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가 부흥(1906년)에 대한 정이철 목사, 박용규 교수, 김반석 목사

  선지자선교회

(서문)

 

이 글은 1906아주사가()부흥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관(), 박용규 교수의 관(), 김반석 목사의 관()이다.

 

이 글에서 차례는 다음과 같다.

 

제일 먼저는, 정이철 목사가 다음의 제목으로 2018329일에 그가 운영하는 바른믿음http://www.good-faith.net/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이다.

 

- 박용규 교수의 아주사 부흥 강의는 총신 죽이는 산당신학

 

다음에는, 박용규 교수가 정이철목사의 글을 보고 다음의 제목으로 201852일에 교계 인터넷신문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이다.

 

- 정이철목사님에게 두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3. 그 다음에는, 김반석 목사가 정이철 목사와 박용규 교수의 글을 보고 다음의 제목으로 201853-17일에 그가 운영하는 선지자문서선교회http://www.seonjija.net/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이다.

 

- 방언을 성령의 충만이라 하는 자들에게 하다

 

- 1906아주사가()부흥의 실체

 

- 방언에 대한 오해

 

- 21-4성령의 충만함과 방언연구

 

-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아래의 본문에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1906아주사가()부흥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관(), 박용규 교수의 관(), 김반석 목사의 관(), 이 셋 자료를 수록하였다. 그러므로 이 셋 자료를 먼저 비교해서 읽어보시고 그런 다음에 성경으로 대조해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진리의 도리를 확정하시기 바란다.

 

2018519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 목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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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은 정이철 목사가 박용규 교수의 아주사 부흥 강의는 총신 죽이는 산당신학이라는 제목으로 2018329일에 그가 운영하는 바른믿음http://www.good-faith.net/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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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규 교수의 아주사 부흥 강의는 총신 죽이는 산당신학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승인 2018.03.29 08:38:42

 

박용규 교수의 아주사 부흥 강의는 총신 죽이는 산당신학1.jpg

박용규 교수가 사랑의교회에서 설교하는 모습

 

총신의 신학은 이미 개혁신학이기를 멈추었다. 총신의 신학은 현대 복음주의로 진즉 기울어졌다. 어떤 면에서는 조용기 목사로 대표되는 오순절-순복음주의와 다르지 않다. 한때 총신대학에 들어갔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귀하게 보아주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 옛말이다. 총신의 신학은 개혁신학이 아니고 성경을 겉으로 대충 따르는 현대 복음주의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총신신대원에서 오래 동안 교회사를 가르친 박용규 교수이다. 나는 우연히 박용규 교수의 아주사 부흥에 대한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이것이 총신의 실상이구나!"하면서 한탄했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박용규 교수의 강의 앞 부분을 녹취하여 간단히 기사 하나를 작성하여 <바른믿음>에 올렸다. 나중에 보니 그 글의 근거가 되는 강의 영상이 인터넷에서 사라졌다. 박용규 교수 본인이 손을 써서 없앤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신학에 대한 시비가 일어나면 정직하게 사과하고 해명하던지, 아니면 반박하던지 해야 할 것이다. 명망있는 교수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 컴푸터에 이미 그 강의 영상이 다운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준비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박용규 교수의 아주사 거짓부흥을 이야기하는 다음의 영상의 430초 무렵을 보기 바란다.

 

박용규 교수의 아주사 부흥 강의는 총신 죽이는 산당신학2.png

(: CGNTV에서 방영한 박용규 교수의 예루살렘에서 평양까지(28)’ 중 제25‘1906년 아주사 오순절 부흥운동에서 캡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방언이라고 하는 특별한 오순절의 사건들이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방언의 존재의 가치, 은사의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확대되기 시작하고, 또 한편으로는 웨일즈에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이 소식을 들으면서 (아주사 거짓부흥의 주역) 시무어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기 시작한 것이예요.” (박용규 교수, 430초 무렵)

 

박용규 교수의 아주사 거짓 부흥에 대한 강의는 개혁주의자들이 이단으로 여기고 경계했던 오순절 운동 이단사상을 그대로 소개하는 내용이다. 비록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복음진리의 전선이 무너져서 오순절 운동이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끈 구약의 산당처럼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나, 1900년대 중반까지 개혁교회들은 오순절 운동을 이단으로 경계했다. 만일 파송한 선교사나 담임목사가 오순절 사상에 물들면 파면하고 후원금을 끊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개혁신학의 마지막 보루인 총신 교회사 교수가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총신이 제 맛을 잃어버렸다는 증거이다. 박용규 교수의 강의 내용에서 발견되는 거짓복음의 요소들을 분석해 보도록 하자!

 

20세기에 다시 오순절 성령의 역사 등장?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방언이라고 하는 특별한 오순절의 사건들이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방언의 가치, 은사의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확대되기 시작하고”(박용규 교수)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현상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의 사건이다. 이것은 기독교를 바르게 이해하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내용이다. 특히 개혁신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 진리이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피로 이루신 구속을 자기 백성들에게 적용하시고자, 그리고 구약에서 예언하신 '새로운 성전'을 만드시기 위해 아버지께 요청하여 성령을 보내셨다. 그리스도가 보내신 성령이 오순절 날에 지상에 임하심으로 신약 교회가 출현했다. 드디어 신약시대가 시작되었다.

 

구약의 성령과 신약의 성령은 같은 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속을 적용하시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지상의 신자들 속에 거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면에서 신약의 성령은 구약의 성령과 다르다. 신약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적용하시므로 예수의 영’(16:7)이다. 사도행전 2장 오순절 날에 성령이 예수의 영으로 지상에 강림하셨다. 그날부터 성도의 몸과 마음속으로 성령이 영구하게 임재하시는 성령의 세례도 시작되었다.

 

성령강림 이후 신약의 교회를 세우는데 크게 작용한 방언의 은사도 그때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방언을 통해 친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시면서 지상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셨다. 이방인들의 실제 언어로 가동되는 방언이 이방인도 복음에 순종하여 하나님 백성되었다는 진리를 선포하니, 이방인과 유대인이 한 몸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는데 큰 기여가 되었다(고전 14:21,22).

 

사도행전 2장 오순절 날에 그리스도의 구속을 적용하는 성령의 지상강림은 우주적으로 역사적으로 단회적인 사건이다. 절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방언도 교회가 세워진 후 사라졌다. 이후 방언이 정상적인 교회에서 활용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모든 종교개혁자들과 이후의 위대한 신학자들도 모두 이렇게 가르쳤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방언과 성령강림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이다. 예장 합동의 교수와 목회자들은 마땅히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실제로 이후 1900년 동안 기독교 교회사에서 오순절 성령회복', '방언 재현'이라는 말 조차 없었다. 그와 유사한 그 어떤 시도도 없었다. 만일 누가 칼빈 앞에서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다시 나타나게야 한다고 하고 방언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고 말 했다면, 칼빈은 여지없이 호통을 쳐서 입을 닫게했을 것이다.

