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한국 교계의 정황

  선지자선교회

17-1. 신신학과 장로교 분파

 

정통 장로교와 신신학 장로교

 

어제 손 목사님이 오셔서 우상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우상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느낀 사람들이 없습니다.

 

왜정 말년 신사참배가 지나가기 전에는 한국에 있는 장로교가 두 종류뿐이었습니다. 하나는 보수정통 장로교가 있었고 또 하나는 신신학 장로교가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그 장로교가 있기는 있었지만 머리를 들지 못했습니다.

 

송창근 목사님이라는 신신학의 제일 시발자

 

송창근 목사님이라는 그 목사님이 신신학의 제일 시발자로, 그 사람이 신신학을 졸업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가지고 발을 붙이지 못해서 그저 가면을 쓰고 이렇게 목회를 하는데 김천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때는 신신학이라는 것을 몰랐으나 그 가르치는 것이 너무 인본주의이고 세상주의이고 이러니까 그 교회가 별로 안 됐었습니다. 김천읍에 있는데 저도 한 번 가 봤습니다.

 

신사참배 강요시 여러 종류의 신앙

 

이라다가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문제 때문에 큰 환난이 일어나고 나서 장로교에 신앙 지키는 사람들은 거의 다 감옥에 들어가고, 또 신앙 지키는 사람들은 망명해서 일본으로, 만주로 이렇게 다 망명해서 갔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만 은둔생활로 흔적을 나타내지 안하고 그저 숨어서 이렇게 그만 농촌에 들어가서 숨고 이런 노동판에 들어가서 숨어서 목사들 전도사들이 대개 자기 자체를 감추고 변호를 해 가지고 그래 지내고, 또 그때에 그 신사참배로 더불어 실지로 대항적으로 이래 싸우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아무 고난도 받지 안하고 날마다 신사참배 문제 때문에 이렇게 대결해서 그저 싸우면서 이래 늘 반대운동을 하면서 지내는 그런 사람들도 약간 있었습니다.

 

오행선 장로님

 

어제도 내가 그걸 물었는데, 오행선 장로라고 하는 그 장로는 감옥에 가서 처음에 단식 기도를 감옥에 가 가지고서 삼십 일 하니까 그 사람들이 이라면 감옥에서 죽는다고, 자기네들은 식민정치에 있어서는 사람 죽이는 것이 그것이 크게 엄하게 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도 죽이지 않기로, ? 사람 죽인 숫자가 자꾸 많아 가면 세계 여론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삼십일 굶으니까 죽겠다 해 가지고서 내 보냈습니다. 병보석으로 내 보냈다가 다시 감옥에, 신사참배를 반대를 해서 감옥에 갖다 가뒀는데 그 뒤에 갇혀 가지고는 사십 일, 주님은 사십 일 금식했는데 자기가 사십일 금식하면 교만해진다고 해 가지고서 사십일에 하루를 빼고 삼십구일을 단식을 하니까 그 사람들이 그만 내보내고 다시는 붙들어 들이지를 안했습니다. 안 해서 자유로 돌아다니면서 신사참배 반대하면서 계속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래 들어 나게 그렇게 지낸 사람들은 별로 이 없었습니다.

 

장로교가 그때부터 셋으로 나눠져

 

그래서 장로교가 그때부터 셋으로 나눠졌습니다. 신신학 장로교는 송창근 목사 그분의 가는 길 하나뿐이었고, 보수 장로교는 신사참배 반대하는 사람들과 신사참배를 인정하는 사람들과의 두 조류로 나눠졌습니다, 나눠지고.

 

평양신학교가 신신학 신학교가 되어

 

그때에 평양신학교가 정통 신학교였는데 그 평양신학교를 일본 정부에서 정통신학을 하지 못하도록 해서, 또 할래야 뭐 선교사들은 다 들어가 버렸고 또 남아 있는 정통신학의 정통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잘 믿는 사람은 감옥에 들어갔고, 나머지기는 다 꺾어졌기 때문에 있었지만 정통을 가르치지를 못하고 이렇게 있어서 평양신학교가 신신학 신학교가 됐습니다. 신신학 신학교가 돼 가지고 제일 처음에 그 신신학 신학교에 교장이 채필근 목사라고 하는 그분이 신신학 신학교 교장이 됐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만 한국에는 신신학 세력이 그때 왜정 말년 때에 신신학 세력이 왈칵 왕성했습니다. 그때 한 오 년간 신신학이 평양신학교에서 마구 학생들을 입학을 시켜 가지고서 배출해서 많은 학생들을 배출시켜서 신신학 계통이 크게 흥왕했습니다.

 

인간 지식에 맞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신신학

 

그라고 난 다음에 해방이 되자 신신학은 그 평양신학교를 내놓게됐고, 그 신신학들은 뭐 신사참배 그런 것이 상관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 상관이 없는 인본주의 신학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신학이라 하면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신신학이라고 하면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하는 인본주의 신학이요, 또 그 신학이 과학적인 신학입니다. 과학에 맞는 것이면 믿고 과학에 맞지 않는 것이면 믿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해석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신 거게 대한 해석은 그때에 갈릴리 바다에는 암석으로 인해서 가다가는 물이 줄어질 때에는 암석이 주루루 있다. 이래서 그때 예수님께서 암석을 주름잡아 타 가지고서 그래 온 것이지 물 위로 걸어온 건 아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는 것이 그것이 신신학입니다. 어쩌든지 모든 성경을 과학에 맞도록, 인간 지식에 맞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신신학입니다.

 

신신학의 김재준과 보수신학의 박윤선

 

신신학이 크게 많이 됐고 또 보수 신학은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신사참배 하고 안 하고, 하는 걸로 갈라졌는데 그래 그때에 해방 후에 신신학으로 더불어 대결한 사람은 누구냐? 신신학의 그때 학자는 제일 유력한 학자가 김재준 목사님이라고 하는 그분이 신신학의 유력한 학자였고, 또 보수 진영에 제일 유력한 학자는 누군고 하면 박윤선목사였습니다.

 

그래서 그 신신학을 잘 모르기 때문에 박윤선 목사님과 김재준씨를 한 강단에다 청해 가지고서 한 시간은 이 분이 인도하고, 한 시간은 저 분이 인도해서, 그때에 여기 내가 위치는 모르겠습니다. 부산 여기 보수동 무슨 예배당에서 했는데 저도 그때 참석을 했습니다.

 

그때에 참석을 해서 비로소 신신학이 어떤 것이라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같은 성경을 해석할 때에 저 사람들은 저렇게 해석하고, 보수파는 이렇게 해석한다 할 때에 거게 다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저것이 신신학이로구나' 그 몇 마디 들어보고 신신학의 종류가 어떻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신신학이 들어가면 교회는 망하는 것입니다. 신신학이 들어가면 교회가 망하고 또 신신학이 들어가면 그 국가도 망하게 됩니다.

 

보수파라, 법통이라, 정통이라

 

그래서 그때에 고신이라는 고신이 장로교에서 개혁이 돼 가지고서 보수파라, 법통이라, 정통이라 이런 말을 붙여 가지고, 그때에 장로교가 신사참배 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갈라져서, 하나는 고신이 됐고, 고려신학교를 세웠고, 그래서 고신이라, 고려신학교라, 고려 진영이라 이랍니다. 됐고. 한 군데는 또 총신이라 이래 가지고서 그래 했습니다.

 

그라다가 그때에 사람들이 신사참배를 안 한 사람들은 적지만 신사참배 한 사람들 가운데도 '신사참배 한 것이 틀렸다. 그게 우상숭배다.' 그라기 때문에 이 신사참배 한 데에 속하지 안하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데로 사람들이 마구 쏟아져서 따랐습니다. 이게 옳은 정통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리 따르겠다, 이래 가지고 그때에 고신이라는 것이 신사참배 문제로써 일어서 가지고서 한 노선이 갈라졌었습니다.

 

그때에 신사참배를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

 

무슨 교리와 신조에 대한 무슨 성경 진리 해석적으로 갈라진 것이 아니고, 그때에 신사참배를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 하는 것으로써 그렇게 갈라졌었습니다. 갈라져서 그때 그 두 교파로 갈라질 때에 그때에 손양원 목사님이 그 집회에 강사로 하고 해방 후에 처음으로 조선인데 그전에는 한국에 있는 보수 장로교 총회가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대구에서 열렸는데 그때도 제가 가서 참석을 했습니다.

 

좀 이상하게 날뛰기 때문에 가서 볼라고 참석을 했는데 그때에 시비가 많이 있어 가지고서 보수 진영, 내나 신사참배 반대하는 편에 있는 그 목사들은 다 못난 목사요. 또 신사참배를 국가 의식이라고 한 그 사람들은 모두 잘 생기고 훌륭한 목사들입니다.

 

이래 가지고서, 그때 나뉠 때에 그 판정되기를 신사참배 하는 것은 우상 숭배라 하는 것을 손양원 목사님이 똑똑히 증거를 하고, 이래서 그만 그때 신사참배한 자들은 아주 뭐 그만 멸시를 당하게 됐습니다. 숫자는 많고 나기는 잘났지만 죄를 지었다고 그들이 회개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를 하면서도 신사참배 안 하는 데에 따르지 안하고 신사참배를 인정한 그리로 따르는 사람들과 거의 반반이 갈라졌습니다. 반반이 갈라져 가지고서 고신과 하나는 총신 이래 갈라졌습니다.

 

둘만 있었는데, 그때에는 신사참배 우상 숭배라는 말이 아주 많이 강조됐고 모든 사람들이 거게 대해서 많은 말을 했기 때문에 우상에 대한 지식이 상당히 그때 강조되고 모두 느끼고 있었습니다.

 

고신은 우상숭배에 대해서 자꾸 그것을 강조해서

 

그러나 그 후부터 고신은 우상숭배에 대해서 자꾸 그것을 강조해서 그것을 주장하게 되고 하니까 강하게 주장한 교파가 돼졌고 합동이니 하는 그 총신이라 하는 거게는 우상 숭배하는 것을, 신사참배 한 것을 죄라는 걸 인정을 하기는 하지만 별로 이 인정하지 않는 사람, 또 부득이 해서 딱 말하면 인정하지만 그렇지 안 하면 인정치 안하고만 사람 이런 사람들이, 이래서 고신 외에 있는 교파에서는 우상숭배란 말을 아주 숨기고 가뤄 버리고 그 말을 듣기 싫으니까 말도 하지 안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 고신이라는 고신에 머리되는 그런 목사들은 신사참배가 중요한 곧 둘째 계명이면서 첫째 계명입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는 그 말이 곧 하나님 외에 다른 신적인, 자기가 복을 받고 위하고 섬기고 자기를 보호해 준다는 이거는 하나님뿐인데 하나님의 위치에다 두고서 하는 그 신은 네게 두지 말라, 나 외에는 두지 말라 하는 그 말이 내나 우상을 말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이제 우상 해석으로서 이계명에 우상을 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고신이라는 그 진영에는 우상에 대한 지식이 상당히 강조돼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신 외에는 우상이라는 지식이 아주 흐미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고신도 지금 와서는 우상이라 하는 것을 그렇게 말을 많이 안 합니다. 말 안 해서 고신에서도 뭐 우상이 뭐인지 또 신사참배는 말만 들었지 벌써 사십여 년이 지나갔기 때문에 별로 이 말을 안 합니다.

 

이근삼 목사님이라고 고신에 총장으로 있던 사람

 

그러나 먼저 단군 신사에 대해서 말을 할 때에 다른 진영에서는 말하지 안 했습니다. 말하지 안하고 그때 그 뜨문뜨문 말은 했는데 이인재 목사님이 여게 와서 집회할 때에 그때에 거기에 이근삼 목사님이라고 고신에 총장으로 있던 사람이 그때 와서 저하고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이인재 목사님과 같이 하면서 내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목사님, 아주 귀한 주장을 했습디다.' '뭐이요' 이라니 거기서 '그래 단군 신사에 대해서 그것이 곧 국신이 아니고 그것은 하나의 자연인이 아니고 가공인이라'. 어제도 그 말을 하데요. 단군은 참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만든 사람이라 그 말입니다.

 

그래 그것을 말을 했는데 그때 제가 어디 한 번 신문에 한 번 이근삼 목사님이 그 말을 한 것을 제가 기독교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이근삼 목사님에게 아주 그 귀한 것을 주장을 했다고, 모두 신사참배에 과거에 그 쓰린 그 겪음을 가지고, 그분들 다 신사참배 했습니다. 쓰린 겪음을 갖고 이래서 아주 기회가 왔는데 잘 증거 했다고 거게 대해서 제가 많은 말을 했습니다.

 

그 뒤에 보니까 그분이 계속적으로 증거를 해서 새로 불이 일어났습니다. 이래 가지고 그 단군 신사를 반대하는 일을 온 전국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거의 다 장로교에서는 말을 했고, 다른 이런 교파 진영에서는 우상이 뭐인지를 모릅니다.

 

그랬는데 어제 그 손 목사님이 오셔 가지고 아주 요긴한 말씀을 증거 해 줬습니다. 우상 숭배에 대한 것을 요긴한 말씀을 많이 증거를 해 줬는데 여러분들이 우상 숭배에 대해서 어제 내가 그 자리에서 그걸 좀 말을 할라 하다가 우상 숭배에 대해서 손 목사님이 증거한 그 은혜가 오히려 삭감될까 해서 제가 말을 안 했습니다.

 

당신과 밀접한 하나가 되어 있다는 이 능력은

 

어제 식사하면서 둘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겪은 대로는 이 우상숭배를 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일반적인 은혜는 줍니다. 뭐 설교의 은혜도 주시고, 또 육체의 축복의 은혜도 주시고, 이적을 행하는 은혜도 주시고, 그런 은혜는 주십니다. 주는데 꼭 하나 안 주는 것 있습니다. 뭐인고 하니 하나님이 당신이 당신과 밀접한 하나가 되어 있다는 이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8, 3, 14 월 새벽)

 

17-2. 신신학과 고소파와 반소파

 

문서계시에 대한 악령의 목적

 

이 문서 계시에 대해서도 악령은 우리에게 어지럽도록 할라 하는 것이 악령의 목적입니다. 그 자연계시로서도 넉넉했는데 자연계시로 가지고도 넉넉했는데 마귀가 흔들어 가지고 우리를 어지럽게 어둡게 만들어서 자연계시 가지고는 안 됩니다. 타락 후에는 자연계시 가지고 안 돼서 하나님께서 특별계시를 주셨습니다. 지금도 더 확실한 문서계시를 우리에게 주셨지만 이 문서계시에 대해서 어지럽게 할라 하는 것이 악령의 역사입니다.

