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의숭 장로님
선지자선교회
교회 100개 짓는 그 날까지 회장님의 '꿈같은 인생'
평생 교회 100개를 짓겠다는 꿈의 절반쯤 이뤘습니다. 앞으로도 위험하고 어려워도 교회가 꼭 필요한 나라와 지역에 교회를 계속 지어 봉헌할 것입니다.”
한 기업인이 고등학생 때의 꿈 ‘교회 100개 건설’을 이뤄가고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대의그룹 채의숭(68) 회장이다.
그는 지난 90년부터 세계 15개국에 크고 작은 교회 45개(국내 6개 포함)를 건축했다. 화양감리교회 장로인 채씨가 ‘교회 100개 건설’ 꿈을 키운 것은 초등학생 시절 고향(충남 보령)에서 교회 재건축과정을 지켜보면서부터이다.
“보령에 하나밖에 없던 우리 교회를 다시 짓는 데 당시엔 교인들이 몇 년씩 걸려 돌 하나, 벽돌 한 장씩 모아서 지었습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신앙생활을 하던 저로서는 어린 마음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자 보람 있는 일이 교회 짓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죠.”
채 장로는 고교시절 교회 건설과 함께 두 가지 꿈을 더 목표로 삼았다. ‘박사가 돼 대학교수가 되는 것과 큰 회사 사장 되는 것’이었다. 가난한 농촌 가정의 6남매 중 장남으로선 둘 다 쉽지 않은 목표였다.
그는 1984년 경제학박사가 되고 그 해 대우아메리카의 사장에 오르고 2001년엔 겸임교수가 됨으로써 첫 번째, 두 번째 꿈을 이뤘다.
셋째 꿈인 ‘교회 100개’ 실현은 1990년부터 시작됐다. 1985년 창업한 후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스리랑카에 교회 짓기를 주도한 것이다. 무려 5번이나 현지 주민들이 철거하는 반대 속에 1992년 완공된 교회가 모태가 돼 지금은 현지에 15개 교회로 확산됐다.
채 장로는 “그 후 17년 동안 설과 추석연휴를 국내에서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 교회건물이 필요한 해외 현지를 답사하거나 완공된 교회의 봉헌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비교적 장기간 시간을 낼 수 있는 연휴를 반납한 것이다.
교회 건축을 지원하는 기준은 현지 선교사의 요청을 받은 곳 중 기독교의 선교가 어려운 곳을 우선 순위로 삼았다.
그렇지만 사업이 늘 순탄한 것은 아니어서, 수해와 화재로 공장이 폐허가 되기도 했고, 납품하던 대우그룹의 부도로 휘청 할 때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1997년엔 뇌출혈을 겪기도 했다.
채 장로는 “사업이 완전히 망할 위기에서도 적금을 깨 추수감사절 헌금으로 바치기도 했다”며 “매번 위기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교회건축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라오스에선 한센병 환자들이 “감염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한 예배당을 지어달라”고 해서 환자 자녀들을 위한 교회를 따로 건축해 주기도 했고, 캄보디아에서는 어렵게 건축해준 교회건물이 대홍수 때 ‘노아의 방주’처럼 주민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채 장로는 “무엇보다 어렵게 건축해 준 교회가 모태가 돼 해당 지역에 교회와 교인이 늘어나는 것이 보람”이라고 말했다.
채 장로는 이런 자신의 사연을 모은 책 ‘주께 하듯 하라’(제네시스21)를 펴내고 27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최근 채 장로는 새로운 꿈 하나를 더 꾸고 있다.
‘세계선교센터’ 건립이다. 그는 “해외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우리 선교사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외국인 목회자들을 위한 재교육 시설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2007년 3월 22일 조선일보)
[역경의 열매] 채의숭 (1) “비전 없는자 망한다” 성공 좌우명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꿈과 비전은 삶의 동력이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자동차를 움직이는 양질의 연료다. 성경은 말한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수많은 꿈과 비전을 품는다.
사람들은 동일한 시간의 첫 자락에서 공평하게 출발한다. 그러나 1년 후에는 순위가 가려진다. 성공한 사람들은 1년 동안 그 꿈과 비전을 잊지 않는다. 꿈과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1년 동안 부단히 노력한다.
실패한 사람들은 언어의 진수성찬만 즐길 뿐이다. 그들은 실천하는 힘이 없다.“하나님께서 새해에는 또 어떤 신비롭고 오묘한 일을 나에게 맡기실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원단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그것은 꿈을 가진 자들만의 가슴 벅찬 감동이다. 시작은 항상 희망을 준다. 새 출발은 항상 기대를 갖게 한다.
대천농고 2학년 때,나는 세 가지의 꿈을 꾸었다. 첫째는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가 되는 꿈이었다. 둘째는 큰 회사의 사장이 되는 꿈이었다. 셋째는 교회를 100개쯤 건축하는 꿈이었다.
셋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모두 허황된 꿈처럼 보였다. 나는 세 그루의 꿈나무를 가슴에 심어놓고 매일 그것을 가꾸었다. 매일 기도의 물을 주면서 그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의 꿈과 비전들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싹이 돋아나고 제법 단단한 줄기가 형성됐다. 노력이라는 이름의 비료가 더해지자 나무의 자태가 점점 도드라졌다.
세 가지의 꿈은 더 이상 신기루가 아니었다.나는 두 개의 꿈을 이미 이루었다. 1984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그 해에 ㈜대우 아메리카 사장을 맡았다. 2001년에는 대학 겸임교수로 위촉됐다. 두 개의 꿈은 성취됐고 100개의 교회를 세운다는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꿈의 성취를 위해서는 숱한 파도를 넘어야 한다. 시간의 파도,자금의 파도,나태함의 파도,위험 부담의 파도 등…. 이 거친 파도를 담대하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다. 믿음은 꿈과 비전을 완성시키는 힘이다. 나는 현재 15개국에 41개의 교회를 건축했다.
올해 4개의 교회를 추가로 봉헌할 것이다.1990년부터 설날과 추석을 한국에서 보낸 적이 없다. 내게 명절은 해외 선교여행의 기회다. 교회 건축을 위해 목사님과 현지를 방문하거나 예배당을 봉헌한다. 나의 선교 타깃은 사도 바울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 터키의 동쪽 지역이다. 스리랑카 네팔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에 교회를 세우고 있다.
올 설날에는 미얀마에서 예수교회(Church of Christ)를 봉헌한다. 라오스의 폰무앙 교회도 곧 건축될 예정이다. 한센병 환자 700여명이 모여 사는 폰무앙에 ‘아이들의 교회’를 짓고 있다.이 모든 것이 꿈과 비전의 열매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이 말씀은 곧 꿈이 있는 백성은 흥한다는 뜻이다.
일찍이 예수를 영접한 것이 내겐 최고의 복이었다. 내가 만약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상상을 하는 것 자체가 끔찍하다.
예수 그리스도,그분은 내 삶의 주인이시다. 그분은 내 삶의 나침반이다. 내 삶의 등대이시다.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채의숭 회장은 1939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삼성과 대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1989년 ㈜대의를 창업했다. 그는 36세에 화양감리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았고 지금까지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4대째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조부모로부터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550여명의 자손들이 모두 기독교인이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2) 대천감리교회에 신앙 둥지
나는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자동차를 구경할 수 없을 정도의 오지였다. 부모님은 6남매의 교육이 늘 걱정이었다. 마을 아이들은 초등학교 졸업이 학업의 끝이었다.
부모님은 6남매가 이런 전철을 밟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신대륙을 향한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서산을 떠나 꼬박 사흘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가 산중턱에 모여 앉았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공중으로 힘껏 집어던졌다.“하나님,이 지팡이의 끝을 따라 우리의 행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리켜주신 방향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미련없이 따르겠습니다.”그것은 우리 가족을 위한 약속의 지팡이였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출 14:16)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출 17:6)
그것은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던 능력의 지팡이,모세가 호렙산 반석을 내리쳐 생수를 터뜨린 권능의 지팡이와 같았다. 아버지는 모세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공중에 내던진 것이다.
하나님은 촌로의 조그마한 결심에도 함께하셨다.지팡이의 끝이 가리킨 곳은 충남 대천. 그곳은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위해 예비하신 가나안 땅이었다.
비록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곳을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나안으로 여겼다. 1945년,이곳에는 단 하나의 교회만 세워져 있었다.
선교사들의 선교지 분할 정책에 따라 이곳은 감리교 관할 지역이었다. 우리 가족은 대천감리교회 앞에 집을 구입했다. 우리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먼 항해를 해온 청교도들처럼 들떠 있었다.
대천을 서인도제도로 알고 그곳에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아,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는 놀랍고 오묘했다. 우리 6남매에게 교회 앞마당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할아버지는 손자들이 뛰노는 것을 보고 매우 만족해하셨다. 교회는 최고의 학교였다.
