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부산 서부교회 부임

  선지자선교회

13-1. 부산 서부교회 부임과 고신 그리고 처음 사랑

 

주님의 이 구속의 사랑만 알고

 

내가 거창 있을 때에는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 아무것도 아니고 나는 그때 교계에 명예도 없는 사람이고 또 무슨 신앙의 동지도 없는 사람이고 그저 여게서 올라온 사람 김신명씨라고 한 그분 여성도인데 그분 한 분을 개명 와서 그때 신사참배 때문에 거기서 고난 당하다가 이제 피해 가지고서 거기 산골에 자기 형부가 학교 선생이라서 그리 와 있는 그분 한 분 내가 접촉을 했고, 그분이 나를 접촉해 보고 난 다음에 그분이 부산 와 가지고서 소문을 내서 부산서 그때 박인순 선생이라 하는 분이 역부러 나를 찾아 와 가지고서 그분을 찾아서 만나봤고, 다른 이는 내가 도무지 만나보지 못했어. 만나보지 못하고 이러니까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요. 다만 주님의 이 구속의 사랑만 알고 그때 나는 살았었습니다. 그때 행동했습니다.

 

무보수로서 집사로서 그렇게 넷 교회

 

그때 행동도 내가 가정생활 하는 것이 아니고 가정생활은 집에 있을 때도 월요일 날만 하고 나머지기 남은 닷새 동안은 교회를 위해서 살았고 또 일주일 똑 한 달 동안에 셋 주간은 다른 교회에 순회하면서 오지도 안하고, 한 주간 집에 있다가 그 다음에는 돌아다니면서 무보수로서 집사로서 그렇게 넷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봤고,

 

나를 부산에 청할 때에는

 

이렇게 생활하다가 이거 그만 부산 나는 오기가 싫어서 이랬는데 자꾸 나를 부산에 청할 때에는 고신에 있는 한상동 한명동 오종덕 송상석 박윤선 박손혁 이인재 이 일곱 사람이 연명 날인해 가지고서 안 오면 안 된다고 송상석 목사님이 그 연명 날인한 편지를 가지고서 두 번 걸음 했습니다.

 

그래 내가 안 올라고 이라다가 나중에는아무래도 이분들이 그래도 이 진영에서는 제일 신앙에 머리되는 분들인데 연명 날인해 가지고 이러기까지 지금 하고 있는데 내가 안 가면 이거 안 되겠다.할 수 없어 그래 가지고 내가 여기 어게 됐어. 오고 싶어 온 것 아니오.

 

그때 서부교회는 와 보니까

 

그때 서부교회는 와 보니까 사백여 명 모이던 교회가 다 흩어져 버리고 저 동일교회가 여게서 김창인, 그때 조사님 때인데 그분이 모여 가지고 은혜가 있어서 사백여 명 모이다가 다 흩어져 버리고 동일교회로 갈라져 나가고 여게 본교회 와 보니까 사십 명 있습디다.

 

이랬는데 그때 운동이 김용학 집사님 그분이 부산에 지정여관이라. 교역자들 지정여관이라 할 만치 그렇게 대접을 많이 했는데, 그분이 들어서 김창인 목사하고 싸워 가지고서 김창인 목사가 다른 데로 그만 나가 버리고 여기 남은 사람 그러니까 그분과 운동하고 거기 늘 숙박하고 있는 그분들이기 때문에 그분과 운동을 해 가지고서 그래 그 운동이 일곱 목사님들이 다 단합을 해서 연명날인을 해 가지고서 제게 와서 했어. 나는 그 내용은 몰랐습니다.

 

일편단심 교회만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용은 몰랐고, 그 내용을 내가 알았으면 안 왔을 터인데 그 내용을 내가 몰랐기 때문에 왔습니다. 와 가지고서 여게서 신앙 생활 하는데 와서 보니까, 와서 보니까 첫째 시험에 내가 든 게 뭐이냐 하면은아무래도 내가 산골에 있던 조사 가 그때 조사 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조사 된 지가 일 년 반인가 됐습니다. 일 년 반 된 그때인데 이 산골 조사가 도시 교회에 나와 가지고 이렇게 큰 시비 있는 교회 나와 가지고 이 교회가 잘못되면 내게 문제가 되겠다. 나를 사람이라고 이래 청해 왔는데 이거 문제가 있다.이래서 일편단심 교회만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 거게서 주력을 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구속의 이 사랑 이것이 제일

