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 백영희목사님의 그 觀
선지자선교회
■ 백영희목사님의 '경제면' 觀

(1985년 3월 8일 지권찰회)

1. 물질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이것이 제일 초보

그러기에, 우리 신앙 생활의 제일 초급 일 학년 생활이 이 물질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이것이 제일 초보입니다. 물질관계라는 것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주고받는 그 여수與受 관계를 똑똑히 할 것이고,

또 자기가 무슨 일을 할지라도 반드시 그 일에는 대가가 있는 것이니까 일과 그 대가를 똑똑히 계산해서 자기가 일을 많이 하고 삯을 적게 받았다면 그것은 아무 병폐가 없고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계산해서 주시기 때문에 실수할 일이 없지만, 일은 적게 하고 그 대가를 많이 받을라 하는 데에서 사고들이 생깁니다. 그런 것을 바로 해야 되고, 또 일을 시키는 사람도 일은 시키고 일의 대가를 적게 줄라고 애를 쓰는 그런 것이 일반 행위인데 그런 것부터 바로 하지 안 하면 구원 생활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물질에 대해서 제일 초보로 조심을 해 가지고 물질 취급이나 물질 관계 이런 것을 바로 하도록 애를 쓰는 것이 아주 자기 구원을 이루는 데에 제일 쉬운 첩경이 되겠습니다.

2. 여수 분명 시장부라

안 믿는 사람들도 그런 말 있습니다. '여수 분명 시장부라' 주고받는 것이 분명해야 장부라고 할 수 있다. 장부라 말은 요새 말로 말하면 신사란 말입니다. 인격자라는 말입니다. 주고받는 것이 분명해야 그는 인격자다 그렇게들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이 경제면에 있어서 품 드는 것도 그저 수고의 일보다 그 대가를 많이 받을라고 하는 그것을 가지면 구원이 시작이 안 됩니다. 자기가 수고보다 대가를 적게 받을지언정 더 받지는 않겠다 하는 이것을 가져야 되고,

자기가 또 남을 수고를 시킬 때에는 내가 수고를 시켰으니까 차라리 좀 더 줬으면 더 줬지 덜 주지는 않겠다 하는 이것을 가지는 것이 불의의 재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일이 됩니다.

또 서로 주고받는데 있어서 내가 주는 것도 정확하게 주고받는 것도 정확히 하는 것이 좋은데, 주고받는 일에 있어서 내가 혹 잘못해 가지고 떼이기는 떼일지언정 남의 것을 주지 안하고 손해 보이지는 않겠다, 남의 것을 떼먹지는 않겠다. 또 내가 받을 것은 받지 못할지라도 줄 거는 철저하게 청산을 해서 하나도 그 미진한 것이 없게 하겠다. 이런 것이 다 불의의 재물에 충성하는 일이 됩니다.

3. 양식은 먹고 씨는 꼭 심어야 되는데

또 충성하는 일은 어떤 일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씨와 양식을 주는데 양식은 먹고 씨는 꼭 심어야 되는데 잘못하면 그만 심는 것은 내놓는 거니까 양식은 자기가 먹는 것이지만 심는 것은 내놓는 것이니까 그 일을 인색한 마음 가지고 씨는 심고 양식은 먹는 이것을 구별하지 못해 가지고 또 경제면에 부정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되겠고,

4. 사람마다 각각 자기의 분수가

또 경제 생활에 있어서 사람마다 각각 자기의 분수가 있는 것입니다. 밥을 먹어야 될 분수도 있고, 고기를 먹어야 될 분수도 있고, 각자들의 그 정확한 분수가 있으니까 자기의 분수를 넘지 아니하고 너무 지나치게 세상 물건을 쓰게 되면 반드시 그 뒤는 복음을 가리게 되고 자기 구원도 절단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분수를 정확히 맞춰서 분수에 알 맞는 그런 경제 생활하고 다 허영과 허욕이라는 그런 것을 다 제해서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만 자기 분수를 생각지 안하고, 그 안 믿는 사람들의 말로는 한량이라 그랍니다. 한량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 분수 이상으로 경제 활용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이 그 말이 나는 무슨 말인지 아이들 말로 참 그 사람 기마이 좋다(기분을 잘 살려준다) 또 좀 잘못한 말하면 욕하는 말로서 아주 기분파다 그렇게들 말하는데, 자기 처지를 모르고 분수를 넘어서 자기가 모든 경제관계를 그렇게 하면 그 뒤에 그것으로서 큰 낭파가 일어나 가지고 복음을 가리게 됩니다.

5. 그 경제면에 있어서 물질면에 있어서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신앙 생황을 시작해야 하는데 작은 데서부터 신앙 생활 시작하는 것이 물론 사소한 일에서부터 신앙 생활하는 것도 작은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그 경제면에 있어서 물질면에 있어서 정확무오하게 그렇게 할라고 애를 써서 주고받는 거, 또 자기가 보관을 시키고 보관을 하는 것, 빌려주고 빌려 받는 것, 자기가 모든 생활하는 그 경제 생활, 심지어 연보 같은 그런 것도 자기 분수를 알아서 하는 것이 그 실수가 없습니다.

6. 권찰직을 가지고 모든 식구들을 통치하는 직책을 맡았는데

그래서 우리는 이 권찰직을 가지고 모든 식구들을 통치하는 직책을 맡았는데, 여러분들이 자기 맡은 식구에 대해서 그 경제 생활을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경제 생활이 혹 분수를 자기 분수를 지켜야 하고 주고받는 것이 정확해야 되고, 또 허영이나 허욕 그런 것이 없어야 되지 그런 것이 있으면 결국은 복음을 가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욕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7. 미진한 것이 있으면 다 톨톨 털어서

그런고로 늘 말했지만 계(契)하는 그런 것을 다 정리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여수거래 한 것이 미진한 것이 있으면 다 톨톨 털어서 그것을 다 있는 대로 정리를 하고 만일 그 채권자가 방 한 칸이라도 주면 방 한 칸이라도 가지고 그래 안하면 그거 다 정리를 하고, 그래 가지고 아주 그 경제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네 처지로서는 결백하게 하고 참 그 경제면으로 나를 위해서 충성한다 그렇게 하나님이 보실 수 있도록 그런 면을 잘 그렇게 정리 정돈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줘서 모든 일이 잘되게 됩니다.

8. 인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축복이 오도록 노력해야

이래서 우리는 인간끼리 수지 계산만 맞추지 말고 또 인간끼리 과학의 물리의 이치에서 이치에 맞춰서만 하지말고 인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축복이 오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축복이 오면 모든 일이 다 잘 해결됩니다. 그러기에 어쩌든지 지난번에 성찬 먹을 때에 자기들로서 모두 가책되는 일들이 있었을 거고 또 작정한 일들도 있었을 터이니까 그 일을 에누리하지 말고 그대로 똑 정리를 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오도록 그렇게 해야 될 것입니다.

9) 그저 자기의 분수에 맞도록

오늘은 특별히 우리 맡은 식구들의 경제 생활을 잘 살펴서 그 사람이 자기 분수에 넘는 경제 생활을 하고 있으면 반드시 뒤에는 도적이 되고야 맙니다. 그러기에 그저 자기의 분수에 맞도록 죽을 먹으면 죽 먹을 것 같으면 죽을 먹어야 되지 죽 먹는 사람이 밥 한 끼만 외에 것 먹어도 그만치 자기는 실패가 됩니다. 밥 한끼, 죽 먹는 거 밥 한끼 먹을라 하면 그 쌀 좀 더 들어가는 것 얼마 아닌 것 같지만 그렇게 경제 생활을 조금 늘어트리면 마지막에 결론에 가 가지고는 경제 생활이 배가 될 수 있고 또 결손이 없던 것이 결손이 날 수 있습니다.

10. 이 사람이 경제 생활 어떻게 하나?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그 믿음의 식구들을 살펴보면서 이 사람이 경제 생활 어떻게 하나? 경제 생활을 너무 인색하게 해서 하나님이 씨와 양식을 주는데 그만 욕심이 씨까지 다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은 허비하는 일은 없지만 씨까지 그걸 다 제 곡간 안에 넣어 놓고 제가 다 먹어서 없앨라고 하는 그런 씨를 심지 안 하는 그것도 그게 다망할 짓이고, 또 씨는 심는다 할지라도 자기 먹을 양식도 또 먹지 안하고 그것도 지나치게 아낀다고 하면 그것도 나중에 신체적으로 망할 그런 일입니다. 그러기에 경제 생활 여러분들이 맡은 식구들이 다 바로 하도록 그것을 지도하는 것이 아주 대단히 신앙 초보요 유리하고 또 지름길을 가는 일이 됩니다.

11. 평신도로서 신앙 생활을 흠 없이 잘한 사람이라면

그러기에 권찰도 그렇고 교역자도 그렇습니다. 무슨 설교 잘하는 것이 교역자가 아니고 어쩌든지 평신도로서 신앙 생활을 흠 없이 잘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교역자 될 수 있습니다. 교역자라는 것이 자기와 같이 평신도로 신앙 생활 잘하도록 그렇게 가르치면 그 사람이 일등 목회자요, 또 그렇게 기름을 받은 교인은 일등 교인입니다.

12. 그 구역장 따라서 그 식구들이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여기 대해서 벌로 해서 무엇이 어떤 것인지 정확성을 모르고 이래 하는 그런 사람이 되면 자기에게 지도 받는 사람에게 대해서도 그렇게 하게 되기 때문에 대게 제가 보면 그 구역장 따라서 그 식구들이 됩니다. 구역장이 너무 인색해 가지고 아주 참 너무 경제면으로 인색해서 하나님이 정한 법칙 어겨서 너무 지나치게 인색한 그런 구역장 밑에는 또 그런 교인이 납니다. 그런 교인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보이는 그런 일은 좀 적지만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받지 못하니까 그것도 헛일입니다.

또 어떤 분은 너무 활수로 사는 그런 권찰도 있습니다. 또 활수의 생활하면 예를 들어서 하루 한 백 원 써야 될 사람이 백 십 원이나 백 오 원이나 써 버린다고 하면 그런 것 본뜨고 나중에 그 식구들이 또 그렇게 돼 버립니다. 이러니까 그것도 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경제 생활을 바로 할라고 애를 쓰고 자기가 경제 생활을 바로 해야 경제 생활을 바로 하는 교인들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됩니다.

그러기에 경제면을 가지고 자기가 맡은 식구에게 대해서 좀 잘 살펴서 이런 일을 자기의 혼자 해결을 못할 때에는 원 구역장에게 말하고 원 구역장에게 가서도 해결을 못할 때에는 또 저한테도 말하면 제가 또 말해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모든 문제를 해결 지을 때에 인간 이치로만 따져서 인간 이치로 해 가지고는 안 되겠는데, 또 과학적으로 해도 이거 틀리는데 이래 가지고 이 일 했다가는 큰 일 나겠는데, 성경 말씀대로 산다고 이러다가는 큰일나겠는데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13.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그것을 과학적으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합리적으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니까, 회개하는 것은, 회개를 하면 큰 낭파 당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지만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을 보고 회개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회개한 자에게는 축복을 줘 가지고 그 일이 잘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이치로나 그런 과학으로는 회개하면 망할 것 같아도 인간뿐이라면 그것으로 실패하지만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니까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니 그 일이 잘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셔서 축복 할 수 있는 길로만 가면 경제도 성공이요 인간도 성공이요 모든 만사가 다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경제면을 잘해서 다노모시(계돈놀이)나 또 그 사람들이 너무 통이 커서 지나치게 소비하는 그런 것도 말을 해 줘야 됩니다. 내버려두면 얼마 안 가서 절단 나 버립니다. 여기 시골 살림살이는 여간 잘못해도 몇 해 나갑니다. 그거는 다 부동산적이요 이러기 때문에 흥망이 그렇게 속히 표나지 안 하지만 도시 생활은 조금만 그게 잘못되면 그저 한 이삼 년 안에 다 절단 나 버립니다. 그것을 또 잘하면 이삼 년이면 그 효력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경제면을 여러분들이 잘 살펴서 그것을 조정해 주시고 만일 그게 잘 안 될 때에는 원 구역장이나 저에게나 물어 가지고 그것을 하는데 회개할 때에는 이 회개하면 인간 방법과 이치로 이라면 수지가 맞겠나 이러면 유지가 되겠나 그게 아니오,

하나님의 축복으로, 회개하는 데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는 것이지 그 일 가지고 잘해 가지고 되는 거 아니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봄으로 지체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깨끗이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추도식' 觀

(1988. 11. 19. 토 새벽)

1. 추도식

기독교는 제사지내는 일이 없다 해 가지고 제사지내는 일 없이 예수 믿으면 의례히 제사 안 지낼 줄 알고 이렇게 했는데, 그 후에 신사참배라는 이 문제가 지나가고 난 다음부터. 제사의 그 형식만 달랐지 제사지내는 일이 있어서 그것을 가리켜서 추도식이라 이래 가지고 모두 하고 있습니다.

2. 손양원 목사님 추도식

추도식을 하는데, 제가 고려신학교 다닐 때에 그때에 손양원 목사님의 추도식이 그 신학교에서 있었습니다. 신학교서 손양원 목사님 추도식을 하는데 저는 그 추도식에 참여치 않고 거기서 그것을 반대를 했으나 그렇게 뭐 언권도 없고 이러니까 반대를 해서 그 추도식에 참여 안 했고 모든 사람들은 추도식에 다 참여했습니다. 아마 그 전기를 읽어보면 그 전기에 그 추도식 한 것이 기록돼 나왔을 것입니다. 저는 읽어보지 않았지마는. 뭐라 했노? 사랑의 원자탄이가? 녜, 거기 보면 있을 것입니다.

또 거창에서도 주남선 목사님 별세하신  뒤에 일 년이 지나고 나서 추도식이 있어서 그 추도식을 한다고 그때에 많은 음식을 장만하고 아주 참 크게 그렇게 모두 힘을 들여서 했습니다. 그때 000남영환 목사님이 교회에 목사로 시무하고 계실 때입니다.

그때에 저는 부산에 와서 있었는데 그때 마침 가 가지고, 그때 여기 000조수옥씨니, 또 인애원의 원장. 또 거기 주 목사님 큰딸 000주인순 지금 권사들입니다. 다 그분들이 있었는데 그때는 제 말을 그때도 고신에 있을 때는 잘 인정하고 신임 있게 들었습니다.

3. 꼭 별세한 그 날에 하는 것은 그거 제사 행위가 되고

그래 남(영환) 목사님은 주선을 해 가지고 추도식 하자고 음식을 많이 마련했고 저는 그걸 반대를 하고 이래서 그분들이 나중에 따라 나오며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내가 부산 오며 이러니까, 말해서 '이것은 이리되면 나중에 제사가 되고 만다. 이러기 때문에 제사 지낸 거와 꼭 같은 것이지 성경에 죽은 자를 기념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러면 안 된다.' '그러면 어째야 되겠습니까?'

이것은 지금 미리 벌써 한 삼사 일 전부터 음식을 하고 이래서 온 사람들 지금 날이 들어 날 잔치할려고 지금 동리가 다 알게 그렇게 '저런다' 이랬는데, 그래 그것을 말하기를 '그러면 지금 날짜는 아직까지 한 이틀 남았으니까 지금 가서 막 그걸 사람들에게 퍼 줘서 다 먹이고 이렇게 수고했다고 이렇게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날짜를 지낸지. 한 사날, 한 삼사 일 지나고 난 뒤에 잔치를 하는 것은 좋지마는 꼭 별세한 그 날에 하는 것은 그거 제사 행위가 되고 그거는 안 된다.

그 날을 떠나서 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기를 대접하는 거로 알지마는 그 날에 하면 제사로 인식해서 이거는 재미가 없다.' 이래서 그때에 그 음식을 빨리 나누고 추도식을 하지를 않았습니다. 저 (김봉선)씨 압니까? 봉산 있었지. (서봉월)집사님 압니까? 이런 분들 다 몰라요. 그때 아무 생각이 없이 이러기 때문에 그리 돼도 그거 거기서 관심 없이 하기 때문에 몰라요. 그것 때문에 시비가 많았습니다.

