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파) 회개는 단회적인가?

2014.04.21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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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파) 회개는 단회적인가?   

                                              

                                                                                                                                                                 이인규

  선지자선교회

구원파의 가장 중요한 교리 중에서 한가지는 회개에 대한 내용입니다.

 

구원파는 회개를 일생에 단 한번만 하면 되고, 그 이후로는 자백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회개"라는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회개라는 단어는 단회적인 뜻으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죄에 대해서 반복적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구원파가 자백을 하면 된다는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죄가 더이상 없다"는 주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백이란 죄가 있다는 것만 고백하면 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구원파의 주장을 살펴 보겠습니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는 구원파 교인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가르치는 구원파 목사들을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회개와 자백 : (1) 회개의 두가지 의미

 

첫째, 회개의 의미는 죄인이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삶의 전환을 가르킵니다. 일생에 단 한번뿐인 회개입니다. 두 번째, 회개는 자녀가 아버지에게로 잘못을 고하고 돌이키는 회개, 즉 자백을 말합니다.(예수교복음침례회, 생명의 말씀선교회 홈페이지)

 

- 당신이 참된 마음으로 자백하면 그는 즉시 용서해 주시며, 비로소 당신은 깨끗함을 얻어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백과 회개를 잘못 이해하고 혼돈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회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고 자백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회개는 일생에 한번이고, 자백은 매일매일 생활에서 따르는 것입니다. 회개는 사단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중생을 말하고, 자백은 하나님의 아들된, 즉 중생한 자들이 생활의 잘못을 용서받는 것을 말합니다. (딕욕선교사의 양육편지 중에서)

 

-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6:12):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를 오해하면 안된다. 13:1-11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 모습이 나온다. 이미 목욕한 자는 구원 받은 자를 얘기하고, 발씻는다는 것은 이미 구원받은 자가 생활 속에 짓는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는 구원받은 후의 생활 속에 짓는 죄에 대한 자백, 부분적인 회개인 것이다.(예수교복음침례회, 생명의말씀선교회 홈페이지)

 

- 구원 받은 후에 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자백을 통해서 해결하면 됩니다. 영원한 속죄는 지옥갈 죄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회개를 통해 단번에 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짓는 죄는 그때 그때 자백을 해서 처리하고 다 용서를 받아도 징계를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복음침례회, 권신찬)

 

보시다시피 구원파는 회개는 일생에 단 한번만 하면 되고, 그 이후로는 자백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의 대속으로 인하여 이미 죄가 없으며 의인이 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구원파의 교리를 깨달으면 그 시간에 이미 죄문제가 모두 해결되었고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박옥수계열의 구원파는 조금 다른데, 이들은 아예 죄가 전혀 없으므로 자백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 우리 선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구원의 복음을 증거한다고 하는 단체들은 많지만 구원의 역사가 없는 것이 다만 안타까울 뿐입니다. 구원의 선이 애매해져 있어서 교회만 나오면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인정만 하면 여전히 마음에 죄가 남아있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그 기준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기쁜소식선교회 홈페이지)

 

- 특히, 몇몇 이단 종파에 속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성경적으로 분명히 잘못되었지만, 자기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바른 믿음으로 고집하기에 마음이 말씀 앞에 여리고 성처럼 굳게 닫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통 신앙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참 많은 사람들이 성경적으로 바르지 않은 믿음을 참 믿음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그릇된 믿음 중 하나가 바로 비록 죄가 있지만, 예수를 믿기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기쁜소식선교회)

 

- '회개'는 신약 성경의 헬라어 원어로 메타노이아(metanoia)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다. 돌이키다. 마음을 변경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떠난 길에서 하나님께로 마음의 방향을 전환시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며 그 죄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는 것이 회개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기쁜소식선교회 홈페이지)

 

그러나 그것은 회개라는 단어의 두가지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회개(메타노에오)라는 단어는 '방향수정'이라는 뜻으로서, 성경에서는 2가지의 의미로 사용되어 집니다. 회개가 단회적일 때는 믿음의 과정에서 거듭남을 말하지만, 성경에서는 분명히 반복적인 죄의 경우에도 사용되며, 그 때에는 죄에서 돌이키는 반복적인 성화의 과정을 말합니다, 성경은 반복적인 죄에 대한 회개도 분명히 언급합니다.

