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2 15:46
■ CCM ‘성령이 오셨네’ 비성경적 엉터리 가사에 대한 논평
‘CCM’은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현대 기독교 음악)을 말한다.
1. 다음의 □ 안에 가사는 요즘 교계에서 인기 있는 CCM인 것 같다.
성령이 오셨네 허무한 시절 지날 때 깊은 한 숨 내쉴 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하는 분 있네 고아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억눌린 자 갇힌 자 자유함이 없는 자 피난처가 되시는 성령님 계시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참 자유가 있다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
2. 위의 CCM 내용 중에서 붉은색 글이 비성경적 가사 부분이다.
-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오셔서’에서 ‘우리 인생’은 비성경적이다.
그런 것은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임하시기 때문이다.
-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에서 ‘꿈꾸게’는 비성경적이다.
그런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3.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임하신다
➊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7)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엡1:13). 이것은 곧 ➋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영원토록 함께 계시고(요14:16-17),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게 하시는(요15:26-27) 것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눅4ㅣ18) 것이다.
4.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다
눅17:20-21에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다(눅17:20-21). 이것은 곧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으니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다(요일5:10-11).
5. 마귀 곧 사단이 좋아하는 비성경적 엉터리 가사
마귀는 거짓말쟁이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사단은 온 천하를 꾀는 자이다.
(계12:9)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1) ‘성령이 오셨네’ 하면서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하는 것은 마귀 곧 사단이 좋아하는 비성경적 엉터리 가사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두리뭉실하게 우리 인생 가운데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임하시기 때문이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 곧 구속을 받은 우리가 ❶새 사람으로 죄짓지 아니하는 자로 사는 것과 ❷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사는 것과 ❸영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화목(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2) ‘성령이 오셨네’ 하면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는 마귀 곧 사단이 좋아하는 비성경적 엉터리 가사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성령 곧 보혜사와 주의 성령의 임하심이 곧 하나님의 성전 된 자(고전3:16)로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계21:1-2)에는 성전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계21:22)이기 때문이다.
6. 그러므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요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고전1:22-24)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참고)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현대 기독교 음악)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일어나기 시작해 1970년대 이후 세계로 확산된 기독교 음악 또는 그러한 음악 운동을 통틀어 일컫는다. 가사에 기독교 믿음을 직간접적으로 담고 있는 현대 대중음악의 한 장르. 찬송가와 혼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찬송가는 예배에 사용되는 전례용 음악이고, CCM은 전례에 사용하지 않고,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대중음악이다. 더 확실하게 정의하자면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진 국내.외 대중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빌보드지는 크리스천 앨범/크리스천 송으로 분류하며, 그리고 라디오 앤드 레코드 지는 크리스천 AC(Adult Contemporary; 성인 현대곡), 크리스천 CHR(Contemporary Hit Radio: 현대곡 히트 라디오), 크리스천 록, 영감적인 곡(INSPO, Inspirational)으로 분류, iTunes 스토어, Spotify는 크리스천과 가스펠(Christian & Gospel) 장르로 분류한다.
한국에서는 역사가 길지 않고 시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아직 명확한 정의가 없다. 이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CCM과 '찬양'을 혼용한다. 대중음악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내용으로 기독교(주로 개신교 계열)의 정신을 담아내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기독교 음악[1]으로 CCM을 정의한다. 일부 사람들은 CCM을 '현대의 찬송가'라는 좁은 의미로만 이해하나, 음악적으로 찬송가와 CCM은 장르 자체가 다르다. 찬송가는 바흐 코랄 등을 통해 만들어진 전통적인 화성의 교회 음악이나 유럽의 전통 민요 가락을 근간에 둔다. 19-20세기의 미국의 복음 성가들도 대부분 전통 화성에 맞게 편곡된 것들이라 CCM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한국에서는, 특히 한국 천주교에서는 개신교의 것만 CCM이라고 표현하는 경향도 있다. 가령 가톨릭 생활성가 중에서도 조금만 구성이 현란하고 빠른 곡이 있으면 "아 이건 CCM스럽네. 우리가 쓰긴 좀..." 정도의 말이 나온다.[2] 분명 용어의 원뜻에는 개신교만 지칭하는 의미가 없으나, 마치 '기독교'가 일부에서 개신교와 동의어처럼 쓰이듯 CCM이라는 용어에도 그런 경향이 있다. 이런 인식이 가톨릭 계열 CCM의 대중화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복음성가와 생활성가. 모두 CCM으로 퉁치는 경향이 있다. (자료: 나무위키)
- 2025. 09. 12∥목사 김반석
- 선지자문서선교회∥http://www.seonjij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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