4. 주남선목사님 추도식을 못 하고

저는 거기서 여기 부산, 그때에 서부교회 왔을 때입니다. 서부교회 왔을 때인가 내가 신학교 다닐 때인가 모르겠습니다. 이랬는데 나오고 난 다음에 거창읍에 그 교역자들이 모여 가지고 000남영환 목사님 말하는 것을 '아무래도 이거는 하면 안 된다' 이래 가지고 교역자 전체가, 교역자가 다 모였는데. 모여 가지고 이 추도식은 하면 안 된 다는 것이 시비가 나 가지고 이러다가 마지막에는 교역자 전체가 다 단합해 가지고 그러니까 주남선목사님 추도식을 못 하고, 교역자들 결의로 못 하고 거창 함양 합천에 있는 그 교역자들이 다 모여 가지고 추도식은 하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위반이라 해 가지고 안 했습니다. 그거는, 그것도 모르지요? 압니까? 그거는 알아요? 그래 가지고 그때에 그걸 안 하고 말았습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배경' 觀

(1988,10,28 금 새벽)

1. 성경이 내 배경이 돼야 되지

그래 가지고서 성경이 옳다 인정해야 배짱을 내지, 성경이 내 배경이 돼야 되지 백영희 목사가 배경이 되면 그까짓 거 먼지 한가지인데 무슨 힘이 있어! 여러분들이 지금 알고 주장하는 것도 깨달은 것도 행하는 것도 첫째는 이 성경이 배경이 돼져야 됩니다, 성경이. 든든해.

2.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도 네가 왜 이렇게 했느냐? `당신이 말씀한 성경 몇 장 몇 절에 이렇게 있지 않습니까? 담대해.


■ 백영희목사님의 '生死' 觀

(1987, 11, 8 주일오전)

1. 부득이 잘한다고 해야 되고

교회들이 뭐, 어째 잘한다 잘한다 해야 그 목사가 견디지, 잘못한 것만 말하면 다 삐꿔서 교인들이 도망치니까 부득이 잘한다고 해야 되고,

2. 밥줄이 달렸으니까]

또 장로 권사들은 거게 다 밥줄이 달렸으니까, 밥통이 달렸으니까 나빠도 '나쁘다' 소리하면 당장 배척 당해 나갈 터이니까 '설설 움아줘야 된다' 이렇게 해서 되어 나가는 현실 교회가 되고 있으니 비참합니다.

3. 백 목사 조놈 죽기를

이 말 하니까, 내가 어제도 기도할 때에 내가 죽기를, 백 목사 조놈 죽기를 지금 기다리는 사람 많습니다.

4. 당신의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그러나 주여, 그들의 소원보다 당신의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그들의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제가 믿습니다.

5. 당신의 능력이 크기 때문에

저놈 어떻게 죽여버릴까 하지마는, 죽일라 하는 그 사람들보다도 살릴라 하면 당신의 살릴라 하는 당신의 능력이 크기 때문에 당신이 죽여야 죽고 당신이 불러가야 가지 인간의 하는 그까짓 거 가지고서 안 되는 줄 압니다.  '나에게 힘만 주시면 제가 외치겠습니다' 말했습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기도' 觀

(백영희목회설교록 123호 432페이지, 1985-08-06 화 오전집회)

1. 기도는

소원
간절
들어주신다는 믿음
예수님의 이름이 똘똘 뭉쳐야 기도가 됩니다.

급할수록 강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인 것을 믿도록 기도

2. 기도는 간단하게 해라

요한복음 14장에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내가 다 시행하리라' 하는 그 말씀을 하면서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기를 `기도를 길게 하지 말아라. 기도는 간단하게 해라' 그렇게 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왜? 기도하는 거 보면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 걸 초저녁에 시작하면 뭐 중얼중얼하다가 또 졸다가 또 중얼중얼하다가 졸다가 중얼중얼하다가 이라며 맨끄트머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는 것은 끄트머리 불여 놓으니까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하는데 믿음이 들었고 간절이 들었고  소원이 들었고 정성이 든 것은 짤막하게 똑 토끼 꼬리만도 못하게 쪼그만한 그것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이래 놓으니까 다른 거는 안 되고 고거나 들어 주실까 딴거는 들어 주실 수가 없다 그말이오. 어떤 '사람은 또 자꾸 그라다 보니까 그만 자꾸 그래 생각하는 거, 자기 감상 자기 생각 이 생각만 하고 마지막에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그 소리도 못 하고 그냥 나오는 사람 있다 말이오. 그거 다 헛기도입니다. 그래 하지 말아요. 기도는 간단하게 해요. 간단하게.

3. 기도는 어찌 해야 되느냐?

기도는 첫째가 뭐이냐 하면 기도는 소원이 있어야 됩니다. 소원이 있는 거는 아니고 소원은 안 두고 백지 구습에 젖어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것은 소용 없어요. 소원이 있어야 돼요.

그 다음에는 간절이 있어야 돼요. 소원과 간절이 있어야 돼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돼요.

그러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장을 꽉 찍어서 결재를 딱 해 버려야 된다 그 말이오.

4. 실상 소원도 없으면서 입으로 말하기 쉽다 말이오

그래야 일이 돼요. 일이 되는데, 뭐 밤새도록 기도하는 사람이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다 처져 버리고 빠져 버려 놓으니까 언제 연결이 돼야지? 하루 밤새도록 기도했는데. 자, 기도한 가운데에 보자. 간절이 있었지만 초저녁에는 간절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안 하니까 그만 예수님의 이름이 없어서 틀렸고. 간절이 없어 틀렸고, 또 소원이 없어 틀렸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실상 소원도 없으면서 입으로 말하기 쉽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소원과 간절과 믿음과 예수님의 이름이 딱 들어붙어 가지고 똘똘 뭉쳐 한덩어리가 딱 돼 버려야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러기 때문에, 기도를 쩔찔 빼서 그렇게 하지 말아요.

5. 잠들어 자고 있다가서 `아멘'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기도 인도하면 창세기 1장으로부터 계시록까지 쭈욱 그거는 성경 강해이지 그게 기도인가? 이렇게 자꾸 이라니까 듣는 사람들이 듣다 다 졸다가 다 그라니까 다 동가리 돼 버리고 전부 파산이 다 돼 버리고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라면 잠들어 자고 있다가서 `아멘' 그러니까 그거 모두 기도를 다 박살을 내는 거라 말이오.

도무지, 그래도 그걸 또 좋다고 `기도하면 엎드리면 일어날 줄 모르고 초저녁에 시작하면 이제 새벽까지 기도를 내내 계속한다' 그거 실상은 몰라서 그런 것이지 다 손해 다 봤습니다.

6. 중요한 것일수록 요소들이 강해야

그저 단지, 뭐이든지 중요한 것일수록 요소들이 강해야 됩니다. 중요한 것일수록 소원도 강해야 되고. 간절도 강해야 되고 또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믿음도 강해야 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그것도 강해야 돼.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이랄 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막 그만 이것도 늦게 하다가는 뭐 잡것이 들어올까 싶어, 늦게 하다가는 잡것이 들어오면 헛일이기 때문에 헛김이 새면 헛일이라. 다른 헛 바람이 들어오면 헛일이라.

7.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만 이라고 난 뒤에 끝마쳐 버려. 그만 그라고 결정이 딱 됐기 때문에 그 다음에야 뭐 숨을 쉬어도 되고 뭘 해도 괜찮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기도는 간단히 하고 해야 됩니다, 간단하게.

8. 바꿔야 되겠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시간에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자꾸 그냥 듣기만 하고 이래 뭣 하면 거석한다 말이오. 말씀을 들으면서 `아, 요거는 내가 이 지식면을 바꿔야 되겠다, 지혜면을 바꿔야 되겠다. 중심을 바꿔야 되겠다 사랑을 바꿔야 되겠다, 진실을 바꿔야 되겠다, 거룩을 바꿔야 되겠다. 의를 바꿔야 되겠다, 이거는 전투를 바꿔야 되겠다, 평강을 바꿔야 되겠다, 기쁨을 바꿔야 되겠다' 막 바꿀 것이 얼마나 많소? 고칠 것이 어떻게 많은지, 이제 다 주님 앞에서 고치면 된다 말이오.

9. 주님이 시행하시겠다고 약속을 했으니까

`주여, 요거 고쳐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해 놓으면 되는 거라 그만. 자꾸 그라고 지나가요. 자꾸 어쨌든 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했으면 `내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했으니까, 주님이 시행하시겠다고 약속을 했으니까 주님이 약속 어기지 안 할것이라 그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10. 믿음으로 기도하는 거만 나 할 일이고

자꾸 기도해서 주 모아 놔요. 뭐 어쩌든가. 이제 나는 기도, 믿음으로 기도하는 거만 나 할 일이고 이루어지는 것은 누가 할 일입니까? 이루어 줄 거는 누가 할 일이오? 주님이 할 일인 줄 알아요? 주님이 할 일이오. 그러면. 주님이 할 일이니 주님이 신실히 할 터이니까 걱정할 거 없고 자꾸 내나 기도해 자꾸 모우라 그거요.

이러니까 이 말씀을 들을 때도 자기가 어느 면이든지 그라면 `주여, 나는 요대로 고칩니다. 내가 이것을 가집니다.' 요거 내가 이걸 가지고저 하지만 연약하기 때문에 자꾸 넘어지고 변동되기 쉽기 때문에 이제 기도로 딱 들여 붙여 놔야 되겠다 그말이오. 이러며 `주여. 내가 요렇게 고치겠습니다, 다시는 변동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런다 말이오.

11. 때가 되면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십니다.

이래 놓으니까 기도 많이 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그것도 그만 그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그래 안 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다 말이오. 나중에 `예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래 된다 말이오. 그래 자꾸 해서 전부 결재를 딱딱 지워 나가요. 그래 가지고 이 현실에서 자꾸 그라면 주님이 고쳐 주시요. 그래 가지고 이제 우리가 기도해 놓은 것을 때가 되면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십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교파의 가치와 권위' 觀  

(백영희목회설교록 148호 160페이지, 1987-01-07 수 새벽)

1. 교파의 가치는 어데 있습니까?

교파의 가치는 어데 있습니까? 다수에 있습니까! 열심에 있습니까! 권세에 있습니까! 교파의 권위는 어데 있습니까?

내가 말할 때 거기 있다 하는 사람들은 손을 드십시오. 다수,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그 다수에 권위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또 그렇지 않으면 교파의 권세 세력력에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교파 다수도 아니고 권세도 아니고 교파의 부강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부강은 천주교가 제일 부강합니다. 돈 제일 많습니다. 굉장히 많습니다. 거기는 죄를 지으면 속전만 내면 됩니다. 너는 죄를 지었으면 너는 천 원 내면 된다, 너는 백만 원 내야 된다. 네 죄로 말하면 천만 원 내야 된다. 이래 죄에 대해서 가격을 붙여 가지고 돈만 많이 내면 되는 그래 가지고 천주교는 재산이 굉장히 많은 것입니다.

2. 교파의 권위는

그러면 또 교파라 하는 것은 교파의 권위는 이 성경대로의 이 진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진리에 있습니다.  

진리에 있는데 진리에 있는 것보다도 더 권위 있는 것은 뭐입니까? 권위 있는 것은 영감에 있습니다.

그러면 영감은 진리 밖에 영감이 있습니까? 그 진리 안에 영감이 있습니까? 진리 안에 영감이 있습니다.

진리 안에 영감이 있는데 그 영감이면 영감 위에는 뭐입니까? 하나님 자체입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선교' 觀

(1981, 8, 15 화 오후집회)

1. 선교사의 복음사역에 대한 말씀

그러기에 이 모든 선교사들이 뭣 때문에 문명국 선진국에서 좋은 자기 나라의 그 안일 향락 그런 것을 다 버리고 미개인들한테 가 가지고 죽자껏 해도 감사한 마음도 없고 원망 불평으로 마지막에 거기서 목숨까지 빼앗는 배은 하는 그런 족속들에게 가 가지고 자기 당대를 바치고 이대를 바치고 삼대를 바쳐서 이렇게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분들이 다 십자가의 전법을 안 연고입니다. 그들이 하늘나라가 있는 것을 안 연고요.

지금도 저 미개한 야만국에 가 가지고 아버지가 가서 선교하다가 그만 거기서 죽임을 당해 버립니다. 죽임을 당하면 그 다음에 또 아들이 대를 이어서 또 선교를 갑니다. 또 아들이 대를 이어서 선교 가면 또 그 다음에 죽고 나면 또 손자가 대를 이어  가요. 삼대 사대 가 가지고 선교해 가지고 그 지방을 구원시킨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가면 놀랠 일들이 많을 것이라. (1986, 5, 20 화 새벽)


2) 공회에서 제주도에 선교사를 보낸다는 말씀

(1987, 1, 14 수 저녁)

저 제주 있는 키다리라고 이 뭐이더라? 이종철 여기다가 막 버는 대로 다 이라다가 그만 여기 버리고 저 제주도 갔는데 요번에 가니까 그래도 대접을 하고 이란다 하는데 아레 전화를 했어. 내가 제주도 교회 세울라고. 전화하면서 이러니까 그 뭐 상세히 말하고

'너를 거게 선교사로 보냈으니까 네가 교회 하나 세워야 된다'

'예! 제가 부족해서' 이래 쌓으면서 뭐 좋아하고 이래요.


3. 공회에서 미국에 선교사를 파송 한다는 말씀

(1987, 5, 7 목 오전)

다는 아니고 선교로 간 분도 있어요. 이용구목사님이라고 그분은 가서 하는데 여게서 선교사로 보냈습니다. 너는 가 가지고 거기서 이 도리를 전해라 해 가지고 거게 갔는데 지금 교회를 상당히 큰 교회로 매우 큰 교회를 시무한대요.

그래, 우리이종옥 목사도 안 갈라고 하는 것을 센트루이스 교회에 보냈어요. 또 우리 떡 거게서 보내는 또 뭐꼬? 조성길 목사는 또 엉뚱이 같이 한국 나온다고 또 한국 나와서 복음 전한다고 나온다 하는데 아직까지 직접 만나서 아무 의논은 못 해 봤어요.

오늘 오전에 전도사 인허한 그분은 이제 한국 와서 일할 수 있지만 거게서 이 복음을 전해야 된다고 하기 때문에 우리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으로서 그래 전도사 인허를 했습니다. 나는 그분에 대해 실력은 몰라요. 그러나 아는 목사님의 그 소개로서 거게서 일을 꽤 열심히 한다 하기 때문에 그렇게 인허를 했습니다.

