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

2007.06.03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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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수기 강해
선지자선교회


제1장

제목:군대 계수   (요절 1:3)

1. 각 족속의 계통을 따라 계수 했다는 말을 번번이 족속을 따라 계수 했다고 했으니 이는 그 계통이란 것을 엄격히 보여 쥐서 하나님 나라는 무질서함이 아니고 계통을 엄격히 찾는 나라요. 교회는 전체가 하나이니 상하도 없는 질서 없는 기독교라 생각하기 쉬우나 계통을 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자.

계통에는
(1)혈육의 계통이 있으니 이 혈육의 계통을 엄격히 육적으로 찾는 것이 기독교요 부자의 윤리 자기 족속의 윤리라는 계통을 무시치 말고 굳게 잡고 이것을 하나님 섬겨 나가는 데에 이 계통을 잡고 할 의무와 본분이 생겨진다. 계통을 항상 가질 것이지 말살시키지 말 것이요.

(2)사업적 계통도 뚜렷이 가져야 한다. 선교사업 전도사업, 세상사업 지역적 계통을 엄격하여 그 선을 잘 보수할 것, 교훈도 언제나 그 선을 엄격히 보수해야 한다:
안에서 주장하고 계획하고 계통 안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요, 교파의 계통 안에서 살았다면 그곳에서 계통을 살리게끔 노력할 것이지 이리저리 움직이지 마시오. 계통 보수를 엄격히 하고 지키는 곳에서 책임지는 곳에서 알 수 없는 인격 완성이 이루어져 간다. 계통이 나쁜 것이면 자기가 개혁하고 굳게 지킬 것이요.

2. 20세 이상은 하나도 빠짐없이 싸울 수 있는 자는 군대로 계수 함. 국민의 의무를 다하게 하심. 오늘은 우리 기독자가 이 세상과 더불어 싸우는 싸움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응전 하게끔 하심. 계통을 따라 싸울만한 실력대로 생겨짐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투의 의무가 있음을 밝히 보이심. 각각 맡은 바 직분에서 계통을 책임지고 계통대로 지키는 자기는 싸움할 의무를 지고 싸울 전사인 것이요. 그러므로 자기 계통을 책임지고 이 계통으로 말미암아 싸울 싸움을 자기가 싸울 것. 정치적 지위의 나열(상하 계급)

3. 각 지파 마다 영도자가 나섰다. 기독자는 너도나도 다가 아니고 반드시 기독교는 이 세상보다도 엄격한 상하 질서가 있고 주체와 소속의 질서가 있다. 기독교 내는 상하의 계급 질서가 세상보다 더 엄격하나 밑의 사람을 위의 사람이 섬기고 위의 사람은 아랫사람을 섬겨 위해 줄려고 하는 이것이 곧 교회내의 상하 질서요. 그러므로 부자는 부자만큼 인정. 가난한 자는 가난한 만큼 인정.

4.내외 정치 구별(구약)
레위기 족속-내부 정치.-활동에 있어 종별적, 혼합치 말 것. 11족속-외부 정치 민수기



제2장
제목: 군대 배치법 (요절 34절)

이스라엘 정치가 무슨 정치일까? 사사까지 주권 정치 사울왕 부터 주권정치가 깨어지고 의회도 종다수도 아닌 군주정치 비슷함으로 흐름.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정치일까? 2장 내에는 주권정치임을 보임. 올바른 주권정치가 제일 좋으나 이것이 못할 경우는 의회정치인 것이요. 의회정치까지는 할 수 있으나 종다수 정치는 못쓸 것임. 오늘 개교회에서는 의회정치와 주권정치 둘이 합한 것이요. 의회는 주권을 주권은 의회를 밀어주고 있는 것이요.

교회: 종교-교훈 도덕 영능면-감화적이요. 정치-모든 판단 치리면-무력적이요 양면 합일 교회-빠르고 속성함-위탈시는 분리가 더 좋음 양면 분리 교회-이상적 교회가 될 수 없고 시비가 많음. 그러므로 교역자가 될려면 양면 겸할 수 있다면 목회자가 대단히 유리함. 주권정치로 2장을 해 나아가는 것으로 주권정치면서 계통과 조직이 체계화되어서 나아가는 것임. 주권정치를 하려면 머리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제일 옳고 바른 것 진리적 도덕 지능적으로 제일 높은 것을 잡을 것이요. 주권정치를 쓰는 방편은 의회요 의회로 못할 경우 독재를 써야 한다. 표시와 이면이 동일 모든 것이 질서 조직이 체계적으로 정연 주권적 정치.

동쪽;유다 잇사갈 스불론-제 2대로 진행
남편;르우벤 시므온 갓-제 2대로 진행
서편;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제3대로진행
북편;단 아셀 납달리-후대로 진행



제3장 1966.12.11
제목: 레위 족속의 맡은 책임

하나님께서 장자를 바치라고 하셨으며 애굽 장자 재앙을 받지 않음을 끌어 자주 말씀하심은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은혜 베푸심을 잃어버리는 것을 대단히 섭섭해 하시며 이 받은 바 은혜 생활을 감사히 하게끔 하시는 하나님이시요. 오천명 먹이신 후 부스러기를 줍게끔 하신 것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은혜이나 이를 경시치 못하게 하기 위함이요. 하나님 은혜는 아무리 풍성히 받았다고 하나 이를 천히 여기지 말 것이요 적다고 귀하게 여기는 다소에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요.

장자 재앙을 늘 말씀하심은 하나님 은혜는 오래되고 많이 받았으나 잃어버리지 말고 받은 바 은혜에 충격 받아 항상 은혜를 기억하여 감사의 사은의 생활을 하라고 하신 것이요. 사은의 생활 이렇게 함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는 방편이요. 이런 생활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체가 되기 때문이요. 사은의 생활하는 자는 간구 함도 없이 당신이 이미 주신 은혜에 감격이 넘쳐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요.

1. 인격자로서 원만한 인격자는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이 평안을 누릴 것이요 뿌리까지 거짓이 없는 깨끗한 사람이요. 사은의 기관은 흥할 수밖에 없고, 배은의 기관이 망하지 않을 수밖에 없어. 효성 있는 집이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곧 사은한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2. 레위족속을 계수하면서 각각 맡은 바 일이 있었다. 지금 우리의 교회는 여러 사람이 각각 이런 저런 은혜를 받아 있습니다만 은혜 받은 바의 귀빈의 상하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가치 구별은 해야 하지만 그는 그대로 안 믿는 사람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니 이것이 기독교 안에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은혜는 이런 곳에 저런 곳에 단 장점이 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면 멸시하면 안 된다. 주의 이름으로 한다면 나도 주의 자체의 한 부분인 줄 알아야 한다 레위인이 각각 맡은 바가 다른 것 같이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잘못된 것은 고치고자하고 이단을 제외하고는 주님의 한 지체인 줄 알아 서로 기도해야 한다.

3. 레위인이 직분을 맡아 하는 곳에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이라고 헸다. 성직을 맡은 사람은 더럽히고 속화시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사형받을 만큼 큰 진노이다.

4.제사장이 범죄 시는 민족이 범죄한 것에 관한 것과 동등으로 취급했음.



제4장 1966.12.13
제목: 레위 족속들에게 분담된 직책 요절;4:48

1. 행진할 때 성전에 따른 모든 것을 갖추어 행진한 것처럼 어느 시대 환경 입장 처지를 만나더라도 교회는 변질 변경해서는 안되며 언제든지 갖출 것을 갖추어야 한다. 성막은 교회요 곧 천하에 있는 그리스도인이요 또한 한 개체인 나로 봐도 된다. 갖출 것을 하나라도 빠지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진노하셨으니 무슨 환경에서나 성도의 갖출 것은 갖추어야 한다.

2. 거룩에 대한 층하가 있음 일반 백성들은 성전 물건을 멜 수는 있으나 손을 대면 죽는다. 아론 자손들은 기구를 만지라고 했다. 그러나 지성소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성전 뜰에는 갈 수 있으나 성소에는 들어 갈 수 없다. 이것이 거룩에 대한 차별이다. 이 거룩의 차별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것이다. 자기의 거룩 이상을 가면 죽고 만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거룩한 신앙을 요구하신다.(레 10:2~3) 사람은 친근할수록 무관하게 지내지만 하나님에게는 친근히 갈수록 거룩이 심하고 엄격하고 가까이 갈수록 까다롭고 불의를 용납지 못하고 세밀한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고 이것을 먼저 지키고 자기 눈을 자기가 뺄 만큼의 원통히 회개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별을 심히 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요.

