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저주받은 무화과나무

  선지자선교회

본문마가복음 1112-14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마가복음 1120-25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어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 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말씀도 천지는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획이 이 우주가 없어지는 것보다 이 획이 없어지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이 번역성경 말하는 게 아니고 원본성경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꼭 같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있는 이 말씀은 구구절절이 이 천지보다 권세를 더 가진 말씀입니다. 인간들이 말해 놓은 온 천하의 책 전부 다 주 모아야 하나님의 말씀 한 획을 못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부터 믿어야 합니다. 이 한 획도 영원히 없앨 수 없고 없어지지 않지마는 인간의 지식의 이 수많은 책은 예수님 오시면 완전히 이것은 불살라 없어집니다. 다 폐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들을 때에 그 말씀을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배우느냐 잘못 듣고 배우느냐 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바로 들었으면 그 말씀은 이 우주보다 중량이 무겁고 권세가 있고 절대적인 능력의 말씀을 자기가 받아 가졌지마는 이 말씀이 아닌 다른 말을 가지고 이 말을 대신했으면 그는 어떤 청산유수로서 천하에 있는 박식을 다 갖다 주 댄다 할지라도 그것은 전능의 말씀을 아무 실력없는 인간의 말과 바꾸기 때문에 그는 손해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는 제 기분에 시원한 그게 소용없어. 듣기 좋은 것이 소용없어. 문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증거하느냐 안 하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벌로 둥둥거릴 때는 그렇지만 일반 신자에게서 올라가서 교리와 신조를 두고 이렇게 비판할 때에 한 교리가 틀렸으면 그만 그건 이단으로 정죄받습니다. 힘 못 씁니다. 한 마디를 가지고, 그 사람 이력이 암만 크다 할지라도 옛날부터 이단으로 정죄받은 것이 꼭 한 이치입니다. 한 이치가 틀려 가지고 이단으로 정죄받아 버렸고 그는 그만 사형입니다.

그러나 이 밑에서야 000이 같은 사람이, 000이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막 해도 아무 그런 게 구별이 안 나고, 여기는 법이 없는 그런 곳이기 때문에 그러하나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 다 갈 것이고 또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영원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잘못 믿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마음에 시원한 걸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기 기분에 딱 맞는 걸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된 그 인간의 기분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은 거짓되고 다 버려져, 바래져 가지고 못쓰게 된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니까 여기다 되고 자꾸 수정을 하고 고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무화과나무에 대한 설교를 하게 된 것은 얼마 전에 내가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는데 이거는 성경 본문과는 너무 얼토당토 않은 소리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제일 인기를 끌고 다 좋아합니다. 이걸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여기 이상한 말을 해 놨습니다. 무화과나무 말했고, 또 산을 바다에 옮길 수 있다는 말씀을 해 놨고, 또 그다음에는 남의 죄를 용서해라 하는 그 말씀을 말해 놨고, 여기는 예수님이 시장하셔 가지고 무화과 따 자실려고 가니까 무화과가 열매가 없었습니다. 잎뿐이었습니다. 당장 예수님께서 그 무화과를 저주해 버렸습니다. 무화과야 이후로는 너에게서 아무도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으리라

마태복음 21장에는 보면 말씀을 하셨는데 그시로부터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라가는 걸 봤습니다. 그 자리에서 보니까 말라갑니다.

여기 마가복음 11장에는 보니까 그 이튿날 그리 지나가다 보니까 무화과나무가 바짝 말랐습니다. 어제 주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저렇게 바짝 말랐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라. 너희가 믿고 의심치 않으면 이 산을 명해서 바다에 던지우라 해도 그대로 되리라.