4) 선교사 호칭에 대한 말씀

이것은 제가 고려신학교 거게 갔을 때에 박윤선 목사님, 박형롱 박사도 거기 있었고 또 하밀턴 선교사님 한부선 선교사님 그런 분들 다 거게 있었습니다. (1989, 02, 07 교역자회)

선교사 중에 한부선 목사님이라고 미국 사람인데 삼 대를 우리에게 와 가지고 선교한 분인데 성자입니다. 위인입니다.(1989, 03, 09 월새)

그래서 그때 한국에 고려신학교 이 정통신학을 세우면서 자본도 대고 아주 주력으로 힘쓴 선교사 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곧 누구인고 하니 한부선 목사님이었습니다. (1988, 12, 19 월 새벽)


■ 백영희목사님의 '총공회 터 위에 더 개혁' 觀

(백영희목회설교록 163호 401페이지, 1988. 4. 5 화 새벽)

1. 개혁을 해 봐도 또 부패해지고

내가 000송용석 목사님에게 부탁하기를 그 000 송용조 목사님도 하나님이 붙들고 무엇을 하시려고 하시기는 하시는데, 나도 00고신에서 나와 봐도 그렇고, 나와서 해 봐도 별것 없습니다. 개혁을 해 봐도 또 부패해지고 개혁해 봐도 부패해지고 자꾸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모든 사람들이 탑을 쌓을 때에 기초만 쌓고 또 한 기초 위에 돌 한 두 개 놓다가 그만 끝납니다. 어떤 사람은 한 중간쯤 가다가 끝나 버립니다. 어떤 사람도 탑을 쌓되 탑을 끝까지 쌓아서 준공한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2. 이 건설은 주님에게 있기 때문에

이 건설은 주님에게 있기 때문에 인간이 해 봐도 항상 하다가 중간에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우리가 이렇게 총공회라는 터를 쌓아 놨으니까 이 위에서 더 개혁해 가지고서 올라가게 되는 것이 그것이 아마 더 슬기로운 일이요 수익이 있고 주님을 더 기쁘시게 역사 하는 일이 될 터이니까 그런 말 좀 전해 주십시오 라고 전화로 그 동생 송용석000 목사님에게 전달을 했었습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전도' 觀

(1986, 8, 26 화 새벽)

1. 목사를 특등 목사 되게 만드는 것도 전도

오늘 새벽에 나온 사람은 팔백 좀 못 되겠어. 한 칠백밖에 안 돼요. 이 전도 많이 하라 하니까 전도 많이 하지 안하고, 새벽기도 나오는 그것이, 안 믿는 사람에게 전도도 전도, 믿는 사람에게 전도도 전도, 일등 목사에게 특등 목사가 그 사람을 가르쳐서 특등 목사 되게, 일등 목사를 특등 목사 되게 만드는 것도 전도, 알겠습니까?

2. 꺼꾸로 제일 꼼뱅이 전도면 무슨 전도요?

이제 세상에는 급수가 지금 뭐뭐 자꾸 위에서 숫자가 많을수록이 낮은 급이고 자꾸 작을 수록이 일등, 일등 이등이래 되는데 이렇게 자꾸 할수록이 자꾸 전도도, 전도도 꼼뱅이 전도, 꺼꾸로 일등 전도, 꺼꾸로 이등 전도, 꺼꾸로 삼등 전도, 꺼꾸로 제일 꼼뱅이 전도면 무슨 전도입니까? 꺼꾸로 제일 꼼뱅이 전도면 무슨 전도요? 저 뭐꼬? 조끄마이 저 선생? 뭐야? 꺼꾸로 꼼뱅이 전도라면 바로 말하면 무슨 전도요? 모르겠어? ○○○? 어? 반대하는 자에게? 참 내나, 꺼꾸로 일등이면 옳게 뭐이냐? 옳게 말하면, 바로 말하면? 꼼뱅이 아니야? 꺼꾸로 꼼뱅이라면 바로 말하면 어때? 일등 아니야? 그 말 못 알아들어? 참. 에이. 다 일반적으로 그런 말은 쓰는데.

3) 상상급(上上級) 전도

전도도 여러 가지 전도가 있다 말이요, 여러가지 전도. 이제 제일 하급 전도, 중급 전도, 상급 전도, 상상급 전도, 이거 새벽기도 안 나오는 자에게 나오라, 그리 아니면 이거 교회만 다니지 아무 건설구원 못 이뤄. 이러니까 이거 자는 자거든. 행위는 죽었어. 신앙은 죽었다 말이오. 형식과 제도만 남아 있지.

이런 자를 새벽으로 자꾸 일깨워 가지고 전화로 하고 데리러 가고 이래 가지고 새벽기도 나오도록 해서 그걸 살리면 그거 전도입니까 전도 아닙니까? 그게 전도라. 다른 사람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운동입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예배 시간' 觀

(1987, 11, 8 주일오전)

오늘 오후 반사회 때는 이제 반사회에서 다시 하나 결정을 할 것입니다. 해서, 주일날 아침에는 모두 심방 간다고 주일 아침에는 반도 안 나와. 안 나오는데 이제 주일날 아침에는 지하실은 지하실, 이층은 이층, 삼층은 삼층, 일층은 일층, 이와 같이 자기 모이는 그 교실에서 반사들 모여 가지고 새벽기도보고 부장이 인도하고 거게서 예배 끝난 뒤 반시간 기도하고 그 시간에 출발할 것입니다.

이래서, 자꾸 게을을 부려 가지고서 어짜든지 반시간 늦추자 늦추자 해서 저 재작년에 늦췄다가 하나님이 노여워하셔서 다시 댕겨서 본래대로 이래하고 나왔는데, 그때 장 총무가 자꾸 서둘러서 그랬어. 내가 잊어버리지 안 해. 평생 내가 장 총무가 그때 삼십 분 늘여뜨리자고 네가 주장했지? 내가 요거 기억하고 있어. 요거 박혀 가지고 있어. 환하게 박혔어.

또 올해는 아무래도 이 좀 이러니까 안 됐습니다. 삼십 분 늦춥시다. 하는 것을 이층 부장 서문행 장로님이 주장해서 내 눈에 꽉 박혀 가지고 있어.

이래서 이제 지난 주일에, 자, 이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하고 자꾸 안일주의로 게을해서 안 된다. 이러니까 우리가 다시 삼십 분을 당기자. 이런데 여러분들이 지금 듣지 않으려니까 다음 주일에 학생이 내려가면 댕기기를 좋아하시는 줄 알고 삼십 분 댕기고 학생이 수가 불으면 하나님이 그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고 그대로 하고. 그래 약속하기로 해. 다 약속하고 손들었어.

손들었는데 지난주에 척 내려가 버렸다 말이오. 내려가니까 어떻게 좋은지. 나는 그 내려가기 위해서 기도했어, 하나님 앞에 자꾸. 내려가기 위해서. 왜? 하나님이 이 삼십 분 당기기를 원하거든 내려가게 하시고 암만 저거는 자, 이제 내려가면 삼십 분 당긴다. 함부레 늦잠 못 잔다. 이러니 어짜든지 요번에 심방을 많이 해서 올라가야 된다. 아무리 저희들이 힘을 쓴다 할지라도 주님이 내려가게 하면 푹 내려갈 터이니까 내려가면 주님이 삼십 분 댕기는 걸 원하시고 늦추는 걸 싫어하시는 줄 알고 댕길 것이고 올라가면 그대로 하는 걸 좋아하는 줄 알고 그대로 할 터이니까 나는 무지해 모르니까 주님이 역사 하시는 이 역사보고 하겠으니까 확정을 지워서 그렇게 해 주십시오. 나는 그대로만 시행하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폭 내려갔어. 이제는 당깁니다. 오늘 이게 광고라. 광고인데 앞으로는 ●새벽기도도 종전같이 삼십 분 당겨서 지금 고친 시계로 네시 반, ●주일학교는 여덟시 반, ●장년반은 열시 반에서 반 댕겨서 열시, 오후 시간은 두시 반인데 댕겨서 두시, ●밤 예배는 일곱시 반인데 일곱시 요렇게, 이거 광고 없습니다. 내일 월요일 아침부터는 요대로 시행합니다. 왜? 나는 봤기 때문에.

누가 말한다 해도 뭐, 이 옳은 소리 듣기 싫어서 삐꿔서 가는 사람은 가니까 좋고 옳은 소리 하나님의 뜻을 말하니까 좋다 그대로 살아보자 하는 사람만 모여들여야 되지, 하나님의 말씀 안 듣고 삐끄러져 가는 자 가면 하나님 말씀 듣는 자만 모일 터이니까 이제 촐촐 추려서 정금같은 알맹이만 가득 채워 주실 것입니다. 나는 그걸 믿어요. 이러니까 이제 앞으로는 삼십 분 당깁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독립교회와 개교회' 觀  

(백영희목회설교록 151호 98페이지, 1987-03-25 수 새벽)

'너는' '너는' 이것을 그냥 예사로 이렇게 보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또 여게도 하나님이 일대 일로 직접 대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그 수많은 지체가 있는데 그 지체 중에도 '한 지체를 뽑고 온 지체가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낫다. 한 지체를 끊고 온 전체가 지옥에 던지워지지 않는 것이 낫다' 이렇게 개체 개체의 심판을 말합니다.

너는 나 외에 '나 외에' 그러면 하나님과 그 개인과의 상대하고, 개인과의 상대할 뿐 아니라 또 하나님과 개인의 영과 상대하고, 영이 통과했다고 해 가지고 다 되는 게 아니고, 영이 통과해도 그 심신의 기능 개별개별이 하나님과 직접 관계 맺어 가지고 여게서 통과되는 것도 있고 통과 안 되는 것도 있다.

요것을 좀 알기 어렵고 자꾸 이라면 뭐 세상에 나가면 아마 이 설교록이 나가면은 많은 말들이 있을 것입니다. 있으나 저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담대히 증거 합니다.

그래서 우리 총공회로 나가는 이 교회를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이걸 독립교회라, 독립교회라 하는 것은 뭣을 전제로 두고 말하는 것인고 하니, 불의한 교권들이 그 교권 통치하에, 교권 치하에 거게 가입되지 안하면은 모든 것을 다 정죄해서 그는 멸망을 받는다. 그러기 때문에 로마에 있는 교회가 천주교회로 자꾸 타락해 나가면서 천주교에 여게 가입되지 안하면 구원이 없다, 천주교에만 구원이 있다 이래 가지고 이 구원을 단체 구원으로 이래 봐 가지고 그 단체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런 주장을 가지고 그 교회를 점점 타락시켰습니다.

이래서 그것을 반대하느라고 우리는 거게 가담하지 안하고 우리는 독립을, 독립으로 우리는 나간다 이래 가지고 독립교회, ○목사님 미국에 독립교회가 많이 있습니까?

우리를 독립교회인 줄 알고 미국에 독립교회의 그 단체에서 이 동남아에 순회를 책임진 그때 그 선교사가 와 가지고 ‘독립교회로 말하면 한국에서는 부산에 백영희 목사님이라는 그분이 독립교회의 제일 처음에 그 주도자니까 그리 가면 알 수가 있다’ 해서 소개를 받아 가지고 저한테 왔습디다.

와 가지고 얘기하는 가운데에 그분이 여러 가지로 도와 줄라고도 하고 손을 잡을라고 많이 하는데 우리는 독립교회가 아니라, 거게는 독립교회라 하는 것은 단체에 너무 학대를 받았기 때문에 그를 반대하는 것으로서 독립이라는 그런 표명을 가졌고, 또 그 속에는 너무 불의한 교권이 강제로 이래 하기 때문에 신앙에 자유성, 이 자유성을 그들이 원해 가지고 독립교회로 그렇게 돼 가지고 나가는 교회입니다. 저는 대략 그전에 알기는 알았지마는 그분을 만나 가지고 얘기하는 가운데서 그것을 똑똑히 밝혀서 알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게 아니고, 우리는 독립교회가 아니고 우리는 개교회입니다. 지금 우리도 우리를 독립교회로 자꾸 이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는 독립교회가 아니고 우리는 개교회입니다.

'개교회'라는 그 뜻은 뭐이냐? 우리가 교회가 단체 해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에게 상대하는 거, 이 옆으로 횡적으로는, 옆으로는 모든 교회가 통일되어서 역사에 교회나 이 모든 세계 교회가 다 하나다, 단일교회다, 단일교회다 하는 것을 횡적으로는 단일교회지마는 바로 종적으로는 하나님 대(對) 우리 대(對) 직접 개별개별로 상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개교회다.

그러기 때문에 뭐 다른 교회가 다 그래 간다고 따라가는 게 아니고 또 그 교회 때문에 그래 안 가면 안 되는 게 아니고 자기 깨달은 대로 하나님 대(對) 자기 대(對), 또 하나님 대 자기, 교회 대(對) 이렇게 교회 대, 하나님 대, 개인 대 하나님 대로서 이렇게 나간다 하는 그것을 그때 그분에게 여러 모로써 증거를 했습니다. 했는데, 그분들이 가는 것은 우리하고 조금 다르고 조금 넓고 우리와 조금 다릅니다.

이래서 우리 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면서 둘이 대조해 볼 때, 대조할 때 우리는 이래 가는데 거기는 어째 가느냐? 또 거기는 그런데 우리는 이래 간다. 이래 가지고 그분이 그때 여기 와서 우리도 참 이거 옳다고 이러면서 긍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라고 그분이 여기 서부교회 왔다가 가고 또 서울 가서도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그 교회를 방문하고 설교도 하고 그래 갔었습니다.

갔는데, 우리는 '횡'이라 말은 옆으로는 모든 교회들이 다 한 교회고, 한 교회고. 하나님과 우리와 대하는 직접 하나님 대하는 건 바로 개별적으로 이래 대하고 있다 이래서 개교회라 그렇게 하는 뜻으로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이 사람도 단수로 개체를 말하고, 하나님도 또 당신이 개별적으로 이 피조물을 상대하는 걸 가리켜서 '나' 요렇게, `너 나' 하는 요게 대해서 많이 생각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신구약 성경' 觀

(백영희목회설교록 128호 285페이지, 1985-11-05 화 새벽)

신구약 성경 말씀은 다 정확 무오한 말씀이요, 물론 사본이 있는 데서 사본에서 틀리고 번역에서 틀리고 틀린 게 있지마는서도 그래도 자꾸 읽으면 전체적으로 바로 깨달을 수 있지 뭐, 마귀가 아무리 사본에 착오를 가지도록, 또 번역에 그렇게 오역을 가지도록 이렇게 아무리 해 봤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그거보다도 더 큰 능력이 같이 하기 때문에 그런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정확 무오한 성경이 우리에게 어쨌든지 우리 손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손에 들어왔고, 성경 안에는 이런 다른 문서와 같지 안하고, 다른 문서들은 그 문서가 죽은 문서뿐이기 때문에 그 문서를 이해할 만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문서를 발아래 밟으면서 멸시를 하면서 읽어도 다 이해를 합니다.

성경은 다릅니다. 성경은 이 성경 말씀을 자기가 벌써 무시하고 멸시하고 그렇게 하고는 성경을 암만 천하 박사가 다 모아 가지고 본다 할지라도 이 성경 말씀 속에 알맹이는 저는 모릅니다. 제 복음은 되지 못하고 제 구원은 이루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그 히브리어 박사가 말하기를 구약은 히브리어로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히브리어 박사는 안 믿는 불신의 히브리어 박사도 많이 있는데 히브리 박사는 불신자라도 구약에 대해서 아는 것은 히브리어 모르는 목사보다 낫다, 구약을 더 잘 안다, 하는 그런 말을 어떤 사람이 했습니다. 내가 그 사람 지금 살아 있지만 내가 그 말을 하기가 거석해서 말을 안 합니다. 그런데, 그래 가지고 그 배운 제자들이 나한테 와 가지고 말하기를 히브리어는 거게 대해서 이제 말한 대로 그런 말을 합디다.

그거는 뭐이냐 하면은, 히브리어라 하는 그 어학 가지고 전부 어학 모르는 목사들을 빨끈 눌러 가지고 그걸 위주로 할려 하는 것인데 그까짓 것 누르면 다 박살이 돼 버립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진리가 있는데 그 눌리고 깨질 턱이 있습니까? 그런 말은 성경을 다 무시하는 말입니다.

성경 안에는 이 세상 문서와 달라서 그 속에, 말로 된 이 언어 속에 진리가 속에 들어 있습니다. 또 그 속에는 성신의 감화 영감이 그 속에 내재해 가지고 역사를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성경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다 성경의 명백성은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자꾸 보면은 그 성경은 똑똑히 옳고 바르고 참되게 알려 준다 성경이 그 사람을 알려 준다 하는 그 명백성을 인정합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성경 난해절' 觀    

(백영희목회설교록 135호 170페이지, 1986-04-03 목 새벽)

난해절은 한 절도 없습니다.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그 성경을 기록한 것도 다 사람이 기록했습니다. 사람이 기록했어.