3. 각각 모든 직무가 구별되었다. 자기의 받은 바 천직을 어길 수 없다. 어기면 사망했다. 구약시대보다 신약시대가 엄격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름은 영적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4. 청색보로 덮고 해달의 가죽으로 덮어 싼 것- 언제나 생명과 희생은 그것을 싸고 있다.
해달의 가죽 -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 모형, 대신 그리스도가 죽었음으로 그 은덕 아래 있 는 것 - 아가 1:5

*메고는 갈 수 있으나(지도를 받고 가르침을 나누는 것 봉사 생활하는 것) 기구를 만질 수는 없었다(지도하고 가르칠 수 있는 것). 지도와 가르침도 자기의 본분에 맞게끔 해야지 월권적으로 하면 안 된다. 목사의 할 일, 평신도의 할 일, 장로의 할 일, 수 십 년 먹은 교인의 할 일의 층하(層下)가 있다.

*하나님을 찾고 은혜를 간구 함에 있어 자기 회개함 이상의 은혜를 직분을 요구하고 이상의 하는 것이니 이상적인 영능을 바라는 것은 결국 죽는다. 교역자든지 평신도든지 우리가 영적으로 좀 교역자는 진리를 깨닫고저 애를 쓴다. 은혜를 더 끼치려고 애쓴다. 평신도가 하나님께 더 가까와지고 더 도와주심을 바라는 것이나 같다.

높은 직분을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것이요. 이 모든 것을 자기가 구할 때 회개를 바탕으로 구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구할려고 회개 없이 날뛰면 악령의 감화만 올뿐이다. 회개치 않고 성경으로 권위만 높아지고자 진리를 연구하여 권위가 높아질려고 하는 교역자는 신비주의가 되든지 인본주의가 되어 탈선하지 영의 일은 못한다. 하나님 앞에는 점점 회개하는 것만이 진리에 가까워지고 권위 있어지고 하나님께 가까워 질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죽고 만다. 거룩한 자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 경계선이 회개를 기초해야 한다.

기독교는 직분이 위에 있을수록 결백해야 한다.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은 회개이다. 이 회개 없이는 구원을 이루어 나가지 못한다. 그렇지 못하면 영감의 눈을 쳐 없애니 점점 신앙이 타락한다. 영을 쳐도 안 들으면 육을 친다. 성전의 도구가 우리 안에 있으니 모든 단속을 하나님이 시킨 대로 놓았을 때 그대로 있는 것이요. 그러므로 우리의 생애도 하나님이 시킨 대로 있어야 한다. 등대(영감된 마음) 떡상(바치는 우리의 몸) 기름 향(성신의 감화 감동 은사) 그리스도의 은총을 언제나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생활 전체가 예수님의 구속 아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희생과 생활 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



제5장 1967.7.16.
제목; 성결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부정을 미워하시는 하나님  요절;21절하반절

첫째, 하나님은 물질적으로 부정한 것과 신체적으로 부정한 것과 도덕적으로 부정한 것을 용납지 않으시고 이것들의 깨끗한 것을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같이 하신다.

물질적 ; 집도 어수선하게 두는 것보다 정리정돈을 기뻐하시고 원하신다. 옷도 보기 좋게 때가 없게끔 깨끗케 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요 몸도 깨끗이 씻고 머리도 보기 좋게 아름답게 몸도 건강하고 보기 좋고 건강한 것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요. 도덕적으로도 마음이 성질이 깨끗하고 욕심 성질이 깨끗하고 결백하여 성별 되어 있는 것을 좋아하시는 주님.

1~4절; 하나님은 깨끗하고 보기 좋고 실용적이고 편리한 것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요. 옷도 부엌도 깨끗이 정리정돈하고 육체도 병이 없고 깨끗하고 건강을 좋아하시고 모든 것이 결백과 미를 좋아하시는 주님이시요. 도덕면 물질면이 깨끗하고 결백함이 함께 이루어져야 함.


둘째; 언제든지 하나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잘못이 있으면 값을 내어 정리하도록. 잘못한 것을 자기를 좋게 하기 위하여 편하게 하기 위하여 잘 못한다. 자기가 잘못하여 잘못한 것은 하기 싫은 것을 하므로 값을 치루어야 한다. 자기가 하고싶어 잘못한 것은 하지 않음으로 값을 치루어야 한다. 자기가 하지 않음으로 잘못한 것은 함으로 값을 치루어야 한다. 잘못의 갚음은 5분의 일을 가하여 갚았다. 갚아 줄 자가 없으면 제사장에게 갚아야 함. 다른 사람의 명예를 헐었으면 헐은 명예를 세워야지 말 한마디로 해결할 수 없다. (예) 한 사람이 소를 숨겨 팔았으면 현재 아무런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꼭 여기에 대하여 갚을 5분의 일을 가산하여 갚아야지요.

셋째; 그 여인이 죄를 짓든지 안 지었든지 남편이 의심을 품을 때 의심을 해결 짓기 위하여 소제를 드렸다. 여러 가지 순서가 있으니 머리를 풀고 앉히고 깨끗한 물에 티끌을 넣고(깨끗한 것이 더러워짐을 보임) 쓴 물을 타고(자꾸 변질) 그 여인을 다려 그렇게 했나 안 했나 하여 했다. 또 회개시는 속죄제를 드림으로 해결되나 숨길시는 소제의 순서로서 자꾸 변질됨의 순서를 통하여 양심에 느끼고 반성하게끔 하고 자복하게끔 했다. 또한 소제의 순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저주가 없으면 의심을 풀고 있으면 병듦으로 댓가를 받았다.

남편이 의심하여 여인이 깨끗하면 남자가 정죄 받아야 하나 아무런 죄 값이 하나님의 저주가 없었다. 하나님 앞에 죄지음을 솔직히 회개하면 사함을 받을 것이고 회개치 않고 속에 숨겨 덮어두면 지금도 하나님 앞에 맹세 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병은 들지 않아도 영의 병은 들어 영적 인격이 병신이 되어진다. 장자가 병들어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환도뼈가 부러져 절룩거리게 된다. 이와 같이 이런 죄를 숨기면 영의 양식을 먹지 못하고 정상적으로 걸어가지 못함. 절룩거리게 됨 여기서 남녀의 동등이 아니고 차별이 있음을 가르침. 상대방에게 고하지 않더라도 자기는 그런 자로 대하여 나타나서 깊은 내심의 회개가 있어야 함. 그렇지 못할 경우는 하나님의 영적 징계를 받음.



제6장 1967.7.23.  
제목; 구별하여 바치는 사람 에 대한 법 나실인(구별한 사람)

총 내용; 구별한 사람들은 어떻게 바치는 법을 이행하여야 할 것을 성경에 가르쳤다.

*. 나실인이 금한 것; 1.술을 먹지 말 것. 2.포도나무 열매를 먹지 말 것 2.삭발치 말 것 3.아무 시체라도 가까이 말 것.

*. 시체에 가까이 하여 거룩을 범했을 경우; 1.머리 깍고 2.비둘기로 속죄제, 번제 드리고 3.날자를 새로 정하고 4. 1년 된 수양으로 속건제 드리고 이렇게 함으로 회복됨.

*. 나실인의 구별일이 차면;
1.회막문으로 데리고 갈 것
2.예물을 드리되(번제물로 1년된 흠없는 수양 하나와, 속죄제물로 흠없는 어린 암양
하나와, 화목제물로 흠없는 수양 하나와, 무교병 한 광주리, 기름 섞은 과자, 기름 바른 무교전병 하나, 전제물, 소제물) 상기 예물을 제사장은 받아 하나님께 드릴 것 이요.
3.나실인은 회막문에서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물 밑에 있는 불에 둘찌며
4.제사장이 삶은 수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 두 선에 두고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 것이며 흔든 가슴과 넓적 다리는
제사장에게 돌림.
5.그 후에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음

*.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아론과 그 자손이 축복 할 것;
1.여호와는 네게 복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시며
2.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며
3.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





