의  요소도 살릴 수 없고, 심신의 기능도 살릴 수 없고, 심신의 이 생애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것만이 아니고 우리 밖에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 밖에  있는 우리의 어떤 그 소유나 지위나 권세나 뭐 물질이나 지식이나 그런 것도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그러기에 세상 모든 지식은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인데, 무익한  사람에게 해만 끼치는 지식인데 그 지식이 성령으로 살아나면 보배가 됩니다.

성령으로 살아나면 보배가 됩니다. 또 지위도 권세도 그것도 우리 소유인데  그것도 살아납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도 다 죽은 것인데 살아날, 택한  자들에게는 살아날 그런 소망이 있고 또 택자들이 이런 지위나 권세를 가진  그것도 살아나는 그런 소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은 지위와 권세를 가지고 일생 동안 그것에게 종노릇해서 자기의  모든 노력도 죽었고, 자기의 지위도 죽었고, 직장도 죽었고 자기의 소유도  죽었고, 자기 가정도 죽었고, 모두가 다 죽이는 일, 죽는 그 죽음의 봉우리만  자꾸 키워가는, 그렇게 할 수도 있고 우리가 그것을 이미 죽어 있기는 있는  것인데 그것을 영으로 살릴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그것을 살릴 수 있습니다.

물질도 영생으로 살릴 수 있고 또 자기의 지위와 권세도 영생으로 살릴 수 있고,  자기 가진 지식도 죽은 지식이지만 그것을 영생하는 지식으로 살릴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자체의 요소만 죽은 것을 살리는 것이 아니고 자체에게 속하여 있는  모든 것도 다 죽은 것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영입니다. 그러면 그 살리는 영 외에  것은 뭣인가? 그것들은 몇 가지든지 총합해서 육입니다.

 성령님이 주장하셔서 역사하시는 그 외에는 전부가 다 육의 일이기 때문에 모든  이종교는 다 사람을 해치는 것이요, 모든 세상 지식은 다 사람을 해치는 것이요,  모든 세상의 지위나 권세나 직장이나 가정이나 전부는 다, 사람을 해치는  것뿐입니다. 다 무익하다 말은 해친다 그말입니다.

 하루 성령 없이 하루 살았으면 그만치 더 죽었고, 일 년 살았으면 더 죽었고  높은 지위나 권세를 가지고 있으면 그만치 더 큰 것이 죽었고 강한 것이  죽었습니다.

 그러기에 아이 죽은 시체와 어른 죽은 시체는 다 썩기는 썩지마는 어른 죽은  시체가 냄새도 많이 날 것이고 또 땅속에 갖다가 묻기도 힘들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높은 지위나 높은 권세나 또 아주 어떤 그 부강한 업이나  뭣이든지 크면 클수록 성령으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음이 크니까 해독이 더 크고  냄새가 더 많이 납니다 석가모니 같은 사람은 아주 큰 사람이오. 아주 대단히 큰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감이 없으니까 그 내음새가 세계에 풍기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것을 기억합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영이라 말은 우리  영이 아닙니다. 우리 사람의 영이 아니고 성령님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성령님만이 살립니다. 성령님은 무엇이든지 다 살려낼 수  있습니다. 어떤 죄 가운데 깊이 빠진 것이라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죄 가운데  빠졌으면 그 죄 가운데 빠진 것을 건져내는 기구가 있습니다. 건져내는 그  기구가 있으니 그 기구는 주님의 피입니다.

 또 어떻게 강한 세력에게 창창 결박을 당해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끊어서 끌을 수 있는 좋은 기구가 있으니 그 기구는 예수님의 피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라도 예수님의 피로써 다 거게서 해방시킬 수 있고 해방시켜  놓은 그것을 시켜 놓고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법에 다 해결을 시키는 것이  예수님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다 해결시켜 놓은 그것을 성령님이 그만 가면  살립니다. 성령님만, 딱 접하면 삽니다 성령님으로 움직이면 삽니다. 그래서  '영의 생각은 살리는 것이요 평강이라' '생명과 평강이라'. 그렇게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없는 것은 어떤 성자라도 성령님으로 움직이지 안한 것은  그것은 다 자타를 해치는 죽은 것뿐입니다. 하물며 성령님에게는 상관도 없는  중생되지 아니한 그 사람이 어떤 고등 지식을 가지고 어떤 참 부강의 권세나  지위를 가지고 또 많은 소유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죽은 것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시체를 많이 가진 것과 같습니다. 시체 부자와 같소.