가족 중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장로가 되셨고 이어 곧 아버지도 장로가 되셨다. 우리 3형제도 모두 장로 장립을 받았다. 막내동생은 최근 목사 안수를 받고 경기 구리시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이것도 어머니의 기도 응답이다.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장로가 된 것도 감사하다. 그러나 아들 하나쯤은 주의 종이 됐으면 좋겠구나.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텐데….”우리는 어머니로부터 철저한 신앙훈련을 받았다. 어머니가 가르친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주일을 성수하라. 가능하면 본교회에서 주일을 지내야 한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는 가능하면 맨 앞에 앉아라.
둘째,십일조를 철저히 하라. 십일조를 하면 분명히 물질의 복을 받는다. 농사를 짓더라도 수확의 십일조를 철저히 바쳐라.
셋째,목사님과 교인들에게 순종하라. 또 너의 달란트를 복음을 위해 사용하라. 특히 주의 종에게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성경 말씀처럼 소중하게 여겼다. 어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으셨다. 하루 일과를 항상 새벽기도로 시작했다. 어머니는 신앙을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이런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많은 감화를 받았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3) 천마교회서 봉사… 인생에 ‘순풍’
유소년기의 신앙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떤 부모가 가장 훌륭한가. 좋은 습관을 갖게 해주는 부모다. 나는 좋은 부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특히 어머니는 우리 형제의 자랑이다. 어머니의 철저한 신앙 교육은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어머니는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 몸이 아픈 사람들은 병원에 가기 전 어머니를 찾아왔다.“권사님,저 좀 살려주세요. 몸이 너무 아파요.”어머니는 아주 침착한 표정으로 환자들의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 드렸다. 그러면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기도가 끝날 즈음,환자들의 신음소리가 멎었다.
우리집은 항상 손님들로 붐볐다. 심지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몸이 아프면 어머니를 찾아왔다. 어머니는 아주 인자하게 그들을 맞았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기도해주었다.“자,이제 교회에 나가야 되겠지요? 예수를 믿어야 건강과 장수의 복을 받습니다.”어머니는 탁월한 전도자였다. 이런 방법으로 전도왕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대천은 내 신앙의 텃밭이었다. 그렇지만 마냥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었다.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변화와 개혁,모험과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1960년. 대천농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꿈과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이 필요하다. 삶의 한 부분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용기와 결단이 요구된다. 나는 건국대에 지원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시골 소년을 위해 크고 비밀한 선물을 예비해놓으셨다. 수석으로 합격한 것이다. 4년 동안의 학비가 단숨에 해결됐다.
하나님의 섭리는 항상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서울 낙원동에서 1학년을 보내고 2학년 때 성동구 모진동 캠퍼스로 옮겼다. 나는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동생들을 도왔다.
어차피 3남3녀가 모두 대학에 진학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장남 하나를 잘 가르쳐놓으면 그 덕을 형제들이 나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머니는 참 지혜로운 분이었다.대학 2학년 때,학교 앞 천막교회에 출석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교회였다. 그곳이 바로 나의 영적 고향인 화양감리교회다.
나는 중고등부 교사와 성가대원,청년부장 등을 모두 맡아 열심히 봉사했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순풍에 돛을 단 배와 같았다. 거칠 것이 없는 인생이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인생의 로드맵에 따라 착착 앞길이 열렸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그리고 삼성에 입사,6년7개월을 근무하고 대우에 스카우트됐다.나의 세 가지 꿈 중 가장 먼저 실현된 것이 대기업 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1984년 대우 아메리카 사장을 맡았다. 이듬해 대의테크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부천에 크게 공장을 짓고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십일조를 도둑질하지 않았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거의 10의 3조를 드렸다.
“하나님,이제는 제 사업을 시작합니다. 교회를 100개 세우려면 사업이 잘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회사의 사장이 돼주세요.”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호사다마란 말이 있다. 회사를 설립한 해에 나는 큰 역경에 부닥쳤다. 참혹한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첫번째 아픔이었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4) 홍수로 기계 파손 망연자실
부천의 공장은 내 삶의 전부였다. 나의 열정과 물질을 모두 쏟아부었다. 공장은 직장생활 20여년의 결정체였다.1985년 여름. 며칠째 장대비가 내렸다.
공장은 지대가 좀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공장에는 리스 자금으로 구입한 신형 기계들이 설치돼 있었다.새벽 1시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밤늦게 걸려오는 전화는 낭보보다 비보가 많은 법. 불길한 예감. 혹시 회사에 무슨 일이? 공장장의 전화였다.
그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흥분된 상태였다.“사장님,공장이 바닷물에 잠겼어요. 기계가 떠내려가고 있어요.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급히 회사로 달려갔다. 그곳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기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폭우에 만조가 겹쳐 바닷물이 역류,공장을 덮친 것이다. 무릎까지 차올랐던 바닷물이 금세 가슴까지 올라왔다. 새벽엔 천장에 이르렀다. 직원들이 기계를 지키려고 발버둥쳤으나 허사였다. 이제는 직원들의 안전이 문제였다.
“모두 공장에서 철수한다.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자.”직원들은 급류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서로의 몸을 밧줄로 묶고 탈출을 시도했다. 그런데 생산과장과 공장장이 울부짖으며 공장을 떠나지 않았다. 참으로 위험한 고집이었다.
“지금은 목숨이 가장 소중하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철수하자.”그러나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사장님이 먼저 피하십시오. 기계가 이렇게 둥둥 떠내려가는데 어찌 저희만 피한단 말입니까. 기계와 저는 한몸입니다. 끝까지 버텨볼 생각입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입니다. 어서 피하십시오.”참으로 고마운 사람들…. 눈물이 핑 돌았다.
월급을 받는 직원들이 회사를 이렇게 자신의 몸처럼 사랑한다면 그 회사는 정말 가능성이 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회사를 지키려는 저 마음들이 얼마나 고마운가.
“하나님,제가 과연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완전한 절망입니다. 회사를 세운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잖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한번도 제게 역경을 주시지 않았잖아요. 첫 시험 치고는 너무도 혹독합니다. 제게 왜 이런 역경을 주십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침 8시. 상황 종료. 고가의 기계들이 모두 바다로 떠내려갔다. 공장은 기괴한 괴물처럼 축 늘어져 있다. 반제품들이 흉물스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은 ‘완전한 절망’이라는 제목의 풍경화였다.
4명의 직원들이 끝까지 공장에 남아 사투를 벌였으나 한계가 있었다. 거대한 자연의 공격 앞에 인간은 그저 나약한 방관자일 뿐이었다.“하나님,제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요. 지금 저를 연단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연단이 너무 가혹해 이겨낼 힘이 없어요. 이제 저를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가요.”무릎을 꿇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망연자실. 재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납품계약을 한 회사들과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 나는 지금까지 ‘신뢰’를 최고의 경영철학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이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5) “다시 일어설 힘과 희망 주소서”
자연은 마치 점령군처럼 땀과 노력의 결정체를 한순간에 산산이 깨뜨려버렸다. 인간의 무력함…. 회사의 구조물이 마치 괴물처럼 흉물스럽게 누워 있었다. 바닷물이 모든 기계의 작동을 정지시킨 것이다. 넋을 잃은 채 바다가 할퀴고 간 현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꿈과 희망과 비전들이 절망이라는 이름의 시체로 변해 나뒹굴고 있었다.
수포(水泡). 그때 내 뇌리에 떠오른 단어였다. 도무지 재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모든 희망은 물거품으로 변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도 무너지고 말았다. 그때 퍼뜩 잠언 16장 9절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 말씀을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울고 또 울었다. 인간의 계획들은 단지 사상누각일 뿐이었다.
“여호아 라파. 치료의 하나님,마음의 절망을 치유해주옵소서. 제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희망을 주옵소서. 다시 비전을 품게 하옵소서.”나는 직원들 앞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전쟁터에서 지휘자가 절망하면 병졸들의 사기는 급격히 추락하는 법. 이 절망의 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며 다시 일어서리라. 언젠가는 이 고통의 순간을 웃으면서 추억하는 날이 있으리라.
내가 잃은 것은 기계와 제품뿐,가슴 속 희망과 비전은 아직 남아 있지 않은가.유럽 사람들은 아프리카 최남단을 ‘폭풍의 곶(Cape of Storm)’ 또는 ‘악마의 곶Cape of Devil)’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이곳을 항해한 후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해변과 잔잔한 바다가 있었다. 그래서 ‘희망봉(Cape of Good Hope)’으로 불렸다.
이 절망의 포구에서 나는 다시 희망의 노래를 부르리라. 하나님이 주신 그 영원한 희망의 노래를….모든 신문과 방송이 연일 수해현장을 보도했다. 우리 공장은 공단에 입주한 회사들 중에서도 피해가 가장 컸다.
텔레비전 화면에 회사의 모습이 그대로 비쳐졌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도 고통이었다. 그 즈음,한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대학동창 김성중이었다.
“채 사장,뭐라 위로할 말이 없네. 그러나 나는 자네의 능력을 믿네. 자네는 반드시 재기할 걸세. 사업을 하다보면 수없이 고난의 파도를 만나는 법이야. 자네가 처음 만나는 파도라서 그만큼 충격이 컸을거야.”정말 고마운 친구였다.