또 그러고 난 다음에는 네가 기도한 것은 뭐이든지 이루어진 줄로 믿어라. 남의 죄를 네가 용서치 않으면 하나님이 널 용서치 않는다. 이거는 뭐 어끔뻐끔 도무지 순서도 아니고 질서도 아니고 조직도 아니고 아무 이치도 맞지 않는 소리를 이 말 한마디 툭하고 툭툭 하고 이건 참 사람이 볼 때는 정신없는 사람의 말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믿는 이치를 가르치는 이 도리이지 거기에 대한, 무화과에 대한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화과를 성도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추어서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무화과 가지가 나고 잎사귀가 나거든 여름이 가까운 줄 알라 그 무화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이런 이런 일이 있으면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라 여기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켜서 여기 무화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화과 열매 없다고 당장 저주를 해 가지고 말랐는데 또 거기에 보면 무화과 잘못한 것 없습니다. 무화과 열 때가 아니라고 했소. 무화과 열 때가 아니라서 열지 않은 무화과를 당신이 따 자시러 갔다가 무화과 없다고 당장에 저주를 해 가지고 버쩍 마르게 하는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거는 이치에 맞지 않고 이거는 예수님이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는 도리를 가르쳐서 하나의 계시기관으로, 이거는 계시, 어디까지나 계시입니다. 우리에게 믿는 도리로 보여준 것입니다. 계시기관으로 이렇게 나타내 가지고 우리에게 믿는 도리를 알려주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뭣 때문에 이 사실을 가지고 우리에게 믿는 이치를 가르쳐 주셨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여기서 찾아야 이 계시에 대한 바른 효력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이 맞나 안 맞나? 자꾸 이래 생각해서, 맞나 안 맞나 생각할 때에 그때에 우리 심정은 올라옵니다. 우리 정신 마음은, 심경은 지정의가 맞나 안 맞나? 이렇게 생각하다가 `안 맞다. 이래 버리면 이 말씀과 자기와는 결렬돼 버립니다.

이러다가 과연 맞구나. 맞나 안 맞나 하다가 이 말씀과 자기의 그 심신의 정신과 감각과 견해와 그 지각이, 감정이 맞다. 할 때에 이 말씀과 자기와는 일치가 돼 버립니다. 하나가 됩니다. 여기서 성화가 되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고 아니다. 할 때에는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러기에 말씀을 들을 때에 읽을 때에 우리가 성화를 받습니다.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사람으로 성화를 받소.

이거 뭐 시간 없는데 간단하게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에 갔다, 무화과나무에 가서 열매 따 자셨습니까? 무화과만 저주하고 말지 않았소? 이것이 구원 도리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걸 자시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이것이 예수님에게는 음식입니다. 예수님이 시장하시다는 것은 예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것을 지금 갈급한 것을 예수님이 시장하시다고 여기에 표시했습니다.

예수님이 시장하신 것은 음식을 안 먹었으니까 시장하신 게 아니고, 요한복음 4장에도 시장해서 먹을 것 없느냐? 하니까 그들이 가 가지고 성에서 사 가지고 와서 여기 사 가지고 왔습니다. `나 먹을 것은 여기에 있다. 여인이 아마 대접을 했는가보다. 그러니까 주님이 `여인이 대접한 게 아니라 내가 먹을 양식은 여기에 있는데 너거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 그러면 그 양식이 뭐입니까?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그 뜻을 행하는 것과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과 온전히 이룬 그것이 내 양식이다.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여기 시장하시다고 하신 것은 뭐 제자들도 있고 그렇츰 많이 따라다니는데 시장하면 음식을 자시든지 하고, 또 무화과 철이 안 됐으니까 무화과 열지 않았다는 것을 환하게 알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그렇츰 무식합니까? 조물주인데. 무화과 열 때가 안 됐는데, 감나무에 지금 감을 감 꽃도 피지 않았는데 감, 감 있는가 보자. 했다가 감 없으니까 저주받아라. 이럴 수가 어디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친 것이라 그말이오.