 어떤 그 야만 지역에는 그 나라에 부자는 이런 물질도 아니고 사람의 머리가  많으면 부자인데, 죽은 사람의, 사람의 머리를 많이 끊어다가 천 명 머리를  끊어다 놨다, 만 명 머리를 끊어다 놨다. 그러면 그게 제일 부자라, 그  나라에서. 그러면 제일 두려워 하고 제일 무서워 하고 그것 모양으로 육의 것은  않고 크면 죽음의 것이 크고 많은 것이지 유익은 없습니다.

 요것을 우리가 꼭 판정해야 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 육은  무익이다 말은 육은 해라 그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일러 준 말이 영이요' 곧 우리에게 이렇게 신구약 성경 말씀  주신 이 말씀이 영이다. 네가 영을 만나려거든 이 말씀을 만나라. 네가 영을  찾으려거든 이 말씀을 찾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곧 살리는 영이다. 또  생명이다.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기에 이 말씀을 자기가 없는 가운데 모든 걸 창조하신 능력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사람들에게 접할 수 있도록 나타난 것이  계시의 말씀입니다. 계시 말씀 안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만 계실 게  아니라 그 안에는 영생하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말씀을 영접하기 전에는 생명과 성령님은 영접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영접하면 말씀으로 통하여 성령과 생명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제가 중매쟁이라, 성령을 중매하고 생명을 중매하는 중매쟁이라 그렇게 비유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대할 때에 사람이 이 말씀을 믿지 안 하고 이 말씀을 무시하고  그렇게 대하면 이 말씀은 제가 문서로 된 말씀은 제가 껍데기 문서 이거는 내나  종이로 쓴 것이요 이거는 참 하나의 이치가 종이에 기록해 있는 것뿐이지  생명력이나 영감의 역사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기에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알면 자꾸 올라갑니다. 이  말씀이 곧 '이 말씀 안에는 하나님이 내주 하고 계신다, 이 말씀 안에는 영생이  있다.' 말씀을 대할 때에 자기는 이 말씀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이 말씀을  가지고 우주 만물을 창조했고 자기도 지음받았고 자기도 지금 보존되어 있다  하는 이 사실을 알아서 높일 대로 높이고, 자기대로는 이 말씀을 높일 대로  높이고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 하고 섬길 대로 섬기고, 바라볼 대로 바라보고, 이  말씀에 대해서 합당하게 자기가 이 말씀을 대하면 이 말씀이 저를 살립니다.

 이 말씀을 자기가 이 세상 지식을 소유하듯이 이 말씀을 자기가 소유하려고  하는 자는 교만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쫓겨남을 당합니다. 물리침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죽기 전에는 자기에게 육의 힘이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외우기도 하고 기억하기도 하고 말도 하고 주장도 하고 이렇게 합니다.

그러나 실은 복음의 말씀, 생명인 말씀, 살리는 말씀, 또 살리는 그 영, 또  생명, 생명은 그에게 이용을 당하지 아니합니다.