 

그런데 초대교회의 오순절 성령의 역사와 방언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사람들이 1800년대 말에 미국의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대부분 사이비 기도원을 운영하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종말의 대부흥이 일어나고, 사도행전의 성령의 역사가 회복회고,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사이비 종말주의자들이었다.

 

박용규 교수의 아주사 부흥 강의는 총신 죽이는 산당신학3.jpg

아주사 거짓부흥의 주역 윌리암 세이모어

 

결정적으로 윌리엄 세이모어(시무어, William Seymour, 1870-1922)라는 흑인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을 개인적으로, 시대마다 재현키신다는 아주사 거짓부흥을 일으켰다. 세이모어도 그 이전부터 여러 사이비 기도원을 전전하였던 거짓의 사람이었다. 아주사 거짓부흥을 일으키기 전까지 세이모어가 어떤 사이비 운동을 섭렵했었는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윌리엄 세이모어는 신시내티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하나님의 부흥운동’(Church of God Reformation Movement)을 이끌고 있었던 마틴 냅(Martin Knapps)으로부터 이미 중생한 사람에게도 다시 성령의 추가적인 임재가 있어야 한다는 거짓 사상을 배웠다. 성령으로 중생한 사람에게 다시 성령이 임한다는 이단적인 사상은 이 당시에 상당히 널리 펴지고 있는 중이었다. 또한 마틴 냅이 운영하는 하나님의 성경학교’(God's Bible School)에 학생으로 등록하여 공부하며 구원 받고 난 후 성화되기 위해 성령의 두 번째 임재가 필요하다는 비성경적인 사상에 깊이 학습되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성도들”(Evening Light Saints)이라는 불건전한 신앙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세미모어는 바로 여기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단에게서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에 의해 얼마 후 아주사 거짓부흥이 탄생된 것이다. 그 후 세이모어가 휴스턴으로 이주하여 찰스 펄햄이 운영하는 성경학교에 입학하였다. 펄햄은 1901년 자신의 성경학교의 학생들을 상대로 실습하여 성령을 받고 중생한 신자에게도 다시 성령의 재세례가 임한다는 거짓된 이론을 이미 최초로 수립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안수하여 한 여학생에게 거짓 방언이 나오게함으로 거짓된 이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안수하여 이미 성령을 받은 다시 또 성령이 임하게 만들고 동시에 방언도 나오게 하였으니, 펄햄은 새로운 신앙의 시대를 여는 개척자가 된 것이다. 이후에 실제로 펄햄은 자신이 사도적 신앙의 시대를 여는 마지막 시대의 세례요한이라고 자신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완전히 이단의 길로 가버렸다.

 

세이모어는 펄햄의 신학교의 학생이 되어 마지막 시대에 다시 사도행전의 성령의 역사가 회복된다는 거짓 사상을 더욱 확실하게 배웠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방언이 성령세례와 함께 다시 시작된다는 거짓 이론에 강하게 매료되었다. 그 상태에서 1906년 초에 캘리포니아의 한 교회에 청빙을 받아 택사스에서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세이모어는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여 자신을 청빙한 교회에서 단 한 번의 설교를 하고서 이단이라는 비판받고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자신을 따르는 아주사에 있는 한 여성도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기도회를 시작했는데, 거기에서 아주사 거짓부흥이 일어났다.

 

내막이 이러하거늘 총신의 교수인 박용규 목사가 어찌 이 따위 허접한 것을 하나님의 신령한 부흥의 역사라고 가르치는 것일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방언이라고 하는 특별한 오순절의 사건들이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방언의 가치, 은사의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확대되기 시작하고”(박용규 교수)

 

박용규 교수의 이와 같은 강의 내용은 110년 전 미국의 이단들의 주장했던 거짓사설이다. 비록 지금은 그들의 이단사상을 계승한 오순절 운동파들과 신사도 운동파들이 참 교회보다 더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는 해도,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한 분의 재로 변할 거짓의 무리일 뿐이다. 아주사 거짓부흥과 그것의 핵심을 계승한 오순절 운동과 신사도 운동은 구약의 산당과 같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산당에서 거짓 하나님을 섬기다 성경의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했다.

 

총신의 교수라면 이 시대의 산당 제사장의 신학을 설파하지 않아야 한다. 총신의 교수라면 마땅히 산당을 타파했던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신앙을 가르치는 분이어야 한다. 그런데 박용규 교수는 산당 신학의 선생의 길로 가고 있었다. 산당의 거짓 신학을 발칙하게 선지동산 총신에서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총신은 종교개혁자 요시야 같이 산당과 싸우는 진리의 사람을 양성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어찌 신당의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총신의 교수가 되었을까? 성경은 종교개혁자 요시야 왕이 산당을 타파하였고, 산당 제사장들을 죽였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왕하 23: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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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jpg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에서 수학했고, 현재 미시간의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계속 연구한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를 출판하였고,침묵기도, 중보기도, 방언기도출판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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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은 박용규 교수가 정이철목사의 글을 보고 정이철목사님에게 두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제목으로 201852일에 교계 인터넷신문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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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목사님에게 두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왜곡기사, 한국교회·총신·동료교수 명예 연관, 공개질의

20180502() 11:38:47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사랑하는 정이철 목사님께

 

박용규 교수/총신대학교

 

정이철목사님에게 두가지 질문을 드립니다.jpg  

박용규 교수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작성합니다. 지난 3월 말 우연히 목사님께서 저에 대해 쓰인 글이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바른믿음>이란 사이트에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 글은 제가 한 강의에 대해 정 목사님께서 평하신 내용이었습니다. 그 때는 사람마다 견해차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 그냥 넘어갔습니다.

 

얼마 지난 후, 어느 목사님이 정이철 목사님께서 저에 대해 쓰신 글을 살펴보라.”고 조언하셔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살펴보니 저에 대해 목사님께서 3번에 걸쳐 글을 게재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들을 보았습니다.

 

누구나 견해차가 있고 나아가 비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책을 출간하거나 논문을 기고할 때 저의 석사박사과정의 학생들이나 동료들에게 읽고 비평적 조언을 비교적 구하고 있습니다. 비판에 대해 상당히 열려 있는 사람이라고 자처합니다.

