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 주님으로 인하여...

 

1983. 4. 30. 토새

 

본문 : 롬4:1-8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 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사람 중에 제일 기뻐하시고 또 만족히 여기셔서 늘  아브라함에 대해서 자랑을 하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또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자주 그렇게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에 대해서, 그  아브라함을 인해서 많은 자손들에게까지 복을 주신 것을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쁨이 되고 또 의롭다 하심을 받고  이렇게 한 것이 무엇으로 그렇게 되었는가? 아브라함이 어떤 행함이 많아서  행함을 하나님이 보시고 그와 같이 의롭다 하신 것인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의롭다 할만한 무슨 행위나 소유나 지위나 무슨  그런 가치가 있어서 아브라 함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시고, 칭찬하시고, 또  아브라함에게 온갖 축복을 내려주신 것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렇게 기뻐하신 그 원인이 어데 있는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렇게 기뻐하신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여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뻐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만족히 여겼습니다. 요새 늘 말씀하심과 같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하는 것을 신구약 성경 말씀에 기록을 해서 '나는  이런 하나님이라 그렇게 당신이 당신을 성경으로 소개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당신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신 고대로 믿는 것, 소개해  주신 그대로, '아! 과연 우리의 주가 되신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구나. 하는  것을 의심없이 믿는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칭찬하시고 그에게 온갖 복을  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지난밤에도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으로 우리를 대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으로 우리를 상대하고 계시는가..

 성경이 소개한 그대로 인정하고, 의심없이 확실히 인정해서 확인하고, 확신하는  이것이 하나님을 제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뭐 사람이 자기가 행위 어떤 것 한다고 해도 그 행위가 가치가 있을 수도 있고  아주 가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행위를 하되 다른 무슨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속이는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도, 이러면 하나님을 자기가 감화를  시키겠고, 하나님을 어떻게 설득을 시키겠고, 자기가 이 행위로 인해서 하나님을  자기가 매수하겠다 하는 그런 생각으로도 할 수 있고, 그 행위를 사람들에게  칭찬이나 받고 이러기 위해서 하는 것도 있고, 옳은 행위라 할지라도 그 동기와  목적이 몇이든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잘못된 행위는 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히 섭섭해 하시고 가증스럽게 여기지마는 하나님께서 당장  그것을 어떻게 벌할 수 없어서 '저것 철이 없어서 저러니까' 하고 두고 참아  기다리십니다.

 그 의로운 행위도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시니 이분이, 알지 못하시는, 능치  못하시는 것이 없는 이분이 나와 내 모든 행위와 모든 만물과 만 인간을 살피고  계시고 하나 하나 다 그것을 다 기억하시고 그대로 처리를 하시는 하나님이라,  또 하나님은 죄를 멸하시기 위해서 친히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죽기까지 하셔서  죄를 멸하신 하나님이라, 또 마귀를 이렇게 대적해서 아주 멸하시려고 오신  주님이시라.' 당신이 이래 죽기까지 하셔서, 또 다 안 돼서 다시 사람으로  부활하신 것은 의로운 자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하신 이분이시니,   그분의 안면이 두려워서, 그분의 눈이 두려워서, 그분의 처리 하시는 그 처리가  두려워서, 또 그분이 죄를 멸하시고 마귀를 멸하시려고 오셔서 애쓰시고 하는 그  성격을 보아 두려워서 죄를 짓지 아니 할 때에 그때에 그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또 당신이 능치 못하심이 없고, 알지 못하심이 없고, 언제나 같이 계시면서  우리를 의롭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의 몸으로 다시 부활하신 하나님이시라.