 

17:4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일곱 번을 회개하라는 것이 단회적일까요? 이 회개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죄에 대한 반복적인 경우에도 사용된다는 성경적인 증거입니다.

 

즉 성경에는 죄에 대해서도 회개”(메타노에오)라는 단어가 분명히 사용되었습니다. 구원파가 주기도문을 부정하는 이유는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문이 반복적인 회개와 죄사함에 대한 교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곱 번 죄 지은 자가 일곱 번 반복하여 회개하면 용서하여 주듯이 주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는 것이 주기도문의 내용입니다. 일생에 한번 회개하라는 구원파의 주장은 분명히 비성경적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성경에는 일상적인 죄에서도 회개하라고 말하고 있으며, 회개는 일생에 한번만 하고 자백만 하면 된다는 구원파의 주장과 다릅니다. 주기도문은 주님께서 가르쳐준 "이렇게 기도하라"는 일상적인 기도문의 예입니다. 그래서 구원파는주기도문을 거부합니다. 성경은 죄로부터의 회개에 대해서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자백이 아니라 회개입니다

 

(베드로가 시몬에게 악함을 회개하라고 충고하는 내용)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8:22)

 

(바울이 음란과 호색함의 범죄를 지은 고린도교인에게 회개하라는 내용)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12:21)

 

(죽은 행실을 회개하라는 것은 다시 닦지 않을 기본원리)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6:1-2)

 

(일곱교회에게 악함과 범죄로부터 회개하라는 성령님의 말씀)

 

그리고 계시록 2-3장에 있는 일곱교회에 대한 회개를 예로 듭니다. 그것은 범죄와 악함으로부터의 회개입니다. 즉 일곱교회에게 성령께서 회개하라고 경고하시는데, 구원파들은 회개를 하지 말고 자백만 하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또 세리는 자기가 죄인이라고 회개를 하였는데, 바리새인보다 의롭다하심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

 

과연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은 죄가 없을까?

 

죄가 없는데도 자백을 합니까? 자백을 하면 우리 죄를 사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죄가 없다고 하는 자는 스스로를 속이고, 진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사도요한을 포함한 소아시아 지방의 교인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8-10)

 

구원파는 본문을 인용하며 자백만 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요한일서 본문이 죄가 없는데도 자백을 하라는 내용인지요? 성경은 분명히 죄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미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자백만 하면 된다는 구원파 주장과 달리,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성경구절에 대해서 구원파는 어떻게 해석합니까?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그렇다면 예수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지 않았을까요?

 

물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죄사함"은 죄가 없어졌다는 내용이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용서하겠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도 짐승의 희생제사를 지내면 죄가 없어졌나요? 죄가 있지만 그것을 용서하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죄는 죄책과 죄성으로 나누어 집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었다는 것은 죄책을 사하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즉 죄가 있지만, 죄책(정죄함)을 면제하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죄성, 즉 오염과 부패된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파 교인은 죄를 짓지 않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요.

 

성경은 온전한 의인은 없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도 자기에게 죄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7:21-23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박옥수계열의 구원파는 죄가 더이상 없다고 가르치며, 이요한과 권신찬계열의 구원파도 같은 주장이지만, 영혼에는 죄가 없고 육체에만 남아있다고 가르치며, 영혼의 구원과 생활의 구원, 몸의 구원으로 구원을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죄관은 죄가 더이상 없다는 것이며, 그들의 자의적인 구원판정에 의하여 이미 구원을 받았고 이제는 죄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구원의 조건은 자신들의 교리를 깨닫는 것이 됩니다. 그 깨달은 날을 자신들이 구원을 받은 날이라고 가르칩니다

 

즉 구원파에서는 이미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죄가 없으며, 그것을 깨달으면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한 사람은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으며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파교리를 깨달았다고하여 그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 작정 안에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성경은 깨달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과연 성경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이미 죄가 없으므로, 더이상 죄와 상관이 없으며 회개하지 말라고 말할까요?

 

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6:14-15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3장에서는 성령께서 일곱교회에게 회개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그들이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그들의 자의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이지, 우리가 구원을 판정하지는 않습니다, 또 어떤 교리를 깨달았다고 하여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교리를 깨달으면 이미 구원을 받았고, 회개하지 않아도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자신들이 심판주라는 뜻과 동일합니다.

