马太福音13章24~30节/마태복음 13: 24-30

2007.05.19 13:00

김반석 조회 수: 추천:

800203主前(马太福音13:24~30)
선지자선교회 1980年2月3日主日上午
本文:马太福音13章24~30节:

耶酥又设个比喻对他们说:“天国好象人撒好种在田里,及至人睡觉的时候,有仇敌来,将稗子撒在麦子里就走了。到长苗吐穗的时候,稗子也显出来。田主的仆人来告诉他说:‘主啊,你不是撒好种在田里吗?从哪里来的稗子呢?’主人说:‘这是仇敌做的。’仆人说:‘你要我们去薅出来吗?’主人说:‘不必。恐怕薅稗子,连麦子也拔出来。容这两样一齐长,等到收割。当收割的时候,我要对收割的人说,先将稗子薅出来,捆成捆,留着烧;唯有麦子要收在仓里。”

    关于这段话的意思,在36节以下,主耶酥对他的门徒作了简单的解释:
“当下,耶酥离开了众人,进了房子。他的门徒进前来,说‘请把田间稗子的比喻讲给我们听。’他回答说:‘那撒好种子的就是人子,田地就是世界,好种就是天国之子,稗子就是那恶者之子,撒稗子的仇敌就是魔鬼,收割的时候就是世界的末了,收割的人就是天使。将稗子薅出来用火焚烧,世界的末了也要如此。人子要差遣使者,把一切叫人跌到的和作恶的,从他国里挑出来,丢在火炉里,在那里必要哀哭切齿了。那时,义人在他们父的国里,要发出光来,象太阳一样。有耳可听的,就应当听。”这就是解释。
主耶酥在讲述实际状况时,为了使难以明白的实况变得容易理解,总是用比喻来教训。所以比喻没有像实际那么准确。我们要在知道实况比比喻更准确的前提下,通过比喻来研究其实体——主的道。
田主在田里撒了麦种,但等他睡觉的时候,有仇敌来了,把没用的稗种撒下去,想毁掉这年的收成。因为是在睡觉的时候来撒的,所以,不知道撒了稗种,直等到渐渐长大,快结实的时候,才确实地判明它就是稗子。仆人来对主人说:“不是撒的麦种吗?从哪里来的稗子来危害麦子呢?”主人说:“是睡觉的时候,仇敌来撒下的。”
仆人说:“那么,去薅出来吗?”主人说:“恐怕薅它害及麦子。如果薅它害及麦子,不如不薅,先留着它,等到收割时派工人先将稗子薅出来,扔到火里烧,麦子要收在仓里。”耶酥是这样用比喻来教导的。
后面的解释中说:田地就是世界,撒好种的就是人子,撒稗子的就是魔鬼。好种就是天国之子,稗子就是那恶者之子,收割的时候就是世界的末了,收割的人就是天使。世界的末了也要如此,要把属天国和属地的分别出来,一个要丢在永远的硫磺火湖里烧掉,义人要在天国里像太阳一样发光。是这样解释的。
这个比喻教训了一个道理,它教训的是信耶酥之人的生活之道。因这是真正的道理,所以,这个道理不只适用于特定的存在,而是适用于众多事物中。从大的范畴上来讲,这是适用于世上所有事物的真理,从小的范畴上来讲,是适用于每个信耶酥之人的真理。
我们(1)要在大的整体范围的世界中,分辩这两样麦子和稗子;(2)要在有信仰的普世教会中,分辨麦子和稗子;(3)要在自己个人中;(4)或在自己家庭、自己的教会中,分辨这麦子和稗子。
在大的范畴上,我们要分辨所有的教会、教界中的麦子和稗子。而在此之前,我们首先要分辨的是自己里面的麦子和稗子,之后再分辨各教会、教派和全体教会里面的麦子和稗子,在分辨完教会里面之后,最后,在大的世界范围内去分辨。要以这种正确的顺序进行。
如果逆向而行,在分辨自己之前,先分辨教会,分辨教会之前分辨教界,分辨教界之前分辨世界,那么,这就是假冒为善、自欺欺人。
现在,我们先来分辨自己里面的麦子和稗子。我们要知道我们首先应当做的就是要分辨自己里面的麦子和稗子,并照经上相关教训,对这些保持正确的态度。下面我将分述我们个人里面的这两样种子。
稗子是指危害天国、危害世界、危害灵魂、身心、肉体、危害我们的救主、危害自己、危害真理的一切人间知识。看重属世的贫富,而轻视天国的贫富;看重属世的尊卑贵贱,胜过天国的尊卑贵贱,主耶酥将这一切用稗子做了比喻。
好种子,麦子是看重天国胜过世界,看重神胜过自己,看重神的知识胜过人间知识,看重永恒世界的尊卑贵贱胜过世上所有尊卑贵贱,看重永恒世界的贫富贵贱胜过世界的贫富贵贱,以此为准则生活的所有一切。耶稣将这些比作了麦子。
    所以,(1)稗子是使我们的救赎受损的所有属世的知识、言语、人、事物、工作、地位、权势等,这些无论是什么都属于稗子。(2)属天的一切包括以神和天国的一切为主,属于神和天国、为神和天国存在的一切,耶稣将这些比喻成麦种。
    明白了这些,我们就可以在整体范围、中间范围、小范围中去进行分辨了。在这个比喻中,可以应用于我们自身的教训,首先是仇敌是在睡的时候来撒种的。如果没有睡觉,看守了,就不能撒。因为是在睡觉的时候撒的,所以,我们首先要注意,不睡觉,警醒!
睡觉的意思不是指肉体、身体的睡眠,而是指心灵的睡觉。心灵因着什么而睡呢?一句话回答就是,心灵是因着世界而睡。因世界而困倦、因世界而睡。因着世界,人的心灵变得昏暗。

