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도에 대한 주님의 요구

  선지자선교회

본문아가 46-9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이 말씀을 어제 제가 오늘 주일은 인도할 생각을 가지고 목욕하는 목욕탕에서 이 말씀을 오늘 전해야 되겠다는 것을 받았습니다. 아침까지 제가 뜰에 평상에 나와서 생각할 때에 성신의 감화가 계속 이 말씀에 대해서 내게 역사했는데 와서 막상 증거를 하려고 했는데 한 아홉시 돼서 이 말씀에 대한 영감이 내게서 떠났습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전하지 말라는 것인 줄 알고 전하지 아니하려고 다른 말씀을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다가 마지막 한 이십 분 지나 남겨놓고 나서, 크게 영감은 떠났으나 그래도 전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느낌을 가져서 전합니다. 전하지 말라 하는 그 이유는 여러분들이 이 도리와 거리가 너무 멉니다. 전해 봤자 느끼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할 것이기 때문에 전하는 것을 막았다가 또 영감이 조금만 와 가지고 그래도 전해야 되겠다고 전합니다.

 

아가서라는 이 성경은 솔로몬이 기록한 것인데,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그 관계에서 깨닫고 느끼고 원하는 바를 그대로 기록한 것이 성경이 된 것입니다.

 

성경은 기계적으로 하나님이 영감시켜서 기계적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기계같이 써 가지고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또 성경은 한 자 한 자를 하나님이 거머쥐고 써서 축자적으로 그렇게 성경을 축자적 영감으로 기록한 것도 아닙니다. 그 윤곽만 하나님이 알게 해서 윤곽적 영감으로 그렇게 기록된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유기적 영감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유기적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교제할 때에 인격과 인격이 자의사를 가지고 서로 인격끼리 주고 받고 이렇게 교제하는 거와 같은 그런 감화로 성경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호세아에게 이스라엘이 음란한 그 음란에 대해서 아무리 그 사람이 느끼지 아니한 것은 성경에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자의사를 이용해서 자의사에게 깨달아 느낀 그 느끼고 깨달음이 성령대로 된 것을 그대로 기록한 것인데 그것이 획 하나도 틀림 없이 정확무오의 성경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호세아 선지에게 음란의 여인에게 결혼을 하게 해 가지고 호세아 선지로 하여금 느끼게 해 가지고 호세아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기록했고 저거들의 사정을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본인들이 느낀 걸 기록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가서는 세상 경험이 많고 세상에 대해서 가장 지혜를 가진 솔로몬에게 술람미 여인을 주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대해서 이 여인이 솔로몬을 어떻게 대접했으면 좋겠다 하는 솔로몬이 대접받고자 하는 그것을 솔로몬에게 명상하게 상상하게 해 가지고 주님이 성도에게 대해서 무엇을 요구하는가 하는 것을 깊이 기록했습니다.

아가서에 기록된 이 내용이 다른 성경에는 아주 얕고 희미합니다. 사도 요한의 요한복음이 깊지마는 아가서에 대한 하나님이 성도를 사랑하는 그 사랑하는 면에는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데 사람들이 아가서 해석하는 것이 전부 인간적으로 해석을 해서 아가서는 일종의 연애서와 같이 인식들을 하고 되어 있는 것이 아가서요 아가서 해석이 돼 있습니다. 그와는 전혀 판이합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이 성구를 어제부터 주었기 때문에 보고 참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많은 평강을,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 전하려고 하니까 껍데기 윤곽뿐이지 깜깜합니다. 그 영감이 지금 전하는 가운데 내게 올런지 안 올런지 윤곽만 전하게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전하는 것은 거기에 대한 윤곽적 진리만 전하겠습니다.

6절에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해가 기울어지면 음지 양지가 없어져서 그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세상에 있을 때에는 의와 불의가 구별나지마는 주님의 재림의 마지막 때가 되면 온 세상에 해가 없어지니까 해가 기울고 기울면, 기울어지면 그림자가 생겨졌다가 아주 기울어지면 그림자 없습니다. 전체는 다 그림자니까, 양지가 있어야 그림자와 구별이 있지.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이 말은 세상에 진리가 다 매몰되고 큰 자나 작은 자나 교파적으로나 개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모두가 다 빛을 잃어 무슨 의와 죄, 신본 인본, 복음 거짓부리, 이것이 분별 없는 시대가 되는 그것을 가리켜서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그때에 사랑하시는 주님은 어데 가서 계시겠는가 그말이오. 그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내가 가리라 거게 오면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하는 말입니다.