사람이 기록했다 하면은 눈이 둥그럴 것인데. 녜.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렇게 말했는데도, 사람이 붓으로 기록했지 하나님이 붓 들고 기록하지 안 했습니다. 전부 사람이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이런데 성경은 사람들이 기록했기 때문에 또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이고 사람들이 기록했는데 그 기록이 정확무오 하게 기록됐습니다. '정확무오' 바르고 확실하고, '무오'라 잘못됨이 없다. 그릇 '오'자 뭐 그릇됨이 없고 잘못됨이 없다. 정확무오 하게 사람이 기록했기 때문에 또 깨닫는 것도 정확무오 하게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난해절이라 하는 이것은 왜 사람들이 난해절이 됐느냐? 난해절이 된 그것은 아직까지 도달할 데에 도달하지를 못하고, 이 등산하는 사람이 천 메타에 올라가면 환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을 구백 메타밖에는 안 올라가 가지고서 자꾸 이러니까 ‘이거는 없는 것을 공연히 한 말이다. 이것은 사람들을 무슨 기이한 소리를 해 가지고 제 인기를 끌라 하고 하는 말이지 이거는 실상 없는 일이다.’ 자꾸 이렇게 하는 것은 네가 천 메타를 올라가야 볼 걸 천 메타를 올라가지 안 했기 때문에 보지 못하니까 천 메타를 올라가도록 네가 애일랑은 쓰지 안하고 자꾸 이런 것은 없는 것을 공연히 말했다고

어데 있느냐? 보라. 보라. 어데 있느냐? 보라! 보라!’암만 봐야 없습니다. 그거는 ‘네가 지금 아직까지 올라간 높이가 천 메타가 안 됐기 때문에 그런데 천 메타만 올라가면 보여진다.’하는 것입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말씀 깨닫는' 觀  

(백영희목회설교록 159호 216페이지, 1987-11-04 수 새벽)

말씀을 깨닫는 것은 억지로 알려고 해도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알려 주셔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실 때를 항상 기다릴 의무가 있습니다. 화장실 갈 때도, 밥 먹을 때도,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도 가르쳐 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당장 연구한다고 당장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책상에서 알았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있다면 거짓말쟁이입니다. 모든 사람이 경험할 때 이런 저런 생활에서 알려 주시는데 이는 하나님이 알려 주고 싶은 대로 알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조그마한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다가 알려 주실 때는 얼른 받아 적어 놓아야 합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문서' 觀

1. 희안한 문서

뭐 어떻게 문서가 많이 날라오는지, 별별 희안한 운동이 많고 희안한 문서가 많습니다. 또 이제는 교회마다 그 교회 회보라고 이걸 교회마다 내면서 그 돈이 어데 나오는지 몰라 아마 그것 다 그럴기라, 그 교역자들이 우리 교회 지위가 제일 낫다 큰 높은 진리기 때문에 이거는 세계에 알려야 된다 이러니까 교인들은 그 말을 듣고 있는 돈을 다 기울이 가지고 그러면 알리자 이래 가지고 교회 회보라고 뭐 얼마나 숫자가 되는지 모릅니다.

이래 놓으니까 그저 잠깐만 있으면 그 쓰레기통에 하나되고 또 갖다 태우고 그 볼 게 하나도 없어. 그 종류에 볼 게 가끔 있겠지만 그걸 가릴 수가 있어야지 또 보면 아주 위험 천만한 그런 서류들이 많이 있습니다.

2. 분명히 거짓말인데

이러니까 이 말세에 여러분들이 주의할 것은 성경 외에는 읽지 아니하려고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너무 사이비한 그런 서적들이 많기 때문에 그 서적을 보면. 그말이 있소 '들으면 병이고 안 들으면 약이라' 안 들으면 약이라 분명히 거짓말인데, 야, 그 사람이 너를 아주 헐뜯더라 분명히 거짓말입니다. 그 사람이 날 헐뜯을 리가 없다 그런 거짓말하지 마라 속으로는 거짓말이다 이렇게 아무리 지금 거짓말이라고 단정을 지워도 그 사람이 너를 헐뜯더라 헐고 뜯고 이렇게 삣고 깎고 널 헐더라 이러면 거짓말인 줄 압니다.

이놈이 날 거석하려고 거짓말한다 그렇게 단정을 짓고 거짓말이라고 알았지마는 그래도 그 말 듣고 난 다음에는 어떤 경우에 가면은 그때 그 사람이 날 헐뜯는다 하던데 참으로 그 사람이 헐뜯었나 이번에 이걸 보니까 헐뜯을 것 같은데 그것이 속에 먹물같이 벌써 그 칠해 졌다 그 말이오.

3. 배은혜 목사님

이러기 때문에 아닌 줄 알아도 들으면 안 됩니다. 그 (배은혜) 목사님이 아주 그분이 은혜 있는 목사님인데 그분이 그때 한때는 참 한국교회에 불이었습니다. 이랬는데 그분이 하나 시작한 게 뭐이냐 공산주의들이 이렇게 기독교를 자꾸 대립을 하고서 이렇게 하니까 이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것의 서적을 내가 읽어 가지고 이것들을 다 반박을 해야 되겠다 큰 것을 시작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그 서적을 읽었다 말이오. 아닌 줄 알고 무신론주의니까 아닌 줄 알고 그 서적을 읽었지마는 이러기 때문에 무신론이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없다 한다. 어리석은 자들이 하나님 없다 한다. 자꾸 이렇게 무신론의 말을 자꾸 들으니까 이 사람이 그만 나중에 의심성이 들어 가지고 자기가 강단에서 그러니까 의심이 드니까 더 하나님이 계신다고 증거는 더 강하게 합니다. 의심이 드니까 의심 드는 걸 없애버리려고 하나님 계신다는 증거를 자꾸 강하게 하는데, 강하게 해도 교인들에게 은혜는 없어지고 자기 속에 확신은 없어지고 고민에서 죽을 지경이라 할 수 없어 자기가 자살을 하려고 금강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금강산에 들어 가 가지고 제일 그 큰 폭포에 가서 이제는 내가 죽는 게 낫지 내가 도무지 하나님이 계시는 줄은 아는데 그 전과 같이 믿어지지 안하고 이렇게 의심이 나지니 이래 가지고는 내가 세상에 나가 가지고 잘못 증거 하다가는 심판 받겠다, 심판 받겠다 하니까 하나님 계시는 걸 인정하는 것 아닙니까, 죽기까지 그랬으니까 인정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속에 확신이 벗고 자꾸 의심이 돼요.

이래서 그 폭포수에 그만 자살을 하려고 갔다가서 폭포속에 자살을 하려고 물에 빠져서 그 폭포수에 빠져버렸어. 그 높은데서 물에 떨어져서 그만 그 속에 빠져서 이제 자살하려고 빠졌는데 그 사람이 들어가면 못나와요. 물이 자꾸 빙빙빙 도니까. 그래 빠졌는데 주님이 가서 검어지고(붙잡고) 왜 이 의심하느냐? 이러면서 버덕 들고서 희떡 들고 나오는데 나와 보니까 그 육지에 자기가 와 있어. 그 물을 많이 먹고 이래 놓으니까 이제 그 참 기절이 됐는데 나중에 일어나 보니까 그 물에 나와 있다 말이야.

그때사 하나님이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목회를 했지마는 들은 그놈이 또 나온다 그기야. 들은 그놈이 그렇게 증거를 받았는데 또 나와, 이러니까 옛날 믿음 같은 그런 믿음이 되어지지를 안해.

이래서 해방 전까지는 목사로 잘 노릇하다가 해방 후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분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 믿으시요.' 하는 그 말 한마디가 온 세계를 통치하는 모든 말보다 큰데 이 가치를 몰랐다 그말이오.

이러니가 그때사 한국을 그때 건국할라 할 때에 건국 초두에 건국에 자기가 헌신을 했고, 또 정치에 가담을 했고, 마지막에는 고등고시 위원장 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바삭 떨어뜨려서 거게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참 허무하게 천하게 되 버렸습니다. 이래 가지고 다시 목사로 돌아왔지요. 목사로 돌아 왔지마는 무능한 목사로 그냥 지내다가 아마 지금 세상을 떴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사탄에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는 다른 짐을 지우지 않는다. 지금 현재에 그 상태로 나가라 말씀했습니다.

4. 광문다학

이러기에 이런 그 쓸데없는 문서,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렇게 말해요. 마귀들이 말하기를 광문다학이라 광문다학이라 널리 듣고 많이 읽으면 유익 되지 손해가 뭐 있겠느냐> 이렇지마는 사람들은 어리석게 약이 옵니다. 약이 오면은 약을 먹어라 하면은 하나가 있다가서 그 약 먹지 마라 네가 약을 먹으면 자꾸 약만 먹으면 도로 몸에 해가 된다. 이러니까 약이니까 먹어 봤자 유익 있지 해가 있겠느냐? 약이 이 병에는 유익해도 저 병에는 해가 되고 또 그 약이 유익 되는 점도 있지만 해되는 점도 있기 때문에 약을 먹어 가지고 치료하는 사람은 그 치료가 참 그 아주 위급할 때 하는 것이지 좋은 치료가 아닙니다.

감기 들 때에 감기약을 먹어 가지고 치료하는 사람은 좋은 방편 아니라. 감기 들 때에 감기약을 안 먹고 치료해야 그 치료가 바로 되어지고 몸에 손상이 없지, 그러기 때문에 약 장사 아들들은 약방 아들들은 감기 들면 그 감기약을 그 아이들에게 안 먹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무슨 말이든지 광문다학 하면은 좋지 뭐 이거나 저거나 막 이러면 된다 해 가지고 종이 쪼가리만 있으면 대고 읽습니다.

5. 읽으면 결국 책과 같은 사람되고

밥 먹다가도 글 쪼가리만 있으면 읽어 어쩌든지 읽으려 하는 그것이 한 시기에 지식욕, 자기가 지식을 가지고자 하는 그 지식욕에서 그리되는 것이지만, 이 책을 읽는데 대해서 얼마나 조심하고, 얼마나 구별하고, 얼마나 선택을 해야 되지. 왜? 내가 책을 읽지마는 책이 나를 읽습니다. 내가 책을 읽었지마는 책이 나를 만들어서 내가 책을 읽으면 결국은 그 책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 책의 사람이 되고 말아. 내가 책을 읽었지마는 내가 책을 읽어서 책을 삼켰지마는 책은 나를 삼킵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집에 가 가지고 그 서재에 책이 있는 걸 꼽힌 걸 보면은 아!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구나 짐작합니다. 그러나 책이 꼽혔지마는 그 책과 같은 사람이 안된 사람은 책이 책만 사서 꼽아 놨지 그 책을 읽지 안한 사람이요. 읽으면 결국 책과 같은 사람되고 만다 이거요.

6. 일생 동안에 그걸 다 구별 못 지을 만큼

얼마나 요새 지금 쓰지 못할 책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그 책이 읽어야  될 책인지? 안 읽어야 될 책인지? 그 이름을 그걸 심사해 가지고 표시를 해서 이건 읽지 말아라 그것만 말해줄라 하면 아무리 참 한꺼번에 한 페이지를 이래보고 이래보고 이랬으면 다 그 또 속독법에 보면 이러면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다 봐 버리고 이래 한다고 해도 자기 일생 동안에 그걸 다 구별 못 지을 만큼 그렇습니다.

또 그것은 이 책을 낸 것을 틀렸다 하면 왜 틀렸다 하느냐 그 반박이 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걸 착수할 필요가 없는 기라.

이러니까 어떤 책은 읽어도 좋다, 안 좋다, 하는걸 그걸 구별해 줄 수가 없어. 암만 백 목사에게 물어도 그걸 내가 구별해 줄 수가 없어. 그런 시간도 없고 또 그래 하지 말아라 그걸 반박하지 못 해. '이 책은 틀렸다' 하면은 그 사람은 지금 왜 틀렸느냐 하고 시비 올 터이니까, 그 시비할라면 구원이루지 못할 터이니까 뭐 그런 일을 필요 없는 일을 할 게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한 말로 여러분들이 말세가 되어갈 수록이 성경만 읽는 자가 되고 성경 외에 다른 문서들을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7. 도라무통에 넣어놓고 불을 질러 버리고

어제 아침에 내가 어떤 청년 지금 여 와 앉았는데 나한테 무슨 잘 믿을라 하는 청년인데 뭐 질문을 해요. 묻는데 그 묻는 것이 어데서 그걸 들었느냐 그러니까 어떤 그 내가 그 사람의 이름은 말하지 않습니다. 말하면 또 이 테이프가 나간다 이거요.

나가면 또 그 사람과 나와의 대립이 돼 말하지 않는데 거게서 들었다 이라는데, 요새 보면 그 책 한 권이 아마 이만하니까 적어도 한 얼마나 갈런지. 두께가 한 요만침 되요 한 아마 몇 백 페이지 되니까 그런 책인데 돈도 안 줬는데 자꾸 옵니다. 이 책 여게서도 또 이런 책이 오고 저런 책 뭐 책이 오는 것만 해도 그걸 만일 재 놓으면 잠깐 동안 이렇게 되버려요.

그것이 오니까 처음에는 내가 이래 좀 몇 장 보지마는 나중에 필요가 없으니까 이걸 다른 데 안 보려면 남한테나 주지, 남 주면 다른 사람 손해 갈 것이기 때문에 그걸 자꾸 뜯지도 못하고 그래서 그만 이래 가지고 와 가지고 도라무통에 넣어놓고 불을 질러 버리고 이래 합니다. 위험한 때입니다.

8. 벌로(조심하지 않고) 책을 읽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나올라면 다른 그 서적을 안 보는게 좋을 것입니다. 또 서적을 보려면 표준 주석이라고 그거는 그래도 다 일반들이 인정을 하는 그 표준 주석 그런 주석이나 보고, 또 일반적으로 다 이 장로교에서 인정하고 있는 그 교리서나 신조서나 그런 것 보지, 아무나 따나 그런 것을 봐서는 안 됩니다.

또 그 사람이 일생동안 살면서 지나갔는데 그 사람의 그 생애가 지나갔으면 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런 유력한 참 하나님이 쓰신 그런 사람들의 책이나 보고 그렇지 벌로 책을 읽으면 안 됩니다.

9. (이성봉)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이라고 그분의 그분은 참 잘 살았고 끝까지 부흥을 잘 이끌고 갔습니다. 그분이 낸 서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그분이 설교하는 데에 내가 두 시간 참여했습니다. 남교회 그 신학교 다니면서 그 동방교회라고 와 가지고 집회를 하는데 그 집회하는데 내가 참석했는데 요나서를 강의를 했습니다.

요나서를 강의를 했는데 그대 두시간 참여하고 아마도 좀 안 되겠다 해서 그 다음에 다시는 참석을 안 했습니다. 그분은 참 건전한 부흥사입니다. 그래도 잘못 깨달으면 여러분들이. 그때는 옛날이요 또 지금은 참 그때 요량하면 새 시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금은 그때의 깨달음과 같이 그렇게 신앙생활하면 안 됩니다. 지금은 또 지금의 해당된 걸 해야 되지 그 사람 이름은 내가 말하지 않습니다.

10. 이(   )목사

이 목사라고 그 성경 교회서 유력한 분입니다. 그분의 서적이 많이 나왔습니다. 설교집이라고 서적이 많이 나왔습니다. 나왔는데 그 서적이 다 은혜로운 서적이요. 그러나 그 서적을 보고 거게서 은혜를 받고 고것만 옳다고 따라가던 사람이 저하고 나이도 동갑이고 한 동리에서 낳고 일찍 자라서 같이 예수 믿고 이랬는데. 믿기는 제 뒤에 믿었지마는 아주 열심 있는 신앙가입니다.