人的心灵警醒、了亮,意思就是将神的救赎、将来要去的天国、神的审判与复活、死亡、为预备永恒而短暂寄居的世界等等,将这些放在心里,去感受、思想、深深思考(这叫良心),并在此思想冲击下保守自己的心,坚守这种思想、这种盼望、这种感化,这就是警醒。

当我们处于这种状态时,有损我们得救的任何诱惑,即便美好的荣耀、平安等,也不能诱惑我们。因为惟有这才是对我们最重要的。“要警醒,提防小偷挖透房屋偷东西”这个意思和这里的“睡觉”是同样意思。

“要警醒,提防小偷挖透房屋偷东西”这个意思和这里的“睡觉”是一个意思。警醒的人,当主人来到,就得称赞和奖赏;睡的人和酒醉的人一同吃喝的人要得到处治。
酒醉和睡觉是因世界而睡觉,是因世上的富贵荣华而忘记仰望永恒。这就是睡觉的人。因钱财而睡的人、因权势而睡的人、因名誉而睡的人、因享乐而睡的人、因尊荣和名誉而睡的人、因人情而睡的人、因家庭而睡的人,所有这些,不管因什么而忘记灵感的心灵、正常的心灵,都是睡了觉的状态。
这个时候,邪灵就会瞄准机会,看这个人关注钱的话,就通过钱迷惑他;若这个人关注权势,就通过权势惑他;若这个人关注情感,就通过情感惑他;若这个人对仇敌有复仇之心,就通过它给他灌输让他灭亡的东西。这就叫睡觉的时候。
所以,在这个教训中最值得我们注意的是,对于我们如果能不睡警醒,就最好要警醒,这是最重要的。第二点,我们要知道,哪怕在我们短暂困倦睡了的时候,都有可能有仇敌来,在我们的心里、在我们的知识里、在我们的思想里、在我们的愿望里、在我们的性情里、在我们的欲望里、在我们的事业里、在我们的方法里撒下灭亡的种子。
在我们不知不觉中,这些灭亡的根源、人生失败的根源、危害自己与他人的人生根源、人质人性的根源等会来到我们内心,占据一席之地,并渐渐渐渐得势壮大。
因怜悯我们,主耶稣对此也给我们提供了方法。就如田地对于种子撒下来,它除了警醒,无力抗拒一样,我们的心灵如果不时刻警醒,那么,不管是来自邪灵的还是来自其它什么的,我们都无力抵挡它们进入我们内心。而它们一旦进来了,我们就是再翻弄土地也是枉然,因为在麦子和稗子发芽时,一般的农夫是辨认不出它们的。就是长到这么高也不知道。因为长着一样的红穗子或者白穗子,叶子也一模一样,所以无论如何都辨认不出来。
因为每种谷穗都配有和它长得一样的稗子,所以,有的植物学家甚至认为,所谓的稗子就是谷物落入土里变质,之后由变质的东西生出来的,不知是否真的如此。我也种过地,在我家乡,管稗子叫稗草,小时候再看也辨别不了。刚长这么大该锄草的时候,别的杂草都能认出,就是这稗子认不出。这个时候就是想辨认也辨认不出,仔细看也不行,所以,只能放它一码。而等它慢慢长大就知道了,那时,谁看了都能看出来。
与此同理,我们内心里已被种下导致人生灭亡的根源、错误的思想、错误的教训、接受错误教导的错误教义、错误的信条、错误的讲道、错误的注解、错误的解释、错误的话、错误的所有见解。这些在种下当时是看不出来的,但在它们慢慢长大时,如果我们能像农夫一样,因麦子和稗子长在一起,所以想尽早除掉以减少危害,因而在它们生长的时候一直观察,想通过它们的生长辨别出来,那么最后我们就肯定能发现稗子。
啊,自从我接受这个教训,我的人生变得越来越世俗,我越来越远离神,我变得越来越刚硬了!当我们接触一个人、接触一种思想、接触一篇讲道、接触一个教训、接触一本圣经(当然,虽然世上出版众多种类的圣经,但真正圣经只有一本)以后,就能知道自己的人生是偏向神和神国了还是偏向被造物和世界了。我们自己能知道这些。
当我们遭遇非正当的现实时,我们可以通过观察自己胜过这些的力量是变强还是变弱、同时自己向着真理做出的抉择和坚韧是变强还是变若而进行分辨。也就是可以通过自己在生活当中一天天的成长进行分辨,而且等到结果子的时候,就更容易分辨了。我们通过观察这样或那样事件的最后结果,通过观察一个信仰结出的果子,就可以分辨出是非。这对我们是第二重要的。

这样,如果我们等等看的话,就可以知道被种到自己里面的是人本的还是神本的,是属魔鬼的还是属圣灵的,是属世的还是属天国的,是不义的还是义的,是救赎的还是灭亡的……通过观察结果就可以知道。