제8장 1967.7.30

1.장막에 대해서 성막이 장막이요 성막이 성전이요 성전이 신약 교회요 교회가 곧 그리스도인이다. 물론 건설할 때도 하나님이 명하신 그 규례 대로 건설한 것이요 또 건설 후는 어느 하나 빠짐없이 다 기름을 부어서 거룩하게 하셨다. 이와 같이 신약시대의 교회도 하나님의 법도대로 모든 조직이 되어야하고 개인의 신앙인격도 다 하나님의 법도대로 된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마음이나 지식이나 소망이나 모든 생활 방편이나 몸이 다 그러하여야 한다. 그 법도에 삐뚤어진 것은 절대 용납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취급하시나 우리가 모름으로 하나님의 법도에 다 삐뚤어졌으나 제 딴에는 바로 되었다고 한다. 구약시대 의식으로 신약의 그릇된 점을 밝히 구별시켜 주시는 것이요. 구약은 형체를 가졌으므로 하나만 틀려도 안 된다. 건설 후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했다. 이와 같이 신약시대도 하나님의 법도대로 이루어진 교회 조직 개인의 인격성이 이루어졌다고 하나 언제나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있어야 한다. 처음은 형식으로 다음 말씀으로 다음은 성령의 감화로 가르쳤다.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바른 것-성화 된 것이 성신의 능력으로 활동할 것-하나님의 말씀대로 변화된 것, 이는 부활체요 성화된 실체요 이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활동하는 것이 기름 발라 구별한 것이요. 기름은 성령의 감동이 성령의 감동으로 구별된 것 이는 세상이 있는 것과 소속과 활동의 능력이 구별된 것

2.모든 백성들을 다스릴 족장들에 대하여
(1)하나님의 전을 맡아 섬기는 레위족속들을 위하여 수레 6과 소 2마리를 바쳤으니 레위족속이 성소에서 받드는 생애를 하는 그들의 모든 기업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성소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봉헌해야 했다. 신약시대 교회들도 조직적이면서도 위에서는 하나님의 것을 받아 자기 밑의 사람에게 주고 밑에 사람들은 자기들의 것을 위에 사람에게 바쳐 윗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부족함이 없도록 할 것을 보인다. 온 교인(기본 교권)은 자기들의 마음과 정성을 모아 위에 직분 있는 은사 교권을 돕고 자기의 물질과 활동을 바쳐야 한다.

(2)12족장에게 꼭 같은 것을 한번에 말하지 않고 12번 한말을 거듭했으니 이는 하나님께 쓰여지는 사람,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사람은 성막 규칙대로 규례에 따라서 그들이 은과 기구를 드렸고 그릇에는 기름을 바른 고운 가루와 속에는 향유가 들었으니 이는 소제로 드리는 감사제이다.

성전 규례대로 모든 일을 바쳐 하면서
첫째가 감사(소제인 감사)
둘째는 향유(미덕)
세째는 번제 (완전 헌신)
넷째는 속죄제 (회개)
다섯째 화평제(화평 사랑 역사)

언제든지 이 5가지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사가 올라가게끔 하는 그 모든 지도 생활과 하나님에게 쓰여지는 헌신 생활임을 가르침. 하나님에 쓰여지고 모든 사람을 인도, 지도하는 사람은 이 5가지를 지켜야 함. 또 화목에 제일 주력하고 다음 번제에 주력하고 속죄 제물은 제일 가격이 적었으니 이런 속죄제물보다 화목과 헌신에 주력했다.



제12장 1967.8.6.

하나님의 지도 법칙으로 등대를 만들고 순금으로 만들었다. 우리 심령 속 등대는 정평정가 하는 것이 우리 속에 있는 등대이다. 등대가 없으면 성전이 아니요 그러므로 믿는 우리에게 반드시 모든 것을 정평정가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가치 비판을 못하므로 실패케 된다. 죄란 정평정가 하지 못하고 행한 것이요, 의란 정평정가해서 그대로 하는 것이요. 일곱으로 나눈 것은 하나님 편에 완전수를 말하니 하나님 편에서 완전한 지혜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 지혜가 먼저 하나님 법칙대로 만들어져야 한다. 사람 속에 지혜가 있다고 하나 나타냄이 하나님 말씀대로 되어져야 한다. 순금이란 불변의 믿음이니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외 불변이 없다. 하나님의 법도대로 지음 받은 것은 중생 된 사람이요. 순금은 진리와 영감이요, 7등대는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것. 그러므로 중생된 사람이 아니라도 어떤 면에는 정평정가해서 온전한 지혜가 될 수 있으나 진리와 영감적이 아니기 때문에 안 된다.

* 레위인을 택하여 성전 수종자로 만들시 번제와 속죄제물을 드렸으니 번제는 자기 전부를 죽여 드리는 것이요, 속죄제는 죄의 값으로 완전히 죽고 다른 이가 대신 죽어주는 것으로 살았으니 대신 죽어준 것에 완전히 팔린 제사이다.

하나님께 수종드려 바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1.자기를 완전히 이제 죽여서 잡아 하나님께 바쳐 드리니 여기에 자기의 사욕이 하나도 용납할 수가 없다. 무익한 종이 되어야 한다.

2.하나님에게 바쳐 쓰는 것은 죄에 완전 죽고 죄 없는 자로 살아있는 그 자로 바치니 대속을 입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전체는 번제물과 속죄물이 되어져야 한다. 레위인보다 장자들이 기본이요, 장자보다 이스라엘 전부가 기본이요. 그러므로 장로교 기본 교권은 모든 교인의 교권이요. 기본 교권의 생명은 은사 교권에 있고 은사 교권의 생명은 기본 교권에 있다.




제8장 1967.8.13

유월절 기키는 규례와 성막과 구름 기둥과 불기둥과의 관계가 기록됨.

1.유월절 기념이란 장자의 전멸에서 구출해 주신 은혜로 지키는 규례.
어린양의 피와 하나님의 명하신 규례 대로 하여 지켰다. 영원 멸망에서 구원받아 대속한 대속의 은총을 기념하는 것은 대속의 은총을 써먹은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해 주신 그 구속을 기념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하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념하는 것.

불기둥(성령의 광명 충만) 구름기둥(성령의 보호) - 성령의 인도와 보호와 동해야 한다. 어린양 양식(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 이렇게 살면 힘이 나고 강성해 지는 것) 쓴나물(예수님으로 인하여 고난 받는 것, 진리를 위해서 고난 받는 것) 온전한 빛=성령=교회 일곱 촛대 교회=진리+하나님+구속받는 순종



제10장 1967.8.20

1.어떤 때 나팔을 불었는가?

불 때의 종류
(1)회집할 때
(2)전쟁할 때
(3)제사할 때(절기에 당한 제사)
(4)진행할 때 두 나팔을 불 때는 회중, 한 나팔을 불 때는 천부장 족장. 회중이 행진 할 때는 나팔을 울려 불고, 회중을 모을 때는 나팔을 불 때 울려 불지 말 것.

구약시대 나팔을 사용한 것은 신약시대의 설교와 교훈과 같은 것이다. 에스겔 34장에 보면 파숫군이 나팔을 불 때 돌이키면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수 있고 나팔을 불어도 돌이키지 아니하면 진노를 받는다.

레위인(오늘의 교역자)이 나팔을 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다. 나팔은 모일 때, 앞으로 나아갈 때, 기쁘고 즐거울 때, 원수와 싸울 때, 나팔이 필요한 것 같이 오늘날 교역자들은 모일 때 있고, 경계하고 교훈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기뻐 하나님의 은총을 기념하면서 감사할 것.

(1)하나님의 종들에게 배워야 한다.
(2)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고 원수에게서 보호해 주시고 함께 하신다고 했다.

설교할 때에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오는 일이나 하나님의 은총을 깨달아 각오하는 일이나 깨달아 복종하면 하나님께서 복 주신다고 했다. 하나님의 종들이 자기 스스로는 잘 모르지만 시대를 알리는 설교를 한다. 나팔을 불 때 나팔을 따라 움직이면 지켜주겠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종들의 지도를 따를 때 보호해 주시고 기억한다는 것. 법궤가 먼저 가고 제사장이 간 것처럼 환난이 오면 목사가 먼저요 장로 집사 순으로 간다. 신앙이 앞선 사람이 먼저 가야한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아들 호압을 함께 가자고 한 것은 세상의 문화를 하나님의 법에 이탈 안되면 그대로 받아들인 것.



제11장 1967.8.27

생의 본능을 가진 사람으로 애굽의 구별한 식물을 먹다가 지금은 절제의 식물을 먹게 될 때 옛날 먹던 식욕이 생겨지는 그것이 죄라 할 수 없다. 응당 생겨진다. 애굽에서 먹던 습성 식성을 그것을 눌러 꺾어 그 식성을 식욕을 없도록 하는 것은 자살행위이다.