 

몰약은 방부성을 가리켜서, 세상이 이렇게 빛이 없고 어두워질 때에도 세상을 따라서 속화되지 않고 부패하지 않는 거기에 내가 있을 터이니까 나를 만나려거든 그리 오라 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옛날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따라서 춤을 잘 추고 세상 타협이나 비위나 잘 맞추고 눈치 있게 날쌔게 아주 처세 능하게 이렇게 하면 그것이 승리요 슬기로운 사람인 줄 알지마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고 주로 말미암고 마지막에는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으로서 우주의 종말이 된다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유향은 향기 곧 기도를 뜻한 것입니다. 기도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그때는 천 명 기도단, 만 명 기도단, 십만 명, 백만 명, 뭐 몇백만 명,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서 이렇게 하는 그런 것은 다 없어지고 해가 기울고 기울어졌으니까 영감과 진리가 가리워지고 세력을 얻지 못하니까 모든 세상은 깜깜한 세상이 되니까 그때는 이 전체로,

요새도 보면 유명한 그런, 어떻게 하면 좀 유명한 이름을 쓸까 해 가지고 굉장치도 않는 활동과 이름들이 있지마는 그럴 때는 그게 없고 이제는 개인이 감옥 속에서, 개인이 산 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그런 처지에서, 모든 사람은 다 낙심하고 배신하고 하늘의 소망에 다 절망이 됐는데 그때에 나다나엘처럼 홀로 주님을 붙들고 바라보면서 간구하는 그 단독의 개인 간구, 아주 희귀한 기도의 산, 희귀한 주만 바라보는 그 사람을 내가 찾아가겠다 그말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이 종말을 생각하면서 신앙 생활을 해야 될 것입니다.

 

7절에 나의 사랑 너는 순전하고 어여뻐서 그 위에 보면 유방은 초장에서 풀을 먹는 쌍태 노루 같다 이렇게 말을 했는데 그 유방은 새끼를 기르는 젖통인데 그 젖통이 교훈과 정치가 겸하고 치우치지 아니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성장해서 인간 구원에 그 모든 것이 더 건전하고 진실하고 뜨겁고 이렇게 나가는 것을 성도의 여덟 가지 덕으로 말씀했습니다.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그 사랑, 인간이 말하는 정욕적 사랑, 혈육 사랑, 동류 사랑, 타락한 변질된 인간을 죽인 이런 더러운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은 여게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서 우리 죄에서 우리를 구속하신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순전하고 흠이 없구나.

 

나의 신부야 이는 주님이 성도를 향하여 하는 말씀입니다.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레바논은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큰 산입니다. 레바논이라는 이 산은 성경에 칠십여 번을 기록했습니다. ○○○씨가 예수를 정말 잘 믿으려면 이 소리가 속에 꿰뚫고 들어가야 돼. 그 떠들기나 하는 것 아무 소용 없어. 이게 없으면 안 돼. 그저 막 떠들기나 하고 하면. 여게 있어, 여게. 이게 마음 가운데 느껴지지 않으면 헛일이야.

주님이 주님의 신부된 교회에게 교회가 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을 솔로몬은 자기 혼자 명상한 것이오. 술람미 여인하고 행동한 걸 말한 것 아닙니다. 저 혼자 술람미 여인의 대상을 두고 명상한 그 명상한 그대로 저도 모르고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사자굴 표범산에 술람미 여인을 데리고 간 줄 압니까? 안 갔소. 깨닫기 어렵습니다.

레바논 산에서 레바논 산은 높은 산입니다. 성경에 칠십여 번 기록된 산인데 이 레바논이라는 산 뜻은 백산이라는 뜻입니다, 백산. ? 일 년 열두 달을 가도 다른 데는 그 흰눈이 이 바람에 저 비에 다 썩어지지마는 레바논 산꼭대기에는 그런 것들이 썩히지 못해서 일 년 내내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그 눈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산이라 해서 레바논이라 그렇게 이름하여 있습니다.

