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안에서 나오는 것


선지자선교회 1985년 5월 31일 금새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3절∼6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어제 아침에 생각에 대해서 증거 하다가 중단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좋은 것은 다 자기 안에서 나옵니다. 좋은 것은 자기 안에서 나오고  또 모든 더러운 것도 자기 안에서 나옵니다. 나쁜 것도 자기 안에서 나옵니다.

자기 안에서 좋은 것이 나오는 것은 주님을 생각하고 또 주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자꾸만 좋은 것이 나옵니다. 얼마든지 좋은 것이 나오는데 그것이  하나의 우리의 무슨 주관적인 감정이 아니고 지극히 크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또 아주 자기를 해치는 것도 자기 속에서 나옵니다.

그것은 자기가 주님 외에 다른 것은 뭐 어떤 위대한 사람이라도 또 자기에게  은혜를 끼친 은인이라 도 참 자기에게 유익된 사람이라도 주님 외에 딴것을  생각하면 결국은 해독이 나오고 맙니다.

 뭐 부모야 얼마나 좋습니까? 피조물로서는 자기에게 부모가 제일이라고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과거에는 임금과 스승과 부모. 부모를 세번째에 쳤지만  기독교에서는 부모를 첫째로 말합니다. 부모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부모를 생각하는 것이야 참 좋은 걸 생각하는 것인데 부모를 생각하는 것도  자기에게 해독이 나오지 해독 아닌 것은 나오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를  생각할 때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고 사랑을 생각하고 교훈을 생각하고 지도를  생각하고 하면 좋을 것 같지만 그것도 조금 범위 넓게 자기에게 부딪히나 다  사망의 것만 오고 유익한 것은 하나도 안 옵니다  그러나, 주님을 생각하는 것. 주님이 내게 어떻게 하신 것을 생각하고. 또 내가  주님에게 어떻게 한 것을, 잘한 것을 잘못한 것을 잘했을 때에는 어떻게 됐던가,  잘못했을 때에는 어떻게 됐던가, 또 주님이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시던가. 어떤  성신의 감화를 주시던가, 또 내게 대해서 어떤 징계를 주셨던가 어떤 깨달음을  주셨던가, 또 내게 대해서 어떻게 나를 보호하시고 모든 것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을 방위해서 당신이 나에게 나를 위해서 안보를 위해서 무슨  방위를 하셨던가? 자꾸 주님만 생각하면 주님과 주님의 그 대속과 사랑과 또  역사와 섭리와 내게 대한 간섭과 이 모든 주님과 나와의 그 관계를 자꾸  생각하면 거기서는 죽은 것만 나옵니다.

 좋은 것만 나오는데, 그것이 하나의 감정이 아니고 실상 중에 실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실 때도 이렇게 지으셨고, 또 우리를 그리스도로 구속하실  때도 이 목적으로 구속을 하셨습니다. 이랬는데 에덴 동산에서 하와가 만일  주님만 생각했더라면 그때 그것으로써 영생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잠깐 생각지 안하고 엉뚱한 것 생각했다가 대대손손이 멸망 받은 것이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때만 그런 게 아니라 오늘도 꼭 그와 같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좋은 것이 많습니다. 또 내게 걱정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좋은 것 나쁜 것, 또 필요한 것 해로운 것 그런 것이 많습니다. 그게  많으니까 우리 마음이 주님 생각하는 그 생각을 그만 그리 옮기기 쉽습니다.

