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学与科学/신학과 과학

2010.11.24 02:22

김반석 조회 수: 추천:

七、神学与科学
선지자선교회 1、科学的方法是分析和实证。不能实证的任何事物都不能认定为真理。但是实证仅限于用物质证据的实证,证明一切实际的存在,因此是有局限性的。
2、神学是通过神的启示把属灵的和物质界的一切实际存在的一个一个地实证出来的步骤。
3、科学是对自然法则的学术性表现,神学是对神的启示的信仰性表现。
4、确认实存存在的方法
神创造了天地万物,世界分属灵的世界和物质的世界。物质的世界是可以用肉体的眼睛看得见的,属灵的世界是用肉体的眼睛无法看到的。
即使是物质世界的存在,也不是都能用肉体的眼睛可以看得见的,对肉眼看不见的微观的存在要用显微镜看,对遥远宇宙中的存在要用天文望远镜才能看得见。因此即使是实存的物质世界的存在也要借助于工具才能看得见。
心是存在的,我们如何才能知道呢?从心的作为可见其实存。用肉眼看不到心,但是心的作用管治我们的身体。看不见的心在左右我们的身体。
因此,用肉眼能够确认的才是实存的存在,如此定义实存的概念显然是错误的。
用肉眼看不见心,但是心却是实存的存在,所以能够起左右身体的作用。心的作用伴随着身体的行为。在灵的作用下,有心在起作用。
就这样,虽然用肉眼看不见,但是其存在通过受其作用而左右的存在而被证明出来。可见心虽然是看不见的存在,却是实存的存在。
从心的存在中可以看到看不见的存在比看得见的肉体的存在更有权柄。也可以看到看不见的存在是看得见的存在的主体。即使是山珍海味,倘若心里不平安就不如一碗米粥。也就是说属灵的存在是确确实实的。
从神的创造和护理的作为中可以看到神实存。应当用属灵的眼睛看神的作为,因为用我们的肉眼和心眼无法看到神。
灵虽然看不见,但是通过左右心的作为中可以证明其实存。
心虽然看不见,但是通过左右身体的作为可以证明其实存。
即使是物质,用肉眼看不见的要利用合乎其特性的工具才能看到一样,看属灵的存在也要根据其属性使用不同的眼光。
神造人时造了灵、魂、体,因此人有灵眼、心眼、肉眼。因此按其存在的类别看其实存的眼睛也要不同。
不能用肉眼和心眼看到神,只能用灵眼看。
心理的世界只能用心眼看。
物质的世界只能用肉眼看。
用肉眼是看不到神的,可是很多的人却因用肉眼看不见神而否认神的实存。那么用肉眼看不见心,我们也能否认其实存吗?就这样有关存在观的知识堕落昏暗了。
信的人因主耶稣的救赎灵里苏醒过来,可以用灵眼看到神,不信的人由于灵还在死亡当中,因而无法用灵眼看到神。
就如通过时刻左右人身的心的作为中可以看到心的实存,通过临格在信徒身上的神的感动和感化,我们就可以明白神的实存。
我们基督徒要睁开灵眼、心眼、肉眼,只有这样才能看见属灵的世界和物质的世界以及一切存在的源头——神。
正常的人应当能够看到一切实存的存在。我们应当拥有三个层次的眼睛,只有二个层次的眼睛是不正常的。这叫人的堕落。人类的始祖吃了善恶果以后灵眼死掉了。不能正确地面对实存的存在就是人的罪。如今主的救赎使我们的灵活过来,使我们的灵眼睁开,因此我们要正确地面对世上的万物。
就如物质的世界可以用肉眼看到其实存,心理的世界可以用心眼看到其实存,属灵的世界也可以用灵眼看到其实存。
身体的实存、心的实存、灵的实存,都是通过其存在本身的作为得到认定一样,神的实存也能通过其作为被认定下来。
看物质世界时要按其规律,看属灵的世界也要按其规律,想按物质世界的规律看属灵的世界就没有道理了。属灵世界和物质世界的属性是不同的,因此所要遵循的规律也不同。
人们虽然拥有一样的肉体,但是有的人心智发达,有的人灵性发达。通过发挥作用的力量的不同,人与人之间的实力也相差甚远,由此可以确认灵的存在、心的存在。
只承认用肉眼看见的为实存,看不见的为不存的人是只睁开肉眼,心眼昏暗,灵眼完全处在死亡当中的人。
虽然用肉眼看不见,但是迷惑人的邪灵的作为是确实存在的。
不要把肉眼当作确认实存存在的尺度,而是要把存在起作用的力量当作确认其实存的方法。一切万物都通过自己的作为显示其实存。神通过宝血、圣灵和真理的作为向我们彰显自己的实存。因此确认一切存在的实存方法并不是肉眼能不能看得见,而是看其存在本身所起的作用。
求主睁开我们的灵眼带领我们进入与主更深的相交当中!

7.신학과 과학

1)과학의 방법은 분석적이고 실증적입니다. 무엇이든지 실증되지 않는 것은 진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증적 실증에 한함으로 모든 존재의 실존을 증명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2)신학은 영계와 물질계 곧 모든 실존의 존재를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이미 지식한 것을 하나씩 증거 받는 실상의 걸음입니다.

