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개정판 벧전1:18-19대속에 대한 반증적 논평

  선지자선교회

(서론)

 

한국교회가 본래 사용했던 성경책은 개역한글판이다. 그랬는데 한국교계는 현대어에 맞춘다면서 1998년에 개역개정판을 출판하였다. 그러나 개역개정판은 개정판이 되지 못하고 개악판이 되었다.

 

그러면 왜 개역개정판은 개정판이 되지 못하고 개악판이 되었는가? 개역개정판의 수많은 개악 중에서 하나 예를 들면 벧전1:18-19이다. 즉 개역한글판에서 구속으로 된 것을 개역개정판에서는 대속으로 변개하였는데 이것이 도리어 개악이 된 것이다.

 

개역개정판 성경책 출판을 주관한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위원회의 개정에 대한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이번의 개정작업을 포함하여, 1911년에 성경전서가 출판된 이래 이어진 일련의 개정작업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원문이나 번역상의 문제점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 우리말의 구문과 맞춤법 및 표준어와 관련된 것이었으므로 문법과 표준어가 바뀔 때마다 수정 또는 개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번의 개정작업은 시기적으로나 필요성에 비추어 볼 때 유효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개역개정판의 실제 개정에 있어서는 구문과 맞춤법 및 표준어에 대한 범위를 넘어서 원문 번역에까지 변개하는 개악적 개정을 하였다. 그런 것은 벧전1:18-19에서 개역한글판은 구속으로 된 것을 개역개정판에서는 대속으로 변개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 예를 든 것이며 전체적으로는 빙산의 일각이다.

 

(본론)

 

1장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

 

1. 개역한글판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본래 개역한글판에서는 구속으로 되었다.

 

2. 개역개정판

 

[개역개정]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개역개정판에서는 대속으로 변경하여 개악이 되었다.

 

그러면 구속과 대속의 진리적 도리의 차이는 무엇인가?

 

2장 구속과 대속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하셨다. 그러므로 피는 대속이며, 죄 사함은 구속이다.

 

그러면 피 곧 대속은 무엇인가?

그리고 죄 사함 곧 구속은 무엇인가?

 

1장 대속

 

1. 대형벌의 대속

 

(5:6-7)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영이 함께 거하시지 않는 육신의 연약한 자로 있을 때에(5:6-7),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예수님의 육체가 죽으시는 대형벌(代刑罰: 1:22)의 대속을 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서 우리의 죄에 대하여 대신 형벌을 받으신 대속이다.

 

2. 대복종의 대속

 

(5:8-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가 아직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로 있을 때에(5:8-9),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대복종(代服從: 2:8)의 대속을 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서 우리의 죄에 대하여 대신 형벌을 받으신 대속이다.

 

3. 대화평의 대속

 

(5:10-11)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1:19-20)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우리가 아직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로 있을 때에(5:10-11),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대화평(代和平:1:19-20)의 대속을 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서 우리의 죄에 대하여 대신 형벌을 받으신 대속이다.

 

2장 구속

 

1. 사죄의 구속

 

(20:19-22)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제자들에게 오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셨다. 즉 육신의 연약한 자를 하나님의 영(8:9)이 거하시는 생령(2:7) 곧 산 영(고전15:45)의 사람으로 구속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죄 사함을 받은 구속이다.

 

2. 칭의의 구속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즉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자를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구속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구속이다.

 

3. 화목의 구속

 

(2:15-16)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하나님과 화평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화목으로 말미암아 원수 된 것을 소멸하셨다. 즉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를 영의 생각(8:6)으로 하나님과 화평하고 또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구속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구속이다.

 

(문답)

 

1: ‘피 곧 대속은 무엇인가?

 

: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벧전3:18) 것이다. 대형벌의 대속과 대복종의 대속과 대화평의 대속이다.

 

2: ‘죄 사함 곧 구속은 무엇인가?

 

: 우리를 거듭난 사람(3:3-8) 즉 새 사람(3:10)이 되게 하신 것이다. 사죄의 구속과 칭의의 구속과 화목의 구속이다.

 

(결론)

 

1. 개역한글판의 진리적 번역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1:18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는 죄 사함 곧 구속에 대한 말씀이다.

 

벧전1: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는 피 곧 대속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개역한글판 벧전1:18-19에서 구속으로 번역한 것은 진리적 도리에 배치되는 개악이다.

 

2. 개역개정판의 비진리적 번역

 

[개역개정]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개역한글판에서 구속으로 된 것을 개역개정판에서는 대속으로 변개한 것은 개악적 개정이다. 그러면 대속으로 한 것이 왜 개악인가? 그런 것은 본래 벧전1:18’ 부분은 구속에 대한 말씀이며, ‘벧전1:19’ 부분은 대속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개역개정판에서 벧전1:18 부분에 대하여 대속이라 변개를 하면, 벧전1:18 부분도 대속이 되고, 벧전1:19 부분도 대속이 되기 때문에 진리적 도리에 배치되는 개악적 번역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벧전1:18-19에서 개역한글판은 구속으로 된 것을 개역개정판에서는 대속으로 변개한 것에 대하여 단순히 개악이라고 정죄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런 개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경 진리를 가감한 것이라고 말씀한다.

 

(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그러므로 개역개정판 출판을 주관한 대한성서공회는 회개하고 개역개정판을 폐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역개정판 개정감수위원회 위원들은 회개하고 개역개정판 폐기를 주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역개정판을 선택한 교단들은 회개하고 개역한글판으로 환원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역개정판을 인도한 목회자들은 회개하고 교인들에게 개역한글판으로 인도해야 한다.

 

 

- 2020. 12. 261차 원고

- 2021. 01. 021차 원고

- 김반석 목사e06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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