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개정판 고전1:30구원에 대한 반증적 논평

  선지자선교회

(서론)

 

한국교회가 본래 사용했던 성경책은 개역한글판이다. 그랬는데 한국교계는 현대어에 맞춘다면서 1998년에 개역개정판을 출판하였다. 그러나 개역개정판은 개정판이 되지 못하고 개악판이 되었다.

 

그러면 왜 개역개정판은 개정판이 되지 못하고 개악판이 되었는가? 개역개정판의 수많은 개악 중에서 하나 예를 들면 고전1:30이다. 즉 개역한글판에서 구속으로 된 것을 개역개정판에서는 구원으로 변개하였는데 이것이 도리어 개악이 된 것이다.

 

개역개정판 성경책 출판을 주관한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위원회의 개정에 대한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이번의 개정작업을 포함하여, 1911년에 성경전서가 출판된 이래 이어진 일련의 개정작업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원문이나 번역상의 문제점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 우리말의 구문과 맞춤법 및 표준어와 관련된 것이었으므로 문법과 표준어가 바뀔 때마다 수정 또는 개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번의 개정작업은 시기적으로나 필요성에 비추어 볼 때 유효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개역개정판의 실제 개정에 있어서는 구문과 맞춤법 및 표준어에 대한 범위를 넘어서 원문 번역에까지 변개하는 개악적 개정을 하였다. 그런 것은 고전1:30에서 개역한글판은 구속으로 된 것을 개역개정판에서는 구원으로 변개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 예를 든 것이며 전체적으로는 빙산의 일각이다.

 

(본론)

 

1장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

 

1. 개역한글판

 

개역한글판(고전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본래 개역한글판에서는 구속으로 되었다.

 

2. 개역개정판

 

[개역개정판]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개역개정판에서는 구원으로 변경하여 개악이 되었다.

 

그러면 구속과 구원의 진리적 도리의 차이는 무엇인가?

 

2장 구속과 구원

 

1. 구속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하셨다. 그러므로 구속은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을 말씀한다.

 

그러면 구속 곧 죄 사함은 무엇인가?

 

(5:6-11)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게 하셨다. 구속은 곧 사죄의 구속과 칭의의 구속과 화목의 구속이다.

 

1) 사죄의 구속

 

육신의 연약한 자를 하나님의 영(8:9)이 거하시는 산 영(고전15:45)의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이다.

 

2) 칭의의 구속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자를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구속하신 것이다.

 

3) 화목의 구속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를 영의 생각(8:6)으로 하나님과 화평하고 또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신 것이다.

 

2. 구원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를 구원하시되,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하셨다. 그러므로 구원은 중생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그러면 중생의 씻음은 무엇이며,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무엇인가?

 

1) 중생의 씻음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하셨다. 즉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2:1)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이 곧 중생의 씻음이다.

 

죄 사함의 구속은 곧 위의 ‘1. 구속에서 언급한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사죄의 구속과 칭의의 구속과 화목의 구속이다. 그러면 구속을 또한 중생의 씻음이라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범죄 하기 전 즉 하나님이 태초에 지은 사람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게 구속한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중생의 씻음에서 제일 핵심된 도리는, 사람이 범죄하여 여호와의 신이 사람에게 영원히 함께 하지 아니하는 육체(6:3)의 사람(혼과 몸)이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아 생령(2:7) 곧 산 영(고전15;45)의 사람(영과 혼과 몸)이 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중생의 씻음이다.

 

2) 성령의 새롭게 하심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하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1:7)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이것이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그러면 그 안에서 또한 믿어는 무엇이며,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은 무엇이기에 성령의 새롭게 하심인가?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사는 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사는 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보혜사 성령과 주의 성령)을 선물(2:38, 2:8)로 주신다. 그러므로 보배로운 믿음(벧후1:1)이라 하셨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14:16-17, 14:26, 15:26)주의 성령이 임하심(4:18)이다.

 

다음은 보혜사 성령의 임하심주의 성령의 임하심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보혜사 성령의 임하심

 

(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영원토록 함께 계시고(14;16-17),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14:26),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15:26) 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며, 그리고 이것이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주의 성령의 임하심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제사장 직책과 선지자 직책과 왕 직책을 세우시고)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육신의 연약한 자(5:6, 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 된 자(5:8, 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1:5) 의인이 되게), 눌린 자를 자유케(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5:10, 8:7)를 영의 생각(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4:18).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며, 그리고 이것이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결론)

 

고전1:30에서 개역한글판은 구속함이 되셨으니이다. 그런데 개역개정판은 구원함이 되셨으니로 개악을 하였다. 왜 개악인가? 그런 것은 구속과 구원은 진리적 도리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음(1:7)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으로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3:5)이다.

 

우리는 고전1:30에서 개역한글판은 구속함이로 된 것을 개역개정판에서는 구원함이로 변개한 것에 대하여 단순히 개악이라고 정죄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런 개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경 진리를 가감한 것이라고 말씀한다.

 

(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그러므로 개역개정판 출판을 주관한 대한성서공회는 회개하고 개역개정판을 폐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역개정판 개정위원회 위원들은 회개하고 개역개정판 폐기를 주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역개정판을 선택한 교단들은 회개하고 개역한글판으로 환원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역개정판을 사용한 목회자들은 회개하고 교인들에게 개역한글판으로 인도해야 한다.

 

 

- 2020. 12. 261차 원고

- 김반석 목사e06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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