나의 신부야 레바논에서 나와 함께 하고 나와 함께 가자 이런 시대를 만나면 썩어지고 저런 세상을 만나면 썩어지고, 좋은 것 만나면 썩어지고 억울한 것 만나면 썩어지고, 기뻐 썩어지고 참 섭섭하고 분해서 썩어지고 하나 이런 비바람에도 썩지 아니하고 끝까지 성결하고 성결하고 오직 주님 한 분만 바라보면서 주를 기쁘시게 주를 영화롭게, 주님 한 분 알면 됐지, 인간들은 우매무지하고 유혹이 많으니까 별별 생각 다 가지고, 별별 유혹 다 가지고, 좋은 것 나쁜 것 별별 것들이 있지마는 거기에서 성결을 팔지 아니하고 끝까지 썩지 아니하는 레바논 산에서 나와 같이 하자. 나와 함께 하자.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자, 주님과 동행하고자 하는 자, 세상이 다 썩을 때에 썩지 않는 몰약산에서 나를 만나자, 내가 몰약산으로 가겠다.

모든 인간이 보이는 세상으로 더불어 의논해서 만가지를 하려고 하는 이 세대에 보이지 않는 당신 한 분만을 잡고 당신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의논하려고 하는,

유향의 작은 산으로 내가 가겠다 네가 너 단독이 이래 쫓겨서 이 구석에서 주를 찾고, 저 바윗돌 밑에서, 저 냇가에서, 저 쫓김을 받는 감옥 안에서 천대받는 데서, 거게서, 나를 부르짖는 거기에 내가 가겠다. 거게서 나를 만나리라.

온 세상이 다 이렇게 주로 더불어 맺은 이 구속을 다 희미하게 잊어버리고 다 썩어지고 더러워지고 이래도 레바논 산같이 썩지 않고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는 거기에서 너와 나와 함께 가자! 함께 있자! 주님은 성도에게 이것을 요구하십니다.

오늘은 기독교, 남한으로 말하면 아주 전성 시기이기 때문에 예수를 높이는 사람 많고, 주를 사랑하는 사람 많고, 참 주를 위하고 따르는 사람 많지마는 때가 되면 모두가 이것은 이래서 썩고 저래서 썩고 다 중심이 주를 위하지 않고, 정말로 주를 위해서 어떤 손해, 다시 자기 손해, 자기 하나 매장 자기 하나 절단나는 자기 하나 제물로 바치지 못하고 예수를 팔아 자기를 중심으로 위주로 해서 이용해 먹는 이런 신앙은 다 그때에 별수 없이 썩습니다. 이런 것들이 오지 못하는 레바논 산은 백산이라. 백산에서 너와 나와 함께 하고 나와 함께 있자. 주님이 이것을 요구하십니다.

옛날도 이스라엘에 선지들이 많아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선지들이 많았지마는 주님이 그와 함께 동행한 자는 그때 엘리야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는 속화되지 아니했고 세상으로 인해서 자기를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변동을 인해서 주님에게 대한 의심이나 절망이나 가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이런 성도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참 가 보면 모를 비밀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레바논에서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함께 하자 이것 다 태산의 이름입니다. 큰 태산들의 봉들의 이름입니다. 아마나 모든 사람은 가다가 급하니까 다 놓는데 끝까지 주를 견고히 잡고 놓지 않는 견고히 잡은 최고봉, 견고히 잡은 상상봉,

모두 굳게 잡았지마는 산발치에서 다 풀어놓는 자, 중턱에서 다 풀어놓는 자, 천인 만인 모든 사람 다 예수님은 분명히 창조주시요 대주재시요 주권자이시지마는 마지막에 마귀란 놈이 이렇게 저렇게 해서 예수는 천하게 보이고 무능하게 보이고 하니까 다 손 쭉쭉 펴서 다 내놓고 딴것을 갈아잡는 그때에 최고 최후까지 견고히 잡은 최고의 견고봉에서 나를 만나자. 최고의 견고봉에서 나를 만나자.

이러니까 천인 만인이 다 자기 주관대로 하는 사람은 이때는 안 놓으면 안 되겠다 싶기 때문에 다 놨지마는 그래도 주님을 잡고 놓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 요동치 않고, 의지하는 것이 요동치 않고, 그의 것으로 그로 인하여 사는 것이 요동치 않는 이 견고히 잡은 견집봉에서 나와 함께 하자.

 

스닐봉에서 나와 함께 하자 이런 죄악이 부딪치니까 이는 하나님이 전능자시니, 그 세력이 크다마는 내가 의지하고 바라보는 주님의 능력만 못하니 전능자를 내가 바라보고 의지하니 전능자로 갑옷 삼아, 스닐 산이라는 뜻은 갑옷이라는 뜻인데 갑옷의 상상봉에서 나를 만나자.