 

그런데 정 목사님의 저에 대한 비판의 글 중에 사실이 아닌 내용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건강한 토론 문화와 논의를 위해서 저는 먼저 이 부분을 분명히 확인하고 진행하려고 합니다. 제가 목사님에게 이렇게 요청하는 것은 단순히 저에 대한 비판이나 평가를 넘어 총신공동체 전체, 예장합동교단 전체를 연결하셔서 글을 쓰셨기 때문에 장고 끝에 이렇게 공개적 글을 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제 개인의 문제만 취급하였다면 그냥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저의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정 목사님은 저 개인의 문제를 떠나 총신과 교단과 더 나아가 한국교회와 연관하여 질문을 하셨고, 그리고 저를 사랑하는 총신의 졸업생들과 전국의 동료 교수들의 명예와도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이 들어 부득이 이렇게 목사님에게 공개적인 질문을 드립니다. 우선 저와 직접 관련이 있는 2가지 문제에 대하여 묻게 되오니, 정 목사님께서 먼저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1. 과연 제가(박용규) 정이철 목사님의 비판이 두려워, 어느 사이트에 연락을 취해 어떤 영상을 내리라고 했다는 말인지 밝혀주기 바랍니다.

 

정 목사님께서 주장하기를 제가 정 목사님의 저에 대한 비판의 글을 보고서 겁이 나서 관련 영상을 게재한 사이트에 연락하여 영상을 내리라고 해서 내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총신의 신학은 개혁신학이 아니고 성경을 겉으로 대충 따르는 현대 복음주의이다. 그것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가 총신신대원에서 오래 동안 교회사를 가르친 박용규 교수이다. 나는 우연히 박용규 교수의 아주사 부흥에 대한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이것이 총신의 실상이구나!’하면서 한탄했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박용규 교수의 강의 앞 부분을 녹취하여 간단히 기사 하나를 작성하여 <바른믿음>에 올렸다. 나중에 보니 그 글의 근거가 되는 강의 영상이 인터넷에서 사라졌다. 박용규 교수 본인이 손을 써서 없앤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신학에 대한 시비가 일어나면 정직하게 사과하고 해명하던지, 아니면 반박하던지 해야 할 것이다. 명망있는 교수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 컴퓨터에 이미 그 강의 영상이 다운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준비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이 글을 쓸 수 있었다.(정이철, “박용규 교수의 아주사 부흥 강의는 총신 죽이는 산당신학,” 바른믿음, 2018329.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126/(2018417일 접속)).

 

구에게나 의견 차이는 있기 마련이고 또 비판할 수 있다고 하여도, 문제는 그것은 진실과 사실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단정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진실처럼 왜곡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정 목사님의 주장처럼 제가 어느 사이트에 연락해서 무슨 내용을 내리라고 했는지 밝혀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어떤 사이트에 무엇이 게재되었는지 전혀 몰랐고, 정 목사님께서 최근 제 강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사실도 몰랐으며, 그러므로 당연히 그 사이트에 연락해 그것을 내리라고 요청할 수도 없고 그런 일을 한 일이 결코 없습니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진실을 호도하여 마치 제가 정직하지 않은 학자, 교수답지 않게 행동하는 학자로 단죄까지 하는 것은 가뜩이나 윤리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교계 풍토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확인해 본 결과, 정목사님이 언급한 박용규 교수의 아주사 부흥에 대한 인터넷 강의2006년부터 2007년까지 CGNTV에서 방영한 박용규 교수의 예루살렘에서 평양까지(28)’ 중 제25‘1906년 아주사 오순절 부흥운동을 말한 것으로, 이 동영상은 현재 CGNTV 홈페이지에서 언제든지 다시보기가 가능합니다. 박용규, “251906년 아주사 오순절 부흥운동,” 박용규 교수의 예루살렘에서 평양까지, CGNTV 홈페이지, 2007313. <http://www.cgntv.net/player/home.cgn?vid=50886&pid=422> (2018417일 접속).) 제가 어느 사이트에 연락하여 무슨 내용의 글을 내리라고 요청했는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정 목사님이 운영하는 <바른믿음>도 언론일 터인데 언론의 기본은 당사자에게 어떤 형태로든 묻는 것이 기본이고, 묻지 않을 정도로 확신이 있다면 그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기본일 터인데, 정 목사님은 지금 그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2. 과연 정이철 목사님의 주장처럼 제가(박용규) “오직 신천지, 안상홍, 박윤식 등에 대해서만 이단이라고 했던가요?

 

정 목사님께서 제가 단지 몇몇 이단만 이단으로 삼고 다른 이단에 대해서는 이단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별 관심도 없는 것처럼 아래와 같이 글을 썼습니다.

 

괜히 개혁신학만이 교회를 교회되게 만드는 유일한 신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 이유가 있다. 박용규 교수 같은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오직 신천지, 안상홍, 박윤식 등에 대해서만 이단이라고 하고 있다. 자신들의 현대 복음주의 신학의 구도에서는 절대로 그 이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정이철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정이철, “박용규 교수, 20세기에 방언이 나타나고 더 중요해진다,” 바른믿음, 201848.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141> (2018417일 접속).)

 

아무리 비판의 자유가 있다고 하여도 허위 사실에 의하여 비판할 자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것도 상대의 인격과 진실을 호도하고 정죄하는 글을 쓸 때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정 목사님은 어떤 근거로 위의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정 목사님께서는 박용규 교수는 오직 신천지, 안상홍, 박윤식 등에 대해서만 이단이라고 하고 있다고 용감하게도 단정하는 글을 썼습니다.

 

저는 그동안 이단에 맞서 총신과 교단과 한국교회를 지키는 일에 교수 사역의 생명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정 목사님께서는 제가 몇몇 이단 외에는 이단에 대해서도 관심도 없는 신학자로 매도하고 이렇게 단죄까지 하였습니다. “오직 신천지, 안상홍, 박윤식 등에 대해서만 이단이라고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어떤 근거로 그렇게 단정하셨는지 그 근거를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게다가 더 기가 찬 정 목사의 부언은 자신들의 현대 복음주의 신학의 구도에서는 절대로 그 이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날카로운(?) 평가까지 덧붙였습니다.

 

저는 신천지, 안상홍, 박윤식 등에 대해서만 이단이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을 왜곡해도 보통 심각한 왜곡이 아닙니다. 정 목사님이 제가 쓴 책들과 활동을 기초적으로 조금만 살폈다고 하여도 이런 허위 사실에 의한 글을 이렇게 용감하게 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를 간단히 증명하겠습니다. 제가 저술한 <한국기독교회사 1-3>까지 보면 한국교회 안에 교회를 어지럽히는 수많은 이단들에 대해서 얼마나 혹독하게 비판을 했는지 간단하게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한국기독교회사 2>4장 변천하는 사회, 갈등하는 교회의 ‘3. 교회 내부로부터의 도전: 이단의 전성시대’(205-239) 전체가 이단에 대한 기록이며 여기에는 당시 이단들이 대거 수록되어 있습니다.

