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강해

2007.06.03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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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위기 강해
선지자선교회   


제 1장        
제목: 번제  

1~9절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물 드리는 이것이 무슨 상징인고 하니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는 상징이요. 양, 소, 비둘기를 잡아 드리는 것의 모형은 하나님이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심을 상징.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것은 나의 가진 것을 법도대로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이렇게 쓰이는  것이 하나님께 받는 것이요. 우리가 세상을 가짐은 일시 보관이니 이를 일단 진리대로 보관하면 영영 자기 것이요 연보 하는 이것도 드리는 형식을 갖추나 이는 영영 자기 것 만드는 것이요.

양을 잡아 제사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독생자를 구속주를 주시는 것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대접하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요. 받은 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자꾸 주는 것 밖에 못하시니 이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으로 자꾸 창조 밖에 못하는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은혜 베푸는 일과 지으시는 일밖에 못하시니 왜 그런가? 하나님은 완전자임으로 그가 받아들일 것이 없어. 하나님께 줄 자가 없어. 완전에 무엇이 보태지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접은 받는 것이요. 하나님이 성자될 요소를 주실 때에 받는 것이 큰 대접이요

예수님이 가장 하나님이 주시는 것 잘 받아 잘 되신 분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내가 잘 되는 것 이것 밖에 달리 무엇을 하는 수 없어. 하나님이 주실 때 받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받는 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대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손 목사님이 생명을 바쳤습니다. 이 바친 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지나가면 없어지는 것인데 없어질 것 가지고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나의 것으로 보관시키는 것이요, 바치는 것이 받는 것이요 받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이요.(85.11.20)  

바치는 것이 독생자 받는 것을 그림자 함. 번제를 드림이 영영히 자기 것으로 보관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는 언제나 소나 양, 염소, 비둘기 등과 같은 생축으로 제사를 드려야지 생축이 아니면 제사를 드리지 못해.  

소제-곡식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반드시 생축으로 제사 드린 후 이어서 곡식으로 제사 드릴 수 있지 생축 제사 드림이 없이 곡식만을 가지고 제사 할 수 없어. 생축으로 드림이 아니면 받지 안 함. 생축으로 제사 드림을 받고 이어 연결됨을 하나님은 받으시니 이것의 상징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받으시고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은 것은 받으시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받으시고 그리스도의 것을 받으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을 받으십니다. 위의 것 외는 받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주의 피로 산, 주의 것을 받으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을 받으신다. 예물 드릴 때에는 반드시 잡은 이것과 짐승의 피로 말미암은 것과 피로 연결된 것 외에는  받지를 않습니다. 이 외 피 없이는 받지 않습니다.

첫째로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받으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것을 받으시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것을 느끼고  섬기면 하나님께서 섬김으로 받으시고 그리스도 것으로 섬기면 바치면 그리스도의 것으로 섬기고 바친다. 하나님께 바친다고  하나 생축아니면 받지 안 해. 연보, 봉사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의 것으로 지식하고 바칠 때 지식으로 바치고 느낌으로 바치면 지식 느낌이 그리스도로 바침이 되면 그리스도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되 생축으로 드려야하니 이 외는 받지 않습니다. 곡식으로 드릴 때는 생축으로 말미암아 받으시니 즉 그리스도로 하나님은 받으신다. 그리스도로 받으시니 그리스도의 것은 받은 것입니까? 안됩니까 ? 그리스도는 받고 그리스도의 것은 받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도 받지 않으시니 그리스도도 받으시면 그리스도의 것도 필연적으로 받을 것이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것 소용은 하나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것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이 예물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지식으로 그리스도로 바치면 그리스도 지식으로 바치고 그리스도의 것으로 느끼고 바치면 이성면만 그리스도의 것으로 되고 몸까지 행함으로 드릴 때 그리스도의 것이 됩니다. 제일 복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것으로 그리스도가 쓰시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예물 드리는 것이요 그리스도께 받는 것이요. 성전을 지은 후 직접 하나님 섬김을 레위기에 가르쳐 말하니 이 섬김이 곧 하나님께 받은 것이다. 그러면 오늘 내가 그리스도의 것으로 살면 영영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의 것이 되는 것이요.  

<결론 간추려 종합해 보면>  
1. 생축만 예물이라는 것, 소제 밀가루 및 타 곡식으로 드리나 생축으로 피 흘린 끝에 하나님꼐 바침.
2. 드리는 것이 받는 것. 받는 것이 하나님께 답하는 것.
3. 4~13절: 번제는 전부 드림을 말함. 소, 양, 염소, 비둘기로 제사하는 것
4. 14절: 하나님 예물은 생축 뿐인 것.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만 받으신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영영히 주시고 받으신다.    

제 2장    
      
제목: 소제  

요절: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꼐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 자손 제사장에게로 가져올 것이요(레 2:1~2). 소제는 밀가루(곡식) 기름, 소금, 향을 합하여 제사를 드림. 번제인 짐승을 드림은 소제를 드림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짐승은 예수님 자체를 말했고 소제는 예수님이 여러모로 우리에게 수고해 주신 수고를 받은 것이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세상에 오신 순종하신 공적을 우리에게 주심을 예표한 것이요.

소제를 드림이 예수님의 대행대형의 공적을 받는 것이요.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우리로서는 어떻게 하느냐? 그들이 양과 소제를 드림이 하나님 앞에 독생자 자체와 대행대형 하신 공로를 받은 것이요. 그들이 드리는 것이 받은 예표요 양을 잡아 번제를 드림이 독생자를 주심에 받는 이것이 번제를  드림이요.

그러므로 예수님이 실제로 우리를 위하여 대형대속의 공로를 베푸심으로 대형대속을 받은 우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요 우리는 그 독생자의 공로를 힘입은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 독생자의 구속을 받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 기본적인 속죄제와 번제 속건제 화목제와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의 제사를 구약 이스라엘 백성을 드렸으니 우리는 드렸습니다. 드린 것이 곧 그 공로를 받는 것이요. 그러므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 대접하고 섬기는 것이지요. 구약 이스라엘이 짐승으로, 곡식으로 하나님 섬김은 우리에게 도를 가르치기 위함이요

요4장 구약시대는 심고 가꾸고 신약 우리는 추수만 하면 된다고 했음. 구약을 보아, 드린 것이 받는 것인 줄 알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 받는 것이요. 구약시대는 드리는 것이 받는 것이요 신약시대는 받는 것이 드리는 것이요 이 말은 다 같다.  

신약 우리는 받는 것을 먼저 했고 구약은 드리는 것을 먼저 했으니 받는 것이 드리는 것이요 드리는 것이 받는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 대접하는 것은 하나님 주실 때 받는 이것이 섬기는 것이요 당신이 주시는 것 받기만 잘 하면 하나님 잘 섬기는 이 외의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 만들어 주실 때 내가 받아 의인되는 이것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다 받은 분이 예수님 한 분밖에 없으니 예수님이 하나님 주심을 전부 잘 받아 간직했으므로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전부 다 주셨다 . 받은 자에게 점점 더 주신다. 일차 구약은 드리고 받고 우리는 받음으로 드렸으니 지금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드림으로 받아야 합니다.

나의 오늘 몸 하나님께 드렸으면 영원히 나의 것으로 승화시킨 것이요, 오늘 주일 연보 100원했으면 이는 영원히 나의 것 된 것이요. 그러므로 억만금이 있다해도 하나님이 이전시켜 주시지 않으면 자기 것이 안됩니다. 보관해 가지고 있는 이것을 명의변경 시킴의 구속은 어떠한가? 하나님께 드리는 이것이 이전시키는  것이요 하나님께 드리면 제것이라는 것이요.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바치는 이것이 하나님께 소제 드리는 것이니 이것을 드리면 영원 자기 것인데 누룩과 꿀을 섞으면 안되니 이는 우리의 생활을 드릴 때 죄악을 섞어 드리면 안되고 불목을 섞어 드리면 하나님이 받지 않습니다.    

불목이란 진리와 하나 되지 않은 것이 불목이요 바벨탑을 쌓을 때 천하 사람이 화목했으나 진리에 배치되므로 불목이요, 가인이 아벨을 죽였으나 아벨은 가인과 화목한 사람이요. 진리와 하나 되게끔 하는 이것이 화목이요, 부패 불목은 진리에 위반된 것이요,

소금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언제든지 소금은 녹아짐에서만  가치 있는 특수 본질이 있으니 즉 사랑이요. 소금은 녹아짐에서 가치를 발산할 수 있으니 우리가 모든 행동을 바칠 시 사랑의 수고하는 곧 다른 것을 유익하게 하기 위한 노력의 성격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성격이어야 합니다.  

자기 전부는 이웃과 하나님을 위하여야 생명이요 영생이다. 유향은 기도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곧 덕이요. 우리의 행위를 받을 시는 제 3자에게 덕이 되어야 하나님이 받으신다. 제3자에게 덕이 되어지는 이것이 향이요. 기도가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으로 감추인 것이요, 신덕은 사람이 볼 수 있게끔 발산되는 기도요. 우리의 기도함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함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앞으로 나오면  곧 신덕이요. 기름은 성신의 감화요. 우리의 모든 행위가 성신의 감화로 된  것이어야 하고, 제 3자에게 덕이 되어야하고, 또 거기에 불목이나 죄악이 없어야하고, 피와 연결해야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 이어야합니다.  
꿀은 다른 물질을 삭게 하는 것.  

소제; 고운 가루로 된 것으로 찌거나 굽거나 부친 빵. 이삭을 볶아 찧어서 드리는 것. 기름과 소금을 치고 유향을 바르나 꿀과 누룩은 제할 것.