 

천주교와 개혁교의 합동번역

 

오늘도 어지럽게 할라고 이야기 성경도 나왔고. 또 이 각국 말로 번역될 때에 우리 바로 나가는 우리 정통 교회에 속한 교인들을 여러 수십만 명을 죽여서 천주교에다가 일치시킬라고 애를 썼던 그 천주교와 이 개혁교가 합동번역을 하도록 이렇게까지 모두 다 혼합됐고 벌써 과거에 수십만 명들 이 순교하면서 해 놓은 그것을 지금 혼탁 시키고 있습니다. 그 혼탁을 왜 혼탁을 시키느냐? 시키는 이유는 돈 때문에 그러하다 결론은 그것입니다. 천주교에 돈이 많으니까.

 

신신학이 들어옴

 

우리 한국 교회도 해방 후에 고려신학교 하나가 서서 있었고, 그 전에 조선 나라로 있을 때에 평양신학교가 있었는데 그 평양신학교는 정통보수 신학교였습니다. 그 한 신학교 밖에 없었는데, 그때에 송창근목사님이라고 하는 그 목사님이 미국에서 신신학을 공부해 가지고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신신학을 펼라고 했으나 그 때는 모두 정신들이 똑바로 정통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그 신신학을 반대를 해서 송창근목사님이 그 신신학을 주장을 했으나 힘을 쓰지 못하고 그저 있는가 없는가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라다가 그게 언제 그 신신학이 머리를 들고 힘을 썼느냐 하면, 왜정 말년 때에 그 때에 일본 나라의 그 정권이 평양 전통신학을 이 신신학화 시킬라고 애를 썼습니다. 신신학화 시킬라고 애를 써서 정통 신학자 선교사들은 다 본국으로 돌려보냈고, 죽이지는 못하고 돌려보냈고. 또 우리나라에 있는 정통 신학자들은 다 옥에다 가될 버렸고, 또 갇히기 싫은 사람은 다른 나라로 망명을 했고 그래서 그 옥에 가두려고 잡으러 다닐 때에 그만 다른 나라로 망명해서 유지된 그런 정통 신학자들도 있었고, 여게 있으면서 신학을 정통신학을 고집하고 그와 같이 가르칠려고 할 때에 감옥에 다 갇혀 버렸습니다.

 

이는 가두고 그 때에 누구를 들어 세웠느냐 하면 송창근 목사님이 그 때에 가져왔던 그 신학을 평양에다가 그런 분들을 등용했습니다. 송창근목사님. 또 채필근목사님이라고 그 분이 아주 광문다학으로서 대단히 독서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라 그렇게 말하는 아주 대학자입니다.

 

채필근목사님이 신신학인데 그 분을 또 교장으로 세웠습니다. 그래 가지고 평양신학교가 가속도로 왜정 말년에 신신학으로 화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정통신학은 없고 신신학뿐이었습니다.

 

이라다가 8.15 해방 후에, 그 때에 벌써 신신학이 들어온지 뭐 몇 해 안 됐는데 목사들도 교인들도 다 신신학으로 화()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신신학은 인본주의요 세상을 근본으로 한 세본주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듣고 맞습니다.

 

그 구약 성경 때 보면 바리새교 말고 그 사두개교라고 있었습니다. 유대 나라에 사두개교가 있었고 바리새교가 있었는데 바리새교는 하늘의 소망을 가진 정통들이고, 사두개교는 하늘의 소망을 가지지 안 하고 땅의 소망을 가진 그 정통들입니다. 땅의 소망을 가진 정통들인데 그 사람들이 그 때도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그만 갑자기 인본교회가 됐고 신본교회는 다 파묻혀 버렸고, 또 지상 천국, 또 사회개량 이런 그 신신학으로 다 화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신신학이 들어 왔었는데 해방 후에 이게 개혁이 돼 가지고 정통 신학만 용납하고 신신학은 다 모든 전국이 다 이거는 신신학이다 하고 대항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에 채필근 목사님이 거처할 곳이 없을 만치 이렇게 몰리게 됐고, 또 그 뒤에 아주 계속해서 대학자라고 그 때에 인기를 끈 김재준 교수라고, 김재준 교수라고 그 분이 해방 전에는 한국 나라의 제일 대신학 교수로서 권위 있었는데 그 분이 해방 후에도 그 신신학 그것을 주장을 하고 이랬었습니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정통에 그만 몰려져 버렸었습니다.

 

박윤선목사님과 김재준 목사님의 강의 비교

 

몰려서 그때 한번은 그 정통 신학에 속한 박윤선 목사님과 또 그 김재준 목사님과 둘이 다 서로 정통이라고 하니까 우리가 그거 모르겠으니까 한번 강의를 들어보자, 한 자리에서 좀 두 분의 강의를 해 달라 하면서 그때 그 두 교수를 청해 가지고 그때가 그 뭐 수정동 어디 던가, 무슨 어덴가 내가 장소는 지금 잊어 버렸습니다. 나도 그때 거게 참석을 했습니다.

 

초량교회인가 어떤 교회인가 뭐 어디 그저 위에 어디입니다. 제가 가서 참석을 나도 그때 했었습니다. 했는데 먼저 김재준그 교수를 강의를 하라고 해서 그 분이 처음에 강의를 했습니다. 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박윤선 또 그 교수가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했을 때 그때에 김재준 목사의 그 강의하는 것이 틀린 것을 모두 다 적어 가지고 그 학생들이 이거 틀렸다 교인들이 이거 틀렸다 이러니까 신신학이다이 박윤선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고 한 교리에 대해서 둘이 말하는데 이것이 어느 게 옳으냐? 그 둘 말하는 가운데서 박윤선 목사님의 교리가 옳고 저게 틀렸다 하는 것이 정죄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테 갖다 대 놓으니까 그래 인제 확실히 알아서 그만 그때 신신학이 꼼짝을 못하게 됐습니다.

 

박형룡 박사와 박윤선 목사

 

이랬었는데 그때에는 고신 교파가 신사참배 안하고 이래서 제일 정통이라 이래 가지고 다 모두 고신으로 몰려서 그때 뭐 그 조선 교회로 있던 교회가 다 신사참배 했었는데 해방 후에 이 한국이라는 그 이름으로 국명을 갈고 난 다음에 한국 교회가 됐는데 한국 교회가 전부 고신으로 쫙 다 밀렸습니다. 밀리고 뭐 거게 반대하는 교회들 없이 고신 교파로 하나 통일 될 만치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게 될 때에 그때에 박윤선 목사님은 아직까지 소장파고 아주 권위 있는 그런 노숙한 교수가 있으니까 그 분을 청해오자 하는데 그 분은 어떤 분인고 하니 박형룡 교수였습니다. 박형룡 박사인데 그 박형룡 박사를 그 때에 청해서 여기 광복동 고려신학교 와 가지고 그때에 거기서 교장으로 있고 그래서 인제 박윤선 목사님은 그 다음에 그 교수로 있고 이래 있었었는데, 그 박형룡 박사가 만주에 있었는데 그때 벌써 그럴 때니까 해방 후니까 거기는 전부 공산국가입니다. 공산국가 있는데 그 안에 들어 가지고 있는 그 분을 빼내올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빼내올 수가 없었는데 그때 누구든지 인도하러 가는 사람도 생명 내놓고 가야 되고 거기서 오는 데도 중간에 다 살해를 당하지.

 

만주에는 좀 낫지만 이북이라 하는 데는 아주 강력히 반대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게는 그 기독자나 민주주의의 사람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강력한 곳이었기 때문에 거게 아무도 박형룡 박사를 모시러 갈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그때 여기 송상석 목사님이 자기가 모시러 가겠다고 해 가지고 참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지금 인제 과거에 신사참배하고 나니까 너무 원통해서 '아무래도 정통신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야 우리나라가 살지 신신학이 들어오면 우리나라는 망한다' 그래 가지고 그분이 참 애국심이요 애민족심이요 또 기독교를 아주 사랑하는 이 열심에서 갔습니다. 가서 그래 하나님의 참 도우심을 입어 가지고 기적적으로 그 박형룡 교수를 모시고 와서 여게 그때 그 고려신학교 교장으로 앉혔습니다.

 

교장으로 앉혔었는데 그 교장으로 있다가 박형룡 박사가 '아무래도 여게는 지금 박윤선 목사님이 여게 계시고 하니까 내가 뭐 둘이 한 군데 바라고 앉았을 것이 아니라 나는 서울에 가서 신학교를 세워야 되겠다 그렇게 말하면서 서울을 갈라고 했습니다. '서울 갈게 아니라 신학교는 단일 신학교로 하자' 이렇게 말렸으나 '나도 가서 거기 신학교를 따로 하나 세우고 이 두 일군들이 여기 기다릴 게 뭐 있겠느냐' 이랬는데 실은 그때 박형룡 박사가 박윤선 그 교수만 못했습니다. 좀 실력이 달리고(모자라고) 모든 은혜가 좀 떨어지고 이러니까 인기가 없었다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가 그 서울 가서 세울라고 이라면서 그래 서울 가서 신학교를 세웠습니다. 그것이 총신 신학교입니다.

 

박형룡 박사의 카나다 신신학 교수 용납

 

총신신학교인데 세울 때에 그때 그만 서울 가서 세우면 어짜든지 정통 신학자들만 다 데려다가 교수로 삼고 아주 신신학이라는 것은 용납지 않도록 하라. 이러니까 그때는 여기 고신에 속한 사람들이 다 권위가 있습니다. 전부 다 그리 다 온 전국 교회가 그리 다 소망을 가지고 기울여지고 있기 때문에 그 분이 있다가 ', 내가 뭐 이제 그런 것 세우지 안하고 어쨌든 간에 신신학 그런 건 용납지 안하고 정통 신학교를 세우겠다' 그렇게 말을 하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박윤선 박사도 신사참배는 안 했습니다. 왜 안 했느냐 하면 그 분은 그 때에 일본 나라로 망명해 가지고 거기에서 숨어서 있으면서 참배는 하지 않았지만 숨어 다녔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세울 때에 카나다에 있는 그 신신학 교수를 청해 올라고 이렇게 하니까 그 신신학자를 청해 오지 말아라 이렇게 할 때 그때 뭐 누가 별로 아는 사람 없었는데 한부선 목사님이 '그 신신학 교수 청해 오면 우리나라가 망한다, 이러니까 청해 오지 말아라.' 이랄 때에 그 분이 답하기를 '나는 이 돈이 없어서 이 신학교를 할라 해도 돈이 없어 못하는데 카나다에 있는 그 신신학 교수들을 우리가 청해서 용납을 하면 거기서 이 신학교 할 만한 그런 모든 자금들을 돈을 대 줄라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부득이 돈 없는 사람이라 이 신학교 할라 하면 돈 있는 그들을 청해들이겠다.' 그래 가지고 그때 카나다에 있는 신신학 그 학자들을 청해 가지고 그 교수로 몇 명을 썼습니다.

 

그래 가지고 해방 직후에 완전히 우리 한국 나라가 개혁 그 정통 신학교로 완전히 개혁된 것을 개혁된 그것을 박형룡 박사가 신신학과 범벅을 하는 그런 일을 시작을 했었습니다. 했었는데 그 일이 어떻게 될란지 앞으로 하나님 심판대 앞에 가면 어떻게 될란지 그걸 모르겠습니다.

 

한부선 목사님의 신신학 반대운동

 

그래 가지고 그때 한부선 목사님이 그것을 말리느라고 가서 아무리 말해도 안 듣고 또 그라면 내가 돈 줄테니, 돈 줄만한 그 정통에는 돈이 없습니다. 어디든지 정통 교회는 돈이 없어요. () 메마르다 그 말이오. 지금도 돈은 천주교가 제일 많습니다.

 

세상에서 세상주의자들 그 불택자들. 세상주의자들. 그 세상은 마귀의 세상 아닙니까? 거게 속한 자들이 이 속화 운동하는 데에는 악령이 주관해 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거는 세상이나 비슷하게 다 부강합니다. 권세도 많고 돈도 많고, 이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그래 가지고 한부선 목사님이 그것 때문에 그만 권하다 권하다 안 돼서 한국이 망한다는 것을 거석해 가지고 그 분이 참 정신이 실신되기까지 그렇게 막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서울에서 우리나라에 신신학 들어오면 우리나라 망한다고 하는 것을 외치다가 나중에는 붙드니까 뿌리치다가 옷을 벗어버리고 벗고 시가에 다니면서 외쳤습니다.

 

그렇게까지 불타게 외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게 대해서 별 관심을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인제 그러니까 아무래도 저 지금 정신이 저게 어찌 돌았으니까 아무래도 좀 이것을 좀 감금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인제 그때 유치장에다가 좀 가뒀습니다. 가두니까 한부선 목사님이 그 안에 있으면 옷을 버려 버리고 마구 그 대변을 해서 전부 온 벽에다 막 칠해 놓고 '우리나라가 이제 신신학이 들어오니 우리나라는 이렇게 똥칠한다. 똥칠이 돼서 이 나라는 망한다.' 그것을 강하게 외치다가 참 나중에 얼마 동안 지나고 난 다음에 그 분이 '뭐 이미 안 됐으니까 내가 암만 이래 봐야 나 할 일은 다 했고 더 할 것이 없다' 이래 가지고 그 분이 다시 마음을 안정을 해 가지고 여기서 고려신학교를 하나 주장해 가지고 정통을 그렇게 그 운동을 했습니다.

 

한부선 목사님의 복음병원 시작

 

그라면서 그 분이 정통 운동을 하면서 조금 이상한 일이 있은 것은, 그렇게 하면서 아무래도 고려신학교가 자꾸 커지니까 의료기관이나 이런 것도 있어야 되겠다 해 가지고 복음병원을 그 분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병원을 그때 장기려 박사를 그 주동 의사로 해 가지고 복음병원을 시작했는데 그 복음병원이 그때 저 영도 있으면서도 약간 그게 눈을 텄었는데 그게 그래도 크게 발족을 하지 못했는데 한부선 목사님이 외국의 자금을 얻어다가서 복음병원을 시작했습니다.

 

복음병원 그거 시작한 것이 그것이 복음운동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그것은 지금 말해 봤자 사람들이 알지도 못할 것이고 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 감리교에서 모두 서울에 뭐 학교를 이화대학. 연세대학을 그것을 세웠고. 또 서울에 있는 무슨 센브란스 병원이요 뭐요? 병원인가 그래 모두 이래 병원들을 세웠는데 지금은 세운 그 교파에서 총회 모이면 그 학교와 그 병원에 대한 문제 가지고 늘 이렇게 옥신각신하다가 끝을 냅니다. ? 거게는 돈이 많이 있고 감투가 많이 있기 때문에 권세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것 가지고 이리 저리 하다가 그만 실은 그것 때문에 눈 뜬 사람들은 복음 운동에 큰 지금 해를 보고 있다 이렇게들 말하고 있습니다.

