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는 '메가패스'라는 CF를 통해 보듯이, '더 빨리'에 대한 강박증에 빠져있는 듯하다. 조금 느리게 살면 어떨까? 좀더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즐기면 안되는 걸까? 아침저녁으로 공원이나 공터에서 아주 느린 동작으로 원을 그려가며 태극권을 수련하는 중국인들처럼 말이다.

권술(拳術)의 일종인 태극권은 명대(明代) 말엽 허난성(河南省) 원셴(溫縣) 천자거우(陳家滿)의 진왕정(陳王庭)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진식(陳式), 양식(楊式), 손식(係式), 오식(吳式), 무식(武式)의 전통 5대 유파를 형성하였다. 진식 태극권이 무술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반면, 양식 태극권은 진식 태극권을 개량하여 건강 체조라는 놀이의 일종으로 변하였기 때문에 가장 유행하는 태극권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양식 태극권의 형성과 관련하여 일화가 하나 전해지는데, 양식 태극권의 창시자인 양노선(楊露禪)이 태극권을 배우기 위해 진씨 집안에 하인으로 들어갔었다는 것이다. 갈라진 벽 틈으로 몰래 훔쳐보면서 수련하는 그의 모습에 감동하여 진씨 집안에서 태극권을 전수해 주었다. 후생가외(後來居上)인 셈이다.

태극권은 그 이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중국무술 중에서 철학적 색채가 가장 농후하다. '태극'이 바로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을 의미하는 중국 철학의 용어이기 때문이다. 송대(宋代)에 만들어진 태극도(太極圖)는 둥근 원으로써 우주와 자연의 규율 및 변화 양상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원이 바로 태극권 동작의 기본 원리이다. 중국 고대철학가들은 우주 변화의 원동력이 태극에 있다고 인식하였고,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 또한 태극권의 원동력이 태극, 즉 사람의 복부에 있다고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태극권의 각 동작은 복부에서 시작해서 전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태극권은 무리한 동작이 전혀 없으며, 느린 동작과 호흡 방법이 결합되어 있어, 체력 단련과 더불어 기공 단련의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인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그들의 건강 장수법으로 자리를 굳혔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꽤 유명한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태극권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만만디(慢慢地) 즉 느림의 미학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가까이 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