옮겼으면 저는 실패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만 생각해야  됩니다. 주님을 생각하면서 주님을 생각하다 보니까 그 일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주님을 생각하다 보니까 그것이 또 어떻게 무엇 때문에 어째 그리  됐느냐? 이렇게 주님을 생각하면 자기의 현실에 좋은 것 나쁜 것 그 모든 것이  바로 깨닫게 됩니다. 또 바로 행하게 됩니다. 또 바른 도움을 받아서 바른  성공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이 생명은 이거는 비유가 아니고 실제입니다.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러면 그 생명을 이 세상의 생명과 자원은 다르지만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가치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번 생명을 생각해 봅니다. 저  아름다운 꽃이 있습니다 그 꽃도 그만 생명이 딱 끊어져 버리면 그 줄기에  뿌리에부터 생명이 나오는데 생명에서 딱 끊어 버리면 아름다운 꽃이 잠시 후면  아주 볼 모양 없는 그런 아주 흉하고 천한 것이 돼지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또 아주 악어, 악어로 말하면 그 입에서 불이 나오고 또 뭐 껍질도  어떻게 뭐 두꺼운지 사람들이 놓고 매로 두드려도 그 뭐 조금도 자극이  없습니다. 그 커풀이 어떻게 센지. 그러기 때문에, 뭐이든지 쇠도 먹으면  들어가면 입에 들어가 버리면 녹아 버립니다. 원체 속이 뜨거워서. 이래도  그렇게 억센 그 악어도 생명이 딱 떨어지면 그만 그때부터 뭐 개미가 와 가지고  마구들이 파먹어도 그만 꼼짝 못 합니다. 그만 그것은 다 썩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위엄스러운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 영웅이라. 해도  장사라 해도 아무리 맹수라고 해도 그만 생명이 딱 떨어지면 그까짓 것 아무  힘없는 것입니다.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모든 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이 생명이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그런 모든 일반 계시인 자연  만물들을 보아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길이요 생명이라. 주님이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주님과 우리와  떨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다 죽고 망하고 꺼꾸러지고 천해집니다.

주님과 떨어지면 망할 것이 어떻게 그렇게 욕심이 나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고생하고 죽고 망하는 것이 무엇 때문에냐? 야고보서 1장에 보면 그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서 미혹을 받아 그렇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욕심에 끌린 게  뭐이냐? 생명줄이 끊어지니까 주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온갖 것이 다 나옵니다.

 그러기에, 어제 아침에는 우리가 쾌락 없이는 기쁨 없이는 취미 없이는 못 사는  것인데, 그러면 사람들이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의 취미, 죄악의 쾌락 죄악의 그  희망 이런 것을 사람들이 가지고 일방적 지식으로, 그것 밖에는 몰랐을 때는  그것 뿐인 줄 알고 죽자껏 취하는데 취해 봐야 마지막에는 사망으로 결론을  짓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방적 지식에다가 하나님의 지식, 이 새지식, 산  지식을 자기가 받아 가지고 이 지식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니까 성경에 하나님의  지식에 하나님께 속한 이거는 더 좋다, 저거는 나보다 이렇지만 이제까지 자기가  습성이 돼 있기를 세상에 속한 이것만이 좋은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좋다는 것이 벌써 자기의 골수에 박혔고 자기의 습성에 박혔고 이렇지만 성경  말씀에서 좋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인정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성경 말씀은 보나 항상 사망에 속한 것이요 저주 아래 속한 것이라고  하지만 거기에 속해 가지고 거기만 자꾸 심신을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씩 해 봐야 됩니다. 하나씩 실행해  봐야 됩시다. 아무리 맛이 좋은 것이라도 먹어 봐야 되지 먹어보지 안하고  어떻게 그 맛을 알겠습니까? 또 아무리 뜨거운 것이라도 그것을 만져 봐야 손이  타 보든지 그리 아니면 살이 익든지 그래 봐야 아이구 뜨겁다 하는 것을 알지  그전에야 알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뜨거운 것 김이 풀풀 나면 뜨겁다 알지요.

그거는 벌써 여러번 경험해 가지고 우리에게 이러면 김 나면 뜨겁다. 벌거이  불꽃이 이룽이룽하면 뜨겁다. 이것은 벌써 우리가 많은 경험 가운데서 쌓여졌지  어린 아이들은 그걸 모릅니다. 어린 아이들은 암만 여기 물이 펄펄 끓어도  갓난아이는 그 뭐 끓는 그게 상할 줄 모르고 거머 줬다가서 손도 데이고 또 빛에  기어 들어가 가지고 타 죽기도 하고 그와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 다  자기가 해 봐야 아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지식대로 그렇게 실행을 해 봐야  실행을 해 봐야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여기는 참 진짜가 들었고 산 것이  들었고 온전한 것이 들었고 이 세상에는 가짜 속이는 모든 것 들었다 그것을  알게 되지요.