제 3장  

제사를 드릴 때에(소나 양이나 염소나 이렇게 드림은 그리스도를 그림자함이요), 제물 위에 안수하는 것은 안수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짐승이 대신 책임짐을 의미함. 제사장 아론 자손은 또 주님을 그림자하고 제물로 예수님을 그림자 함. 제물이나 제물 드림을 예수님만 할 수 있고 오늘 우리는 자기 책임과 의무의 못함을 부담시키는 것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우리의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예수님의 것이 되어져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고 하나님은 받을 수 있다. 또 우리가 예수님과 연결이 되어 예수님의 자체 곧 예수님의 대리자가 되어질 때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릴 수 있고 예수님과 연결이 되어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위로 올리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예수님의 것이 되어져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고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것이요, 그 외에는 안됩니다. 나의 돈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무익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구속을 입어 주님의 소유됨을 마음으로 느끼고 바칠 때 우리의 행위로 바침이 되고 느끼지 않고 바칠 때도 법적으로는 바침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능동의 의에 있어서 예수님의 것인 줄 알고 바쳐 질 때 나의 인격으로 바쳐짐이 되니 곧 나의 의요. 우리 자체가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느낀 후라야 제사장 노릇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주님이 받으실 수 있는 제물 되고 바치는 것이 되어질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되고 나는 받아 영원한 나의 것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짐승을 잡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독생자의 구속을 받은 것이 그들이 제사장 노릇으로 하나님께 바침이 제사장 혜택을 우리가 입은 것이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이 그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그것이 결과를 이룬 것은 독생자의 대속을 받은 것이요, 또 그들이 제사장 노릇을 바로 한 결과요,

무슨 결과를 이룬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 노릇하신 혜택을 우리가 입은 것이요. 그러므로 드리는 것이 받은 것이요, 섬김이 섬기는 혜택을 받은 것이요. 신령한 이스라엘 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이 짐승을 바치는 것 같이 우리가 바칠 수 있는가?

나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것이 된 것을 느끼고 바쳐질 때 우리가 바치는 그것이 또 우리가 영원 받는 것이 됩니다. 또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인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 알고 살면 무슨 결과를 맺는가?  우리가 제사장 노릇을 바로 하려면 그리스도만이 제사장이니 그리스도의 제사장 된 모형이 된 우리 제사장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야 제사장 노릇 할 자격과 하나님 섬길 자격이 생겨집니다. 이 자격으로 하나님 섬기는 자격을 할 때 그리스도의 지체로 하나님 바로 섬기면 그것이 예수님이 제사장 되어 하나님 섬김이 곧 우리를 섬김이 되니 하나님은 예수님이 높아 섬겼으나 우리를 섬김은 우리가 높아 섬김이 아니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는 위함이 영원히 받은 일이 되므로. 예수님이 영원 제사장이니 제사장은 백성을 위하여 섬기는 것이니 이스라엘 백성을 위함의 혜택을 입은 것 같이 우리를 위하는 제사장 혜택을 입을 수 있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이 제물된 혜택(단번이요)을 어떻게 입으며(구속 혜택), 예수님의 제사장 된 혜택을 어떻게 입는가 ?(영원이요) 나의 모든 것이 주의 것인 줄 알고 바쳐지는 것이 제물 된 혜택을 입는 것이요. 예수님의 지체되어 하나님을 섬기면 제사장 혜택을 입게 되고 지체가 되어 하나님 섬김이 영영히 나를 위함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섬김이 나를 섬기는 것이요. 하나님께 바침이 곧 나를 위함이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함이니 이것은 제사장 노릇 하는 것이요. 화목제는 반드시 성전 뜰에서 자기와 관련한 사람과 함께 먹으니 자기와 가장 먼 사람(원수)과 모아 먹어야 용납하지 자기 이웃끼리만 먹으면 용납하시지 않름. 예수님은 화목을 위하여 죽으신 분이니 화목을 깨뜨리는 그 자는 예수님의 원수요.
속죄제

레위기 제 4장 1절 ~ 5장 13절  1966.6.22.
              
속죄제란 죄 사함을 받은 제사요, 첫 위치를 차지하는 제사요.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소제의 순서요

1. 다같이 죄를 지었으나 범죄가 각자 범죄의 종류에 따라 제물이 다릅니다. 제사장은 한 사람 범죄가 온 민족이 다 범죄한 죄의 제물이 되어야 속했다. 회중 제사장 범죄는 수송아지, 족장의 범죄 시는 수양, 평민 개인 범죄 시는 암양. 그러므로 다 같은 죄를 지으나 그 사람의 위치와 직분에 따라 죄의 값이 큰 것이요.

그러므로 회개는 그 직분에 따라 깊이 뜨겁게 회개해야합니다. 평신도의 범죄 함과 권찰, 집사의 범죄와  장로 목사가 범죄 함에 하나님 앞에 제물의 차이가 있으니 즉 회개가 더욱 힘듦을 알아야 합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모든 사람이 주목하고 있음으로 차이가 있다.  

2. 자기의 범죄 함이 깨달아지거든(14절) 우리의 속죄는 깨달아지기 전에 받으니 그러면 14절에 좀 모순이 생기는 것 같으나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먼저 율법을 주시고 정죄 후 복음으로 구원하시는 것이니 이는 기본구원을 받은 후 성화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에덴동산 선악과 먹기 전 죄를 정함이 율 법이요 선악과 먹은 후 죽었으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사죄 받는다. 율법으로 정죄 후 여인의 후손으로 구원 할 것을 말합니다. 성화구원에 있어서도 율법이 먼저요 복음이 그 다음이요. 먼저 주님 앞에 사함을 받은 것은 성화를 받은 것인데 이는 다 율법 순서를 해결 후 되는 것이요. 잘못을 깨달은 후 고침이 있지 고 친 후 깨달은 것은 성화법에 해당치 않는다.  

* 의를 행함에 있어서 의의 반대인 불의를 알고 의를 아는 것 * 미래적으로 건설면에 있어서 의를 행하기 보다 죄를 안 후 어떻게 함이 선인 줄 알고 행하여야 하는 것이요. 의를 행할 때도 의를 행치 않는 거기에서 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죄에 의에 대하여 양면이 있으니, 죄에 대하여는 율법으로 먼저 아는 것이 먼저요 죄를 깨달아질 시 제물이 필요한 것이요. 그러므로 깨달으면 속죄제를 드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지공법에서 받은 법적 사죄가 있고(공적),  법적 사죄 받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실질적(사적) 사죄 받는 길이 있다. 성화 된 속죄제에게 기본 사죄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나 (롬 8장 1절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고 했으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났으니) 그러니 우리가 법적 사죄는 알기도 전에 사죄 받았다고 알았으나 여기는 안 후 속죄제 드린다고 했으니 이곳 제사는 성화(사적)인 제물만으로 보기 쉬우나 이는 사적 공적(법적 사죄)이 겸한 것이요.  

기본구원은 나기도 전 예수님이 대형대행하사 법적 사죄했으나 오늘 우리는 실질적 사죄를 입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는 자기 허물을 안 후 제사를 드리는 것이니 사적 사죄함의 건설 사죄만을 말하는 것이니 그러면 하나님의 지공지성의 법에서 사함 받는 기본 사함 받는 것은 성경에 어디 있느냐? 속죄제 이것 뿐이요. 그러므로 깨달으면 이는 다 율법을 두고 하는 말이요.

그러므로 율법이 먼저요 다음 복음이니 율법과 복음이 겸하여야지 율법만 있으면 죽고 복음만으로는 살지 못해. 그러므로 율법과 복음이 겸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겸한 것이요, 기본 사죄와 건설 사죄가 겸한 것이요. 기본 속죄와 성화 속죄가 겸한 것이요. 본인이 알기 전이니 모순되는 것 같으나 깨닫고 난 후 사죄 받는 다고 하니 깨닫는 것은 무엇인가?  

죄 지은 것 깨달았으니 그것이 율법이요, 율법의 정죄가 먼저요 사죄가 다음이니 기본과 성화 사죄가 꼭 같다. 기본 구원 속죄나 성화 구원 속죄나 성질이 동등이요. 정죄 받은 만큼 사죄를 받은 것이요. 그러므로 율법 없이 복음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요.  

1.제물의 차이  
2.율법의 정죄 받은 만큼 사함 받는 것을 가르침.  

향단뿔에 바르고(성소 앞에 일곱번 뿌릴 것이며)~죽음 속 생명 (사망 속 생명)을 그림자 함.

향단- 모든 성도가 다른 사람에게 후덕을 끼치는 그 신앙 행위는 사망 가운데서 나온(중생의) 생명이다. 그것이 신덕 되지 달리 될 수 없다.





































속건제

레위기 5:14 ~ 6:7 , 7:1 ~ 10  14절~16절

성물에 대한 범과;
제사장에게 돌릴 것을 돌리지 않고 자기가 차지한 일이 성물에 대한 범과이다. 여기에 대하여 속건제를 드리되 지정한 가치에 따라.......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갚아 야 함이다. 제사장에게 드릴 것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일까? 십일조도 포함됩니다만 그 때 제물을 범한 것이니 지금으로는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 십일조 연보, 몸으로는 봉사, 헌신.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 드리지 아니한 것은 죄요 이를 범할시는 오분일을 가산하라고 했으니 탐냄으로 범했으니 이 탐심을 뽑기 위하여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바칠 것은 시기만 지나면 안 바쳐도 되는 것이 아니고 지금 바치지 않으면 후일 바칠 때는 오분일을 더 가산하여  바쳐야하니 그러므로 바칠 것은 언제나 바칠 것이니 바칠 기회에 바쳐야한다.  