 

1) 김장호의 조선기독교회 설립

2) 최중진의 자유교

3) 이만집의 자치교

4) 성결교에서 파생된 하나님의 교회

5) 최태용의 복음교회

 

또한 <한국기독교회사 2>146.25전쟁과 종교 사회적 혼란의 ‘3. 이단의 발흥: 용문산기도원, 통일교, 전도관은 한국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3개의 이단을 집중 조명하였습니다.

 

1) 나운몽의 용문산 기도원

2) 문선명의 통일교

3) 박태선의 전도관

 

이단에 대해서는 참으로 많은 연구를 진행했고 다양한 이단들을 조명했습니다. 최근 출간한 <한국기독교회사 3>19장 급부상한 한국교회 이단세력’ 855-915쪽은 전체가 이단에 대한 것입니다.

 

1. 1960-1980년대 이단들의 급부상: 안식교, 여호와의증인, 몰몬교 외 18

2. 1980년대 통일교의 기성교회 침투

3. 박태선의 전도관

4. 김기동의 귀신론과 베뢰아 아카데미

5. 깨달음의 종교, 구원파/ 권신찬-유병언계열, 박옥수 계열, 이요한 계열

6. 이장림과 19921028일 재림론

7. 류광수의 다락방 전도운동

8. 평강제일교회(구 대성교회) 박윤식

9.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10. 급부상한 신흥이단: 안상홍증인회와 만민중앙교회, 레마선교회, 예수중심교회, 지방교회

 

저는 신천지, 안상홍, 박윤식 외에도 통일교, 전도관, 김기동 귀신론, 구원파, 이장림, 시한부재림론, 류광수 다락방, 만민중앙교회, 지방교회, 레마선교회, 이초석 등 수많은 이단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저는 2005년 평강제일교회 문제만 아니라 1996년에 류광수 다락방 문제가 나왔을 때도 총신교수로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었고, 여러 이단들에 대해서 이단보고서를 작성해서 이단에 맞섰습니다. 제가 그동안 수많은 이단들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것이 사실이고, 이는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저는 류광수 다락방 외에도 구원파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19921028일 재림론의 문제점을 <신학지남>에 게재하고, <한국기독교회사><신학지남> <총회 100년사> 등에 한국교회의 많은 이단들을 상술하였습니다. 제가 오직 신천지, 안상홍, 박윤식 등에 대해서만 이단이라고 하고 있다.”고 정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정확히 그 근거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사실 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불성실 문제만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남을 비판하기 위하여 거짓된 환경을 설정하지 않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비판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2가지 질문에 대해 정확히 답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비판과 비평에 대해 열려 있습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허위사실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2가지에 대해 앞으로 5일 안에 정 목사님이 운영하는 <바른믿음>에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정 목사님의 글 가운데 한 가지 더 발견한 문제는 총회에 7명의 교수들의 이름으로 올린 보고서를 제가 작성하고 다른 6명의 교수가 그저 공동서명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또한 거짓입니다. 이것도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공동의 글이란 어디에서나 누군가가 초안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위의 글은 그 초안도 복수의 교수가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교수들이 자세히 다 읽고 의견과 추가 사항까지 조언해 주어 완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하게 밝히는 바입니다. 앞으로는 제가 작성해서 다른 교수들의 그저 동의만 받은 보고서처럼 주장하는 것은 진실의 왜곡이요 다른 교수들에 대한 명예훼손입니다. “총신신대원 교수 7명의 정이철의 신학사상 문제점 분석과 평가라고 분명히 표기해주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점이 있는데, 조금 전 어떤 분이 정 목사님이 운영하는 <바른믿음> 사이트의 분류 항목 명이 수정된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문제인물이란 항이 깊은토론이란 항목 명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 목사님은 왜 이렇게 수정했는지도 말씀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문제인물이라는 항목 안에 유명인사들을 나열하여 강하게 성토하다가 왜 은근히 분류 항목을 수정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제인물깊은토론은 전혀 의미도 주는 이미지도 다릅니다.

 

혹시 총회 실행위원회와 이단대책위원회에서 논의가 되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 가셨나요? 정 목사님께서 이들 인물들을 문제의 인물이 아니라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는 입장 수정을 하셨다는 의미인가요? 며칠 사이에 그런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도 놀랄 일입니다. 왜 수정했는지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얼마 전에 정 목사님께서 감리교 웨슬리의 구원관을 행위구원이라고 주장하였다가 사과한 것을 보았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정 목사님의 답변 태도에 따라 제 자신의 문제만 아니라 존경받는 분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밝힐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것은 제 개인의 명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장합동과 총신의 명예가 같이 걸려 있고, 이 같은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적인 폭로는 정 목사님이 그렇게 강조하시는 개혁주의 신앙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제 문제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분명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 사이트의 글을 바꾸지 마십시오. 은근히 입장을 아무 말도 없이 수정하지 마십시오. 수정할 때는 사과를 하고 수정하든지, 아니면 수정한 이유를 밝히고 수정해야 정론의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개혁주의 목회자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또 글을 올릴 때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목사님께서 제 자신과 총신과 예장합동과 관련하여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셨기 때문에 제 질문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답변해주시기를 정중히 요청합니다.

 

공개적으로 총신문제와 관련하여 저에 대한 글을 정 목사님께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올리셨으니 저의 질문에 대한 답신과 근거를 공개적으로 정 목사님이 운영하는 <바른믿음> 사이트에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토론은 중립적이어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점을 고려하셔서 <뉴스파워><교회와신앙>에 실리는 저의 공개질문에 대하여 정 목사님은 자신의 <바른믿음>에 밝혀 토론을 진행하기 바랍니다. 답신은 52일부터 7일까지 5일간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57일까지 답신해 주시길 바라고 기다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정 목사님, 이렇게 불가불 공개적으로 질문을 드리는 것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정 목사님의 사역 위에 주님의 크신 은혜가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201852

 

부족한 사람, 박용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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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음은 김반석 목사가 정이철 목사와 박용규 교수의 글을 보고 다음의 제목으로 2018515일에 그가 운영하는 선지자문서선교회http://www.seonjija.net/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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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언을 성령의 충만이라 하는 자들에게 하다

- 1906아주사가()부흥의 실체

- 방언에 대한 오해

- 21-4성령의 충만함과 방언연구

-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방언을 성령의 충만이라 하는 자들에게 하다

 

(서론)

 

이 글은 방언을 성령의 충만이라 하는 자들에게 고()하는 글이다. 방언을 성령의 충만이라 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많다. 한국교회가 1960대까지만 하더라도 방언파’ ‘신유파’ ‘예언파는 이단 시 되었다. 그런데 1970년대에 신사도운동이 가만히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복음성가와 율동이 자리 잡더니 어느새 방언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여기에는 성경을 잘 모르는 교인들도 있지만 성경을 좀 안다는 목회자들도 있고 성경을 잘 안다는 신학교수들도 있다. 또 여기에는 오순절 계통의 교단뿐만 아니라 개혁주의 계통의 교단에서조차 만연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방언이 성령의 충만인가? 서론에서 간략히 결정을 짓고 본론에서 자세히 논설하려고 한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고전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하셨다. 만일 방언이 성령의 충만이면 어떻게 방언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하셨겠는가? 그러므로 방언은 성령의 충만이 아닌 것이다.

