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내 양을 먹이라

  선지자선교회

본문요한복음 2115-20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오전에는 유다서 10절에서부터 봉독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에 아무런 비판과 평가가 없이 제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사는 짐승같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되기 쉬운 것을 말씀했습니다. 예를 들면은 가인 같은 사람, 또 발람 같은 사람, 고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이지마는 그들은 다 비판 없이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입니다.

대개 이 서너 가지로 분류하면 우리가 잘못된 길을 깨달아 돌이킬 수 있습니다. 가인은 제맘대로 하나님 섬기면서 동생의 신앙을 시기해서 범죄한 사람이요, 발람은 세상 지위 권세 재물 명예를 탐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그대로 행해 간 사람이요, 고라는 하나님 앞에서 유력한 사람이나 하나님에게 쓰여지는 데 자기 위치를 족하게 여기지 안하고 시기해서 제가 모세의 자리를 시기하다가 멸망받은 사람이 고라입니다.

저희는 기탄없이 너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연의 암초요 같이 예배드리고 하나님 은혜 받지마는 그 속에 가인 같고, 발람 같고, 고라 같은 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겉은 같이 예수 믿는 사람 같지마는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에 부딪히면 그 사람에게 은혜를 없애버리고 세상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에게서 멀게 만드는 그런 암초 같은 그런 노릇을 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 교회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차차 차차 자꾸 그런 것을, 우리는 붙들어도 하나님이 제거해서 제가 용납할 수 없어서 설설 딴데로 도망을 칩니다. 벌써 제가 온 지에 수십 명이 스스로, 암초 노릇 하다가 그만 지쳐서 나가버린 그런 사람들이 수십 명입니다.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품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타락한 천사의 사는 세계가 이렇습니다. 타락한 천사 마귀의 사는 곳이 이런 곳입니다. 앞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거치고 난 다음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아담의 칠세손 에녹이 예언하기를 성도 수많은, 수만 명이라 하니까 일억도 안 되는 사람이라 생각하지마는 성경에 만수는 무한수를 가리켜서 만수로 그렇게 표시했습니다. 수만의 거룩한 자라 말은 셀 수 없는 수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으로 더불어 같이 재림하십니다. 뭐할려고? 그 사람들은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려고 옵니다.

요한계시 20장에도 보면 심판장은 예수님이 심판장이시요 그 밑에 심판할 모든 심판자는 성도들인 것입니다. 성도들이 꼭 같은 입장에서 승리한 사람이 같은 입장에 패역한 사람들을 심판하게 됩니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나 노아나 꼭 같은 시대 꼭 같은 현실에서 살았지마는 노아는 하나님을 섬겨 방주를 예비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거절했기 때문에 노아가 세상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의의 후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오셔서 모든 그 성도로 더불어 같이 심판할 때에 어떤 심판을 하실 것인가? 우리가 그 심판에 대해서 어떤 조건으로 법칙을 가지고서 심판하실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 잘못 생각하면 심히 복잡해서 세밀히 생각한다는 것이 이리저리 치우치고 중추점을 잡지를 못해서 심판에 대한 대비를 못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똑똑히 나타내 놨습니다. 우리가 받을 심판은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경건치 안한 일을 심판합니다. 경건치 안한 일은 경건치 않는 행동과 경건치 않는 사람에서 건설된 것입니다. 경건치 아니한 일과 경건치 아니한 말을 심판합니다.