예수님이 시장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을 예수님이 갈급하게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갈급히, 우리가 시장할 때 음식을 먹으면 기쁘고 좋은 것처럼 주님은 우리가 주의 뜻을 행하는 것과 주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을 당신은 받아 자시고 만족하고 배불리 여기고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이 시장해서 무화과를 요구하다가 무화과가 없으니까 저주받았습니다. 무화과 때가 아닌데 왜 저주합니까? 무화과 때는 상관이 없어. 무화과 형편을 따라서 주님이 하신 게 아니라 당신 형편을 따라서 했지 무화과나무 형편을 따라서 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우리 각자들에게 이 사람에게 시장하셔서 찾아오시고 저 사람에게 시장해 찾아오시고, 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데 대해서 갈급히 사모하시고 찾아오시고 역사합니다. 그럴 때에 주님이 요구하실 때에 그때에 주님이 잡수실 수 있는 주님의 뜻을 행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고 이러면 주님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아 만족히 여기시고 기뻐하시고 그 시장을 면하십니다. 갈급을 면하십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렇게 할 때는 우리 형편과 사정을 따라서 당신이 , 너는 지금 네 형편과 사정에는 하나님의 뜻 이것을 행할 수 없구나. 행할 수 없을 만한 형편이로구나. 사정이로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이룰 수 있는 형편과 사정이 못 되는구나. 네 형편과 사정으로서는 못 되는구나. 그러니까 네 형편에 그러니 네 형편을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는 형편이라. 그러니까 이제 네 형편에 따라서 그러면 관용하고 뒤에 기다리겠다.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 형편을 보지 않는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요구하시는 것, 너는 이 시간에 이 뜻을 이루라. 저 뜻을 이루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양식이 되는,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는 그것을 요구하실 때에는 인간의 형편은 상관이 없다 그말이오. 인간의 형편은 상관이 없어. 그걸 여기에 보입니다. 인간은 형편은 상관이 없어.

자기의 입장이 뭐 어떻게,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거나 하나님 뜻을 이룰 수 있는 그 사정이 안 돼. 다니엘에 대한 하나님의 시장은 , 네가 기도한다는, 기도하면 사자구덩이 집어 넣는다고 하는 이런 때에 네가 기도한다고 하는 그 음식을 내가 먹을라고 왔다. 그 열매를 먹을려고 왔다. 그렇게 하십니다. 먹을려고 왔다. 그럴 때에 내가 이 시간 기도한다고 하면, 기도를 안 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뜻을 거역하는 것이고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인데 기도한다고 하면 내가 사자구덩이 들어가서 사자밥이 될 터인데 어떻게 기도한다고 하겠습니까? 이거는 다니엘의 사정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니엘의 사정이라.

내가 이런 어려운 사정이니까 어떻게 기도한다고 하겠습니까? 뒤에 기도한다고 하지요. 하면 주님 앞에서 어찌 됩니까? 그 다니엘은 어찌됩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남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어찌 됩니까? 고함 소리 한번 질러 봐요. 어찌 돼요? 저주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저주입니다. 네 사정은 상관 없다. 그걸 보이는 겁니다, 여기에.

그때에 다니엘의 사정으로서는 그 열매를 맺어서 주님에게 드릴 수 없는 일이지마는 주님은 그때 요구하신다 말이오. 요구하실 때에 그때에 그대로 순종해서 드리니까 주님은 그 행위를 받으시고 다니엘에게 축복하시고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저주의 반대 축복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요구하실 그 기회에 자기 입장 사정을 불구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요구에 대해서는 인간의 사정을 보면 저주받는다, 저주받으면 어찌 됩니까? 말라서 다시는 희망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그 기회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데, 요구하실 그때에 자기 무엇 때문에 주님이 요구하시는데 그 열매를 드리지 못했느냐? 뭣 때문에 드리지 못했느냐? 뭣 때문에 드리지 못했습니까? , 여기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무엇 때문에 주님에게 그 열매를 무화과나무가 드리지 못했습니까? 무화과 때가 안 됐기 때문에 드리지 못했습니다. 무화과 형편 때문에 못 드렸습니다. 이것을 보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에 인간의 형편 때문에 하나님의 요구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기회를 놓친다. 기회 놓쳐진 것은 필연적으로 영원 멸망이다. 영원 멸망이라. 우리가 이렇게 지나가고 있지마는 이것을 말로 해서 모르니까 이런 형식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라 그말이오.

여기서 알리는 것은 주님이 갈급하시는, 갈급해서 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것을 갈급히 요구하시는데, 당신이 요구하실 때에, 요구하실 때 그때 대접해야 되지 그때 기회를 놓치면 저주 외에는, 그건 기회를 놓치면 이룰 수 있는 그것은 영원히 멸망입니다.