 

2.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전13: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하셨다. 만일 방언이 성령의 충만이면 어떻게 방언이 그친다고 하셨겠는가? 그러므로 방언은 성령의 충만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방언이 무엇인가? 본론에서 성경을 근거해서 논설하고자 한다.

 

(본론)

 

1. 방언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하셨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중에 하나이다.

 

그러면 믿는 자들은 무엇인가?

 

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2:1)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1:3-6)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1:7) 우리가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다.

 

그 안에서 또한 믿어는 무엇인가?

 

그 안에서 또한 믿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자로 사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생기 있는 자로 구속하셨으니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구속하셨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며, 하나님과 화목하는 자로 구속하셨으니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믿는 자들에 대한 증표는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이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은 무엇인가?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14:16-17, 14:26, 15:26)이 임하심과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4:18)이 임하심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임하시는 성령의 충만이다.

 

다음은 보혜사 성령과 주의 성령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보혜사 성령

 

영원토록 함께 거하시는 보혜사 성령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구속을 힘입어 죄 짓지 아니하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영원토록 함께 거하신다.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보혜사 성령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칭의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시는 보혜사 성령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화친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신다.

 

 

 

주의 성령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제사장 직책과 선지자 직책과 왕 직책을 세우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육신의 연약한 자(5:6, 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을 말씀한다.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5:8, 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1:5) 의인이 되게 하는 것을 말씀한다.

 

눌린 자를 자유케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5:10, 8:7)를 영의 생각(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을 말씀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는 것과 주의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 믿는 자들이 받는 성령의 충만이다. 그리고 방언은 이렇게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16:17-18) 중에 하나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임하시는 성령의 충만과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중에 하나가 되는 방언을 구분해야 한다. 이것을 구분하지 않고 방언을 성령의 충만이라고 하면 비성경적으로서 구원진리를 훼방하는 것이 된다.

 

3. 성령으로 말미암아 각종 방언 말함을

 

(고전12:8-11)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하셨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각종 방언 말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과 주의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따르는 방언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방언은 성령의 충만이 아닌 것이다. 성령의 충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과 주의 성령의 임하심이다.

 

4.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고전14: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하였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방언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믿는 자에게 따르는 방언을 너희 모든 사람보다 더 말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과 주의 성령의 임하심이 너희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았다는 것이다.

 

5. 사단의 역사를 따른 표적의 방언

 

(살후2:9-10)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하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아니고 사단의 역사를 따른 표적을 말씀한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과 주의 성령이 임하심에 따르는 표적의 방언이 아닌 것은 사단의 역사를 따른 표적의 방언이다. 그리하여 마24:24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하셨다.

 

그러므로 미국교회사에 있어 1906아주사가() 부흥은 믿는 자들에게 임하시는 성령의 충만인지, 아니면 사단의 역사를 따른 표적인지 면밀히 분석해서 판별해야 한다. 한국교회사에서 있어 1907평양 대부흥은 믿는 자들에게 임하시는 성령의 충만이 있었고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들도 있었다. 1907평양 대부흥은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의 충만을 받는데 중심하였다. 그러나 1906아주사가() 부흥은 이후 예수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에 중심하였다. 그렇기에 표적에 중심하는 방언파와 신유파와 예언파는 그 모체가 1906아주사가() 부흥이다. 그렇기에 10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가 1906아주사가() 부흥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6.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

 

(고전14: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방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혜사 성령과 주의 성령이 임하시는 믿는 자들을 위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방언을 마치 믿는 자들을 위하여 있는 성령의 충만이라고 주장하고 가르치면 안 되는 것이다.

 

7. 오순절날 다른 방언으로 말함

 

(2:1-2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오순절날에 주의 제자들이 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다른 방언으로 말한 것은 무엇인가?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을 각 족속의 다른 방언으로 말한 것이다. 그러면 다른 방언으로 무엇을 말하였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에 대하여 다른 방언으로 말한 것이다.

 

그러면 구약에서 선지자 요엘로 하신 말씀은 신약에서 무엇을 말씀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함께 거하시고(14:16-17) 모든 것을 가르치시며(14:26)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15:26) 하신다는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4:18) 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되는 방언은 선지자 요엘로 하신 말씀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2:4) 것이나, 영으로 기도하는(고전14:14) 방언을 하는 것이나, 이것은 요엘로 하신 말씀에 대한 방언이어야 한다. 그래서 요엘로 하신 말씀에 대한 방언이 아닌 것은 사단의 역사에 따른 거짓 표적의 방언인 것이다.

 

(결론)

 

1: 방언이 성령의 충만인가?

 

: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방언이 성령의 충만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하셨다. 그러므로 방언이 성령의 충만이 아닌 것이다.

 

2: 방언은 무엇인가?

 

: 방언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중에 하나이다. 16:17-18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하셨다.

 

3: 방언의 종류는 몇인가?

 

: 두 종류이다. 하나는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의 방언이며, 또 하나는 사단의 역사에 따르는 표적의 방언이다.

 

4: 믿는 자들은 무엇인가?

 

: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1:7)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1:13)을 받았다. 이것이 믿는 자들이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함께 거하시고(14;16-17)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14:26)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시는(15:26)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4:18) 것이다. 이것이 믿는 자들이다.

 

이렇게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에는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16:17-18)’이다.

 

5: 우리의 구원은 무엇인가?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를 구원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중생의 씻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이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과 주의 성령이 임하심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되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

 

그렇기에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되는 방언은 성령의 충만 즉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 아니므로 우리의 구원이 되지 않는다.

 

6: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은 무엇인가?

 

(고후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11:13-15)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우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우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하는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라 하셨다.

 

그렇기에 방언이 성령의 충만이 아닌데도 성령의 충만이라고 주장하거나 가르치는 것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받게 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방언을 성령의 충만이라 하는 자들은 속히 수정하여 방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중에 하나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의 임하심과 주의 성령이 임하심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 것은 방언은 우리의 구원이 되지 아니하고 믿는 자에게 임하시는 성령의 충만이 우리의 구원이 되기 때문이다.

 

- 2018. 5. 15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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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아주사가()부흥의 실체

 

(서론)

 

1906아주사가() 부흥의 실체는 무엇인가? 1906년 아주사가() 부흥이 성령적인가? 아니면 비성령적인가? 이 실체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을 살펴보는데 사용하는 자료는 다음과 같이 박용규 저 세계 부흥운동사이다.