그렇게 말고 그들이 그 고기를 먹을 때의 자기들이
1.인간적 위치에 있었나를 생각하고(학대받고 멸시 천대받은 종 된 위치에 있었다.)
2.자손에 대하여서는(남아를 죽이는 것은 이스라엘 종족의 멸종을 하는 입장에 있었다.)
3.그 때는 자유가 없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유(신앙 자유)를 얻었다.
4.가나안에 가서 살 소망
5.하나님의 인도

이것을 생각하고 저것을 생각할 때 우러나서 이것보다 저것이 좋아지게끔 이성의 평가와 비판에서 해결해야 인간의 인격이 자라나는 것이요. 그러므로 무조건 눌러 꺾고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찾아 인생의 가치를 깨달을 때 불신자의 생활이 부럽지 않고 하나님과의 결합의 가치를 깨달을 때 이 세상은 인격의 가치를 꺾는다는 것을 깨달아 알았을 때 큰 것을 생각할 때 절제하고 꺾고 이길 수 있다.

기독교에서 절제하고 꺽는 것은 신체적 육적 본능 생리를 꺽어 변동시키자는 것이 아니고 인격성을 변화시키는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이요. 전체가 깨달아서 절제하는 그 원인은 어디 있는가 ? 인격성에 전부 결합되어 있는 것이요. 그 식물이 몸에 좋든지 안 좋든지 상기 5가지 소망을 욕망을 잡는 것이 이 소망 욕망에 따라 가는 것이 여기만 고조하여 여기에 속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외는 원망하고 불평하게 한다. 하나님이 능력 없어 만나만 먹인 것이 아니요, 이런 얘로 가운데서 5가지 소망을 잡고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구원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어려운 순서를 통하여 모든 것보다 예수님 때문에 하는 견제의 힘을 기르기 위함이다. 모세가 부담을 혼자 지기 싫어할 때 70인 장로에게 예언의 신을 부어 모세와 같게끔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구를 슬기롭게 강퍅하게 하면 그대로 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주는 것이 족하다. 말씀 어겨 살고저 할 때 하나님이 주시지만 결과는 재앙이요.



제12장 1967.8.3
문제;미리암의 문둥병       요절;3절

미리암(평신도) 아론(하나님이 기름 부음)

1~16절;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는데 그것이 성경에 선포한 법에서 위반된다. 혈통에 있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데 이방 여인과 결혼했다. 중론으로서는 말할 수 없다. 왜 ? 아브라함도 그러했고 다윗보고도 원하면 줄 것이데.....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멸시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셨다. 아론과 미리암 둘이 하나되어 모세를 대항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붙들고 쓰는 모세 밑의 아론과 미리암. 모세가 하나님의 법도대로 해 나가니 순종은 하면서 불만이 있었다.

모세만 영감받았나 우리도 예언할 수 있지 않느냐......(본문 참조) 모세를 훼방했다. 모세 아론 미리암 셋을 한자리에 불렀다.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으나 하나님이 직접 대하시지 않고 간접으로 대했으나 모세는 대면해 이런 저런 일 의논했는데 모세를 훼방하는 것은 나를 훼방하는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모세는 의롭고 겸손한 사람이고 충성된 사람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떠나시고 나니 미리암이 문둥병이 들었다. 아론이 그것을 보고 곧 자기도 문둥병 들 줄 알고 모세에게 간구 했고 모세는 하나님에게 간구 했다.

칠일동안 진 밖에 있게 된 것은 아버지의 얼굴에 침을 뱉아도 칠일과 부끄러움을 당하는데 하나님의 얼굴에 침 뱉은 것과 같기 때문. 아론과 미리암 둘은 인물이 같기 때문에 한덩이가 되기 쉽다. 평시에도 둘이 앉아 모세를 수군거렸는데 이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진노하셨다. 모세가 그때에 하나님의 대리자로 강성하는데 아론과 미리암 때문에 지장이 있었다. 아론과 미리암의 마음이 첫째 나빴다. 그로 인해 많은 백성이 상해를 받기 때문에 아론과 미리암을 쳤다. 시기 질투를 버려야 한다.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것 시험받기 쉽다. 다른 교회 교인보다 그 교회 교역자를 비방하면 하나님이 치신다.

하나님의 종으로
1.자격; 하나님에게 들어붙는 것
2.자격; 사람에게 꼬임 받지 않는 것
3.자격; 충성하는 것

두 가지 없으면 충성이 필요 없다. 일꾼 뒤에는 반드시 일꾼 허는 것이 있다. 없을 수 없다. 예수님도 가룟 유다가 은 삼십에 팔았다. 그 외도 많은 훼방을 했다. 예수님께 기름 부을 때도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하면서 뒤에서 훼방했는데 이것이 자라 은 삼십에 팔았다.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것이니 하나님이 그대로 두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본질이 있는데 본질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옳은 것을 남이 하면 배가 아픈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의 장래는 비참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과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삼가야 한다. 나쁜 사람과 접촉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 활동이 많으면 죄악성이 많아 써먹지 못하고 활동이 없으면 바보 스러워 쓸 수 없다. 남성의 미는 힘이 강해야 한다. 선이 굵어야 하고 감정으로 움직이면 안 된다.



제13장 1967.8.10
제목; 가나안 정탐군        
요절;33절(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

가나안은 이 세상 천하를 가리킴. 그들이 나온 애굽도 세상이요 그들이 건너갈 가나안도 세상이다. 가나안은 중생한 기독자들이 점령해서 자기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요 애굽은 자기가 정복을 당해서 종으로 고초를 당할 세상이다. 그들이 점령 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그 땅을 세밀히 탐지하라고 했다. 정탐꾼들이 가서 보니 아주 비옥한 곳이었다. 그들이 정탐을 아주 잘했다. 지방민이 두려워 멀리 다녔다면 박토만 보았을 것인데 그들의 사는 주위까지 가서 정탐했기 때문에 옥토를 보았다.

정탐을 아주 잘했다. 그 지방의 사는 사람들이 아주 장대하고 문화적이고 훈련받은 연단 된 사람이요 신체가 건강하고 견고한 민족임을 정탐했으니 잘 알았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치러 올라가면 되겠느냐 물음에 올라가지 말자고 했으니 이는 일대일이요 인간 대 인간만 생각했지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지 못했다. 고로 광야에서 전부 죽게 되었다.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치러 올라가자 한 갈렙과 여호수아만 들어갔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세상을 정탐해야 한다. 내가 살아갈 내 세상은 어떠한 세상인가를 정탐해야 한다. 정탐 결과에 내가 살아갈 세상은 험하고 메마르고 고생스럽고 가련한 세상인 줄 깨닫고 느낄 수 있다. 이렇게만 안 사람은 자기 세상을 정확히 정탐치 못한 사람이다. 자기의 앞길에는 또한 인생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자기의 생애 이력에 관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옥토가 펼쳐져 있는 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야 바른 정탐을 한 사람이요. 자기가 자기 앞에 인생으로 걸어가면서 인생으로 맺을 옥토를 발견해야 한다. 기도란 이런 것이 기도요. 내일에 대한 오늘의 준비를 내다보고 오늘을 완료하도록 하는 것이 기도이다.

포도 열매 가지고 온 것은 농사지은 것이니 하나님 없는 불신자의 노력으로 이런 큰 열매를 얻는데 하나님을 모시고 맺는 열매는 얼마나 큰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들이 강하니 쳐들어 올라갈 수 없다는 자와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있으니 쳐 올라가자고 했다. 우리의 찾아갈 주위에는 강한 대적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우리보다 강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니 하나님이 계시면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아야 한다. 일대일로서는 안되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니 능히 될 줄 믿는 이것이 바른 정탐자요. 탐정꾼이 12명 갔으나 10명은 낙제하여 광야에서 죽고 둘만 들어갔다.



제15장 1967.8.24
제목; 성도들의 생활 요절; 방종케 하는 자

1~16절;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 때 여러 가지 제사 드리는 법칙을 가르쳤고
17~21절; 지방 생산물을 먹게 될 때 거제(요제)를 드리라
22~36절; 잘못했을 때 잘못한 허물과 죄로 하나님에게 어떻게 속해야 할 것을 말씀하심
32~36절; 하나님의 법도 계명 어긴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나에 대한 규례
37~41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한 방편을 쓰게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디 가서 거주를 하게 되든지 이런 순서로 관계를 가져야 한다. 짐승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는 속건제, 화목제, 속죄제, 번제의 제물이 되사 내 죄와 허물과 내 모든 불목을 담당하시고 화평케 하기 위하여 희생하셨다.