 

교회 잘되기 위해서는 뭐 오만 짓이라도 다 해서 교회가 유익된다면은 이렇게 전심 전력 기울여 가지고서 이라니까, 그런 가운데서 교회가 잘되도록 할라 하니까 그 모든 남집사 여집사 모든 사람들 다 자주 만나서, 또 오해하면 오해를 풀어야 되겠고, 이해를 시켜야 되겠고, 또 같이 화친을 가져야 되겠고, 이라니까 차차 차차, 내가 요걸 알았으면 그때 알았으면은 그걸 내가 그렇게 안 했습니다.

 

알았으면 뭐 되든지 말든지 내게 무슨, 첫째는 하나님의 구속의 이 사랑 이것이 제일이지 그 외에 딴게 뭐 있겠느냐? 이것만 하고서 다 교회 안 되면 안 되고 되면 되고 나는 구속의 사랑에 감격돼서 거게 팔려서 거게 종이 돼 가지고 그것이 돼 가지고 나는 사는 그것만이 내 생활이다.이렇게 했으면 그때 그 시험에 들지 안하는 것인데, 와 보니까 이 교회 부흥시키고 유지시키는 것이 문제라, 교회 부흥시킬라면 이 사람들 비위를 다 맞춰 줘야 될 것이라.

 

나는 기생이다

 

이러니까 뭐 날마다 심방이 할 일입니다. 심방이 할 일이라. 여게서 심방하고 이 사람 비위 맞추고 나면 저기 또 삐뚤어져 틀리니까 또 저기 가서 또 비위 맞춰서 또 해야 되겠고, 이러니까 내가 속으로 심지어 말하기를나는 기생이다. 나는 기생이다. ? 이 집에 가서 한 시간 놀아줘야 되고 저 집에 가 한 시간 놀아줘야 되니까 참 자유 없는 인간이다.속으로 탄식을 하면서도 자꾸 그리 주력하고,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대로 설교를 해야 될 터인데

 

또 이 설교하면 그만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대로 설교를 해야 될 터인데 이거 일반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교리와 신조 거게 맞춰 가지고 설교를 해야 되니까. 거게 맞춰서, 속에 깨달은 점이 있지마는이거 말하면 이 사람들이 이단이라 할거다.? 내가 거창 있을 때에 이단이라 말을 듣고 왔기 때문에. 다른 데서 이단이라 말 안 하고 고려신학교서 나를 이단이라고 해서 제가 그 신학교 입학도 하기 전엔데, 입학을 했다 말았어. 고려신학교 시작할 때에 나를 오라 해서 내가 입학해 가지고 나흘 동안 공부하고 난 다음에공부할 필요가 없다.그라고 그만 가 버렸습니다.

 

그래도 고신에 속해야 되겠다

 

이랬는데 그 다음에 내게 속한 사람들이 차차 많아지니이제 어느 진영에 속하노? 내가 속하는 데는 그래도 고신에 속해야 되겠다.고신에 속했다는 것을 인정시키기 위해 가지고 내가 고려신학교를 왔었습니다.

 

고려신학교 와 가지고서 거게서 신앙 생활을 하면서 고려신학교를 거창 있으면서 여게서 다녔습니다. 내가 무슨 말 하다가 이랬지? 이래서 그래 와 보니까 내 깨달음과 깨달음 다른 것이 꽉 찼습니다. 이래 내 깨달음을 말하지 안하고 이제 그것은 연극을 합니다. 내 속에는 아니라는 것을 그래도 거기 맞춰서 증거를 해야 됩니다.

 

그때 예배당 소송 문제니, 또 신신학 문제니

 

이래 가지고 나왔는데 하나님이 나를 거기서 제명시켰어. 내가 그때 예배당 소송 문제니, 또 신신학 문제니, 이 모든 교리 문제니, 고려신학교의 정치학을 송상석 목사님이 가르쳤기 때문에송상석 목사님은 세상 정치가이지 성경 정치가 아닌데 어찌 시켰느냐?고려신학교에 대한 것 뭐 이런 것, 또 유엔군 철퇴하고 난 다음에 그때 모두 전국 교회가 다 혈서를 써 가지고 메시지 내고 시가행렬을 하고서 한 것 이런 것, 또 이 ICCC의 박사 학위를 받아 가지고 온 이런 것 뭐 이런 것을 백지(공연히) 말했다 말이오.