 

한부선 목사님 I.C.C.C.에서 보조금

 

그래 가지고 있다가 한부선 목사님이 고려신학교 여기다가 애착을 붙여 가지고 이래 있었는데 복음병원 시작하고 난 다음에 외국에 돈을 끌어오는 것이 맛이 있으니까 그만 고신에서 또 신학을 키우기 위해 가지고 양사방 여게 저게서 정통 그 교파들에게서 보조하는 그 보조금을 많이 받았습니다. 여기서도 받고 저기서도 받고 정통에 받았지만 나중에는 차차 차차 돈 받는 그 길이 열리고 돈 받는 거게 대해서 눈이 뜨여지게 되니까 나중에 가서는 뭐 정통이나 비정통이나 그런 걸 가리지 안하고 그만 그 언제든지 보조하는 돈에 보조금이라 하면 자꾸 받아들이는 이런 일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 I.C.C.C.에서도 보조금을 받았어. I.C.C.C.는 정통에서 용납할 수 없는 그런 I.C.C.C.입니다. I.C.C.C.에도 좀 보조금을 그때 받아 들였고 또 화란에서 마지막에 내가 잘 모르는데 화란인가 그곳이 거기서 보조금이 많이 왔습니다.

 

한상동 목사의 고소파와 송상석목사의 반소파

 

조금이 많이 와 가지고 보조금이 원첨 많이 오니까 이 보조금 왔을 때 이 보조금 어떻게 쓰나? 잘못하면 현재 관리하는 사람들이 이 보조금을 잘못 쓸지 모른다. 이래 가지고 그 보조금 때문에 시비가 나가지고 그때 그 시비 난 그 시비에 그때에 보조금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그 시비로서 고소파 반소파가 그때 생겼습니다.

 

그것을 그 때에 이걸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한 파가 일파가 그때 송상석 목사님 지지파가 있었고 한상동 목사님 지지파가 있었는데, 그때 말하기를 한파라, 송파라 그렇게 사람들이 했는데, 그만 그때 현재에 윤번제로 해서 의논 좋게 했는데 그때 윤번제에 권세를 누가 가지고 있었느냐 하면 송파가 그때 현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데 그때 돈이 오니까 한파에서 아마 송파에게 맡겨 놓으면 이 재정을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해 가지고 한파에서 거기 대해서 그 뭐 잘못된 걸 이래 말해 가지고 고소를 했습니다. 그 고소파가 됐습니다. 이라니까 저쪽에는 '어떻게 너희들이 그렇게 고소를 하느냐?' 이래 가지고 반소파가 됐습니다.

 

반소파의 깃발은 석원태 목사님

 

그래 송파가 반소파가 되고 한파가 고소파가 되어 이래 그만 둘이 아마 이래 갈라져 가지고 이래 시비할 때에 그 때에 반소파의 아주 깃발을 들고 우리는 소송할 수 없다. 소송할 수가 없다 하는 것을 강력히 주장을 한 사람 이 누구냐 하면 석원태 목사였습니다.

 

석원태 목사가 강력히 주장하니까 그때 여기 내나 반소파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송상석 목사님이었는데 그 석원태목사를 세워 가지고 마산 제일문창교회 와 가지고 거기서 석원태 목사님이 설교도 하고 강의하면서 그때 그 반소를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반소파가 송상석과 석원태로 둘로 분파

 

그러니까 모두 그리 따르는 사람들은 많이 따랐습니다. 많이 따라 가지고 그라다가 그 반소파의 그라면 석원태 목사하고 송상석 목사하고 둘이 이와 같이 머리가 돼 가지고 있는데 그 때에 머리 돼 가지고 있을 때에 말하기를 송상석 목사님은 고소파라고 송사파라고 이제까지 다 낙인찍히고 유명했는데 그 분이 어찌 반소파가 되겠느냐? 이라면 다른 사람이 인정 안 할 터이니까 석원태 목사님을 아무래도 머리를 세워 가지고 해야 되겠다 머리로 세웠는데, 머리로 세웠지만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 머리로 세워 가지고 이래 어찌 해서 이게 잘 될까 이래 했더만 또 그러니까 석원태 목사는 자기가 또 주장해서 왕 되어 나가는 것으로 이렇게 나가서 하기 때문에 반대를 해 가지고 그 때에 반소파가 또 둘로 갈라졌습니다.

 

고신대학과 고려신학교

 

둘로 갈라져서 하나는 석원태 목사님은 서울에서 그 신학을 하고. 여게서는 또 여기 마산에선가 어디 가 신학을 하고 이래 둘이 갈라졌었는데, 그래 갈라져 가지고 이래 거석할 때에 그때에 그 옥신각신하고 이라고 있었는데 이 고신에서는 '우리는 고려신학교라는 이 그 문공부 등록은 이것은 취소를 하고 고신대학으로 우리가 다시 인가를 맡아 가지고 등장하겠다' 이래 해서 고려신학교 그 문공부 등록은 거기서 자기네들이 다 취소를 해 버리고 저 고신대학으로 등장할 때에 석원태 목사님이 빨리 가 가지고 고려신학교라는 그 등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문공부에 지금 고려신학교로 등록돼 가지고 있는 등록은 석원태 목사님이 고려신학교로 법적으로 등록 된 것으로 등록돼 있고, 고려신학교는 석원태목사님이 지금 그 문공부 법적 등록을 가지고 있고, 고려신학교는 여게 그 고신대학에서는 그 이름을 가지지 못합니다.

 

고신신학원과 고려신학원

 

못 해서 그 다음에 고신신학원이라 고신신학원이라는 것을 여기 그때 전성대 목사님이 원통해서 그걸 고신대학보다도 이게 옳다 이래 나가다가 안 되니까 그 분이 나서서 고려신학원이라는 것을 신학대학원인가? 신학원, 고려신학원을 차렸습니다. 부산에서 차렸었는데 부산에서 할 게 아니라 서울 가서 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고신신학원을 서울에 가 가지고 하기를 한명동 목사님이 고려신학원을 거기서 하다가 뭐 어찌 어찌 하다가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몰라도 그 만침만 지금 돼 가지고 있습니다.

 

신신학이 정통을 돈으로 돈 매수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모든 내가 지금 말하는 거는 그겁니다. 이 진리가 나오다가 그 진리가 어지러워질 때에는 어떻게 어지러워지느냐? 어지러워지는 것은 세상 정권이 와 가지고 탄압을 할 때에 정통은 세상 권세가 가둬서 힘을 쓰지 못하고, 가두어서 이렇게 용납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할 그 때에 이 신신학이 등장을 하고, 또 정통이 이래 나갈라고 할 때에 정통의 경제가 어려우니까 신신학이 돈을 가지고 이와 같이 매수할 때에 돈에게 팔려 가지고 또 신신학이 돼지고, 이래서 오늘이나 그 때나 꼭 같습니다.

 

개교회도 그렇습니다. 개교회도 진리 진리 하면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은 세상 권세도 적고, 돈도 적고, 학문도 적고, 또 이 속화되고 신신학 인본주의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도 있고, 언변도 좋고, 권세도 있고, 세력도 있고, 이러니까 차차 차차 그를 등용해 가지고 그렇게 됩니다.

 

교회의 돈 위주 권세 위주

 

그러면 교회가 그거나 교회나 꼭 같은데 오늘 교회들도 그 교회가 신앙 위주로 장로를 택하지 안하고, 신앙 위주로 집사들을 선택하지 안하고, 차차 차차 하면 교회가 그 세상, 돈 위주로 택하고, 또 권세 위주로 또 언변 위주로, 세상 지식 위주로 자꾸 이렇게 교회 평가도 세상에서 평가하는 거와 꼭 같은 가치 평가를 말이요, 가치를 세상 사람들이 두는 그 가치에다가 교회도 가치를 두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신앙에 가치

 

교회는 세상이 모르는 하늘나라에다가 가치를 두고, 하나님에게 다 가치를 두고, 신앙에 가치를 두고, 이래 두는 것인데 차차차 교회가 타락해 가는 것은 평안해지면 이 평안이 계속돼 환난이 오면 땅에다가 가치 두었던 건 다 깨어지고 다 멸해져 버리고 다 가라앉고 그만 다 변질되고, 다 아닌 줄 알지만 하늘에 속한 가치는 그때 또록 또록 나타나서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뭐 가둔다 죽인다 해도 그 뭐 또록또록 이래 가지고 있지만 나중에 가 평안하게 되면 하늘에 속한 것은 차차 묻혀지고 세상에 속한 것이 이렇게 세력을 잡게 될 때에 교회는 은연중 물질 위주의 교회가 되고 권세 위주의 교회가 되고 그 사람들의 세상 지능의 위주가 되어져서 그것으로써 교회도 평가하기 때문에 가보면 이 교회는 돈을 가지고 평가해서 돈 위주로 지금 교회가 움직여 나가는 교회냐 세상 권세 위주로 움직여 나가는 교회냐?, 또 이 사람들 언변이나 지식이나 이런 지금 많이 말하고 많이 말 잘하고 세력 있는 그런 위주로 나가는 교회냐? 그렇지 않으면 신앙 뭐 세상은 볼 게 없어도 신앙 위주로 하늘 나라의 소망 위주로 참 영감 위주로 진리 위주로 나가는 교회냐 환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눈을 가지면 눈이 어두워서 모두 다 안약을 발라서 보게 하는데 안약을 안 바르고 성경대로 살지 안하고 성경대로 자기가 모든 비판을 가지지 안하기 때문에 눈이 어두워져서 모르고 모르지 눈이 밝은 사람은 환하게 다 압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저 사람은 이 진영의 눈이다, 저 사람은 이제 쫓아냈으나 눈이 빠졌다.' 그렇게 말한다고. 그거 다 모두 그 사람이 앞으로 이러리라 말한 대로 그대로 다 되어지는 것은 그것은 눈이 밝기 때문에 바로 정평 정가해서 그 말하는 것이 벌써 지나면 지나 고 난 다음에 그 사람 주장이 어찌 되느냐 하는 것을 그걸 볼 수가 있다 말이오.

 

사람은 당장에 의인되고 당장에 죄인 되는 거 아닙니다. 암만 세계가 다 죄인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주욱 계속해서 오래 동안 그것을 관찰해 보면 그걸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당장에 의인이라고 해서 그만 그럴 게 아니라 오래 동안 멀리 그 사람의 생애를 한 이십 년이나 십 년이나 이래 잡아 가지고 보면 그것을 정평할 수 있지만, 오늘 당장에 말 한 마디에 의인되고 말 한 마디에 죄인 되고, 행동 하나에 죄인 되고, 행동 하나에 의인되고, 그렇게 하는 것은 이것은 미개한 야만들이 감찰하는 그 시야가 좁기 때문에 좁은 시야에서 그와 같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은 대개 문필가, 신앙 좋은 사람 없음

 

그래서 요 오늘 아침에 이거 여러분들에게 이 말이 나왔는데 이런 걸 여러분들이 다 기억하고 있어야 돼. 이거 벌써 뭐 벌써 오래 지나갔으니까 그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다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변해져도 그걸 잘 모른다 그말이오.

 

또 그걸 역사학을 모두 다 그 교회사에 기록되어 있다,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대개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다 문필 좋은 사람들이요, 또 신앙이 좋은 사람들이 많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꾸 이래 쓰는 사람들은 문필 좋은 사람들이요, 외나 참 신앙으로 곧게 나가는 사람들은 문필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거요. 파묻혔다 그거요.

 

칼빈은 정통신학자가 말한 것을 전부 수집해서 나열

 

이러기 때문에 칼빈을 개혁자라고 이렇게 말하지만 칼빈이 자기 주장이 아니고 그 안에 많은 참 그 진리의 사람들이 순교를 많이 했는데, 순교 당하면서 하나씩 둘씩 써서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그걸 칼빈 선생이 그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이 모두 수집한 것을 그 전부 수집해 가지고 이것을 아주 질서 정연하게 나열을 해 가지고 모든 그 정통 학자들의 말한 것을 나열해서 편집한 분이 칼빈이요,

 

칼빈이 다 그거 깨달은 것 아닌 것입니다. 저 칼빈 신학자 서영호 목사님이 여기 계시지만 그들이. 나는 그걸 다 모르지만 나는 그저 이리저리 그저 나는 내 생각으로 깨닫게 해 주시는 대로 이래 말하는데 있으니까 다 알 것입니다.

 

그래서 어짜든지 교회를 세상으로 자꾸 끌어낼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악령의 역사이고, 하나님에게로 끌어 들일라고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5, 7, 5 금 새벽)

 

17-3. 합동파와 환원파

 

고신하고 총신하고 합했다 해서 합동

 

그래서 그 뒤에 고신이 하나님 말씀만 주장하고 진리만 주장하고 이렇게 하다가 그것을 그만 놓치고 이렇게 좀 그라는 바람에 고신이 힘을 거석 해 가지고 고신이 합동하고, 합해 가지고 고신이 합해져서 합동이 됐습니다. 고신 하고 총신하고 합했다 해서 합동이 된 것입니다.

 

근본 고신으로 돌아가자 해 가지고 환원파

 

합동이 됐는데, 합동이 되고 난 다음에 처음에 합동이 될 때에는 그들이 고신으로 다 들어오겠다' 해서 합동했는데 합동하고 보니까 그쪽 사람들이 많고 이라니까, 세력이 그쪽이 많으니까 차차 그쪽으로 끌려가게 된다 말이오. 합동하고 나서는 제일 처음에 총회장을 한상동 목사님을 총회장으로 세웠고, 또 신학교 이사장을 한상동 목사님을 세웠고 이랬지만, 처음에는 그렇게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그만 달랐습니다.

 

총회장도 다른 사람이 되고, 또 신학교 이사장도 다른 사람이 되고, 그 사람들이 내나 됐다 그거요 이러니까, 합하기만 합해졌지 이쪽 신앙 사상대로, 고신 계통의 신앙 사상대로 끌라 해야 끌려오지 안하니까 '아이구!, 이럴 때는' 가만있다 보니까 끌려오지만 안하고 그쪽에 속화가 돼 가지고 자꾸 그쪽에, 그쪽에만 자꾸 동화돼 나갑니다. 이래서 '안 됐다.

 

이래 있으면 우리 오래 동안 있으면 우리도 이거 유지 못 하겠으니까 이제 우리가 다시 갈라져야 되겠다. 다시 고신으로 돌아가야 되겠다. 이래서 환원, 돌아갈 환() 근본 원(). 근본 고신으로 돌아가자 해 가지고 환원파가 된 것입니다.

 

환원화가 돼 가지고 이제 거기서 있는 사람, 남아 있는 사람 남아 있고, 돌아온 사람 돌아오고 그래 가지고 이 고신이 그때에 아주 수백 교회가 거게 떨어졌었고 돌아왔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4, 5, 13 주일새벽)

 

17-4. I.C.C.C.W.C.C.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라면 모든 세상에 있는 전 종류대로의 그 사상과 종류대로의 힘 그 전부가 다 똘똘 뭉쳐서하나 돼 가지고 교회로 더불어 대립이 돼 가지고 싸우겠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말인데 그것을 너무 실질적으로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하종택 목사님의 I.C.C.C. 박사 학위(타 진영 목회자)

 

이번에 OOO하종택 목사님이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자기 말로 말하기야 말하지, 그것 때문에 준 것은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준 것은 아니고, 그것도 있고, 또 다른 것도 있고, 그분들은 언제든지 이렇게 정치성을. 들고 활동적으로 자꾸 이래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상동 목사님도 거기서, 박윤선 목사님도 거기서 명예 학위를 받았습니다.