日寇统治之前开始,福音的种子就播撒到我们国家,能够辨别麦子、稗子的大事件有神社参拜,当时所洒下的血就是辨别真伪的果子。数十年教会的成长,通过神社参拜时期所结的果子首次得到明确判定。
解放以后,教会在经历其全能时期,也就是只要拿着圣经就能畅通无阻地进入教堂的教会全盛时期之后,面临了又一个试炼。虽然是在局部地区爆发的,但通过6.25事变这样一个大试炼,人们可鎰出判定,自己是正确地相信耶稣的,还是错误地相信耶稣的;自己所接受的是正确的福音还是错误的福音;自己的信仰是人本的还是神本的;自己是属世的还是属天国的;自己是自我为中心的还是以神为中心的;自己作为十字架的军兵是在为主的道献出身体和生命,还是在为自己利用耶稣和福音。我们需要这样去分辨。
不知道稗子长出来了,但随着它一天天长大就越来越明显。越往后越分明,到最后穗子开花时就完全可以断定了。
为什么呢?因为到那时,稗子就要被天使丢到硫磺火湖里烧掉,不能进入永恒世界。穿着紫色袍的财主虽然在世上拥有过一切,但他未能脱离世界这个关口,他从永恒世界中连一滴水也未能讨得。神的审判是如此准确判断永恒的人生,而在我们面前有一扇扇门等待我们通过——一夜的痛苦与永恒的痛苦,一夜的尊贵与永恒的尊贵……因此,我们有重大义务去分辨今天我们里面的麦子和稗子,这是十分重要的。
到最后锄草的时候,哪怕是愚蠢的农夫也大多知道。因为别的不说,稗子比麦子长得茂盛。和小孩子一起锄草的话,小孩子会问:父亲,这是稗子吗?薅掉它吗?看什么知道的呢?父亲回答:不等等,啊,这不是稗子,只是底下施的肥多,长得壮而已,不是稗子。啊,这边这才是稗子。如果是在一样的土质,稗子相对来讲,一定长得更茂盛。就是这样,在世上,假冒为善的人要逞强一时,人本主义要逞威风,耶稣教内‘世本主义’要逞威风,他们能被世界认可变得有名。但如果这不是真正的,那又有何用呢?
所以,我们应当像农夫辨别麦子和稗子一样,时刻睁开眼睛观察,看看主张自己内心、性情、人生、自我的,到底是导致败亡的还是导致永生的。不要只看一时的亨通,我们受过信仰的感化,学过圣经的真理,我们是有信仰的人。
我们不要看一时的兴盛得势,而要看种在自己里面、装在自己里面的知识、智慧、方法,及连接自己的社会圈、同事、职场、地位等,这些慢慢促使了什么成长?所结出的是灭亡之果还是救赎之果?要有一双不断注视这些的双眼。我们不能只寻求当日的快乐,而不去思考这些。
我们所度过的每一天、每一个小时、每一个事件,都是作为永恒的原因在度过。将来到达永恒世界,会有让我们惊奇的:有些原本以为虚无、不为人所知的却以尊贵样式出现;原本以为极其尊贵的,却显明是虚无的。所以要记住,我们不能得过且过地度过我们的人生,因为在我们前面有永恒无穷世界延续,我们是拥有永恒未来的人。
暂时有吃的没吃的不是问题;被人认可与否虽然是个大事,但也不是问题。对此保罗这样说,很多人说我十分看轻人对我的论断,虽然我内心没有可自责的,但知道这是虚无的。
为什么?我们将来都要到全能的、无所不知的神面前接受审判,所以,心里巴不得像他一样明白、像他一样准确判断,从而今天就能修正一切。

所以,农夫没能分辨稗子,直等到它长大。他是通过观察一段时间的成长,到吐穗时节才知道的。主耶稣说,他来是为了让我们观察自己的人生,判断、审查自己。主说,我来是为审判这世界。这是预审。
我们在世上寄居的时日,与其期待自己在所有事情上受人认可,不如自己自觉自愿地进行自我审判,分辨哪个是麦子,哪个是稗子。通过观察自己的人生意识到:啊,这句话使我受了损,这个知识带给了我6﹒25等等。6﹒25的时候,有很多信徒先后经历过来自两方面的迫害。我曾经听到过很多见证,说他们在受迫害之时,平时听道时觉得习以为常的神的话语,为他解决了一切,照亮了他前面当走的路,因而,全然靠着话语获得平安,靠着话语得胜,自己也因而完成了救赎。曾听过许多这样的见证,说某人是听了某人的什么讲道而做到这些的。
麦子与稗子就是这样来分辨的。当患难来临之时,当收割结果的时节来到时,原本觉得习以为常的某人迷惑人的关于俗语的教训,这时这个思想就要出来作怪,你会觉得那样做也可以啊,所以,就转离原本一心一意追求的信仰旅程,或向左或向右偏转,使自己陷入失败。
通过历史可以看到,被拣选的人获得成功,是因着他从神那里获得的属灵道理;而导致令人后悔的失败,是因被种到自己内心的稗子——错误的教义和信条、错误的领悟、接受的错误教导。不是我们所不知道的原因,是这些导致失败的。
所以,最好的办法是不让稗种撒下,这是最为智慧的;其次就是不要等稗子长足了,把土地的养分耗尽后再除掉,而是越早发现越有利。
所以,我们要冷静地观察自己:啊,我是这样的人,我有这种要素,啊,这话是这个意思,虽然出自仇敌之口,但这句话真的是从神而来的。就是这样,不管是来自自己的下属还是上司,是来自亲近者还是仇敌,不管走到哪里,都要观察被种到自己里面的,静观其变,每天修正对错。那些只要是‘属己的’便一概认可的人,他是太愚昧、太愚笨的人。因为就算你靠着主张这些占据了世界又能怎样呢?最终将面临的是无所不知的神的审判啊。总之,稗子是越往后越容易辨别,等到结果子的时候就最容易了。
就是这样,我们的品性、知识、思想、属性、主张等自身所有的一切,在家庭、社会处世过程中,我们能够辨明在这些方面中有哪些是麦子,哪些是稗子,哪些是属天的、能带来永生的,哪些是要带来永罚的。圣经教导我们一生都要查验这些,这种自我审判和清除的工作要在一生中一直持续下去。
我们要冷静地判断自己,在灭亡来临之前对自己进行预审。不要错过这个可以审视自己、整理自己的机会。
第三,仆人问主人:“要薅掉吗?”回答是:“要薅,但有个前提条件,就是如果对麦子不利,薅掉以后对麦子有害,那就不能薅。薅掉是为了麦子的益处,如果让麦子受损,那就不能薅。所以,薅掉与否要看对麦子有没有益处而定。”圣经只做了简单记录,但我们可以继续想象一下,如果仆人说:“这棵稗子离麦子很远,不必担心,薅掉对麦子没有影响。”那主人就会说:“那就薅掉吧。”“可这棵稗子如果薅掉那会比留着更加伤及麦子。”“那就不要薅掉,这棵是薅掉了反而更有害,但从中间掐掉却是可以的。给它拦腰掐断吧。”我想可能会这样处理。