'이분이 지금 보고 계시니, 이분이 지금? 이렇게 소원하고 계시는 주님이 여게  같이 계시니 하여 그분의 안면을 보면서, 생각하면서, 자기가 어려워도 어려운  일을 하고, 견디기 어려워도 하고 이렇게 해서, 옳은 일을 그분의 안면을 보고,  그분이 소원하시는 그분의 중심을 보고, 이로 인해서 자기가 의로운 일을 했다면  그것은 가치 있지마는,  사람 속이듯이 껍데기로, 속은, 중심은 딴 데 두고 겉으로 이렇게 하는 그런  것은 '네가 나를 무지자로 아느냐? 내가 보지 못하는 자로 알며, 그것을 지금  관리하고 심사하고 내가 다, 의나 죄는 내가 혼자 책임지고 처리하시는 내인  것을 네가 알지 못하고 그렇게 외식으로 하느냐?' 하여 섭섭해 하시고 그걸 심히  하면 나중에 가서는 하나님이 징계를 하십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이, 대속도 주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이 사실을 확실히  믿고, 대속하신 것을 확실히 믿고, 죄로 인하여 된 그것을 자기가 몰랐다가  깨달았으면 즉시 회개를 하고, 하나님이 회개하면 사해 주신 것을 믿고 담대히  하나님에게 나아가고, 또 의롭다 하 심을 하나님이 입혀 주셨으니까 이 의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자유할 수 있다는 것, 또 하나님과 서로 화친해서 부자간이  된 이 사실 이것을 성경이 말하는 대로 의심없이 믿는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지은 죄를 깨닫고 '아, 주님이 이렇게 죄를 멸하시기 위해서  미워하시고, 참 죽기까지 하셔서 없애려고 하신 주님이시로구나.' 하는 이  주님의 그 공로와 주님의 성질, 주님의 그 중심, 주님의 뜻을 자기가 보면서  죄를 회개하는 그것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그게 당신을 당신으로 대우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자기에게는 의가 없지마는 주님이 나 위해서 대신 행해서 의를 입혀 줬으니  이 의는, 아무데든지 이 의만 하면 넉넉히 출입하고 자유할수 있다 하는 그 의를  확실히 믿는 것,   또 하나님과 화친한 부자간이 된 이 친밀을 믿는 것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이러기 때문에 자기의 그 모든 언행심사의 행동에 그 분을 봄으로,  그분을 봄으로, 그분을 인해서 자기가 죄를 지을 수 없 어서 그 죄를 짓지  못하는 고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저 죄를 안 짓는 다른 무슨 각오나  결심이나 무슨 명예나 뭐 어떤 것 한다 해도 그런 것은 다 주님 앞에서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주님이 어떤 중심을 가지시고 어떤 소원을 가지시고 죄를 멸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신 이 사실을 자기가 알고, 또 그 주님이 자기와 같 이 있으면서 자기를 보고  계시고 자기 곁에 계심을 자기가 인정하므로 죄에 대한 것을 범하지 아니할 때  고것이 주님을 참 믿는 것입니다. 고걸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또 자기가 의로운 일을 할때 무슨 다른 소망 가지고 하지 않고 주님이,  창조주가 피조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은, 창조주가 피조물로 다시 살아난 것은,  이것은 창조주가 피조물로 됐으니까 얼마나 천해집니까? 우리가 구더기 된  것보다도 더 천해지고 우리가 송장물 된 것 보다도 더 천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당신이 우리를 의롭게 살리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피조물인  사람의 형상을 또 입으시고 부활하신 이 사실을 자기가 생각 하면서 '주님이  이렇게 원하시니 내가 이 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주님이 이렇게 의를 내가  할 때에, 그는 능치 못하심이 없고, 알지 못하심이 없고, 함께 계시고 이러기  때문에 내가 의를 행하려고 할 때에 '이 대적이 심히 강하다. 나라에서  방해한다. 나라에서 방해 한다. 나라에서 이렇게 나라의 세력으로 방해하니까  어떻게 이걸 할 수 있겠느냐? 할 그때에 내가 의뢰하고 바라고, 나에게 이것을  원하시고, '네가 이렇게 하라' 고 말씀하시고, 이렇게 할 때에 도와 주실 분은  이 강한 나라보다도 더 무한히 크시다. 하는 고것을 믿음으로 자기에게 담력이  나오는 고것이 당신을 대우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사자구덩이에 들어간 것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미  속에 들어간 것이나 그런 것이 무슨 죽음이 귀한 것 아니오. 다니엘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생명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 섬긴 것 그것 중한 것 아닙니다.