 

I.C.C.CW.C.C

 

그때는 그 I.C.C.C.I.C.C.C.이라 말은 국제기독교연합회라 말이고, W.C.C.는 세계기독교연합회라 말인데, 그 둘은 서로 대립적이었습니다. 그러면 I.C.C.C. 국제기독교연합회는 정통편에 섰고, W.C.C. 세계기독교연합회라는 그것은 신신학편에서 가지고 그러기 때문에 정통편인 줄 알았습니다.

 

그랬는데 그때 그전에도 말했거니와 한부선 목사님이 거게 대해서 초창기에서부터 참석을 했기 때문에 잘 압니다. 우리가 I.C.C.C.는 기독교 정치주의로 정치 사상을 띠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환영을 안 하지 다른 면으로는 좋은 면이 있습니다.

 

그 순위가 다릅니다.

 

신신학도 사람하고 하나님하고 진리하고 같이 셋이 합한 것이 신신학이요 또 정통 신학도 하나님하고 진리하고 사람하고 셋이 합한 것이오. 셋은 꼭 합했어. 셋은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앞뒤에서 보면 다릅니다. 옆에서 보면 다 셋이 다 있오. 셋이 다 있는데, 그 순위가 다릅니다.

 

사람을 제일 먼저 두고 그 다음에 진리 두고, 그 다음에 하나님 두고 이렇게, 사람을 제일 높이고 진리가 그 다음에 하나님을 저 제일 밑에다가 이렇게 쳐 박아 놓는 것이 그것이 인본주의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나님을 높인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할 때에는 사람 뜻부터, 사람 비위부터, 사람 생각부터 이렇게 하고 그 다음을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비위를 맞출라 하는 그것이 첫째

 

그러기 때문에 우리 주일학교는 첫째는 하나님의 비위를 맞출라 하는 그것이 첫째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 진리를 바로 가르칠라고 하는 것이 그 둘째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사람으로서 일을 해라,

 

그러기에 '대우받는 그런 거 가지고 무슨 대우를, 그런 수고하는 그 대우를 세상의 것으로 대우를 줄 수가 있겠느냐? 이러니까 주님에게 구속받은 그 큰사랑에 네가 감격해 가지고 빚진 자로, 거게 팔린 자로 그렇게 하라'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것이 아주 언뜻 보면 모르지만 듣고 가서 그걸 깨닫는 사람은 성감이 있는 사람은 와서 그 세 마디를 들을 때에 깜짝 놀랄 것이고 막 바로 혁신과 개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뭐 그것을 아무 관심 없는 사람은 그렇게 듣지를 아니합니다.

 

17-5. 기독교 정치주의 I.C.C.C

(백영희 목사님 경기노회 가입과 철회)

 

인본주의

 

오늘도 예수 믿는 사람들인데 껍데기 신자가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외식 신자라 그렇게 말하고, 또 적기독이라 거짓 신자라 이렇게 말하고, 그 이름을 또 말해 봐요. ? 또 뭐라 합니까? 인본주의. 인본주의는 하나님을 섬기기는 섬기지만 사람을 앞세우는 걸 가리켜서 인본주의라 말합니다.

 

기독교 사회주의

 

인본주의 또 말해 봐요, 육체의 소욕 육신주의, 세상주의, 사회주의, 사회주의라 말은 인간들의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위주로 삼아서 한다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사회주의가 많습니다. 하나님이야 어찌 됐든지. 이 인간 사회들이 다 좋아하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 사회주의입니다.

 

기독교 정치주의

 

또 기독교 정치주의가 있습니다. 기독교를 이용해 가지고서 정치를 목적으로 삼아서 정치를 중요하게 여겨 가지고 기독교를 이용해 먹는 기독교 정치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이용해 가지고서 자기가 정권을 잡을라고 또 정치를 어떻게 할라고, 이래서 자기가 정치에 소욕을 제일 주로 삼아 가지고서 기독교를 이용하는. 그런 자를 가리켜서 기독교 정치주의라 이렇게 말합니다.

 

세계에 기독교 정치주의자는 '멕킨타이어'씨라고서 I.C.C.C를 주장하는 그 사람을 기독교 정치주의자라 하는 것이 아주 유명해졌는데 그것을 별로 몰랐습니다. 한국은 몰랐습니다.

 

한상동과 박윤선의 I.C.C.C 박사학위

 

한국에 몰랐는데 그때 000한상동 목사님과 000박윤선 목사님이 미국 그 I.C.C.C의 그 회의에 가서 참석하러 갈 때에 그때 반대를 했습니다. 반대한 사람이 한부선 목사님이 반대했고 제가 반대하고 반대했는데 그때 그들은 갔습니다. 가 가지고서 거게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에 I.C.C.C는 기독교 연합회라는 건데 아주 정통인 줄로 그렇게 알았었습니다. 그랬는데 그것은 실은 기독교 정치주의였습니다.

 

그 뒤에 제가 000한상동 목사님이 박사 학위를 받아 가지고 왔을 때에 제가 가서 단둘이 만났습니다. '목사님, 우리가 가는 길은 진리와 영감 외에는 가치가 없고 자랑할 것이 없는데 다른 학위니 그런 것은 암만 따라갈라 해도 그 사람들 신 벗어 놓은 데도 못 따라갑니다. 우리가 가진 보화요, 자랑거리요, 힘은 진리와 영감이 아닙니까? 이런데 요번에 가 가지고 뭐 할라고, 그 학위를 받아 가지고 왔습니까?' 내가 요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말합니다.

 

그라니까, 000한상동 목사님이 저에게 말하기를 형님”, 저 한테 형님했습니다. 존경하는 말 겸손의 말이오. “형님! 나도 그것을 안 받을라고 애를 썼는데 그들이 강제로 끌어다가 어떻게 그라는데 그만 그래 그만 돼 버렸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라면서 말하기를 '그래도 내가 와서 그 행사만 하지만 안하면 안되겠습니까? 요렇게 말했습니다. 000한상동 목사님이. '행사만 안 하면 안 되겠습니까' 요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내가 있다가 말하기를 그 행사만 안 하면 외부에는 손해가 없고 되겠지만 안 하기가 그렇게 쉽겠습니까? 그 안 받는 것보다 안 하기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라고 서로 악수를 하고 나뉘었습니다. 00초량 교회 그 사택에 가서 제가 들어가 가지고서 말했습니다. 그때 00초량 교회 000한상동 목사님은 거게 담임 목사로 계셨습니다.

 

그 뒤에 나와 대립이 된 것은, 내치 나하고 하나 됐었는데 그때는 그랬는데 그 뒤에 며칠 지나고 나니까 그만 나하고 대립이 됐습니다. 밑에 사람들이 다 죽이요.

 

학위 받은 게 뭐 나빠서 지금 그랄까 보냐고서 이래 가지고서 그만 그 당돌히 와 가지고 그렇게 말한다고 이라니까 그만 나하고 그만 적이 돼 버리고 000한상동 목사님 나하고 하나로서 뭐 이래 아주 밀접한 하나였었는데 그때 그것으로써 그만 서로 이렇게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그 역사가 앞으로 가면 다 하늘나라 가서 다 환하게 나타납니다.

 

멕킨타이어는 기독교 정치주의

 

이렇게 그때는 멕킨타이어씨를 기독교 정치주의라는 것을 지금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때 00고려 신학교에서, 여기 광복동 있을 때인데. 멕킨타이어씨 온다고 환영회를 한다고 그때에 그 학생들이 졸업학생들이 다 모이고 00고신에 유력한 사람들은 다 모이고 그래 가지고서 환영회를 거게서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그 환영회에 제가 참석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잔치 그 회석을 모두 연석을 만들고 할 때는 그때 제가 신학교 다녔기 때문에 그거 다 봤는데 나중에 참석을 했는지 안 했는지 잘 모르나 아마 참석은 한 것 같습니다. 해서 뭐라고 하는가 보자 이랬는데, 그 뒤에 그는 다시 그 후에 왔을 때도 얼마 지금으로부터 한 십년 전인가, 한 십오 년 전 된 것 같습니다. 그때는 삼십년 되었습니다. 그때도 멕킨 타이어씨가 왔을 때에 00고신에서는 그 사람을 영접을 했습니다.

 

경기노회 즉 보류노회

 

그때에 00고신에서 서울에 있는 노회는 경기 노회라 하는 노회는 이 00고신에 있으면서 거게서 함께 따라가지 안하고 보류노회라고 해 가지고서 서울 노회는 보류노회라, 그 하는 일에 따라가지 안하고 보류해 둔다 이래 가지고서 이름을 보류노회라 그렇게 지었었습니다. 그때는 그 보류노회에 주동자들은 000이병규 목사님 그분이 거의 주동이 되다시피 주동되고 거기 몇몇 목사님들이 따라서 그래 했는데,

 

(고신에서)저를 자격증인 강도사 시취에는 합격을 했지만 저를 안수를 하지 안할라고 합니다. 모두 안수 안 해 줄라 합니다. 그때 00고신이 내나 안수를 받아야 되는데 00고신에서 나를 미워하는 주목자로 곧 제명할라고 하는 사람들이니까 해 줄 리가 없습니다. 또 나도 거기서도 받기를 싫어합니다.

 

경기노회 가입과 철회

 

보류노회에 가 가지고서 안수를 받겠다고서 갔습니다. 보류노회에 교섭하러 간 사람이, 000김창인 목사님도 보류노회 있었고 000이병규 목사도 보류노회에 있었는데 그때에 이 말출 권사님이 000김창인 목사님을 친해서 보류노회에 가입해 가지고서 나 안수하는 그것을 교섭하러 갔었습니다. 갔었지요? 기억납니까? 똑똑히 기억이 나요? 손 들어봐요, 기억이 나거들랑. 이말출권사님이 그때 갔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000김창인 목사님은 달게 허락을 안 했습니다.

 

이랬는데 그때 거게 보류노회 있는 사람들은 저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분들이 서둘러 가지고서 보류노회에 가입을 하라 이랬습니다. 가입하면 보류노회에서 안수 받을 수 있다 이래서 가입을 할라고 가입서를 써 가지고서 그때 노회에 가입을 했습니다.

 

가입할 때에 그때 거게서 저 안수 받는다고 여기 교회에 권사님들, 지금 권사님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더러 많이 갔습니다. 그때 한 아마 여남은 가까이나 갔지요? 김효순 권사님 갔습디까? 못 갔습니까? 그때 내가 보류노회에 안수 받으로 간다 할 때 그때 못 갔어요, 서울에? 어디 갔던고.? 어디 가서 그때 참석 못 했던고? 김현찬 권사님 간 것 같은데. 못 갔어? 그때 못 갔어? ? 누구? OOO집사님 갔고, 어째 그분들은 못 갔던고? 그래 인제 갔었습니다. 가서 인제 가입이 됐습니다. ]

 

가입이 돼 가지고서 그러니까 회원이 돼 가지고 같이 회의를 하는데 뭐이 나왔느냐하면 저게 그 강원도 지방에 있는 거게 한 시찰 강원 시찰인데 강원시찰회에서, 시찰 지역에 있는 소속한 목사들이 와 가지고서 '우리 이 보류노회도 I. C.C.C에 가입을 하자' I.C.C.C에 가입하는 것을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I.C.C.C에 가입하는 것을 거게서 거의 다 찬성을 했습니다.

 

000김창인 목사님도 I.C.C.C에 가입하는 것이 그게 가한 줄 안다 하면서 이렇게 찬동해 가지고서 보류노회가 I.C.C.C에 가입하기로 결정이 됐습니다. 이것도 하나님 앞에서 말합니다. 한 마디도 가감하지 않습니다.

 

가입을 하기로 결정이 되고 난 다음에 저는 그 자리에 일어서 가지고서 I.C.C.C는 기독교 정치주의인데, 그는 하나님 주의가 아니고 하나님보다 정치를 앞 세워 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거는 사이비한 세상이지 기독교는 아니다. 이러기 때문에 거게는 가입하는 것이 불가타.' 이래 말하니까 다수 가결로 해 가지고서 가입이 됐습니다.

 

그래 가입이 돼서 제가 말하기를 '그러면 나는 이 보류노회에 가입했던 것을 나는 다시 철회합니다' 그래 철회신청서를 급하게 써 가지고서 냈습니다. '나는 가입했던 걸 다시 철회한다 말은 다시 철거해서 도로 받는다 철수한다 말입니다 철회합니다' 이라니까, 거게 있는 보류노회에 있는 목사들이 000이병규 목사말고는 다 좋아했습니다. 내가 철회한다는 걸 좋아했습니다. ? 내가 그 노회에 들어가면 또 가시가 됩니다. ? 안 된 걸 자꾸 말하고 그걸 말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래 모두 철회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기를, '내가 보류노회에서 가입이 됐으니까 회원이 됐는데 내가 지금 회원이니까 회원권이 있는데 철회를 하는 데는 조건이 있다. 내가 철회한 것은 I.C.C.C에 보류노회가 가입할라고 하기 때문에 그것을 반대해서 철회한다 고것을 회의록에 기록해라.'

 

그라니까 거게 어느 회원이 누가 있다가서 ', 기록해 드리겠습니다.' 그 사람 이름은 내가 지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서기에게 물으니까, “기록했습니까물으니까 읽어보라 했습니다. 읽어봐서 회의록을 읽어보는데 '백영희 전도사는 보류노회에 가입한 것을 I.C.C.C에 보류노회가 가입하고 I.C.C.C와 서로 용납한다고 해서 여게서 다시 가입 청원서를 철회를 해서 갔다.' 그것을 그대로 노회의회록에 썼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 뒤에 고쳤는지는 몰라도 그 노회에 벌써 그 많은 순서가 지나와서 있는데 그 노회 회의록에 고것이 그때 기록은 됐었습니다.

 

그라고 나서 그래도 000이병규 목사님은 그것이 뭐인지를 잘 모르나 어짜든지 제가 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것을 그때 따를 때이기 때문에 같이해서 나만 탈퇴되고 그 사람들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보류노회 I.C.C.C에서 탈퇴

 

그 뒤에 제가 여게 집회를 하니까, 우리 교회 집회를 하고, 제가 집회인도를 했는데 집회 인도를 하고 있으니까 그때에 000이병규 목사님이 사람을 보냈습니다. 보내서 '지금 멕켄타이어씨가 강원 시찰구에 와 가지고서 집회를 하는데 이 집회에 가서 참석을 해야 되나 안 해야 되나'하는 것을 저한테 그때 사람을 보내서 물었습니다.