 

깨달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구원파는 예수가 우리 죄를 모두 사하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깨닫는 날이 곧 이미 구원을 받은 날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6가원칙이 있어야만 하며, 예수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셨다는 것은 ""(Why)라는 하나의 결과적인 항목에 해당되는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우리가 누구(Who)를 믿는지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삼위일체하나님이 누구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자칭 하나님과 재림예수, 보혜사성령이 40명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도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파의 삼위일체는 양태론이라고 하는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또 언제(When) 믿는지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세상 끝날 때까지 믿음을 지켜야만 합니다. 단지 과거에 한번만 믿으면 우리가 구원을 받을까요? 어떻게(How) 믿느냐는 것이 곧 구원론입니다. 어디서(Where)가 교회론이고, 무엇을(What) 믿느냐가 성경론이 됩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가 죄를 씻어주었다는 결과만 깨달으면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이며, 그렇다면 왜 구원파만 구원을 받게 되는지요? 예수의 죄사함은 모든 기독교가 다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구원파에서 아래 골1:6 성경구절을 자주 인용한다는 자체가 바로 그들의 이단성, 즉 믿음을 구원을 받는 다는 자체를 부정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성경에 수없이 기록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음을 모두 외면하고, 부분적인 구절 한 두어개를 인용하여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음을 말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구절이 수백개가 나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왜 인용을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과연 본문이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일까요?

 

1:4-6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성경은 무엇을 깨달은 날이라고 하였나요?

 

구원파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라고 말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일까요? 그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복음을 뜻하며, 그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말합니다. 본문은 구원파의 교리를 깨달은 날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본문은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당시 골로새서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 날로부터 온 세계에 그 복음이 전파되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공동번역]1:6 그 복음은 여러분에게 전해져서 여러분이 하느님의 은총의 말씀을듣고 그 참뜻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열매를 맺으며 퍼져 나갔습니다. 사실 복음은 온 세계에서 열매를 맺으며 퍼져 나가고있습니다.

 

[표준새번역]1:6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 날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현대인의성경]1:6 여러분이 기쁜 소식을 듣고 진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열매를 맺은 것처럼 그 말씀이 온 세계에서도 그렇게 열매를 맺으며 전파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구원파들은 종교개혁자들도 자신들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는데 기독교가 변질시켰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거듭난 우리에게 죄가 남아있는지, 혹은 죄가 완전히 없을지 유명한 마틴로이드존스목사와 웨슬레, 루터, 캘빈의 주장을 살펴 보겠습니다

 

-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사실 저는 아직도 이 삶과 이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 몸 안에 있는 죄와 싸우고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은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 소망을 가진 자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고전9:27)이라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다시 소망을 가진 자는 수동적으로 주님만을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저의 땅에 있는 지혜를”(3:5) 죽입니다. 이것이 바로 논제입니다. 이 모든 진리는 주어졌고, 성령의 능력은 제 안에서 역사하시며, 저는 그것을 하도록 격려를 받으며, 그것을 행하기를 원하는, 이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죄를 완전히 제거했다거나 죄로부터 완전히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모든 것들을 반드시 거절해야만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동일하게 반동의 원리 또한 거절해야만 합니다. (로이드존스, 성령하나님, 기독교문서선교회, 330)

 

- 하나님의 자녀들은 중생을 통해서 죄의 결박에서 풀려난다. 그러나 그들은 육신에서 생겨나는 괴로움을 전연 느끼지 않으리 만큼 충분히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다. 그들 속에는 계속 싸워야 할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로 인해 그들은 훈련받는다. 그들은 훈련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무력함을 더욱 깨닫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모든 저술가들의 일치된 의견은 중생한 사람 안에는 악을 유발시키는 불씨가 남아 있어서 거기에서부터 욕망이 끊임없이 튀어나와 죄를 짓도록 유혹하며 자극한다는 것이다.(캘빈 기독교강요, 3, 3. 10)

 

- 이 회개(중생후의 반복적인 회개)는 칭의에 선행하는 회개와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는 죄책이라든가 정죄라든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의식이라든가 하는 것들과 연관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깨달음이니 곧 우리 마음 속에 아직 남아있는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곧 육에 속한 마음입니다. 중생한 사람들 속에서도 그것이 남아있으나 지배하지는 못합니다.(웨슬레 조직신학, 성광문화사 199-200)

 

죄와 죄 용서

 

1) 원죄에 대한 스콜라 교의의 그릇됨

 

2) 우리의 모든 의는 불결하다

 

3)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죄는 여전히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4) 선을 좇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5) 하나님은 그리스도 때문에 은혜로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

 

6) 원죄(죄성)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으나 이미 죽은 것이고 죽어가고 있다.