灭亡的要素(也就是罪)在我们里面和外面早已开始动工,在教会里面也搀杂着这些。这就需要有得当的劝勉和惩诫,而我们必须注意的是,不管这些稗子(不是来自神的错误的东西)是在自己里面还是在自己外面,不管是在教会里面还是在家庭里面,在我们处理这些稗子时,必须要斟酌救赎的利害关系,在去除时不要使之对救赎有害,而要使之对救赎有利。在对自己里面的进行处理时,也不能使之对救赎有害。
    
但我们必须要清楚这是行将败亡的东西。在教会里也不可以不清楚这一点。既已发现,也知道危害,却不予以处理,不是因为薅不掉,而是因为薅掉它,很多“义”就会受损,所以,才会等待不带来损害的恰当时机,在不带来损害的范围内慢慢除掉它。就是说,我们行事要为信仰带来益处而智慧地去行。这也是值得注意的重要方法。总之,如果薅掉对信仰和救赎的根基所带来的损害比暂时放它一码更大的话,就暂时不要处理。
第四,如果处理一个稗子所带来的负面影响,会使很多救赎中途夭折……比如处理了这件事,会使很多救赎夭折……那么,这时,作为不带来危害的权宜之计,我们就要向神祷告,将它交托给神的权能;向神祷告,之后交给岁月;向神祷告,之后交给轮回的自然法则。而结果神、岁月、自然的处理,没有给救赎带来损害。这里说的就是农夫对此做了准确判断。

不管是我们身内的还是身外的,我们都要能够明确判断哪些是灭亡的要素,哪些是经不起审判的将亡之物,哪些是能达到救赎的,哪些是属于义的,哪些是属于罪的,哪些是属神的,哪些是属魔鬼的,哪些是能给我带来益处的,哪些是会给我带来害处的。不管这些是在我们里面,还是在自己家庭里面、在自己社会里面、在自己国家里面,在自己生活的世界里面,我们都要清楚其最终结果什么。知道这是要灭亡的,这是致死人的,这是使人活的,这是害人的,这是带给人益处的,这是义,这是不义……不论是社会里面的、国际里面的、民族里面的、世界里面的、人类里面的、教会里面的,我们都要搞清一事物最终结果是什么。在处理与我们有关的事务时要斟酌利害、慎重予以处理,但对其最后结果、对其本身性质,要有一个明确判断。这就是基督徒的人生。对此圣经用比喻教导了我们。
大家一同祷告。
第一、要警醒,不让稗子种下。第二、东西既已种下,就不可能知道好坏,所以,需要一天天通过生活体验、观察和审查,判定哪些是该薅的,哪些是该留的,哪些是麦子,哪些是稗子;第三、虽然已经作出判定,但对于薅掉与否,要以对救赎有益为准则,决不能对救赎有害;第四、对哪些会带来灭亡的结果,哪些会达到救赎,一定要有一个明确判断。



1980.  2.  3. 주일 오전
본문: 마태복음 13: 24-30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된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곡간 에 넣으라 하니라

그 밑에 36절 이하에 보면 이 말씀의 해석을 주님이간단하게 제자들 에게 해 주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에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는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면 이를 갈며 있으리라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있는 자는 들으라 이기 해석입니다.

언제나 실상을 말할 때에 실상을 말할 때에 깨닫지 못하는 점을 깨닫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비슷한 비유를 들어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유는 실상과 같이 정확지를 아니합니다.  비유보다 실상은 더욱 더 정확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비유로 그 실상인 도를 연구해야 합니다.  

주인이 밭에다가 곡식씨를 심었는데 잘 때에 원수가 와서 못쓸 가라지 씨를 뿌려서 이 농사를 폐농되도록 한 것입니다.  잘 때에 원수가 와서 뿌렸기 때문에 뿌리는 것도 몰랐고 그것이 차차 차차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 가까오게 될 때에 비로서 가라지라는 것이 확실히 판명됐습니다.  일꾼들이 와서 곡식씨를 심었는데 이 가라지가 어떻게 나 가지고 곡식을  해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잘 때에 원수가 와서 그렇게  뿌린 것이다
그러면 이것을 뽑으리까 뽑다가 도리어 곡식이 손해갈까 하니 그것을 뽑으므로 뽑으므로 곡식이 도리어 손해갈 때에는 안뽑는 기 나으니까 안 뽑는 기 나으니까 뽑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추수때에 일꾼들을 보내서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불에 던져 사르고 곡식은 모아서 곡간에 넣겠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쳤습니다.  
그 밑에 해석에 밭은 세상이요 좋은 종자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가라지를 뿌리는 자는 마귀라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들이라 추수때는 세상끝이요 추수할 일꾼들은 하나님의 천사들이라 이와같이 세상 마지막에도 하늘나라와 땅에 속한 것들을 분별해서 하나는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 넣어 사르고 의인들은 하늘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이렇게 해석을 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이치를 가라쳐서 말씀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예수믿는 사람들이 사는 그 이치를 가라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참된 이치기 때문에 이 이치는 어떤한 사실 한 존재에게만 해당되는것이 아니고 수많은 것들에게 이 이치는 다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넓은 범위에서 이 세상 전부에게 해당이 되는 참된 이치요 그보다 좁은 범위에서는 세계의 한국의 모든 교회 교계들에게 해당되는 이치입니다.  더 좁은 데에 해당되는 이치는 예수 믿는 개인 개인에게 해당되는 이치입니다.
우리는 아주 넓은 그 전체의 범위라고 하는 ①세상에서도 이것을 이 두가지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해야 하겠고 ②또 믿는다고 하는 천하에 있는 교회에서도 이 가라지와 곡식을 구별해야 하겠고 ③또 보다 자기 자기 개인에게 있어서 ④혹은 자기 가정에 있어서 자기 교회에 있어서도 이 곡식과 가라지를 우리는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초절적으로 온 교회 안에 있는 교계안에 있는 곡식과 가라지를 우리는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초절적으로 온 교회 안에 있는 교계 안에 있는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하기 전에 자기 안에 있는 곡식과 가라지를 먼저 구별하고 난 뒤에 개교회와 교파들과 모든 교회들 안에 있는 이 두가지를 구별해야 하겠고 교회안에서 구별한 다음에 넓은 전 세상에서 구별하여야 이 순위가 바로되는 것이 되겠습니다.
여기에 거슬려서 자기보다 교회 교회보다 교계 교계보다 세상 이렇게 구별하면 그는 외식이라 스스로 속은 일이 되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첫째로 우리가 구별하여야 할 자기 안에 있는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해서 여기 대한 이 교훈대로 올바른 이 관계를 가지는 것이 먼저인 것을 알고 이 시간 각자의 개인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 종자에 대한 구별해서 여기 대한 이 교훈대로 올바른 이 관계를 가지는 것이 먼저인 것을 알고 이 시간 각자의 개인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 종자에 대한 구별을 증거할려고 합니다.  