3)과학은 자연 법칙들의 학술적 표현이요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의 신앙적 표현입니다.


●존재의 실존을 확인하는 방법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은 영계와 물질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물질계는 육안으로 보이나 영계는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물질적 존재라 하더라도 육안으로 다 볼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미세한 존재는 현미경으로 보아야 보이고, 더 멀리 우주에 있는 존재는 천체 망원경으로 보아야 보입니다. 그러므로 실존하는 물질적 존재라 하더라도 그 보는 방법을 다르게 해야 보이는 것입니다.

마음이 존재합니다. 마음의 실존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마음의 역사를 보고 그 실존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의 실존을 알 수 있는 것은 마음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마음의 역사가 우리의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몸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존의 개념을 육안으로 확인되는 것만을 실존하는 존재라고 정의하는 것은 잘못된 지식입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존하는 존재이기에 몸을 움직이게 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마음의 역사에 따라 몸의 행위가 있게 됩니다. 또 영의 역사에 따라 마음의 작용이 있게 됩니다.

이렇게 육안으로는 보이지는 않으나 그 존재가 역사 하는 힘에 따라 또 피동 되는 역사가 있으니 그것을 보아서 보이지 않는 존재이나 실존의 존재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보이는 육체의 존재보다 더 권세가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됨으로 보이는 존재보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더 주체가 되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진수성찬이라도 마음이 괴로우면 평안할 때 죽 한 그릇 보다 못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령한 존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그 힘의 역사를 보아서 그 실존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려면 영안(靈眼)으로 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안이나 심안(心眼)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영은 보이지 않으나 마음을 움직이는 역사를 보고 그 실존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으나 몸을 움직이는 역사를 보고 그 실존을 알 수 있습니다.

물질이라도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그 물질의 특성에 맞는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것같이 신령한 존재를 보는 것도 그 속성에 따라 보는 눈이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에 영과 마음과 몸을 가진 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안(靈眼), 심안(心眼), 육안(肉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존재별로 그 실존을 보는 눈이 달라야 합니다. 존재별로 그 실존을 대하는 눈이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육안이나 심안으로 볼 수 없고 영안으로 보아야 보입니다.
심리계는 심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물질계는 육안만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는데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실존의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그러면 마음이라는 것도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그 실존을 부인하겠습니까? 이렇게 존재관에 대한 지식이 타락하여 어두워졌습니다.

믿는 자는 예수님의 대속 공로로 영이 살아났기 때문에 영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믿지 않는 자는 영이 죽었기 때문에 영안이 없어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인간의 몸을 시시각각 움직이는 마음의 역사를 보고 마음의 실존을 알 수 있듯이 믿는 자에게 임재 하시는 하나님의 감화감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실존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기독자는 영안, 심안, 육안을 다 뜨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영계와 물질계도 다 볼 수 있고 모든 존재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실존의 존재를 다 볼 수 있어야 정상적 인간입니다. 세 가지의 눈을 가져야 정상인데 두 가지나 한가지 눈만 가지고 있으면 비정상입니다. 이것을 인간의 타락이라고 합니다.

인류시조가 선악과를 먹은 후 영안이 죽어버렸습니다. 인간이 실존의 존재들을 바로 상대하지 못함을 죄라고 합니다. 이제는 주님의 대속 공로로 영을 살리시고 영안을 뜨게 해 주셨으니 만물을 바로 상대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물질계는 육안으로 그 실존을 볼 수 있고 심리계는 심안으로 그 실존을 볼 수 있음과 같이
영계는 영안으로 그 실존을 볼 수 있습니다.

몸의 실존, 마음의 실존, 영의 실존을 그 존재 자체가 역사 하는 것을 보고 인정하는 것 같이 하나님의 실존도 그 역사 하심을 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물질계를 보는 이치도 그 특성에 맞는 이치가 있습니다. 영계를 보는 이치도 그 특성에 맞는 이치가 있습니다. 영계를 보는 이치를 물질계를 보는 이치와 같이 하려니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영계와 물질계 그 속성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것을 대하는 이치도 달라야 합니다.

같은 몸을 가지고 있더라도 마음이 발달한 사람이 다르고 영이 발달한 사람은 더 다릅니다. 이렇게 역사 하는 힘에 따라서 사람의 실력이 차이가 있음을 보아서 영의 존재, 마음의 존재 확인이 가능한 것입니다.

육안으로 보이면 실존,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면 부존(不存)이라고 말하는 자는 육안만 떠 있고 심안은 어두워졌으며 영안은 완전히 죽은 자입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나 미혹하는 악령의 역사도 있습니다.

실존의 존재 확인법을 육안으로 보이는 것으로 기준 삼지 말고 존재들이 역사 하는 그 힘을 보고 그 실존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만물들이 역사 함으로 그 실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피와 성령과 진리의 역사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실존을 나타내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의 실존 확인법은 육안으로 보이든지 보이지 않든지 그 존재 자체가 역사 하는 힘을 보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여! 우리의 영안을 밝혀 주시사 주님의 깊은 세계로 인도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