 문서로 기록한 이 문자는 제가 뭐 어떻게 상대할 수도 았고 외울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 증거할 수도 있습니다. 설교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기가 자존하신 하나님으로 자기가 뭐 다 알지는 못하지마는 자기대로는  '이 말씀은 자기를 지었고 살리고 또 영원히 살릴 분이시요 하나님이시라'  이렇게  '이 말씀이 나를 살리면 살고, 나를 복되게 하면 복되고, 나를 바로 인도하면  인도되고, 이 말씀이 나를 도우시면 모든 피조물 아무도 해할 수 없다.' 이래서  이 말씀에게 자기가 소속이 되어지고 이 말씀을 자기의 주로 모시고  이 말씀에게 자기가 소속이 되어지고, 이 말씀을 자기가 대할 때에 모든 소망을  이 말씀에게다 두고, 이 말씀을 하나님이 그 안에 내주하고 계시고 영생하는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이 사실을 자기가 소망하면서 어짜든지, 이 말씀을 제가  소유물처럼 소유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이 말씀의 것이 되려고, 이 말씀이  자기를 받아 주기를 이 말씀이 자기를 버리지 아니하시기를,  그러면 이렇게 이 말씀을 모시고, 이 말씀에게 소속하고 이 말씀의 지극히 큰  능력과 사랑과 생명과 은총에 소속하려고, 거게 붙들리려고 거게 도움을  입으려고 이렇게 해서 이 말씀을 대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그 안에 있는  성령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또 그 안에 있는 생명력을, 생명이라는 것은  영원토록 쇠잔함이 없는 영원히 소생에서 소생으로 나아가는 그 능력을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그 능력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원한 지극히 큰 능력 또 이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지마는 제가 이  말씀을 지식으로 가져서 '나는 명철하고 총명이 있으니까 뭐 너거 몇십 번 듣는  것보다 나는 졸며 들어도 다 들을 수 있고 또 내 총명에서 몇 나라 어학을 하는  것도 그것도 뭐 얼마 안 가서 다 그렇게 많은 단어도 외우는데 신구약 성경을  나는 다 외울 수 있다.' 그렇게 이 말씀을 만홀히 여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스스로 속지 말아라. 네가 죽은 그것 가지고서 된 줄 알고 네가 죽은 것에게  속지 말아라. '육은 무익하다' 요 말씀으로 딱 정죄해 버려야 됩니다. '육은  무익하다' '살리는 것은 영이다'  이런데 네가 어리석게 육을 가지고서 무엇이 될 줄로 알고 그와같이 하니 네가  네 육이 너를 속였다 '스스로 속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렇게,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사람이 누구인가? 육체로 사는  사람입니다. 육체로 심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영으로 심으는 자는 영생을  거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말씀이 하나님 아니오. 이 말씀이 하나님 아닙니다. 곧 이  말씀 안에 하나님이 내주하고 계시고 생명이 이 안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2장 50절에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의 명령은  영생인 것을 내가 아노라. 이런데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 것은 내 스스로 한 말이  아니고 아버지께 들은 그대로 한 말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씀이라. 그러기에  내가 너희들에게 한 말은 다 영생이라.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25절에도 보면 '진실로 진실로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지금이 그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이러기에 뭐 우리에게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아니하시고 우리  중생시킨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안 하고 영생하는 생명이 멀리 있지 아니하고 또  우리의 모든 것 다 살릴 수 있습니다. 명예도 살릴 수 있습니다. 지위도 살릴 수  있습니다. 권세도 살릴 수 있습니다. 내 호주머니 안에 있는 돈 한푼 이것도  살릴 수 있습니다. 전부 다 살릴 수 있습니다. 뭘로 살리느냐? 영으로만  살립니다. 영.

 영으로 살리다니? 영으로 살린다 말은 말씀으로 살린다는 말과 같습니다.

말씀으로 살리다니?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요는  뭣이냐? 이 말씀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들에게 일러  준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 그러나' '그러나' 64절에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래도 아무리 말씀해도 안 믿는다 그거요.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그러면 이 말씀을 어기는것이 곧 하나님을  어기는 것이요, 대항하는 것이요, 이 말씀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요, 영생하는 생명을 버리는 것인데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말씀을 이렇게  평가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대우하지 아니한 자가 있었으니 그 사람이 곧  가룟유다입니다.

 이러니까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기 때문에 나를 죽이려고 한다' 왜?  기억하고 있는데. 주님의 말씀을 단단히 총명 있는 사람들이 외우는데. 그때  그랬을 것이요, 여기 기록 안 했지마는 예수님을 하면서 '네가 한 말 한마디도  안 빠지고 내가 다 졸졸 다 꿰어 외우고 있다' 이렇게 말했을 것이오. '꿰서 다  꿰고 외우고 있다. 그런데 왜 내 속에 네 말이 없다고 하느냐?'  영이요 생명인 이 말씀은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그 자들 속에  붙들어 매지를 못합니다. 제가 백번 천번 외운다고 해서 저희의 머리 속에 이  말씀이 갇혀 가지고 있는 줄 압니까? 그 속 들어 있는 줄 압니까?  저는 껍데기 이 물질로 되어 있는 문자나 했지 과연 모든 것을 창조한 능력의  말씀은 이 능력이 지은 그 속에 제가 갇힌다고 외운다고 거기 갇혀 가지고 있을  줄 압니까? 갇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 성령님도 갇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생명은 힘인데 모든 존재를 살게 하는 그 힘이 생명인데 그 힘이  그까짓 거 속에 붙들려 갇혀 가지고 있겠습니까? 어리석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는 문제가 뭐이냐?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한데 곧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이 말씀이 영이요 생명인데 이 말씀을 영으로  생명으로 이렇게 자기가 평가해서 대우하느냐? '저가 나를 안즉' 알기는 누구를  압니까? 이 말씀을 알지. 말씀을 알면 말씀과 하나님을 다 같이 안 것이지.

그러면 '저를 높이리라'  이 말씀을 말씀으로 알아서 그대로 대우하면 능력이, 능력은 하나 뿐인데.

생명은 하나뿐인데 한 생명 가지고서 영계도 다 살 것이고 세상에는 죽음.