가라지는 천국을 해하는 세상을, 영을 해하는 심신의 육을, 구주의  하나님을 해하는 자기를, 진리를 해하는 모든 인간 지식, 하늘나라의 빈부를 무시하고 보다 크게 여기는 세상 빈부를, 하늘 나라의 존비귀천보다 세상이 존비귀천을 크게 여기는 이런 것들을 비유해서 가라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좋은 종자 곡식은 세상보다 천국을, 자기보다 하나님을, 인간 지식보다 하나님의 지식을, 세상의 모든 존비귀천보다 무궁세계의 존비귀천을, 세상의 빈부귀천보다 무궁 세계의 빈부귀천을, 더욱 크게 여겨 여기에 준하여 사는 그 모든 것을 비유해서 곡식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는 우리의 구원을 손해케 하는 모든 세상에 있는 지식이나 말이나 사람이나 물건이나 직장이나 지위나 권세나 어떤 것이든지 그것은 다 가라지에 속한 것이요 ㉡하늘나라에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과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것을 위주로 유익되게 이것에게 속해서 이를 위하여 있는 그 모든 것을 좋은 씨 곡식 씨에 속한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그럼 여기서 전체 범위 중간 범위 좁은 범위를 각각 다 구별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 비유에 있어서 첫째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은 원수가 잘 때에 이 가라지 씨를 와서 뿌렸습니다.  자지 안하고 지켰다면 뿌리지 못합니다.  잘 때에 뿌렸으니 우리가 첫째로 주의 할 일은 자지 아니하고 깨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잔다는 말은 육이 몸이 자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심령이 자는 것을 말합니다.  심령은 무엇으로 자게 되느냐 한말로 말하면 심령은 세상으로 잠들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피곤하고 세상으로 잠듭니다.  세상으로 인하여 인간의 심령은 어두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심령이 깨어 밝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과 무궁세계의 우리가 갈 하늘나라와 하나님의 심판과 부활 죽음 무궁을 준비하기 위해서 잠깐 동안 머무는 나그네 세상 이런 것을 마음 가운데에 가지고 느끼고 생각하고 또 깊이 깊이 여기 대해서 생각하는 마음이 양심이라고 하고 이렇게 이것을 생각할 때에 거기 충격 받아 거기 관련된 그대로의 사상의 사람으로 소망의 사람으로 그대로의 충격받아 거기 관련된 그대로의 사상의 사람으로 소망의 사람으로 그대로의 충격받은 충격받은 감화의 사람으로 있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있을 때에 우리의 구원을 손해케 하는 어떤 유혹도 아름다움의 영광에 평강에 좋은 것들도 우리를 유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합니다.  깨어 있어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하지 못하도록 깨어 있으라 하신 말씀과 여기 잔다는 말씀이 같은 말씀입니다 .  

깨어 있는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하지 못하도록 깨어 있으라 하신 말씀과 여기 잔다는 말씀이 같은 말씀입니다.  깨어 있는 자는 주님이 오실 때에 칭찬과 상을 받았고 자면서 주객으로 더불어 술을 먹고 취하는 사람들은 벌을 받았습니다.

취하고 잔다는 말은 세상으로 인하여서 잠들었습니다.  세상 부귀 영광으로 인해서 무궁을 바라보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자는 자입니다.  돈으로 돈 잠든 사람, 권세 잠든 사람, 명예 잠든 사람, 행락 잠든 사람, 존영의 명예에 잠든 사람, 인정에 잠든 사람, 가정에 잠든 사람, 모두 다 어쨌든 영감의 이 심령인 정상의 심령을 무엇으로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다 잠든 것입니다.  
이럴 때에 악령은 그 기회 기회를 노려 그 사람이 돈을 보고 있으면 돈을 통하여서 미혹하고, 권세를 보고 있으면 권세를 통하여 미혹하고, 감정을 보고 있으면 감정을 통하면 미혹하고, 원수의 복수심을 가졌으면 그것을 통하여 그에게 멸망의 것을 넣어 줍니다.  그것을 잘 때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교훈에서 제일 주의할 것은 자지 안하고 깨어 있을 수 있었으면 깨어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둘째로 자기가 잠간 곤해서 잠이 든 사이라도 원수가 와서 내 마음에 내 지식에 내 생각에 내 소원에 내 성질에 내 욕망에 내 사업에 내 방편에 분명히 멸망할 씨를 심우고 간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멸망에 원인이, 실패할 생애의 원인이, 자타를 해칠 수 있는 그 생애의 원인이, 인질 인성의 원인이 이것이 와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자기 속에 자리잡고 발생될 수 있고 이것이 발생될 수 있고 이것이 차차차차 세력을 얻어 커지게 될 수 있습니다.