 

7)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

 

(루터신학개요, 한국장로교출판사, 132-136)

 

만약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었다는 것만 깨달으면 구원을 받는다면, 사이비집단을 제외한 모든 이단들까지 다 구원을 받게 될 것이며, 기독교의 다른 종파들도 모두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구원파는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며 기존교회는 구원이 없다고 말합니다. 기존교회도 모두 죄사함을 받는다고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구원파는 기존교회의 죄사함으로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며, 그것을 유기체적인 연합이라고 합니다. “Already but not yet”라는 역동적인 구원관에서 “already” 는 하나님의 측면에서 본 구원관이며 인간의 관점이 아닙니다. 또한 “not yet” 은 인간의 측면에서 본 구원관이며 하나님의 관점이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이란 "내가 어떤 교리를 깨달았으므로 이미 구원을 받았다"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이란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므로 더이상 어떤 죄를 지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6:14-15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게다가 구원파의 이단성은 이것뿐이 아닙니다,

 

임박한 종말론과 극단적 세대주의, 엉터리 알레고리적인 성경해석, 요한계시록의 자의적인 해석....그리고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라, 2000년 동안 이단적인 신론이었던 양태론입니다.

 

양태론을 인정한다면, 예수가 곧 하나님 자신이 되므로, 불사의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게 됩니다. 양태론을 인정한다면, 성령이 재림예수가 되므로 예수의 재림을 부정하게 됩니다. 양태론을 인정한다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로 바쳐진 예수와 그것을 온전히 받으시는 하나님이 동일인물이 되어버립니다.

 

또 구원파는 수십년전부터 임박한 종말을 주장하여 왔습니다. 유럽연합이 10개국이 되면 재림이 온다고 했지만, 현재 유럽연합은 27개국이며, 기독교복음침례회의 권신찬목사는 수십년전부터 기차가 종착역에 도달하였다고 수십년 동안 계속 주장하였지만, 그가 사망한 후에도 종말은 결코 오지 않았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이미 존재한다고 수십년전부터 말했지만, 어느 누구도 적그리스도로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구원파) 회개는 단회적인가?

이인규

 

구원파의 가장 중요한 교리 중에서 한가지는 회개에 대한 내용입니다.

 

구원파는 회개를 일생에 단 한번만 하면 되고, 그 이후로는 자백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회개"라는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회개라는 단어는 단회적인 뜻으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죄에 대해서 반복적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구원파가 자백을 하면 된다는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죄가 더이상 없다"는 주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백이란 죄가 있다는 것만 고백하면 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구원파의 주장을 살펴 보겠습니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는 구원파 교인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가르치는 구원파 목사들을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회개와 자백 : (1) 회개의 두가지 의미

 

첫째, 회개의 의미는 죄인이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삶의 전환을 가르킵니다. 일생에 단 한번뿐인 회개입니다. 두 번째, 회개는 자녀가 아버지에게로 잘못을 고하고 돌이키는 회개, 즉 자백을 말합니다.(예수교복음침례회, 생명의 말씀선교회 홈페이지)

 

- 당신이 참된 마음으로 자백하면 그는 즉시 용서해 주시며, 비로소 당신은 깨끗함을 얻어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백과 회개를 잘못 이해하고 혼돈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회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고 자백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회개는 일생에 한번이고, 자백은 매일매일 생활에서 따르는 것입니다. 회개는 사단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중생을 말하고, 자백은 하나님의 아들된, 즉 중생한 자들이 생활의 잘못을 용서받는 것을 말합니다. (딕욕선교사의 양육편지 중에서)

 

-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6:12):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를 오해하면 안된다. 13:1-11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 모습이 나온다. 이미 목욕한 자는 구원 받은 자를 얘기하고, 발씻는다는 것은 이미 구원받은 자가 생활 속에 짓는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는 구원받은 후의 생활 속에 짓는 죄에 대한 자백, 부분적인 회개인 것이다.(예수교복음침례회, 생명의말씀선교회 홈페이지)

 

- 구원 받은 후에 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자백을 통해서 해결하면 됩니다. 영원한 속죄는 지옥갈 죄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회개를 통해 단번에 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짓는 죄는 그때 그때 자백을 해서 처리하고 다 용서를 받아도 징계를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복음침례회, 권신찬)