 

그래 제가 집회 중에 아무것도 쓰지는 못하고 급히 말하기를 '그 사람은 기독교 정치주의요 순수한 기독교가 아니기 때문에 거게는 참석 안 하는 게 좋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그때에 거게 참석을 안 했습니다. 참석 안 하고 그 뒤에 많은 말이 있어 가지고서 보류노회가 멕킨 타이어씨의 그 I.C.C.C에서 탈퇴를 했습니다.

 

I.C.C.C의 표어에 일호가 반공, 이호가 보수신학

 

이래서 지금은 멕킨 타이어씨 그 I.C.C.C가 기독교 정치주의라하는 것을 그것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때 표어를 내어 쓰기를 서이를(셋을), 그 서이(셋을) 내어 쓴 데에 제 일호가 뭐이냐 하면 일호가 반공입니다. 표어에 일호가 반공입니다. 이호가 보수신학입니다. 삼호는 그때 내가 뭐인지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안 해서 내가 외우지를 안하고 이랬는데,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표어에 제 일호를 반공을 하는 것 봐라. 그 사람이 반공이라 하는 것은 그 정치에서 하는 것이지 그거는 기독교가 아니다.'

 

또 반공하자 하는 그것도 순수한 기독교에서 하는 게 아니고, 기독교는 반공하다 보면, 기독교가 반공이 기독교 아닙니다. 요거 똑똑히 알아야 돼요. 이게 알기가 어려워요. 이거 얼마나 눈이 밝아야 되는지 모릅니다.

 

반공을 기독교가 하면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반공인데, 반공하다 보면 자꾸 반공하니까 자, 내가 그 사람의 공산주의를 반대해서 보니까 나중에 공산주의와 자꾸 싸우다가 공산주의가 자꾸 후퇴해 들어가면 결국 나는 어디로 갑니까? O 조사님. 어디로 가지요? 공산주의하고 둘이 싸울 때에 공산주의로 자꾸 밀고 들어가면 어디로가요? 공산주의 속에 포위돼. 포위돼. 그라면 자꾸 공산주의로 나가면 자꾸 공산주의로 들어가고 있는 거라, 공산화되고 있는 거라.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믿음의 도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반공이 아니야.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믿음의 도야. 하나님만 보고 자꾸 어찌 됐든 간에, 하나님만 보고 자꾸 따라서 순종해서 하나님만 향해서 가다 보니까 공산주의가 옆에다 지금 잡아당기며 우리와 같이 가자 하면 손으로 뿌리치고, 민주주의도 뿌리치고 모든 것 뿌리치고, 하나님만 향해서 따라서 나아가는 것이 요것이 순수한 기독교입니다. 이해가 돼요?

 

지금 기독교는 반공주의도 아니요, 기독교는 사회주의도 아니요, 기독교는 정치주의도 아니요, 기독교는 도덕주의도 아니요, 도덕주의라 말은 도덕을 위주로 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 도덕주의가 아니라. 기독교 세상주의도 아니라. 기독교 이 박애주의, 박애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박애주의, 기독교 박애주의도 아니라.

 

기독교는 하나님을 성경에 이런 이런 하나님이라고 소개해 놨는데 이 하나님을 향해서 그 분만을 섬기고 그분만을 따라가는 것이 순수한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이해되는 양성원 학생들 손 한 번 들어봐요. 이것이 이해가 되는 이해가 돼요? 안 되는 사람 있어요? 이런 것을 구별 못 하기 때문에 기독교가 썩습니다. 오늘 지금 이걸 모르고 있어요, . 이런데 여러분들이 지금 들어서 이래 안다고 해도 속에 깊이 느낌이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을 구별하는 눈이 어두워. 이걸 아는 사람이면 그렇게 탈선 행위를 하지 안해.

 

이렇게 모든 이런 것을 가리어서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정치주의,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유물주의, 기독교 인본주의, 기독교 윤리주의, 기독교 민족주의, 기독교 정실주의, 이것을 벗어난 기독교를 가르치기 때문에 그들이 정치에 맞지 않다는 건 다 그것입니다.

 

신도범 목사님은 윤리주의

 

000신도범 목사님은 정치가 맞지 않는다는 것은 뭐 때문에? 기독교 윤리주의, 말하자면 혈육주의라 말이오. 윤리주의 그걸 배격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그 윤리를 버릴 때는 버려야 된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에게 기쁨이 될 때는 좋지만 하나님에게 대립이 될 때는 그까짓 게 문제가 없다,' 이렇게 한 이것이 반대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나는 주를 따르겠습니다만 내 아버지가 죽었다 하니까 장사하게 하옵소서 할 때 뭐라 했습니까?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내가 지금 주님을 따르겠는데 가족들을 마지막이나 작별이나 하고 가야 되겠으니까 가족들 작별하고 따르겠습니다 하니까 주님이 그래라 했습니까? 뭐라 했습니까?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좁은 길이라는 것은 이거 다 예수 믿는다 하면 다 하나입니다. '예수 믿는데 거게는 이 성경대로 믿어야 된다' 하는 것이 좁아졌습니다. 성경대로 믿는데도 '성경은 정확무오라' 하는 것을 믿는 것은 더 좁아졌습니다. 성경 가지고 좁아지고 좁아지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향하여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하나님 한 분으로 믿음으로 나아가는 그건 또 좁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8, 3, 30 수 새벽)

 

17-6. 신신학과 정통

 

지금은 신신학이니 정통이니

 

지금은 신신학이니 정통이니 이 신학사상이 신학사조가 이 신신학이라 이게 정통이다 거기 대한 말이 별로이 없습니다. 지금은 그런 말이 별로이 없습니다.

 

뭐 신신학이니 정통이니

 

뭐 신신학이니 정통이니 그런 말하면은 다른 사람들이 덕석스러운 말을 하는 거같이, 그 아주 그거는 화평성이 없는 꼬집고 우리는 그런 무슨 못된 사람으로 그렇게 볼만치 지금은 희귀하게 되었습니다.

 

또 지금은 신본이니 인본이니

 

또 지금은 신본이니 인본이니, 이거는 신본주의다 이거는 인본이다, 신본, 인본, 이라는 말은 아예 들어보지 못할 만치 까부라졌습니다. 이거 중요합니다. 이거는 인본신학, 이거는 신본신학이다. 이 신학은 신본신학이다, 이 신학은 인본신학이다. 이 해석은 신본이다 이 해석은 인본이다, 마디마디 따라 들어야 됩니다.

 

신본이란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신본이란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 중심으로 해서 주장을 하는 것이요,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요,

 

인본이라는 것은

 

인본이라는 것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위주로 해서 사람 중심으로 해서 해석하고 주장하는 그것이 인본이라 그거요.

 

이것이 갈래길 중에 큰 갈래길

 

이것이 갈래길 중에 큰 갈래길 아닙니까? 이것이 성경 해석 해석마다 붙여야 될 터인데 그런 말은 지금은 없습니다. 지금 신본이니 인본이니 말하면은 그 사람은 좁은 사람이고, 남을 헐뜯는 사람이고, 독선주의고, 고집쟁이고, 사람이 좋아서 인간미가 없어서 접촉 못할 사람이라, 이렇게 지금 정죄할 만치 되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타락에서 솟아오른다는 것은

 

그러기에 시대적으로 타락해 가는 이 타락에서 솟아오른다는 것은 얼마나 위인인줄 모릅니다. 신앙의 위인이요. 자기가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아무리 한다고 해도 시대적으로 타락한 이 노선이나 이 계통이나 또 신학사상이나 이런 것을 바로 잡지 못하면 개인의 신앙생활 잘한다는 그까짓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물 속에 들어 있는 고기

 

? 비유컨대 큰 그물로 던지면 그물 속에 들어 있는 고기도 자기는 자유 하는 바다인 줄을 알고 제 마음대로 놀았지마는, 나중에 그물을 잡아 들 때에는 그게 들려 올라옵니다. 그물을 잡아 들 때에는 들려 올라온다 말이요.

 

벌써 넓은 범위에서는 그 신신학이 그 사람을 벌써 점령하게 됐고, 신신학 졸업한 목사가 그 사람을 지도하게 됐고, 신신학 벌써 노선에 들어 가지고 있고, 신신학과 또 정통신학 벌써 인본에 포위해 가지고 있고, 이렇지마는 얼마든지 그 안에서 신앙생활 자유로이 할 수 있고, 이렇지마는 나중에 그 줄기적으로 신학적으로 들려 올려 올 때에는 저도 꼼짝 못하고 그 신학에게 따라 가게 된다 그 말이요. 그래 가지고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다에 있는 고기가 자기 역량 있는데 까지만 그물을 알지 그 이상을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돌아다녀도 그물이 눈에 안 보이니 그물 속인지 어째 알 것이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복되게 해야 복되지 인간 자기 제 스스로 된 것이 아니란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지난번에 양성원에 제가 가 가지고서 정경이니, 이거는 외경이니, 가경이니, 하는 거게 대해서 첫째로 말하기를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그에게 정경을 알도록 해야 되고 정경 노선에 소속하도록 해줘야 되지 제 힘으로 안 된다 그것을 첫째로 강하게 말했지마는 양성원 학생들로서 그 말을 무슨 말인지 절실히 느끼는 사람이 그렇게 별로이 없다 그거요. 그것이 막 바로 칼빈이 궁극적 구원이라는 그 성질의 신조와 같은 신조입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0, 4, 4 금 새벽)

 

17-7. 신신학과 한부선 목사님 투쟁

 

부산신학교의 신신학자

이래서 사람들이 이 교리와 신조가 이것이 죽고 망하고 사는 것이 여게 매였습니다. 뭐 신신학이라고, 며칠 전에도 내가 O부산 신학 졸업한 어떤 사람이, 나한테 찾아왔기 때문에, 내가 자기에게 대해서 혹은 불신임하는가 하는 그런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내가 네게 대해서 다른 것은 불신임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무엇을 불신임하는지 네가 알고 있지 않느냐?' 이러니까 ', 제가 OO부산 신학을 졸업한 거게 대해서 불신임하는 줄 압니다.' '그러면 OO부산 신학에 대해서 불신임하는데 너는 지금 어떻게 생각하나?' 이러니까 ', 거게는 신신학자들이 있기는 있습니다. 정통학자들도 있고 신신학자들도 있고 가르치는 사람들 가운데에 그렇게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신신학자들이 있지마는 나는 배울 때에 그 신신학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거게 물이 들어서 그 신신학을 내가 인정치는 않습니다.' 하는 그런 말을 합디다.

 

급하면 엄나무 잡는다

 

그래서 내가 신신학은 모든 그 사람의 가르침이 다 신신학이 아니고 신신학 학자가 그 신학에 신학교에 하나가 들어오면, 한 사람이 들어 면 그 사람의 그 가르치는 것도 다 신신학이 아니고 꼭 교리 하나, 하나 둘 더 이상 되는 사람 없고 대개는 하나가 틀리는데 하나 틀리는 그것을 듣기 전에는 그것이 틀렸다고 했지마는 자기가 한번 배우고 난 다음에는 '이게 틀렸다' 이렇게 말을 하지마는, 환난을 당해서, 신신학으로 가라 하면 환난이 없고 정통 교리를 지켜 나가려 하면 환난이 있을 그런 단계에 가면 사람들은 '급하면 엄나무 잡는다' 그말 있어요.

 

'급하면 엄나무 잡는다' 엄나무가 어떤 나무입니까? 알아요? 엄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아요?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몇 없네. 엄나무는 무슨 나무야 말해 봐. 가시가 둘린, 전체가 가시야, 가시나무. 급하면 가시, 평소에 안 잡지마는 죽을 지경이면 가시를 잡는다 그말이오. 급하면 엄나무 잡는다 하는 그말이 그말이라.

 

평소에는 신신학이 아닌 줄 알지마는 한번 배우고 난 다음에는 급하면 사람들이 정통으로 나가려 하면 목숨을 내놔야 되고 신신학으로 가려 하면 피해서 그냥 고난 안 당하고 갈 수 있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해 가지고, 그러니까 신신학을 배운 사람은 환난 때에 이기지를 못합니다.

 

신신학자 쳐놓고는 환난을 이긴 사람이 하나도 없고

 

정통은 사는 길이 한 길뿐인 줄 알고 그 길을 가지마는 신신학을 그 사람이 공부한 사람은 급하면 수월하고 사는, 수월하게 사는, 수월하게 믿는 길, 둘러가는 그 길을 택해서 사람들이 그 길로 가다가 다 실패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신학자 쳐놓고는 환난을 이긴 사람이 하나도 없고 신신학자 쳐놓고는 신앙을 바로 지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그래 대적하고 있다고, '대적하고 있어도 네가 그 신신학을 완전히 뽑는다는 그것이 그냥 뽑혀지는 게 아니다. 얼마나 힘을 쓰고 그 신신학에 대해서 줄기와 근본까지를 완전히 파서 깨닫고 들어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네가 환난에 승리는 못 한다. 내가 너를 단점으로 보고 있는 것은 그것을 단점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거게도 신신학 교수들이 몇 사람 있기는 있지마는 정통 교수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총공회가 개혁된 것은 교리와 신조 때문

 

그런데 우리 한국에 그때 종교개혁이 될 때에 그때는 신사참배 때문에 개혁이 됐고, 우리 총공회가 개혁된 거는 교리와 신조 때문에 됐고, 그때는 신사참배 했느냐 안 했느냐 하는 것 가지고 개혁이 됐었습니다.

 

박형룡 박사 카나다 북장로 신신학으로의 원조

 

이랬는데 개혁한 신학교는 고려신학교이고, 고려신학교에는 박윤선 목사님이 그때 교장이었고, 박형룡 박사를 만주에서 송상석 목사가 모셔와 가지고 같이 한 학교에 두 분이 있었는데 박형룡 박사는 유명하고 좀 일찍부터 실적이 있고, 박윤선 목사는 그때 처음으로 학생 몸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나지를 않아서 다 박형룡 박사를 유력하게 그렇게 봤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교장으로 세우고 이분은 그 다음 교수로 세워 뒀었는데 와서 같이 있어 보니까 훨씬 박윤선 목사님이 알고 있는 것이 더 바르고 곧고 낫기 때문에 그만 자기는 거게서 회피를 해서 '나는 여게 내가 여기 있을 수 없고 나는 서울 가 가지고 신학교를 세워야 되겠다' 하면서 가려 하는 것을 못 가도록 이렇게 했는데 자기가 기어코 라도 서울로 갔습니다.