1.번제- 나의 전부를 주님의 것으로
2.속죄제- 예수님의 대속과의 관계를 가진 이 사람으로 사는 것이 첫째로 중요하고
3.속건제- 전부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언제나 기억하고 사는 것
4.화목제- 언제나 허물과 실수를 찾아 사함을 받도록 노력할 것, 계명을 어겼으면 그 값을 스스로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기 위하여 표를 하든지 하여 기억이 되살아나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도록 노력할 것.

요단강 건너갔을 때 12돌을 놓아 여리고 성 앞에서 이 돌로 인한............. 사업할 때나 직장에서 이 5가지가 복된 것이다.

1. 주님과 모든 관계가 잘 맺도록
2. 얻어지는 모든 다소간에 하나님이 주신 것은 언제나 기억할 것
3. 잘못한 것은 반성하여 그리스도로 사죄할 것
4. 잘못은 스스로 징계
5. 법도를 지키기 위하여 표를 하여 지키게 했다.



제16장 1967.9.
제목; 고라의 당파 요절;16:32

고라의 당파가 모세를 반대했다. 이유는,
1.제사장 직분을 우리에게 주지 않는 것과(아론을 시기하여 모세를 방해)
2.기업을 나누어주지 않는다고 반대하였다.(레위 족속은 제사장 족속이라 하여 기업 무(無))

고라가 거두가 되어 다시 세 사람이 합하여 두령이 되어 당을 이루었다. 당은 수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수가 많든지 적든지 다 당인 것이다. 이 당들이 실은 그들 속에 사욕이 주장되어 일어난 것이다.(대외 명분은 모세의 실수를 내세우지만)

지도자의 태도-모세는 즉시 엎드려 한 사람의 실수로 온 백성에 진노를 내리려 하시나이까? 모세를 붙들고 하나님이 전체적인 일을 하는 것이므로 모세를 반대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반대당의 전염(傳染)이 1-3-280-14,700으로 증원됨.

모세의 할 일
1.자기에게 털끝만치도 거리낌이 없도록 할 것
2.그들을 끝까지 긍휼히 여길 것, 지도 받은 사람은 고라의 일을 삼가야 하는 것이다.

고라의 일
1.제사장 지위를 주지 않는다고
2.자기들의 생활 윤택의 길을 가면 땅이 입을 벌려 삼켜버림 같이 지금은 세상에게 삼키우고 만다. 이를 보고 더 반항한 자들은(14,700명) 염병으로 죽었다.

지도자는 이렇게 당할 것을 각오하고 그들이 모세를 대항하여 "네가 그 사람들을 세상으로 속화시키지 않았느냐?" 고 대항한 자들은 염병으로 죽게 된 것이다. 그 당파에 물이 들어 그 심령은 죽은 것이다.

*이들은 공정을 모른다. 간사 자기에게만 유익한 이간에 잘 떨어지고 이간을 잘 붙인다.
*하나님의 종은 어떤 간사 이간에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만 의존한다



제17장 1967.10.8.
제목; 열 두 지팡이 요절;8절 하반절

제16장에 고라가 자기도 제사장의 자격을 자부하여 고라 당파를 이루었기 때문에 17장에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적을 낸 것이다. 시기는 차이가 많은 것보다 비슷한 데서 나온다. 성전 문지방 밑의 물은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그 물은 많아지는 것이다. 세상 물은 내려갈수록 줄어지는 것이다.

고라 당파는 내려가지 않고 올라가다 망했다. 부흥사도 올라가면 교역자도 올라가려고 하면 떨어진다. 감사는 은혜의 대가이다. 자기 현실은 자기에게 너무 과분하다 하는 자는 자꾸 축복하고 자기 현실을 불만 하는 자는 자꾸 떨어진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 주는 것은 싫고 자기에게 주는 것은 좋아하는 자 멸망한다. 그러므로 범사에 자기에 대해서는 너무나 과중 과분하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16장과 연결됨.

제사장의 자격
1.제사장은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세우는 것과
2.제사장은 인간의 자연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의 능력의 역사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3.죽은 것을 살리는 것
4.살린 것으로 하여금 꽃피게 하고(덕행)
5.살린 것으로 열매맺게 하는(승리 결과) 하나님의 권능이 같이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여 그들 당파 14,700명으로 죽은 것을 그들의 죄인 것을 뚜렷이 했다.

배울 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는 아론과 같이 이러한 하나님의 특수한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해야 하는 것이다. 학문 실력 웅변으로 나서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기 형편, 사정, 과정 못보고 어떻게 하면 주님을 위하여 밤낮으로 교회 교인을 위하여 진액을 바치는 자라야 한다. 아무리 학문, 명철, 수양, 학위, 웅변, 이것 다 필요 없다. 그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새 움 꽃 열매) 하나님의 권능이 같이 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살아야한다. 하나님의 권능을 주로 삼은 자는 법적 사회성 성경 권위 사업성 감정성 이 모든 것이 가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만 있으면 안 된다. 이 5가지가 있어야 복의 사역자가 된다.

평신도는 교역자가 못 가면
1. 하나님께 부르짖고
2. 교역자에게 조용히 말하고
3.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하시길 기다릴 것.

자기가 은혜 있는 교회로 옮길 것 (마23:1~)그들의 말을 듣고 행위는 본받지 말라

*다윗이 사울에 대하여 촌보도 대항하지 않았고 나중 사울이 죽었을 때 누가 그의 투구를 들고 왔을 때 다윗은 그 가져온 자를 죽였다.



제18장 1967.10.15
제목; 성직자의 책임 요절;5절

1.죄의 값을 본인도 받고 사람도 받아야 하지만 그 죄를 담당함에 있어 일차 이스라엘 백성이 성소에 대한 범죄한 죄는 아론의 아들이 담당, 제사장들이 범한 죄는 아론이 담당하도록 되어있음. 이러한 상하의 순서가 있을 뿐 아니라 또 하나님이 구분을 지워서 어떤 죄는 네가 책임지고 또 어떤 죄는 다른 사람이 지도록 분담했다. 의무와 책임을 담당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지위를 정하고 또 조직을 정하여 구분하여 다스렸다.

2.만일 백성이 월권하여 자기에게 분담되지 않은 책임을 질 때는 그 범위를 범한 사람도 죽고 범하게 한 사람도 죽음(2절). 하나님께서는 각각 그 위치와 순서를 지켜 무조직, 무질서를 금하셨다. 혼돈 월권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셨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렇게 다스린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하여 조직과 질서 위치를 엄격하게 따져 혼돈 혼잡 시켜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책하시고 고치게 하시는 것이다.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직무를, 부장은 부장으로서, 교사는 교사로서 또 자기 밑에 있는 자는 월권하게 무질서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잘못하면 교회는 사람 화평 겸손 용서로 다스리기 때문에 무질서 무조직하게 행하기 쉽다. 이것을 용납지 않는다. 이 교회도 조직과 질서가 엄격하다. 그 중에 군대는 더욱 그러하며 자치하여 처리하지만 교회는 최종으로 하나님이 처리한다. 그러나 교회도 자치한다. 위에 사람이 치리 하여 간다. 이로 인해 그 본인과 지도자가 벌받지 않는다.

(1)법적 엄격을 지키면서
(2)보이지 않는 사랑과 겸손과 화평을 베풀어야만 한다.

보이는 형태에는 법이 터가 되어야하고 법 속에는 사랑(겸손)이 밑받침 되어야한다. 법대로 실행한 다음에는 또 사랑을 베풀어야한다. 다음 법은 사랑 속에 들어 있어야한다. 교회 일은 사랑 법 사랑의 질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법과 사랑을 겸했다. 두려움과 사랑이 겸해야 한다. 이 모든 사람이 하는 일이 구별되고 위치가 있다. 이 위치를 뛰어 넘으면 죽는 것이다.(고라의 당파)월권(고라 죽음) 혼돈(14,700 죽음)

2.다윗은 아주 엄격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했다.

5절; 월권 못하게 하는 동시에 그 위에 사람이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바로 하면 그 밑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복을 받는다. 여기서 단합설과 책임성을 나타낸다. 모든 인류가 죽게된 것은 아담인데 그 화가 보통 생육법의 후손이 다 죽었다. 단, 둘째 아담이 바로 했을 때 모든 자손이 존귀하게 되었다. 밑에 있는 사람은 훼방 월권하면 고라 같이 절단 난다.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의 손을 그 밑의 사람이 들어 주었다. 밑에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위의 사람이 잘함에 메여 있기 때문에 밑의 사람의 협조가 요청된다. 위의 사람은 자기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 화를 입기 때문에 스스로 주의하라. 위의 사람은 책임감이요, 밑의 사람은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 요함.