 

보시다시피 구원파는 회개는 일생에 단 한번만 하면 되고, 그 이후로는 자백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의 대속으로 인하여 이미 죄가 없으며 의인이 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구원파의 교리를 깨달으면 그 시간에 이미 죄문제가 모두 해결되었고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박옥수계열의 구원파는 조금 다른데, 이들은 아예 죄가 전혀 없으므로 자백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 우리 선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구원의 복음을 증거한다고 하는 단체들은 많지만 구원의 역사가 없는 것이 다만 안타까울 뿐입니다. 구원의 선이 애매해져 있어서 교회만 나오면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인정만 하면 여전히 마음에 죄가 남아있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그 기준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기쁜소식선교회 홈페이지)

 

- 특히, 몇몇 이단 종파에 속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성경적으로 분명히 잘못되었지만, 자기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바른 믿음으로 고집하기에 마음이 말씀 앞에 여리고 성처럼 굳게 닫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통 신앙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참 많은 사람들이 성경적으로 바르지 않은 믿음을 참 믿음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그릇된 믿음 중 하나가 바로 비록 죄가 있지만, 예수를 믿기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기쁜소식선교회)

 

- '회개'는 신약 성경의 헬라어 원어로 메타노이아(metanoia)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다. 돌이키다. 마음을 변경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떠난 길에서 하나님께로 마음의 방향을 전환시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며 그 죄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는 것이 회개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기쁜소식선교회 홈페이지)

 

그러나 그것은 회개라는 단어의 두가지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회개(메타노에오)라는 단어는 '방향수정'이라는 뜻으로서, 성경에서는 2가지의 의미로 사용되어 집니다. 회개가 단회적일 때는 믿음의 과정에서 거듭남을 말하지만, 성경에서는 분명히 반복적인 죄의 경우에도 사용되며, 그 때에는 죄에서 돌이키는 반복적인 성화의 과정을 말합니다, 성경은 반복적인 죄에 대한 회개도 분명히 언급합니다.

 

17:4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일곱 번을 회개하라는 것이 단회적일까요? 이 회개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죄에 대한 반복적인 경우에도 사용된다는 성경적인 증거입니다.

 

즉 성경에는 죄에 대해서도 회개”(메타노에오)라는 단어가 분명히 사용되었습니다. 구원파가 주기도문을 부정하는 이유는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문이 반복적인 회개와 죄사함에 대한 교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곱 번 죄 지은 자가 일곱 번 반복하여 회개하면 용서하여 주듯이 주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는 것이 주기도문의 내용입니다. 일생에 한번 회개하라는 구원파의 주장은 분명히 비성경적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성경에는 일상적인 죄에서도 회개하라고 말하고 있으며, 회개는 일생에 한번만 하고 자백만 하면 된다는 구원파의 주장과 다릅니다. 주기도문은 주님께서 가르쳐준 "이렇게 기도하라"는 일상적인 기도문의 예입니다. 그래서 구원파는주기도문을 거부합니다. 성경은 죄로부터의 회개에 대해서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자백이 아니라 회개입니다

 

(베드로가 시몬에게 악함을 회개하라고 충고하는 내용)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8:22)

 

(바울이 음란과 호색함의 범죄를 지은 고린도교인에게 회개하라는 내용)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12:21)

 

(죽은 행실을 회개하라는 것은 다시 닦지 않을 기본원리)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6:1-2)

 

(일곱교회에게 악함과 범죄로부터 회개하라는 성령님의 말씀)

 

그리고 계시록 2-3장에 있는 일곱교회에 대한 회개를 예로 듭니다. 그것은 범죄와 악함으로부터의 회개입니다. 즉 일곱교회에게 성령께서 회개하라고 경고하시는데, 구원파들은 회개를 하지 말고 자백만 하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또 세리는 자기가 죄인이라고 회개를 하였는데, 바리새인보다 의롭다하심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

 

과연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은 죄가 없을까?

 

죄가 없는데도 자백을 합니까? 자백을 하면 우리 죄를 사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죄가 없다고 하는 자는 스스로를 속이고, 진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사도요한을 포함한 소아시아 지방의 교인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8-10)

 

구원파는 본문을 인용하며 자백만 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요한일서 본문이 죄가 없는데도 자백을 하라는 내용인지요? 성경은 분명히 죄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미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자백만 하면 된다는 구원파 주장과 달리,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성경구절에 대해서 구원파는 어떻게 해석합니까?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그렇다면 예수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지 않았을까요?