경건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위하는 그 일을 바로 하는 것을 가리켜서 경건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에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 보존도 관리도 하시는 전지 전능자시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그리운 것이 없습니다. 없어서 답답한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그분의 그리운 것은 자비와 긍휼이시요. 다시 말하면 사랑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사랑으로 타락을 예정하시고 타락 가운데에서 또 친히 사람되셔 가지고 십자가의 대속으로 구속을 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뭐할라고 이렇게 인간을 사랑하시는가? 인간을, 당신의 목적이 인간을 하나님처럼 온전한 자를 만들어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모든 것을 충족히 해 주심같이 온전함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 그런 은혜의 역사 사랑의 역사를 감당하는 자 되게 하려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고 대속하신 공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강령을 잡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수많은 조문이 있어서 우리의 생활에 하나도 빠진 것이 없을 만치 그렇게 구비하게 다 편집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빠진 것이 없다고, 하나님이 모으셨기 때문에 빠진 것이 없는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대로 자기가 하나 둘 실행 실천을 해서 일생을 열심히 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의 이 표준성을 자기기 잡지 못하면 잘못하면 헛일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경건치 안한 일과 경건치 아니한 말 이 두 가지를 심판의 표준으로 해서 심판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당신 자체가 완전자시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을 중심을 당신을 위해서 사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완전이기 때문에 완전을 좋아하는 자가 돼야 되겠고, 옳고 바른 것을 좋아하는 자가 돼야 되겠고, 참을 좋아하는 자가 돼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좋아하는 것이 바로 복받을 그 행위요, 복받을 사람이요, 또 그에게 하나님은 복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물보다 거짓된 우리가 자기 중심으로나 자기를 위하는 것처럼 그렇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거짓된 것이 자기를 위함이 되기 때문에 사욕적이요 위하는 자도 망하고 저도 망하지마는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완전을 위하고 좋아하는 그 자체가 바로 복받을 행위요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당신을 중심해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모든 것이 하나님 찬성하는 것,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 하나님을 따르는 것, 하나님을 위하는 것, 하나님을 섬기는 것,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 다시 말하면 경건만 모여 가지고 있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경건만 모여 가지고 있는 것이 하늘나라요 경건의 행동만 하고 있는 것이 하늘나라의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경건한 무리에게 하나님의 당신의 전지 전능의 무한함의 모든 은혜를 가지고 그들이 자격 있는 대로 얼마든지 주고 주고 주어서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되기를, 다시 말하면 진실로 충만하고, 사랑으로 충만하고, 평강으로 충만하고, 거룩으로 충만하고, 깨끗으로 충만하고 모든 데 하나님 같은 충만으로 충만키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죄로 더불어 대항하는 것이나 의롭게 살라고 하는 것이나 하나님을 알고 모신 자로 살라고 하는 것이 다 그게 좋은 일이요 그게 다 의로운 일이지마는 그것이 그렇게 살면서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중추는 안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원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 안 될 수는 있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그게 이리 저리 치우쳐 가지고 겉은 좋으나 속에 파고 들어가서 세밀히 분석할 때에 그것은 오히려 중심에서 이탈해서 무익한 것이 될 수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게 유다서는 간단하지마는 한 장이지마는 아주 요긴하게 모든 것을 구비해 놓은 성경 말씀입니다. 이래서 그전에 주남선 목사님이 우리가 교역자 수양회를 일주일을 하는데 유다서를 외우자 하는 것을 문제를 해서 그때 유다서를 거창 함양 협천 삼군에 있는 교역자들은 모여 가지고 전부 유다서를 다 외었습니다. 외울라고 노력해 외웠습니다.

지난번에 양성원에서 신명기 28장을 외우도록 해 가지고 시험을 쳤는데 세 사람이 낙제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방학기에 외워 가지고 와서 개학 때 그 시험을 쳐서 합격이 돼야 될 겁니다. 요다음에 양성원 때에는 암송하는 그 과목 중에 이 유다서를 암송을 할라고 그렇게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요긴한, 다 요긴하지마는 우리에게 간단 명료하게 말씀해 주신 계시 말씀입니다.

심판에는 경건치 안한 일과 경건치 아니한 말 이 두 가지를 심판하신다. 경건은 뭐이 경건인가? 하나님을 어떤 분인 것을 알고 하나님을 좋아하고 높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올바른 행동한 것을 가리켜서 경건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바울도 말하기를 떠나든지 거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원한다고 고린도후서에도 말씀했고 모든 성경은 그렇게 말씀합니다.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위하고 원하는, 주님이 제일 소원하는 일이 무엇이며 제일 마음에 안타까와 하시는 일이 뭐이며 제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뭐인가? 그것은 곧 오늘 오후에 본 말씀대로 양을 먹이고 치고 기르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신 그 피흘리심의 본질이나 본성이나 방편이나 또 동기나 목적이 다 예수님이 첫 열매라면 그다음 계대한 열매로서 인간을 구원하려는 이 소원을 가지고 이것이 유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 것을 깨닫고 이 일을 위해서 자기가 말을 하고 또 노력한 결과로 이 일이 이루어져 있으면 그것이 경건 중에 제일 가치 있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경건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말씀하신 시몬아 이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디베랴 바다에 가셔 가지고 된 일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고 난 다음에 그들이 열렬한 신앙을 가졌지마는 또 얼마 동안 또 암흑이 오니까 다시 옛날 그 어부노릇하는 것이 생각이 나서 고기 잡으러 간다고 그래 고기 잡으러 가서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일입니다.