그저 자주 십사일씩 이십일씩 지금은 사십일씩도 하는데 그때는 뭐 십일 단식이 별로 없을 때인데 단식기도를 했고, 또 신사참배 왔을 때에 경찰서 잡혀 가지고 그렇게 맞고 그래도 신사참배를 반대를 하고 이래 나왔었습니다. 나왔는데 마지막에 그 사람이 나한테 올라와 가지고 그 '내가 누구를 가 찾아보겠다' 그 이 목사 찾아보겠다. 그라기 때문에 '가지 말아라 네가 가면 진다. 그분이 설교 해 놓은 그 설교가 이런 환란을 이길 만한 그런 설교는 아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가면 지니 가지 말아라' 갈라고 가는 도중에 나는 있고 저 있기 때문에 통로에 갈라 하는 걸 못가구로 붙들어 가지고 내가 하루밤 재워서 강하게 말해 놓으니까 안 간다 하고 이리 도로 내려갔다 말이요. 저거 집으로 내겨 가 가지고 나한테로 오지 안하고 저리 바로 직행을 해 가지고 저리 그분에게 갖다 왔습니다. 갖다 와 가지고 그분이 그 신앙 가지고서 그 환란을 이길 리가 없는 것입니다.

신사 참배한 사람이니까 가 가지고 그분에게 가서 물이 들어 가지고 일부러 경찰서 찾아가서 나는 신사참배 안 한다는 그 인식이 잘 못됐으니까 참배하겠습니다. 해 가지고 신사참배하고 난 다음에 그 사람 신앙 그때에 고만 그 신앙에 정조도 성령의 능력도 다 달아나서 그만 타락했습니다.

타락해 가지고 그 가정도 뭐 절단이 나 버리고 그때는 참 좋은 가정이요 유력한 가정이였는데 그만 신앙들도 다 절단 나 버리고 자기는 저 서울에 어데 가서 노동일 하고 있는데 지금도 살아 있다고 해요. 힘이 참 좋습니다. 아무리 무거운 자전차라도 이래 검어지면 이래 팔을 갖다 세 개 씩 핍니다. 이런데 언제 한 번 테레비를 보니까 그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 가락 노래를 부르는데 보니까 그 사람이 나와 가지고 그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노래 제법 잘 불러요 보니까.

11. 원본은 이러니까 그와는 다르다 - 백영희목회설교록을 출간한데 대해서

무섭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가 이 설교록 이래 하는 걸 말해도 그걸 안 내려고서 자꾸 이라다가 자꾸 이래 퍼져 나가니까, 이게 하나 있어야 되지 이거 없으면 그 반거짓말로 이래 놓고도 이거 누가 말했다 이라면, 그때는 그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정죄받기 때문에 이것을 해놓으면 그 원본은 이러니까 그와는 다르다, 여게는 봐 이렇지 않느냐 그러면 그 사람이 그 조작배기로 반거짓말로 지어 놓은 것이라서 변명이 되겠다 하는 그 면에서 제가 그것을 허락을 했습니다.

12. 성경만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에 문서들을 조심해서 될 수 있는 대로 보지 아니하고 성경만 보는 것이 좋습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편집실, 목회연구소' 觀

(1988, 11, 13 주일오전)

미리 내가 광고해, 둘이 있는 것 하나는 여기 편집실이라고 하는 이거 집짓는 것 대지도  집 짓는 건물도 우리 교회서 지었습니다. 우리 교회 돈으로 지었어.

교회 돈으로 지었는데 편집실, 목회연구소라 이렇게 말했고 연구 기관으로 했는데 그것을 모두 다 말해 가지고 백 목사가 교훈한 그 교훈을 잘 그대로 전달하고 그대로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는 데에는 편집실이 있어야 된다 이래 가지고 그 모두 기계를 갖춰서 어떤 사람들은 천만 원도 내고 오백만 원도 내고 몇 십만 원도 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지금 기계를 모 두 다 구비하게 됐고,

나는 그거 돈을 나는 내 손에 쥐지는 않아 내가 쥔 거는 내가 그 사람이 혹 나를 주는 것은 내가 편집실에 주고 그 영수증 딱 받아다가 본인에 갖다 주고 그랬지 뭐 그런 것은 없어요.

없는데, 그래 인제 그것을 만들기를, 이거는 백 목사 것도 아니고, 백 목사 자손들 것도 아니고, 서부교회 것도 아니고, 이것은 복음 운동을 위해서 내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한다. 하는 것으로 정관을 꾸며 가지고 그것을 편집실이라 그래 가지고 이름을 가졌고 주인이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 거게다가 법조문을 하기를 요것은 아무도 차지하지 못하고, 뭐 총공회도 차지 못하 양성원도 차지 못하 서부교회도 차지 못하 백 목사 가족이나 그런 사람도 차지 못하 여게 직원들도 차지 못하 꼭 이 백 목사 교훈만 이렇게 출판해 가지고 이 복음을 널리 전하도록 이렇게 하는데 나중에 이 재산은 마지막에는 어데로 가야 되느냐? 마지막은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복음 운동을 위해서 다 쓰도록 그렇게 마지막은 다 없어지고 거게 쓰지 개인은 손대지 못한다 요렇게 해 놨어요.


■ 백영희목사님의 '목회 설교록' 觀 1.  

(백영희목회설교록 104호 187페이지, 1984-03-31 토 새벽)

그러기 때문에 이번에 나는 그 책 이름을 가리켜서 목회 설교록이라, 목회 설교록이라. 목회 설교록은 주석이 아닙니다. 목회 설교록은 논리를 위한 논리 문서가 아닙니다. 목회 설교록은 논리 문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오늘 아침에도 말하자면, 이 영감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 하도록 진리가 여게 와서 역사 하도록 하는 이것을 알도록 할라고 하니까 이리 저리 말하니 사람 보기에는 뒤죽박죽 같고 별 뭐 이렇게 흩어진 뭐 산 가루 같이 이러나, 그렇게 하는 가운데서 알고자 하는 자에게는 영감이 접속돼서 건너 가 가지고 그가 영감의 사람이 되고 진리의 사람으로 돼서 변화가 되기를 원해서 그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참 자기가 변화가 되고 싶어서 이 설교록을 문서로 보는 사람은 문서적인 가치가 없을 것이요, 학문적인 가치가 없을 것이요, 또 논리적인 가치가 없을 것이요, 아주 없는 거는 아니지만 적을 것이요. 또 취미적인 그런 것도 아무것도 별로 없을 것이요.

다만 이 자기가 문서로 말하는 가운데에 이 문서 속에 논리 들었고, 논리 속에 진리 들었고, 진리 속에 영감 들었고, 영감 속에 하나님이 들었는데 그분을 접해 가지고 자기 구원을 이룰라고 하는 자에게는 보면 이 책을 떨어지지 못할 거라 그말이오. 그러면 그 자는 참 보배로움을 알지만 그 자 외에는 그 뭐 아무, 그러기에, 외식자는 이 설교록은 읽어야 아무 취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도 많은 말 가운데에 자꾸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 것은 그런 가운데서 인간이 인간의 말로 발표할 수 없는 이렇게 저렇게 말할 때에 인간이 발표할 수 없는 그런 속에 인간의 말로 발표할 수 없는 그 신령한 면 세밀한 면 인간의 지식에 없는 인간의 지식에 없는 그 면 그것을 혹 접해 가지고 접촉되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하는 것입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목회 설교록' 觀 2.

(백영희목회설교록 104호 394페이지, 1984-04-08 주일오전)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그런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 설교록을 그걸 좀 간추려서 두 번 말하는 일이 없이 한번씩만 말하도록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 말하니까 그 뉘가 두 번 듣고 세 번 읽고 그래 읽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래 되면 그 책을 아무도 재미있게 보지도 안할 것이고 사지도 안할 것이고 그러니까 한번으로 이렇게 수정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말을 해. 내가.

그런 말 할 때에 대노했습니다. 대노했어. 자기네들은 그 설교록을 볼 자격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그거는 설교집이 아니다. 설교집이 아니고 성경 주석도 아니다.

목회라 하는 것은 사람을 만들고 기르고 살리는 이게 목회이기 때문에 목회 할 때에 말한 록이라 해서 목회 설교록이라고 한 것이다. 사람도 한번 말해서 안 하면 '야, 일어서거라.' 안 일어서면 '일어서거라. 일어서거라. 일어서거라.' 또 '일어서거라.  그 좀 피곤해도 일어서거라. 일어서거라.' 어쨌든지 일어서게 할려고 하니까 일어서라는 말이 백 번도 있을 수 있고 천 번도 있을 수 있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기에, 목회 설교록이라 하는 것은 사람들이 주석으로 보든지 설교집으로 보면 오해할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길러서 고치기 위해서 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한번 두 번 몇번이든지 말해서 그 사람이 고치도록 그 사람이 되도록, 우리가 지식을 가질라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지식을 가지는 가운데서 사람을 기르는 것이니까 한번 지식을 듣고 가 버리면 기억은 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지식에 대해서 생각을 안 가지니 부득이 강단에서 또 말하고 또 말하고 글로 써라 또 말하고 또 말해서 그런 가운데에서 거게서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하던 자가 하나님의 주권을 '아, 나는 참 안 믿는다'하는 것도 깨닫고 '내가 믿는다 하지만 언제는 주권을 믿지만 언제는 주권을 못 믿었다.' 주권에 대해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자기 생활에 백 가지 천 가지에 다 살펴보면서 나는 주권을 믿었다 안 믿었다. 요게는 안 믿었다 저게는 믿었다. 참 외식자다, 참 거짓부리다, 참 껍데기다! 외식으로서 주님을 팔 자가 누군가! 앞으로 하나님의 도를 들어 외식하는 자가 그자가 팔 자이지 누구겠습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도에 핍박자고 대적자는, 다 예루살렘 안에서 선지자와 의인들이 죽었지 딴데서 죽은 사람 없습니다. 다 외식자들에게 죽었다 그 말입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목회 설교록' 觀 3.

(백영희목회설교록 105호 123페이지, 1984-04-26 목 새벽)

이러니까, 목회 설교록이라는 것은 내가 깨달은 대로 사람을 기르는 데에 한 말이라 그 말이오. 사람을 기르고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 한 말이라 그 말입니다.

설교집이 아니요, 성경 주석이 아니요 목회 설교록이라는 것은 성경 주석에도 또 설교에도 들어 있지만 그것보다도 사람을 신앙으로 기르는 데에 한 말을 기록한 책이라 해서 목회 설교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觀

(1984년 8월 7일 화 오후집회)

이 설교록을 내놓는 것은

앞으로 참 너무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때가 됐고 너무 성경대로 예수 믿는 것이 아주 없는 때가 되기 때문에 그때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놨다가 들추어보고 좀 깨달을 수 있으리라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백영희목회설교록 전파' 觀

(1988, 11, 13 주일오전)

모두 다 생각하기를 '암만 개척 교회 세우는 것 그거 가지고도 소용없고 이 교훈이 나가야 된다' 이 교훈이 지금 저 중공에도 갑니다.

얼마 전에도 중공에 좀 '그 테이프가 필요하니까' 중공에서 그 테이프가 필요하다 해 가지고 중공에 보냈어요. 보내 달라고 쌓아서 보냈는데, 중공에도 미국에도 보내고 뭐 일본에도 보내고 안 나가는 데가 별로 없어요.

또 설교록 보고 오는 사람, 그래서 말하기를 편집실에 물어 보니까 우리 진영 목사들보다도 이 일반 모든 교회에, 다른 일반 교회들에게서 설교록을 가져가는 게 더 수가 많습니다.

또 말하기를 우리 국내에서 나가는 것보다도 앞으로 외국에 나가는 게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이래요. 지금 자꾸 들어오니까. 저 먼저께도  보니까 뭐 삼십만 원씩 몇 십만 원씩 주면서 설교록 있는 대로 다 보내 달라고 자꾸  그렇게 온 다 하니까 이래서 복음 운동하는 것이니 복음 운동하는 데에는 이 교회 세우는 것보다도 이 편집실이 필요하다 이래 가지고 그 편집실을 그것을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한 것인데,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알아서, 나는 늙어 죽을지 모르니까 여러분 젊은 사람들이 있다가 이거 증거를 바로 하지 못하면 큰일 나. 바로 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거짓 증거로 내가 하늘나라 가 가지고 '이놈아 너 내가 똑똑히 말해도 듣고 나서 그 말을 바로 증거하지 않고 네가  요러고 왔느냐?' 내가 하나님 앞에서 꽉 고소를 할거라, 이제. 송사를 할거라. 꼭 바로 증거 해야 돼요.


■ 백목사님의 '목회자양성 성경학교' 觀

(1989, 3, 13 양성원 개강예배)

이래서 앞으로는 양성원이라는 이것은 '목회자양성 성경학교'로 할 것입니다. 요새는 학교라 하면 가치가 없으니까 신학이라야 좀 이름이 높으고 신학보다도 신학대학이라야 이름이 높으고 신학대학보다 신학대학원이라 해야 된다 하기 때문에 이 마귀란 놈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썩은 일만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그런 건 다 내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공부해서, 제가 무디 선생의 그 성경학교를 보니까 벌써 그것도 그때는 나왔지만 썩고 썩어서 지금은 완전히 썩어 버렸어. 지금은 인제 그것들도 향방을 하나님 말씀으로 향방을 정하지 않고 세상이 따라가는 그것 따라가려 하니까 '다른 데는 지금 대학이 됐는데 우리는 성경 학교라니? 신학이라고도 해야지.' 그것이, 그것이 신학으로 타락돼 가지고 신학이 신학대학이 되고 거게서 또 타락해 가지고 신학대학원이 돼 가지고 지금은 석사 박사 학위까지 주게 됐으니까 심히 올라갔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완전히 타락된 것입니다.

이렇게 마귀란 놈은 자꾸 타락을 시킵니다. 이래서 그걸 내가 보고, 우리 양성원 이 목회자 양성 이 성경학교에서는 이제 주님 오실 때까지 변동 없이 타락하지 않고 그 향방을 하나님을 향하여 보는 그 향방이 변동되지 않게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할까 하는 그것을 내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자양성원 교수 대접' 觀

(1987, 07, 29 수 저녁)

또 우리 (목회자)양성원에는 다른 데 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졸업한 사람들도 모두 와 가지고 편입을 하고 이래 가지고 모두 공부하고 있는데, 우리 양성원에서는 교수 대접을 그래 해요. 박사를 높이 대접하지 안 해.

제일 처음에는 가르치는 실력 있는 사람을 제일 일등 교수로 삼고,

또 둘째로는 이 목회자 양성원을 위해서 공로가 많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을 둘째 교수로 삼고,

또 셋째로는 열심히 충성되게, 열심과 충성되게 하는 그분을 셋째 교수로 삼고,

넷째는 간판 있는 사람을 세웁니다.

세상은 간판을 일등으로 보는데 여기는 간판을 제일 꼼뱅이로 봅니다.


■ 백영희목사님 '교역자 신임투표시 투표'觀

(1988, 11, 4, 지권찰회)

이래서, 내가 이 성구를 본 동기는 여러분들이 11월 27일 날이 그 날 투표 날입니다.

투표 날은 무슨 투표를 하느냐 하면은 자기 목자를 이제 결정하는 것입니다. 자기 목자를 선정하는 것이요 또 자기 모든 지도자를 선정하는 것이요  또 자기를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천국 인도하는 자를 인도자를 선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도자, 인도자, 목자를 선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죽고 망하고 흥하고 쇠하는  것이 전부 여기 매였습니다. 딴 데 매이지 안 해. 여기 매였어.

이러니까, 이것을 뭐 이 세상 어데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그런 투표 모양으로 장난삼아 예사롭게 그런 버릇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 많이 하고 어떤 자를 내가 참으로 내 목자를 삼아야 되겠습니까, 목자를 좋은 목자를 주십시오 하고 기도도 하고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가지고 결정을 해야 되지 그냥 장난삼아, 이 세상 투표는 누구를 한번 놀려 주기 위해서 그래 한다, 또 누구를 한번 꺾기 위해 그래 한다, 높이기 위해 그래 한다 그런 귀신 생각 가지고 하면, 자기 일생에 지도자를 그러면 자기 자살 행위 아니오? 그러니까 아주 기도 많이 하고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고 정성껏 해야 됩니다.

또 기권은 하면 안 됩니다.