주님이 요구하실 때에 그 기회에 이룰 수 있는 그것이, 주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그것이 주님의 뜻을 그 기회에 이루지 못했으면 이루지 못한 그것은 어찌 됩니까? 영원 멸망입니다. 이것을 늘 배우지 않았습니까? 이 성경이 이걸 깨닫기 때문에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 성경의 해석을 삐뚤어지게 틀리게 해 버리고 만다 말이오.

여기서는 주님이 요구하시는 그 요구, 그거는 뭐이냐? 주님이 시장해서 음식 먹으려 하는 거와 같이 이 주님의 시장, 주님이 지금 그것을 자셔야 되도록, 배고플 때에 음식이 갈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의 의에 대해서 갈급이라.

그러기에 , 네가 이 뜻을 하나 이루어라. 주님이 그 뜻을 이루기를 원하실 때에 이루면 당신이 시장을 면하시고 이제 배불리 자신다 그말이오. 당신에게 음식이 된다 그말이오. 이것을 행해라. 이걸 이루라. 할 때에 인간 사정 보면 이루지 못합니다. 인간 사정 보면 이루지 못하요. 인간 사정 봄으로써 이루지 못해 가지고 이루지 못한 그것은 영원히 멸망입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가 현실 현실에서 자기 심신의 기능 이 요소를 영원 멸망으로 자꾸 멸망시키고 갑니다. 자기에게 소속 관련된 것을 자꾸 멸망을 시키고 갑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시장해서 열매를 구했는데 열매없는, 그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는 영원히 저주받아서 말라버렸다. 다시 뒤에 기회는 없었다. 왜 드리지 못했을까? 무화과 형편 따라 드리지 못했다. 그것을 여기에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형식 계시입니다.

또 그다음에, 베드로가 보고 어제 선생님이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랐나이다 이러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 이래 놓고 이 산을 명해서 바다에 던지우라 해도 네 말대로 될 것을 의심치 않고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 여기서 잘못하면 의심치 아니하고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 이러니까 무엇이든지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구하고, 하나님에게 구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이대로 구한 대로 다 이루어 주시리라 의심 않고 믿기만 믿으면 된다.

이러니까 믿사옵나이다 하면 다 된다 이렇게 이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사람들을 임시 좋도록 이래 가지고 모든 사람이 , 참 부자 방망이로구나. 뭐이든지 하나님에게 구하고 이루어 주실 것을 의심만 않고 믿기만 믿어버리면 다 돼 버리는구나. 이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이 욕심쟁이들이 막 달려듭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위에 하나님 믿으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는 것은 어떤 것이 믿는 것이냐?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고 어떤 것에든지 하나님의 뜻 없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가 일을 닥쳤든지 물건을 닥쳤든지 반드시 거기는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없는 일이 없고 없는 물건이 없고 반드시 거기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그 일에 대해서, 물건에 대해서 내가 이래 할까 저래 할까, 물건을 쥘까 놓을까 던질까, 이 일을 할까 하지 말까? 반드시 자기가 닥친 그 물건이든지 사람이든지 시간이든지 무엇이든지 거기는 하나님의 뜻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외에는 인간의 뜻은 만 명이면 만 명 뜻이 다 있소. 그건 소용없고 하나님의 뜻 하나 있으니까 하나님의 뜻 하나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하나님께 복종해라. 믿으라 말은 하나님을 좇아라, 하나님께 피동되라, 하나님을 따라 움직여라, 하나님께 순종해라 그말이오. 하나님에게 순종해라.

하나님에게 순종하라 했는데, 순종인데 무엇이든지 제 마음대로 구하고 될 것만 인정하면 된다, 다 되리라. 그러면 백 사람은 백 욕심 다 구할 것이고 만 사람은 만 욕심 다 구할 것이고, 인간들은 전부 시기 질투 쟁투로 전부 서로 미워하고 이래 살고 있는데, 이거는 저거 죽어라 저거 망하라고 구할 것이고 저거는 이거 망하라고 구할 것이니까 이거 하나님이 다 주면 이 세상 담박에 다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안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표시를 안해 그렇지.