모든 사람이 하나님으로 전신갑옷을 삼아서 악한 날을 이기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자기 형편 좋고 세상에 마찰 없을 때에는 하나님은 전능자라고, 하나님은 전능자라고 이렇게 말하지마는 정말로 전능자의 갑옷을 입고 전능자를 믿는 그 믿음이라야 자기에게 닥친 그 현실에 악령의 화살의 해를 받지 않고 이 화살을 막아낼 만한 전능자로 믿는, 주권자로 믿는, 모든 게 열의 열 백의 백이 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고 배반할 수밖에 없는 이럴 때에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사랑은 변치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그 믿음으로, 온 세상이 달려들어서 이리 찌를려 해도 하나님의 그 사랑을, 그 능력을, 그 약속을, 그 권능을 믿는 하나님을 믿는 그것으로써 모든 것을 방어하고 세상이 해할 수 없는 이렇게 방어의 절정에서, 갑옷의 절정에서, 아무것도 없지마는 하나님 한 분으로 모든 것을 다 방파해서 막아버리는 요 자리에서 나와 동행하자 하는 것입니다. 이게 성도입니다! 이 자리에서 동행하자!

세상 보고 뭣 보고 해서 예수를 높여서 세상에서 대우를 하고 인기가 끌릴 때는 높이지마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손해보고 이제는 예수님은 다 모든 사람이 버렸을 때에 그럴 때에 주님을 믿는 주의 사랑과 능력을, 약속을 믿는 그 약속으로 인해서 그런 시험의 화살이 와서 해하지 못하고 거게 침노를 받지 않는 스닐 갑옷.

홍순철 목사님은 열심히 믿었는데 암병이 들었으니까 아프기도 아프고 모든 사람은 참 욥과 같이 그렇게 여겼지마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사랑은 변치 않는다 그 갑옷으로 막아냈고, 하나님이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데 능력 없어 이 병 가운데 나를 있게 하지 않는다 그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믿음의 갑옷으로 그런 것을 다 능가해 이겼고, 끝까지, 예수 믿어 백해 무익인데 다 손해보고 모든 사람이 다 비웃고 조롱하는데 마지막 순간의 힘과 정성까지 그분에게 다 바친 것은 그분을 갑옷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분으로 다 방비해 버렸어.

제가 정경임 집사님이 암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모든 사람이 조롱하기를 저 예수 잘 믿는다 하는데 저 꼬라지가 됐으니까 저게 뭐이냐? 낙망할 만하고, 낙심할 만하고, 배신할 만하고, 원망 불평할 만한, 만고에 봐도 전체가 그런 처지지마는 주님이 저를 사랑하는 것과 그 약속, 그 나라 있는 주님을 말씀하신 그대로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그 방패 가지고, 그 갑옷 가지고 다 막아내고,

다른 사람들은 만인간이 내가 이래 병들었으니 다른 사람들이 조롱하고 그렇지 않겠는가? 할 터인데 하나님으로 방패해 그런 생각 한번도 가지지 않았고, 그 부모네들이 여기 왔는지 모르지마는, 아무래도 예수 믿어야 됩니다 예수 믿다가 암병 들고 이렇게 비참하게 가련하게 됐는데 너만 되지 나까지 예수 믿으라고? 할 만한 참 빈축받을 만한 그런 말인데 그는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나라를 확실히 믿기 때문에 그런 것이 오지를 못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항상 기쁨으로 자기 부모에게, 나는 믿었으니까 문제가 없지마는 아버지 어머니는 안 믿으면 안 되니까 어쩌든지 예수 믿으라고. 마지막 주일 오는 그 주일에그러고 나서 죽었는데.부모님들을 다 이끌어서 여기 나와 가지고 나한테 인사를 하고 했는데 그 뒤에 오는지 안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첩첩 함정 속에 빠져도 주님의 사랑과 약속과 그 권능과 주권을 믿는 믿음의 방패, 하나님으로 방패 삼아 그런 것들이 그분의 심령을 뚫지 못했고, 그 화살이 찌르지를 못했고, 상하지를 못했고 여전히 신앙의 사람으로 갔으니 그는 참 스닐 봉우리에서 주님과 동행한 사람이요, 몰약산에서 주님과 동행한 사람이요, 썩지 아니한 헤르몬 산에서 레바논 산에서 주님과 동행한 사람이오. 주님은 성도들에게 요것을 요구합니다.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헤르몬 산이라는 이 헤르몬이라는 뜻은 단절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일이 와도 신앙이 요동치 않고 어떤 화살로 찔러도, 어떤 미혹, 어떤 중론, 어떤 달언, 어떤 사랑하는 자의 어떤 말이 와도 거기 찔려서 신앙에 상처를 받지 않고 유혹받지 않는 이런 신앙을, 갑옷의 절정에서, 견집의 굳게 잡는 견집의 절정에서, 헤르몬 산 꼭대기에서 헤르몬은 단절이라는 뜻입니다. 못 끊을 게 없어.