 

물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죄사함"은 죄가 없어졌다는 내용이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용서하겠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도 짐승의 희생제사를 지내면 죄가 없어졌나요? 죄가 있지만 그것을 용서하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죄는 죄책과 죄성으로 나누어 집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었다는 것은 죄책을 사하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즉 죄가 있지만, 죄책(정죄함)을 면제하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죄성, 즉 오염과 부패된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파 교인은 죄를 짓지 않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요.

 

성경은 온전한 의인은 없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도 자기에게 죄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7:21-23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박옥수계열의 구원파는 죄가 더이상 없다고 가르치며, 이요한과 권신찬계열의 구원파도 같은 주장이지만, 영혼에는 죄가 없고 육체에만 남아있다고 가르치며, 영혼의 구원과 생활의 구원, 몸의 구원으로 구원을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죄관은 죄가 더이상 없다는 것이며, 그들의 자의적인 구원판정에 의하여 이미 구원을 받았고 이제는 죄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구원의 조건은 자신들의 교리를 깨닫는 것이 됩니다. 그 깨달은 날을 자신들이 구원을 받은 날이라고 가르칩니다

 

즉 구원파에서는 이미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죄가 없으며, 그것을 깨달으면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한 사람은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으며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파교리를 깨달았다고하여 그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 작정 안에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성경은 깨달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과연 성경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이미 죄가 없으므로, 더이상 죄와 상관이 없으며 회개하지 말라고 말할까요?

 

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6:14-15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3장에서는 성령께서 일곱교회에게 회개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그들이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그들의 자의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이지, 우리가 구원을 판정하지는 않습니다, 또 어떤 교리를 깨달았다고 하여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교리를 깨달으면 이미 구원을 받았고, 회개하지 않아도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자신들이 심판주라는 뜻과 동일합니다.

 

깨달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구원파는 예수가 우리 죄를 모두 사하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깨닫는 날이 곧 이미 구원을 받은 날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6가원칙이 있어야만 하며, 예수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셨다는 것은 ""(Why)라는 하나의 결과적인 항목에 해당되는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우리가 누구(Who)를 믿는지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삼위일체하나님이 누구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자칭 하나님과 재림예수, 보혜사성령이 40명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도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파의 삼위일체는 양태론이라고 하는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또 언제(When) 믿는지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세상 끝날 때까지 믿음을 지켜야만 합니다. 단지 과거에 한번만 믿으면 우리가 구원을 받을까요? 어떻게(How) 믿느냐는 것이 곧 구원론입니다. 어디서(Where)가 교회론이고, 무엇을(What) 믿느냐가 성경론이 됩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가 죄를 씻어주었다는 결과만 깨달으면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이며, 그렇다면 왜 구원파만 구원을 받게 되는지요? 예수의 죄사함은 모든 기독교가 다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구원파에서 아래 골1:6 성경구절을 자주 인용한다는 자체가 바로 그들의 이단성, 즉 믿음을 구원을 받는 다는 자체를 부정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성경에 수없이 기록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음을 모두 외면하고, 부분적인 구절 한 두어개를 인용하여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음을 말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구절이 수백개가 나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왜 인용을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과연 본문이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일까요?

 

1:4-6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성경은 무엇을 깨달은 날이라고 하였나요?

 

구원파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라고 말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일까요? 그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복음을 뜻하며, 그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말합니다. 본문은 구원파의 교리를 깨달은 날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본문은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당시 골로새서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 날로부터 온 세계에 그 복음이 전파되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공동번역]1:6 그 복음은 여러분에게 전해져서 여러분이 하느님의 은총의 말씀을듣고 그 참뜻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열매를 맺으며 퍼져 나갔습니다. 사실 복음은 온 세계에서 열매를 맺으며 퍼져 나가고있습니다.