또 투표하는 데는 법대로 해야 됩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다른 것도 하고 이 투표하는 법을 잘 알려 주십시오. 투표하는 법 인제 내가 저 먼저 가르쳐 놨는데 아는가 봅시다. 자기가 자기 교회에 현재 모시고 있는 그 교역자를 원하는 사람, 그 교역자를 계속 교역자로  원하는 사람은 투표 용지를 그냥 넣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면 그런 사람은 구멍을 뚫어서 넣는다고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여러분들은 다 아는구만. 그러니까 아는 대로 자꾸 말해서 교인들이 다 알도록 해요. 모르게 하지말고.

또 지금 다른 교역자를 바꾸어 봤으면 좋겠다 싶은 분들은 그대로 써넣어야 양심자요. 뭐 교역자가 갈리든지 안 갈리든지 나는 다른 교역자를 좀 바꿔 봤으면 좋겠다 싶은 분들은 그대로 투표를 해야 된다 말이오. 바꿔 보기로 하는 사람은 투표에 구멍을 뚫어 넣어야 되는지 그냥 넣어야 되는지? 구멍을 뚫어 넣어야 된다고 아는 분 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또 그러면 그냥 넣어야  된다고 그렇게 아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다 아는구만.

그런데 구멍을 똑 요래 뚫어야 돼요. 요래 동그라이 요래 뚫어야 됩니다. 이래 뚫어야 뚫은 게 되어지지 그냥 바늘구멍같이 똑 뚫으면 그거 누가 구멍  뚫었다고 하겠소? 그래 놓으니까 그전에 여기 투표할 때에 그거는 기권으로 해야 된다  그거는 可 표로 해야 된다 그 시비가 났더래요. 어느 장로는 그거는 기권으로 해야 된다 또 어느 장로는 또 그거는 가부可 표로 해야 된다 그래 그 장로 둘이 신강 하는 것을 옆에서 본 사람들이 구경한 사람들이 여럿이 말해.

'그거는 그만 목사 부인하는 것으로 그래 하자' 그 장로도 있었고, '또 이거는 암만 조그만한 구멍이라도 구멍은 구멍인데 이거 목사 지지하는 것으로  그래 숫자로 넣어야 된다' 그래 하는 사람도 있고 그 장로 둘이 세우다가, 지지하는 표로 넣도록 하자 하는 그게 인제 뭐 마지막에는 결론이었더라 해요. 그런 것도 있어요. 그러니까 왜 남한테 그렇게 미혹을 받도록 해? 이래 구멍을 뚝 이래 뚫어요, 이래. 백 목사를 지지를 하면 구멍을 이래 뚫어야  됩니다. 왜 지지하는 것을 구멍 뚫기로 했는가는 구멍 뚫기가 힘이 들거든. 그냥 넣기야 쉽지마는 이래 구멍 뚫으려 하면 힘이 들지 않아요? 지지하는 것을 힘들게 해야 돼. 그래서  이래 구멍 뚫게 했어요, 그래. 모든 우리 전국 교회가 다 그래요.

그러고 표를 안 받고 그만 표를 안 넣는 사람, 기권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우리 서부교회 교인이 아니라. 교인이면서 고거는 못된 거고 거는 교인도 아닌 그런, 양들 모인데 염소 새끼가 와 가지고 지금 있는 거라. 그 염소 새끼야. 여기 투표를 안 하고 기권하고 마는 고거는 염소 새끼라 염소 새끼. 그 염소 새끼인 줄 알아요. 저도 염소 새끼인 줄 알고 해야 돼! 염소 새끼 되기 싫거들랑은, 녜, 가타부타 하는 그거 좋습니다. 백 목사 꼭 가타 해야 백 목사가 좋아하고 부타 해서 안 좋아하는 거 아니라. 부타 하나 가타 하나 그거는 다 정직하게 했기 때문에 다 좋아요. 이러니까 목사보고 하지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 가지고 그래 작정을 해야 여러분들이 되지 목사보고 하면 그것도 인본주의라.


■ 백영희목사님의 '교역자 신임투표' 觀

(1989, 3, 13 양성원 개강예배)

우리 신임투표 하니까 그것 가지고 그 공회 때 말하기를 '이것이, 틀리지 않았느냐?' '왜?' '신임투표 할 때에 그것을 이동한다고 했으니까 이동하면 이동을 시켜 줘야 될것 아니가?

신임투표 시켜 놓고 이동 안 시켜 주니까 이것이 이 행정이 말과 틀리지 않느냐?' 하는 거 가지고 강하게 말을 했었습니다. 나는 그때 말을 하지를 않았어. 내가 이번 총공회 때 그것을 말을 했습니다.

신임투표는 불신임 당하면 거기서 쫓겨나고 또 쫓겨나 가지고 다른 데 오라 할 데 없으면 그만 쫓겨서 저 세상으로 나가서 다시 목회의 선 안에는 못 들어온다는 그 말이오.

쓸모 없는 목회자를 쫓아낸다는 그 방편이오, 신임투표는. 또 하나님이 인정하는 목회자는 높이 들어서 쓴다는 그 방편입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교역자 사례 기준' 觀  

(백영희목회설교록 106호 144페이지, 1984-05-14 월 새벽)

교역자들이 자기가 교회에서 사례 줘 가지고 생활하는 것은, 교역자들이 어떤 교역자는 적게 받을라고 애를 쓰고 어떤 교역자들은 더 많이 받을라고 애를 쓰는데, 적게 받을라고 애를 쓰는 교역자는 좋은 교역자고, 많이 받을라고 애를 쓰는 자는 나쁜 교역자고 그런 게 아닙니다. 그것 가지고는 껍데기요.

적게 받을라고 애를 쓰는 그 교역자가 그들에게 이해를 주기 위해서 적게 받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아직까지 마음이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저희들에게 더 은혜가 되어지고 그 신앙이 자라가게 될 때에 그것을 위해서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별 문제고,

그렇지 안하고 내가 적게 받아서 저들에게 좀 유익이 되도록 쓸모가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한다면 유물주의자입니다.

또 많이 받기를 원해도 많이 받기를 원하는 것은 그래 가지고 저희들이 하는 것을 무엇을 많이 받기를 원해도 많이 받은 것을 그에게 유익이 되도록 한다고 하면 그것을 적게 받아 가지고 유익 되게 하는 것보다도 많이 받아 가지고 더 많이 유익 되게 하면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자' 觀

(백영희목회설교록 84호 282페이지, 1982-05-05 수새집회)

말라빠진 교리라 말은 그 교리를 처음에 발명한 사람이 말라빠졌다 말 아니오. 그 교리를 발명한 사람은 살아서 풀풀 뛰어서 평신도 신앙생활을 바로 한 사람이요 하나님하고 접해 가지고 그것을 발견해서 알았지마는

그 사람의 영감은 빼 버려 버리고
그 사람의 신앙행위는 빼 버려 버리고
능력은 빼 버려 버리고

그 말한 교리, 신조, 이론만 가지고, 그 사람의 이름만 가지고, 이것만 자꾸 연습했기 때문에 영감과 능력은 다 빠져 달아나 버렸고 이랬으니까 해골대만 가지고 이 해골만 대가리에 꽉 채워 가지고,

내가 성경학교 졸업했으니까 목회 할 수 있다.
나는 양성원, 목회양성원 졸업했으니까 목회 할 수 있다.
나는 신학교를 몇이나 졸업했으니까 목회 할 수 있다.
신학박사가 되었으니까 목회 할 수 있다.

여러분들, 목회자가 신학박사 만들어 내는 것이 목회자요? 아니오!

목회자는 평신도를 올바른 신앙생활, 평신도 신앙생활을 완전케 하는, 평신도 신앙생활을 완전케 만드는 그것이 목회자의 하는 일입니다. 이러니까 그 졸업 안 하면 안돼요.


■ 백영희목사님의 '교리 신조' 觀    

(백영희목회설교록 148호 160페이지, 1987-01-07 수 새벽)

성경처럼 정확 무오한 것은 아니나 모두 성령 받은 사람들이 성경보고 깨달은 것이기 때문에 교리와 신조를 성경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겨야 됩니다.

교리와 신조를 성경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고 만일 교리 신조와 자기와 깨달음이 다를 때에는 제 맘대로 깨달음이 다르다고 주장해 나갈 게 아니고 그 교리와 신조가 자기와 깨달음이 다를 때에는 그는 성경을 많이 살펴 가지고서 이제 그 선조들이 깨닫고 나오는 그 교리 신조 그것이 성경에서 확실히 틀렸다 하는 것이 성경 증거가 그 증거보다 강할 때에는 우리는 그 교리를 수정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신조도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거는 정확 무오의 것이 아니고 인간이 들어 가지고 했기 때문에 잘못 할 수도 있는고로 교리 무오는 아닙니다. 교리 무오는 아니고 신조 무오도 아닙니다.


■ 백영희목사님의 '노원 소원 설립취지' 觀

(백영희목회설교록 169호 450페이지, 1988-09-05 임시총공회)

이번에 임시총공회를 열기로 한 이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바로 해 나갈라고 하는 이런 욕망을 우리가 가지고 이 총공회가 오늘까지 계속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대개는 모두가 다 모두 다 거게 좀 머리되는 그런 좀 선배들이 대개는 주장을 해서 그래 해 나왔습니다. 나오고 또 할 수 있는 대로는 독재를 할라고 애를 썼고 또 독재를 거의가 돼 나왔습니다.

이랬는데, 차차 식구가 많아지니까 거게서 많은 사람들의 의사가 모이면 보다 좋은 의사도 또 있을 수 있고 또 많은 숫자가 있는데 위에서 몇몇 사람이 그렇게 독재를 할라고 하면 거게서 혹 좋은 그 점을 빠추고 그렇게 처리하기도 쉽고 이래서 아무래도 이제 많은 사람들이 다 모여 가지고서 잘해 나가는 그 점을 연구해서 하는 것이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번에 젊은 사람들을 숫자가 많으니까 한 삼십 명 위원을 택하고 또 조금 연로한 사람들을 한 십오 명 택하고 이라고 사십오 명을 택해서 젊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젊은 위원들이라 해서 '소원(小員)'이라 이렇게 하고, 나이 많은 그 위원들을 명칭해서 노원(老員)이라 이렇게 노원 소원으로 이렇게 이름을 해서 그 사십오 명을 우리가 선출하기로 그렇게  하자는 그 취지가 과거에 결정이 돼서 아무래도 그 일이 선거되는 데는 임시총공회에서라도 공회에서 그 위원들을 선출하는 것이 옳겠다 해서 그래 이렇게 임시총공회를 모인 것입니다.

모였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제일 바로 하고 잘 되는 그 길을 택해서 걷기 위해서 우리가 이런 방편 저런 방편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무슨 목적은 종전이나 꼭 같습니다. 같은데 몇몇 사람이 하는 것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거게서 협력을 해서 하면은 더 잘되지 않느냐 하는 그런 뜻에서 삼십명 위원을 사십오명으로 늘궜고 또 과거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 지금으로 말하면 노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분들만 선출 위원들로 됐는데, 이제는 젊은 사람 가운데서도 일할 만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젊은 사람 가운데서 삼십 명을 더 추가해 가지고 위원들을 더 많이 내서 좀 더 혼자 살피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살피면 그 살피는 것이 좀 더 정확하지 않겠느냐 하는 뜻에서 이렇게 하기로 작정이 된 것입니다. 전에 다 교역자회에서는 알았지마는서도 혹 장로님들도 처음으로 왔기 때문에 제가 이 설명을 가합니다.

그래서, 지금 임시공회에서 위원 선출은 하는데 이것이 하나의 준비회가 되겠고 또 그 위원들은 지금 앞으로 위원 될 그런 미래에 행사할 그 위원들을 미리 예선하는 일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노원 소원의 임무에 대해서는 어떤 그 의논을 해 가지고서 거게서 무슨 노원 소원에서 결의를 하는 그런 의결기관이 아니고, 의논해 가지고서 결정하는 의결기관이 아니고 심의기관으로서, 찾을 '심'자, 뜻 '의' 자, 하나님의 뜻을 찾는 심의기관으로 그렇게 우리가 정하고 그래서 의결은 누가 하느냐? 의결은 하나님이 하시도록, 의결은 이 신구약 성경 이 법전이 의결을 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노원 소원의 그 의무를 감당해 나가는 순서와  성격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나 지금이나 조금 더 많은 수가 협력을 해서 바로 나가자는 것이지 뭐 과거와 지금과 조금도 변동은 없습니다. 과거에도 독재주의요 또 앞으로 노원 소원도 독재주의입니다. 독재주의는 누가 독재하는가? 독재하는 것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독재하시고 독재하시는 그 법전은 곧 신구약 성경 말씀이 독재하는 법전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만 하나님의 뜻을 찾을라고 하면 또 좀 더 찾을 만한 그런 협력할 인재들이 많이 있는데 그렇게 너무 많은 제한을 두면은 심의하는 데에 좀 무력하기가 쉽겠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 그 위원들로 정해 가지고서 하는 게 좋겠다, 그래 가지고 결의는 총공회서 결의하는데 총공회라고 또 결의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총공회도 역연(여전) 하나님의 그 독재를 찾아서 하나님의 독재에 우리가 독재를 당하고 그분의 독재에 우리가 독재를 당하는 그런 것으로 우리가 정신을 가지고 나가기 때문에 처음 우리가 이 총공회 발족할 때부터 종다수 가결이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해 나옵니다. 그저 숫자가 많든지 적든지 진리일 때는 복종한다.

그러면, 진리 찾기 전까지 그 모든 사람들의 자기의 깨달은 의사를 말할 때에 거게서는 성경이 아닐 때에는 뭐 전원이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속아서 결정한 것이지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뜻이 아닌 것은 결정해 봤자 그것은 다 실패하는 일로지 아무 힘은 없는 것이라 그런 주장을 가지고 처음부터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노원 소원의 임무는 뭐인가? 우리 이 총공회가 전체적으로, 개체적으로 이렇게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뜻에 들어맞으면 그는 영생이요 아무도 망칠 자 없고,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는 그까짓 거 뭐 몇천만이 억이 단체 돼서 단합돼도 그것은 결말이 멸망이 되고야 맙니다. 이 진리를 우리는 알기 때문에 그렇게 인간의 다수의 권위를 절대성으로 두지는 않습니다. 소수보다 다수를 귀하게 여기지마는서도 다수 그것으로써 최종을 삼지를 아니하고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 진리가 돼져야 우리는 거게서 인정을 하지 그 안에는 인정을 하지 않도록  그렇게 우리가 종전에도 해 나왔습니다.

이래서 총공회원, 지금 총공회원이 총수가 얼마나 됩니까? 백오십명이 이렇게 각각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나가기는 나가지마는서도 우리가 백오십 명이 이렇게 찾아 가지고서 서로 합해서 바른 것을 찾을라고 이래 하면은 많이 힘이 들기 때문에 백오십 명 중에 사십오명을 선출해서 대표적으로 그분들이 크고 작은 모든 데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위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위원인데 그 위원 된 분들은 그 위원으로 선출되지 아니한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물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또 개인에게도 물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이라는데, 그래서, 우리 총공회는 하나님이 독재하시는 총공회인데, 하나님이 독재하시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독재를 바로 찾아서 독재하는 총공회가 되기를 우리가 목표하고 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지금 독재를 반박하지마는서도 독재라 하는, 하나님은 독재하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뭐 둘이 아니고 하나뿐입니다. 한 건에는 하나뿐이지 둘이 아닙니다. 하나인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 뜻을, 하나인 하나님의 뜻 그 독재의 뜻을 우리가 찾는 그 공회가 되면은 그 공회는 영생이요 아무도 망칠 자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독재에 복종해서 그 독재에 연결돼 가지고서 독재하는 공회가 되어야 하겠고 이 독재하는 공회가 되는 동시에 그 심의 위원들 중에 심의 위원들 전체가 다 하나님의 뜻을 통일되게 바로 찾아 가지고서 다 하나님의 독재에 딱 들어맞는 독재의 그 위원들이 됐으면 좋겠고, 만일 그것이 안 되면 다문 한 두 사람이라도 합의가 되고 안 되면 한 사람이라도 거게서 하나님의 독재를 바로 찾아 가지고서 하나님과 독재의 단일이 되는, 그 통일이 되는 그런 인물이 만일 우리 공회에 없다고 하면 우리 공회는 사망  공회가 되고 맙니다. 그걸 여러분들이 기억하십시오. 사망 공회가 되고 맙니다.