그는 내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재기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네. 우정의 표시라네. 나중에 돈 벌면 갚게나.”1억원짜리 수표. 거액이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친구가 선뜻 1억원을 내민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내게 보내준 구호천사였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하나님,저를 버리지 않으셨군요. 이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보란 듯이 말입니다. 지금까지 온상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제게 연단의 과정을 준비하신 것이군요.”나는 직원들에게 아주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무너진 공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 우선 깨끗하게 청소부터 하자. 사업을 하다보면 숱한 시련에 부닥치는 법이다. 우리는 지금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출발이다.”우리는 ‘폭풍의 곶’을 ‘희망의 곶’으로 바꾸는 일을 시작했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6) 재기 큰 도움 친구 소중함 체험
직원들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절망의 바다에서 희망의 대륙을 바라보았다. 잃은 것은 유형의 자산뿐,정말 중요한 것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친구 김성중의 도움은 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절망에 처한 나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지난해 그 친구와 운동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거듭 감사의 뜻을 전했다.“20년 전을 기억하는가? 자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걸세. 자네의 도움을 평생 잊을 수 없어.”
“옛날 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가? 그땐 정말 마음이 아팠어. 자네가 성공한 모습을 보니 참 기쁘네.”좋은 친구는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다. 기업은 사람이다. 경영은 감동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최고의 행운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최상의 경영이다.
나는 직원들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 우리 직원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역시 회사와 연관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또 가능하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다. 전화위복. 화가 변해서 복이 된다. 수재(水災)를 겪고 난 후, 회사는 오히려 성장했다. 역경을 통해 담대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나는 해외에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것은 내 삶의 3대 목표 중 하나였다. “평생동안 100개의 교회를 건축한다.” 이것은 내 젊은 날의 꿈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시간과 재물과 열정을 낭비하지 않는다.
목적이 이끄는 삶,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삶이었다. 나는 해외 오지에 교회를 건축하기 이전에 먼저 기도를 심었다. 교회건축을 놓고 아내와 함께 기도를 드렸다. 그러면 마음 속에 아름다운 성전이 건축됐다. 몸은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선교현장에 가 있었다.
아이들이 제비 주둥이처럼 입을 모으고 찬송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것이 바로 ‘바라봄의 법칙’인가. 꿈과 비전과 목적을 분명히 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목적의 반은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다. 목적이 분명하면 삶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한다.
교회건축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동주금형 회장 부인의 고마운 뜻이 하나의 교회로 탄생했다. 그녀는 남편을 심장마비로 잃었다. 실의에 빠져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교회건축 헌금을 보내온 것이다.“해외 오지에 교회를 하나 개척해주세요. 남편도 하늘나라에서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약간의 돈을 보태서 라오스에 아름다운 교회를 세웠다. 그것이 바로 ‘라오스 52km’라는 교회다. 작은 누이는 자녀들이 마련해준 회갑잔치 비용을 고스란히 헌금했다.“잔치를 하면 뭣해. 그 비용을 모두 내게 다오. 그 돈으로 해외에 교회를 하나 세우겠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해야지.”
누이의 헌금으로 브루나이교회를 봉헌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장인의 도움으로 네팔에도 교회를 세웠다. 이런 아름다운 손길들이 모여 세계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다. 복음의 불모지에 찬양이 힘차게 울려퍼지는 것을 보면서 가장 큰 은혜를 받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7) 불편한 몸으로 브루나이 선교 강행
1997년 8월. 그 찌는 듯한 여름을 생과 사의 길목에서 허우적거렸다. 모교 총동문회장을 맡은 나는 졸업식에 참석해 격려사를 한 후 이튿날 병원에 실려갔다.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과로에 의한 뇌출혈. 설령 완치가 된다 하더라도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반신불수? 마음이 심란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반신불수라니.“걷지 못해도 괜찮네. 말을 못해도 괜찮네. 부디 살아서 우리 곁에만 있어주게.”친구 이기원이 병실에 찾아와 눈물을 쏟아내며 중얼거렸다. 말도 못하고 걷지 못해도 괜찮다니…. 친구의 말에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산삼을 가져온 사람, 뇌졸중에 특효라는 약초를 가져온 사람, 웅담을 넣은 보드카를 가져온 사람…. 병실에 수많은 약들이 쌓여갔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성이었다.
“하나님, 저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요. 이제 불편한 몸으로 여생을 보내야 하나요? 그러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선교는 계속될 것입니다.”브루나이의 선교사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십단정읍파교회의 봉헌식이 예정돼 있었다.
비록 몸이 불편하지만 선교사와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병실에 누워 있어도 계속 교회의 모습이 떠올랐다.“브루나이로 가겠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나는 브루나이행을 선언했다.
주위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만약 현지에서 다시 한번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정말 치명적이었다. 이요섭 목사님과 아내, 그리고 큰딸 채린이 동행했다. 나는 지팡이를 짚고 여행에 나섰다. 브루나이 반다르세리베가완 공항에서 내려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린 후 다시 배로 갈아타고 십단정읍파교회로 향했다.
현지의 한국인이 우리와 동행하게 됐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채의숭 선생이 누구신가요?”“난데요. 그런데 무슨 일로….”그가 갑자기 거수경례를 했다.“충성. 병장 하정남 인사 올립니다.”
내 기억이 3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갔다. 1996년 나는 소대장으로 근무했고 그는 병장이었다. 그와는 아주 각별한 사이였다. 그는 대기업에 근무하다가 이곳에 체류, 현재 브루나이 한인교회 남선교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동안 선배님의 이름이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지 계속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선배님이 크게 성공하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마침내 오늘 하나님께서 오늘 만나 뵙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정말 놀랍군. 자네가 이렇게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어 있어서 감사하네.”감격적인 해후였다.
우리는 아주 은혜로운 간증을 나누면서 선교여행을 계속했다. 교회까지 가는 길은 매우 험난했다. 물살이 워낙 급해서 배가 자꾸 흔들렸다. 동행한 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아버지,교회를 100개 세우겠다고 하셨지요? 제게는 제발 그런 부담을 주지 마세요. 아버지가 그 목표를 채워주세요. 선교여행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오죽했으면 그런 고백을 했을까. 우리가 여유로운 해외여행을 즐길 것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오지에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항상 위험과 시련이 따른다. 하나님은 병든 몸으로 선교지를 방문한 내게 크고 비밀한 것을 예비해놓으셨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좋은 선물을….
[역경의 열매] 채의숭 (8) 귀국하자 큰딸 회개·병 완치 기적
하나님이 예비하신 크고 비밀한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십단정읍파교회 봉헌식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한 내게 상상하지 못할 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큰딸의 변화에 감사했다.
교회 건축의 부담을 주지 말라던 딸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아버지, 정말 회개합니다. 그때는 선교여행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이보다 보람찬 일이 어디 있나 싶었어요. 이제는 고생이 되더라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갈 것입니다.”아, 얼마나 듣고 싶은 말이었던가. 나는 딸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다. 자녀들이 부모의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은혜였다. 나는 치료를 담당한 경희대 김진규 박사를 찾아갔다.
그는 나의 선교여행을 극구 만류했었다. 그는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나를 아주 면밀하게 진찰했다. 그리고 놀라운 선언을 했다.“채 회장의 병을 하나님이 고쳐주셨어요. 그 어떤 후유증도 없을 것입니다. 아주 완벽해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감사기도를 드렸다.“하나님의 섭리는 어찌 이리도 오묘하신지요. 하나님의 사랑은 어찌 이리도 크신지요. 남은 삶을 통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것입니다.”환자의 치료를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는 의사의 성숙한 인격에 또 감동했다.
김 박사는 지금 장로가 되어 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좋은 의사를 만나게 해주셨다. 그 날 이후부터 14년 동안 먹어오던 혈압약을 완전히 끊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그 약을 먹어본 적이 없다. 목숨을 걸고 선교여행을 다녀온 내게 하나님은 큰 선물로 화답하셨다. 그 은혜가 내게 차고 넘쳤다.
그후 네팔에 다시 카투완 교회를 건축했다. 카트만두에서 16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서너 시간쯤 가야하는 오지에 세워진 교회였다. 우리 일행은 카트만두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공항 사무실에서 출발 여부에 대한 소식이 없었다.
활주로를 보니 몇몇 사람들이 비행기 바퀴를 철사로 꿰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외국인들은 기겁을 했다. 저렇게 위험한 비행기를 어떻게 탈 수 있을까. 몇 사람이 탑승을 거절했다. 우리 일행은 대합실에서 기도를 드렸다.“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줄 믿습니다. 설령 사고가 나서 숨지면 그것은 순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곁에 앉게 되겠지요.”
기도를 마치자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우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경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무사히 카투완 교회에 도착해 감격적인 봉헌예배를 드렸다. 이런 체험들이 우리의 믿음을 한 단계씩 성장시켜 주었다.