 

[표준새번역]1:6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 날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현대인의성경]1:6 여러분이 기쁜 소식을 듣고 진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열매를 맺은 것처럼 그 말씀이 온 세계에서도 그렇게 열매를 맺으며 전파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구원파들은 종교개혁자들도 자신들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는데 기독교가 변질시켰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거듭난 우리에게 죄가 남아있는지, 혹은 죄가 완전히 없을지 유명한 마틴로이드존스목사와 웨슬레, 루터, 캘빈의 주장을 살펴 보겠습니다

 

-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사실 저는 아직도 이 삶과 이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 몸 안에 있는 죄와 싸우고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은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 소망을 가진 자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고전9:27)이라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다시 소망을 가진 자는 수동적으로 주님만을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저의 땅에 있는 지혜를”(3:5) 죽입니다. 이것이 바로 논제입니다. 이 모든 진리는 주어졌고, 성령의 능력은 제 안에서 역사하시며, 저는 그것을 하도록 격려를 받으며, 그것을 행하기를 원하는, 이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죄를 완전히 제거했다거나 죄로부터 완전히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모든 것들을 반드시 거절해야만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동일하게 반동의 원리 또한 거절해야만 합니다. (로이드존스, 성령하나님, 기독교문서선교회, 330)

 

- 하나님의 자녀들은 중생을 통해서 죄의 결박에서 풀려난다. 그러나 그들은 육신에서 생겨나는 괴로움을 전연 느끼지 않으리 만큼 충분히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다. 그들 속에는 계속 싸워야 할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로 인해 그들은 훈련받는다. 그들은 훈련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무력함을 더욱 깨닫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모든 저술가들의 일치된 의견은 중생한 사람 안에는 악을 유발시키는 불씨가 남아 있어서 거기에서부터 욕망이 끊임없이 튀어나와 죄를 짓도록 유혹하며 자극한다는 것이다.(캘빈 기독교강요, 3, 3. 10)

 

- 이 회개(중생후의 반복적인 회개)는 칭의에 선행하는 회개와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는 죄책이라든가 정죄라든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의식이라든가 하는 것들과 연관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깨달음이니 곧 우리 마음 속에 아직 남아있는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곧 육에 속한 마음입니다. 중생한 사람들 속에서도 그것이 남아있으나 지배하지는 못합니다.(웨슬레 조직신학, 성광문화사 199-200)

 

죄와 죄 용서

 

1) 원죄에 대한 스콜라 교의의 그릇됨

 

2) 우리의 모든 의는 불결하다

 

3)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죄는 여전히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4) 선을 좇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5) 하나님은 그리스도 때문에 은혜로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

 

6) 원죄(죄성)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으나 이미 죽은 것이고 죽어가고 있다.

 

7)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

 

(루터신학개요, 한국장로교출판사, 132-136)

 

만약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었다는 것만 깨달으면 구원을 받는다면, 사이비집단을 제외한 모든 이단들까지 다 구원을 받게 될 것이며, 기독교의 다른 종파들도 모두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구원파는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며 기존교회는 구원이 없다고 말합니다. 기존교회도 모두 죄사함을 받는다고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구원파는 기존교회의 죄사함으로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며, 그것을 유기체적인 연합이라고 합니다. “Already but not yet”라는 역동적인 구원관에서 “already” 는 하나님의 측면에서 본 구원관이며 인간의 관점이 아닙니다. 또한 “not yet” 은 인간의 측면에서 본 구원관이며 하나님의 관점이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이란 "내가 어떤 교리를 깨달았으므로 이미 구원을 받았다"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이란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므로 더이상 어떤 죄를 지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6:14-15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게다가 구원파의 이단성은 이것뿐이 아닙니다,

 

임박한 종말론과 극단적 세대주의, 엉터리 알레고리적인 성경해석, 요한계시록의 자의적인 해석....그리고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라, 2000년 동안 이단적인 신론이었던 양태론입니다.

 

양태론을 인정한다면, 예수가 곧 하나님 자신이 되므로, 불사의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게 됩니다. 양태론을 인정한다면, 성령이 재림예수가 되므로 예수의 재림을 부정하게 됩니다. 양태론을 인정한다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로 바쳐진 예수와 그것을 온전히 받으시는 하나님이 동일인물이 되어버립니다.

 

또 구원파는 수십년전부터 임박한 종말을 주장하여 왔습니다. 유럽연합이 10개국이 되면 재림이 온다고 했지만, 현재 유럽연합은 27개국이며, 기독교복음침례회의 권신찬목사는 수십년전부터 기차가 종착역에 도달하였다고 수십년 동안 계속 주장하였지만, 그가 사망한 후에도 종말은 결코 오지 않았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이미 존재한다고 수십년전부터 말했지만, 어느 누구도 적그리스도로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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