 그러니까, 인생이 좀 심령이 불신자라도 밝아서 오늘 한 것은 그 보응이 내일  옵니다. 또 젊어서 한 것은 그 보응이 늙어서 옵니다. 또 일생 동안 한 보응은  죽을 때 옵니다 그러니까 그 뭐 마지막 인생 걸음 다 걷고 난 다음에 보응 올 때  그때 깨달을 게 아니라 좀 그 지혜로운 사람은 그만 하루에 깨닫습니다. 오늘 한  일이 내일 보응이 온다. 오늘 한 일로 써 내일 보응이 왔는데 그 일이  가치적으로 얼마나 어떻게 돼서 가치적으로 허무하게 됐다. 또 그 기쁨도 평가해  보니까 허무하다. 이렇게 해서 얼마 동안 살아 보고 난 다음에는 인생을  설정하는 사람 있습니다. 아, 이것은 허무하다, 이러기 때문에 이런 것만 보고  살수가 없다 해가 지고 그 사람이 도덕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권세나  이런 것 보고 살던 사람이 명철한 사람은 그만 이것보다는 도덕이 가치야 하고  도덕으로 들어갑니다. 도덕으로 들어가 봐도 도덕 그것도 허무하다는 걸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종교로 들어갑니다. 종교로 들어가 가지고 헤매다가 또  자기가 철학으로 한번 또 헤매 봅니다 철학은 종교보다도 더 허무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종교로 갔다가 이 종교에서 저 종교에서 들어가 보니까 잠깐 들어가  보고 난 다음에 이것은 아니다 하기 때문에 그 종교를 버리고 어디 종교를  찾아서 이 종교 저 종교 찾아 가지고 이 종 교로 개종해 보고 저 종교로 개종해  보고 몇 번이나 종교를 개종해 보고 개종을 해 보고 다시 아니라고 해가지고  헤메이다가 택자가 아니면 세상을 마친 사람 있고 또 자기가 종교를 찾아서  헤매이다가 아무 종교도 따라 갈 만한 종교가 없으니까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다가 그만 자꾸 생각 하다가 깊이 들어갔다 말이오.

 석가모니 같은 사람도 그렇습니다. 깊이 들어가 보니까 과거에 철학이나 모든  도덕이나 모든 그 종교들이 있지만 까짓 것 볼 것이 없고 도무지 너무 아무것도  거짓 부리기 때문에 제가 자꾸 생각하는 것이 이것이 불교를 생각한 것입니다.

불교를 생각하고 난 다음에 그분이 말한 것은 이렇다 하는 확정짓는 말은  불교에는 없습니다. 다 그러리라. 그러리라. 자꾸 이렇게 추측 추론을 했지  요렇다 확고 부동의 말은 한 일은 없다 그 말이오. 그게 좀 양심가요. 이러나  자기가 그래 가지고 다른 길을 암만 찾아도 없으니까 없으니 이 길도 속이는  길이지만 이 길도 그래도 사람을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데에는 그래도 모든  종교보다 이 종교가 낫다 하기 때문에 소망이 없지만 거짓부리 그 소망을 줘  가지고 사람을 권선 징악의 도로서 둔 것이 그것이 불교입니다. 실은 석가모니는  무슨 극락이라 하는 그런 것을 확실이 믿는 게 아니고 권선징악의 종교로  그와같이 둔 것인데 그만 그 뒷 사람들이 심령이 어두워 놓으니까 자꾸 과장하고  과장해 가지고 극락이 확실히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창세기서부터 인생의 영원을  말했고, 또 부활을 말했고, 또 조물주를 말했고, 주권자를 말했고, 사람들이  나고 죽는 것이 당신의 한 분에게 주권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해서 모든 것이  기독교에는 갈 지(之)자 걸음은 없습니다. 갈 지자는 여기서 이리 갔다가 이리  갔다가 이리 간 그게 갈 지자입니다. 갈 지자 걸음은 없어. 이리 가고 이리 가고  이리 가고 자꾸 이래 이래 이래 자꾸 이라는 갈 지자 걸음을 걷지 않습니다.