선교여행에서 겪은 숱한 역경과 시련들이 삶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나는 모험을 피하지 않는다. 위험을 만나면 회피하지 않는다. 위기를 만나면 오히려 투지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다. 두려운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물 흐르는 대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나는 젊은이들에게 물을 거슬러올라가는 물고기처럼 살라고 충고한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역사 하신다.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지금까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던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영생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된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9) 피지 상공 위기일발 순간 “주님”
선교는 순교다. 오지에 복음을 전하는 일은 숱한 위험을 동반한다. 지난해 ‘피지에서 생긴 일’은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우리 일행은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 처치를 출발해 피지로 향했다. 아름다운 섬나라 피지에 교회를 하나 세울 생각이었다. 피지는 감리교 국가로서 복음화율은 높지만 중생한 크리스천은 그리 많지 않다.
MJ 840편은 피지의 난디공항에 착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철커덕,끼익…”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비행기의 바퀴에 문제가 발생할 때 생기는 소리였다. 이것은 오랜 탑승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하강하던 비행기가 다시 상승했다.
착륙 실패. 비행기는 다시 상공에서 몇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다시 착륙을을 시도했다. 다시 들려오는 굉음.“철커덕,끼익…”비행기가 급상승했다. 그 과정에서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적재함과 바닥의 짐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비행기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울부짖는 사람, 몸을 심하게 떠는 사람, 통곡을 하는 사람, 비명을 지르는 사람…. 극단적인 위험 앞에서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노출됐다. 점잖아 보이던 사람들이 겁에 질려 울부짖었다. 죽음. 그때 떠오른 단어였다.
아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내의 담대한 믿음이 존경스러웠다. 나 역시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감사했다. 여기에서 죽으면 순교 아닌가. 하나님 곁에 갈 텐데 무엇이 두려운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
“제발 진정하십시오. 비행기가 갑자기 돌풍을 만나 흔들리고 있습니다.”기장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점점 더 공포심만 가중시켰다. 다시 기장의 다급한 목소리.“제발 진정하세요. 이 비행기는 급유를 위해 다시 크라이스트 처치로 돌아갈 것입니다.”기장의 목소리도 떨고 있었다.
급유를 위해 처음 출발한 곳으로 돌아간다? 그건 정말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승객들은 이미 바퀴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한 것이었다.
“하나님, 우리의 삶이 이렇게 마감되는 것인가요. 소돔성은 의인 한 명이 없어서 멸망했잖아요. 제 아내를 보세요. 비록 의인은 아닐지라도 평생 의인처럼 살려고 노력했잖아요. 하나님, 삶의 목적과 목표가 있는 사람은 데려가지 않는다면서요. 저는 100개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 목적이 저를 이곳까지 데려왔잖아요.”
비행기는 세 번째 착륙을 시도했다. 난디공항에는 소방차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조치였다. 기체는 엄청난 굉음과 불꽃을 발하며 착륙에 성공했다. 승객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때 바로 옆에 앉은 한 외국인이 우리 부부에게 물었다.“당신들은 왜 그리 평안한 모습이었는가. 두렵지 않았는가.”“우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산다. 죽으면 영원한 고향으로 가는 것이다. 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한다. 우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아무 것도 없다.”그는 내 말을 듣고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행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10) 사업 축복은 선교사명 다 하라는 뜻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생생하게 일어나고 있다. 기적이 없다고? 그렇게 믿는 사람은 선교의 현장에 한번 가 보라.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국내도 급한데, 해외선교가 과연 필요하냐고? 선교현장을 가 보면 내 소유를 모두 털어주고 싶은 생각이 솟구친다. 내가 왜 사업을 하는가? 그 해답을 선교현장에서 얻는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시키기 위해 사업의 복을 주셨다. 내가 준비하고 추진하는 사업들이 대부분 성공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IMF 때도 수출이 줄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다.
기도의 지원병을 많이 가진 것도 남들이 갖지 못한 자산이다. 아내는 나보다 더 열심히 기도한다. 기도하는 아내를 만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좋은 배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1967년 결혼했다. 그때부터 40년 동안 단 한번도 부부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사실이다. 싸울 일이 없다. 사람들은 우리 부부에게 묻는다.
“40년 동안 부부싸움을 한번도 안 했다고요?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부부싸움을 안한 것이 오히려 문제 아닌가요?”나는 아내를 하나님의 지체로 생각한다. 한번도 가볍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부금실의 해법은 골로새서 3장 23절에 담겨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부부화합의 비결이 여기에 있다. 부부가 서로 주께 하듯 하면 왜 싸우겠는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주께 하듯 하면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
성경은 삶의 지혜를 담은 보고(寶庫)다.우리 부부의 결혼도 아주 극적이었다. 나는 젊은 시절에 이성교제를 해보지 못했다. 인생의 3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의 성취를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성교제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화여대 약학대를 졸업한 아내와 첫선을 보게 됐다. 그녀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장인은 교회를 개척하고 사회사업에 열정을 쏟으신 신실한 장로였다. 장모는 기도하는 권사였다.
우리는 딱 한번 선을 보고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를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로 여긴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양가가 모두 신앙의 가정이기 때문에 다툴 일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부모님의 기도지원을 받았지만, 결혼한 후에는 처가의 기도지원까지 받으니 만사가 어찌 순조롭지 않겠는가. 사업이 번창한 것도 바로 이런 기도 덕분이다.
또 가정이 평안하기 때문에 사업도 잘 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어머니와 장모님의 새벽기도가 우리를 지켜주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결혼방법까지 닮는 것일까. 큰딸이 딱 한번 선을 보고 결혼하더니, 아들도 딱 한번 선을 보고 결혼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금실 좋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상의 교육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은 항상 사랑이 넘친다. 매사에 긍정적이다. 자신이 먼저 희생한다.
그러나 불화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매사에 부정적이다. 또 이기적이다. 크리스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습관을 심어줄 의무가 있다. 철저한 신앙교육을 시키고,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11) 공장 화재에 날마다 하나님 원망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이 말씀은 화합의 비결을 보여준다.
부부·자녀·회사원·친구간에도 이 말씀을 실천하면 화합을 경험하게 된다. 내 자동차는 33년째 한 사람이 운전하고 있다. 운전기사는 원래 타종교를 믿는 사람이었다. 난 그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신앙을 갖게 됐다. 지금은 온 가족이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이순이 된 그가 며칠 전 내게 이런 고백을 했다.“회장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요, 기쁨입니다. 33년 간 회장님을 모시면서 우리 가족 모두가 크리스천이 됐어요.”정말 감사한 고백이었다.
화합의 분위기는 곧 생산성 향상과 고품질로 연결된다. 우리 회사는 아주 섬세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여간 정성이 필요한 게 아니다. 사원들의 마음이 편치 않으면 그것이 그대로 제품 제작 과정에 연결될 수 있다.
더구나 우리는 제품의 90% 이상을 수출하기 때문에 신용을 잃으면 더욱 치명적이다.1991년 여름. 회사는 수재의 아픔을 딛고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나는 땅값이 인천보다 저렴한 천안에 부지를 마련하고 제2의 도약을 선포했다.
일단 1개 동을 지어놓고 두 번째 동을 거의 지어나갔다. 이제 등기가 끝나면 보험에 가입할 생각이었다. 그날, 전국에 태풍이 몰아쳤다. 그때 천안공장의 직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회장님. 공장에 불이 났어요. 소방차가 왔지만 강풍 때문에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요. 이렇게 무서운 바람은 처음입니다.”낙망이었다.
나는 이 공장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너무 많은 투자를 한 것이다. 텔레비전의 9시 뉴스에 불바다로 변한 공장의 모습이 그대로 비쳐졌다. 천안 지역 소방차 28대가 모두 동원됐으나 불길을 잡지 못했다. 결국 평택 미군부대의 화학차가 합류해 겨우 진화할 수 있었다.
절망…. 건물의 쇠기둥이 엿가락처럼 녹아버렸다. 단 하나의 물건도 건질 수 없었다. 수재를 당했을 때보다 더 비참했다. 설상가상 보험도 들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일어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나님, 왜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수재로 첫 번째 역경을 주시더니 이제 불입니까. 제게 죄가 그리 많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주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건 정말 너무 하십니다.”
하나님께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그런 원망의 기도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새까만 잿더미로 변한 공장 두 동. 그것은 내 꿈과 희망, 비전의 사체들이었다. 그 날 저녁. 몸과 마음은 계속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때 퍼뜩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은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이었다.“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무릎의 관절을 꺾었다.
잠시 하나님을 원망한 죄를 회개했다.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기도했다.“주여, 저는 참으로 믿음이 나약한 사람입니다. 이런 제가 어떻게 장로라고 할 수 있나요. 하나님을 원망한 저를 용서하옵소서.”
[역경의 열매] 채의숭 (12) 회개 기도 후 ‘회생 기적’ 체험
기도를 드리고 나자 속이 후련해졌다. 나는 잠시 화재 사건을 잊고 있었다. 하나님과의 깊은 기도에 몰입하느라 잊은 것이다. 역경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한 나약한 모습에 스스로 실망했다. 하늘을 앙망하지 못하고 원망한 것을 회개했다.
시선의 높이에 따라 인간의 운명은 결정된다. 시선을 하늘에 두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다.“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시 121;1)
거의 전 재산을 투자해 건립한 회사가 전소되는 아픔 속에서 오직 기도만이 위안이었다. 이제 다시 일어서면 된다. 하나님께서 내게 크고 비밀한 것을 또 보여주실 것이다.