 

서울로 가 가지고 신학교를 세우려고 하는데 돈이 한 푼이나 있습니까?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저 카나다에 있는 그 북장로교 거게는 신신학 그 장로교인데 거게는 돈이 많습니다. 정통일수록 돈이 적고 이렇게 그 신신학이 돈이 많고, 신신학 보다도 이단은 돈이 더 많고, 또 안 믿는 사람들은 돈이 더 많습니다. ? 그들은 마구잡이로 이렇게 벌고 수단과 방법과 양심을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한부선 목사님이 누누이 말림

 

그래서 그때 한국에 고려신학교 이 정통신학을 세우면서 자본도 대고 아주 주력으로 힘쓴 선교사 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곧 누구인고 하니 한부선 목사님이었습니다. 한부선 목사님이 '그러면 서울 가서 세운다 할지라도 돈이 없으면 그저 하나님이 주실 터이니까 조그만하게 세워도 정통신학교를 세워야 되지 그 카나다에 있는 신신학 교수들을 청해다가 하면 어찌 되느냐?'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누누히 말렸습니다.

 

만일 신신학 교수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 나라는 망한다. 망할 수밖에 없다. 신신학이 들어오면 정통 아니기 때문에 당장은 안 그래도 앞으로 신신학화 되면 신신학 되고 난 다음에는 그 나라의 신앙은 다 망하고 말지, 세상은 망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망하지 않지마는 신앙은 망한다 하는 것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래도 그분이 말하기를 '나도 신신학인 줄 알기는 알지마는 돈이 없기 때문에 나는 돈 때문에 신신학 교수들을 청하고 거게서 원조를 받아 가지고 그 신학을 세워야 되겠다' 하는 그런 것을 주장을 했습니다. 이게 다 설교록해 나갈 터이니까. 그만해도 옛날이기 때문에 요새 젊은 사람들은 모른다 그말이오. 이래 나가면 이걸 가지고 시비하지마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들이 반증을 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한부선 목사님이 그 일 때문에 이렇게 하다 하다 나중에 그만 너무 그 마음에 자기는 참 삼 대째 한국에 와 가지고 미국 사람으로서 선교한 한국의 교회를 초창기에 세운 분이, 그분의 아버지가 여게 와서 선교사를 했고 자기 자녀까지를 치면 삼대입니다. 자기 아버지는 여게 와 가지고 일생을 선교하다가 끝을 냈습니다.

 

그러니까 신신학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그렇게 박형룡 박사하고 서로 의논하고 타이르고 아무리 말해도 박형룡 박사가 듣지 아니하고 그때에 신신학을 끌여 들였습니다.

 

한부선 목사님이 그것 때문에 이러다가 서울에 시가(市街)에 다니면서 마구 옷을 벗고 돌아다니면서 이제 한국 교회는 망했다고 이렇게 정신이상자같이 이렇게 돼 가지고, 너무 기가 막혀서, 자기가 자기대로 말하면 이대고 자기 자녀도 그러면 삼대 째인데 기가 차서 이러다가 그만 정신이 돈 사람같이 다니며 이래 거석하니까 그때 할 수 없어서 한부선 목사님을 수감을 했습니다. 감옥에다가 가뒀습니다.

 

감옥에다 가두니까 감옥 안에서 외치면서 한국 교회는 이제 신신학으로 망하게 됐다고 이러다가 그 안에서 못 나오게 하니까 나와서 실컷 다니며 외치려고 하는데 그냥 외치지 않고 아래 윗도리를 다 발가벗고 다니면서 외쳤습니다.

 

구약에도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시켜 가지고 하는 일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시켜서 그때 그리 했는데 듣지 않고 이러니까, 감옥에 가서 가둬 놓으니 감옥 안에서 거게서 마구 용변을 해 가지고 온 몸에다 칠하고 다 이러면서 이와 같이 한국 교회는 더러워졌고 이제는 다 망해졌다고 그렇게 그래 가지고 그때에 마음이 상해 가지고 그랬으나 효력을 보지 못하고, 그래 가지고 한국에 신신학이 다시 들어왔습니다.

 

한국의 신신학

 

왜정 말년 때에, 신신학이 들어온 때가 오래 돼서. 채필근 목사님이 두번째, 평양신학교가 신신학 되고 난 다음에 교장이 됐었고, 채필근 목사님이 교장되기 전 신신학으로. 하나님의 종들은 다 감옥에 갇혔고 또 망명했고, 이래 가지고 그때 신신학이 들어왔는데, 처음 교장은 송창근 목사라 하는 분입니다. 송창근 목사라 하는 분이 교장이었고 그 다음에 둘째로 신신학 교장은 채필근 목사님이었고, 셋째로 거게 유력한 교수는 누가 알아요? 김재준. 김재준 교수라고 유력한 교수가 있었습니다. 신신학에.

 

그래서 한국에는 신신학이 다시 들어와 가지고 그거 그랬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왜 이렇게 지금 자꾸 속화돼 나가고 이 정통을 싫어하고 진리를 싫어하고 이래 돼 나가느냐 하면 신신학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신신학에 공부한 사람은 그거 뽑아 버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어려운 것은 어떤 환난 때나 생명을 한번 내놓고, 완전히 생명을 내놓고 죽음의 길을 걷기 전에는 그게 뽑아나가기 어려워. 한 번 죽음을 통하면 그 다음에는 그런 것이 문제가 없어요. (백영희목회설교록 1988, 12, 19 월 새벽)

 

17-8. 한부선 선교사님의 신신학 투쟁

 

성전 밖마당이 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보다 성전 밖마당이 큽니다.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양보다 성전 밖마당이 큽니다. 성전 밖마당이 크되 구원에 드는 양이 큰 것이 아니고 구원에 들지 못할 양들이 큰 것입니다. 구원에 들 양은 성전 밖마당에게는 건설구원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구원에 참여할 구원에 합격될 그 양으로 말하면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거게만 구원에 합격될 양이 들었지 그 밖마당은 그렇게 크지마는 거게 합격될 양은 하나도, 먼지만한 것도 들어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보기에는 그것이 큽니다.'그러나 그것은 건설구원은 얻을 것이 하나도, 전설구원의 양은 하나도 없지마는 기본구원의 양은 있습니다. 건설구원의 양은 하나도 없고 기본구원의 양은 큽니다. 많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단정을 지울 수는 없지마는 하늘나라 가면 건설 구원을 이루어 가지고 간 사람은 소량이고, 건설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기본구원만 얻어 가지고 그저 가서 아무 무용지물로 되어 있는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그런 사람들이 많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가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주 밖마당이 큽니다. 크나 밖마당 큰 그 양은 멸망할 양으로 큽니까 구원 얻을 양으로 큽니까? 멸망할 양으로 크지 구원 얻을 양은 건설구원적으로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지마는 기본구원은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본구원만 들어 있지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는 것이나 사람들 보기에는 그것이 큽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아주 성전 밖마당이 큽니다.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이 건설구원이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건설구원이 사람들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안 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일서 3장에, 세상이 모르는 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세상이 모르는 것.

 

기본구원은, 그것도 사람이 모르요. 기본구원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안합니다. 안 보입니다. 기본구원이 보입니까? '저 사람이 기본구원 얻었다'하는 그것이 보입니까? 안 보이지마는 그저 짐작을 하는 것은 '저게 믿지는 안하지마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라고 믿기는 하고 믿는 행위는 하나도 안 하지마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기는 믿으니까 저게 아마 택한 자는 택한 자인갑다.' 우리가 그래는 짐작을 합니다. 그런 구원을 이루는 것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성전 밖마당이 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만 그 양이 크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참 하나님의 심판에서 불타지 안하고 영원히 있을 건설구원이 되어 있는 것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안하기 때문에, 사람들 눈으로 건설구원이 만일 보인다고 하면 성전 밖마당에 건설 구원이 하나도 없으니까 저거는 건설구원은 뭐 큰 게 아니라 저거는 없는 것, 하나도 없다 이렇게 보이지마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는 눈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잘 보십니다. 또 성령님도 잘 보십니다.

 

또 누가 잘 봅니까? 그걸 누가 잘 봅니까? 하나님이 잘 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잘 보시고 또 그 다음에는 누가 봅니까? 이제 진리는 인격 존재는 아니지마는 진리는 거게 대해서 정확하게 또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누가 압니까? 그 다음에는 건설구원을 이룬 사람은 그 다음에 이루지 못한 자기보다 후배된 사람은 잘 압니다. 자기보다 앞선 사람은 모릅니다. 앞선 사람의 구원은 자기 눈에 안 보이요. 자기만치만 보여집니다.

 

예를 들면 말이요, 건설구원을 이루는데 요거 이룬 사람은 요것 이룬 것만치는 다른 사람들이 건설구원을 이루어 가지고 있는 것이 보여 집니다. 그러면 이다음에는 하나도 안 보이요. 요 사람이 힘을 써서 요만치 건설구원을 이루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 이룬 것만치 보여 집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건설구원을 이걸 다 이루었다고 하면은 그 사람의 눈에는 그 사람의 건설구원이 얼마 정도 이루어 있다 이루어져 있지 안 하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앞선 사람은 뒤선 사람이 보이지마는 뒤선 사람은 앞선 사람의 것이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허무한 소리만 합니다. 핍박이나 하고 욕이나 하고 그러지마는 앞선 사람은 뒤선 사람이 '저 사람이 어느 정도 건설구원이 이루어져 있다. 저 사람은 아주 믿음이 사람 보기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마는 말로 믿는 사람이요 또 그냥 껍데기 외식으로 믿는 사람이지 속에 알맹이 구원은 하나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 앞선 사람은 신앙이 뒤선 사람의 그 신앙의 잘못되고 잘되고 어떻게 고쳐야 될 것을 압니다. 그러나 뒤에 있는 사람은 앞에 있는 사람 하는 것이 항상 이해가 안 됩니다. 이해가 안되고 그러기에 반대요. 그러니까 욕이오. 그러니까 이단이라 하요.

 

그러기 때문에 이단이 정통을 이단이라고 하지 정통에 대해서 앞선 신앙의 구원을 이룬 사람은 뒤에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욕하는 일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앞선 사람은 뒤에 있는 사람을 욕하지 안하고 '뒤에 있는 사람이 앞선 사람을 욕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앞선 사람이 뒤선 사람을 멸시하고 욕하고 뒤선 사람은 앞선 사람에게 무조건 맹종하는 것이 그게 세상입니다. 정 법칙이 반대돼 있소.

 

성전 밖 마당보다 더 큰 것은 세상

 

성전 밖마당보다 큰 것은 무엇입니까? 성전 밖마당보다 더 큰 것은 뭐이요? 세상. . 성전 밖마당보다 더 큰 것은 세상이오. 세상에는, 제일 큰 세상에는 속에 기본구원도 건설구원도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요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이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에게 대하여는 미련한 것이라' 어리석은 것이라. 멸망하는 지혜는 있지마는 구원 얻는 지혜는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세상이, 사람들 보기에는 제일 큰 것이 세상입니다. 그들 보기에는. 세상이 제일 큰 것은 '저렇게 권세가 크다. 저렇게 돈이 많다 저렇게 학교가 많다. 저렇게 병원이 많다.' 그래 제일 큰 것이 성전 밖마당보다 세상이 큽니다.

 

천주교는 세상주의이며 인본주의

 

기독교 가운데에 신신학파 인본주의 세상주의 이런 교회들, 아주 천주교 저런 교회는 그거는 참 세상주의요 인본주의요 하나님의 것은 완전히 뒤바꿔져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게서 개혁하려고, 이 천주교는 그때는 성경 못 보게 했소. 성경 보면 죽였습니다. 성경 보면 죽였어. 성경 보는 자는 죽이기 때문에 성경이 없었고 성경을 숨겨놓고, 숨겨놓고 있다가 나중에 조사해 가지고 들키면 죽기 때문에 다 성경 다 내놓고 성경 안 봤습니다. 예배를 안 봤습니다. 기도는 못 합니다. 다만 거게서 저거 천주교에 유리한 그런 성구 몇 절을 그것을 주문 외우듯이 외웁니다.

 

자꾸 저거 삐뚤어진 그 교권자, 삐뚤어진 교권자들에게 맹종하지 안하면 안 되는 그런 성구 몇 가지만 빼 가지고 자꾸 외우고, 그러면 기도하는 일 없소. 그것만 외우면 돼요.

 

그것만 외우면 구원이라는 것은 교회서 주고 안 주는 것이지 구원은 다른 데 있지 많다. 그러기 때문에 그 주문만 외워 가지고 그 교회, 천주교라는 그 교회에 인정받으면 바로 그것이 막바로 구원이라 이렇게 된 것이 천주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또 요새는 마귀란 놈이 그 수단 가지고는 안 되니까 확 변해져 가지고 지금 달라지기를 합동 성경을 번역을 가지고 이래 하자. 우리 천주교도 봐라 예배 본다. 우리도 성경 본다. 우리도 기도한다. 이렇게 합니다.

 

이단이 정통을 미혹시킬라 할 때에 처음에는 이단하고 정통하고 만나면은 아주 검고 흰거와 같이 정반대 됩니다. 이러니까 이단자가 정통자를 따라올라고 변해지는 게 아니라 이단자가 정통자를 이단으로 끌어들일라 하니까 '우리는 이런데 너거는 검으니까 아니지 않느냐?' 이러니까 '우리도 아니다. 우리도 희다.' 이러면서 이렇게 변질합니다.

 

여게 말세 그리스도교라고 그 교는 그거는 아주 이단인데 그 사람들은 우리가 보는 성경을 보지 안하고 몰몬 성경이라는 그 성경을 보는 아주 기독교가 아닌데 그는 기독교라는 꺼풀을 입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삼십 년 전에 제가 서부교회 처음에 오니까 몰몬교가 어떤 미국 사람이 두 사람이 와요. 또 한국 사람이 둘 따르고 네 사람이 와. '저 미국 사람이 어데 저래 오노?' 하고서 설교를 하면서 설교를 다 하니까 거기서 듣고 있어. '저 사람이 은혜 받으러 와서 은혜를 받나?' 하는 그런 생각을 제가 가졌어요. ? 미국 선교사들이 오는 걸 내가 디 봤기 때문에 '제가 와서 이 설교를 들으면 좀 변해지고 좀 뒤벼질 거다 하고서 그래 떡 보니까 뭘 진실되게 들어. '저 은혜받는갑다' 나는 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설교를 마치고 나오니까 떡 인사를 하고서 그래 몰몬교를 선전을 합니다.

 

그래 내가 있다가 '몰몬교는 경도 우리와 같이 다른 몰몬경이 따로 있어 가지고 보지 않느냐? 그거 기독교가 아니지 않느냐? 우리가 기독교에서 다른 교로 개종하지를 안하겠다. 개종하지 못한다.' 이라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성경 봅니다.

