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0 12:53
■ 改革主義의 냉철한 판단
개혁주의를 한 말로 표현한 것이 ‘오직 성경으로’이다. ‘오직 성경’에는 신앙도 신학도 모두 포함된다. 그러면 개혁주의 역사를 교회사를 보듯이 한번 보자. 교회사에는 초대교회사, 중세교회사, 개혁교회사가 있고 그리고 근대교회사를 포함한 현대교회사가 있다.
개혁주의에도 교회사와 같이 초대가 있었고 지금은 한창 중세 중에도 말기인가. 그렇다면 이제 개혁이 있어야할 역사적 순서인가. 개혁주의의 역사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개혁주의는 ‘오직 성경으로’이기 때문에 그 기준 또한 ‘오직 성경으로’이다.
개혁주의의 개혁 근원은 ‘오직 성경으로’였다. 그것이 개혁주의이다. 지금 개혁주의가 시발되고 몇 백 년의 시간이 흘렀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현대교회는 마치 중세교회와 같이 되었다. 오늘의 개혁주의자들이 ‘오직 성경으로’를 말하지만 말뿐이고 ‘오직 신학으로’가 되어 있다. 다시 분석하면 오직 성경으로 향하고 싶은데 오직 성경으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런 중에서도 오직 성경으로 된 것을 말하면 인정하고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개혁주의 후손의 본질성이며 그 증표로 본다.
그런고로 개혁주의의 진퇴의 척도는 간단하다. ‘오직 성경으로’를 향하고 있으면 개혁주의로 ‘進’ 이다. 그와 반대로 ‘오직 신학으로’를 향하고 있으면 개혁주의의 ‘退’이다. 개혁주의의 進은 교회사의 개혁교회와 같으며 退는 중세교회와 같다.
오늘의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개혁주의를 보수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얼마나 귀한 역사인지 그 진정성만큼 숙연해진다. 성경적 교회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진실 된 심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면 개혁주의를 주창하는 깃발이 ‘신학’이 아니라 ‘성경’이 되기를 간청해본다.
신학은 한 분야의 학문이 아니다. 신학은 ‘오직 성경으로’ 가 되어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조명하고 증거 하는 실상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과 전승이 뒤섞어진 중세교회에서 오직 성경으로 개혁한 개혁주의의 후손들이다. 그렇다면 그 후손으로서 현재 자신은 다음의 어디에 속했는지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오직 성경으로’
‘오직 신학으로’
‘성경 반 신학 반으로’
글: 김반석/201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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