하나님을 믿으라 그말은 네가 하나님을 따라 움직여야 될 자로 네가 알아라. 하나님을 따라 움직여라. 하나님께 순종으로 네가 살아라.

그 말 딱 해 놓고 그다음에 네가 산을 바다에 던지우라 말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 그러면 산을 바다에 던지우라 하는 그것이 제 생각대로 제 마음대로 하면 하나님이 복종해 준다 말입니까, 하나님을 믿으라 하니까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나님이 산을 바다에 던지우라고 시키시거들랑 말해라 그말입니까? 그말이오.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이면 어떻게 어려운 것이라도 네가 그대로 순종을 해라. 순종을 하고 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된다. 믿음은 뭐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이니까, 하나님께 복종하는 그 운동이니 그것은 자기 주관 운동입니까 객관 운동입니까? 뭐이요? 하나님께 순종하는 행위니까 그거는 주관 행위입니까 객관대로 된 행위입니까? 객관대로 된 행위입니다. 의심치 말아라 그말은 거기에 네 주관 행위를 붙이지 말아라 그말이오. 네 주관 행위를 붙이지 말아라. ?

요거 참 어렵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대중을 두고 가르친다는 것이 이것이 좀 어렵다 그말이오. 좀 학자들이나 놓고 가르쳐야 이거 좀 깨달아지는 것인데.

하나님을 따라서 네가 움직이라 네 현실에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저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가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은 대개 쉽습니다. 엔간하면 다 찾습니다. 이 일을 해야 되나 안 해야 되나? 이거 다 압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자기네들이 다른 사람이 너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싶은 그대로 남에게 해라. 모든 율법과 선지자가 다 그러하니라. 말했습니다.

하면서 , 이거 권찰님이 알면 못 하게 할 건데, 권찰님이 알면 이 일은 잘했다고 칭찬할 건데, 목사님이 알면 못 하게 한 건데. 그것이 벌써 자기보다 신앙 선배가 알면 물으면 하지 말라 할 것이라 하는 그거는 자기가 벌써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말이오. 물으면 반드시 이 일에서는 이렇게 하라 할 것이다. 하는 그것은 벌써 자기가 그래 해야 될 줄 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닥친 현실에마다 자기가 행할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그 뜻은 대개는 알 수가 있다. 가다가는 모를 게 있지, 너무 알쏭달쏭해서 모를 거 있지, 자기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라 하겠는가? 하는 것을 자기가 알려고 하면 대개는 알 수가 있다. 알면 그대로 해라. 알면 그대로 해라.

그대로 하는데 그대로 하는 이 일이 어렵기를 산을 옮겨서 바다에 던지우라 하는 그만치 어려운 일이라도, 알겠습니까? 그만치 어려운 일이라도, 네가 현실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 뜻을 네가 알려고 하면 아는데, 그 뜻대로 행할려고 하면 그 일이 어렵기를 이 산을, 한국에 있는 산더미 이 많은 걸 버뜩 들어서 바다 다 나가 버리고 한국은 평야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네가 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것 모양으로, 그 산을 바다에 던지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렇게 어려워도, 이렇게 어려운 것이라도 네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그것이 이렇게 어렵고 네 보기에는 절대 안 될 것으로 보여져도 네가 믿고 하나님이 이와같이 당신의 뜻이 이러니까 당신이 이 일을 하시면 못할 게 뭐 있겠느냐?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는 그 하나님을 따라서 네가 했다는 거, 하나님을 따라서 네가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 이것을, 이것만 네가, 하나님이 하라 했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이니 하나님이 하시지. 이것만 가지고 있고 되겠나? 안 되겠나? 하는 네 주관이라는 것은 그것을 보태지 말아라. 그것만 없애면 된다.

이렇게 사람 살리는 이런 말씀인데 이것을 냅두고 제 욕심대로 무엇이든지 구해 놓고 자꾸 믿기만 믿으면 된다, 믿사옵나이다만 하면 된다. 이거 가지고 한국 교회를 다 죽입니다. 이런데 그게 또 제일 인기를 끈다 말이오, 인기를 끌고. 이해가 됩니까?