 이종교는 갈 지자 걸음을 걷지 안하는 그 종교 역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이래. 기독교는 갈 지자 걸음이 없습니다. 인간들이 자꾸 이래도 기독교는  그대로 나갔으니까 인간들이 이리 말하고 이리 말해도 암만 그래 말해도  기독교는 거기 따라가지 안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기독교를 인본주의로  이렇게 말하는 것. 한국 교회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느냐? 기독교를 하나의  사회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는 사회를 위하는 것이다. 또 기독교는 도덕을  위하는 것이다. 또 기독교는 정치를 위하는 것이다. 이래서 어떤 자는 교회를  하나의 제 정치의 이용물로 삼아 가지고 교회를 위해서 뭐 선거하고 교회를  위해서 출마하고 교회를 위해서 당선 당할라고 교회를 자기의 그 정권의  이용물로 삼으려 하는 자들 많고, 또 교회를 하나의 사회개량으로 이용하려 하는  사람들도 많고. 교회를 도덕으로 이용할려 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교회의 도덕면만을 장기로 보지 다른 면 장기로 보지 않습니다. 또 이 교회를  하나의 사회개량으로 사회주의로 그렇게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것 아닙니다. 기독교는 신앙주의요. 기독교는  신앙주의라는 말은 하나님 한 분을 향하여서 그 분의 말씀하신 모든 것을  인정하고, 그 분이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인정 하셨고 그분이 성령으로  인정하셨기 때문에 그분이 문서로 우리에게 발표한 것을 자기가 인정하고,  영감으로 발표하는 것을 인정하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 분의 인정대로  나는 딿고 내가 지키고 요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아침에는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받은 것은  생각하고, 들은 것은 지키고. 받은 것을 생각지 못하고 잊어 버렸으면 회개하고  들은 것을 지키지 못했으면 회개하고. 세 가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이기는 자는,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이기는 자는 이와같이 횐옷을 입을  것이요" 성결을 이룬다 말입니다. 성결 다른 사람은 악인이라 해도 성결을  이룹니다. 왜? 세상 사람들은 세상 법칙을 가지고 평가하기 때문에 정말로 잘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가장 악인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저희들의 도덕에 맞지 안하고 저희들의 사회에 맞지 안하지. 저희들의 윤리에  맞지 안하지, 저희들의 사상에 맞지 안하지 저희들의 정치에 맞지 안하지.

저희들의 민족주의에 맞지 안하지, 저희들의 애국주의에 맞지 안하지. 하나님  법에 맞기 때문에 거기 맞지 않으니까 양 법을 다 지킬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횐옷을 입을 것이요, 그는 완전한 성결을 입을 것이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안한다 그 말은, 생명책이라 말은 이것은  하나의 비유로 표시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에서 끊어지지 않는다. 연결에서  끊지 않겠다, 이를 연결에서 끊으랍니까? 끊지 말아라. 하나님과 연결에서  끊치지 안한다. 하나님과 연결에서 끊쳐지지 안한다. 또 그 이름을 아버지  앞에서와 천사 앞에서 시인한다. 이는 역사를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것을 말하고 모든 걸 우리에게 다 주시고 천사는  우리를 돕습니다.

 어제 아침에도 언제 산다씽 말도 하고 야곱도 말했는데 야곱, 야곱이  에서에게로 돌아갈 때에 하도 무서워 쌓으니까 '네가 눈을 들어 봐라.' 보니까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자기와 동행해 가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를 위해서  천군 천사를 보내지 안했느냐?' 이래도 '그렇지만 내가 에서에게 가면 나는  죽습니다.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자꾸 그라기 때문에 자꾸 자기 주관을 가지고  주관을 가지고 행동하고 주관을 꺾지 안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네가 나를  이겼다. 네 주관이 날 이기고 너는 네 주관을 도무지 내가 꺾을 수 없고 네  주관을 설득시킬 수 없고 네 주관을 도무지 굽히지 안하니까 네 주관대로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어 환도뼈를 쳤습니다. 하나님의 큰 징계를 받고 난 다음에는  이제 자복을 하고 회개하고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기는 자는 세 가지를 계속하는 것이 이기는 자입니다. 세  가지만 계속하면 우리에게는 성공이 있습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뭐 세 가지 뭐? 받은 거 생각하고 들은 거 지키고 받은 거 생각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들은 거 지키지 못하고 버렸으면 다시 회개해서 다시  생각하고 다시 지키고 이라면 됩니다. 그게 뭐냐? 이기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뭘 생각할까? 첫째는 '아, 주님이 나에게 어떤 사랑을 베푸셨나?'  그러면 이것만 해도 한정 없습니다. 주님이 대형, 대행. 대화친을 생각합니다.