17절~19절 성물 및 말씀에 대한 범죄는 반드시 속건제를 드리되 성물 범죄 오분일을 가산하여 드릴 것. 즉 하나님께 받을 것은 자기가 어떻게 힘을 쓰든지 받아야 합니다. 속건제란? 뚜렷한 범죄보다 고의적이 아닌 실수로 되어진 성질의 죄를 속건제로 사함을 받는다. 이 죄(성물 범죄, 계명 거역죄) 모두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사함 받을 수 없다. 성물 범과는 오분일을 가산해야 할 것.  

6장 1절~5절 사람에게 잘못하여 손해를 끼칠시는 속건제 속죄제를 드리지 않고 오분지 일을 본전에 가산하여 갚고 속건제 속죄제를 드려야 받으신다.  

6절~7절 가치에 따라 제물을 드릴 것.  
8절~9절 이 불은 끄지 않아야 한다. 이 불을 끄고 다른 불로 제사 드리다가 나답이 죽었다. 이 불은 영감 성신의 감화요. 불은 제물을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독생자를 제물로 불로 태웠으니 이는 성신의 감화의 불이요 성신의 감동으로써 해야지 다른 신에게 하면 이는 죽은 것이요. 제물 바침이 하나님께 몸, 소유를 바치는 것이요 바치는 것이 곧 받은 것이요. 성신의 감동 진리로 바쳐야 하나님이 정해주신 제물로 제사 드림이요, 진리를 깨달은 행함에도 성신의 감화로 해야하지 성신 감화 없이 행하는 것은 성신 감화 아닌 다른 것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도리어 자기가 죽는다.  

10절~13절 제사장은 단 위 불을 끊지 않아야지 끊으면 죽는다. 하나님 섬기는 제사장은 늘 성신의 감화를 받아야지 끊어지면 죽고 만다.  

14절~18절 소제를 드림. 소제는 감사제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나머지는 은혜를 전달해 준 기관 됨에(인간) 감사를 했다. 소제를 드린 후 나머지는 제사장께 드린 것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것이 보이는 것을 통하여 나타났으면 이것이 곧 하나님 지체이니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타난 은혜의 기관 됨에 감사를 하는 이것이 성경적이요.  

19절~23절 제사장 자기가 소제 드림은 자기가 먹을 수 없어. 전부 하나님께 드렸다.  

24절~30절 속건, 속죄, 소제, 인간과 인간 관계에 있어 해(害)됨은 물을 수 있으면 다 갚아야 한다. 무슨 죄든지 짐승의 피라야 속함을 받는다는 것. 재 버리는 진 밖에 갈 때는 다른 옷을 입었으니 밖과 안의 옷이 다르니 하나님께 나아갈수록 직분이 올라갈수록 성결로 자기 직분을 갖추어야 합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하나님 앞에는 꼼짝 못합니다. 그러므로 높아갈수록 성결을 갖추어야 합니다.  

속건제- 무엇이라도 고의적이 아닌 실수  
속죄제-아주 드러난 죄  
소제-감사제 오분 일을 가산하여 갚은 후 예수님께 고해야 사함 을 받을 수 있다.  언제나 하나님이 주신 불이라야 제물을 사를 수 있다.

레위기 제 7장  37절: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위임제, 화목제, (제사의 요제-거제)  

1~10절 속건제  9절~10절 제물의 남은 것을 제사장들을 먹게 한 것은 이는 제사장들의 산업이요. 12지파에게 유업을 줄시 레위 족속에게는 주지 않았으니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것을 받아 생활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는?  넓은 범위에서는 우리 전체가 제사장이요 좁은 의미로는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을 제사장이라 할 수 있다.

넓은 범위로서는 개인 자신에 있어 제사장이요, 가정에 있어서 신앙의 앞선 사람이 가정적 제사장이요, 교회에는 교회적 제사장이 있다. 원 제사장은 예수님이요 이를 그림자 함이 구약 레위 족속이요. 신약에서는  사도를 비롯한 자들이요 넓은 의미로는 개인이 제사장이요.  

1. 우리는 예수님 다음으로 제사장을 섬겨야 합니다. 교회라면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먼저 섬기고 나머지로는 교회의 제사장(목회자)을 섬겨야 합니다. 제사 후 나눈 것은 하나님 다음으로서는 자기의 구원을 책임지고 노력한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주일학교는 하나님을 섬기고 난 후는 반사를 섬겨야 합니다. 교회에서 신령과 진정은 하나님이 받으시고 신령과 진정이 아닌 것은 전부 교역자에게 가져와야 합니다.

교인의 노력도 재산도 교역자에게 가져와야 합니다. 자기가 제사장 되어 쓸 것은 쓰고 자기가 못 쓸 것은 교회의 제사장에게 가져와 써야 합니다. (예)자기 가정을 위하여 쓸 것은 쓰고 제사장에게 가져와 쓸  것이 있으니 십일조 등 이는 제사장이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교회에 교인이 바쳐 수고 봉사함도 반드시 제사장에게 바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족에서도 쓸 등분이 있으니 가족도 저를 위해 쓸 것과 가정을 위해 쓸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 아들은 아들로 딸은 딸로 쓸 것이 있고 또 가정을 위해 쓸 것이 있으니 가정을 위하여 쓸 것은 가장이 주가 되어 써야 할 것이요. 성탄절 호별 방문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실시하는 신령과 진정은 하나님께 바치고 인권은 눈에 보이는 것은 교역자에 게 바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질서가 엄격합니다.  

2. 제물 드림이 받은 것이니 제물 드림으로 제일 처음 받은 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설정된 공로를 받은 것이요 다음 받은 것은 자기의 지도자의 은혜를 받은 것이요. 만일 육적으로 부모가 있으면 그 부모를 통하여 나를 하나님이 만드셨으니 제일 첫째 섬김은 하나님에게 돌리고 다음 부모님을 섬겨야 종국 적 하나님이 받으신다.

이와 같이 은혜면에도 직접 하나님을 섬기고 은혜 받게 된 사람을 섬겨야지 그렇지 않으면 은혜의 줄이  끊어진다. 예수님은 중보의 기관이면서 은혜의 기관이 되어 있읍니다.  

10절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 은혜 받는 것은 다르지만 레위 족속을 평균히 대접하라고 했다. 하나님 다음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종이 라면 공통적으로 평균히 섬기는 것이야만 한다. 자기 교회에서는 자기 목사님을 존귀히 여기나 전체적 교회에서는 모든 목사님을 평균히 섬겨야 합니다. 제사장은 분깃이 없고 제물이 분깃이므로 교역자는 자기 업을 해서는 안되고 백성이 가지고 온 제물과 십일조로 살았으니 교역자는 교인이 하나님 섬기러 가지고 온 이것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성경적이요.

바울이 자기는 밤낮 일하면서 복음 전함이 구약 성경에는 배치되지만 신약에서 바울이 하게 됨은 생활을 부담하지 못함에도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특수 방편이요. 이 길을 신약에서 열어 주셨다. 자비로서 바울은 생활하며 복음 전 한 이것은 자비로 함이 큰 것이 아니고 유급의 교역이 더 큰 것이요. 바울이 이렇게 함은 레위인의 생활 부담하지 못한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요.  

레위인은 분깃이 없으니 누가 레위인인가? 우리 가정의 레위인은 누구인가? 레위인은 목사가 전도사가 레위인이요 가정이 레위인에 소속해 먹어야 할 경우에는 먹을 수 있으나 가족들은 자기가 크게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는 레위 족속으로 제사장이지만 가족은 아니요  전 가족이 레위 족속이 아니요.(하밀튼 목사)  

11절~36절 화목 제물은 제사장과 제물을 가지고 온 사람이 나누어 가졌으니 우편 뒷다리를 제사장이 취했으니 하나님께 바침이 곧 받은 것이요 하나님 섬기고 제사장 섬기고 하나님께 받고 제사장에게 받고 자신 섬기고 자신에게 받으니 하나님과 제사장과 자신이 공통적 책임을 져야합니다. 제사장만이 화목제를 드릴 수 없다. 하나님 제사장 자신이 희생해야만 드릴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제사는 하나님과 제물만 있으면 할 수 있으나(자기 죄의 책임 전가만 시키면 된다) 화목제는 하나님 제사장 자신이 합해 야 드릴 수 있다.  구약은 혈통이지만 신약은 믿음의 아들로서 레위 족속이 구성된다.

레위기 제 8장
위임식 제사  1966.7.3.  

1.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 몸을 씻긴 것. 그러므로 제사장에게 있어 첫째 중요함은 성결이요. 교회 가정  무슨 단체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지도하고 책임지고 교훈 할 수 있는 사람은 제일 중요함이 씻겨 거룩하게 하는 것이요. 안 믿는 가정에서 한 사람 자기만 믿으면 이 사람에 있어 제일 중요함은 성결이요, 성직에 제일 첫째 중요함은 성결.

2. 아론의 그 아들 모든 가진 기구에는 짐승의 피를 뿌려 거룩하게 했다. 제단 및 모든 기구를 피를 뿌려 거룩하게 했으니 이것의 상징은 전부가 주님이 대행대형 함으로 모두 깨끗하여짐을 알고 이렇게 깨끗해짐을 받았으니 주의 공로에 팔린 자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모두 다 짐승의 피를 뿌려 깨끗하게 했다. 주님의 피 공로를 받았음으로 하나님께 내어놓아 부르짖어 관계를 맺을 수 있으니 짐승의 피로 깨끗케 됨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주님의 피를 잃고 관계 가진 모든 것은 필요 없는 것이요 연보 10원하는 이것도 주님의 피로 속해 주셨음으로 드릴 수 있어 바쳐야 한다. 주의 뜻에 봉사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주님의 피로 구속해 주셨음으로 움직이는 전부는 주님의 피 아래에서 속함을 입었음으로 할 수 있는 줄을 알아야 한다. 피로 속하면 깨끗해지는 것은 피로 값 주고 샀음으로 양의 피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요.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니 더러운 사망의 것을 주의 피로 값 주고 사서 깨끗해졌으니 주의 것으로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주님의 피로 속했음으로 주의 것인 줄 항상 기억해 야 한다.  