 

그러면 그다음에 또 말씀하시기를 네가 남의 죄를 사해 주면 천부께서 네 죄를 사해 주리라. 남에게 혐의가 있거든 용서해라. 용서라 말이 해방이라 말입니다.

이러니까, 그러면 무슨 열매를 맺으라 말이오, 마지막에 결론에? 네가 열매맺을 것은 인간을 불행에서, 인간을 죄에서, 인간을 삐뚤어진 데서 해방시켜 바른 데로 돌아오게 하는 것, 인간을 멸망에서 구출하는 것, 죄인을 의인으로 하는 것, 삐뚤어지게 가는 사람을 그걸 바로 고칠려고 하는 이것이 열매인데, 이것이 열매인데, 이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예수님이 시장해서 요구하시는 요구는 그것입니다.

왜 하필 무화과를 비유했을까? 무화과는 영광스러운 꽃이 없이 여는 열매입니다. 꽃이 없이 맺는 열매가 무화과요. 모든 일은 성공이 되면 모든 사람이 영광이라 존귀라 저 사람 희망 있다, 이렇게 문채가 되고 광채가 있고 성공이 있는데, 모든 세상 것은. 이것은 광채가 없고 성공입니다. 광채 없는 성공.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하신 것이 무슨 문채가 있고 무슨 풍채가 있고 무슨 광채가 있었습니까? 없는데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열매라 말이오. 인간을 구원하는 열매는 전부가 무화과 열매요. 인간을 구원하는 그 구원에는 아무런 그 구원 역사에 영광이나 존귀나 칭찬이나 그런 게 없습니다. 정말로 다른 사람에게 욕 얻어먹고 천대받고 멸시받고 하는 거기에서 인간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주님이 요구하시는 열매는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그 행위를 요구하신다. 네 자신이 사망에서 사망을 벗어나오는, 죄를 벗어나오는 이 행위를 주님이 시장하셔서 요구하시고, 다른 사람을 이렇게 죄에서 해방시켜 구원하는 이것을 주님이 시장해서 요구하시는데, 요구하시는 그 요구를 들으면 영광이요 존귀요 칭찬인데 요구를 못 들은 것은 다 멸망을 받는다. 요구를 왜 못 듣느냐? 요구를 못 듣는 것은 무화과 제 형편 따라서 하다가 요구를 못 듣고 말았다.

그러면 이 무화과나무가 이렇게 뿌리까지 다 말라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내나 먼저 어제 하신, 어제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말랐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무슨 말씀 하느냐 하면 산을 바다에 던지는 그말 했습니다. 그말 하고 그말 하기 전에 하나님을 믿으라 말해 놓고, 네가 하나님을 주님이 이렇게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인간을 구원하는 이 요구인데 이 요구는 인간 자기 형편 보다가는 이루지 못하고 기회 놓쳐 버리면, 그거 이룰 수 있는 그 요소는 기회 한 번만 놓치면 영원 멸망이다. 두 번 거듭 없다.

이러니까 네가 하나님을 믿으라 네 현실 현실마다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거기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그거는 뭣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무화과 열매 맺을, 무화과 열매 맺을 그 열매가 여기 있다. 껍데기 광채는 없지마는 실은 열매는 좋은 그런 열매를 맺을 그 열매가 현실에 놓여 있다. 네 형편 보면 저주받는다. 네 형편 보지 말고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면 된다.

네 현실 현실마다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있는데,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느냐? 네 현실마다 자기나 다른 사람이나 자타를 구원할 하나만 되는 유일의 법칙이 반드시 네 현실에 있다. 네 현실에 있다. 하나님을 믿으라 반드시 네 현실에 있다.

그러면 현실에 있으면 자타를 구원할 하나님의 뜻이 현실에 있는데 그 뜻대로 할려고 하면 얼마나 어려우냐? 산을 바다에 던지우라고 하는 것만치 어렵고 불가능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고 택도 없는 소리고 이건 안 될 그런 것이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이 너에게 하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그것이 믿음 아닙니까?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 그것만 네가 가지고 있고 의심치 말아라 네 주관 행동은 다시 하지 말아라.