하나님이 끊게 할 때는 바울이 율법으로서는 흠이 없는 사람이요, 가말리엘의 문하에 있는 사람이요, 그는 열심으로서는 스데반을 죽인 사람이요 교회를 핍박하는 자이었지마는 그것이 주님의 뜻에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돌아서게 할 때에 세상 모든 것이 남보다 뛰어났지마는 그 모든 것을 내가 배설물로 삼아 다 버리고 돌아섰다.

엘리사도 자기가 농장에서 대농가로 지주가로 이렇게 농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에 선지 엘리야가 그에게 전할 때에 그는 즉시 그것으로 제물을 삼아서 불사르고 다 버리고 주를 따랐습니다.

단절봉에서 만나자. 천인 만인이 그 일은 끊을 수 없는 일인데 주님이 원하신다면 지체가 없어. 즉시 끊어. 사람들이 생명의 애착심이라 하는 것이 최고인데, 최고의 줄인데 주를 위해서 살고 주를 위하여 목숨을 끊어야 할 때는 그때는 애낌없이 생명을 끊어. 단절봉에서 나와 함께 하자.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이 말씀은 좀 알아듣기가 어려운데. 사자굴에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과 두 사람이 사자굴과 표범산에 가서 사자굴과 표범산을 만났으니 그 두 사람이 환경이 사자굴이요 환경이 표범산이니까 그 무서운 가운데에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만 바라고 잡을 것이고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만 바라고 잡아 아무것도 없이 생명과 있는 걸 다해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둘이 이렇게 하나되어, ? 환경이 사자굴 표범산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놓여 있어 그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요 형편을 원하시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당신의 욕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면 그 어려움이 어서 가기를 원하지마는 주님은 그래도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그 어려움을 할 수 있으면 우리가 그 어려움을 인하여 세상 줄이 막혀지고 주님과 가까워지고, 견디지는 못하지마는 그 어려움을 인하여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만 소망하는 이런 성도가 되고 주님은 그 성도에게 있는 걸 다 그 성도만 바라보고 기울일 수 있는 요런 관계가 맺어지는 것을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을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속에 보내는 거와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기에 아가서의 이 뜻을 바로 모르면 주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어떤 대접을 원하신다는 것을 그는 모릅니다.

 

내려다 보아라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빼앗았구나 이것이 주님 요구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다 빼앗기기를 원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다 빼앗기를 원하고 빼앗기기를 원합니다.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목의 한 구슬꿰미라는 것은 그 목에 걸친 구슬꿰미, 그 입을 통하여 가지각색의 맺은 의, 맺은 의.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천 가지 만 가지 죽음으로 우겨싸도 그래도 그 입에서는 생명의 말만 나오고 결과적으로 사람에게 유익되고 사람 구원하는 말만 나오는, 네 속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 그 구슬꿰미에 내 마음을 다 빼앗았다.

그렇습니다. 지금만이 아니고 앞으로 이것이 영원할 것입니다. 지난 주일도 병신 메어다 놓은 사람들 다 인간 실패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애착해도 인간은 다 빼앗겼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사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고로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나의 신부야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마음에서 나오는 그 생각, 네 마음에서 나오는 그 소원, 네 마음에서 대인 관계에 그 사람들에게 대해서 한 마디 말하는 그 말, 이것을 가리켜서 네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말합니다. 주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그 마음을 사건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인간이 그 마음 쓰는 한 마음에 주님은 반합니다. 주님의 마음은 빼앗깁니다. 제가 껍데기로 주님을 혼자 사랑하는 것처럼 오만 짓 다 해도 속은 제 욕심이오. 제 중심이오. 주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네 눈으로 한번 봄으로 내 마음을 다 빼앗았다