3. 제사장의 장식에 대하여

석류; 보이는 의보다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의가 많아야 한다.
방울; 모든 사람에게 생활이 뚜렷해야 한다.  

4.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되었을 때 하나님이 복 주시고 구원하셨다.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된 후 쓰시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축복하셨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았다. 그러므로 지금도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되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되었다"(12번)  
첫째; 씻기고(성결)
둘째; 옷 입히고 관유를 부어 발라 거룩하게 하고
셋째; 속죄제(수송아지)
넷째; 번제(수양)
다섯째; 위임식(수양)
여섯째; 관유와 제단 위 피로써 거룩하게 하고 칠일동안 회막안에 거하게 하심.
레위기 제 9장

제물; 예수님을 예표 상징 모형함.  하나님께 여러 가지로 바침; 주님이 여러모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사 대속하셨음으로 금일 우리도 대속 은총을 받았으니 부분적으로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마음, 성품, 뜻, 힘, 생명, 모두 다 주님께 바침이 마땅하고 이렇게 드림이 영영히 나의 것이 됩니다.

즉 자기가 필요적 능하게 된다는 말이요(다 같은 손이지만 다같이 필요함에 함께 쓰이지 못하는 것)  

24절; 이것은 9장에 있는 제물만 한하여 불이 내려와 사룬 것이요 여호와께서 주신 불은 제사장이 끄지 않고 사룬 제사요 그러나 여기의 불은 새로 나와 살랐으니 모든 제사를 드린 후에 있었던 것이요 이미 나의 속 성신의 감동으로 행사함이라야 하나님께 도달하는 것이지 자기의 사사로운 뜻 생각으로 바치면 하나님이 받지 않고 자기만 자라니 자의가 강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여 아론의 아들 같은 사람은 죽은 것이요. 이미 내려온 불이 제물 사룬 것은 성신의 감화로 하나님을 섬겨야 진리의 법도로 행하는 선이어야지 제 욕심 마음으로 하는 것은 선이 아니요.

이미 중생된 우리가 여러 가지 일곱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하늘로 불이 내려왔으니 이 불은 내주의 능력이 아니고 몸 밖 초자연적 능력이 와서 불로 사룬 것이요. 다니엘을 죽이려고 사자굴에 넣었을 때 사자가 먹지 못하게 함이 다니엘의 내재적 힘에 의한 것이 아니고 외부 초자연적 권능으로 이루어졌으니 이 것이 불이 내려와서 사룬 것이요. 아론이 불로 제사 드림은 우리 속에 내주(內住)하시는 성신의 은사요(성신 감화)이 일곱 가지 제사를 드린 후는 하늘에서 새 불이 내려왔다. 이 불을 보고 이스라엘이 엎드러졌다.  

몸 밖 하나님의 역사와 몸 안의 하나님의 역사가 부딪혀야 큰 권능이 일어나니 몸 밖 하나님의 역사는 일곱 제사 드린 후 이루어졌으니 나의 속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하나님께 바쳐 운동 할시 외부의 큰불이 와서 큰 일을 이루었다. 자기를 주님께 전부 바침이 번제요.

제사 순서; 속죄제, 번제, 속건제, 화목제 (고후 5장 14~15절)
레위기 제 10장  1966.7.17.

* 세상 보이는 것을 가르침에도 시청각 교육이 필요한 것이요. 성경-시청각 교육 일점일획도 더 줄일 수 없는 것을 더 줄이는 자(하나님의 말씀을 감하는 것이니 자기가 하나님보다 높다하는 자요) 성경보다 더 줄일 수 없는 것이 성경이요. 무한을 나타내시는 계시를 최후 말단 언어로 표시함이 제일 적절하므로 나타내셨으니 문서계시로 종말을 맺었으니 성신의 감동으로 일을 성취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무한계시는 언어로만 계시 방편 삼으셨고 언어를 일단 만드신 후 문서로 가르칠 때 효험이 성령의 감동으로 나타나게 하신 것이요. 일단 문서로 됨을 말로 행동으로 통하고 나타나게 하셨지 말 행동 자체 외 무엇으로 계시 할 수 없는 말씀이요.

성신의 감화는 전부 신령한 인격자를 연상하고 결합함에 큰 폐단을 일으키는 것이요 오직 성경으로 대화하고 행동으로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인격자를 만나야 구원이니 이것은 성신의 감동으로 될 수 있으니 이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인격 교제로 되어질 수 있는 것이요.

성경은 말씀 자체를 두고 그 말씀 속에 무한의 진리가 있으니 이 진리의 깨달음은 각각 할 수 있는 것이요. 그러므로 말씀의 표현은 말 행동 자체로만 할 수 있습니다. 말 행동 자체 뒤에는 성신의 감동이 있어 역사 하여 일하는 것이요.

본문으로 돌아가서
1~2절; 성신의 감동으로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해야지 자기의 자율 및 감정으로 하는 것은 오늘에는 죽지 않으나 죽는 것 보다 더 큰 미혹이요. 그리스도에 소속한 교회 섬기는 일 복 음 사업이나 신앙행위 무엇이 간에, 이 불 아닌 것으로 하는 것은 큰 화를 받았습니다. 불은 제물을 사룬 것이니 우리의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 성경이요. 불은 우리의 마음과 같으니 다른 불로 했다간 다른 마음으로 했다는 말이니 우리가 무한의 구원을 얻어 갖는데 다른 마음으로 했으면 그 부분은 말살됨이요. 죽 지 않았지만 죽는 것보다 더한 자멸의 행위요. 위임식 후 첫 제사에서 죽었던 것이요.

그러므로 이 죄악이 심히 날쌔니 얼마나  무서운 죄악입니까? 다른 불로 하지 않을시는 하나님이 언제나 자꾸 받으시는 것이요.  

6절; 다른 마음을 가지고 하는 그 사람은 아주 멸시하라는 말이요.(인간의 완고성에 대함)  

3절;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그 사람 중에 거룩함을 얻게 하시고 가까이 할수록 하나님이 거룩함을 나타내신다라는 말이니 하나님께 가까이 감으로 거룩하심을 나타내므로 거룩함을 얻게 하시고. 아론 두 아들의 위임식을 받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나 하나님께 가까이 했으므로 더욱 범죄에 대한 벌이 크다. 낮 은 직분으로 있을시는 감추어지고 벌이 없으나 높아지면 갈수록 크게 드러나고 벌이 더 크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크게 드러나도 더욱 자기가 깨끗해야만 하지 조심치 않으면 하나님은 치시는 것이요. 그러므로 사람과는 반대요.  

20절; 먹은 것은 하나님의 도를 사모하고 행하는 것이요. 자기가 부정한 죄악을 청산치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고 하는 것은 도리어 가증스러울 수 있는 것이요. 그러므로 봉사도 자기부터 한 후 다른 사람에게 봉사해야합니다.
레위기 제 11장  1966.7.24.  

우리 구원을 위하여 계시해 주시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신성과 하나님의 자체와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과 지혜와 뜻을 우리에게 나타내어서 가르쳐주는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성구는 이 면에 대한 지식 또 어떤 성경 구절은 저 면에 대한 지식을 넣어주는 지식을 계시.  

레 11장의 계시는 모든 동물과 곤충과 새 종류의 이런 것에서 우리에게 같은 것 같으나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과 종류 종류 사이 여럿이 구별되어지는 교훈으로 직접 교훈함이 아니고 모든 물리나 분위기적 은연중 상식이 생겨지도록 하는 교훈 방식이요. 파도치는 섬에서 영웅이 나고 산골에서 성자가 생기는 것처럼  분위기에 사람 마음이 닮게 되고 급속하고 역사 분위기를 받게 된다.  

11장에는 은연중 하나님 속성이 나타난다. 생긴 모양에 따라 추하고 악하고 은연중 느낌을 하나님께서도 찾아 볼 수가 있다. 수많은 곤충을 보는 중 깨끗하다 부정하다함은 은연중 느낌을 받게되니 사람도 다 같은 사람이나 은연중 송충 같고, 지네 같고, 누에 같고, 등 이런 것을 아는 가운데 일 사람에 대한 지식을 알기 위하여. 이런 것을 알기 위함이 이런 것이 중하지 먹고 안 먹고가 중하지 않은 것이요.  

그러므로 이런 성구는 많이 읽고 실물을 접촉하여 관찰해 보아 깨달아야 합니다. 짐승도 벌레도 빛(낮)에 속한 것과 밤(어두움 )에 속한 것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낮에 속한 것은 선하게 보고 드러나는 것을 귀하게 평가해서 말했다. 밤과 낮이 은연중 선과 악을 천국과 지옥, 어두움과 밝은 것, 순한 것과 독한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있는 것이요. 지나치고 치우치기 쉬우니 이성의 밝고 어두움을 잘 판단해야 한다. 모든 것에 잘 세밀히 구별함이 우리의 행사일을 구별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요.