또 나는 과거에는 어떤 자인데 내가 중생돼서 내 속에 참사람이 있나 없나  자기가 안다 그 말이오. 과거에 예수믿지 안할 때와 같은 그게, 아니고 자기  속에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그 자기 속에 옳은 사람이 속에 들어 있는 걸  여러분들이 알 것입니다. 왜? 과거에는 선을 말해도 선을 말해도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들어가 보면 그 속에 선이 없고 속에 악을 만나게 됩니다. 악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중생되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악을 생각해도 악을 생각해도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보니까 그 악이 제거돼 버리고 자기 속에 온전한 것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새생명이 들어 있는 걸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니까, 주님의 사랑, 주님이 나를 간섭하시는 것, 주님이 나를  보호하시는 것, 주님이 나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 내가 가는 길을 주님이 막은  것, 가시담으로 막은 것, 내가 잘못되었을 때에 당신이 나에게 징계를 주신 것이  과거를 쭉 생각하면 당신이 내게 대해서 순간도 떠나지 아니하시고 내 전생활을  계속 간섭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번에 대창골에서 한 것도 자꾸 생각해야 됩니다. 그것을  버릴 게 아니라 생각해야 됩니다. 어제 내가 ○○○집사님 만났는데 ○○○씨  왔소? 손들어 봐. 아, 저 왔구만, ○○○씨가 보니까 미인이 됐어. 미인이 됐어.

자궁암이 걸려 가지고 저 복음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는데 수술해 가지고 다시  재발이 돼서 가 또 수술을 해야 돼. 재발이 돼 수술을 해야 되는데. 내가 저  대티에 올라가니까 '수술을 이거 아무래도 해야 된다 하는데 자녀들은 꼭 해야  된다 하는데 아 이거 뭐 해야 되겠습니까? 뭐 수술해도 두 번 수술하면 다 죽지  못 산다 하는데 이거 수술해야 되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아, 자기 믿음대로  되지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 없는데 꼭 그걸 돈 들어 수술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낫아 주시는 걸 믿으면 되지'이라니까 그 내가 좀 설명을 좀 이래 하고 나니까  '아이고 수술 안 할랍니다' '그라면 수술 안 할려면 이번에 팔 월 집회 가서  낫도록 하라' 내가 이래 말했다 말이오. 이라면서 인제 내가 그때 그러면  기도하자고 나무 밑에 서서 둘이 서서 기도하자 이래 나무를 붙들고 서 가지고  기도를 했다 말이오. 기도할 때 내 마음에 나았다 싶으다 말이오. 나았다는 그게  믿어져. 그런데 그래 나중에 말 들으니까 '나는 집회 가서 나은 게 아니라 집회  가서 나을려고 준비하다 가보니까 다 나아 버렸다.' 준비하다 나았다 이라는데  그래 준비하다 나았어. 준비하다 나았는데 그래 내가 아래 보고 조금 보면 좀  믿음이 흐려지면 또 재발되거든. 믿음이 흐려지면 또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기  때문에, 잘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해 줬기 때문에 믿음이 그만 흐려지면 없는  암병이 대번 나와도 나온다 그거요. 주님은 우리 믿기 위해서 했기 때문에. 그래  얼굴이 좀 그랬어. 이랬는데 저 먼저 또 보니까 이 설교를 듣고 난 다음에는  믿음이 생겨졌는가 좀 좋아. 내가 저 아래 요 만나서 보니까 얼굴이 어떻게  좋은지 미인이 됐어. ○○○씨 손들어봐. 한번 일어나서 봐요, 한 번 일어나 서  봐, 영 살도 찌고 미인이 됐다 말이오. 허허. 어? 자궁암으로 거석한 사람이.