여기 대해서 다시 주님은 긍휼로 방편을 가르쳤습니다.  네가 깨어 있는 것 외에는 씨를 뿌릴 때에 밭은 토지라는 것은 받을 것 뿐이지 거부할 힘이 없습니다.  우리 심령이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악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나 어떤 것이라도 우리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힘이 없습니다.  일단 들어와서 있으면 아무리 흙을 나벼봐도 모르니 농부는 삼가 가라지와 곡식이 움틀 때에는 여간한 농부가 모릅니다.  어수이 이만치 자라서도 모릅니다.  꼭 같이 대궁이 붉은 것도 있고 흰 것도 있고 푸른 것도 있고 잎사귀가 꼭 같습니다.  암만 봐도 모릅니다.

어떤 식물 학자는 이 곡식과 같은 가라지 이 곡식에는 꼭 그와 같은 가라지 저 곡식에는 꼭 그와같은 가라지이기 때문에 이 곡식이 땅에 떨어져 묻혀 변질된 고 변질 되어서 많은 변질로 생겨진 것이라 그렇게 까지 말을 합니다.  모릅니다.  저도 곡식 농사를 지어 봤는데 가라지라는 것은 우리 밭에는 가래초라 그렇게 제 지방에서는 말합니다.  어릴 때는 봐야 모릅니다.  나서 요만할 때에 곡식 밭은 제초해서 내야 되는 데 다른 풀은 다 알겠는데 가라지는 몰라요.  이러니까 부득이  그때는 가라지를 알려고 해도 그기 눈에 보이지 안하고 자세히 봐도 잘 몰라.  이러니까 그대로 둬 두나 이것이 차차 자라면  알게 됩니다.  누가 봐도 알게 됩니다.  

이와 마찬차가지로 자기 속에 멸망의 원인, 멸망의 생애를 일으키는 원인, 잘못된 사상, 잘못된 교훈, 잘못 가르침을 받은 잘못된 교리, 잘못된 신조, 잘못된 설교, 잘못된 주석, 잘못된 해석, 잘못된 말, 잘못된 그 모든 견해, 이런 것들이 우리 속에 심기워져 있는데 이것을 그 당시는 모르지마는 차차차차 자라는 데에 농부가 마치 곡식과 가라지가 섞여 있으니 어떤 것이든지 이것을 한시라도 일찍 제거해야 손해가 적을 테이니까 보자하고 자라는 데에 눈을 두고 그것을 자라감에 따라서 알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가래초를 가라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 내가 이 교훈을 받고 보니까 내 생애가 차차차차 속화가 되다가 내가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다, 내가 점점 패역하고 강팍하게 된다, 이 사람을 접하니, 이 사상을 접하니, 이 설교를 들으니, 이 교훈을 받으니, 이 교회에 다니는 성경도 여러 수백 종류의 성경이 그러큼 잡된 성경이 나왔는데 참 성경은 하나 뿐이지만 이 성경을 보니 차차 살아가는 이 생애가 어떻게 되나 내가 하나님과 하늘나라로 기울어지는지, 피조물과 세상으로 기울어지는지, 이것을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분명히 아니라고 하는 현실을 당했을 때에 아닌 줄 알고 이것을 이기는 힘이 약해지는지 강해지는지 옳은 것인줄 알지마는서도 이것을 단행하는 그결단이나 인내력이 강해지는지 약해지는지 자기 생활이 하루 이틀 자라가는 것을 보면 결실할 때는 더 알 수 있는 거와 같이 이런 사건 저런 사건이 그 결말 지위지는 그 신앙의 결과가 나타나는 그 결과가 맺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로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여 자기에게 와서 심어진 씨가 인본인지 신본인지, 마귀적인지 성령적인지, 세상적인지 천국적인지, 불의적인지 의적인지, 구원적인지 멸망적인지, 이것을 자기가 두고 보면 압니다.  두고 보면 압니다.  그 결과를 보면 압니다.

일정 때 이전 부터에 우리 나라에 복음의 씨가 심어졌는데 크게 곡식이냐 가라지냐 하는 것을 시험하는 신사참배 때에 맺어지는 그 피는 이삭맺어지는 그 결실로 거짓인지 참된 것인지 확실히 나타났습니다.  일차적으로 그 수십년 동안 교회의 성장이 신사 참배라는 그 시기에 그 맺어지는 이삭으로 인해서 확실히 판정됐습니다.
국부적이지마는 해방 이후에도 육이오라는 이 한 큰 시험을 통하여 교회의 전성시기라고 통행금지에도 성경만 들고 가면 그는 무조건 용납하는 교회의 전성시기 교회의 전능시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시기를 통과한 이후 6.25라는 이 시험을 통해서 내가 예수를 바로 믿었느냐 잘못 믿었느냐 올바른 복음을 받았느냐 잘못된 복음을 받았느냐 네 신앙이 인본이냐 신본이냐 세상적이냐 천국적이냐 내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정말로 네가 십자가의 군병으로 주의 도를 인해서 너와 네 몸과 생명을 바치느냐.  예수와 복음을 너를 위해서 이용하고 있었느냐 판정났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가져야 합니다.  

가라지가 난 것은 모르고 하루 이틀 자라갈수록 더 나타납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환하게 나타납니다.  마지막에 이삭이 필 때에는 더 확실합니다.
왜? 가라지는 유황불 구렁텅이에 천사가 다 태워 버린다 무궁 세계에 가서 있지를 않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가 모든 것이 구비했지마는 그것은 세상이라는 관문 밖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무궁세계는 물 한 방울도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영원을 정확하게 판정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으니, 하루밤의 고생보다 다 영원을 정확하게 판정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으니, 하루밤의 고생보다 영원한 고생 하루밤의 존귀보다 영원한 존귀 이것이 우리 앞에 문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에 가라지와 곡식을 구별할 중대한 의무가 있습니다.  중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제초할 때에는 어리석은 농부라도 거의 다 압니다.  다른 것 몰라도 가라지는 곡식보다 무성하게 자랍니다.  같이 어린 아이들과 밭을 매면 아버지 이것 가라지입니까 뽑으랍니까 무엇 보고  아노 원체 이 만 있거라 보자 아 아 이것은 가라지가 아닌데 밑에 거름이 어찌 많이까 이기 무성해졌지 가라는 아니다.  아 이것은 가라지다 같은 토질이면 반드시 가라지는 무성한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외식자가 한 토막 세상에서는 세력을 부리는 것입니다.  인본주의가 세력을 부립니다.  예수교안에서 세본주의가 세상의 세력을 부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인정을 받고 유명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되지 아니했을 때에 무슨 가치있읍니까.