 

네 목의 구슬꿰미로 네 입에서, 네 목에서 한 마디 한 마디 토하는 그것은 젖과 꿀이 됐고 나를 다 네것 만든 미가 되었다.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제가 돈도 수고도 노력도 많이 하지마는 그 속에 마음 하나 하나 가지는 마음이 주님 앞에서 만정이 떨어지고, 만정이 떨어지고, 말 한 마디 한 마디 한 그것이 주님에게 대해서는 어떻게 무거운 짐이 되고 주님이 영원히 가도 잊을 수 없는 그 분개함이 되는 것입니다.

네 눈으로 한번 봄으로 내 마음을 빼앗았다 여러분들, 우리의 마음 눈, 우리의 생각 말이오. 우리의 생각, 우리의 소원, 우리의 뜻 주님은 거게 녹습니다. 우리의 한 마디 한 마디 말하는 거기에 당신은 다 쏠립니다.

이런 사람 되기를, 이런 성도가 되기를 원해서,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이 서로 사랑하는 그것을 기록한 것 아닙니다. 그것은 계시의 기관이 되는, 계시 기관이 된 계시 도구가 되는 그 인물로써 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그들이 그 형편을 만들어 느끼고 원하게 해서 주님이 성도에게 대해서 어떻게 원한다는 그것을 계시한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에게는 이스라엘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아주 제일 못쓸 창기에게 네가 결혼해야 된다 해 가지고 결혼을 시켜서 한 아이 낳고 두 아이 낳고 세 아이 낳을 때에 그가 느낀 것을 기록하도록 한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 기관으로 쓰는 인물들입니다.

이러기에 참 가 보면 경건치 아니한 말에 대해서 심판이 큽니다. 많이 스승되고자 하지 마라 스승된 자는 받을 심판이 크리라 그저 아무나따나 말하고 지나가면, 녹음에다 녹음해 놨으면 있지마는 녹음 안 해 놓은 거는 없어지고 하니까 말해 봤자 그 시 지나가면 없어지는 줄 알지마는 어리석습니다. 털끝만한 말 한 마디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 그 말에 대해서 심판이 있습니다.

 

이런고로,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라는 것을 명심하고 그때에는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에 가서 주님 만날 것입니다. 레바논 산 꼭대기에서 주와 동행하고 주님과 동거하고, 아마나 꼭대기, 스닐 꼭대기, 헤르몬 꼭대기, 사자굴 표범산에서 주님하고 함께, 내려다 보아라 그말은 그것이 도덕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그 절정이라는 말입니다.

삼팔선 넘어 온 사람들이 삼팔선 넘어 올 때에 공산주의자들이 죽이려고 하는데 거게 걸리면 잡혀가면 죽을 것이고 죽느냐 사느냐 그 절정을 두고 주를 의지할 때에 주님이 그걸 원합니다. 평생 그렇게 살기를 원하요. 이렇지마는 그 가운데 두면 까물쳐서 안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런 복된 자리에 두지를 못하고 어떤 자는 일생 동안 그저 평안해서 마음대로 죄짓고 있는 그런 자리에 있지 않으면 뒤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래 둬 두지마는 세상 생활은 다 지나가는 흔적입니다. 지나가는 흔적입니다. 잠시 잠깐 후면 모든 것이 다 변동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나라가 수립됩니다.

네 눈으로 한번 봄으로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 마음 한번 가지는 그 마음에, 그 마음 한번 가짐에 인격이 다 기울어지고, 그 마음 한번 가짐에 대해서 존경이 되어지고, 피곤이 들었던 것이 다 풀려지고 큰 힘이 올 수가 있고, 그의 한 마디 말, 한 마디 한 마디 말에 천인 만인이 살아날 수가 있고, 그 목에서 말 한 마디 하는 거기에서 윤회하는 만물을 유황 지옥불로 사르는 독이 있고, 그 마음에 한 마음을 가지는 그 마음에서 참 주님이 말할 수 없이 소름끼쳐지는 그런 마음들도 우리가 가지기 쉽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주님이 성도에게 요구하시는 당신의 심정입니다. 성도들이 주님과 밀접한 데에는 이런 절정에서 다 밀접해지는 것입니다. 절정을 향하여, 그것이 밤중입니다.

 

설교: 백영희 목사(1982. 8. 29 주일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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