달리다굼! 믿음이 약한 자여,일어나라. 걸으라. 나는 마음 속으로 조용히 한 단어를 읊조렸다.“다베라.”
애굽을 떠나 광야에 나온 6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향하여 끊임없이 불만을 터뜨린다. 그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마른 초지를 태운다. 사나운 불이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포위했다. 모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린다. 그제서야 가까스로 불길이 잡힌다. 모세는 이 불길을 다베라,즉 ‘하나님의 불길’이라고 불렀다. 이 이야기는 민수기 11장에 등장한다.
이번 화재 사건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그 뜻을 묻지 않고 불만을 터뜨린 죄를 모두 털어놓았다. 일단 화재는 진압됐다. 문제는 채무였다. 채권자는 총 32명. 그들이 한꺼번에 부채 상환을 요구하면 곧바로 부도로 연결된다. 나는 여관에 묵으면서 채권자 32명을 10분 간격으로 모두 만났다. 부채를 상환할 능력은 아예 없었다. 모든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1년만 참아다오. 1년 후에 반드시 갚을 것이다. 지금은 상환이 불가능하다. 나를 믿어다오.”그런데 참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채권자 32명 모두가 동일한 답변을 하는 것이었다.
“교회 장로인 당신을 믿는다. 당신은 지금까지 약속을 정말 잘 지켜주었다. 이번에도 약속을 지켜줄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리겠다. 꼭 재기하기 바란다.”눈물이 핑 돌았다. 고마운 사람들…. 무얼 믿고 나를 돕는단 말인가. 이것은 정말 기적이었다. 아니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다.
이 사회가 매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원료회사는 1억원의 어음을 끊어주었다. 거래은행은 3억원의 추가 대출을 허락해주었다. 무엇을 믿고 불타버린 회사에 대해 대출을 해준단 말인가. 그것은 상식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크리스천’이며 ‘장로’라는 사실을 최고의 신용으로 평가했다.
대인관계의 황금률은 “주께 하듯 하라”는 성경 말씀이다. 결국 이 말씀이 나를 부도 위기에서 구해준 것이다. 1년 후. 나는 모든 부채를 처리했다. 그리고 그곳에 8000평의 견고한 회사를 세웠다. 정말 감격적인 완공식이었다. 회사 이름을 MGS로 정하고 명패를 달았다.
MGS에는 나의 간증이 담겨 있다. 화재를 극복하고 승리하게 해주신 하나님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다.“MGS(My Great Shepherd·나의 위대하신 목자여)”MGS라는 글씨를 보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뛴다. 이보다 더 좋은 회사 이름이 또 어디 있을까.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신다. 이런 감동과 사랑이 깃 든 회사이니 만큼 지금까지 잘 운영되고 있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13) 예수 믿어 ‘3대―3형제 장로’ 축복
경영은 감동이다. 감동의 주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비즈니스는 곧 사람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곧 비즈니스다. 성경은 성공적인 비즈니스의 원리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주께 하듯 하면 분쟁이 없다. 주께 하듯 하면 부실함이 없다. 주께 하듯 하면 평강과 희락이 있다.
나는 참 축복 받은 사람이다. 3대가 장로요, 3형제가 모두 장로인 것이 어찌 축복이 아니랴. 자녀들이 신앙 안에서 잘 성장해 장로가 되면 4대가 장로인 셈이다. 사업과 가정, 대인관계에서 비교적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골로새서 3장 23절의 힘이다.
또 어머니로부터 교육받은 3대 삶의 원리를 실천한 덕분이다.“
첫째,주일을 성수하라. 반드시 본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예배당 앞자리에 앉아라.
둘째,십일조를 철저히 하라.
셋째,주의 종에게 순종하라.”이것이 복 받는 삶의 비결이었다.
사업을 하다보면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고 함께 운동할 기회가 많다. 나는 골프를 참 좋아한다. 그러나 주일은 절대 필드에 나가지 않는다.
젊은 시절, 주일예배를 마치고 가끔 운동을 나간 적이 있다. 운동 약속을 해놓으면 주일예배를 건성으로 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아예 주일 골프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예배보다 더한 기쁨은 없기 때문이다.
예배는 격식이 아니라 그것에 흠뻑 젖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36세에 장로가 됐다. 장로 장립을 거절했더니 내가 해외에 출장 나갔을 때 교인들이 투표를 해서 선출해 놓았다.
목사님께 내 입장을 설명 드렸다.“장로 직분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는 아직 어립니다.”목사님은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다.“그러면 다시 투표를 해야 합니다. 장립 무효를 선언하는 투표 말입니다.
나와 교인들의 뜻이니 순종하고 받아들이십시오.”결국 젊은 나이에 장로가 됐다. 장로가 되고 나서 좋은 일이 참 많았다. 예수 믿어 복 받는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기복신앙이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어쩌랴. 예수를 믿으면 정말 좋은 일이 많은 것을. 장로가 된 후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기쁨을 누렸다.
한번은 양평의 한 유명한 해장국집에서 일행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주인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혹시 장로님 아니신가요?” “맞는데요. 어떻게 아셨나요?”주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장사를 오래 하다보니 인상만 봐도 그 사람의 직업과 인품을 알 수 있어요. 우리도 예수를 믿는 가정입니다.”
주인은 내 음식값을 극구 사양했다. 서울 성북동의 한 팥칼국수집 주인도 대뜸 내게 장로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음식값을 받지 않겠단다. 아내와 함께 포천의 어느 갈비집에 갔는데 주인이 말을 붙여왔다.“장로님 맞으시죠?” “아, 그런데요.” “얼굴에 그렇게 씌어 있어요. 오늘은 제가 대접을 하겠습니다.”
그 주인도 음식값을 받지 않겠단다. 옆에 있던 아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여보, 참 이상해요. 나도 장로인데 왜 사람들은 당신만 보면 대뜸 장로냐고 묻지요?”“예수를 믿어 좋은 일이 어디 한두 가지요? 신앙생활을 수 십년 했으면 얼굴에서 예수쟁이 표시가 나는 게 정상 아니오.”
[역경의 열매] 채의숭 (14) 온천에서 목사님과 찬송 큰 감동
나는 예수님이 참 좋다. 신앙을 갖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하다.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것이 감격스럽다. 남자 나이 마흔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예수쟁이 10년차쯤 되면 삶을 통해 예수냄새가 나야 한다.
참기름집 주인은 아무리 씻어도 몸에서 참기름 냄새가 난다. 생선집 주인의 몸에서는 항상 생선 냄새가 난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서 예수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이건 좀 문제라고 생각한다.
서울 강남의 한 유명한 목사님이 자동차를 몰고 주유소에 갔단다. 주유소 직원이 목사님을 보고 “사장님, 어서오십시오”하더란다. 그때 목사님은 회개를 했단다. “내가 30년 넘게 목회를 해왔는데 사람들이 아직도 나를 회사 사장으로 본다면 그것은 문제다.”
목사님은 그 날 많이 슬펐다는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가장 좋아한다. 이 찬송을 좋아하게 된 것은 사연이 있다.
30년 전, 미국 뉴욕에 출장을 갔을 때 일이다. 밤늦은 시간에 호텔에서 텔레비전을 켰다. 그때 나는 매우 지쳐 있었다. 한 흑인이 클라리넷으로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를 연주하는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흑인의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감사와 감격의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절절히 묻어났다.
그 모습 자체가 내겐 큰 은혜였다. 내 눈에서도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그날 이후, 이 찬송을 부를 때면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던 흑인의 모습이 떠오른다.“나 같은 죄인 살리신/주 은혜 놀라와/잃었던 생명 찾았고/광명을 얻었네/이제껏 내가 산 것도/주님의 은혜라/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
언제 불러도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오는 감동의 찬송이다. 2001년 여름 어느 월요일. 선교여행을 마치고 양평의 한 온천에서 쉬고 있었다. 선교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생각나서 허밍으로 찬송가 405장을 부르고 있었다. 점점 마음이 뜨거워졌고 3절을 부를 때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만 욕조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런데 목욕탕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찬송을 합창하는 것이었다. 20여명의 장정들이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두 손을 들고 멋진 화음을 연출해냈다.“아, 이곳이 바로 천국이구나.”감동적인 목욕탕 콘서트였다.
내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 무슨 망신인가. 벌거벗은 몸으로 찬송이라니…. 저 사람들은 어떻게 이 찬송을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큰 실수를 했군요. 어떻게 이 찬송을 아십니까.”
“우리들은 목사입니다. 우리도 그 찬송에 큰 은혜를 받았어요.”그분들은 목사님들이었다.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올라오는 길에 온천에 들른 것이었다. 목욕탕 안에서 머리가 하얀 사람이 혼자 찬송을 부르는 것을 보고 합세한 것이었다.