그게 귀한 것 아니오.

 생명은 실은 어느 정도까지는 생명이 대단히 힘들지마는 어느 정도 단계가  넘어가면 생명이라 하는 그런 데 대해서는 그것을 다 초월할 수가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정치가들이나 사상 가들이나 그런 분들 다 생명을  초월해 가지고 뭐 죽음이라 하는, 생명 그런 것은 그렇게 크게 여기지 않고  나갑니다.

 그러면 죽는 게 큰 게 아니고 그렇게 권세 앞에서, 불 앞에서, 또 사자 앞에서  주님이 명령하신 명령이니, 그분을 봄으로 인해서 내게 어려움을 당해도 이 길을  안 걸을 수 없다 하는 고것과, 또 주님은 지극히 크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고,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개별 섭리 하시기 때문에 너희가 불이 아니라 아무 걸  한다 해도 당신이 나를 죽게 하셔야 되지 당신이 죽게 하지 않으면 불이 나를  죽일 수 없다. 사자가 나를 해할 수 없다. 요렇게 그분을 믿는 믿음, 그분을  믿는 믿음을 인해서 담대함을 가지게 되고, 그분을 믿는 믿음을 인해서 죄를  두려워서 지을 수 없고, 그분을 믿는 믿음을 인해서 의로운 일이 라면 그 일을  자기가 아니할 수 없고, 또 방해한다 할지라도 그분을 믿는 그분으로 인해서  담대히 안심하고 유유하게 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 되는  걸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라 하는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삭으로 그 혈육 자손을 낳으리라 했으니까 이삭이 장가갈 것이 분명하고 아이  낳을 것이 분명한데 하나님이 번제로 드리라고 이랬으니까, 하나님이 이삭으로  하여금 자녀를 많이 낳을 것을 먼저 선포하셨는데, 이 약속을 하셨는데 그 약속  하시고 '잡아서 번제로 드리라' 이렇게 할 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처음에  그렇게 자녀를 낳을 것을 약속하신 그 약속을 믿는 믿음이 요동치 않습니다.