누가 손 댔소? 하나님이 하셨어. 거짓말입니까?  여기 우리 우유 갖다 주고 하는 ○○○부인. 병원에 몇 군데나 가니까 이거는  간염이라, 간염. 바이러스 간염이니까 그 지금 우리 주 장로님은 이 간염이라는  것은 전염이 어떻게 잘되든지 아야 그 우유를 지금 먹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  전염이 어떻게 잘되든지 그래서 근방에 가지도 못하게 하고 그 남편도 그  부인한테 가지를 못했어. 가면 퍼뜩 전염 옮을까 싶어서. 이래 가지고 이랬는데  우리 가서 기도하고 난 다음에 보니까 이 주먹이 푹 이만치 들어가. 이만치  요만하게 들어가 요만한게 들어 갔는데 또 구멍 또 하나는 요만침 요만한 게  들어가. 요만한 게 들어가는테 구멍이 쏙 들어가. 요래 가지고, 요 그 황소 그  큰 황소가 여기 눕혀 놓고 여기 가슴을 다았으니까 뭐 이거 그 뼈가 위에  부러지고 밑에 부러지고 폭 이러니까 여기에 부러지고 여기에 부러지고 폭  내려가 버렸다 말이오. 폭 내려가 가지고 있었는데 아, 그래 놓으니까 간이  그래서 수술도 못하고 이렇다 하는데 아, 기도하고 보니까 요만한 구멍은 내  보기에도 확실히 없어져 버렸어. 폭 들어가 요만한 것, 들어갈 구멍은 없어져  버리고, 그 가에도 좀 올라 온 거는 올라 온 것 같애. 이랬는데 하나님께서 낫아  주셨으니 네가 믿으라 이랬는데 보니까 뭐 믿는다 해도 잘 믿음을 별로 안  가지는 것 같애. 그래 내가 그러면 그래도 자꾸 뒤에 뭐 수술할까 이래서 '가  봐라. 그러면 네가 다른 것은 못 보니까 간염 그것도 하나님이 낫아 주시면 다  나았을 터니까 가 봐라.' 가서 이틀인가 지내고 난 다음에 시간이 없어 자꾸  이래 가지고 ○권사님 가라했다 말이오. 가 가지고 양 사방 돌아다니고 보니까  그 간염이 다 낫고 없어. 간염이 하나도 없어. 간염은 하나도 없습니다. 간염이  속히 치료가 돼도 석 달 돼야 치료된다 하는 것인데 당장 간염 없어도. 그거  네가 간염은 검사하니까 알 수 있지 않느냐? 그걸로써 네가 믿으라. 믿고 난  다음에 지금은 인제 괜찮아. 그래 인제 일하러 갔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계셔 이래 하는 것인데, 저 아래도 보니까 그 믿음이라.

조그만한 어린 아이를 업고 와 가지고 나는 뉘 아이인지 모르는데 와서 말하기를  어느 권찰이 데리고 왔던고 나는 모르겠어. 잊어 버려요. 요 아이가 만날 병원에  돌아다녀도 안 낫고 아무리 치료할려 해도 안 나았는데 아, 고게 어짠지 예수도  믿지도 잘 안한 사람인데 그 아이가 예배당 가자 하면 좋다고 자꾸 가자 한대요.

예배당에 예수 믿으러 가자하면 좋아하고 대구 집회에 가 가지고 아 그게 그만.

그 집회 가운데 나았어. 낫고 나니까 그 어린 아이가 세 살인가 모르겠어. 그게  찬송을 따라 하고 어떻게 좋아서 막 떠들고 기뻐하고 이래 쌓는지 권찰이 그걸  떠드는 것을 중지를 안했대요. 은혜 받아 가지고 제가 떠드니까, 은혜 받아  가지고 기뻐서 그렇게 아이가 병이 들어 가지고 아파서 못 견디고 있는 건데  그만 낫아 놓니까 좋아서 이놈이 찬미를 하고 자꾸 그렇게 예수를 좋아한데요,  그게. 갓난 어린 아이가 말이요. 어머니도 아마 믿지 안 한다 하든가 그때 그래  믿는다 하든가 뭐 이랬는데, 그런 것이 그게 다 하나님의 역사라 말이오. 그러면  그것보다도 육체의 병보다도 마음 병 고친 거는 더 하고, 마음병 고친 것보다도  영의 강건함 얻은 것은 더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어떻게 받았으며, 받은 그걸 자꾸 생각해. 그래서 대창골 집회 때에  자기가 어떤 심령이 됐었던가, 어떤 각오를 했던가, 어떤 결심을 했던가, 어떤  은혜를 받았는가, 어떤 소망이 생겨졌고 어떤 힘이 나왔던가, 어떤 병이  고쳐졌는가 그런 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생각하라 그 말이오  자꾸 생각하라 하는데 마귀란 놈들은 생각이 못하게 해 이 생각하라하니까 그게  제 믿음으로 됐지 내가 한 것 아니오. 내가 한 것 같으면 내 눈에 백내장이  나았지. 백내장이 안 낫았다 그 말이오. 내가 한 게 아니라 그 제 믿음으로 낫는  거라 하나님이 낫아 주신거라. 나는 요 옆에 요 사마귀. 요 사마귀가 똑 쌀내기  반 개 만한 게 있어요. 반 개 만한 게 여기 있어-.그래 내가 한번 한번 시험해  봤어. 하나님한테 이것 한번 낫아 달라 해 볼까? 주님 이것 낫아 주십시오. 없애  주십시오. 기도를 몇 번 했는데 없어지기는 커녕 꼭 그대로 있어. 그 주님이  하셨다 말이오. 그거는 주님이 하셨지 백 목사가 한 게 아닌데 마귀란 놈은 떡  말하기를 뭐라고 엎어 잡아 넘기는 게 아니라 아, 자꾸 말할라 하면 백목사 제가  기도해 가지고 나았으니까 지금까지 제자랑 한다.' 자꾸 그걸 그걸 들추이 면  자꾸 내 자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 또 그걸 나도 또 그걸 처음에는 치라면  자꾸 내 자랑 한다고 이래 쌓아서 그럴 터이니까 그만 말아라 그전에 그래  가지고 말 안 했다 말이오. 내가 이 회개를 했어 내 자랑이 아니라 주님  자랑이라. 주님이 하신 일을 자랑하는 것이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고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구원을 자랑하셔서 주님에게 영광  돌리는 것이고 성도들이 주님과 밀접해지게 만드는 것인데 이거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말이오.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받은 것은 생각하고, 들은 것은 지키고.

