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줄기 같은 개혁주의 신앙노선
선지자선교회
김반석 2012-09-09 23:30:22 , 추천 : 7

시대마다 개혁주의 신앙노선이 있어왔습니다. 개혁주의 신앙노선은 개혁주의 신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조는 개혁주의 신학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시대마다 있은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확인할 때 개혁주의 신조가 함께 했었고, 또 개혁주의 신학이 함께 했었으며 성경이 함께 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개혁주의 신앙노선이라면 개혁주의 신조가 함께 해야 하고, 또 개혁주의 신학이 함께 해야 하며 또 성경이 함께 해야 합니다.

오늘날 성경적 신앙노선이라면 그에 따른 개혁주의 신조가 있어야 하고, 또 개혁주의 신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과거 옛 신조와 신학을 그대로라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과거 옛 개혁주의 신조와 개혁주의 신학의 연결성에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마치 구약은 신약을 조명하고 신약은 구약을 조명하는 것같이 말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감당하는 신앙노선이라면 반드시 개혁주의 신앙노선과 개혁주의 신조와 개혁주의 신학이 구약과 신약처럼 필연적으로 관계성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함은 시대마다 개혁주의 신앙노선과 신조와 신학은 시대마다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이 붙들고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에 있어서 이단 사이비를 대응하고 배격하는 역사도 개혁주의 신앙노선, 개혁주의 신조, 개혁주의 신학이 감당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이어가고 있는 신앙노선이 앞으로의 역사적 신앙노선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백영희 신앙노선은 영감 진리적 신앙노선이기 때문에 개혁주의 신앙노선, 개혁주의 신조, 개혁주의 신학과 동질입니다. 그래서 상관을 시키면 잘 맞습니다. 만약 이것을 이해 못한다면 아직까지 백영희 신앙노선의 실제를 넓게 보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리고 백영희 신앙노선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와 벌콥 조직신학을 연구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그 결과는 개혁주의 신앙노선과 연결성을 확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개혁주의 신앙노선에 이동이 아니라 연결로서 교계와 교통할 것입니다.

교회사는 개혁주의 신앙노선이 지금까지 보수 계대해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앞으로도 교회사는 개혁주의 신앙노선이 보수 계대해나갈 것입니다. 이 시대를 감당할 신앙노선이라면 이 시대의 개혁주의 신앙노선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사의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선도해 나가야 합니다. 이 본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렇기에 속화를 지키기 위해 신앙노선의 독립은 좋습니다. 그러나 자만으로 인해 신앙노선의 고립은 좋지 못합니다.

목회자양성원에서는 교회사의 정통 개혁주의 신조와 개혁주의 신학을 기본적으로 마스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터 위에 이 시대를 감당하는 성경적 신조와 성경적 신학을 이어가야 합니다. 백영희 신앙노선은 영감 진리적 신앙노선입니다. 교회사의 개혁주의 신앙노선에서 영감 진리적 신앙노선임을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대표적 개혁주의 신조가 되는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과 대표적 개혁주의 신학이 되는 벌콥 조직신학을 완전 파악해야되고 그러면 자연적으로 교통과 선도가 따르게 됩니다. 그 증표는 백영희 신앙노선의 목회자들이 이동하면 대개가 합동이나 고신측인데 그곳에서 앞줄에 서있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교회사의 정통 개혁주의 신앙노선은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와 같다고 봅니다. 그 강줄기에서 이탈된 줄기는 비정통으로 흩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강 하류가 강 상류에 있지 않다고 독립된 강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류적 판단입니다. 강 하류는 강 상류가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며 그리고 강 상류와 강 하류는 반드시 연결 되어 있습니다. 이 자연의 이치를 살핀다면 우리의 현재를 바로 인식하고 바로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