이러기에 우리는 항상 이 농부처럼 곡식인지 가라지인지 구별하는 것처럼 우리는 나에게 있어서 내 맘을 주장하고 내 성질을 주장하고 내 생애를 주장하고 나를 주장하는 이것이 과연 멸망을 결실할 것들인지 영생을 결실할 것들인지 이것을 살피는 눈이 계속 있어야 하겠습니다.  일시형통을 볼 기 아니라 우리는 신앙의 감화를 받았고 성경진리를 배웠고 신앙적 양심이 있습니다.  

일시 무성하고 흥왕하고 세력있는 걸 볼 기 아니라 이것이 과연 멸망을 결실하느냐 구원을 결실하느냐 이것이 무엇이냐 자기에게 심어져 있는 자기 속에 들어있는 인간성 모든 지식 지혜 방편 관계를 맺고 있는 자기 사회 자기 동류 자기 직장 자기 위치 과연 이 점점 어떤 것을 성장케 하고 있느냐 이것을  계속 주시하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계속 주시하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나 따나 얼렁뚱땅으로 이렇게 그날 그날을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만으로가 아닙니다.  

이것은 영원을 향하는 원인으로 지금 하루 하루를 한 시간 한 시간 한 사건 한 사건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면 참 무궁 세계에 놀랠 만한 큰 것이 우리에게 나타나서 지극히 존귀한 줄 알았는데 허무하고 아무도 몰랐는데 존귀한 것이 나타나서 지극히 존귀한 줄 알았는데 허무하고 아무도 몰랐는데 존귀한 것이 나타나서 그것이 영원 무궁 계속을 영원무궁의 미래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막살이로 살수가 없읍니다.  
임시 먹고 굶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안 받는 이것도 크지마는 이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이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의 논단을 내가 매우 적은 것으로 여기고 내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지마는서도 이것도 허무한 줄 안다.  
왜? 나보다 능하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가가지고 내가 심판을 받을 터인데 터이기 때문에 그분 같이 알아서 그분 같이 모든 것을 정확하게 판단하여 오늘에 수정했으면 하는 여기 대해서 마음이 눌리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농부가 이 가라지는 몰랐습니다.  자라가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이삭이 필 무렵에 많은 성장을 보아 알았습니다.  많은 성장을 보아 알았습니다.  자기가 자기의 생애를 보아 이것을 판단할라고 자기를 심사할라고 내가 세상에 온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예비심판입니다.
나그네 세상에서도 모든 것에게 인정 받으려고 애쓰는 것보다도 자기를 자기가 어짜든지 스스로 자신해서 스스로 심판해서 이 가라지 곡식이 잘못된 이것을 자기 생애를 봐서 아 이 말은 나에게 손해를 보였다 이 지식은 나에게 육이오를 줬다. 6.25 때에 그 공산주의자들에게 많은 박해를 당하고 또 그 다음에 그들에게 접해서 공산주의 이 빨갱이인가 해서 또 우리 나라에서 박해를 당하고  할 때에 그때에 자기가 예사롭게 들었던 하나님의 그 가라쳐 주신 말씀이 어떤 사람이 설교받은 그 설교 받을 때에 가르침 받은 그  말씀이 그때에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 모든 것을 해결 해주고 모든 갈 길을 환하게 보여 줘서 순전히 그 말씀으로 평강을 누렷고 말씀으로 승리했고 자기는 그로 인해서 구원 이루었다는 그것을 어떤 사람이 어떤 설교를 듣고 그랬다고서 많은 간증을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가라지와 곡식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환란이 오니 자기에게 당면한 결과를 맺을 수 있는 그 추수기가 오니 자기에게 예사롭게 여겼던 사람이 미혹하는 한 속화의  교훈을 여준 그것이 한 사상 그것이 그때 나와가지고 이럴 수도 있지 않느냐 해서 일편단심으로 나가는 그 신앙걸음을 딱 돌려서 왼쪽으로 삐뚤뜨려서 실패케 하는 것입니다.  
역사에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성공한 것도 하나님에게 받은 영감도리로 인해서 성공했고 모두 다 후하는 그런 실패를 모럴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네들 속에 심어져 있는 가라지  잘못된 교리와 신조 잘못된 깨달음 잘못된 가르침 받은 것이 이것이 들어서 실패케 했습니다.  
그러기에 제일 좋은 것은 가라지의 씨가 심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제일 지혜롭고 다음에는 이것이 자랄 대로  다 자라 땅을 허비하고 결실할 때에 그때에 알고 제거할려는 것보다 일찍 발견하는 것이 어짜든지 유리합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살펴서 자기를 냉정스럽게 살펴서 아 이런 자로구나 내개는 이 요소가 있구나 아 말은 이렇구나 원수의 말도 이 말은 과연 이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온 것이로구나 이렇게 해서 자기 수하든지 수상이든지 친근한 자든지 원수든지 어디로 와도  자기 속에 심어진 이것을 살펴서 살아가면서 두고 보아서  옳고 그른 것을 날마다 수정해 가지고 제게 있는 것이면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너무도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걸 주장 해서 세계를 점령하면 어쩔 것이요 아지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그러므로 가라지는 자라 갈수록이 더 알기 쉽고 열매 맺을 때는 더 알기 쉽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라는 인질이 자기라는 인품이 자기의 지식이 자기의 사상이 자기의 모든 속성이 자기의 주장이 자기의 없이 자기의 처세가 자기에게 속한 모든 자기 가정 자기 사회가 자기로 더불어 살아 나가는 데에 이것이 살아나가고 격어보고 두고 보고 지내보니 이것이 과연 곡식인지 가라지인지 이것이 하늘나라에 속한 영생을 이루게 하는 것인지 영벌을 이루게 하는 것인지 이것이 무엇인지 하는 이것을 살펴서 자기 생애에서 자기를 살피고 자기의 생애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살펴서 스스로 심판하여 이것을 제거하는 이 일이 계속해야 되는 것을 여기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를 냉정스럽게 판정해서 멸망이 오기 전에 이것을 예비 심사해서 예비 심판해서 정리할 기회를 지내지 아니하고 정리하여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 다음에 셋째로는 이걸 뽑으리이까 뽑는 데는 뽑는 것이 도리어 곡식이 손해가면 안된다 뽑는 것이 곡식에 손해가면 안된다 곡식에 유익을 위해서 그걸 제할라 하는 것이지 곡식 손해 보고 아 되겠느냐 뽑는 것이 곡식에 손해가 되겠는지 안 되겠는지 그것을 살펴서 뽑아라 간단하게 기록했지마는 만일 그 주인의 일꾼이 말하기를 이 가라지는 곡식을 멀리 떠나서 있으니까 이걸 뽑아도 곡식에는 손해 없겠습니다.  염려는 없겠습니다.  뽑아라 이 가라지는 뽑으면 이것은 오히려 둬 두는 것보다 곡식에 손해가 가겠습니다.  뽑지 말아라 이것을 뽑으면 손해지마는 이것을 중디를 뿌르든지 이렇게 하면은 괜찮겠다 아 그리해라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멸망의 요소라는 것을 죄라는 것을 자기 안에서나 자기 밖에서나 이것이 이미 시작됐습니다. 교회 안에 이것이 섞여 있습니다.  여기에서 권징도리를 우리가 여기서 찾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가라지 같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아니한 잘못된 것이 자기 안에 있든지 자기 밖에 있든지  교회 안에 있든지 가정  안에 있든지 이것을 처리하는 데에는 반드시 구원의 이해를 계산해 가지고 구원에 유익되게 이것을 제거해야 되지 구원에 손해가게 이것을 처리해서는 안된다 자기 안에 있는 것도 구원에 손해가게 처리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것이 멸망할 것이라는 것은 네가 똑똑히 지식하고 있어야 된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것을 몰라서는 안된다 다 발견하고 알지마는 오히려 이것을 이렇게 처리하면 그것은 야나지게 뽑히지마는 이로 인해서 많은 의로운 것이 손상될 때에는 알고도 그것을 처리하지 아니하고 손해가지 아니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손해가지 아니할 한도에서 그것을 차차 제거하고 이렇게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 지혜롭게 하라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것도 중요한 방편입니다.  아닌기라고 해서 아닌 것 그것을 둬 둬서 손해 가는 것보다도 그것을 뽑음으로 신앙에 구원에 밑반에 손해갈 수 있는 그런 그 처리는 하지 말라는 것을 여기 말씀합니다.  얼마나 우리를 애껴서 지혜롭게 말씀해 주십니까