 

보십시오.' 성경을 딱 전부 한 권씩 아듬고 왔다 말이오. 한 권씩 다 손에다 쥐고 왔어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미혹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쥔 것이지 성경 보는 사람은 아니고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성경을 봐도 '요 사람들이 요래 가지고 있으니까 요걸 어째 성경을 요래 가지고 꾀워서 넘겨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성경 보지 그런 거는 아니라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천주교는 그렇게 이 개혁교를, 너무 개혁교는 부흥되고 천주교는 더 늘어나가지 안하고 이 천주교가 자기네들이 이 개혁교에서 그만 성경을 알아서 아니라는 것이 표시가 나니까 그것을 캄프랏치 하기 위해서 예배도 본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들이 가진 성경이 아마 거의 없어졌을 것입니다. 지금 천주교에서 읽던 성경을 가진 사람들은 신구약 성경을 가서 보면은 그 사람들이 어떤 절수는 외우고 어떤 절수는 다 묵살한 그것이 천주교에서 보는 성경에는 붉은 글로 써 놓은 게 있습니다. 가다 보면은 붉은 글로 써놓은 그 절수가 있고 다른 절수는 보통 이래 먹으로 썼는데 붉은 걸로 쓴 것은 그 사람들이 주문으로 읽는 주문으로 주문, 똑 미신자들이 주문 읽듯이 주문으로 읽는 그 성구입니다. 과거에는 그것만 읽었지 성경책은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신부들만 성경 봅니다. 신부들만 성경 보고 다른 이는 안 보는데 신부들이 성경 보는 것은 어떻게 보느냐? 그것은 천주교화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보는 것이지 성경을 인정하고 성경을 따라오기 위해서 성경 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루터도 신부인데 루터는 성경을 천주교화시킬라고 천주교를 세우기 위해서 이 개혁교 종자 있는 것을 천주교화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보지 안하고 그 사람은 냉정스럽게 양심적으로 성경이 뭐라 하는지 성경을 천주교화시킬 게 아니고 성경이 뭐라 하는고 보자 하고서 성경을 보니까 사죄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만 사죄가 되어지는 것이지 마리아나 무슨 베드로나 이런 사람 섬긴다고 해 가지고 대속이 되는 것 아니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만 된다는 요 발견 믿음으로만 사죄함을 받고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시대 그것도 발견하기가 어렵다 말이오. 모든 사람들이 다 세상이 이래 돼 가지고 있는데 그걸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것을 발견해 가지고 개혁의 깃발을 든 것이 루터입니다.

 

루터도 그 사람이 그 전에 이 개혁할라고 하다가 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수십만 명이 죽었어, 이 개혁할라 하다가. '네가 이 개혁할라 하는 이거, 천주교에 반대되는 것을 회개 안 하면 죽인다.' 죽으면서 외친 사람들이 뭐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 가지고 이 개혁을 해 나온 건데 오늘은 이 인간들이 천주교하고 개혁교하고 다 이거 합동 번역하고 통합하자 이렇게 말하는 이자들이 다 썩은 것 아닙니까? 완전히 썩었습니다. 완전히 썩고 이 합동 번역할라 하는 이것을 좋아서 용납하는 이것만 해도 썩었소.

 

지난번에 여기 강단에 섰던 그 목사님이 좀 미국에 다니고 이래 다니니까 조금 하이칼라 신앙이 되기는 되고 이러나 그 속에 변하지 안하는 정조 있기 때문에 제가 올 때마다 꼭 세웁니다. 혹 거기 무슨 말이 나오는가 해서 세우는데 그분이 이번에도 '이제 합동 번역으르 한 성경이 있거들랑 다 불로 살라버려라. 이거는 천주교 저거에 맞도륵 한 번역 할라 하고 개혁교는 개혁교에 맞도록 번역할라 하고 둘이 싸우는데 둘이니까 네 맘대로만 할 것이 아니라 둘이 하기로 결의가 됐으니까 너 반 나 반 그래 하자' 이러기 때문에 개혁 성경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그거요.

 

주장하는 중에, 성구 다가 아니고 그 성구가 열 성구가 만일 지금 천주교와 개혁교가 다르다고 하면은 열 성구 가운데 그러면 다섯 성구는 천주교 너거 따라가고 다섯 성구는 개혁교 따라가자 이래 가지고 개혁파에서 성경을 우리에게 바로 번역해 준 이 번역에 벌써 천주교 것이 반 틀린 천주교 것이 들어왔다 그거요.

 

그게 뭣 때문에 됐느냐? 그렇게 할 필요가 뭐 있느냐? 그것은 거게서 돈을 많이 주려고 하니까 이 돈 욕심내는 자들이 들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돈 때문에 그렇게 했어.

 

송창근, 채필근

 

우리 한국에도 왜정 말년에는 다 정통 신학자들은 감옥에 갇혔고 또 외국으로 망명을 했고 그때에 송창근 박사라는 사람이 평양신학교를 그 사람은 신신학 대가리요 그 사람은 신사 참배 그런 것 다 하고 그 주장자인데 그 사람이 평양신학교 교장으로 그 사람을 일본 나라에서 앉혔습니다.

 

송창근 박사가 앉고 난 그 다음으로는 채필근 박사라고 그분이 앉았는데 채필근 박사가 우리 한국에서 독서한 양은 그 사람이 제일 많습니다. 독서를 제일 많이 했어 독서를 많이 했는데 독서가 들어서 저를 죽였어.

 

채필근 박사는 제가 여기 신광교회 와서 집회하는 것을 그 사람이 신신학자인 줄 알고 어떻게 하는고 보자 하고 가서 참여해 보니까 생명 있는 말씀은 한 말씀도 없어. 전부 세상 말하고 있어. 기독교를 세상화 시키는 운동을 하고 있는 그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왜정이 팔월 십오일날 다 패전하고 절단 나고 난 다음에는 그때에 신신학을 다 박멸했습니다. 송창근 채필근 거게 속한 사람들이 전부 신사 참배 다 했는데, 신사 참배 한 그것을 죄라고 안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거게서 속한 사람이 신사참배를 다 했고 신사참배 안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거요.

 

정통신학을 주장한 한부선과 박윤선

 

그러니까 안 한 사람들한테 머리를 안 숙일 수 없고 자복을 안 할 수 없고 이러니까 신신학 세력이 꺾어지고 정통신학이 힘을 썼는데 그때 정통신학을 주장한 사람들이 내나 여게 한부선 목사님이 주장을 했고 또 신사 참배 안 한 사람들이 주장을 했고 또 저게 학자로서 박윤선 목사님이 주장을 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말하기를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함정에 빠져서 죽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내가 그 함정에 빠졌던 자이기 때문에 거기에 말목을 박아놓고 아무도 이 함정에 들어가지 마라 들어가면 죽는다 하는 것을 말하지 안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신사 참배라는 그 함정에 빠져서 죽었던 자이기 때문에 이제 내가 죽었으니 죽었다가 겨우 내가 하나님의 사죄로 살아 나오고 회개로 살아 나왔으니까 다른 사람들을 이 신사참배에 빠지지 말라고 내가 주장할 수밖에 없다.'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분들은 다 신사참배에 다 굴했던 사람들이오.

 

고신에서는 신사 참배에 굴하지 안한 사람

 

지금 제가 알기로는 고신에서는 신사참배에 굴하지 안한 사람이 손명복 목사님이라고 송상석 목사님이 말하는 반소파에 속해 가지고 있다가 요번에 합동해서,' 고소파와 반소파가 둘이 합동해서 합해졌습니다. 합해진 거게 들어왔는데 그이 한 분이 남아 있고, 그 나머지기는 저거가 전부 신사참배 다 했고 하라 하는 대로 다 한 사람들입니다.

 

그분 한 분은 안 한 사람이고, 한명동 목사님도 다 했고, 한상동 목사님이 안 했고, 송상석 목사님 그런 이도 다 했고 거게 뭐, 한상동 목사님이 안 했고 이인재 목사님이 안 했고 또 주남선 목사님이 안 했고 그때 손양원 목사님이 안 했고 그 몇 목사님들이 안 하고 다 했었습니다.

 

신신학 신학자의 제일 권위자가 김재준

 

그래 신신학이 들어왔다가 8.l5해방 후에 그 신신학이 대가리가 꺾어져 가지고 한국에는 신신학이 다 자복을 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그때에 마지막에 신신학 신학자의 제일 권위자가 김재준 목사라고 신학자 있는데 김재준 박사일 겁니다. 아마. 그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한국에서는 신신학으로서는 제일 대학자입니다.

 

정통에서는 대학자가 박윤선

 

또 정통에서는 대학자가 박윤선 목사님이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그 대학자로서 둘이 다 '그러면 너거 둘이 한번 한 자리서 한번 설교를 해 봐라' 그래 가지고 그때 그 대중들이 모여 가지고 참석하고 있는데 김재준 목사 설교하는 거는 전부 이단입니다.

 

이러니까 설교할 때마다 '그거는 이단이요' 또 박윤선 목사 설교할 때는 '그거는 정통이요' 이래 가지고 그때 한번 구별한 일이 있었고, 저도 그때 그 자리에 참석을 했었습니다.

 

박형룡과 송상석

 

그때는 박형룡 박사라고 한국에서는 제일 신학으로는 권위 있는 자요 또 박윤선 목사님보다 앞선 사람인데 그 사람이 신사참배 안 할라고 견디다 못 해서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저 만주로 망명을 하고서 이래 가지고 만주 가서 망명해 가지고 거기 있었는데, 해방 후에 그 사람이 나올 생각을 가지지 안하고 있고, 나올 길이 없고 이랬는데, 송상석 목사님이 그 공산주의 속에 들어가 가지고 박형룡 박사님을 모시고 올라고 생명을 내놓고 모시러 들어가 가지고 박형룡 박사를 모시고 온 사람이 송상석 목사님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공로를 인정을 하고 그분을 다 이렇게 존대하고 참 다 그분들도 진리 위해서 생명 내놓은 사람들이오.

 

예배당 소송 문제

 

나중에 그 사람들이 또 변해 가지고 예배당 소송 문제에 소송을 주장하기 때문에 나는 소송을 반대하니까 그 사람하고 나하고 이렇게 대립이 돼서 내게 대해서 욕 많이 했습니다. 많이 하고 마지막에 죽을 때는 나하고 서로 화친하고서 자기가 말하기를 '예배당 소송 이 소송은 내가 자손 대대로 내가 유언을 하고 하지 말라고 내가 하겠다'고 그런 말을 저한테서 하고 많은 데 다른 데서도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예배당 소송한 것이 그것이 절대 죄악이라 하는 것을 자기 입으로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이번에서도 그 소송을 한파, 한상동 목사님편에 있는 사람들은 소송을 주장했고, 그 사람들은 '소송하는 것은 아니다.' 반소파가 됐습니다. 반소파가 됐는데 소송에 제일 주장하는 송 목사님이 반소파가 됐다 해 가지고는 다른 사람이 안 들을 것이기 때문에 반소파가 주장은 가지고 있지마는 반소파 대가리라 해서 안 되니까 반소파 대가리는 송상석 목사님을 세우지 말고 석원태 목사님을 세우자 이래 가지고 세워 가지고 나가다가 그것도 두 쪼가리 나뉘어졌습니다.

 

고신과 총신에서 각각 유익하도록 역사를 꾸미고

 

그 역사를 여러분들이 좀 아는 대로는 알고, 아마 그것이 죽어도 뒤에, 그러니까 고신에서 역사 내놓은 역사를 꾸며 놓은 것은 고신에 유익하도록 역사를 꾸밀 것이고, 총신에서 역사를 꾸며 내놓은 것은 총신에 유익하도록 역사를 꾸미고, 그러기 때문에 역사책에 기록해 있다 하고서 이런데 역사책에 기록해 있는데 이렇지 않느냐 하는 그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이오. 다 역사 책을 그걸 누가 꾸몄느냐? 자기 아는 것을 표준해 가지고 자기 유리하도록 꾸민 것이 역사요 모든 저서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모두 다 반거짓말이지 진실이 하나도 없다 그거요.

 

박형룡 박사의 장로교 신학교 시작

 

그랬는데 박형룡 박사가 와 가지고 고려신학교 교장이 되고 박윤선 목사님은 그 다음에 부교장이 되고 이래 됐었는데, 와서 보니까 실력 대결을 해 보니까 박윤선 목사님은 회개를 하고 새로운 새 움이 났고, 박형룡 박사는 묵은 둥치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암만 설교를 해도 모든 청중들이 박형룡 박사의 설교보다도 박윤선 목사의 설교를 은혜 있게 들으니까 이 박형룡 박사가 거게서 교장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게 상당히 되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거게서 그만 여기 부산에 있는 고려신학교를 두고 서울에 가 가지고 개혁신학으로 장로교 신학교라 하는 그 이름을 가지고 장로교 신학교를 새로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에 그거 그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가서 뭐, 신학은 하나뿐이 아니라 몇이 돼도 되지 않느냐?' 했는데, 가서 막상 장로교 신학교를 시작하려고 하니까 자본이 없어. 돈이 없기 때문에 안 된다 말이오. 돈이 없으니 돈을 끌어대는 데에는 신신학들하고 손을 잡아야 돈을 대 주겠는데 신신학과 손잡으려고 하면 또 이 정통이 깨지겠고 이래 가지고 문제를 가지고 많이 걱정을 했습니다.

 

이러다가 '우리가 너거를 전적 끌어들일 수는 없다. 그러니까 거게 신신학 교수지마는, 신신학에 속한 신신학 교수지마는 그 중에는 좀 은혜롭다고 하는 그런 교수 한 두 사람만 우리가 채용을 하겠다 그러니까 이제 돈을 대 주겠느냐?' 그리 됐습니다. '돈을 대 주겠다. 얼마든지 학교를 세울 수 있는 돈을 대 주겠다.' 그럴 때에 그것 때문에 올라가 가지고 한부선 목사님이 반대했습니다.

 

한부선 목사님의 신신학 반대

 

한부선 목사님이 반대를 해서 '그렇지마는 어떻게 자기가 정통 신학에 신학자가 돼 가지고 돈 없다고 해 가지고 그 신신학자를 청해 들여서 신신학과 정통 신학과 이렇게 혼합을 시키는 이런 큰 죄를 지을라고 하느냐? 그래 해서는 안 된다.' 만류하니까 그이가 말하기를, '나는 아무래도 돈이 없어 가지고는 지금 신학교를 경영 못 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 좀 그 점이 안됐지마는 나도 알고 돈 때문에 이 신신학 신학자를 우리가 여게다가 가담을 안 시킬 수가 없다. 안 시킬라고 하면은 그런 돈을 내놔라. 돈 안 내놓으면 나는 가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그때 한부선 목사님이 그 일에 대해서 아주 참 이 한국교회가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로 죽었던 것을 그때 남아 있는 그루터기 남아 있는 참 그루터기를 가지고 살려서 한국교회가 살게 됐는데 다시 이것을 신신학으로 삼킬라 하기 때문에 한부선 목사님이 그때 참 기가 막혀서 애를 썼었습니다.