그러므로  일, 식물, 동물, 모든 만물에 하나님의 견해가 있으니 그러므로 좋은 열매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요, 나쁜 열매에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니 일과 일을 나무와 나무를 돌과 돌을 동물 중에서 동물을 구별하여 보아야 합니다. 다 같은 사람의 형식 속에도 이 사람 저 사람 천만인의 가치 평가가 구별됨을 찾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불의를 용납할 수 없음을 계시합니다.
쪽발은 선악 두 길을 구별하고 (깨끗하고 추하고)
되새김질은 모든 것을 자꾸 되새김의 걸음이어야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요. 자연의 것들을 알므로 특별계시의 신령함을 자꾸 알게 됩니다.

11장은 생명 가진 전체에 대한 교훈이요. 하나님은 다 같은 벌레이지만 각각 구별하시는 하나님이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은연중 구별하는 하나님인 줄 아는 것이 좋습니다.  

먹을 생물-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  
먹지 못한 짐승-약대; 새김질하나 굽이 갈라지지 않았음                
사반;         -                
토끼;         -                
돼지;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함  

수물(水物)-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먹을 것- 없는 것은 못 먹음  

새 종류-먹을 것; 날개 있고 네 발이 있어 뛰어 다니는 것 먹음                
(메뚜기 베짱 귀뚜라미 팟종이 종류)        
먹지 못할 것;독수리 솔개 어응 매 까마귀 타조 다호마스 갈매기 올빼미 노자 부엉 당아 올응 학
황새 대승 박쥐 날개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것                  

먹지 못함.  땅에 기어다니는 종류 중-금한 것; 쪽제비 쥐 도마뱀 칠면석척 배로 다니는 것 네발로 걷는 것 여러 발을 가진 것

레위기 제 12장   1966.7.31.  

해산함이 부정하다고 한 후 그것을 깨끗하게 하는 속죄제를 드리라고 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인격성이 사람의 인격성의 원형이 되어지므로 철저하게 느끼는 인성의 느낌보다 더한 하나님이요. 부정하다고 속죄제를 드리라고 함은 깨끗하고 천하게 보심이 인성과 비슷하므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 내셨고 나타나신 인격성 이는 우리 사람과 꼭 같으니 아들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와 같다고 하셨으니 우리 사람과 하나님의 인격성은 닮은 것이요.

모든 성경의 인격성은 인성과 닮았으나 탁월하신 하나님이요.  
남(男); 33일이 지난 후 산모가 깨끗했고  
여(女); 66일이 지난 후 산모의 산혈이 깨끗해짐  

이 후 속죄제를 드린 후 깨끗해진다. 하나님의 하신 일은 혼돈 혼잡하시지 않고 먼저 창조와 후의 창조를 분명히 가르시는 하나님이요. 범죄의 선후를 분명히 하시는 하나님이요. 모든 조직과 선후를 분명히 구별하시는 하나님이시요. 크고 작고 앞서고 뒤서고 스승과 제자 모든 면에 세밀하신 하나님이시지 도매 가격으로 취급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신 것이요.

하나님은 인격적이고 최대의 흠 없는 완전한 인격자이신 하나님이요 선악과 먹은 댓가의 값을 오늘까지 내고 있으니 오늘 우리의 의를 행한 댓가가 얼마나 크겠는가! 추억을 완전히 가지시고 복수를 보상을 완전히 가지시고 영영한 기억을 가지시고 이리저리 치우치지 않고 정확하게 해 나가시는 하나님이요. 형제 부부간에 사귐이 느리면 헤어짐이 느리고 사귐이 속하면 헤어짐도 속하다. 근각이 심할수록 인격이 짧을수록 속하여지는 것이요.

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는 것은 제 8일이 주일이요 구약의 아무리 깨끗함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결례되어져야 깨끗케 될 수 있으니 주일은 예수님의 공로 설정이 완성된 때문이요.  33일과 66일이 됨은 죄의 범죄가 선후로 나누어진 연고요.
레위기 제 10장 1~3절   1966.8.6. 새벽  

3절;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함을 얻겠고.....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란 말은 하나님과 직분적으로나 그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자 애써 실지로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하나님은 참 거룩하다함을 사람들이 인정하게끔 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모든 백성 중에 영광을 얻겠다고 하셨으니 아론의 두 아들을 불 사룬 후 하신 말씀이니 아론 두 아들이 제사장 되기 전에는 그만한 사람으로 살아도 하나님께 벌을 받지 않으나 하나님께 제사장 위임식을 한 후 불이 행할 때 벌을 내리셨다.

사람이 자기에게 점점 가까워질수록 불의가 용납되고 자기와 가까워질수록 정죄 함이 무르고 보복이 경하고 나쁜 것에 대하여 많이 용납하고 원수에게는 정죄함이 강하고 벌이 강하고 자신에 대하여는 자기의 죄는 죄로 보지 않아서 무조건 칭찬하고 높이려는 것이 사람이요. 그러나 하나님은 정반대요. 사람들에게 어떤 결점이 있어 증수가 같은 죄의 벌이 자신과 원수가 똑같이 있다면 원수에게는 경하고 자기와 가까운 자에게 중하게 하시니 아론 두 아들이 직분적으로 가깝기 전에는 그냥 두셨으나 직분적으로 하나님과 가까 워 질수록 그에게 칭찬은 감소되고 책망과 벌은 중하여 지는 것이요.

그러므로 성직 받기 전 하나님의 칭찬 받은 그 행위를 받은 후 그대로 가졌다면 칭찬이 없다. 가깝게 되어진 후에 책망 받고 벌을 받을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이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을 좋아하는 자일수록 세밀히 간섭하시고 벌이 세밀합니다. 멀수록 간섭이 세밀하지 못합니다. 왜 당신 자신이 빛이므로 빛 대신 가까이 갈수록 거룩하고 온전하므로 죄와 허물에 대한 대적이 강하고 의에 대하여 드러냄이  심히 적은 것이요.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간섭이 심하고 가까이 갈수록 옛날 그대로 있으면 점점 더러워집니다.
레위기 제 13장  

제사장의 임무가 광범하다는 것 이스라엘의 위생을 전부 담당하고 있음. 제사장이 진단해 준 후 성전 출입을 했음.  "가르치는 것"

1.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데 병이 들면 무슨 소용 있나하는 미신적 신앙이요 성경은 병을 세밀히 취급하고 조사하고 치료법의 명철을 가르치고 있다. 병은 전부 더럽다고 성경은 말 했다.  

2. 하나님께서 인격자로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찾아가는 모형의 완전자가 하나님이요.  

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생사를 가리지 않으나 그렇게 않을  경우는 위생을 찾아가는 이것이 기독자요 하나님의 권능만 믿고  위생을 주의치 않을 수 없는 것은 도무지 할 수 없다.

4.하나님은 우리 사람으로 정결하고 세밀하고 구비하고 철두철미한 완전 이상 목표를 두고 가는 자의 원형이 하나님이시요.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라도 뚜렷이 인간의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나 복음을 위해서는 가치가 없어야한다. 제사장은 교인의 인격성에 세밀히 간섭하고 병에 세밀하여 예방 예치로 점점 깨끗하 여 제사장에 말씀으로 심사하여 깨끗해야 은혜 축복 세계에 나아갈 수 있다.
레위기 제 14장  

1. 자연의 것을 통하여 신령한 것을 가르치시고, 보이는 것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가르치시고 육의 것을 통하여 영의 것을 가르치시고 점점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온전해집니다. 폐하여 짐이 없습니다.

사람은 시작이 강하고 끝이 없어지는 것이 단점이나 하나님은 정반대요.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엇이든지 흐려집니다. 사람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정반대이므로 하나님은 탄식이고 사람은 따라가자니 힘이 든다. 우리는 무슨 일의 처리를 자기를 표준해서 한다. 우리가 비록 행치 못할망정 하나님은 시작부터  사랑 심판 벌이 점점 강해지고 온전해지고 세밀해짐을 굳게 잡아야합니다.

표현적으로도 구약보다 신약이 계시도 점점 온전해 집니다. 모름으로 처음부터 차차 이끌어 가는 것이요. 마5:17 이하 말씀 율법을 폐하러 오심이 아니고 점점 온전케 하러 왔다고 하셨으니 이는 진화의 종교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진화는 불완전이 점점 완전으로 나아가는 것이요. 후자는 이미 완전한 것이 쉽게 처음부터 차차 완전으로 나아가는 것이요 완전이 유치한 인간의 자람에 따라 나타나므로 진화가 아니라 점점 교훈의 정도를 높혀 가는 것이요. 육체의 병 단속을 영적 병을 단속하고 자연 접촉으로 신령 접촉과 바른 인격 접촉을 할 수 있다.  

2. 하나님은 정결하시고 깨끗하시며 부정함을 용납치 않는 하나님이심을 성경 속의 분위기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요. 우리의 인격성이 얼마나 깨끗해야함을 알 수 있다.  

3. 심사 후 깨끗하다면, 흐르는 물 위에 질그릇 속에서 새를 잡은 것은 부정한 것과 깨끗함의 인식을 더하기 위함이요 하나님은 정결케 하기를 힘쓰고 부정은 용납지 않는 점점 온전한 하나님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처음 쉬운 것에서 점점 온전케 하시니 그러므로 적은 개미 소리 바람을 무심히 볼 수 없는 것을  가르칠 것.  큰 나무에는 좀 큰 발레가 나무에 붙어살고 벌레에는 더 작은 것이 이보다 더 적은 것이 붙어사니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멸시할 것이 없어. 쉽게 시작하여 끝맺음을 완전하게 하신다. 아말렉의 족속 멸망....하나님은 키우지 않은 것 같으나 꾸준히 온전하게 키우니 모든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격 성격 활동 노력을 찾아보면 얼마나 알 것이 많은지!   부정한 값을 대신 희생하여 한 마리 새가 대신하여 죽고 부정 자체는 들에 놓아 보냈으니 들에 내어놓은 것은 병, 마귀, 부정, 자체는 자기 갈 데로 날려보내고.  우슬초는 깨끗, 백향목 향기, 홍색실 희생. 합하여 깨끗함을 받아 향기로운 생활이 시작되어도 성결과 희생(홍색실)과 덕(백향목 -아름다운 자체) 성결(우슬초) 이것이 합해야 함.  기독자의 깨끗은 신덕과 희생과 자체가 깨끗이 됨은 항상 따라 다녀야함. 8일만에 하나님앞에 깨끗함을 받고 인정받은 후 바침의 제사는 속건제(홍색실) 속죄제(우슬초) 번제(백향목)로 하 나님께 바친 사람이 됨.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는 항상 속죄  희생 신덕이 없으면 하나님을 배우는 예물이 없음.
레위기 제 15장  1966.8.21.