예수를 믿으면 종종 이런 감동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신분과 명예, 나이를 초월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임을 체험한 사건이었다. 예수를 믿으면 감동이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고, 좋은 만남이 있다. 삶의 흥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예수에 한번 빠져보시오’라고 권하고 싶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내게 차고 넘친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15) 몽골 미명속 감동의 기도
2000년 추석. 우린 어김없이 해외선교에 나섰다. 이번에 교회를 세울 나라는 몽골. 화양감리교회 선교부 총무인 박영주·허준례 권사 부부가 동행해주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울란바토르에서 자동차로 13시간을 달렸다. 준비해온 김밥은 말라 비틀어졌고, 얼굴은 온통 먼지를 뒤집어썼다. 휴게소나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길에서 대소변을 해결했다. 우리는 그것을 ‘별보러 간다’고 표현했다.
교회에 도착한 시각은 밤 8시. 모두 지칠 대로 지쳤다. 고생을 많이 할수록 은혜도 넘친다. 저녁식사는 어김없는 양고기. 여행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겐 멋진 식사였다. 처음 여행길에 나선 박영주·허준례 권사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힘겨워했다.
선교여행이 조금은 느슨할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선교현장은 곧 고생의 현장이다. 우린 잠시 그곳을 방문할 뿐이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그곳을 삶의 현장으로 삼고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힘겨운 것을 내색할 수가 없다.
이튿날 새벽. 일행은 야트막한 동산에 올라가 새벽기도를 드렸다. 통나무 위에서 펼쳐진 멋진 기도회. 그리고 하늘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몽골의 미명. 그것은 하나님이 만들어낸 최고의 풍경화였다. 우리는 환상적인 풍광에 탄성을 올렸다. 어둠을 덮고 잠들었던 자연들이 부시시 눈을 떠, 그들의 얼굴을 드러냈을 때, 우리는 감동했다.
몽골의 미명이 이토록 황홀할 줄은 미처 몰랐다. 누군가가 찬송가 78장을 불렀다.“참 아름다와라/주님의 세계는/저 솔로몬의 옷보다/더 고운 백합화/주 찬송하는 듯/저 맑은 새소리/내 아버지의 지으신/그 솜씨 깊도다”
온갖 꽃들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 보랏빛 야생화였다. 꽃은 작을수록 아름답다. 저 작은 꽃이 어쩌면 저리도 고운 색을 품었을까. 허준례 권사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다.
그때 남편 박영주 권사가 보라색 야생화로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 허 권사에게 내밀었다.“여보, 당신에게 난생 처음 꽃다발을 선물하는구려. 나와 함께 살아줘서 고맙소. 그리고 사랑하오.”
허 권사는 꽃다발을 받아들고 감격해서 눈물을 글썽였다.“고마워요. 오늘 일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그 부부의 사랑고백에 모두 감동했다.
몽골의 미명은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 부부에게는 일생 중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새벽이었다. 우리는 몽골에 교회를 건축하는 보람과 함께 한 부부의 사랑이 회복되는 기쁨까지 누렸다.
선교여행을 마치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항공회사 직원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목사님이시죠?”“장로인데요. 그런데 왜 물으십니까?”그가 조용히 말했다.“일행 8명 중 목사님과 장로님은 비즈니스석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그것은 불공평합니다. 나머지 6명도 곧 장로가 될 사람이니, 기왕 바꿔주려면 모두 바꿔주시오.”
항공사 직원은 일행 모두에게 비즈니스석을 선물했다. 우린 크게 기뻐하면서 비행기에 탑승했다. ‘몽골에서 고생이 많았다고 하나님이 특별선물을 주신 것이야. 당당하게 받아들이자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로부터 1년 후. 허 권사는 갑자기 하나님 품에 안겼다. 남편에게 받았던 보랏빛 야생화의 사랑을 안고…. 몽골의 청징한 하늘 아래서 기도했던 아름다운 추억을 품고…. 아내를 잃은 박 권사는 내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혔다.“장로님,감사합니다. 몽골여행이 우리 부부의 첫 해외여행이었어요. 그리고 야생화 꽃다발은 아내를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사랑의 표시가 될 줄은 미처 몰랐어요. 그래서 아내에게 조금은 덜 미안하답니다. 회한이 없어요. 그것마저 없었다면 아마 너무 미안했을 것입니다.”
선교여행은 보람과 함께 아름다운 뒷얘기를 남긴다. 그래서 이 일을 멈출 수 없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16) 부도위기속 저축해약 추수감사 헌금
철광석은 용광로에 들어가 불순물이 제거된 후 순수한 철만 정제된다. 하나님은 가끔 역경이라는 이름의 용광로를 준비하신다.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는 항상 정금 같은 선물을 준비하신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2001년,내게 닥친 시련의 용광로는 너무 뜨거웠다. 대우그룹의 부도는 우리에게 치명적이었다. 당시 200개 협력업체 중 53개사가 부도를 냈다.
대우가 우리에게 결제해줄 돈은 119억원 ,우리가 발행한 어음은 89억원이었다. 돈은 한푼도 받지 못한 채 어음을 막는데 급급했다. 은행과 보증기금에서 특별융자를 받아 하루 하루를 연명했다.
집에 있던 반지 목걸이 보석 등 돈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내다 팔았다. 사업가의 아내는 항상 불안한 법이다. 아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모든 패물을 내놓았다.“고마운 사람, 당신의 사랑 때문에라도 반드시 지금의 고난을 극복할 것이오. 그리고 훗날 이 힘겨운 날들을 은혜롭게 간증할 것이오.”
가난한 집에 손님이 찾아오거나 행사가 많으면 안주인은 괴로운 법이다. 대접할 음식이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나도 그 말을 처음으로 절감했다. 그 위기의 시간에 추수감사절이 다가온 것이다. 가진 것이 없는데 무엇을 드려야 하나. 지금은 빈 손인데….
추수감사주일을 하루 앞두고 아내가 장롱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주택청약통장, 그것은 정말 비장의 카드였다. 아내가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것이었다.“여보, 이 통장을 해약해서 추수감사 헌금으로 바칩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내의 말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묘안도 없었다. 아내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내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여보, 어차피 모든 것의 소유자는 하나님이시잖아요. 나중에 더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 것이니 미련없이 바칩시다.”
과연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하나님의 딸이었다. 우리는 은행에 가서 통장을 해약했다. 은행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아니, 왜 이것을 해약하십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큰 돈이 될 텐데요.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그럴 일이 있어요. 아주 중요한 곳에 사용할 것입니다.”
우리는 청약통장을 해약한 돈으로 추수감사절 헌금을 정성껏 드렸다. 그 해 추수감사절은 내게 큰 은혜가 됐다. 나는 신앙은 현재형이라고 생각한다.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 나중은 약속어음일 뿐이다. 과거는 부도수표와 같다.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중에 사업이 좀 잘 풀리면? 이것은 인간적인 생각이다. 2001년의 추수감사절은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바로 지금 감사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통장을 해약해 추수감사 헌금을 드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하나님은 훤히 알고 계셨으리라.
나는 성경을 믿는다. 사업의 원리, 대인관계의 원칙, 교육의 방식도 모두 성경에서 배웠다. 우리의 통장 헌금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됐음을 믿는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30배나 60배나 100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막 4:20).
통장 헌금을 드린 후 엄청난 사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역경의 열매] 채의숭 (17) 청약통장 깨 헌금했더니 기적이…
옥토에 떨어진 씨앗이 30,60,10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은 300, 600, 1000배의 수확을 주시기도 한다. 고작 30배인가. 겨우 100배인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 숫자의 의미를 안다.
30이 때로는 300이 되고,3000이 될 수도 있음을….
주택청약통장을 해약한 돈으로 선뜻 추수감사헌금을 드렸다. 그리고 그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회사 상황은 워낙 급박하게 돌아갔다. 부도를 막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부도난 회사로부터 일부 자금이 회수되기 시작했고, 어음도 무리 없이 해결됐다. 누군가가 말했다. 위기는 곧 위험한 기회라고. 회사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을 찾아갔다.
특히 외국 자동차 회사들로부터 주문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주문이 쏟아졌다. 직원을 더 채용하고 생산라인도 확장했다. 공장을 24시간 동안 풀 가동해야 겨우 주문을 감당할 수 있었다.
도대체 이것이 어찌된 영문인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주택청약통장을 해약해 추수감사헌금을 드렸더니, 상상도 못할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기복신앙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인 걸 어쩌랴. 우리 제품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2001년 추수감사절이 지난 후 외국의 자동차 회사들이 품질을 확실하게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항상 우리의 방법과 지식과 상상을 초월한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주문을 감당하느라 모두 정신이 없었다. 우리 제품은 지금도 90% 이상을 외국으로 수출한다. 외국기업들은 한번 계약을 체결하면 보통 5년 동안은 거래를 계속한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5년 동안 먹을 곡식을 준비하신 것이다."
하나님, 바로 이것이었군요.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저희 부부를 시험하셨군요. 자금줄을 꽁꽁 묶으신 다음, 추수감사절을 지내게 하시고, 장롱 속 통장을 꺼내게 하셨군요. 그리고 순종하는 우리 부부에게 이렇게 물 붓듯 물질의 복을 주시는군요."
우리 부부는 감사와 감격의 기도를 드렸다. 수출은 상상 못할 정도로 증가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승법(乘法)'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린 추수감사 헌금의 1000배 이상으로 축복해 주셨다.