 

도서명: 세계 부흥운동사 P1006

저 자: 박용규 교수, 현재 총신대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

펴낸곳: 생명의말씀사

펴낸일: 20141125

 

위의 도서 1320세기초 북미와 아시아에 타오른 부흥의 불길> 2. 오순절운동과 1906년 아주사가 부>에는 아주사가() 부흥에 대하여 기술되어 있다. 그래서 아주사가 부흥이 어떤 성격인지를 가름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하여 발췌하였다. 그리하면 1906년 아주사가 부흥이 성령적인지? 아니면 비성령적인지? 분별이 될 것이라 본다.

 

(본론)

 

다음은 세계 부흥운동사에서 아주사가 부흥에 대하여 그 성격을 살펴볼 수 있는 부분에 발췌하고 페이지를 표시하였다.

 

P678.

오순절운동이 하나의 신앙운동으로 형성된 것은 1906년에 일어난 아주사가부흥을 통해서이다. 이것은 이전의 부흥운동이나 당대의 부흥운동과 성격이 달랐다. 이전의 부흥운동이 회개로 특징되는 영적각성이었다면 오순절운동에는 성령의 은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세기 말부터 성령의 은사가 미국의 일각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놀라운 신유, 말을 하는 자가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하는 방언을 포함한 성령 은사의 현시가 미네소타, 북캐롤라이나, 텍사스에서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방언은 오순절운동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P679.

오순절운동은 19세에 감리교 목사로 안수를 받은 찰스 파함(Charles F. Parham, 1873-1929)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P680-681.

파함은 190010월에 캔사스 토페카에 벧엘성경대학이라는 성경학교를 열었다. 이 학교의 유일한 교과서는 성경이었고, 기도가 절대적으로 중시되었으며 학생들이 주말에 예배를 인도했다. 파함은 1900년 하반기 3일간 여행을 떠나면서 학생들에게 성령 세례의 성경적 증거를 연구하도록 과제를 주었는데 연구 결과 그들 모두 방언이 성령 세레의 증거라는 사실에 동의했다. 얼마 후 이곳에 방언을 동반한 성령 세례가 임했다.

 

P682.

파함은 방언이 성령 세례의 성경적 증거라고 믿었다. 파함과 그를 따르는 이들은 은혜의 세 가지 사역, 즉 구원, 성화, 성경 증거가 수반되는 방언을 말하는 성령세례를 성경적 가르침의 핵심으로 삼았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일어난 사건에 대해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은 그곳을 떠났으며, 특별히 한 사람 나긴스(S. J. Riggins)ahems 것이 연극이엇다고 느끼고 떠났다.

 

그 후 1905년 휴스턴에서 송경학교를 열 때까지 파함은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성경학교를 개설하고 얼마 후 훗날 아주사가 부흥운동의 주역 시무어(William Joseph Seymour)도 그 곳에 와서 공부했다.

 

모든 교회사가들이 동의하는 것처럼 오순절운동이 절정에 달한 것은 1906년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아주사가()부흥에서였다.

 

P683.

수천 명의 개개인들이 아주사가 선교회 부흥에 참여하가 위해 모여들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다. 아주사가 부흥은 20세기 교회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오늘날 오순절 신앙인들과 은사주의 신앙인들이 영적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들의 영적 유산과 발전을 아주사가 부흥에서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P684.

아주사가 부흥의 포문을 연 사람은 월리엄 죠셉 시무어였다. 그는 1870년 루지아나의 센트빌에서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한경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다. 어린 시절 천주교와 침레교 전통의 영향 속에 성장한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여행을 하면서였다. 그는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회심해서 감리교에 합류하였고, 몇 년 후 그는 오하이오 신티내티에서 다른 성결교 단체와 교류하는 동안 완전한 성화를 경험하였다. 그는 심한 천연두를 앓고 한쪽 눈을 실명하고 얼굴이 기형이 되었다.

 

1903년 하나님의 교회 목사로 안수 받은 시무어는 2년 후 1905년 친척들을 찾아서 텍사스 휴스턴을 여행했다. 그는 유명한 노예해방론자 프레드릭 더글라스(1818-1895)의 조카요 전 노예였던 루시 화로우(1851-)가 목회하는 흑인 성결교회를 출석했다. 화로우가 파함을 돕기 위해 캔사스 시로 떠난 후 시무어는 그 대신 휴스턴 성결교회 임시 목사가 되었다. 1905년 늦은 가울 화로우는 휴스턴으로 돌아와 방언을 수반한 성령세례를 경험했다고 간증했다.

 

화로우가 돌아온 후 시무어는 자신의 목양지를 옮기고 더욱 더 성령 세례를 간절히 사모했다. 자연히 시무어는 파함이 인도하는 집회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P685-687.

파함이 캔사스 브라이언 홀(Bryam Hall)에서 예배를 드리고 확신, 회개, 성화, 신유, 성령의 다른 역사, 예언, 그리고 계시록을 가르칠 때 시무어는 파함의 예배와 훈련반에 신실하게 참석했다.

 

시무어를 로스앤젤레스에 소개한 사람은 줄리아 허친슨이 목회하는 LA 한 작은 성결교에 출석하는 닐리 테리라는 여성이었다. 그는 1905년 텍사스 휴스턴에 여행을 왔다 시무어가 목회하는 교회에 출석하면서 시무어의 성품과 설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당시 시무어는 방언이 수반된 성령세례를 체험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성경적이며, 성령의 은사 방언을 간절히 사모하라고 교우들에게 도전했다. 테라는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그녀가 출석하는 교회에 시무어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그들이 그를 초청해 시무어의 로스엔젤레스 방문이 성사되었다.

 

1906222일 로스엔젤레스에 도착한 시무어는 나사렛 선교회를 창설한 쥴리아 헛친스가 목회하는 성결교회에서 중생, 성화, 신유 그리고 방언이 수반되는 성령세례를 설교하였다. 특별히 사도행전 24절에 근거하여 방언이 성령세례의 명확하고 가시적안 유일한 증거라고 가르쳤다. 이미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확신하는 성결교 교인들은 이같은 시무어의 가르침에 당황했다. 헛친스는 시무어의 가르침을 거부했고 그가 그곳에서 설교할 수 없도록 교회 문을 잠가버렸다. 교회 당회도 시무어의 가르침을 거부했다.

 

하지만 시무어는 박해 속에서도 계속해서 메시지를 외쳤다.