 

내가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거 미친 짓 했다 이렇게 생각이 돼요. ? 남의 일 간섭하다 백지, 그러거나 뭐라거나 나는 내나 신앙생활 했으면 되는 건데 도리어 그라다가 자꾸 이거 원수만 돼졌습니다.

 

이러니까 나중에 또 파수꾼 그 잡지를 폐간했기 때문에너희들이 국제 무대에서 사업주의로 나가고 찍해야 진리를 전파한다는 것은 파수꾼 잡지 이거 하나가 겨우 전파되는데 이것도 비용 든다고 안 하고 하니까 이게 뭐이냐? 그러면 내가 하겠다.

 

그래 가지고 돈 없는데 그때 돈을 대 가지고서 서부교회서 단독 파수꾼 잡지를 얼마 동안 계속을 했어. 계속하니까 또 자기네들이 나중에 가 안 됐는가 그걸 도로 달라 해서, 그뭐 줄 터이니까 도로 가져가서 잘하라고. 이랬는데 이러니까 뭐 그만 내가 신앙생활을 이거보고 저거보고 그 교리를 맞출라 하지, 또 다른 사람들 비위 맞출라 하지, 또 그분들이 뭐 안 됐다 말이 있기 때문에 자꾸 그래도 좀 비위를 맞출라고 위에 있는 사람들의 비위 맞추려다 보니까 하나님 다 잊어버렸어.

 

이라다가 제명되고 난 다음에

 

이라다가 제명되고 난 다음에 비로소 내가 요사이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 깨닫게 해 주시는 걸 전파합니다. 해도 처음에 말하면 대번 소문나고 이단이라 할 것이기 때문에 못 하고 처음에 쪼끄매 싹수만 쪼끄매 내 놨다가, 그 다음에 대집회 가면은 한번 더 내놨다가, 내놔 가지고 반응이 차차차 나가서 아무 말이 없고 이라면 좀 더 내놨다가, 또 내놨다가 또 뭐이 나오면 또 가만 숨겼다가, 이래 가지고 내가 전파를 했습니다.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 걸 지금은 담대히 말하지마는 그전에 내가 말하지 안해, 논문 써라 뭐 써라 해도. 그거 말하면 도로 그분들이 반발심 내면은 언제 반발하던 것을 언제 머리 숙이고 돌아올 리는 없으니까 가만히 둬 두면 될 것이라 해 가지고서, 지금은 아마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하는 것을 반대하고 나설 사람은 세계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는 굉장했었어. 박윤선목사님이 그걸 반대하고서 나선 사람이요 이인재 목사님도 나와 그거 때문에 반대해 가지고 갈라진 사람이요, 이래 가지고서 다 그때 지내가서, 주님은 알고 있지마는 여러분들은 다 몰라요.

 

내가 그만 처음 사랑을 버렸어

 

이랬는데 내가 그거 보고 이래 하다 보니까 이 서부교회 교회는 차차 차차 불어서 교회는 커졌지마는 내가 그만 처음 사랑을 버렸어. 이 처음 사랑을 버리고 여러분들에게 하는 행위는 내가 이런 행위 해.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안하고 거짓된 사도를 시험해서 드러내고 이렇게 주를 위해서 참고 견디고 열심 있고 게으르지 안한 것이런 것은 여러분들한테 내가 했지마는 실은 이 하나님의 사랑과 처음사랑과 처음행위를 끊고 엉뚱한 일 한 내가 에베소 교회라. 에베소 교회라, 지금.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이 아주 끊어진 건 아니지마는 예를 들면 연결이 이만치 이만한 밧줄로 연결될 사람이 요만치 밧줄로 연결됐으면은 그만치 약하니까 그만치 강한 것이 오면 떨어질 것이라 말이오.

 

신사참배 반대하고

 

내가 거창 있을 때에는 왜정 말년 때에 다른 사람은 신사참배를 옥에 갇힌 거, 나는 옥에 갇히지도 안하고 맞지도 안하고 마음대로 신사참배 반대하고 돌아다녔다 그 말이오. 일본 부장이 와 가지고 매일 나하고 신강해도 나는 거기 굴하지 안하고 그거는 하나님의 계명인 줄 알기 때문에 못 한다 못 한다이렇게 나왔다 그거요.