베드로가 주시어든 나를 오라 하십시오. 물 위로 걸어오라, 오라. 이러니까 물위로 떠뻑떠뻑 걸어가지 않았습니까? 가다가, 주님만 보고 걸어가는 그것만 걸어갔으면 춤을 추고 걸어가도 괜찮아. 주님만 보고 가면 물 꼼짝 안 해. 이랬는데 가다가 주님 안 보고 풍랑을 보다가 빠져 들어갔다 말이오. 그게 뭐입니까? 그걸, 풍랑을 봤는데 주님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거? 그걸 뭐라고 말했지요? 뭐라 했소? 왜 의심하였느냐? 왜 주관이 나왔느냐 그말이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이 요구하시는 그 기회는 우리 현실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기회요 주님에게 대접할 수 있는 결과를 맺어야 될 그 기회인데, 그 기회에 주님이 요구하시는 요구에 응해 드리지 못하고 자기 주관대로 하면 그 시간에 열매 맺을 수 있는 그 요소는 다 영원히 멸망받았습니다. 이래서 매일 매일 둘째 사망으로 영원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엉뚱스러운 말같이 하나님을 믿으라. 이 산을 바다에 던지우라 해도 그대로 된다. 이 말이 참 엉뚱한 말 같습니다. 엉뚱한 말이 아니오. 요렇츰 조직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라 무슨 움직임? 무화과의 열매. 무화과의 열매라니?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열매, 네나 다른 사람이나 사해 주는 것, 해방시키는 열매.

주님을 따라 움직여라 주님을 따라 움직일 때에 네 보기에는 어렵기가 이거는 주님을 따라 움직여도 안 된다. 네 형편을 따라서 안 되는 거 아니라, 네 형편 따르면 저주받고, 네 형편 따르지 않아도 주님의 뜻을 발견했지마는 그 일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 이 일이 어찌 이루어지겠느냐?

인간이 거게 봉착될 것이기 때문에 뜻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산을 바다에 던지우라 해도 네 주관만 나오지 않으면 된다. 이러니까 네 현실에서 자타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있으니 그 뜻을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 그 뜻으로 순종해서 그 뜻으로 살아라.

그 뜻으로 살 때에 그것이 인간이 볼 때에는 어떻게 어려워서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상관없다. 네 주관만 안 나오고 믿음으로만 나가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면, 이루어지면 그 결론으로 말해서 그게 뭐라 말입니까?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요 진리를 함축해서 자기가 새김질해서 이걸 들을 때에, 이거 아마 알아듣지 못할 거라. 들을 때에 이것을 깨달아서 알쏭알쏭 이래 하다가 깨달아서 , 이거다. 하면 그 말씀에 따라서 변화가 돼 버립니다. 한 번 변화돼 두 번 변화되면 그다음에는 말씀 듣는 것이 자꾸 쉬워져.

이러니까 여기에 있을 때 말씀을 잘 듣던 사람이 딴데 가 가지고 한 3, 4개월 있다 오면 그만 얼떨떨해. 말씀을 해야 못 알아듣는다 말이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한참 와서 좀 고생을 해야 알아듣지.

그러면 삐뚤어진 걸 가르쳐 그러냐? 삐뚤어지는 걸 가르치지 않는데 그만 세상 사람화 외식화돼 버리고 이 세상 지식화됐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 모른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 시간에 우리가 통성으로 기도할 때에 이 시간 말한 걸 여러분들 종합으로 전체해 가지고 이렇게 종합을 해 가지고 하는 그것은 처음에 모르면 단절적으로 알라 그말이오.

주님이 시장하신 것은, 주님이 우리를 향하여 시장해 하신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당신이 잡수실 수 있는 것을 우리에게 달라고 요구하신다. 우리는 무화과나무다. 요구하시는 그거는 뭐이냐? 우리가 당신의 뜻을 행하고 이루는 그것을 주님은 지금 갈급해서 요구하고 계신다. 그럴 때에 무화과는 제 형편에 따라서 열매 없어 대접 못 하고 말라 버렸다. 그러면 주님이 이 현실에서 나에게 당신의 뜻 이루는 것을 요구하셔서 당신이 잡수시고자, 시장해서 잡수시려고 요구하는 것처럼 그거 그렇게 우리에게 하나 이런 형식으로 보여줬다 말이오. 당신이 기뻐하셔서 그런 당신의 그 신성이 이걸 제물로 받고 기뻐 하시려고 요구하실 때에 내 형편 보면 저주받는다. 그때에 대접하지 못한 것은 다시 대접하지 못한다.