그들이 디베랴 바다에 가서 고기 잡으러 갔다가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이 언덕에 서셔 가지고 너희들이 뭐 고기를 잡았느냐? 이라시니까 `하나도 고기를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물을 오른편으로 던져라.' 던지니까 참 그물을 끌어올리지 못할 만치 고기가 잡혔는데 아주 큰 고기만 백쉰세 마리가 잡혀서 그 그물이 찢어지지 안한 것이 기적이라 이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워 놓으시고 거게다가 고기를 구으시고 밥을 해 가지고 너희들이 조반을 먹으라 하시는데 주님이 아침밥을 준비하셔 가지고 그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후에 밥 대접을 했습니다. 우리 부활은 이런 부활입니다. 주님의 부활과 같은 부활인데 밥도 할 수 있고, 밥을먹을 수도 있고, 안 먹고 억만 년이라도 살 수 있고, 이 모든 물체들과도 같이 상종 상접할 수가 있는 그런 것으로 부활합니다.

조반을 다 먹고 난 후에, 그때는 이제 예수님인 줄 그들이 알았습니다.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라니까 대답했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모든 사람들보다 네가 나를 특별히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말하기를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할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내 어린양을 먹이라' 그렇게 하셨습니다.

또 두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제는 모든 사람보다 사랑하느냐는 말씀하지 안하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실 때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럴 때에 내 양을 치라 했어. 내 양을 치라 말은 내 양을 관리해라 그말입니다. 치라 말은 관리하라고 한 뜻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세번째 또 주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으시니까 베드로가 세번째는 근심을 했습니다. 어떻게 같은 말로 자꾸 이렇게 세 번이나 나한테 물으시는가 해서 이제는 겁이 나서 두려워서 멈추다가 주는 알지 못하심이 없사오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말했습니다. 그럴 때에 네가 내 양을 먹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려서는 네맘대로 다녔지마는 이제는 노숙해지면 네가 손을 벌리리니 네가 팔을 벌리리니' 네 손을 널리 펴리니, 네 구원의 손을 널리 펴게 되고 이렇게 되리니 다른 사람이 너를 띠를 띠워 가지고 네 원대로는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원대로 너는 끌려가는 그런 사람이 되리라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시면서 나를 따르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세 번 나를 사랑하느냐 말씀하시고 `사랑한다' 할 때에 세 번 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 치라, 먹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사랑합니다.'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거든 네가 내 어린양을 먹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 중에 수제자되는 베드로를 향해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말씀하실 때에 주를 사랑합니다' 할 때 `나를 사랑하거든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그렇게 세 번 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양을 먹이고 치고 먹이고 하는 그것이 주님을 제일 사랑하는 것이지 그 외에 딴것이 없는 것을 여게 밝혀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라고 어려서는 네 맘대로 가고 싶은 대로 네 맘대로 다녔지마는 이제 네가 장성하면 다른 사람이 너를 띠를 띠우고 다른 사람이 너를 띠를 띠우고 띠 띠우는 것은 띠 띠우는 긴장하는 것이요, 띠를 띠우는 것은 긴장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너를 긴장을 시키고, 다른 사람이, 너 원하는 대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원하는 대로 네가 끌려가서 마지막에 순교하리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양을 먹이라, 양을 치라, 양을 먹이라 말씀했는데 모든 사람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자라면 어린양을 먹이라 말했습니다. 어린양은 장성한 양과 다릅니다. 어린양은 젖을 먹여야 되지 꼴을 먹이면 안 됩니다. 젖을 먹여야 되지 꼴은 못 먹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먹이는 사료가 장성한 양, 세번째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할 때에 내양을 먹이라 한 그 장성한 양은 배고프지 않게 꼴만 먹이면 잘 자랍니다. 또 관리할 게 없습니다 그저 구렁텅이 빠지도 안하고, 언덕에 떨어져 죽지도 안하고, 또 저게 맹수가 있으면 피해서 도망쳐서 우리로 목자에게로 오고 하니까 아주 관리에 힘이 안 듭니다.