3.무엇이든지 처음 난 것 제일 수지는 하나님의 것이다. 사람도 짐승도 처음 난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십일조, 모든 것의 처음 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시로 머리를 떼어 바치는 것이다. 십일조는 1/10을 떼어 드리는 것이 십일조가 아니라 전부가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이것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으로 사용한 것이다. 사람은 20세겔, 짐승 곡식 바치는 것이다.

4.다른 족속들은 다 기업을 주었는데 이 레위 족속은 모든 족속들의 십일조를 그 기업으로 했다. 이것은 농사지은 것과 꼭 같다. 드리는 것은 무엇인가? 받는 것이다. 짐승을 드리는 것은 구속주의 혜택을 입은 것이요 곡식 물질을 드리는 것은 영영한 나의 곡간에 등록하는 것으로 영영한 성숙을 받는 것이다. 이 바치는 것은 제사장이 차지한다. 제사장들이 이것을 취하는 것은 얻는 것인가, 주는 것인가? 제사장직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기업을 받도록 하는 것이 레위인인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그 백성에게 전하여 주는 것, 그의 소유가 되어 지도록 주는 직분인 것이다. 제사장 직분은 (1)받고 (2)주고-받아서 주는 직분이다.(거제 요제)



제13장 1967.10.29

피.재-말씀의 대속 대속적 성결
물로 씻는 것-대속으로 볼 수 없음.
시간이 가면 깨끗해지는 것 -그리스도의 대속으로만 깨끗해지는 부정, 비교: 시간이 가면 물로 씻음 깨끗해지는 부정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 흘리신 것과 대형대행 하신 공로 그리스도의 구속을 우리가 힘입어서 도덕적 잘못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 고쳐갈 수 있다.

피로 재로 깨끗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 내가 완전히 구속한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고 말미암아 행위로써 점점 깨끗하고 성화 되어 갈 수 있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은 것은 공로를 법적 해결과 하나님과의 해결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은혜 전부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것이요. 법적 사함 실질적 사함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은 것. 깨끗해지는 것은 도덕면이요, 도덕면을 깨끗하려고 하다 물질면에 더러워질 수 있다. 도덕적으로 깨끗하나 양심에 꺼리낌이 없으나 물리적으로 더럽힐 때는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니 그 사람은 부정하다. 이런 사람은 물질적으로 물질로 깨끗할 수 있고 시간이 가면 깨끗할 수 있다.

시체-물질적으로 부정은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케 할 수 없다. 이는 물질적 부정이 아니고 도덕적 부정이요. 잿물(그리스도의 대속)로 스스로 정결케 하는 것이라. 성령을 힘입어 고치는 것.

백향목-아름다운 향기
물방초-광채
홍색실-희생



제20장 1967.11.4
제목; 므리바의 반석(물) 요절;13절

1.본문대로 가르칠 것
2.사람이 범죄 함도 의를 행함도 하나님의 예정이요. 무엇 때문에 범죄 하게 하는가?
하나님이 창조 진행하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사람에게 하나님을 인식시킴에 있어서도 또 알림에서 또 알리고 하여 자꾸 온전으로 역사 하시는 하나님같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므리바로 끌고 가서 그들이 원망치 않을 수 없게끔 해 놓고 그들이 원망하므로 인도자 모세가 실수하는 사고를 일으켰다.

고로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치 못하리라는 말씀대로 전부 광야에서 멸했으니 이런 것으로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니, 사람이 가난하여지면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게 되고 따름에는 따르지 못함으로 원망하게 되고 사람이 원망 시비하여지고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부르짖은 종의 응답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이 응답과 백성의 원망과 시비로 인도자가 실수하게 되고 또 가나안 인도가 실패가 된다는 것을 가르침. 기독교는 완전한 도가 영원전에 있으나 이 도가 나타남에 차차 진보하면서 나타난 것이지 진화한 것은 아니요.

(1)자유 없는 노예에서 자유를 얻고자 하는 것과 물질면 수입보다 인간적 수입을 얻고자하는 길에는 보다 모든 면에 애로가 있는 것은 필연적이다. 인간 수입을 보고자하면 일의 애로를 겪어야 한다. 사람을 참되게 하려고 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어려운 가운데서 인간 수입보다 물질 수입을 앞세우고 자유생활에서 노예생활로 바꾸므로 주어진 현실을 원망 시비하게 되었다.

(2)원망 시비로 부르짖을 때 인도자 모세는 그들의 불신의 신앙이지만 모세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들어 주셨다. 인도자는 인도 받는 모든 자의 부족을 불쌍히 여길 때 인도자의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

(3)7~8절 귀한 마음임으로 하나님이 물을 반석에서 나게끔 위임시키니 모세가 존귀케 되었다. 그러나 모세는 10절 이하 패역한 너희여 하며 백성을 나무라고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나왔으나 인도자의 권위를 여기서 빼앗겼다. 안 믿은 것이 무엇일까?

*명하라 했으나 반석을 두 번 쳤다.

*그들이 패역하나 모세와 하나님이 짝하면 되겠으나 모세가 하나님의 권위와 계심을 인정치 않고 그들의 대 인솔자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당돌이 자기가 중간에서 꾸짖게 되자 하나님에게 악을 베풀게 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음으로(말로는 우리가 한 것과) 행동으로는 이는 명하라 했으니 명하여야 할 것인데 지팡이로 두 번 치매 물이 나왔으니 하나님은 일 점도 가감할 수 없는 하나님이요. 이를 구별치 않았다. 명함으로 백성에게 믿음을 넣어줄 기회였으나 이 기회를 이용치 못했다. 하나님이 명하지 않아도 들어준 이유?-기도란 구하는 방식이 중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중점이요. 고로 반석에서 물을 내어 먹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이루어졌다. 고로 방편보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맞추는 것이 중점이요.



제21장 1967.11.12
제목; 구리 뱀 요절; 2절

1.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렇게 인도하는 것이 가나안에 쉽게 잘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도하시는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그 인도에서 가나안에서 살 만한 가나안의 본 족속을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물리칠 만한 믿음의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 목적이요 이는 그렇게 해야 가나안에 들어가서 실패치 않기 때문이다.

가나안에 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그 속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기르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수고요. 편안히 쉽게 들어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요. 하나님은 그들을 조금의 애로도 없이 잘 인도하실 수 있으나 그렇게 하면 그들의 길러갈 실력을 길러가지 못하므로 하나님이 못하심이 아니고 안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인격성을 기르는 데 필요한 노정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통과시키려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2.그렇게 인도하시는 인도를 달게 받지 않고 원망 불평하다가 망했다. 뱀이 나와 많이 물려죽었다. 하나님의 종들이 진리와 영감의 인도를 받으려고 하면 많은 애로가 있다. 이 애로를 믿음으로 잘 통과하도록 애쓰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므로 마귀가 자기를 삼키는 원인이 된다. 죄를 지어 오는 어려움도 의를 인한 어려움도 통과치 않고는 안되므로 어려움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도록 힘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마귀가 삼키게 된다. 뱀에게 물린 것을 뱀 아닌 거짓 뱀(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면 살아난다. 죄악에 삼킨 사람이 예수님을 바라보라할 때 바라보는 순종으로 살아난다. 죄악에 상한 치료는 순종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요.

3.식수가 없어 부르짖을 때 식수를 주셨으나 큰 죄악이 내렸다. 식수가 없을 때 부르짖으면 재앙도 없이 하나님이 응답하시나 원망과 불행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그것이 화근이 된다. 자기의 봉착은 감당할 수 없으니 이를 잘 통과하도록 해 주시기를 부르짖은 것은 좋으나 이를 원망하고 불행스러운 입장을 원망하는 것은 화근의 원인이 된다.

4. 1~2절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붙이시면 34절 ~네 손에 붙였나니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하나님이 나의 손에 붙이시면 문제없는 줄 아는 것과 아무리 약한 것이라도 하나님이 나의 손에 붙이시면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당신의 법도를 지켜 하나님이 나의 손에 붙이시기를 원하는 이것이 또한 중요하다.



제22장~제25장 1967.11.26
제목; 발람 요절;13절

1.본문대로 가르칠 것.
발락 왕이 발람 선지에게 사람을 보내어 청하러 오기는 2번 왔고 발람이 하나님께 가기 전 기도는 2번했고 갈 때 천사가 막은 것은 3번 막았고 나귀가 막은 것은 3번 막았고 하나님 앞에 발락에게 가서 제단을 3번 쌓았고 이스라엘을 발람이 축복한 것은 3번 예언은 1번 했다.