요동치 않으니까 번제로 불에 태워서 제사 드리라 할 때에 아브라함에게는  무엇이 있는고 하니,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털끝만치도 거짓이 없고 고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이 이삭이 자녀 낳을 것은 틀림 없는데 번제로 불에  태우니까, 이제 불에 태워서 불에 탄 재가 다시 사람이 되어 살아나 가지고 아이  낳고 이렇게 되겠다. 거기에서 아브라함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처음에 이삭의 자손이 날 것을 약속한 그 약속을 의심없이  믿고 또 하나님이 번제로 드리라 하는 그 말씀도, 드려야 되기 때문에 드리라  하는 것이니 드리라는 그 말씀 믿고 둘을 믿다 보니까 아브라함은 그 전의  약속은 어떻게 하느냐? 그 전의 약속은, 이번 약속을 지키면 뭣 되느냐? 재가  되지. 그러면 그 전 약속은 어 쩌나? 재가 된, 재 된 이 재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다시 부활시켜 가지고 아이 낳게 이렇게 하신다 하는 요것을 믿는 것, 죽은  가운데 다시 살리실 것을 재 된 것을 살릴 것을 믿는 고 믿음을 하나님이 기뻐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한번 약속한 것이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약속에 대해서  의심이나 요동이나 그런 것 하지 않고, '한번 하나님이 약속 하셨으면 이는 뭐  천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다. 또 가나안을 주신다고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생시  안 주시니까, '하나님이 가나안을 주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안 주신 걸 보니까,  아마 하나님이 거짓말 하시는 하나님은 아니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가나안이 이  가나안 말고 이제 더 좋은 영원한 가나안이 있는가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변동되지 않고 요동치 않는, 완전한 기초가 되어 있는 그런 가나안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실 것을 믿었는데 그게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하나도 의심하지 않고 확실히 믿기 때문에  그 믿음을 인해서 인간이 모르는 지식을 자꾸 파고 들어 갑니다. 인간이 모르는  지식을 자꾸 파고 들어가게 되고, 인정하지 못하는 그 모든 의심을 다 깨트리고  들어가고 이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가진 그 지식은 역사에 없는 지식을 다  가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은 가운데 부활한다는 이 부활도 아브라함이 제일  처음에 발견했습니다. 다른 이는 발견하지 못했어.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가 죄를 더할 때에 그분이, 그분이 나와 같이 계시는,  사람이 나와 같이 있어 사람의 눈을 두려워한 것보다도 그분의 눈을 무서워 하니  두려움으로서 죄를 범할 수가 없고, 또 그 분의 중심과 죄에 대해서 미워하시는  그분의 섭섭하시고 진노하심을 인해서 죄를 범할 수가 없고,  또 의는 그분이 이렇게까지 소원하셨기 때문에 그 안면이 바셔서 그 안면을  그렇게 배척하고 괄시하지 못해서 의를 행하고, 의를 행할 때애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그분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그 어려움 그까짓 것이 어려움 되지 않고  그저 유유하게 나가면서, 세상이 어렵게 하니까 속으로 비웃고, 속으로 비읏고  속으로 우습다 그말이오. 모세는, 홍해바다가 있는데 모든 사람은 놀래서  기절한다고 하지마는 모세는 있다가 속으로 웃으면서 '야, 하나님 하시는 솜씨  또 보자. 그분은 약속하신 대로 틀림이 없기 때문에 훙해바다를 뭐 가를런지  홍해바다를 없애 버릴런지 무슨 또 능력을 베풀런지 모르겠다. 하나님 하시는  솜씨를 좀 구경하자 애굽 사람들이 와 가지고, 뒤에 와서 궁청 궁칭 따라오는 걸  보고 비웃고 저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 떻게 하실까? 오히려 그들에게 대해서  염려가 됐지 자기네 대해 염려가 되지 않는 것이 모세입니다.

다윗도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은 그랬습니다. 원수들이 그렇게 할 때에 다윗이  그런 죄 가운데 빠졌었지마는 이제 자기가 회개할 때에 하나님꼐서 의롭다 하실  때에 의롭다 하는 요것을 의심없이 믿고, 하나님은 자기 편이 되어서 자기를  도와 주시는데 자기를 지금 홀보고 이와 같이 하니까 그 사람들에게 대해서  마음에 염려가 된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지금 내 편 되셔 가지고 이와 같이, 당신 약속한 걸 내가 믿기  때문에, 약속한 걸 믿으니까 당신이 그대로 해 주시는데 저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내게 대해서 지금 달려들어서 이와 같이 하니 저러다가 아마 저 사람들이  큰 낭파 당하겠다.' 이래서 견디다가 못 견뎌서 자기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그들  위해서 염려가 되어서 '하나님이여 이들 옹서하시고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오히려 그들의 일에 대해서 염려하고 기도한 그것이 다윗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이 우리 안에도 계시고 우리 밖에도 계시고 우리 환경에도  계시는데,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보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간섭 안하심이 없으시고, 그 거게 대해서 모든 걸 세밀히 조사해서  심판 아니하시고 심판에 빠질 것이 하나도 없고, 또 그분이 그분의 약속을 믿을  때에 당신이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고 역사하실 것과 또 앞에서 무슨 일이  된다고 해도 이 모든 것은 사랑하시는 주님이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개별 섭리를  하시니까 이것도 당신이 하시는 그 섭리 중에 하나이니까, 자기에게 오는 모든  부딪히는 어려움을 보면서 그 배후에 주님이 숨어서 그 어려움을 나타내 가지고  이와 같이 자기에게 하는 것을 자기는 속으로 기뻐하고 원하면서 주님이 저  배후에 저렇게 하시니 그저 속으로 말하지 말고 속으로는 기뻐서 웃으면서 '주님  내가 그것을 다 압니다. 주님이 지금 숨어서 그와 같이 하시는 것을 제가  압니다.' 하면서 기뻐하면서 안심하고 든든히 이래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을  가지는 것을 당신이 원하십니다. 그렇게 믿을 때에 당신은 그렇게 다 해  주십니다.