그러나 아주 어린양은 면했지마는 철이 없는, 젖을 반 먹고 사료를 반 먹는 그런 양 새끼는 관리를 해야 됩니다. 그것이 벌써 좀 크니까 여게 저게 제마음대로 뛰어 돌아다니니까 그것을 돌아다니는 그 모든 향방을 잘 살펴서 잘 관리를 하지 안하면은 그게 어느 언덕에 떨어질란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어린양은 물론 관리도 조금 큰 양보다도 관리도 힘들고 먹이는 것도 힘들고 또 중간양은 먹이는 것도 젖도 가끔 가다 먹여야 되고 꼴도 먹여야 되고 또 그거는 이제는 어릴 때는 그만 어미 옆에 있으니까 문제가 좀 관리하는 데는 좀 문제가 힘이 덜 들지마는 이게 제맘대로 뛰어 돌아다니니까 이거 관리하기가 제일 힘듭니다. 그래서 그 차이적으로 말을 한 것입니다.

아가서에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는 두 유방이 쌍태노루 새끼 같다 이랬습니다. 유방이 쌍태 노루 새끼 같다 하는 것은 상태 노루는 크고 작은 것이 없이 두 마리가 꼭 같이 큽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유방이 쌍태 노루 새끼 같다 그말은 진리와 영감으로 먹이는 그 젖통과 자기의 행함으로 먹이는 그 젖통이 같은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그 혀 밑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 그말은 언제든지 양새끼가 먹을 수 있는 그런 달콤한 젖을 내고 있는 그것을 주님이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어린양은 이거 철없는, 철없는 어린 교인이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가르쳐 가지고는 그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젖으로 먹여야 되니까 어미 양이 사료를 먹고 젖을 내서 어린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젖이 안 나서 젖을 먹일라고 꼭 콩국을 사서 먹고 이랬는데 젖을 내 먹일 그 욕심에서 콩국을 한 그릇도 먹기 어려운데 배야 터지든지 말든지 억지로 세 그릇을 사서 먹었더라고. 참 어머니도 요새는 이 가짜 젖이 많이 있어 가지고 모두 요새는 가짜 젖 먹고 큽니다, 가짜. 진짜 어머니 젖을 먹지 못하고 가짜 젖 먹고 크기 때문에 가짜 새끼 기르니까 효성이 있을 수가 없어.

젖을 먹이기 위해서 자기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이렇게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그 은혜를 자기에게 소화를 시켜 가지고 나오는 그거라야 되니까, 이제 나오는 그것에게 젖을 내 먹이기 위해서 참 하나님 앞에 어데 개울가로도 가고, 나무 밑에도 가고, 산만당에고 가고, 철야도 하고 이렇게 별별 곳에 가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자기가 은혜를 소화시켜서, 그에게 말씀은 가르쳐야 잘 모르고 이라니까 자기에, 양식이 될 만한 그 믿음의 자기 보고나 자기나 먹을까 하나님 말씀은 들어야 모른다 그거요.

이러니까 자기가 말씀을 자기가 받아 가지고 깨달아서 그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어져 가지고 비로소 그것이 성경 보고도 못 깨닫지 설교 보고도 못 깨닫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 영감화된 자기를 먹고 그것이 자랄 수 있고 자기의 언행심사를 보고서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어린 양떼에게 어짜든지 그에게 은혜가 돼서 그의 믿음이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이 은혜 생활에 나아가는 그런 노력하는 것을 가리켜서 여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가서 4장에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쌍태 새끼를 낳은 목욕탕에서 나온 털 깥은 양 같다 그래 말해 놨어. 털 깎은 양이요, 목욕탕에서 나온 양이요, 또 쌍태 새끼를 낳은 양이라. 그것이 주님 앞에 아름다운 신부의 이빨이라 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의 이빨은 이는, 어떻게 생겼느냐? 이빨은 털깎은 양, 목욕탕에서 나온 양, 쌍태 새끼를 낳은 양 같다 이렇게 말씀했어. 그것이 예수님의 신부의 이빨의 아름다움이라고 그렇게 묘사했습니다.