제목;유출병                                  

육체에 대하여 얼마나 구별하여 깨끗하게 하심을 알 것.
유출병; 자기에게서 무엇이든지 피든지 정액이든지 그런 것이 흘러 나올 시는 그와 접촉하는 모든 것이 부정하니 유출병에 대하여 크게 금했다. 남자 설정된 자를 엄금했다. 그것의 원인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엄금한 것. 여인의 경수는 선악과에 원인이 되어 나온 것이므로 원인을 생각하므로 남녀 설정병. 이 원인이 음란의 죄에서 나온 것이니 그것을 말함. 이런 것을 부정하다고 함은 이것의 원인이 부정하므로 멀리하라고 한 것이요, 정욕 음욕으로 생겨진 것은 더러운 것이므로 정결케 되는 길을 말하심. 하나님은 모든 것을 구별하여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 위생적인 이면보다 신덕적으로 불결하므로 이것을 엄금하심. 학생에게 엄격히 부정한 것을 가르칠 것. 하나님이 추한 병으로 취급하심을 인식시켜 그 원인 됨을 피 하겠금 가르칠 것. 신덕성 심리성의 깨끗을 위하여 부정함을 말함. 유출병은 대개 음란에서 나오는 것이요.

레위기 제 16장   1966.  

제목; 속죄의 날 중심, 인물; 대제사장                          

1.대제사장 아론이 속죄 날에 갖추어야 할 것(3~5)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 자기 및 권속 -.수양으로 번제물 -.세마포 속옷을 입고 세마포 고의를 입고 세마포 띠를 띄며, 세마포 관을 쓰고 이런 것은 물로 몸을 씻은 후 입음 -.이스라엘 회중을 위한 속죄 제물로 수염소들(여호와를 위하여, 아사셀; 내어놓음) 번제물을 위하여 수양 하나 -.지성소 회막 단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  

2.백성들이 갖추어야 될 것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말고(본토인, 우거인 막론) 수송아지로 속죄제 드린 후 - 몸을 씻고 세마포로 갈아입음 - 지성소로 들어감(향을 가지고 감, 속죄제의 피를 가지고 감; 동편에 뿌리고 속죄소 앞에 7번 뿌리고; 속죄소 위와 앞에 뿌림, 백성을 위하여 범한 죄를 인하여 수염소의 속죄제 피를 가지고  감. - 나옴(수송아지 소, 염소 피로 단 뿔에 7번 뿌려 성결) - 산 염소 광야로 보냄 - 제사장 옷으로 갈아입음 - 번제
레위기 제 17장  1966.9.4.

제목;모든 고기를 화목제로 함                        

과거에는 어떤 짐승을 어디서나 잡아먹었으나 여기서는 일단 회막문에서 예물로 드려 화목제로 드린 후에 고기를 먹게끔 했지 화목제물이 아닌 것을 잡아먹은 것은 피를 흘린 죄 살상죄로 하나님이 정죄했다.

먹으려고 하는 제물도 화목제물 드린 후 먹게끔 했다. 그러나 신12:15~16,20~24 이하에서는 먹게끔 해제하셨으니 이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명하시니 먹고 명하지 안으면 못 먹는 모든 것이 하나님 주재요 통치 아래 있음을 보인다. 이와 같이 금하고 해제함은 먹을 음식을 화목제 드린 후 먹는다는 것을 인식 후 이를 해제하여 언제나 식물은 화목 제물로만이 먹는다는 것을 인식함. 십일조도 10의 9조가 전부 하나님의 주권의 통치임을 알게 함이다.

13절 피를 흘린 후 흙을 덮을 것. 회막문이 후에 양문이 됨. 식물이 화목 제물로 넘은 것은 전 식물은 화목을 도모하여 먹으란 것이요 신령적으로는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것은 화목 제물로 먹었으니 화목 제물 되신 예수님이시니 우리의 모든 일반 먹고사는 전 생애는 다 예수님의 화목제물이신 주님을 기념해서 밥을 먹든 물을 먹든 우리의 하루의 전 생애는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기념하여 나와 하나님, 나와 모든 인간의 화목을 도모해서 먹는 것을 가르킴. 먹기 위하여 잡는 것이지 그 생물을 해하기 위하여 잡는 것은  아님을 구별하기 위하여 고기와 피를 나누셨다.

백성 중에 끊쳐지리라-이는 우리에게는 이룰 구원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이요 피 흘린 자 피를 먹은 자의 보응의 벌은 백성 중에서 끊쳐졌으니 오늘 우리의 이스라엘에 돌아갈 성화가 파괴됨은 화목 제물로 드림이 아닌 것을 잡아먹은 것과 피를 먹은 자는 끊쳐진다.

회막문은 주님이 걸어간 길이요. 자기가 만들 자기 길을 만들지 못하는, 자기의 성화 될 것이 성화 되지 못하는 것은 첫째, 우리가 세상에서 생존 경쟁은 할 수 있으나 남을 해하기 위함은 할 수 없다.  

* 4가지 금하신 것; 음행, 피 먹는 것, 목메어 죽은 것, 우상 음식물. 남을 해하기 위함은 피를 먹은 자요. 우리가 무슨 사업이라도 내가 살기 위하여 한 것이 남에게 거리낌이 되는 것이 있으니 그러나 국법에 금하지 않고 예의에 거리낌이 없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남을 해하기 위함은 먼저 남의 생활을 해하는 것이 니 자기의 성화를 받지 못한다.  

둘째, 우리도 먹든지 마시든지 이것 먹고 하나님과 인류와 좀 더 화목하고자 예수님이 이 책임을 맡겨 주셨으니 우리는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주님을 기념하여 먹어야 한다.  

1~7절; 소나 어린양이나 염소를 잡되 회막문에서 끌어들여 장막 앞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 제물로 드리지 아니한 자는 피 흘린 자로서 백성 중에서 끊쳐졌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보임. 먼저 하나님께 감사로 드린 후 받아먹었다. 또한 주격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임. 모든 식물은 화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먹을 것.  

10~16절;
1. 피를 먹지 말라, 먹으면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금하신 이유-생명은 피에 있고 피가 죄를 속했으므로  
2. 스스로 죽은 것과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을 먹는 것을 금하심.

레위기 제 18장  1966.9.11                    

1~5절; 세상 법도와 풍속을 지켜 행함을 금한다. 성경에 없는 법도는 세상 풍속이요 법도요. 타락한 인생이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연구한 것인데 이것을 피함은 성경의 법도가 더 귀중함으로 이를 지키기 위하여 버리라 함인데 이것도 저것도 둘 다 지키지 않으면 아주 못 쓸 사람이 되고 만다.  

성경이 기록한 것을 지키기 위하여 세상 법도를 피하는 것이지 성경을 지키지 않을 시는 어두운 몽학 세상 법도와 풍속을 지켜야 할 것이요. 성경대로 실시하지 않으면 세상 풍속 법도를 지키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이요. 세상 법도도 없고 하나님께 두려움을 벗는 사람은 배나 더 악한 사람이요. 하나님을 믿었으나 순종치 않은 자는 악행이 믿기 전보다 더 많아 악한 사람이요. 성경을 행하기 위하여 그것을 버리라는 것이 성경이요. 세상에서 국법이 있으니 이 법이 나라법이니 우리는 이 법에 메이지 않고 성경의 법에 메여 이런 것이 상관 할 수 없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요. 성경을 잡고 모든 구습을 버리라는 말이요.  

가나안 땅의 풍속(자기의 풍속도 버리라는 말 애굽(세상 풍속) 가나안의 7 풍속은 자기 속의 풍속이요, 자기와 자기 속성을 상징.
가르칠 때 처음 애굽과 가나안 법도와 풍속을 좇지 말라는 것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면 위로 하나님과 아래로 땅이 모두 단합하여 버리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모두 단합하여 축복하심. 이 성경을 학생에게 한번 읽어 가르칠 것.



레위기 제 19장

제목; 성결

요절;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19:2 하)

3~8절; 하나님 여호와를 사람하라
     1.부모를 공경하라
     2.안식일을 지키라
     3.주권 하나님께
     4.화목제(열납되게끔)

9~18절;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1.가난한 자를 돌볼 것
      2.도적질 말 것 속이고 거짓말 거짓 맹세 말 것
      3.13,14절 약한 자를 압박치 말 것
      4.공의로 판단

19~22절; 물리에 맞추어 하라.




레위기 제 20장

제목;죄에 대한 형벌
요절;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찌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20:27)

1~5절
몰렉 신에게 제물로 사람을 팔면 화제로 제사 드리는 일이 있었다. 몰렉 신에게 제물로 사람을 팔 때 옆에서 보는 사람이 그냥 두면 그 삶도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았다. 몰렉 신은 그 지방 나라에 습관죄이었으나 성경적이 아니면 버리고 성경적인 것을 취해야한다. 성경에는 없지만 하는 것은 버려야 한다. 성경에 없는 것은 버려야 한다.