다문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서 그 뜻대로 하려는, 그 뜻을 바로 찾는 사람이 그 위원 사십오 명이 다 됐으면 좋겠고 정 안 되면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되지 한 사람도 없으면 그 공회는 멸망입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하는 이 말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이해가 되면 될 것이고 이해가 안 되면 이거 뭐 그거 문제인데 제가 하는 말에 대해서는 이 논리적으로 하든지 이 말에 대해서는 뜻이나 정신이나 그 목적이 바릅니까 틀립니까? 만일 거게 대해서 틀렸다고 생각이 되시는 분이 있으면 그것을 얼마든지 말을 해 가지고, 아직까지 공회는 아니지마는서도 우리는 지금 거게 대해서 준비에 대한 모든 상식을 가지자는 것으로서 해설하고 있는데 여게 대해서 좀 잘못된 점이 있으면은 그것을 한번 손을 들어서 좀 설명해 주십시오.

만일 이것이 맞다고 확실히 인정이 되어지면 손을 들어서 표시해 봅시다. 녜, 그러면 우리가 다 의견은 같고 꼭 우리가 하나님의 하나인 그 뜻, 하나님의 뜻인 그 하나 뜻을 찾아 가지고서 우리가 나아가자는 데 대해서 다 통일이 됐으니까 우리들은 다 같은  소망을 가지고서 다 같은 그 방편으로 다 같은 성공을 하자 하는 데에는 우리가 일치가 된 셈입니다. 이래서 그 위원들 중에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여게는 다수가 필요가 없습니다.

이 일반 회에서는 하나보다 둘이 낫고 이래서 소수보다 다수가 권위가 있기 때문에 다수 운동을 해 가지고서 인간  운동들이 많이 있어서 그러기 때문에 회의마다 그 회의가 생겨지면 일 년 되면 그만치 부패, 몇해 안 돼서 다 부패해지고 마는 것이 그것이 역사의 회입니다. 회 쳐놓고 부패해지지 안한 회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거는 절대 없습니다!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쉬운 말 같지마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십 오 명을 택하되 이는 의논을 해 가지고서 결정하는 의결 기관이 아니고 이는 심의 기관, 의결 기관이라 하는 거는 의논 '의'자 '의' 자이고, 우리가 심의 기관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 뜻 '의'자,  뜻을 찾는 그 기관입니다.

이래서 해 나가기 때문에 이렇게 심의할 때는 심의해 가지고 마지막에 결정을 지울 때에는 총공회서 결정을 지우는데 총공회는 그라면 그 의결권이 있느냐?  의결권이 없습니다. 우리 총공회는. 의결권이 없고, 총공회서 위원들이 심의해 놓은 그 뜻과 주장을 그것을 공회서 의논할 때에 공회에서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렇다, 하나님의 법전에서 확실히 이 일을 책임을 진다, 우리는 심판 앞에 다 나아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결정할 때는 '요거는' 이 법인들이 그 법조문을 가지고서, 법전을 놓고 법조문을 가지고서 딱 법적으로 이렇게 모든 걸 결정 지우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가 법전으로 삼았기 때문에 성경 말씀 요런 요런 법전에서 요런 요런 성경 진리로써 이 일은 성경대로 결정이다 할 때에 우리는 그것은 소수가 말하든지 우리 위원 중에, 공회 회원 중에 없어서 어떤 주일학교 학생이라도 하나가 말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뜻대로 맞은 그것을 찾아내면은 그분이 우리의 선지자가 되겠고 그 사람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일치가 됐으면 우리는 그대로 결정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결정을 하는 것은 왜 하느냐? 하나님의 그 법에서 인정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일 너거 잘못했다 이라면은 우리는 당당히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이 법전 어떤 조문 어떤 조문에서 이것이 하나님의 법전적이며, 진리적이 아닙니까?'

우리는 그분에게 얼마든지 심판을 해 심판을 받지 안할 수 있는 그런 확고한 것을 우리가 찾아 나갈라고 하는 것이고 그럴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하지 안할 수 없고 안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이의도 달 수 있고 또 하나님이 축복하지 안할수 없고 우리는 저주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어두우나마 완벽하게 나갈라고 이라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 총공회서는 제일 권위가 누가 있는가? 하나님이 권위있습니다. 그 다음에 권위 있는 거는 누가 권위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그 사람이 권위 있는 사람이지 뭐 총공회장이라고 권위 있는 것도 아니고 위원들이라고  권위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많은 사람들을 자기가 가져서 위원들이 백 명이면 백 명을, 구십구 명을 자기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있다고 해서 권위 있는 거는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면은 진리를 말살시키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진리는 언제든지 우리가 모시고 섬기고 세우지 진리를 인간의 다수가  말살하는 그런 제도를 가지지 않는 우리 총공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아시고, 우리가 과거에도 그렇게 해 나왔지마는서도 앞으로 이 십오 명 제도가 사십오 명이 되는데에 갑자기 그리돼 놓으면 힘들 것이라서 미리 지금 그 위원들을 사십오 명을 선택해놓고 이는 예비 기관으로 선택하고 있는 하나의 정기관의 후보로 이래 선택해 가지고 있고 그동안에 총공회가 삼월달에 열리기까지는 종전 십오 명의 위원들이 모든 그 업무를 담당해서 해 나가고 총공희 그때에 이제 그 교체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십오 명이라는 총공회 위원은 그때까지로서 만기 완료가 돼서 그 끝이 나고 이제 지금 선출해 놓은 그 위원들이 그때에 그 모든 임무를 인계해 가지고서 그렇게 해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다수의 겁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 다수를 자기가 점령을 할라고 애를 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회는 다수가 권위 있기 때문에 세상 기관들은 그 다수에다가 주력을 해 가지고서 힘을 씁니다. 만일 회사라도 그저 오십일 주만 되면은 그것이 뭐 이리저리 할 수가 있는 거라 사십구 주는 다수에  따라가야 되는 것이지마는서도 그러기 때문에 그리 주력하지만 우리는 영 반대입니다.

그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라 성경대로 하나님의 뜻, 성경대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나타난 것으로 우리가 알  수 있기 때문에 성경대로의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들의  주력하는 것과 주력의 성질이 달리 하나님의 뜻이 뭐이냐?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거기에 주력을 합니다.

거기에 주력을 하니까 한 사람이라도 아주 우리 위원 중에 없으면은 그 주일학교 학생이라도 말을 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으면 그것을 우리가, 그걸 말살시키는 거는 바로 하나님을 말살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살을 당하지 않습니다. 네가 대항하면은 송곳 끝에다가 뒷발질하는 자와 같고 시온에 둔 반석과 같기 때문에 떨어지면 빠사지고 그 위에 떨어지면 가루가 된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분은 대항할 수 없는 자인 것을 깨닫는 것이 우리 총공회에 중심이요 정신입니다.

그런고로 이제는, 과거에도 그렇게 해 나왔지마는서도 그 숫자가 적고 이러니까 거게서 마귀란 놈들이 장난을 해 가지고서 이것은 뭐 인간적 독재라 이렇게 생각하는데 인간적 독재라면 그거는 바로 자멸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의 독재를 쓸라고도 하고 인간의 독재라고 말하는 것이지 성경을 아는 사람은 인간 독재라면 그것이 막바로 자기를 가리켜서 하나님과 같이 된 자요 그것이 곧 원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원죄는 멸망인데 원죄를 취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성경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이든지 많은 대중이나 또 그 큰 자기의 무대를 향하여서 외치고 나가는 것은 그 힘은 뭐입니까, 여러분들? 그 힘은 다만 하나님의 뜻과 자기와 일치되는, 하나님과 연결되는 그 힘을 배경으로 삼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교인 천체가 반대해도 상관이 없고 전국 교계가 다 반대해도 상관이 없고 온 세상이 반대해도 상관없고 그거는 자기는 든든한 나타난 하나님의 법전에 배경 두고서 법전의 그 배경이 있고 그의 옹호가 있는 그것을  믿고 나가는 담력이지 무슨 피조물들의 코에 호흡이 있는 그것의 숫자를 믿고  나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나 지금이나 무슨 독재가 변동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처음에, 우리가 종다수 가결을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진리 가결이지 종다수 가결은 안 한다 하는 그것이 제일 처음에 초창기부터 나온 뜻이 그 뜻입니다.

그래서, 어짜든지 우리가, 혹 마귀 시험이 들면, 무슨 숫자를 많이 해서 당파를 모아 가지고서 패권을 쥐겠다 하는 그거는 자멸하는 행위입니다. 다른 데서는 그게 써져도 우리 총공회는 그것이 아직까지는 서지를 못합니다. 왜? 총공회에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런 것을 내비두지를 않습니다.

그런고로 여게서는 그런 헛된 생각은 하지말고 어짜든지, 누가 제일 여기서 총공회를 독재하 자가 누구냐? 총공회를 독재할 자가 누구입니까? 총공회를 독재할 자가 누구입니까? 총공회를 독재할 자가 누구입니까? 누구입니까? 자기 편 숫자를 많이 가진 사람입니까? 말 잘하는 사람입니까? 배짱 있는 사람입니까? 세상에 각양 권력이 있는 사람입니까? 누가 총공회를 독재할 사람입니까? 한번 누가 말해 보십시오. 누가 하요? 손들고. 녜, 하나님의 독재와 하나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독재와 하나된 사람.

언제든지 이렇게 우리가 공회 나가서 이와 같은 정신과 이와 같은 표현과 이와 같은 그 운동이 있으면 공회가 절대 죽지 않습니다. 썩지 않습니다. 아무도 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거게 거머쥐고 당신이 소탕을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벌써 그것을 외면하고 인간들의 다수가 주장을 하도록 그 성질로 나가면 그때부터 썩었습니다. 있는 게 있기야, 안 믿는 사람이라고 다 죽습니까, 어데? 안 믿는 사람 아직까지 안 죽고 다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성신의 역사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의가 그냥 유지 돼 나가고 숫자가 불어 나간다고서 살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떠난 것은 우리는 죽었다고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우리가 안 믿을 때에, 안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마는서도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이라 죽은 자로 취급했지 그 산 자로 취급을 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그 취지는 그런 것이니까 앞으로 지금 임시총공회를 여게서 계속해서 누가 사회를 하고 또 그래 가지고 뭐 사회는 누가 해도 좋겠습니다.

OOO서영호 목사님을 사회자로 몇몇이 정했다 했는데 아무가 해도 좋습니다. 아무가 해도 좋은 것은, 또 발언도 어떤 발언도 좋습니다. 그래서 다른 데는 발언에 대한 제한이 있습니다. 우리 총공회는 발언에 대한 제한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거게  동참했으면은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교인이라면 유치반이나 중간반이나  장년반이나 다 방청하는 사람들은 발언을 할 수가 있도록 발언권을 다 허락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지 안하고서 저 밖에 있는 중이라도 와 가지고서 발언할 수 있습니다. 그 발언권을 줍니다.

다만 발언권을 주는데 그 발언권에 대해서 올바른 발언권을 하면은 그 발언권이 권위가 다 살아 있고, 만일 그 사람이 안된 발언을 한번 딱 해버렸으면 그것으로 인해서 그 다음에는 발언권이 삭제가 돼 버립니다. 그렇게 지금 헌법을 하는 데에  그렇게 지금 그걸 헌법에 기록을 그렇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뭐 중이와도, 중이 처음에 바로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유익된 말을 할란지 나쁜 말을 할란지 모르나 그 사람이 발언을 가지고 발언할 때에 '이것은 우리가 볼 때에는 이거는 틀렸다. 이거는 우리 구원에 방해자요 이거는 안 되니  너는 이 발언 이것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여게 대한 발언권은 너는 박탈된다. 너는  발언권은 없다.' 그렇게 해나가는 것이 우리 총공회서 지금 앞으로 해 나갈 그 헌법으로 그렇게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벌써 헌법에 대해서 이렇게 모든 종파(교파)들의 그 헌법을 이렇게 참고로 삼아 가지고서 지금 헌법을 이렇게 연구해 나오기를 한 사오개월 계속해서 몇 사람이 연구해 나오고 있습니다. 거반 다 돼 가는데 이제 그라면 나중에 가서 하나 하나 우리 공회에서 다 각자들이 그 원고를 가지고 가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읽어서 충분한 깨달음을 가지고 거게서 비판해 가지고 이제 우리들이 이거는 하나님의 뜻에 맞다 하는 것만 우리가 결정을 지울 것입니다.

아무리 뭐 누구 유력한 교파에서 한다고 우리가 따라 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유력한 인물 그것도 우리가 찾지 않습니다. 꼭 우리가 헌법을, 헌법은 그 법전의 모형인데 성경의 모형인데 헌법을 우리가 제작할 때에는 하나 하나 성경적이라 하는 그것으로서 이제 우리 공회에서 결정을 될 때에 그것은 우리 헌법으로  채용하자 하자 그래 가지고서 앞으로 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 아시고 이 선거하는 그 인물 선거하는 그 제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추천제, 호천제, 전형위원제, 뭐 또 투표제 있는데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해 가지고서 우리가 그저 심의의 자격이 있는 사람을 어짜든지 우리가 천거하면 제일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데에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우리 총공회원 가운데에서 사십오 명을 택할라고 합니다.

그 먼저 노원 소원의 그 구별해 놓은 등사해 놓은 그 종이를 다 가지고 있습니까? 만일 그 종이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봅시다. 그것을 가지고 가서 그 노원은 누구누구는 노원이라, 또 누구누구는 소원이라, 이래서 오십사 세 까지가 '소원' 편에 들어가고 오십 오세 이상으로가 '노원' 편에  들어갑니다. 그렇지요? 그렇습니까? 녜. 그렇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 가지고 얼마든지 읽어보고 이렇게 해 가지고서 그렇게 여게서 그만  당장에서 그만 당장에서 이렇게 하는 게 좋은지 그거는 나중에 여러분들이 의논해서 하되 아무래도 가 가지고서 깊이 숙고해서, 만일 그 위원들이 바로 선출이 되고 잘못 선출되면은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차이가 있는 점은 바로 선출되면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빠르고 바로 선출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더딜 것입니다.