그것은 양이 털이 자라면 사료를 많이 안 먹어도 됩니다. 털을 깎으면 사료를 많이 먹습니다. 또 털 깎고 난 다음에 목욕을 시키면 사료를 더 많이 먹습니다. 또 새끼를 쌍태를 낳아 놓으면 더 많이 먹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의 신부는 새끼를 위해서, 주인의 수입이 되는 털을 기르기 위해서, 자기를 깨끗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자기 깨끗, 새끼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서 얼마든지 성경 말씀을 더 연구해야 되고 더 또 묵상해야 되고 이렇게 해서 영감과 진리를 많이 먹는 것,

주인 수입 털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신덕 있는 그 행위를 당신이 털을 깎아서 주인이 필요함과 같이 그렇게 주님은 필요로 여기시고 그 털을 깎아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처럼 하나님은 성도들이 신덕 있는 그 행위를 당신이 수입으로 삼아 당신이 입고 다니는 의복입니다. 이래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 어린양을 먹이라 어린양은 성경 말씀만 가르쳐 가지고도 안 되겠고 내 말이 성경 말씀이 돼야 되겠고, 내 행동이 성경 말씀이 돼야 되겠고, 내 성질이 성경 말씀이 돼야 되겠고, 내가 그에 대해서 모든 상대하는 것이나 봉사하는 것이나 내 전, 그거는 성경 보고 따라오지 못하고 나 보고 따라오고 나를 양식으로 삼아 가지고 살지 성경 보고 영감 보고 양식으로 삼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양식이 돼져야 되기 때문에 자기가 양식되기 위해서 이렇게 영감도 그 어린양을 위해서, 묵상도 어린양을 위해서, 성경 보는 것도 어린양을 위해서,

자기가 과거에는 저 위해서 띠를 띠었지마는 남이 띠를 띠워준다 다른 사람 때문에 조심 안 할 수 없고, 남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남 때문에 하기 싫은 말도 하게 되고, 남 때문에 하고 싶은 일도 못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이제 다른 사람 때문에, 저 맘 저 때문에 하지 못하고 남 때문에 모든 자기의 행동은 다 조절되어지고 결국은 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원대로, 그들이, 남 때문에,

바울이 다른 사람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죽일라고 기다리고 있지마는 갔고, 다른 사람과 같이 신사참배 그것 뭐 신사참배 안 할라면 그만 딴데로 픽 피해서 그만 도망을 치든지 망명을 하면 되지마는 거기서 있어서 거기서 뭐할라고 그런 시련을 받으면서 그런 고문 고통을 당하면서 있을 필요 없지마는 양 때문에 꼼짝 못하고 있고,

6 5 같은 때도 뭐 그럴 때는 그만 모른 척하고 교회 내비두고 이래 숨어서 살면 일없지마는 원치 안하는 곳으로 끌려가서 마지막에 죽는 곳에 끌려가도 양의 유익을 위해서 제가 죽는 곳이라도 끌려가지 안할 수 없는 그자가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모든 사람보다 사랑한다면 나를 사랑하는 행위요 대우라 하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주님이 이 말씀하신 것은 참 그게 무슨 자라지 못해 가지고 철이 없으니까, 철이 없어 성경을 암만 가르쳐도 성경을 깨닫습니까 그것이 무슨 기도를 하라 해도 기도를 합니까? 이러니까 다만 성경은 안 보고 제가 내가 그에게 어떻게 하는 그것만 보고 그것만 양식으로 삼고 그것만 보고 항상 믿습니다. 이러니까 얼마 동안 믿다가라도 만일 내가 휘떡 변해버리면 그 따른 거는 다 변해져 버린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들에게 양식되기 위해서 자기를 삼가고, 자기를 지키고, 또 그들에게 양식하기 위해서 자기를 통해서 영감이 타나나야 되겠고 진리가 나타나야 되겠으니까 이제 주님을 사랑함으로 어린양을 위해서 먹일 그 젖이 나도록 하기 위해서 날뛰는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 이것 때문에 오늘도, 그뭐 별스러운 일이 아니라 오늘도, 참 처음에는 그것이 하나님 말씀 보고서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먹고, 자기를 먹고 자랄 수 있는 그 어린양이기 때문에 자기가 그 어린양에게 젖이 되어질 수 있는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젖이 나도록 하기 위해서, 젖이 되게 하기 위해서 모든 면으로 노력하고 염려하고 하는 그것을 주님이 당신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반사직에 있는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권찰직에 있는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또 목회직에 있는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되 장로나 집사나 그런 성직을 가진 자가 복이 있습니다. 또 어데 가든지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 나는 장로라 집사라 그라면 참 힘듭니다. 그러나 그래도 나타내는 게 좋습니다, 나타내는 게. 나타내지 안할 때도 나타날 줄 알고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어떤 곳에 이사를 가 가지고 아무도 모르니까 거게서 내가 이 자리에서 장로로 나중에 그들이 알아도 손색이 없고, 목사로 알아도 손색이 없고, 집사로 알아도 손색이 없고 다 그들이 그렇기 때문에 그랬는갑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안하는 그들에게, 참 그게 어린양인데, 그게 아직 예수 믿지 않은 어린양인데 그들에게 양식이 돼야 되지 하고서 조심 조심해서 이렇게 사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이라. 저 무슨 사람이 저런 사람이 있을까? 이래 저래 차차차 보고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 예수 믿는 사람은 그러하구나. 해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 아직 택한 사람이나 신앙에 출발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양식이 되도록 하는 그것이 어린양을 먹이는 것이요,