성경법을 지키는 사람만이 이방 사람의 법을 피할 수 있고 버릴 수 있으나 성경법을 지키지 않고 버리는 자는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악한 사람이요. 소선을 위하여 대선을 버린 것이요. 이방인의 법 가운데는 소선이 많은 것이요, 이 소선을 대선을 행하기 위하여 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공공연히 악행 하는 것을 보고 못 본체하고 그냥 두는 것을 죄로 정하셨다.

악행을 할 때는 제 3자가 말하여 고치겠금 해야 한다. 악을 보고 못 본체하면 가속도로 악이 자란다. 자기 자식이 몰렉에 바쳐지지 않는다고 못 본체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그와 가족에게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했다. 불법 행함을 보고 그냥 두는 사람은 하나님이 죄로 정죄 하셨다.

그러나 지나치게 하여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의 범죄를 보고 정의의 피가 끓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의 힘에 맞겠금 효험이 나타날 것을 보고해야 한다.

사람이란 날쌔면서 무거워야 한다. 베드로가 말고 귀를 칼로 벤 것처럼 이런 담력이 있어야 후일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요, 이런 사람이 되어야 악한 자의 악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이성과 몸이 사람이니 이성과 몸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 이성이 강하면 몸도 강하고 몸이 강하면 이성도 강하다.

6~9절;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죽이라는 것을 강력히 가르칠 것. 효성에 대하여. 부모에게 효가 없는 자손은 망한다. 부모에게 효성 하는 사람은 흥하고 축복 받는다.

10절; 남의 아내와 간음한다면 이는 형벌이 배나 크다.

11절;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죽이면 죽인 그 피를 죽인 그 사람에게서 찾겠다는 말이요.

19절; 범행한 것이 아니고 불의한 마음으로 보는 것을 말함.

22절;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그 지방에서 살려고 하나 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나가는 일이 없겠금 축복하여 주겠다는 것이요.

27절; 신접-귀신들린 이 모든 것은 죽일 악이라. 이런 죄악이 형벌 받을 수 있는 죄악임을 가르칠 것.

1. 다른 사람의 악행을 보고 정의심이 끓어야 한다.
2. 부모에 효할 것
3. 혈육에 대한 범죄
4. 복술에 대한 범죄
*  사형에 해당하는 죄

1.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자 (지방인이 돌로 쳐죽일 것, 하나님께서도 진노하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시리라, 죄는 하나님 성소를 더럽히고 성호를 욕되게 한 죄)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인이 못 본체하고 돌로 쳐죽이지 아니하면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사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함.

2. 신접한 자 박수가 되는 자

3. 부모를 저주하는 자

4. 간음하는 자

5. 혈족 간통자

6. 짐승과 교합하는 자




레위기 21장

제목;제사장의 성결

요절;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말찌니 부모로 인하여도 더러워지게 말며(레 21:44)
* 참조 레 10:32

21장; 일반 시체를 만짐으로 제사장은 더럽힐 수 없고 오직 골육지친으로는 더럽힐 수 있다. 결혼 상대도 일반인과 제사장은 차별이 있음. 제사장은 자신도 거룩하도록 하나 일반 백성까지도 제사장은 거룩하게끔 해 주어야 한다. 다방면의 거룩할 것을 말함.

병신은 제사장 가족에서 태어났으나 성전 출입은 금하고 제사 드리기를 금함.

제물 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먹는 것이니 예수님을 먹는 것은 곧 예수님을 양식 삼는다는 것이니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공로와 진리와 영감이 나의 양식같이 느껴지고 예수님의 생애가 인격의 양식이 되어 이런 양식을 먹을 시는 반드시 몸에 흠이 없는 사람은 먹었으니 흠 있는 사람은 제물로 가져오지 못했으니 예수님
께 받은 것 성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은혜를 받고자 자기 양식을 삼고자 하나 자기 양식이 되지 못함을 보임. 구약시대는 자기 몸에 흠이 있으면 성전에 출입을 금했으나 신약시대는 보이지 않는 성전이므로 흠이 있어도 출입하고자 하나 구약의 형식으로 무형 신약에도 할 수 없음을 보인다.

구약은 육체적 흠점이나 지금은 도덕적 흠점이요. 막7:18절-여기 더러움이란 도덕의 더러움이요. 그러므로 마음의 거슬림은 회개 후 예수님을 진리를 성령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회개가 필요하다.

1. 제사장은 평민보다 모든 면에 거룩해야 된다는 것. 신앙이 높아갈수록 하나님이 금하신 것이 많고 또한 하나님께 지도 받는 것이 많다. 일반 백성과 제사장의 차별이 있고 대제사장과도 차별이 있다. 일반 백성과 제사장과 대제사장은 죽은 시체에도 결혼에도 거룩에도 대속의 성물에도 차별이 있어 백성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제사장은 할 수 없고 제사장은 할 수 있으나 대제사장은 할 수 없다.

제사장은 그만하면 사할 수 있으나 대제새장에게는 사할 수 없다. 대머리 수염을 깍지 말라함은 오늘의 제사자의 위엄을 말함.



레위기 22장

제목;여호와의 성물
요절;22:2

2절; 욕되게 함이 없게하라-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라-계약의 선포하심대로 실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심

3절; 대대토록 몸이 부정한 자는 성물을 드릴 수 없으니 드림은 주의 은혜를 받은 것이요. 먹은 것은 행하는 것이요. 받고 행함이 몸에 병 있는 자는 안되었으니 곧 죄가 있으면 받고 행함을 못함.

5~7절; 물질면에 정확한 사람이 도덕적으로 정확하고 물질로 깨꿋 함이 도덕적 종결함의 수양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자기를 구별하여 자신을 먼저 깨끗하게 해야 한다.

8절; 우연의 만난 일이든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부정의 일로써 자기를 더럽혀 동참치 말라. 죽는 일로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9절; 그것을 욕되게 하면-앞의 명을 교훈을 욕되게 하면 계명 어기는 그것으로 죽을까 하노라

10절; 이스라엘 사람이 안된 사람은 못 먹으니 그리스도의 은혜는 택한 사람이 아니면 먹지 못함. 그러므로 성신이 도와야 한다. 택자만이 구속에 동참할 수 있다. 중생 후 중생 시킨 성령이 도와야만 구속에 동참할 수 있다.

16절; 이렇게 저렇게 교훈 하심의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요.

18절; 서원제-하나님께 약속으로 드리는 제물, 낙헌제-기쁨이 되어 드리는 제사, 예물-하나님께 드리는 것

21~22절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은혜는 흠과 티 부정이 없는 완전한 것이요. 이런 분인 줄 알고 이런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모셔야 한다. 예수님도 자기 마음대로의 조작의 예수님을 만들어 은혜를 받은 것이 상하고 흠 있는 병든 것으로 부정한 제물을 드리는 것이요, 그러므로 참되지 못한 은혜를 받고 주님을 모시는 것이요. 힘쓰고 노력함으로 참된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것이요.

23절; 낙헌 예물로 드림에 그것 밖에 드릴 것이 없을 때는 그것으로 바친다. 금이 있는 자는 금을 바치나 가난하여 떨어진 옷 한 벌이 있다면 기쁨 이것을 바침도 허락한다. 이는 구속의 예물이 아니고 기쁨으로 드리는 예물이므로 드릴 수 있다. 서원한 것은....하나님께 양을 바치기로 약속 후 병신을 사서 바쳐서는 안 된다.

28절; 신령한 교훈보다 인자성을 기루기 위함인 것

30절; 무엇이든지 주의 뜻 행함이 제물 먹는 것이니 주의 뜻 행함에는 즉시 해야함을 가르침.

32절;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다른데서 하나님이 거룩함을 받은 것보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함을 받겠다함은 이스라엘을 세밀히 단속해서 이스라엘을 세밀히 단속함을 보고 거룩한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겠다는 말씀이요.

이렇게 함의 목적은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함인 것, 차차 점점 자기가 구별하여 거륙한 사람됨이 목적인 것.



레위기 23장  1966.10.16                            

4~6절; 유월절(환난)에는 무교병(화목)을 먹고 하나님은 두려워하고 사람은 사랑하여 화목해야한다. 환난이 가까와 올수록 우리에게 죄악이 없어야 한다. 죄악이 없고 화평하고 더욱 예수님과 화평해야 한다.(양을 잡아먹은 것)

9~14절; 우리는 어떤 수입이든지 수입의 머리를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일과 그것을 가지고 섬기면서 언제나 양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 예수님의 구속 은총과 사업에 대한 머리 제일 중심 되는 것을 바쳐야 한다. 수입에 대한 관념 정신이 그 머리됨이 언제나 예수님과 연결시킬 것. 자기를 지도하는 지도자의 노력과 연결시킬 것.

그러므로 우리 기독자가 무슨 사업을 하든 사업의 주체 중심 주장이 되고 주격적 정신과 예수님과 언제나 자기를 지도하는 지도자의 교훈과 언제나 삼각형을 이루어야 한다. 양 잡아 드리는 것- 예수님께 연결.

15~21절; 오순절. 추수와 하나님과 제사장은 밀접한 관계를 가짐. 우리의 사업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종교 지도자가 엄격한 관계를 가지고 나아가는데 유월절과 오순절을 기념하면서 영감과 성경 주심과 우리를 구속해 주신 은혜가 합쳐야 한다.

우리의 생애와 우리의 구속과 종교 지도자와 우리의 구속과 성경 주신 은혜를 뭉쳐서 하나로 만드는 때요.

22절; 부요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책임지고 범사에 가난한 사람을 기억하라고 했다.