 

북 보니 브래가 한 작은 거실과 현관에서 시작한 기도회는 190649일 오순절 성령을 겨험하면서 놀라운 반향을 일으켰다. 시무어가 시도행전 24절 본문을 가지고 설교한 후 참석자들은 찬양하고 기도하고 간증을 했다. 이 날 애드워드 리(Edward Lee)가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412일 월리엄 시무어는 철야기도를 드리고 새벽 4시에 드디어 성령세례를 받았다. 한 증언자 엠마 코튼(1877-1952)은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그들은 3일 밤낮을 부르짖었다. 사람들은 사방에서 왔다.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그들은 권능으로 고꾸라졌고, 전 도시가 진동했다. 그들은 그 집의 기초가 사라질 때까지 그곳에서 부르짖었지만 아무도 해를 입지는 않았다. 이 삼일 동안 많은 사람들, 심지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지 보러 온 많은 사람들조차 성령을 받았다. 병든자들이 고침을 받았다. 죄인들이 집회 현장에 들어오면서 구원을 받았다.

 

P689-690.

아주사 부흥은 오순절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오순절운동은 오늘날처럼 수많은 나라로 확산되어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발전하지 못햇을 것이다.

 

로스엔젤레스에 성령의 부으심 이후 시무어가 인도하는 기도회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예배 처소인 노스 보니 부래가 애즈베리 집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바람에 정원에서 모임을 가져야 했고, 다시 312번지 아주사가()에 있는 한때 감리교회로 사용하던 창고로 옮겨야 할만큼 모임의 규모가 커졌다. 이 건물은 본래 아프리카 미국인 감리교회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건물이 워낙 낙후되어 수리가 힘들어 헛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 건물을 확보하고 예배당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청소했다.

 

며칠 후 로스엔젤레스 신문이 아주사가 선교회에서 수행하는 부흥회를 알고 이를 보도하면서 아주사가 부흥은 미() 전역과 전 세계에 알려졌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아주사가 부흥운동 소식을 접했고 모임에 참석하기를 원했다. 남녀, 어린이, 흑인과 백인, 히스페닉, 아시아인,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 모두가 함께 와서 예배를 드렸다. 19069월 한 지역신문 기자는 아주사가 선교회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아주사가 선교회 회중은 인종들이 수치스럽게 혼합해 있다. ,,,그들은 온 종일 밤이 맞도록 부르짖고 울부짖었다. 그들은 달리고 뛰고 흔들고 목청껏 소리치고 빙빙돌고, 마루바닥에 쓰러지고 바닥을 차고 굴렀다. 그들 중 몇 사람은 의식을 잃고 마치 죽은 사람들처럼 여러 시간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들 사람들은 미쳤거나 정신적으로 실성하거나 주문에 묶여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나무로 된 우유통 사이에서 자신의 머리를 무릎 속에 집어넣고 상당한 시간을 기도하며 보내는 외눈의 무식한 흑인을 설교자로 모시고 있었다.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종종 회개하라고 촉구하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는 회개를 촉구하는 일을 앞에서도 죽 해온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반복해서 같은 찬송 성령이 오셨네를 불렀다.

 

몇 사람은 반대했지만 하나님의 성령의 강은 로스엔젤레스에 놀랍게 흘러 넘쳤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기도에 응답하셨다. 수 개월 안에 사도적 선교회(the Apostolic Faith Mission)로 알려진 아주사가 선교회는 1,300명이 출석하는 그 도시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었고, 부흥의 열기는 3년 동안 계속되었다.

 

P693.

시무어는 방언의 은사를 성령 세례의 성경적 증거로 확신했고, 방언의 은사를 전 세계 구원 받지 못한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파히시려는 언어적 은사,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했다.

 

시카코 노스 애브뉴 선교교회 목사 월리엄 더함이 아주사가 부흥운동의 현장을 방문하여 190732일 방언을 체험하고 돌아가 동일한 메시지를 그곳에서도 전하기 시작했다. 더함 뿐 아니라 후에 오순절교회(Assembly of God) 지도자가 된 유도러스 벨(1866-1923)과 위니펙의 부동산 업자 앤드류 아그(1868-1959)도 방언을 체험했다. 벨른 19144월 알칸사스 핫 스프링스에서 가진 오순절교회 교단 결성 때 지도자로 선출되었던 인물이었다.

 

P706.

이리하여 190649일 시작된 아주사가 부흥은 전광석과 같이 주변으로, 다시 미전역으로, 그리고 미국을 넘어 유럽과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전역으로 놀랍게 확산되었다. 빈손 사이넌이 적절히 표현한 것처럼 지속적인 증거로 오순절운동은 1910년까지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그리고 북미와 남미로 번져나갔다. 오순절운동은 20세기에 급속한 성장을 이룩해 1960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1천만 명의 교세를 지니고 있었다. 그 중 230만 명은 미국에, 70만 명은 칠레에, 그리고 80만 명이 브라질에 있었다. 한국에도 1960년대 이후 조용기 목사를 통해 오순절교회가 급속히 성장해 교세에 있어서 오랜 역사를 지닌 주류교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결론)

 

위에서 아주사가 부흥에 대하여 대략 살펴보았다. 아주사가 부흥의 실체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방언을 성령 세례라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아주사가 부흥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1. 방언이 성령세례인가?

 

방언이 성령세례인가? 아니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방언은 무엇이라 하는가?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성경에서는 방언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아주사가 부흥이 방언을 성령세례라 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그러면 성령세례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1:7)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1:13) 것이다. 그러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함께 거하시고(14:16-17),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14:26),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시는(15:26)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4:18) 것이다. 이것이 성령세례이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는 방언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성령의 충만이라 하는 자들에게 고()하다의 글을 아래에 첨부하니 방언은 무엇이며 또 성령의 충만(성령세례)은 무엇인지 살펴서 정확하고 명확하게 정관을 가지기를 바란다.

 

2. 아주사가 부흥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무엇인가?

 

세계 부흥운동사 P690에는 다음의 글이 있다.

 

아주사가 선교회 회중은 인종들이 수치스럽게 혼합해 있다. ,,,그들은 온 종일 밤이 맞도록 부르짖고 울부짖었다. 그들은 달리고 뛰고 흔들고 목청껏 소리치고 빙빙돌고, 마루바닥에 쓰러지고 바닥을 차고 굴렀다. 그들 중 몇 사람은 의식을 잃고 마치 죽은 사람들처럼 여러 시간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들 사람들은 미쳤거나 정신적으로 실성하거나 주문에 묶여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나무로 된 우유통 사이에서 자신의 머리를 무릎 속에 집어넣고 상당한 시간을 기도하며 보내는 외눈의 무식한 흑인을 설교자로 모시고 있었다.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종종 회개하라고 촉구하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는 회개를 촉구하는 일을 앞에서도 죽 해온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반복해서 같은 찬송 성령이 오셨네를 불렀다.

 

위에서 보는 아주사가 부흥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2,000년대 지금 신사도운동(피터 와그너)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흡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사가 부흥의 실체는 첫째로, 방언을 성령세례라 하기 때문에 비성경적이다. 비성경적이면 비성령적이다. 둘째로, 아주사가 부흥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우리 정통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신사도운동과 흡사하다. 그러므로 아주사가 부흥은 비성경적이며 비성령적이라 할 수 있다.