이제 믿기로 시작했지마는 철이 없으니까 자기만 보고 예수 믿습니다. 자기만 보고 예수 믿는데 자기가 능히 그에게 충분한 어린양이 먹고 지낼 만한 그런 젖이 될 수 있는, 자기에게 젖이 나오는 그런 일을 위해서 자기가 조심해서 그런 사람으로 그렇게 주를 사랑함으로 양을 젖을 먹여 기르는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번째는 좀 어리니까 그저 젖만이 아니고 꼴도 먹습니다. 이러니까 자기의 행동만 볼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차차 차차 조금씩 알아서 이제는 성경 보고 믿고 하나님 보고 믿도록 자꾸 그렇게 옮겨 세울라고 애를 쓰면 조금 빠닥거리는 인제 신앙이 돼서 어북 크면은 여게 대해서는 문제가 뭐이냐? 이것이 지금 관리가 제일 문제입니다, 관리가. 행동이 문제입니다.

조금 예수를 믿었다 하지마는 그게 그저 과거에 예수 안 믿을 때에 세상 생활 하던 거와 같은 그런 생활로 그저 뭐 질팡갈팡 안 믿는 생활로, 교회 오면 믿는 생활, 또 가면은 안 믿는 생활, 술자리에는 술먹는 사람, 노름자리에는 노름하는 사람, 이 죄에 가면 또 이 죄인, 저 죄 범하는 데 가면 또 저 죄인, 이렇게 되어지는 그것을 네가 하나 하나 관리해 가지고서 내가 네게 대해서 오래 참은 거와 같이 그렇게 네가 길이길이 오래 참아서 그것을 일대 일로 그렇게 복수하지 말고 오래 오래 참아서 그렇게 그들을 한번 두번 열번 스무번 그런 가운데서 또 타이르고 관리하고 해서 마지막에는 죄와 상관이 없는 사람으로 길러 이제는 꼴만 주면 돼.

꼴만 주면 뭐 그거는 뭐 그 언덕이니까 못 가구로 가룰 것도 없고, 처음에는 못 가구로 가뤄놓고 이라지만 가룰 것도 없고, 맹수 오는 데에 맹수라고 지킬 것도 없고, 맹수가 오면 달음질쳐서 피할 줄 알고, 언덕에는 떨어지면 죽을 줄 알고 안 가고, 물에도 빠지면 죽을 줄 알고, 함정에 빠지면 죽을 줄 알고, 이러니까 관리할 것은 없이 다만 그들에게 영감과 진리의 말씀만 가르쳐서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고 갈길을 모르는 것을 이래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장성한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내가 이 말씀을 강단에 와서도 보면서 앉아 보면서도 내가 읽을 때에 자꾸 내게는 자꾸 마음에 내가 자꾸 울음과 눈물이 날라 해서 억제를 내가 많이 했습니다. 하는 그것은 내가 다른 게 아니오. 나는 참 장성한 양을 먹이는 것뿐이지, 장성한 양을 먹여서 꼴만 베다가 자꾸 줘 가지고 장성한 양을 먹이는 것뿐이지 이 장성한 양을 먹이는 꼴만 내가 목부가 돼 가지고 베다가 자꾸 이래 놓으면은 그 꼴을 먹여서 꼴만 먹여 안 되는 거는 젖과 섞어 먹이고 또 꼴은 하나도 못 먹이는 것은 젖을 먹이고 이래 가지고 이것들을 하나 하나 관리하는 것은 이거는 권찰님들과 이 반사 선생님들이 아닌가 그걸 제가 생각했습니다.