어느 날,우리 부부가 이런 대화를 나눴다."여보. 마가복음 4장20절 말씀은 참으로 옳아.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30, 60, 100배가 아니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야."
"맞아요. 기도의 응답이 이렇게 빠르고 놀라울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이듬해에는 사업이 너무 커져서 할 수 없이 회사를 하나 더 세웠다. 지금은 6개의 회사로 늘어났다. 모두 나름대로 독립해서 잘 운영되고 있다. 이제 남은 삶 동안 회사 6개를 더 세우려 한다. 그래서 G12그룹을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G12란 곧 예수님의 12제자를 일컫는 것이다. 12개의 회사가 예수님의 제자 같은 회사가 되어 세계 곳곳에 교회를 세운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화재로 전소된 터전 위에 MGS(My Great Shepherd,나의 위대한 목자)란 회사를 세웠듯이, 역경의 파도를 넘은 회사들마다 간절한 신앙고백이 깃들기를 바란다.
기도는 최고의 자산이다. 내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화양감리교회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서로 손을 잡고 기도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가족의 기도, 교인들의 기도, 어머니의 기도, 목사님의 기도…. 이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 기도의 지원병을 가진 사람은 항상 희망이 있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18) “100개 교회 개척” 평생 소명으로
기독교인의 삶은 심플해야 한다. 신앙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사탄은 우리의 관심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킨다. 그래서 정신없이 바쁘게 만든다. 그러면 어느 것 하나에도 성실할 수가 없다.
맹수 조련사들은 사자나 호랑이를 훈련시킬 때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사용한다. 왜? 의자를 맹수의 눈앞에 들이대면 의자의 네 다리에 신경을 쓰게 된다. 맹수는 신경작용의 분화로 인해 곧 무력해진다.
사탄은 맹수 조련사가 사자를 훈련시키듯 크리스천들에게 많은 호기심과 과중한 일을 맡겨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삶의 철학이다.
내 삶은 트라이앵글의 세 꼭짓점을 연상시킨다. 회사와 가정과 교회를 삼각형의 세 꼭짓점으로 삼고 그 위를 끊임없이 움직였다. 아주 단순한 동선(動線)인 셈이다.
그리고 나의 3대 인생목표 중 아직도 성취하지 못한 100개 교회 개척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설날도 어김없이 해외선교에 나설 것이다. 17년째 명절 선교여행인 셈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내게는 최고의 보람이다.1995년. 네팔 선교여행은 매우 많은 추억을 남겼다. 네팔의 키투완 교회를 건축한 일은 잊을 수 없다.
우리는 고장난 자동차의 문짝을 잡고 천길 낭떠러지 길을 수없이 넘고 또 넘었다. 조금만 삐끗하면 아스라한 골짜기로 추락할 상황이었다. 나는 덜컹거리는 문짝을 붙잡고 계속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제가 이곳에서 죽으면 하늘에서 받아주시겠지요. 선교하다가 죽으면 그것이 바로 순교가 아닙니까. 그러나 성취할 목적이 있는 사람, 사명이 있는 사람은 섣불리 데려가시지 않는다면서요? 저희들의 안전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를 세울 수가 있잖아요.”
공포에 떨면서 기도를 드렸다. 기도하고 나면 마음 속에 평강과 희락의 비둘기가 내려앉았다. 우리는 힘차게 찬송을 부르며 진군을 계속했다. 그리고 키투완 교회 준공예배를 드렸다.
고생이 심하면 심할수록 은혜와 감동도 그만큼 컸다. 네팔에서 돌아오는 길에 캄보디아 선교정탐에 나섰다. 동행한 목사님은 캄보디아 방문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었다. 150만명을 학살한 잔혹한 현장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목사님을 설득해 기어이 캄보디아를 찾았다. 물론 킬링필드 등 비극의 현장을 모두 돌아보았다. 그런데 캄보디아의 김인순 선교사가 대뜸 우리를 찾아와 읍소하는 것이었다.“
장로님, 우리는 지금 교회와 학교를 건축하고 있어요. 그런데 땅값과 건축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요. 장로님께서 좀 도와주세요.”참으로 난감한 노릇이었다. 우리 수중에는 겨우 500달러 정도뿐이었다. 이것이 교회 건축에 도움이 된다면 좋으련만….“
김 선교사님, 지금은 수중에 돈이 없어요. 한국에 돌아가서 좀 생각해보겠습니다.”그러나 김 선교사는 막무가내였다.“그때는 이미 늦어요. 지금 당장 필요합니다.”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 날 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선교기금이 마련됐다.
그 돈을 선교사님께 모두 드려 마을 동산에 ‘언덕위의 교회’를 세웠다. 1층은 학교, 2층은 교회로 사용됐다. 이듬해 이곳에 대홍수가 발생해 주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마을이 온통 침수된 것이다. 주민 대부분이 지대가 높은 교회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교회를 찾은 사람들은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그때부터 이 교회는 ‘노아의 방주’로 불리고 있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19) 잘 나가던 회사에 갑자기 먹구름
호사다마(好事多魔). 2006년 내 삶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다. 1년 동안 해외에 5개 교회를 개척했다. 그 교회들은 나름대로 풍성한 선교의 열매를 맺고 있었다. 오랜 기도 제목인 교회 기도원도 건축됐다.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룬 한 해였다.
나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화양감리교회에 출석했다. 중·고등부와 청년부도 내가 처음 만들었다. 장년이 된 후로는 주로 재정과 선교에 관련한 직분을 맡았다. 46년째 한 교회를 섬기는 것도 어머니의 가르침에 영향 받은 바가 크다.“
모교회를 잘 섬겨야 복을 받는다. 주일은 반드시 모교회에서 예배를 드려라.”전국 각지에 출장을 다니면서도 주일은 어김없이 한 교회를 섬겼다. 이것이 바로 놀라운 축복이었다.
한 교회에 오래 충성하다보니 교회가 바로 가정 같은 생각이 들었다. 교회는 삶의 터전이요 영적 운동장이었다. 어린 시절, 교회 앞마당에서 뛰놀며 꿈과 비전을 품었듯 내 자녀들도 이 교회에서 꿈과 소망을 품기를 소원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됐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청소년들은 성경적인 지식보다는 신앙적인 분위기에 훨씬 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젊은 부부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교회에서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라. 그것이 최상의 신앙교육이다.”
그동안 네 분의 목사님을 모셨다. 하나님은 꼭 필요한 때, 꼭 필요한 종을 보내주셨다. 그런데 교회 기도원을 마련하지 못해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토록 간절히 염원했던 알파하우스가 완공된 것은 최고의 기쁨이었다.
사업도 탄탄대로였다. 중국 선양에 5000평 규모의 공장을 세웠고 2개 건물을 더 건축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풍에 돛을 단듯 순조로운 데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기도를 드릴 때마다 일말의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이었다.
“교회나 기도원을 지으면 사탄도 그 옆에 자신들의 진지를 구축한다는데 절대 시험에 들지 말아야지. 기도로 단단히 무장해야지.”
교회나 기도원을 짓다가 실족해 교회가 분열되고 목회자와 교인들이 상처를 입는 경우를 몇 번 보았다. 교회나 기도원은 돈으로 짓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기도로 지어야 한다. 그러잖으면 나중에 꼭 시험을 당하게 된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언행에 각별히 유의했다. 좋은 일이 많으면 반드시 궂은 일도 따라오게 마련이다. 사탄은 사람의 교만한 마음을 교묘하게 파고든다.“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탄은 나의 아킬레스건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회사였다. 외국 기업들로부터 많은 물량을 주문 받아 활발하게 운영되던 회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평소 아무런 하자가 없던 생산라인에 문제가 발생했다. 가동되던 기계들이 연달아 경고음을 냈고 작동이 중단됐다. 어떤 날은 하루에 11회나 기계가 멈춰섰다. 이쯤 되면 거의 생산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었다. 더욱 답답한 것은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거의 불량품이 없었다. 그런데 한꺼번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자동차 회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제품을 함부로 수출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신용과 제품을 모두 잃을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도대체 원인이 뭐란 말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역경의 열매] 채의숭 (20) 눈물로 기도후 한줄기 서광이…
한계상황이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벽에 이르렀다. 이 절망의 벽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두려웠다. 생산라인이 언제 멈출지 모른다. 규격에서 약간씩 벗어난 제품을 바라보는 것은 여간 큰 고통이 아니었다.
자동차 부품에 이상이 생겨 사고라도 발생한다면 그것은 죄악이었다. 생산라인을 아무리 점검해보아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외국 회사들로부터 주문 받은 물량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이르렀다. 지금껏 사업을 하면서 이번처럼 답답한 적은 없었다.