 우리가 믿지 아니해서 하지 못하지, 우리가 믿을 때에 당신은 그와 같이 낱낱이  다 이루어 주시는데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믿음으로 우리가 일할 수 있고 믿음으로 큰 일 할 수 있고, 믿음으로  권능을 가질 수 있고, 믿음으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살아계심과 당신이 어떠하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성경에 소개해 준  그 소개대로 주님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주님을 소경으로 대접하고  귀머거리로 대접하고 그저 주님은 말로만 이러지 '그분에게 무슨 감각이  있으랴!' 이렇게 무시하는 그것을 주님이 제일 미워하십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집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집회에 관계되는 모든 일을 위해서 많이 기도를  합시다. 또 남은 건축도 이제 다 돼 갑니다. 이런데 이것도 어제 내가 OOO  소장을 아무리 찾아도 안 보였는데, 어데 가서 어 찌 됐는지 보이지를  아니했는데 오늘까지 나무를 다 지어야 됩니다. 저 일 층 지하층까지 문을 다  달고 문을 잠그고 저 외부는 소재를 쏵 하고, 그 속에 안에서만, 경비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 서로 교대해서 아래 위로 다니면서 경비하면, 문 잠궈  놨으러까 들어오려면 문을 부수고 들어오든지 유리를 깨든 뭐 어쩌든지 해야 될  터이니까 그것만 안에서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제 오늘은 낮 경비는 없어도 되고 -또 오늘 그것이 다 돼야  되니까-오늘 밤 경비부터는 남반도 없어도 됩니다. 없고, 안에서 만 경비를 할  것입니다. 안에 경비는 저 OOO 권찰님이 두 사람 말 한 것 틀림 없지요? 그러면  그분들이 나와서 경비를 하도록 그래 좀 연락을 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이제  경비는 오늘부터 안 합니다. 이러니까 어제까지, 이제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  공사가 아직도 문을 달지 못하고 또 잠그지 못하고 뿍금 열어 놨으면 또 누가  지켜도 지 켜야 됩니다. 그런데 아마 오늘까지는 다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동안에 비가 와 가지고 그것 때문에 일이 많이 지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 집회 안에 끝내려고 모두 다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끝이 나리라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 말합니다. 보일러를 이 굴뚝을 담을 싸 버리니까 그만 굴뚝이 막혀  버려서 피우면 이 안에 전부 연기가 나 가지고 보일러를 피우지 못했는데 제가  며칠 생각을 못 해서 엊저녁에 모두 철야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는지 몰라도 그  사람들이 추웠을 건데,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경비실에 불 때니 거기라도 가서  좀 운신을 했으면 좋을 건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엊저녁에 보일러를  피우지를 아니 해서 아마 날씨는 추운데 떤 분들에게 대해서 미안합니다. 식당  부엌도 이것 다 뜯어버리고, 그것도 이제 준공 검사하기 위해서 그걸 다  뜯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당분간 보일러가 피워지지 못할 것으로 알고  철야할 이들도 그리 알아서 준비해야 될 것이고, 또 집회 갔다 오면 빨리 이  굴뚝을 위로 거석해 가지고 보일러를 피워야 될 때는 피울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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