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자 박형룡 박사님

  선지자선교회

박형룡 박사님은 우리가 다를 아는 대로 개혁주의 신학자이시다. 한국교계의 주류신앙이 이만큼이나마 개혁주의가 되는데 초석을 놓으셨다. 초기 외국 선교사님을 제외하고서 한국 신학자로서는 제일 선생님이시다.

 

요사이 개혁주의 신조와 개혁주의 신학자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있다. 그 가운데 박형룡 교수님에 대한 자료가 많다. 다음은 그 자료들 중에서 인상 깊게 남는 것이 있어 간단히 발췌하였다.

 

이곳 중극 선교지에 있는 북능공원에 가보면 근 400년 전에 나무들이 여기 저기 우뚝 서서 있다. 몇 십 년 된 나무는 거기에 비하면 병아리 묘목이다. 400년의 풍설을 이기고 우뚝 서서 있는 나무들은 어떤 말이 없다. 그렇지만 앞에 다가서서 자세히 보면 그만 그 위풍에 압도를 당한다.

 

좀 멀리서 보면 꽤 괜찮은 것 같은데 그 앞에서 자세히 보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얼마나 많은가.

박형룡 교수님에 관한 자료들을 하나 둘 찾아보면서 그분의 신앙과 인격에서 느껴지는 것이 새롭게 많다.

 

 

박형룡의 교의신학 서문

 

박형룡은교의신학서문 속에서 자신의 저술들이 어떤 취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이 책은 다른 사람들의 화원에서 꺽어 모은 꽃다발에 지나지 못한다. 이것은 물론 필자의 아는 것이 적은 탓이지만 또한 본의에 맞는 일이기도 하다. 필자의 본의는 칼빈주의 개혁파 정통 신학을 그대로 받아서 전달하는 데 있고, 감히 무엇을 창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옛 사람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의 태도라 할 것이다. 팔십 년 전 이 땅에 서양 선교사들이 와서 전하여 준 그대로의 바른 신학을 새 세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이 필자의 염원이기 때문이다.” 54)

 

박형룡의 용서 하세요

 

정문호 목사는 자기가 현장에서 목격한 바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로 충무로 소재 충현교회에서 목사 장로 기도회(1976. 5. 4-7)때 오전 강의가 마친 후 광고시간에 그 당시 총회총무였던 모 목사님께서 광고하시기를 박형룡 박사님의 교의신학 7권이 완간되었으니 여러분들은 모두 구입하시기를 바랍니다하고 책을 들고 소개하였다.

 

이 광고가 교회 안에서 끝나자마자 그 교회 당회장께서 급히 강단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 책들을 집어 던지면서 거룩한 성전에서 매매할수 없소소리 지르며 마침 저자되신 박형룡 박사님 앞에 다가와서 책으로 삿대질을 하며 당신이 이렇게 시켰소 회개하시오라고 소리를 지를 때 박형룡 박사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모습으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죄인입니다. 용서하세요하는 그 말씀을 저는 앞에서 직접 듣고 바로 저분이 우리에게 위대한 사표가 되시는 성자 목사님이구나라고 더 큰 감화를 받게 되었고 나의 일평생 그 때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박용규엮음:상게서198).

 

박형룡의 자작시조

 

정작 박형룡 자신은 한일이 없고 이룬 것이 없음을 한탄했다. 세상을 떠나기 한해 전 만80세 생일인 1977515(음력328)에 자작 시조에서 이렇게 읊었으니 말이다.

 

80평생 회고하니 한탄할일 한()이없다/

집에서는 불고(不顧)했고 나라일도 한것없네/

교회위해 무엇했나 허송세월(虛送歲月) 뿐이로다/

산곡(山谷)에 생긴몸이 바다건너 학()을닦고/

신사성직(神賜聖職) 받은것은 천은막대(天恩莫大) 하건만도/

이룬것은 유야무야(有耶無耶) 신전인전(神前人前) 부끄러워/

 

 - 2014. 8. 9

- 김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