죽음이각는, 죽음을 인간들이 말하기를 생명이라 말하는데 죽음 하나 가지고 다  죽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한 죽음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다 죽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있어서 하늘나라는 한 생명 가지고 다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큰 능력입니다. 이 능력. 이 능력이 그 사람과 같이 하고  하나님이 그 사람과 같이 하는데 무엇이 어떻게 그 사람을 어둡게 만들겠소? 그  사람을 미혹을 시키겠소? 유혹을 시키겠소? 그 사람을 실족케 하겠소? 그 사람의  하는 그 능력을 무엇이 대항할 수가 있겠소?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요는 우리가 하나님의 이 신구약 성경의 이 말씀을 대할  때에 이 말씀 안에 내재하셔 가지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또 이  안에는 '내가 너희에게 일러 준 말이 생명이라' 하는 이 생명이라 이 말은  무한한, 무한한 지극히 큰 능력이라 그말입니다. 무한한 지극히 큰 능력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이 능력과 이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으로서 이 말씀을 상대하면, 이  말씀이 하나님 아닙니다. 이 말씀 안에 하나님이 내재해 계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움직임은 영감으로 움직이는데 영감이 곧 하나님에게서  나올 때는 영감이요 그 영감이 피조물에게 접할 때에는 진리입니다. 껍데기  진리가 접하고 그 안에는 지극히 큰 능력의 생명이 접합니다. 또 생명이 접한 그  안에는 하나님이 직접 연결돼서 접합니다. 이런 줄 아는 것이 문제, 이런 줄  알고 이렇게 믿는 게 문제입니다. 이렇게 믿지 안하는 사람은 유명한 부흥사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 속에 있지 않습니다. 그 속에 있지 않소. 그 사람에게  생명으로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마치 농부가 쟁기를 쓰듯이, 어제 아침에도 말씀했는데 그 농구를  가지고서 농장에 일을 하면 그 농구는 농부의 몇 배 일을 몇십 배 일을 하지마는  그것은 내나 농구지식구는 아닙니다. 일 다 해 놓고 난 다음에 저 곳간에 처넣어  버리요.

 그와 마찬가지로 제가 하나님의 복음에 이용만 당했지 제 속에 생명은  없습니다. 제 속에 성령님은 없습니다. 살리는 역사는 안 일어 납니다. 그를  도구로 삼아 가지고서 다른 사람은 살릴지라도 저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도에는,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교만한 자는 다 절단입니다. 그러기에 '너희 중에  육체로 보면, 아주 육체로 생각하면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고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고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고, 아니하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볼 때에 업신여기는 이 복음 가지고서 사람을 구출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 우리가 이 말씀을 대할 때에 세상 지식을 대하는 것같이  이 지식을 신구약 성경 말씀을 제가 제 머리에 담아 가지고 소지하려고, 제  상식을 가지듯이 세상 지식을 가지듯이 이것을 제가 소유하려고 생각하는 그런  망령을 우리가 버려야 됩니다. 고게 아주 망령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으로,  지극히 큰 능력으로 이렇게 모시지 안하면 그 대우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그뭐 배고픈 사람은 그건 말할 것 없이 뺨을 때려도  밥을 얻어먹겠지요. 또 거석한 사람은 와서 이래 간청을 하면 이래 와서 그저  '이래 뭐 배고픈데 요기히십시오' 하고서 먹으라 하면 먹겠지요.

 뭐 아무나따나 이러면서 이렇게 해서 먹어도 인격을 서로 겨누는 데는 사람이  가서 먹는 것도 대접 하나 받는 것도 어렵습니다. 인격을 겨눌 때는 어떤 것을  가지고 대접을 해도, 이것은 인격 이하에서 서로 낮은 계단의 대우라 할 때 서로  교제할 때는 하지마는 교제도 여러 층이오. 사람의 교제도 요 층에서 교제하는  것 요 층에서 교제하는 것 요 층에 교제하는 것 교제가 여러 수십 층이라, 이  사람들도. 이 층에서는 그 사람을 교제할수 있지마는 이 층에는 교제해 주지  못한다. 이 층에는 교제해 줘도 이 층에는 교제해 주지 못한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어떤 사람에 가 가지고는 음식을  암만 줘도 안 받습니다. 먹지 않습니다. 사람도 그렇게 층하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더 많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다 겸손치 못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서 모시지 못하는  것은 제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스스로 속는 것이오  그러기에 오늘 아침에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일러 준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이 말은 이 말씀이 영이요 생명인데 이렇게 인정 안 하고 대우 안  한다 그말이오. 인정 안 하고 대우 안 해.