수재나 화재를 당했을 때도 지금처럼 막막하지는 않았다. 외국에서는 납품 독촉이 빗발쳤다.“왜 아직도 부품이 도착하지 않는가. 당신들 때문에 자동차 조립을 못하고 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2006년 6월16일. 공교롭게도 ‘6’이라는 숫자가 세 번 들어간 바로 그 날부터 기계결함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3개월 동안 불면의 세월을 보냈다.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신뢰를 잃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사업을 시작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아니 두려웠다.“하나님,이제 완전히 항복합니다. 다 끝났어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2006년 9월15일. 완전한 절망을 선포한 날이다. 나는 출근을 포기했다. 이제 중요한 결단을 내릴 일만 남아 있었다. 사태를 방치하면 다른 회사도 붕괴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여보,왜 출근하지 않으세요?”아내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었다.“다 끝났어요. 회사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아요. 도무지 방법이 없어요. 완전히 백기를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기도원에 가서 실컷 기도나 하고 올 생각입니다.”
아내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따라나섰다.“당신 혼자 가면 안돼요. 내가 곁에서 함께 기도해줄게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보자고요. 이제 다른 방도가 없잖아요.”아내와 함께 기도원에 올랐다. 기도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급하게 오느라 기도원 열쇠도 가져오지 못했다.
우리는 기도원 현관 앞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사업을 하면서 지금처럼 외롭고 막막한 적은 없었다. 갑자기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하나님, 제가 완전히 백기를 들었잖아요. 그런데 더 이상 또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 사업은 완전히 끝이 났어요. 100개 교회를 세우겠다는 꿈도 위기에 처했습니다.”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울부짖었다.
나는 원래 이런 식의 기도를 드린 적이 없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그리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다. 감상적인 신앙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꺼이꺼이 울면서 기도하는 것은 내 본연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신 차려라. 침착해라. 값싼 감상주의에서 깨어나라. 정신은 맑은데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그때 마음 속에서 커다란 울림 하나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나는 네가 이곳에 돌아올 줄 알았다. 이제부터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염려하지 말라.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성경 말씀 한 구절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 말씀 때문에 나는 정신을 수습했다. 그리고 비로소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다. 내 인생의 보석 같은 그 말씀….
[역경의 열매] 채의숭 (21) 난제 풀어낸 열쇠, 뜨거운 기도
절박한 상황에서 문득 떠오른 성구. 그것이 나의 신앙고백이 되어 마음 속에서 공명을 일으켰다. 포도송이처럼 달콤한 말씀은 시편 23편 4절이었다.“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마음 속에 한 줄기 빛이 쏟아졌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걱정인가. 내가 과연 장로가 맞는가. 왜 기도원에 올라 기도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아내와 손을 잡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2006년 9월15일. 기도를 마치고 하산했다. 마음이 평안했다. 주시는 분도 여호와시오, 거두시는 분도 여호와시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길 뿐이다. 내 능력과 의지와 계획을 모두 그분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입에서 찬송이 흘러나왔다.
“회장님, 방금 기계의 결함을 찾아냈습니다. 강도를 잘못 맞추었어요. 왜 이걸 진작 찾아내지 못했는지….”기도원에서 내려오는 길에 공장장의 전화를 받았다. 기도원에서 눈물의 기도를 드린 바로 그 순간, 기계의 작동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기적이라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에게 우연은 없다. 기적도 없다. 기도 응답이다. 하나님은 백기를 든 사람에게 난제를 푸는 열쇠를 주신다.
먼저 마음 속에서 교만과 자만, 욕심을 비워내야 한다. 우리 직원들은 그동안 국내는 물론 영국 벨기에 등 전 세계를 돌며 결함이 있는 부품들을 수거해왔다. 그 비용과 시간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날부터 단 하나의 불량품도 발생하지 않았다.
외국 기업에서 주문한 물량을 모두 소화했다. 그런데 아직도 미스터리 하나가 남아 있다. 원래 기계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는데 한 중년 신사가 찾아와 기계 작동법을 지도해주었다. 바로 그 날부터 불량품이 쏟아진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이제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 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궂은 일도 있는 법이다.“사탄은 좋은 일이 일어나는 바로 그 옆에 그들의 진지를 구축한다.”나는 이 말을 믿는다. 그래서 성경은 넘어질까 유의하라고 경고한다.
내가 만약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고 계속 인간적인 지혜만 동원했다면 회사는 무너졌을 것이다. 사탄은 기도원 건축위원장인 나를 타깃으로 삼고 약점을 찾다가 기업을 공격한 것이다.
자동차 1대의 부품 수는 약 2만개다. 그 중 기능성 부품 하나에 결함이 생겨도 사고로 이어진다. 우리는 그것이 두려웠다. 이유 없는 역경은 없다. 인생의 위기를 만날 때는 기도해야 한다. 아내의 기도가 내게는 최고의 자산이었다. 나는 기도의 위력을 믿는다.
지엠(GM)은 대우를 인수한 후 매그너그룹을 설립했다. 내가 매그너그룹의 대표와 협상한 일은 지금도 중소기업인들 사이에 무용담으로 회자되고 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미국 출장 길에 올랐다. 그들은 기술제휴 조건으로 로열티 사용료 350만달러,IP(자동차 계기판) 기술개발비 650만달러를 요구했다.
1000만달러는 너무 부담스러운 액수였다.“사랑하는 사람이 가난하다고 해서 쉽게 헤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의 전통이다. 우리는 기술개발비를 지원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상호 신뢰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셋방살이도 행복한 법이다.”
내가 담판을 벌이는 동안 아내는 호텔 방에서 통성기도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다. 나는 기본적인 것만 합의하고 한푼의 돈도 지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무섭게 기도를 드렸다.“지혜의 하나님, 우리가 먼저 기술을 개발하게 해주십시오.”그 날부터 기술진을 구성해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진은 5개월 동안 밤낮으로 기술 개발에 힘썼다.
그 결과 그들보다 먼저 제품을 개발했다. 매그너그룹의 연구진이 우리 제품을 보더니 엄지손가락 2개를 치켜들며 소리쳤다.“섬스 업(Thumbs Up).”
우리는 오히려 그들에게 27억5000만원의 기술개발비를 받아냈다. 이 모든 것이 기도의 힘이었다. 위기는 곧 기회다. 좀 위험하기도 하지만 기도의 기회이기도 하다.
[역경의 열매] 채의숭 (22·끝) 삶의 위기마다 역사 하신 하나님
나는 외국 기업과 중요한 협상을 할 때 아내와 동행한다. 선교지를 방문할 때도 아내와 함께 한다. 회사 일로 출장 가는데 왜 아내와 동행하는가. 기도 때문이다. 외국 기업인들과 협상하는 그 시각, 아내는 기도의 불꽃을 모은다. 그러면 불리한 상황들이 보기 좋게 역전된다.
외국 기업들과 협상할 때 역전의 명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기도는 패배를 승리로 ,화를 복으로 바꾼다. 회사가 부도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일본 아크(Arrk)그룹의 아라키 회장이 투자 제의를 해왔다.
아크그룹은 전 세계에 168개 회사를 소유한 금형산업의 선두주자다. 그 회사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우리에게 투자를 결정한 이유가 궁금했다.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모두 분석해보았을텐데….
“현재 회사의 자산평가를 하면 보잘 것이 없다. 향후 3년간의 청사진을 제시할테니, 미래의 가치를 믿고 투자해주기 바란다.”
코미디 같은 제의에 아라키 회장은 씨익 웃었다.“나를 핫바지로 보는가. 일본에 돌아가면 주주들과 경제지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해야 한다. 그들에게 실척 가치가 아닌 미래가치를 보고 투자했다고 발표하란 말인가.”
“나를 믿어다오. 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그런 체험을 해왔다.”
아라키 회장은 뜻밖에도 계약서에 서명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참으로 놀랍다. 삶의 위기 때마다 역사 하신 그분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나는 믿는다.
최근에는 예수를 전혀 모르던 MGS 김정환 사장이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오랫동안 타종교에 심취해 있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신앙생활을 선포한 것이다.
“장로님이 믿는 하나님을 나도 맞고 싶다. 장로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다. 늦게나마 예수를 믿게 되어 행복하다.”
낚시꾼들은 월척을 낚아 올릴 때 느끼는 짜릿한 손맛을 잊지 못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전도할 때 느끼는 손맛 때문에 평생 복음을 전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명령하신다.
해외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가장 큰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바로 나다. 2005년 8월. 우리 3남3녀가 정성을 모아 남양주시 화도읍에 강성교회를 헌당했다. 국내에서 다섯 번째 교회를 개척한 셈이다.
동생 채의정 목사가 담임을 맡았다. “우리 집에서 주의 종이 한 사람쯤 나왔으면 좋겠다”던 어머니의 소원이 성취된 셈이다.
이제 나도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부모님의 인도로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나 역시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것은 인생 최고의 기쁨이다. 이제 6개의 회사를 더 설립해 G12그룹으로 발전시킬 것이다. 12개의 회사가 예수님의 12제자처럼 활동하기를 기대한다.
설이 며칠 남지 않았다.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 몸은 이미 선교지에 가 있다. 우리 부부는 설날 라오스와 미얀마에 다녀올 것이다. 그곳에 2개의 교회가 새로 지어진다.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젊은 날 인생의 목표와 세 가지 꿈을 갖게 하시고,‘주께 하듯 하라’는 섬김의 철학을 가르쳐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주님, 또 어떤 크고 비밀한 것을 예비해 놓으셨나요.”
(정리:국민일보 임한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