기회를 이 기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이 요소는 그 기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되지 그 기회를 놓쳐 놓으면 이 기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요소가 내일 이룰 수 있습니까 오늘로 끝나 버리고 멸망받았습니까? 오늘로 끝나 버리고 영원히 멸망받았다 그말이오.

그 제자들이 보니까 뿌리부터 말랐나이다. 영원히 멸망을 받았는데 그러고 난 다음에 영원히 멸망을 받았습니다. 말라버렸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그만치 알면 됐다 말이오. 그만치 알면 됐으니까 말씀하시기를 그런고로 하나님을 믿으라 그러면 무화과나무 저주에 대해서 무슨 말 하려는가 듣고 있으려 하니까 그거는 한 마디도 않고 그런고로 하나님을 믿으라. 산을 바다에 옮기우라 할지라도 그대로 네가 믿고 믿음만 가져 있고 의심치 않으면 된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만 가지고 있지 네 주관을 거기에 내세우지 말아라. 그러면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서 네가 남에게 혐의가 있거든 풀어 줘라. 네가 해방시킬 수 있으면 해방을 시켜 줘라. 또 남의 죄를 사해 주면 너를 사해 주리라. 네가 다른 사람을 죄에서 해방시키면 하나님이 해방시켜 주시리라. 엉뚱이 같은 말이라 그말이오.

그게 뭐이냐?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뭐이냐? 인간을 죄에서 구출하는 그것이 당신이 요구하시는 열매요 그럴 때에 자기 인간 형편 보면 이것은 이루지 못하니까 이루지 못한 그 요소들은 영원히 멸망을 받는다.

그런고로 네가 네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그 뜻은 자타의 구원을 이루는 뜻이니까 그 뜻을 찾아 가지고 그 뜻대로 네가 해라. 그 뜻대로 해라.

하는데, 그 뜻대로 하는데 산을 바다에 옮기는 건 뭣 때문에 합니까? 이렇츰 어려워도 된다 그말이오. 현실에서 별견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싶으면, 그 뜻이라 싶으면 네가 망해도 죽어도 상관없다. 반드시 네가 순종만 하면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그 일을 역사해서 산을 바다에 옮기는, 말만 하니까 옮겨진 것처럼 너는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권능이 와 가지고 그 일을 역사하는 이걸 믿어라. 믿고 의심치 말아라 네 주관을 내세우지 말아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권능을 얻읍시다.

이런 걸 진리를 깨달아서 진리 이대로 깨달은 사람은 환난이 와도 꼭 이깁니다. 부딪치면 이겨요. 이기는 게 문제없어. 그러나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듣기 좋은 말만 자꾸 들어서 믿사옵나이다 하면 됩니다. 하지마는 그때 뭐 믿사옵나이다. 한다고 됩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아래층에서 결혼식이 있는데 가서 축하해 주시고, 이 시간 기도할 때에 여기에서 어쩌든지 이거 진리를 깨닫고, 자기가 깨달으면 속으로 아멘이 되고 , 옳다! 옳다! 옳다! 그거다! 그거다! 자기 마음에 시원히 되어지고 이 말씀과 자기와 일치가 되어지면 자기는 이 말씀으로 변화를 받았습니다. 이러면, 이래 기도하다가 자기가 깨달아서 , 이거다! 자기도 모르게 속에서 확 힘이 나오고 옳다! 이거다! 이거 나온다 그거요. 그러면 그거 능력입니다. 그 능력 가지고 세상도 이기고 그 능력 가지고 무궁세계에서 살고 그것이 자타를 살리는 그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르르 가지 말고 어쨌든지 이 시간에 이 진리를 이 자리에서 깨달아요. 이 자리 떠나면 여러분들이 못 깨닫습니다.

 

설교: 백영희 목사(1981. 12. 16. 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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