생각하고 지키지 못했으면 회개하고. 어떻게 받았는지 생각하고 어떻게 들었는지  지키고 못했으면 회개하라. 이것만하면 네가 흰옷 입고 다닐 것이요. 생명책에서  흐려짐을 받지 안 할 것이요, 아버지 앞과 천사들의 그 자기의 역사, 자기의  활동하는 역사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막 보급으로 공급해 줄 것이고, 또 천사가  너희를 옹호해 보호해 줄 것이라. 야, 이렇게 영광스러운 게 이게 뭐요? 천군  천사가 한 천사가 이 지구 땅덩어리 그 까짓 것 획 날릴려면 날려 버릴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천사가 우리에게 수많은 천군 천사가 옹호하고  있는데 뭐 정권이 무엇이며. 요새 김일성이 뭐라 하고 있는데 내가 떡 뭐라 하면  늘 말하기를. 아, 요새 김일성이가 남침을 하고 어짜고 이래 쌓아서 그래  그러니까 기도 많이 해야지' 이래도 속으로는 말이지 속으로는 '그거 뭐일까?'  이라고 생각할까 그 구더기만 할까, 그런 게 와 가지고 꾸물꾸물 오니까 아이구  겁난다 하지만 이 큰 능력 앞에서는 그 뭐 김일성이가 구더기 한가지요. 구더기  한가지야. 큰 능력 앞에서 그거 개미 한가지라. 그러니까 그게 와서 뭘 하겠소?  이러니까 와도 가도 주님이 주권으로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에게 그분에게  비위를 거슬릴까 그분과 뭐 떨어질까. 그분과 떨어지면 아무리 장사라도 생명  끊어지면 그만 송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사자가 산 개를 당하지 못 해.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끊어지면 그만 한없이 천하고 발에 밟히고, 하나님과  연결돼 있으면 하나님 다음에 강자기 때문에 뭐 대통령이며 무슨 왕이며 뭐  주권자며 뭐 독침이며 그 무슨 상관 있습니까? 하나님과 연결만 돼 가지고  있으면 산 자요 생명이 있어 전능자가 내 생명이 돼 가지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오늘 아침에 이 증거 하는 것은 어제 아침에도 이걸 증거  할라 했고,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받은 것 들은 것을 생각하고  지키라. 못 생각했으면 또 다시 생각하고 또 지키고 여기에 오만 것 다 있어.

'여기 부자도 나오고 사는 것도 나오고 다 나와요. 부자도 나오고 성공도 나오고  형통도 나오고 병 고치는 것도 나오고 평강도 나오고 모든 영광도 존귀도 다  나와요. 여기서만 다 나오지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우리 속에서 나오는데  우리 속에서 나와 밖에서 나오는 건 못써. 우리 속에서 나오는데 속에서 나오는  것이 좋은 것 나쁜 것 둘 있어. 우리 속에서 자꾸 주님과의 관계만 자꾸  생각하면 좋은 것만 자꾸 나오고 주님 외에 피조물은 어떻게 좋은 것이라도 그것  생각하면 처음에는 좋은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기를 해독해서 죽이는 것만  나온다 그 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요렇게 만들어 놨어. 우리는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만  좋아하고 당신만 사모하고 당신만 생각하고 당신만 우러러 바라고 당신만 섬기고  당신만 기쁘시게 하는 이것이 우리의 생명이요 모든 것의 축복이요 형통인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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