 

- 2018. 5. 16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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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에 대한 오해

 

믿는 우리들이 방언에 대한 오해가 많다. 그래서 방언을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으로 여긴다. 즉 방언을 성령세례로 여긴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행2:1-4을 갖다 댄다.

 

(2:1-4)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러니까 방언을 성령의 충만 즉 성령세례로 여기는 것은 오순절날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방언하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이 맞는가? 이렇게 방언하는 것이 성령세례가 맞는가? 그런데 성경에서는 방언을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라 하셨다.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믿는 자들에게는 저희가 내 이름으로 이런 표적이 따른다고 하셨으니 다음과 같다.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는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르는데 방언은 그 표적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믿는 자들에게 위에 언급한 여러 가지 표적이 따르는데 다른 표적은 두고서 왜 하필 방언에 대해서만 성령의 충만 즉 성령세례라고 여기는가? 그것은 행4:1-4의 오순절날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방언은 성령의 충만 즉 성령세례가 아닌 것이다. 방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성령 즉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과 주의 성령이 임하심에 따르는 표적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2:1-4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성령 즉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함께 거하시고(14:16-17)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14:26)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시는(15:26)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4:18)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이라 하거나 방언을 성령세례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은 방언은 성령의 충만 즉 성령세례 받은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 2018. 5. 17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 e06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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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성령의 충만함과 방언연구

 

본문: (2:1-4)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서론)

 

오순절날 주의 제자들이 다 한 곳에 모였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니라하셨다.

 

그러면 이 말씀에서 성령의 충만은 무엇이며, 그리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한 그 방언은 무엇인가?

 

(본론)

 

1장 성령의 충만

 

1.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2:1)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1:3-6)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2. 믿는 자들에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이렇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이다.

 

1) 그 안에서 또한 믿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자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생기 있는 자로 구속하셨으니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구속하셨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며, 하나님과 화목하는 자로 구속하셨으니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믿음으로 산 증표는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이 무엇이기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이 되는가?

 

2)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14:16-17, 14:26, 15:26)이 임하시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4:18)이 임하시는 것이다.

 

 

보혜사 성령

 

영원토록 함께 거하시는 보혜사 성령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구속을 힘입어 죄 짓지 아니하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영원토록 함께 거하신다.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보혜사 성령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칭의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시는 보혜사 성령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화친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신다.

 

 

 

주의 성령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제사장 직책과 선지자 직책과 왕 직책을 세우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육신의 연약한 자(5:6, 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을 말씀한다.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5:8, 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1:5) 의인이 되게 하는 것을 말씀한다.

 

눌린 자를 자유케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5:10, 8:7)를 영의 생각(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을 말씀한다.

 

 

 

2장 방언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하셨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믿는 자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위의 1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과 주의 성령이 임하심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라는 것은 믿는 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과 주의 성령이 임하심에 따르는 표적이라는 말씀이다.

 

1. 믿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주의 성령이 임하심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보혜사 성령이 함께 거하시며

보혜사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시며

보혜사 성령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신다.

 

주의 성령이 기름을 부으시고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시며

주의 성령이 기름을 부으시고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시며

주의 성령이 기름을 부으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신다.

 

2. 따르는 표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고 주의 성령이 임하신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표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이 있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적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그 자체는 아니다. 믿는 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나타내 보이는 것이 표적이다.

 

이것을 대조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 보혜사 성령이 함께 거하시며> :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 보혜사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시며> : 새 방언을 말하며

- 보혜사 성령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신다.> : 뱀을 집으며

 

- 주의 성령이 기름을 부으시고 포로된 자를 자유케, 눈먼 자를 다시 보게,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신다. > :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4. 거짓 선지자들의 표적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하셨다. 그러므로 이단이 되는 은사주의 신사도운동(피터 와그너)은 믿는 자들에 따르는 표적으로 말미암은 방언이나 병 고침 등이 아니고, 방언이나 병 고침을 받는 것 등이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이며 성령세례라 하기 때문에 저들은 거짓 선지자들이 되는 것이다.

 

(살후2:9-10)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게 따르는 표적이 아닌 표적은 사단의 역사를 따른 표적이라는 말씀이다.

 

(결론)

 

1: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은 무엇인가?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이다. 곧 믿는 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과 주의 성령이 임하심이다. 이것이 성령 세례 즉 성령의 새롭게 하심(3:5)을 받은 것이다.

 

2: 방언은 무엇인가?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중에 하나이다. 표적에는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는 것이다. 표적은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이 있음을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여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3: 거짓 선지자의 표적은 무엇인가?

 

: 거짓 선지자들이 방언하는 것, 병 고치는 것, 예언하는 것 등이다. 그러면 거짓 선지자들의 표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함 즉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는 것과 주의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없이 방언하는 것, 병 고치는 것, 예언하는 것 등의 표적을 마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이라 하거나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라 하는 것이다.

 

- 2018. 5. 17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 e06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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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본문: (고전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서론)

 

1. 방언에 대하여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하셨다.

 

우리 교회가 예전에는 방언파 즉 방언하는 자들을 배척하였다. 그랬는데 1980년대에 이단 신사도운동이 들어오고 부터는 방언하는 것이 마치 성령 충만처럼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인가?

 

2. 예언에 대하여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하셨다.

 

사이비교 신천지는 저들의 교주 이만희가 예언하는 능이 있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하셨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인가?

 

3. 구제에 대하여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하셨다.

 

최근에 들어서 사이비교 신천지는 저들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하여 봉사활동과 구제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기성교회 조차도 이웃에 구제를 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 줄로 잘못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하셨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인가?

 

(본론)

 

1. 하나님의 사랑

 

(요일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화목제로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심은 무엇인가?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2:1)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1:3-6)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2.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

 

(요일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신다고 하셨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는 무엇이며,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는 무엇이며, 그리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는 무엇인가?

 

1)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그 안에서(1:7)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은 것이다.

 

2)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4:18)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주의 성령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제사장 직책과 선지자 직책과 왕 직책을 세우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육신의 연약한 자(5:6, 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을 말씀한다.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5:8, 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1:5) 의인이 되게 하는 것을 말씀한다.

 

눌린 자를 자유케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5:10, 8:7)를 영의 생각(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을 말씀한다.

 

 

3)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함께 거하시고(14:16-17),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14:26),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15:26)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보혜사 성령

 

영원토록 함께 거하시는 보혜사 성령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구속을 힘입어 죄 짓지 아니하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영원토록 함께 거하신다.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보혜사 성령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칭의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시는 보혜사 성령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화친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신다.

 

 

(결론)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어떻게 되는가?

: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어떻게 되는가?

: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다.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

 

4: ‘사랑이 무엇인가?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신다.

 

- 2018. 5. 3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