 이러기 때문에 뭐 '신구약 성경 이거야 낮은 지식 한글로' 그전에는 언문이라  했어 언문 이 한글을 언문. 인제 승격이 돼서 한글이지. 언문이라 하면 아주  그것은 천한 인간들 무식쟁이 그런 게 읽는 거니까 글로도 알지 안했어.

'언문으로 써놓은 성경 그까짓 거야, 내가 무슨 혤라어나 히브리어나 또 뭐  라틴어나 영어나 뭐 불어나 독어나 뭐 그런 걸로 가지고 해야 거석하지.' 그래  가지고 그런 원어 한 마디 척 내놓고 난 다음에는 또 자랑하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어떤 이 앞에서 어떤 말씀인데 이 말씀을 그렇게 해?  제가 요는, 이분이 모든 방언을 냈고 이분이 다 창조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대할 때에 '내가 너희에게 일러 준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이렇게 대우를 하는  그자에게 이 말씀이 복음이 되고 그 사람을 살리지 그렇게 안 하는 자에게는,  제가 그 말씀을 이용해 먹습니다. 이용해 팔아먹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흥회 해  가지고서 돈보따리 들고서, 여기 박태선씨나 또 인제 문선명씨 이런 이 모양으로  이래 가지고서 돈뭉텅이나 이래 주 모으고, 저는 이용하지마는, 혹 그런  이단자는 거석할지 몰라도, 그래도 그중에서도, 하나님은 또 그걸 붙들고 또  이용하십니다. 마지막에 결과적으로 보면 제가 하나님에게 이용당했지 하나님이  저한테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이용만 당하는 한 도구에 지나지  못하지 제게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네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네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네게는 아무 유익이 없다' 예수님과 관련이 없으면 유익 없다. 그  사랑은 예수님의 관련을 말한 것입니다, 이 인간의 사랑 말한 게 아니고.

 이번 하기공과에 생명 말했지? 두 생명, 공부했소? 없나? 뭐라 하노? 사랑.

사랑은 두 사랑이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제가 세계에 제 이름을  놀렸어도 아무 소용이 없어. 그는 업신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말씀을 대할 때 '하나님이 이 말씀 하셨다.' 이 말씀이 하나님 아니지만 말씀을  '이거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을 대할 때 하나님을 대하고, 영을  대하고, 이 말씀을 대할 때 지극히 큰, 여기 생명이라 말은 지극히 큰 능력이라  말이오. 영원히 썩지 않게 할 능력이요, 영원히 보존할 능력이요, 영원히 성장케  하는 능력이요, 영원히 활동하게 하는 모든 활동의 원인이 되는 그 능력이라.

그걸 가리켜 여기 생명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대우하는 사람에게 이 말씀은 그를 구원해 주시지 이  말씀을 제가 소지품 모양으로 이 세상 지식 모양으로 거머쥐고 이용해  먹으려고서, '이 말씀은 뭐 한글로 쓴 것인데 이 세상에 이런 모든 높은 지식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야 돼지지, 이 세상 지식으로 내가 이렇게 높은 이런  명예도 있고 권위도 있고 간판도 있으니까 이것이라야 돼지지.' 하는 그자의  업신여김을 이 말씀이 받지 않습니다. 저만 저에게 속았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 우리가 요 것을 회개를 합시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천 장로님? 오늘부터입니까? 예? 오늘부터? 다음 주일? 다음 주일 월요일부터?  그 날짜를 내가 잘못 가르쳤는데, 그러면. 아니, 아니지. 오늘이 토요일이가?  요번 월요일날? 그러면 바로 말했어. 만나봤습니까? 녜  차비는 우리 교회서 대줄 것이고 밥은 거기 가 먹여 주는데 하나도 밥 잘  먹이려고 하지 말아요. 꼭 먹는 대로 그래 하고. 내왕 차비는 우리가 줄 것이고,  사례는 주님 앞에 받을 것이고. 이러니까 ○선생, ○○집사님, 여비를 주이소.

주면 실비로 쓰고 남고 오도록 좀 많이 줘. 그러면 쓰고 남으면 가져올  터이니까. 저 개척, 저게 어데 우리 진영 교회 아닙니다. 우리 진영 교회가  아닌데 그 개척교회인데 너무 어려워서 그래 말하는 것입니다.

 십 분 기도 후에 권찰회 모입니다.

 오늘은 퍼뜩 가도 권찰 구역 분구된 분들은 와서 잠깐 좀 왔다 참석해서 듣고  갔으면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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