24절 9절 발람이 발락을 저주했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는 나쁜 술책을 가르쳐 주었다. 제31장 16절 사람은 잘못되고 아닌 줄 알아도 자주 들으면 삼켜 넘어지고 만다. 발람은 두 번만에 삼키웠다. 인생은 이렇게 약한 줄 알고 방비해야 한다.

*무슨 일이라도 처음 판정으로 한 것은 병이 없으나 자꾸 말하니 사정이 딱하여 그대로 한 일은 전부 병이 나고 만다. 처음 판정을 양보치 말로 가져야 한다.

*처음 온 사람은 보통 귀족이 왔으나 두 번째는 더 큰 귀족이 왔다. 일은 일로써 판단치 않고 사리는 사리로 따지지 않고 사람의 귀천에 따라 내가 변동되기 쉽다.

*발람이 기도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판단을 맡기고 기도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자 기도한 것. 이는 그 사건의 주권자가 자기이다. 이는 금한다.

*사람이 잘못 갈 때 막는 방편은? 하나님 나귀 천사가 막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 말라고 할 때 안가는 것이 좋고 다음 물질이 막을 때 막히는 것이 다음 좋고, 이것으로 막아도 막히지 않을 때는 하나님도 어떻게 할 수 없다. 망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성을 주셨기에 강제적으로 하지 않는다.

*발람이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명 내어놓고 지켰다. 그러나 결국은 지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 멸망의 길을 가르쳐 주었다. 발람의 가는 길이 잘못된 길을 자기 욕심대로 걸어가면 하나님 말씀 지킨다고 애를 썼으나 자기 간 길을 후회하고 돌아와야 살 수 있다.




제26장 1967.12.10.

1.하나님이 이스라엘 12지파 장정 계수할 때
(1)시내산 광야에서 계수 - 여호수아 갈렙 외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2)모압 평지에서 계수

2.레위 족속들의 기업에 대하여
3.고라 당파 - 패역한 자들의 두목이지마는 아들은 그 멸망에 참석치 아니했다. 혈통, 피, 처지를 초월한 진리 - 자기의 친근을 초월한 자라야 한다. 혈통, 피, 처지를 초월하고 사업과 동정에 동참치 않음으로 자손이 멸망에서 살았다(참고 출6:24-25, 대상6:-22: 민16:32).



제27장 1967.12.17.
제목; 모세의 죽음 예고 요절;13절

1.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와서 ... 일반적 죄악으로 죽었으니 그에 대한 기업 줄 것을 모세에게 말했다. 또 모세가 하나님에게 고했을 때 하나님은 가장이 죽었지만 그 이의 권위와 지위를 박탈하지 말고 살려주라는 공판을 내리셨다. 공정이 아닌 것은 하나님이 하실 수 없다. 여기서 하나님의 힘을 알 수 있다. 위치를 묵살치 말고 주라는 말씀이요 인간의 자주권, 인권옹호를 하나님은 중히 여기신다.

2.모세를 하나님께서 호렙 산에 올라가서 이스라엘에게 준 땅 가나안을 바라보게 하시고 므리바 물에서 내 영광을 가리고 너를 나타냄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다. 모세는 오직 가나안은 못 갈 망정 영원한 하늘나라가 있고 자기의 참된 받을 것이 불만이 없었다. 사람을 길들이지 않으면 제 욕심만 안차면 불만이요, 오직 의만 세우는 것을 만족하고 기뻐해야 한다. 모세는 의를 항상 사모하여 길러놨으므로 하나님의 그렇게 하심에 감사했고 또 사랑으로 길러 놓았으므로 모세의 지도자 세워주실 것을 기도하실 때 모세의 지도권을 완전히 복구하시고 복되게 하셨다. 이는 자기의 본질과 본성대로 된 것이요 가나안 - 육체의 이스라엘 편에서 허락한 기업은 받지 못했다. 신령면은 받고 성공했다.



제28장 1967.12.24.
제목; 8가지 절기 요절;29장 40절

지킬 것은? 상번제(매일 드리는 제사), 월삭, 안식일, 유월절, 칠칠절, 칠월십오일;레23:34 초막절 칠월십일일; 레23:27, 16:34절 속죄일 제사 칠월일일 ; 레23:24절 나팔절 - 8가지 제사임

어린양에는 십분지 일 (수 어린양) 수양은 에바 십분의 이 수송아지는 에바 십분지 삼, 고운 가루 전부 화제요 번제다.

어린양으로 드릴 때 ; 수양으로 " ; 수송아지로 " ; 제물이 제일 많은 때는 초막절이요, 다음은 칠칠절, 유월절이다.;칠칠절 유월절의 비교에는 제물이 다 같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므로 매일 드리는 제사나 안식일이나 속죄제나 내포한 뜻은 하루의 생활은 이렇게 한다는 것으로 매일 제사로 나타냈고 한달 생활은 어떻게 하는가? 에 대하여 월삭 일년 생활-
속죄제 안식년의 생활 희년의 생활 다 번제로 드리고 언제나 속죄제는 끼여있고 번제의 제물은 예수님을 그림자 하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받은 것이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곧 영원히 자기 것 된다. 하나님께 바치면 생명으로 진리로 옮기고 완전하게 보존하는 것이다.

짐승으로 드리는 것은 어린양으로 주님을 받은 것이요 예수님의 대속을 오늘 하루도 안식일도 일년도 온전히 받는 날이 되어야 한다. 크게 말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사죄와 칭의 공로를 베풀었으니 이를 온전히 받고 은혜를 온전히 받아야 한다. 온전히 받은 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사죄 칭의의 은혜를 받으려면 나의 있는 전부를 드리면 나의 것이 되니 곧 바꾸는 날이 되어야 한다. 나의 것이 당신의 것이 되면 당신의 것이 나의 것이 된다. 이미 법적 규정적으로 나의 것은 주님의 것이 되고 주님의 것은 나의 것이 되었으니 실질적으로는 나의 것을 전부 당신의 뜻대로 쓰면 나의 것이 되어진다. 제물이 많이 든 때는 초막절 장막절 (하나님이 지켜 보호하심을 입은 절기) 이니 하나님의 보호를 입으려면 나의 것이 전부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보호하심을 입을 수 있다. 다니엘 사드락 메삭의 경우.
칠칠절. 진리와 영감을 받으려면 또한 안식일 월삭 보다 전부 드려야 한다.
유월절. 그리스도의 구석의 은총도 나의 있는 전부를 다 바쳐야 입을 수 있다. 예수님의 은총에 감격하고 충만히 느끼는 것은 나를 바치는 것이요.



제30장 1967.12.31.
제목; 부모와 남편의 책임성 요절;30장 16절

자유의 위치와 소속의 위치가 각각 다르다. 자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체가 책임지고, 소속한 사람은 치리 하는 다스리는 사람의 책임을 져야 한다. 가족에 잘못이 있다면 호주가 책임을 지고 책망하면 그 호주에 하나님이 맡기시고 기다리신다. 아내가 잘못된 법, 이리저리 해도 되는 것에 대하여 책임자는 책임적 의무가 있고 지배받는 자는 책임도 없고 자유도 없다. 책임자가 지도하의 사람의 잘못을 책망하고 하나님께 고하면 듣지 않고 고치지 않아도 책임자가 잡고 있을 때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버리시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나 노함이 없다. 엘리 제사장 자녀에 대한 엘리 제사장의 책임성. 호주, 남편, 부모의 책임성을 여기서 말한다. 책임은 반드시 자유에 따르니 자유 없는 곳에 책임이 없다.



제31장 1968.1.7.
제목; 미디안 족속에 대한 복수 요절;2절

1.하나님이 원수를 갚으라고 명하심. (복수의 정의를 갚고 이를 하되 성경적일 것) 하나님은 복수의 정의를 가지신 하나님이다. 그들이 다 하나님의 종교성을 반대하고 하나님의 지도와 생애 법칙을 반대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적으로 이를 친밀하게 지내지 말고 언젠가 진멸 하라고 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타협자가 되기 쉽지만 우리는 하나님 법칙과 위배됨은 죽는 날까지 쳐부수려고 시기를 타서 노력해야 한다. 타협하면 종교는 일반이라고 하게 된다.