반사 선생님들 권찰님들은 참, 그래서 제가 종종 속에 그런 느낌을 가집니다. 또 말도 합니다. 이 권찰님들은 참 교인들에게 대해서 아주 따뜻한 어머니입니다. 따뜻한 어머니요. 어머니로서 거게는 다 흉금을 열고 오만 의논도 다 할 수 있고 공력이 다 들었고, 젖도 먹였고 꼴도 먹였고 또 관리도 했고 다 이랬지마는 나는 찍해야 이 꼴 베다가 한짐 져다가 툭 부들뜨리면 그걸로 다 되는 나는 목부 풀 베 가지고 오는 목부지 나는 이 양떼에 대해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 양떼라도 다 권찰님들과 반사 선생님들과는 밀접한 그런 모자의 다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런 핏줄이 얽힌 게 있지마는 나는 그저 목부로서 한짐 져다가 툭 부들뜨려서 꼴만 있으면 됐다 그라기 때문에,

그래 내가 말했어. 실은 내가 박신환 조사님이 별세해서 저 산에다 장례를 지내고 그때에 온 교인들이 뭐 참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때 나는 그랬어. 박 조사님은 그래도 어린양을 먹인 것이 있고 양을 먹인 것이 있지마는 나는 찍해야 풀밖에 안 베다 줬기 때문에 내가 죽으면 이만치 곡성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그 말을 했어. 내가 죽으면 이만치 곡성이 없을 것입니다. ? 그들과 나와의 별로 잇긴 것이 없고 오래 가면서 차차차 설교나 없으면 설교를 좀, 설교 말씀이 좀 그립다 하는 것뿐이지 그런 게 없을 것이다. 해서,

주님이 제일 원하는 것이 어린양 먹이는 이걸 제일 원하시고 그다음에는 철이 없는 양을 다스리는 이것을 둘째로 원하시고 셋째는 양 먹이는 것은 원하시는데 첫째 둘째 이것을 내가 별로이 한 일이 없습니다. 내가 여게 부산 오기 전에는 첫째 둘째를 했고 내가 부산 와서 처음에 몇해 동안 했지마는 벌써 세월이 삼십여 년이 지나가고 나니까 그만 첫째 둘째 나는 거게 대해서 관심도 없고 하지도 못했고, 이러니까 이거 뭐 쭉덩이가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러니 내 마음에 자비심이 자라가나 안 가나, 긍휼심이 자라가나 안 가나?

그래 내가 혹 말합니다. 어떤 양떼의 사정을 말할 때에 내가 푹 말해 봅니다. 뭐 그까짓 거 그럴 게 뭐 있는가? 이래 버리지. 내가 이래 떡 해 놓습니다. 이래 하면서 어짜는고 보자 이래 보면은 그 권찰님은 마음이 녹습니다. 마음이 녹아서 그래도 그럴 수가 없어 놓지를 못하는 걸 내가 봅니다. 또 반사들이 뭐 학생들 어짜고 이랄 때 그래 내가 한번 툭 그런 거는 안 나오면 냅둬라 하면은 그 반사가 그 학생을 인해서 마음에 안타까와 아파하는 그런 것을 봅니다. 내가 어제도 어떤 반사를 보니까 자기가 기르는 학생을 말하면서 그만 자기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나와서 눈물이 줄줄 흘러.

주님이 제일 원하시는 것이 어린양 먹이는 것입니다. 둘째로 원하시는 것이 철없이 날뛰는 그 양을 관리하는 것을 그걸 원하십니다. 셋째로 원하시는 것이 양을 꼴을 베다 줘서 배불리 장성하게 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런고로 주님이 거룩한 자 수만으로 더불어 와서 심판할 때에 그 심판은 경건한 일 경건한 말 이거 외에는 하나님이 취하시지 안하십니다. 그 나머지는 모조리 다 심판해서 다 유황불로 다 사뤄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을 구원하는 이 일을 위한 말을, 내가 악할지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을 구원하는 그 말을, 내가 악하면서 그 인간을 구원하는 말을 하게 되고, 내가 잔인하면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되어지고 이렇게 되어지는 것,

설교자가 기쁜 것은 나는 독사와 시랑이와 같은데 내가 설교할라고 강단에 섰을 때에는 하나도 섞임없이 어짜면 이 양떼들에게 내가 은혜를 끼칠까? 하는, 그 양떼의 구원을 위하고자 하는 그 마음만 솔빡이지 딴게 하나도 없이 그 마음만 가지고서 설교를 하고 난 다음에도 혹이나 미진한 것이 없는가 생각할 때 독사와 시랑이와 같은 놈을 주님이 이렇게 안 할래야 안 할 수, 억지로 복을 받고, 억지로 경건이 되고, 억지로 경건한 말 하고, 억지로 경건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오 주여 어떻게 제가 무엇이관대 주님이 이렇게 해 주셨습니까?