또 그 위원들이 잘못돼서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삐뚤어지게 찾았다할지라도 그 공회에 하나님의 뜻이냐 뜻 아니냐 바로 분별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은 그 공회는 죽지는 안할 것이고 한 사람도 없으면 그 공회는 죽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이것을 무기명으로 하느냐? 무기명으로 하는 것 하나 있고 자기가 기명 투표하는 것이 하나 있고 이러니까, 무기명이라 하는 것은 자기네들이 양심의 자유를 자유하지 못하는 그 면을 자유 하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서 자기 속 양심에는 이런데 그 모든 이목 때문에 말하지 못하겠다 이랬을 때에 그 양심을 우리가 찾아서 알기 위해서 무기명으로 그와 같이 하는 것이고, 기명으로 하는 것은 이 공천하는 거와 같이 서로 다 털어놓고 위원들 다 정해 가지고 있으니까, 노원 소원이 정해 있으니까 여게서 누구 누구 거석하다고서 그렇게 공천하는 거와 같이 그렇게 기명으로 투표하는 일이 있으니까 기명투표 무기명투표 기명으로 투표하는 일이 있으니까 그것은 또 자기가 아무 것이를 이렇게 했기 때문에 거게 다 발표가 되어지니까 발표가 되어지니까 자기 속에 계획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하는 그런 행사가 좀 제재는 되는 그런 면에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면에는 장점이 있고 또 그 무기명으로 투표를 하면은 악의적으로 이 공회를 잘되게 할라는 게 아니라 방해하는 그런 고의적인 악의적인 그런 것이 많이 작용을 할 수 있는 그런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가 염려하지 않는 것은 여게서 의결기관이 아니고 다만 심의기관이기 때문에 의결은 성경이 한다. 의논의 결정은 성경이 지운다. 성경이 지우기 때문에 성경은 변치도 안하고 부정이 없고 아무런 착오됨이 없는 그 든든한 성경이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서 의결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는 없지마는서도 그리 되면은 시간이 걸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심히 더디니까 우리 구원이 그 만침 지체되니까 귀한 세월을 허송하계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곧 이 공회와 자기와의 하나인 것을, 한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공회가 약해지면 자기 약해지고, 이 공회가 더러워지면 자기가 더러워지고, 공회가 깨어지면 자기가 깨어지고, 공회가 온전한 공회가 된다면은 자기 자체의 구원이나 자체가 온전히 되어져 간다는, 이거 동일체라는 것을 이것을 생각해야 되지 뭐 이걸 무슨 이 세상에 두고 갈 것 이런 무슨 돈벌이 할 때 쓰는 그런 무슨 단체나 기관처럼 자기가 뭐 쥐었다가 놨다가 밀었다가 당겼다가서 자기 명예나 자기 지위나 여게서 뭐 그런 썩은 것을 탐해 가지고서 이렇게 이 기관이 이리 되나 저리 되나 그걸 움직이는 것은 저주를 받아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저주를 받아야 돼. 내가 저주 안 해도 그거 저주받습니다.

그거는.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는 우리의 영원을 지금 우리가 함께 뭉쳐서 나가는 것인데 이 공회가 삐뚤어지면 내 영원이 삐뚤어집니다. 이 공회가 바로 나가면 내 영원이 바로 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로 자기 금생뿐 아니라 영원 무궁, 또 금생도 바로 나가면 하나님 축복받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영원과 금생과 내세에 자기의 흥망성쇠 그 생사를 결정 지우는 이 단체요 기관이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가 어느 정도의 그자기와의 관련이 있다는 걸 똑똑히 깨닫고 이 공회를 아끼는 것이 자기를 아끼는 것입니다. 이 공회를 어짜든지 아껴서 공회가 상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자기를 상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언제 집회 때에 거룩한 공회에 대해서 증거를 할라고 했는데 시간을 얻지 못해서 못 했습니다. 거룩한 공회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단일 교회, 단일 공회를 말합니다. 단일 공회를 말하는데 공회 중에 교훈 공회가 있고 또 행정 공회가 있는데 행정 공회면을 가리켜서 거룩한 공회라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면을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그 인물을 선출할 때에 자, 어느 사람이면 이 청년들로서는 어느 사람이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우리에게 알려 주겠다 하는 그 사람을 우리가 양심적으로 선정하는 것이 자기가 망하지 안할라 하는 자요. 그것을 생각지 안하고'이 사람은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니 이 사람이 내편이 나와 가까우니'그런 것을 생각하고 하면은 자기를 도울 자가 누구입니까? 자기를 도울 자는 인간이 아닙니다. 자기를 도울 자는 인간이 아니요. 자기를  도울 자는 진리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익한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주는 그분이요, 그러면 우리 공회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바로 결정 지워 가지고 이대로 하자 하고서 이제 그 인도해서 나가는 그 안내자가 되면은 그것으로서 우리에게는 제일 행복된 그 공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미 이 공회를 우리가, 공회가 서져 있고 이 공회에 소속했기 때문에 공회의 그 흥망성쇠와 자기의 흥망성쇠가 하나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과거에 너무 공회는 무슨 하나 노리개처럼, 자기하나 명예의 기관처럼 이래 가지고서 쥐고 놓고 밀고 당기고 헐고 삣고 하는 그것은 참 너무도 거리 멀고 참 상상도 못 할 어리석은 자멸 행위를 한 것입니다. 이제 그것이 엔간히 정리가  됐습니다.

얼마 동안은 그런 것이 몇 사람 있어 가지고서 그저 여게서 뭐이든지 그만 나쁜 거라도 나쁘다 이래 하면은 그 기회에 '저 사람을' 나쁜 걸 나쁘다 하는 건데도 나쁘다 하니까 '조 기회에 지도하는 자와 저자와의 그 사이가 벌어졌을 터이니까' 요게서 의논 딱 끝나면은 나갑니다. 나가 가지고서, 나가면 어데로 갈지 압니다.

어느 다방에 가 가지고서 '하, 그거 어데 사람이 실수 없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다' 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서 이제 그 사람을 동정하고 위하면서 옳은 것을 훼방했으니까 그게 바로 마귀요. 그게 바로 하나님 훼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서겠습니까? 여러분들 그런 사람들이 섰는가 안 섰는가 좀 여러분들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그런 분들이 섰는지 안 섰는지? 그런 분들이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 고기 덩어리야 살아있지. 그분들에게 과연 그 노릇 한 그것이 자기를 행복되게 했는지 안했는지? 우리는 좀 신령한 눈을 뜨고서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시편 1편을 읽은 것은 악인의 꾀를 좋지 안하는 것이나 또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이나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나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이나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나 하는 이 모든 것 이것이 다  뭐이냐? 이것이 마지막 절에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는 요것을 목표로 두고서 하는 것입니다.

뭣 때문에? 뭐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거 뭐, 그거 서지 안해 봤자서 봤자 아무리 하지마는 서 봤자 인간 끼리야 잘하고 뭐 인간뿐이라면 그까짓 거, 아무 가치 없어. 인간뿐이라면 틀려 봤자 틀린 것을 누가 처리할 것이요? 옳아 봤자 옳은 것을 누가 옹호를 하고 누가 도울 자 있습니까? 옳은 것 도울 자도 없고  안된 것 처리할 자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신 전지 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전능하신 그분이 계시기 때문에 그분은 옳은 것을 얼마든지 억에 하나라도 세울 수도 있고 또 삐뚤어진 걸 억이라도 깨뜨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에게 인정받는, 그분에게 인정받기 위한 우리가 모든 생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에게 인정받으면 다라. 그분이 벌써 안 됐다고 부정하면은 저는 살아 있어도, 사울 왕이 하나님이 벌써 부정했을 때에 왕이야 왕이지. 죽을 때도 왕으로 죽었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부정하고 난 다음에는 왕이기 때문에 비참했어. 왕이기 때문에 천대받았어. 왕이기 때문에 멸시받았어, 왕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 받았습니다. 왕이기 때문에 자살하지 안하면 안 되는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제가 이 1편 읽은 것은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노원 소원에 우리 대표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그 대표자, 하나님의 뜻을 찾는 대표자. 이 대표자를 우리가 선정하기 때문에 자기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겠다. 요 사람이 바로 찾겠다. 소원 중에는 요 사람이 바로 찾겠다.' 바로 찾겠다 하는 그 사람을 자기가 추천하고 천거한 것은 하나님의 바른 뜻을 원하는 자가 되겠고,

또 '요 사람을' 바로 찾는 그 사람보다도 '요 사람은 내가 좋아하고 날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요 사람을 천거하겠다' 하는 그 사람은 하나님 뜻을 바로 찾기를 원치 안하는 사람이요, 자기 좋아하는 것 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이 멸망이요 저주덩어리입니다. 그게 멸망이요 저주덩어리라. 이거 알고 알아야 돼! 알면 죄 지을 자가 없어! 알면 죄를 지을 자가  없어! 다 몰라서 마귀 그놈에게 끌려서 죄를 짓지!  

에덴 동산에서 해와가 선악과 먹은 것은 그것이 등신 같아서 몰라서 선악과를 먹었지 알았으면 선악과를 먹을 리가 있습니까, 천상 천하에 제일 해독 많은 것이 선악과였는데? 모르기 때문에, 마귀에게 꾀이고 보니까 그렇게 참 먹음직, 보암직, 지혜로울 만치 그만치 아주 탐스러웠지마는서도 먹고 나서 보니까 멸망 아닙니까?  우리가 마귀가 들어오면 그만 우리 생각이 정 꺼꾸로입니다. 이거 알아야 돼요.

마귀가 들어오면 우리 생각이 정 꺼꾸로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마귀는 어째 들어오느냐? 마귀가 들어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삐뚤어진 거, 하나님에게  삐뚤어진 것,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인 것, 하나님에게 삐뚤어진 것, 크나  작으나 말 한 마디라도 생각 하나라도 뜻 하나라도 소원 하나라도 성질 하나라도 하나님의 뜻에 이탈되는 그거 하나 자기가 자기 속에 용납할 때에 바로 그것이 마귀 덩어리요. 그게 바로 마귀 덩어리입니다. 그거 들어오면 즉시 마귀 거기 따라 들어옵니다.

마귀를 정리할라 할 때는 자기 속에 마귀의 것을 다 청산해야 정리가 되는 것이지 마귀의 것을 두고는 암만 정리, 하나님께 기도해 봤자 하나님도 못 쫓아냅니다. 마귀가 송사하요. '하나님이여, 내 것이 이 사람 속에 있는데 왜 내것을  가지고서 지금 내가 소유하고 내것 가지고 내가 원하고 내것 가지고 내가 살라 하는데 왜 당신이 이래 하느냐?' 하나님은 공의해서 절대 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귀를 못 쫓아냅니다. 다만 그에게 죄악된 것을 감화로 알아서  그것을 물리침으로써 이제 마귀와 하나되는 죄가 물러감으로 마귀가 물러가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은 못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귀신을 물리쳐? 예수님께서 귀신을 물리친 것은 당신이 벌써 대속을 예정했고 예약했고, 마저 완성은 십자가에 못박히셨지마는서도 당신은 그것에 공평된 공의를 삼아 가지고서당신이 승리한 승리의 그 공로가 과거에도 짐승으로 그것 예표 예약적인 승리가 있기 매문에 마귀를 쫓아낼 권리가 있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당신이 쫓아낸 걸 입히시지마는서도 그 공로를 입을 때에는 우리가 만능이지마는서도 그 공로를  벗을 때에는 우리는 다시 공심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래서 제가 이 취지를 지금 말했으니까 앞으로 이제 임시총공회가 열려 가지고 이번에 그 뜻은 다만 사십오 명 그 인물을 선거하는 그것이 주제가 돼 가지고서 이렇게 했고 혹 만일 시간이 있으면은, 그 헌법이 많이 추진돼 가지고 있습니다. 있으니까 그런 걸 한번 또 약간의 한 번 열람을 해 보든지, 그러나 주(主) 목적은 이번에 사십오 명의 그 심의 위원을 우리가 선택하는 것을 주제로 해 가지고서 이렇게 모였기 때문에 그 일을 하면 개인 자유로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이 돼  집니다.

모두 바쁜 가운데 이래 왔는데 오늘밤이라도 선거가 되든지 그라면 용지를 보내 줘 가지고서 오늘 저녁에 모두 돌아가 숙소에서 자기네들이 이렇게 뭐 남한테 묻고 해도 좋고 안 묻고 해도 좋고 어쨌든지 자기 하나님이 '너는 옳게 천거했다.

너는 참으로 내 뜻 찾는 것을 네가 원한다.' '너는 내 뜻 찾는 것보다도 네 편 만드는 것을 원한다.' 거기에서 하나님과 원수되고 하나님과 자기와 하나되는 그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지 안하요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는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라고 하는 그 뜻을 가진 자다' 그렇게 인정할 수 있는 그 여호와의 인정을 바라면서 선출하도록 해야 우리 공회가 속히 모든 일을 건설해 나갈 것입니다. 그렇지 안하면 지체가 많이  됩니다.

그래서, 그건 의논해서 여게서 하자든지 또 지금은 용지도 안 가지고 온 사람들은, 모르겠소. 용지 안 가지고 온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그 기록한 명록을 보고 자기가 다 노원에는 누구누구 소원에는 누구누구 그렇게 결정을 해서 기록해 가지고서 왔는지 모르지마는 서도 그 종이를 가지고 오지 안한 사람이라면 대개 여게 대해서 무관심으로 있었던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돼 집니다.

이러니까 지금이라도 가지고, 거게서는 그뭐 말 잘하는 것도 필요없고 이 세상에 뭐 정치성 있는 것도 필요 없고 다만 여게서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데에 어느 사람이 제일 낫겠느냐 하는 것을 오십사세 이하의 모든 위원들 중에 그런 사람을 삼십 명을 선출하고, 또 오십오세 이상에서 그런 사람을 십오 명을 선출하는데 그것이 그라면 노원소원이 한 기관이라면, 한 기관이라면 한 이름하면 되지 뭐할라고 노원소원이라는 그 두 이름을 붙일 것이 뭐 있겠느냐 하는 그런 생각을혹 가질지 모르겠습니다. 녜, 목적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기관은 두 기관입니다. 자기의 임무는 하나요 목적은 하나 이지마는서도 기관은 두 기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범사에 소원은 소원으로서 우리 모든 총공회 온갖 그 신앙 행사를 해 나가는 데에 거게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서 얼마든지 말할 수 있고 또 거게서 주장을 할 수가 있고 또 그 주장한 것을 노원에서 그 주장을 받아 가지고 그것을 심사해서 얼마든지 비판하신 평가할 수가 있겠고, 또 노원에서 심사한 것을 어짜든지 소원에서도 할 수 있고, 그러니까 서로 상호 견제하는 기관, 서로 상호견제하는 기관으로서 서로 상호 경고시키는 그런 경성시키는 그런 기관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노원은 누가 선거를 하느냐? 노원도 전 회원이 다 선거하고 또 소원도 전 회원이 선거해서 노원에 속한 사람들이 소원을 선거할 수 있고 소원에  속한 사람들이 노원을 선거할 수가 있어서 그 선거는 어짜든지 전체를 망라해 가지고서 제일 하나님의 뜻을 잘 찾는 사람을 자기가 아는 대로에 그 사람을 선거해 가지고서 이제 선정 할 수가 있고,

선정해 가지고 그 사람들이 하는 행사는 각각 노원 소원이 별도로, 일이 별도로 하는 게 아니라 같은 일이나마 역사하는 그 역사를 별도로 해서 노원은 노원대로 해 가지고서 노원이 합해 가지고 이거 하나님의 뜻이라, 노원이 합해서 선출한 걸, 자기네들이 깨달은 것을 이제 노원에서 발표하는 게 있겠고 소원에서 발표하는 게 있겠고, 소원에서  발표한 것을 노원이 심사할 수 있고 또 노원에서 발표한 걸 소원이 심사할 수 있어 가지고서 이렇게 자꾸 심사 이래 해서 마지막에 결정은 어데서든지 그 성경이 결정한다. 의결은 성경에서 의결권을 가지고 있다 하는 그런 것이니까 모든 선거하는 제도도 제가 생각한 것은 그런 것입니다.

이래서, 어짜든지 저는, 이제는 요만큼 자라 나왔고 요만큼 됐기 때문에 저는 지금 이제는 제가 거게서 무슨 공회장이나 뭐 그런 것을 해야 되는 그런 단계는 다 지나갔기 때문에 그거는 다 누구든지 할 수 있고 이제 나는 지금 뭣이 있기 때문에 나 할 일이 있느냐.? 나할 일이 있는 것은 노원 소원에서 뭐라고 말하든지 하나님의 뜻에 딱 맞았으면 찬성하고 내가 협조할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 틀렸으면 내가 혼자라도 그걸 그것을 바로 수정해서 반대해서 바로 나가서 어쨌든지 하나님의 그 분의 독재에게 내가 독재를 당해서 그저 독재하는 그것만이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여게서 그뭐 심의 기관에는 제가 거게서 위원 중에 당선되면 들어간다 할지라도 저는 지금 생각하기는 인제 노원이나 소원이나 이만큼 제도까지 나왔으니까 이제는 의결권이 하나님에게 있고 성경에 있기 때문에 그 아무런 뭐 염려할 것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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