개혁주의란 개혁이란 이것이 민주주의 바람을 타고 흘렀기에 단시일에 많이 퍼져졌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전하는 방편은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있으나 하나님과 배치되는 것은 변할 수 없는 목적으로 시기를 기다려 진멸 하기까지 싸워야 한다. 투쟁에는 우리는 은밀히 활동적으로 사업적으로 부절히 쉬지 않고 싸워야 한다. 이방은 이방대로 살지 않는가 하여 전쟁의 사명을 잃어버리기 쉽다.
직장에 있으면 직장에 있는 한 하나님의 법도에 위배됨이 없도록 까지 시기를 보아 부절한 노력으로 싸워야 합니다.

2.그들이 싸우러 갈 때 하나님이 가지고 가라는 것을 가지고 갔으며 여호수아와 같이 하나님이 장중에 붙들고 쓰시는 비느하스를 함께 보냈다. 하나님이 붙들고 쓰시는 그이를 따라 행함이 중요하다.(민 25장 10절) 나타난 조직체와 질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비느하스가 성소 기구를 가지고 간 이유는? 그 모든 것이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나 이런 일에 일이나 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요 성소에서 나온 일이요 성소로 돌아가는 것을 보이심. 단일 소속주의란 말이요. 하나님으로 발원되고 순서적으로 조직하여 단일성이지 좌행우행 하여서는 안 된다.

3.여인을 남겨 두라는 것. 죄란 하나님의 법에 위배됨이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합법적으로 하지 않고 위법적으로 할 때는 법에 저촉되나 합법적으로 법으로 한다면 할 수도 있다.



제32장 1968.1.14.
제목; 요단을 건너지 않으려는 족속 요절;7절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요단 이쪽에서 땅을 차지하고 요단을 건너지 않으려는 족속을 보고 하나님은 노하셨다. 그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가는 형식적 노정을 삼아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 감이 그들의 목적인데 가나안에 파묻고 하늘나라는 사모치 않았다. 이들을 오늘 우리에게 거울로 계시 기관으로 주셨으니 그들이 정들면 떠나지 않고자 함에 하나님이 노하셨다. 우리 기독자에게 세상살이를 줌은 천성을 향하여 가는 노정이요 우리의 목적이 아니고, 세상살이에서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감 이 목적인데 이 구원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편을 목적 삼기 쉬우니 이를 하나님이 노하셨다.

우리는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방편을 쓰는 것이니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에서 그 방편을 쓰는 것이요 고로 우리는 방편에 대하여 선택하겠지만 방편을 선택함에는 쉬운 방편을 어려운 방편을 택할런지? 변동 없는 방편을 택할런지 변동 많은 방편을 택할런지? 목적을 이루기에 제일 좋은 방편을 택할런지? 우리는 목적울 잘 이루는 방편을 택하여야 한다.
하나님도 용감스럽게 싸우는 이 길을 많이 주셨다.




제33장 1968.1.21.
제목; 이스라엘의 반성과 각오 요절;3절 하반절

출애굽 한 노정을 기록함은 하나님의 역사와 그들의 한 행동을 비교, 다시 반성케 하기 위함이니 또 우리도 과거는 과거로 청산해서 잊어버린다는 것은 안 된다. 과거를 반성 잘못은 고치고 좋은 것을 감사하고 과거를 다시 반성함으로 좋지 못한 것이 마음에 머물러 더 강해지면 자기 속에 그 죄가 자람을 알고 조심 재차 고치도록 해야 한다. 과거를 생각함으로 자기의 현실에 어떤 결정을 지워야 한다.

1.과거를 성도가 기억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하심과 자기가 어떻게 하심을 반성하고 고쳐야 한다.

2.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어떤 권능의 역사로 나온 것을 기억하고 즉 예수님 믿을 때의 시발의 은혜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3.가나안 본 족속을 모두 몰아내야 합니다.

본(本) 족속 - 예수님 믿기 전 옛사람, 부패의 사람, 예수님 믿기 전 신앙 없이 불의로 맺은 인연을 뽑아버려야 하나님이 도우시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그와 같은 사람이 되므로 하나님이 멸하신다. 예수님 믿기 전 사회성의 대인 관계에서 믿은 후는 하나님의 법칙으로 사회성을 가지면 그를 구원하고 그 사람의 죄악을 멸하는 원동이 된다. 접촉하는 곳에 하나님의 대적인 가나안의 본 족속을 멸할 것. 나보다 먼저 온 자는 강도요 도적이다.




제34장 1968.1.28.
제목;이스라엘의 경계 (지경) 요절;18절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취급하신 것을 보면 그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을 경계를 정하여 한정했고 그 속에는 이방족속을 남겨두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경계를 넘는 것과 경계 내 이방족속을 남겨둠이 화근이 되었다. 경계를 넘지 않고 경계 내 이방족속을 멸하고 지켰을 때 기근, 원수, 침노를 받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다.

1.하나님이 유업으로 준 경계 (자기 위치 분수이니 이것이 자기가 머물 처소와 위치)
2.하나님 법을 지키더라도 경계를 넘지 말 것.
3.경계를 법 내에서 지키더라도 이방족속을 다 몰아낼 것. 자기 위치 분수를 지켜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지 다른 사람의 위치 분수에서 날뛰면 안 된다. 경계를 넘어가는 사람이 어디서나 말씀을 지키면 되지 않나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는 자기의 위치 분수를 지켜 말씀에 순종하고 이방인과 합작치 말라고 했으니 이방인은 하나님과 대립되어 대적된 사람이니 우리 안에 하나님과 대립된 것이 있고 모든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갑이 병을 사귀고 있는데 을은 갑으로 더불어 사귀되 이스라엘로 사귈 수 있고 병은 갑을 사귀되 이방인으로 사귈 수 있다. 이스라엘이 이방인을 사귀는 것이 눈(보는 지혜)의 가시가 되었고 옆구리(힘)에 가시가 되었으니 곧 지혜와 능력을 감소시킨다.




제35장 1968.2.4.
제목; 도피성

도피성에 대한 것과 살인에 대한 것.

1.레위인은 자기들의 기업은 달리 없었으나 다른 지파에서 얻어지는 것에서 십일조와 예물은 레위인의 것이었으나 레위인이 거할 거처를 정하여 주었고 이곳을 도피성이라 하였다. 지금도 교회서 레위 족속에 속하는 복음운동을 위하여 헌신하여 사는 사람은 자기의 보수가 상.농.공에 종사하여 얻은 보수와 동등이요. 목회자의 기업은 성도의 십일조와 예물이요 목회자는 교인들의 신앙을 향상시키고 이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감사와 십일조 바침으로 기업을 삼아야 한다.

교역자는 타업(他業)을 하지 않고 교회를 부흥시킴으로 기업을 늘이게끔 하도록 노력하고 교인은 교역자가 타업을 하지 않고 교회만에 열중하게끔 잘 돌보아주어야 한다.

도피성 - 죄인의 피란처 도피성 제사장 밑에 있는 것 - 사죄 밑에 있으니 죄책을 지고 있으면 괜찮으나 벗어버리면 형이 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면서 하나님의 공의 정의 지성 이런 속성을 가진 단일성이므로 평가적인 사랑이다. 세상법은 결과를 기준하고 하나님의 법은 결과보다 동기를 중히 본다.

죄를 하나 지었으나 범죄 되는 것은
(1)하나님
(2)국가에
(3)상대자에
(4)물질적 범죄가 된다.


제6공과 제목:도피성
본문:민35:1-34  
요절: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로 도피케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 읍이요 (민35:6)





제36장 1968.2.11.
제목: 슬로브핫의 딸들의 기업 본문:민27장8절 요절;6절

이스라엘의 풍속으로 딸에게는 기업을 주지 안 했고 만일 아들이 없을 경우는 주었다. 결혼에 대하여서(6-7절) 슬로브핫의 딸들만 타 지파로 결혼할 수 없다. 외는 자유로 결혼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기업은 각 지체의 받은바 은혜다. 기업을 지파 대로 변경치 못하는 것같이 지금의 그리스도인도 받은 바의 계통이 있다. 각각 직분적 지방적 시대적 계통이 있으니 여기서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기업 내에서 업을 정하여 살 것이니 기독교는 언제나 정통적이고 질서적이고 계통적이다. 돌발적이란 없다. 인도면 인도, 아시아면 아시아, 다 같은 복음이지만 지방적 계통과 직분적으로도 계통을 가져야 할 것이요 생애도 각각 전통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신앙의 종류적 전통과 직분적 전통을 따질 수 있다.

희년: 50년 만에 맞이하는 것으로 그 지파 내의 기업을 합쳐 다시 분배했다. 시대에 따라 이런저런 방편은 쓸 수 있으나 언제나 그 원리는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