 

그래서 저만 나온 게 아니라, 저만 반대한 게 아니라 제가 시무하고 있는 개명교회 교인은 어린 학생 하나도 신사참배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일 유명하기는 개명교회가 고제면에서, 고제면에 교회가 너()이 있는데 제일 유명했습니다. 제일 유명하고 까다롭고 제일 유명했는데 한 사람도 신사참배 안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이 연결로 인해서 하나님이 지키시니까 다른 것들이 말을 못했다 그거요.

 

하루 세 번씩 종치고 하나님 앞에 예배

 

이라다가 또 6,25가 나고 난 다음에 제가 있다 나온 개명교회, 제가 시무하던 그 봉산교회 제가 지금 이전해 가지고 있는 위천교회, 위천교회 있을 때에 그 군내에서 셋 교회는 공산주의 그 점령 안에서도 매일 죽인다 소리를 늘 계속 들으면서도 하루 세 번씩 종치고 하나님 앞에 예배 드렸습니다.

 

그라다가 이제 그 둘은 예배드리다가 나중에 가서 정상적으로 대예배보고 새벽기도보고 이것만 보고 위천교회는 두 달 동안, 6,25 전쟁 난 후에 두 달 동안 계속해서 대집회를 계속해서 했었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6,25 이듬해 제가 여기 왔었는데, 여기 와 가지고서 그만 그때 그 거석이 없어.

 

독약을 먹이고 독침을 찌르고 이라면

 

지금은 내가 볼 때에 앞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오면 어찌 되겠느냐? 공산주의들이 와서 나를 고문과 고형을 하고, 지금도 기도하는 거는독약을 먹이고 독침을 찌르고 이라면 독약의 약 기운으로 독침의 약 기운으로써 고문과 고형을 이래 하면은 거게 내가 이길 만한 능력이 없고 그때에 내가 헛된 입술을 놀릴까? 그때 내가 안 할 말을 할까? 그때 내가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주님을 부인하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안할까?이래서 기도는 하지마는 그런 능력이 내게 있나 없나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7, 10, 5 월 새벽)

 

13-2. 서울 목회 간청 거절

 

변영태씨 부인

 

변영태씨 부인, 그때 국무총리 변영태씨 부인이 나를 붙들고서이 보시소. 지금 양도천 목사 집회한다고 십만 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거기 가야 아무 진리도 없고 이래도 지금 저래 모여들고 하니까 이 모든 사람들이 진리에 갈급해서 이런 것이니까 아무래도 백 조사님이 서울 올라와야 됩니다.” 하는 것을 붙들고서 말을 했습니다.

 

내 사명은 부산 있기 때문에

 

나는 여기 올라올 수가 없고 내 사명은 부산 있기 때문에 나는 올 수 없다이라니까 자기가 말하기를 우리나라에 지금 장관 그 다섯 분의 부인들이 아무래도 이거 신앙 가져야 되기 때문에 다섯 분들이 합의를 해 가지고 조사님이 한 달에 한번만 올라와 가지고 하면 우리가 비행기표 다 여비를 다 댈 터이니까 한번만 올라와 가지고 꼭 한 달에 한번씩만 설교를 해 줘도 우리가 살아나겠고 우리가 살아나면은 장관들이 살아나고 이 나라가 살아나기 때문에 와서 해 달라고 그것을 간청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듣지를 안 했습니다.

 

나는 같이 평가하기 때문에

 

? 사람도 거기는 장관 부인들 이래 모이니까 큰 모임 같지마는 장관이나 장관 부인이나 대통령이나 저 가난한 사람 한 사람이나 꼭 사람을 나는 같이 평가하기 때문에, 이래서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라, 또 눈먼 자, 병신, 절뚝발이, 모든 이 세상에서 패배자, 세상의 실패자에게 복음을 전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복음을 딱 받아들여 가지고 그렇지 안 할 것이기 때문에

 

내 사상의 깨달은 건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거 하는 것이 그게 그 사람들이 그래봤자, 올라 가봤자 돈이나 내서 그렇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봤자 복음을 딱 받아들여 가지고 그렇지 안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뭐할라고 명예 영광 탐하는 사람 모양으로 내가 그래 다 그럴 필요 없다,안 한다그래 거부를 하고 말았었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6, 10, 13 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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