다음으로 넷째는 아 이거는 뽑지 아니하고 뽑으면 이거 하나 처리하면 많은 구원이 절단난다 이 한 사건을 처리 하면 많은 구원이 절단난다 이러니까 부득이 손해되지 않는 방편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하나님의 권능이 처리하도록 하나님에게 맺기고 기도하고 세월에게 맺기고 기도하고 윤회하는 모든 자연 법칙에게 맺겨서 도와 기도하여 그것이 하나님과 세월과 자연으로 인해서 처리되어 구원에 손해가지 않게 하지마는 농부가 똑똑히 판명하여 있는 것을 여기 말씀합니다.  

우리가 자기에게 있는 것이나 자기 밖에 있는 것이나 이것은 멸망할 요소라 이것은 심판에서 멸망 받을 것들이라 이것는 구원이 될 것들이라 이거는 의에 속한 것이라 이거는 죄에 손한 것이라 이거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 이는 나를 유익되게 하는 것이라 이건 나를 해롭게 하는 것이라 자기 안에 있는 것도 자기 가정 안에 있는 것도 자기 사회안에 있는 것도 자기 국가 안에 있는 것도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에 있는 것도 그것의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은 확실히 판정하고 살아야 되는 것을 말합니다.  
확실히 판정하고 이것을 판정하지 아니하고 나쁜 것도 그대로 둬 두고 요거는 망할 것이다 요거는 죽이는 것이다 요거는 살리는 것이다 요거는 해친다 유익준다 요거는 의다 요것은 불의다 요거는 하나님도 자기 사회 안에 것도 국가 안에 것도 민족 안에 것도 세계 안에 것도 인류 안에 것도 교회 안에 것도 요것을 우리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그것의 결과 우리가 접하고 관계를 가지고 있는 그것의 결과 처리하는 것은 삼가 이해를  따져서 처리하지마는 그것이 결과가 어떻다는 것과 그 자체가 어떻다는 요것은 확실히 판정하고 있어야 됩니다.  이기 기독자의 생애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이 비유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첫째 중요가 깨어 심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요 심어진 것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는 것이니 그것을 자기가 하루 이틀 살아가서 경험 해 보면서 체험해 보면서 두고 가 보면서 이것을 살펴서 스스로 심사하여 뽑을 것과 둬 둘 것 곡식과 가라지를 확실히 판정해야 되고 셋째로는 판정했으나 제거하는 데에는 구원에 유익이 되도록 하고 구원에 손해되게 하지 안할 것 넷째로는 여기 대해서 확실히 그 결과가 멸망한 것이라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것을 확정을 지우고 살 것 그러면 차차 녹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