* 우리 생애 연결-1.유월절; 선민으로 택하여 주신 은혜의 정신으로 사업하고
                2.오순절; 성령 감화와 신구약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정신으로 사업하고
                3.제사 드리는 짐승과 연결; 예수님의 피 구속의 은혜에 감동
                4.제사장; 나를 신앙 지도하는 그 분의 지도로써 사업하고
                5.가난한 사람; 나만을 위할 것 아니고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사업할 것
                6.장막절; 이 세상 원수가 말할 수 없이 둘러있는 가운데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심으                            로 살아감에 대한 감사함이 사업하고

27~32절; 속죄 일을 정하여 회개가 있어야 한다.



33~36절; "장막절"

레위기 24장   1966.10.23.                            

1~4절; 등잔불을 켜는 동안 저녘 부터 아침까지 (왕상 7:41,출 30:7이하)
기름(성령), 불(빛) 그러므로 우리 속에 성신의 은사가 아니면 우리의 마음 성품이 밝고 깨끗할 수 없음. 외부에서는 밤이야 보일 것이고 불은 밤낮 있어야하니. 촛대는 7(7은 완전수임으로 우리 마음은 언제나 성신의 감동으로 말미암은 광명이 계속해 있어야 함.

5~9절; 떡을 하나님께 드림이 곧 하나님께 양식을 받은 것이요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곧 받은 것이니 하나님 앞에 양식을 받은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떡을 안식일 날 진설한 것-특별히 주일날 하나님이 양식을 내려 주시는 것. 예수님은 우리의 인격의 양식이요 우리 인격이 먹고 배부를 수 있는 영의 양식은 특별히 주일날 받는 것이요. 주일날 바치는 것이 하나님께 받는 날이요.

10~16절; 여호와 이름을 훼방한 사람을 죽일 시는 훼방한 사람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한 후 죽였으니 이는 훼방하는 말을 들은 사람도 그 사람에게 말을 들은 만큼 더러워졌으니 이 더러워짐을 훼방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요. 본 곳에 들은 곳에 던지고 자기의 듣고 본 것을 깨끗하게 가져야 한다. 이방인이 처음 이 법에 걸렸으니 이 세상 사상 방법과 조화되어가나 세상에 가서는 그에 대한 영향이 미쳐 나온다.

불신자와 뜻이 맞아 이를 같이 행사하면 한가지 일로는 나타나지 않으나 언젠가는 잘못된 결과를 맺고 마니 항상 이것이 나를 언젠가 유혹시켜 감을 생각하고 오직 진리만이 우리는 접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이방의 세력이 나를 끌고 감을 알아야 한다. 이방인과 결합하여 낳은 자녀가 하나님을 훼방했으니 이 일 처리는 모든 죄를 훼방한 자에게 전가시킨 후 돌로 쳐죽였다. 믿는 사람은 먼저 안 믿는 사람을 끌려오면 패전이지만 믿는 사람이 요동치 않고 먼저 안 믿는 사람에게 끌려가면 승리할 수
있다. 신앙 앞선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겉은 양보하고 차차 알맹이로 끌어야 둘 다 사나 겉 좋으면 알맹이를 양보해야 한다.

17~23절; 율법의 공정성. 하나님께는 이런 공의가 있음을 가르침. 하나님은 사랑이신 반면 공의가 있으니 그러므로 먼저 율법부터 지키다 보면 죽을 자인 줄 죽일 자인 줄 알게 한 후 그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사랑으로 구원하여 주어야 할 것이요. 그 사람을 죽일 것을 살려만 주면 점점 악하여져 죽이는 것이 지당함을 먼저 가르쳐주고 죽이는 것을 후대함을 알게 하고 죽을 입장에서 살려주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반드시 율법의 토대 위에 사랑의 건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율법은 퇴비와 흙과 같고 사랑은 그 속에 살아 움직이는 화초와 같으니 율법을 모르고 사랑 사랑하는 것은 못 쓸 자요 율법으로 정죄 하여 형(刑)으로 죽고 그 사람을 은혜와 사랑으로 구하여 주어야 한다.


요8장 음행한 여인을 잡아 돌로 쳐죽이고자 했을 때 그 여인은 당연히 죄 값으로 죽어야 할 것인 줄 아는 이런 사람을 주님은 구원하셨다.

중심 되는 것;1. 등불을 항상 켤 것
           2. 떡은 안식일 진설 했다가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
           3. 이방 결혼의 결과가 나쁜 결과를 맺은 것
           4. 하나님은 지극히 공의로운 하나님임을 가르칠 것 그러므로 모세 율법 후라야 그리스도의                  구원이 있다.
           5.착한 마음을 항상 숭상할 것
           6.주일을 거룩히 지킬 것  




레위기 25장    1966.10.30.                

1~7절; 안식년

8~12절; 희년
안식년과 희년을 말씀했고 이방은 물질에 관해서만 계산하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계산하라. 또 거처하는 처소에 관해서 말씀했다. 안식년은 쉬는 날로 성경에 많이 말씀했다. 안식년에는 무엇을 먹고사느냐 3년 곡식을 주시겠다고 했다. 안식년은 외부는 쉬는 날이나 거룩히 해서 복 주기 위함이다.

안식일에 대해서 복 주어 거룩케 한다. 복도 여러 가지가 있으니 이 복은
1.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것을 기념하는 것  

2.하나님이 보존하시고 축복하기 위해 기념 행사, 이 두 가지를 해야 창조주로 지음 받음으로 받은 은혜 받게 되고 창조주로 피조물이 보존 은혜 받게된다. 안식년 안식일의 뜻은 두 가지다. 칠일은 별다른 행사하는데 별달리 행사함은 상기 말씀한 두 가지다.

주일날 할 일은 구속받은 것을 점점 깨달아야 함.
1.구속받은 자로서 구속을 더 깊이 깨닫고
2.구속받은 자는 구속한 은혜를 입어야 하는 것.
4가지 역사가 없으면 일만하고 노는 것은 아무 가치 없다.

1.지음 받은 은혜와 지음 받은 자기를 기억하고
2.지음 받은 자는 주의 축복으로만 살 수 있고

1.구속받은 은혜와 구속받은 자기를 기억하고
2.구속받은 자는 구속하신 은혜로만 살 수 있는 우리다.

우리는 안식년 지키지 않아도 상기 4가지 중요함. 모든 소유는 순전히 하나님의 것인 것 알 것. 하나님께서 이 해는 쉬라 하면 쉬임 받는 것이 토지요 소유니 다 하나님의 것이니 팔지는 못한다. 금일은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요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 알 것이다. 고로 자기의 소유라 해서 자기 사욕만 채우는 잔인한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

안식년은 1/7이니 1/7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요 줄 때 내 것같이 주지말고 하나님이 저 사람에게 주었으면 내가 1/7을 받아야 할 나인데 하나님이 특별히 내게 6/7을 차지하게 하였으니 주님께는 감사하는 마음과 이웃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게 된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다 보관주가 있다. 주인은 하나님이니 단단히 감사할 것이다. 이것을 알고 살면 이웃에게 덕이 되어진다.

희년; 여기에도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 똑똑히 알 것. 50년 만에 하나님이 보관물로 주었으니 50년만에는 주인에게 갔다. 영영히 팔지 말라. 팔지 말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인이니 주인이 따로 있는 것 알리려고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빌려준 것을 자세 부리면 안 된다.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고 공평을 주어서 모든 사람이 잘되게 하는 성격으로써 그렇게 하면 그것이 희년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1. 주인 따로 있고 나는 긍휼 입어서 잠깐 공의로 받아서 보관하되 사용하고 있으니 하나님께 감사 모든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함.

2. 희년으로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준 것과 같이 내가 누구보다도 약자, 빈자를 도와서 평균하게 공평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3. 50년 만에 희년인데 50년 후에는 비싸다. 왜, 제가 보관하게 되기 때문이다. 49년보다 40년보다 10년보다 1년이 값이 비쌀 것이다. 여기서 값의 대가를 결백하게 해야 된다. 인간의 노력과 댓가를 정확하게 가져야 되는 것이다.

안식년 1.하나님 창조 2.하나님 은혜 3.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살 수 있다. 모든 소유는 모든 사람이 받을 수 있는데 나만 독점할 것 아니고 1/7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1.하나님과 관계 2.하나님의 축복 관계 3.모든 만물과 관계

희년 1. 주인이 따로 있는 것
    2. 공평인 자유성을 원하시는 하나님
    3. 노력의 정당성이 있다.



레위기 26:1~46        

1. 하나님 명령 순종하면 복주 고
2. 하나님 명령 거역하면 죄
죄 값-멸하기 위해 주는 벌이 죄 값
징계-돌이켜 살리려고 주는 벌이 징계
그러므로 동기 목적이 다르지 방편은 같다. 하나님은 징계하신다. 안 꺾이면 끝까지 징계하여 돌이킨다.

회개 1. 잘못된 것을 깨닫고
    2. 하나님을 대항한 것으로 은혜가 변하여 징계가 되었다.



레위기 27장    1966.11.23.              

사람과 짐승을 어떻게 바쳐야 하며 바친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

3절; 20~60세 사람의 값을 제일 많이 받음

8절; 그 사람의 재산의 사람의 값어치에 관계됨

13절; 한번 바친 것에는 사욕이 용납하여 붙을 수 없음을 표시

7~18절; 모든 사람이 공변된 기업을 받았으나 사고 팔 수 있으나 자기가 기업을 많이 가지고 있게 되었으면 가진 그 기업이 자기 것으로 가지고 올 때 정당한 값을 치고 가지고 왔는지 ? 안 왔는지? 안 왔다면 그에 대한 배상이 큰 것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