제가 남해에 그때 가 가지고 내산 기도원에 가 가지고 두 주간을 기도를 하고 오면서 버스를 타고 오며 제가 볼 때에 모든 사람은 다 세상에 있는 거 이것 저것, 이 장사 저 장사, 이 운동 저 운동 하는데 내게 하나님의 말씀을 파는 진리를 파는 장사꾼을 만들었으니까 장사꾼 중에는 제일 고급 장사꾼이다. 나를 이렇게 양을 주님이 제일 원하시는 양을 먹이 수 있는 이 직책을 주셨으니 참 복이다.

제가 너무 감사해서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복음을 전하고 난 다음에 참 거게서 나오는 눈물을 억제하면서 그래 온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잠시 잠깐 후면은 우리는 갑니다. 또 언제 갈지 모릅니다. 뜻밖에 갑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네 어린양을 먹이라.' 또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네 양을 치라.' 다스리라 말이오. 내 양을 치라. 또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번째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는고로 시몬이 심히 근심하여 주는 알지 못하심이 없사오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것은 네가 이제는 장차 네 소원대로 하지 못하고 모든 양떼들의 소원, 네가 자고 싶다고 자지도 못하고 양떼 위해 자야 되고, 먹고 싶다고 먹지 못하고 양떼 위해 먹어야 되고, 네가 네 생활 순전히 네 생활 전체는 하나님의 양을 위한 생활이 되어지고, 너 하고 싶은 거는 하나도 못하고 양 소원하는 그대로, 양이 여게 원하면 여게 가 있게 되고, 저기 가기 원하면 저기 가게 되고, 양이 감옥을 원하면 가게 되고, 양의 유익을 위해서 이제는 양을 위해서 네가 처소도 정해지고 가는 곳도 정해지고 사는 것도 정해지고 죽는 것도 정해지느니라. 하는 이것으로서 어떻게 죽어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을 마지막으로 선언하고 부탁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잠시 잠깐 후면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의인들이 말하기를 언제 주님이 주리실 때 내가 대접했으며 나그네 될 때 대접했으며 벗었을 때 옷을 입혔으며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갇혔을 때 내가 방문하였나이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 이 세상을 창조할 때에 예비하였던 의의 나라로 가라. 영접하시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네가 나를 이렇게 대접하지 안했다 언제 주님이 주리시고 어려움을 당할 때에 대접지 안하더이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치 안한 것이 곧 나에게 행치 안한 것이니라 다 놀랬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원하시는 양떼에게 행한 것이 바로 주님에게 직접 행한 것이 되고 양떼에게 하지 안하고 무심히 한 것이 바로 주님에게 하지 안하고 무심히 하는 것이 되어지는 그것을 아무도, 그렇게 그러리라 생각했지마는 그때 가 가지고는 다 놀랐습니다. 그렇게 그런 줄은 다 몰랐습니다.

후회 없는 생활 합시다.

뭐 이래도 저래도 먹고는 삽니다. 우리가 공연히 세상 일 가지고 양떼에게 손해가는 일, 남의 구원에 해가 되는 일 하지 말고 그저 조심해서 잘 살고 갑시다.

주님이 제일 사랑하는 자로, 주님을 제일 사랑하는 자로 어린양 먹이고, 철없는 양 다스리고, 양 먹이고, 양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의 의식주가 다 그대로 마지막에는 주님이 원하는 양을 위해서 양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 몸과 생명을 바쳐 주는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아무래도 순교해야 됩니다. 우리가 순생하다가 순교해야 됩니다. 우리가 참 늙어서 죽고 병들어 죽으면 참 불쌍한데 원한다고 되는 건 아니나 아무래도 우리는 순생하다가 순교해서 주님이 우리를 다해서 사랑하심같이 우리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설교: 백영희 목사(1983. 9. 4. 주일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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