 

한부선 목사님은 그 신사참배를 안 한 사람입니다. 이랬는데 그래 하다가 하다가 안 돼서 그만 한부선 목사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든지 그 마음이 상해서 외치고 다니다가 마지막에는 아에 윗도리 옷을 벗고, 옷을 벗고 그 커다란 양반이 옷을 벗고 시가에 다니면서 '신신학을 용납하면 죽는다. 박형룡 박사가 신신학을 지금 용납하고 이래 있기 때문에 신신학이 들어오면 우리 한국 백성은 죽는다고 옷을 벗고 다니면서 외쳤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누가 옷 벗고 다니는 그것을 보지는 안 했으나 그때 말들은 사람 여기 있습니까? 말들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둘. 그밖에 없습니까? . 이이 이집사님은 못 들었습니까? 귀가 밝은데 못 들었어? 복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 것 못 들었어. 여게서 그래 자, 말로도 듣고, 그때 그래서 한부선 목사가 지금 정신 이상이 됐기 때문에 가둬야 된다 해 가지고서 감옥에다 구금을 했습니다.

 

가뒀습니다. 가뒀는데 갇혀 앉아 가지고 거게서 어떻게 거석하든지 자기가 거게서 대변을 눠 가지고 똥을 싸 가지고 온 전신에 발랐습니다. 전신에 발랐어. 이제 우리 한국 교회는 이와 같이 더러워진다고 똥을 눠 가지고 전신에 발랐어. 그게 한부선 목사님입니다. 그것도 못 들었어? 들은 사람 없어요? 하나, . 들은 사람 손들어 봐. 하나, , , , 다섯, 여섯. 이뿐이라. , 이러니까 그만 역사가 지나가고 뒤 가서 마귀란 놈이 거짓말하면은 모른다 그거요.

 

그래 가지고 한부선 목사님이 참 거기 대해서 한국에 대한 참 한국을 사랑하는 분은 누구 누구해도 한부선 목사님이 한국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미국 사람 선교사면서 한국에서 살았고 한국을 대대손손이 유언을 하고 그렇게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일차적으로 신신학이 돈으로 인해서 들어왔습니다. 내나 지금 합동번역이 돈 때문에 되는 것처럼, 그러기 때문에 돈이 하나님과 같은 동등 그 주인권을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박윤선 한상동 I.C.C.C. 총회에 참석

 

그리고 난 다음에 고신은 박형룡 박사는 올라가 버렸고 한부선 목사님은 여기 고려신학교를 거머쥐고 진리 운동을 한다고 이렇게 하면서 박윤선 목사님하고 이렇게 하는데 그 뒤에 I.C.C.C라고 하는 I.C.C.C.가 맥킨 타이어씨라고 하는 그 선교사 미국 사람이 I.C.C.C. 창설자 인데 I.C.C.C.에서 돈을 주고 또 이랄라 하니까 고신이 어데든지 그때 돈을 줄 데가 있으면 슬그머니 가 가지고 내나 여기도 그 짓 했습니다.

 

그래 돈 얻을라고, I.C.C.C.에 손을 잡을라고 이러니까 그때 여기서 'I.C.C.C 총회가 있으니까 I.C.C.C 총회에 참석하러 오라.' I,C.C.C 총회에 박윤선 목사님하고 한상동 목사님하고 I.C.C.C. 총회에 참석하러 갈라고 할 때에 한부선 목사님하고 저하고 반대했습니다. I.C.C.C가 다른 사람은 뭐인지 모르기 때문에.

 

형님, 나도 잘못 된 줄 압니다

 

반대를 하니까 '가서 뭐 참석하는 거야 무슨 상관 있느냐', 그것 때문에 많이 분주했지마는 한부선 목사님이나 그런 사람이 벌써 거게서 권리를 잊어버렸고 나도 그때에 아주 뭐 실무자로 실권은 가지고 있기는 있었지마는 내 말은 본야 그 사람들이 나를 무식하다고 하기 때문에 내 말은 무식한 사람이 저 사람 말 듣는다. 무식하다 이렇게 취급하고 저거대로 둘이 갔습니다.

 

갔다 와 가지고 왔는데 보니까 박윤선 목사님하고 한상동 목사님하고 신학박사의 명예박사 학위를 얻어 가지고 왔습니다. 얻어 가지고 왔을 때에 그때 제가 한상동 목사님한테 가 가지고, 박윤선 목사님은 그는 본래 학자니까 뭐 학위 얻는 것이 관계가 없고 이런 분들은 다 신앙의 사람이기 때문에 학위 그까짓 거는 신앙에다 대하면 그거 죽은 거요.

 

신앙은 참 신앙이기 때문에 아까워서 '어떻게 이 학위를 그런 것을 가졌습니까?'하니까, 내 손을 잡으면서 '형님, 나도 어찌됐든지 모르고 안하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이 그만 권해 가지고 어찌 이래 됐는데 행사만 안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때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말합니다. 내 손을 잡고 '형님, 나도 잘못 된 줄 압니다. 내가 그 행사를 안 하면 될 것 아닙니까?' 한상동 목사님이 내게 말했습니다. 이러고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안 하면 되겠지요.' 이랬는데, 그렇게 거게서 나하고 합해지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리고 만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밑엣 것들이 속싹속싹 그래 가지고 '그 교만하다. 그게 들어서 학위를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 그따위 소리한다'고 이래 가지고, '일개 전도사가' 이래 가지고 그때 또 내게 대해서 파란이 왔어.

 

상회불복종 죄목

 

그래 그래 대적이 오고 오고 그래 모든 것이 몰려와 가지고 그때 싸우다가 이거는 상회에 복종치 안 하는 불복종, 상회불복종 인간이라 하면서 그 죄목으로 제명을 해 끊겨 나온 것이 내입니다.

 

그때에서 아는 사람은 다 죽었고 나는 그런 말 선전하지 안해. 그런 말 안 하기 때문에 이제 그게 다 바뀌어졌다 말이오. 지금 내가 이 한 것이 녹음이 됐기 때문에, 녹음이 됐으니까 이 녹음이 된 이것이 뒤에 대조하면 다 알 것이라 말이오. 하나도 가감이 없는 정확한 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속화된 인본의 교회, 성전 밖마당

 

이렇게 천주교와 개혁교가 합동 번역하는 것이 돈에 매수 당했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돈을 권세로 알고, 돈을 교회의 권세로 알고, 세상지식을 교회의 권세로 알고, 또 이 정치나 이 세상권세를 권세로 알고 이라면 벌써 그거는 썩은 겁니다.

 

이번에 가서도 공부를 했지마는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듣고 그만치 수준이 자라지 안한 자는 못 듣는다 그 말이오. 땅에서 올라온 두 뿔 가진 양 새끼 같은 게 나왔는데 그것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뭐라고 말했어? 그것이 속화된 인본의 교회, 성전 밖마당이라 그말이오.

 

그랬는데 그들은 무슨 권세 쓴다 했소? 짐승의 권세. 말은 무슨 말한다 했소? 말은 무슨 말하요? 용의 말하지 안 했소? 그만하면 다 압니다. 말을 해 줘도 모르는데 성경보고 깨달을 수가 어떻게 있겠소? 성경보고 그걸 바로 깨달은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알려 주신 것이라. 그 시대를 따라서 그 시대에 역사해서 위해서 하나님이 성령이 와서 알려 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전 밖마당은 기본구원은 있지마는 건설구원은 없는 자, 그자들이 세상이 볼 수 있는 그 면에는 그게 큽니다. 또 그 성전 밖마당보다 더 큰 거는 이 세계 아니요? 세계는 성전 밖마당보다 더 크지 않소? 거게는 기본구원도 없고 건설구원은 으례히 없고 하나도 없는 곳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평가를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평가대로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의 것 생명성의 것 이것으로 평가하면은 평가가 하나님 평가와 같지마는, 하나님하고 평가가 같지 안하고 마귀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마귀적으로 평가하면 예수님이 권세가 큽니까 빌라도가 권세가 큽니까? 누가 권세가 크요? 마귀적으로 세상적으로 평가하면 예수님이 권세가 커요 빌라도가 권세가 커요? 빌라도가 크지 않소? 정통이 커요 신신학이 크요?

 

사람 보기에는 정통 운동들의 그 가진 것이 큽니까, 많고 큽니까? 신신학의 것들이 가진 것이 크고 많습니까? 신신학의 가진 것들이 크고 많지요. 정통보다 병원도 큰 병원 있고, 돈도 많은 돈이 움직이고, 세상 권세 정권에 판사 검사 사람들도 많이 있고 세상 권세자들도 많이 있고, 세상 권세도 많이 들어 있고, 돈도 많이 들어 있고, 세상 학교도 많이 있고, 세상 지위 운동도 많이 들어 있고.

 

신신학에 되어 있는 기독교 장로교

 

그러니까 한국에서 신신학에 되어 있는 것 기독교 장로교, 그것 다 거게서 병원도 더 많고 학교도 더 많고, 돈도 더 많고, 학자도 더 많고 더 많습니다.

 

그 많으니까 세상을 표준으로 하는 자들은 이 진리는 보니까 '아이구, 여기 진리, 목회자 양성원 해 봐야 이거는 존재 없는 것, 거기는 가면 이런 학자들도 이렇게 대거석도 있고 뭣이 거기 속한 거는 병원도 커단하고 뭣도 커단하고 하니까 크지 않느냐? 이 바보야! 그보다 더 큰 것 있다. 그러면 암만 신신학 속화의 교회보다도 더 큰 게 뭐입니까? 더 큰 게 뭐이요? 세상은 그것 몇 십 배 큽니다.

 

그런 것으로 가치를 삼으면 세상이 더 크지 않느냐? 너거가 눈이 멀어서 멸망할 그것만 보이고 그것으로 가치를 삼아 하기 때문에 세상이 제일 크고 세상 다음으로 큰 것은 신신학 인본주의 세상주의의 교회들이고 제일 작은 것은 성전 제단 경배하는 자들이 제일 작지.

 

경배하는 자가 제일 알맹이

 

성전보다 작은 것은 제단이 더 작고, 제단보다 작은 것은 경배하는 자지. 경배하는 자가 제일 알맹이라 그말이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 안 차리면 헛일입니다. 깨달을 자는 깨달을 수 있어. 그것을 다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셔 깨닫고 말하는 것이지 인간이 깨닫게 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거요.

 

이번에도 하나님이 역사에 없는 이 폭서에 우리가 가면 떠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기 갔던 사람들 다 준비하러 갔던 사람들 모두 다 열사병이 들어 가지고 모두 이러고 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죽을 것 아닙니까? 이랬는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날부터 얼마나 서늘한지? 그 날부터 비가 와, 그 날부터.

 

비가 또 우리 옷 젖게도 안 왔어. 어쩌든지 시원하게만 왔지. 이래도 모르는 자는 몰라. '뭐 올 때라 왔지.' 그러므로 성전 밖마당보다 더 큰 것은 성전 밖마당 밖에 세상은 더 큽니다. 이제 어리석게 크고 작은 대소를 가지고서 평가를 하니 성전 밖마당보다는 세상이 더 크지. 또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보다 성전 밖마당이 세상이 더 크지. 이러니까 그리 속해 가지고 그걸 제일이라 위주라 하고서 따라간다 그거요. 그러니까 어리석은 일입니다.

 

여기 그 사람 오라 해도 새벽기도 나오지 안해. 안 오면 저는 죽어. 돈만 가지면 제 뭐할 건데? 며칠 사는 그것이 평생 산 중에는 그게 산 생활이었을 거라. 뭐 이웃 사람이 어떻다고, 뭐 사가간이 어떻다고, 처남이 어떻다고, 친척이 어떻다고. 그 사람 지옥 간다고 제가 지옥 갈 건가? 하나님보고 믿지. 사람보고 믿어?

 

사람보고 믿는 인간은 그거는 인본주의라. 사람보고 믿는 인간은 인본주의라. 하나님보고 믿어야지. 목사님도 인간이라. 목사보고, 백 목사보고 믿던 사람은 뒤에 백 목사를 하나님이 어떻게 만들어 가지고 낙심시킬지 몰라. 백 목사보고 믿지 마. 하나님보고 믿어야 되지.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는 성전 밖마당과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보다 밖마당이 크니까 껍데기 밖마당 큰 것 이것만 네가 보지 말고 그 속에 하나님이 어느 걸 인정하느냐 그것을 볼 것이고, 성전 밖마당이 크다고 하느냐? 그보다 더 큰 것 아주 멸망으로 되어 있는 이방 세상은 더 크지 않느냐? 그걸 본다면 그 표준을 잡으면 그게 더 크지 않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인정하느냐가 그게 문제지.

 

마지막엔 세상이 더 커

 

그러므로 우리가 '거기는 뭐' 뭣 보고 그거 크다고 네가 거게 미련을 가지고 그리 끌려갈라 하느냐? 거게는 사람이 많거든. 사람이 많으니? 무대가 넓지. 사람 많다고.

 

또 그것 뭣 보고 가요? 거게는 모든 시설들이 크거든 또 그것보고. 거게는 뭐이냐? 거게는 인간이 말하는 학자들이 많고 학()이 많기 때문에.

 

그러면 그보다 더 큰 것이, 그보다 더 큰 것이, 점점 이보다. 이보다 요 꺼꾸로 가요. 제일 요게 좋은 거라면 요것보다 더 큰 것 이것, 이것보다 더 큰 것 이것, 이것보다 더 큰 것 이것, 이래 가지고 마지막엔 세상이 더 커. 그걸 구별할 줄 몰라. (백영희목회설교록 1983, 8, 22 월 새벽)

 

17-9. 신학대학과 신학

 

지금은 참된 기독교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지금을 아주 기독교 전성기라 이렇게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참 지금은 참된 기독교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하시고 인자의 때가 노아의 때와 같이, 노아의 때에 멸망하는 그 날 밤까지 모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뭐 사고 팔고 집 짓고 하는 이런 일에서만 분망 하다가 그 날 밤에 다 멸망을 받고 말았다. 예수님의 재림 때도 이와 갈다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지금 이루어져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심히 적습니다.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이래서 그저 이것은 뭐 증거를 할려하면 한이 없겠습니다. 그런데 다만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그 말은 진리가 어두워지고 그림자가 갈 때에, 모든 콩 팥을, 옳고 그른 것을, 또 틀리고 바른 것을 이런 것을 구별하는 것이 전혀 없어지게 된다, 전부 그런 구별하는 것 없어지게 된다 하는 그것만 여러분들이 기억하시고 혼자 가서 생각하면 뭐 백 가지도 생각할 수 있고 그 사람 지식에 따라서 몇 백 가지도 생각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쩌든지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그림자가 있으면 이거는 양지음지다 표가 있지마는 해가 없으면 양지 음지 밝고 어두움이 없습니다. 전부 다 깜깜하고 어두워져 버리지요. 해가 없으면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이 없이 되니까 뭐 옳고 그른 것이 없고 전부는 다 세상과 꼭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전부 세상하고 한 덩어리

 

이래서 지금은 교회와 세상과 다른 점이 어데 있느냐? 교회와 세상과 다른 점이 어데 있으며 세상과 마찰을 가진 그런 교회가 어데 있느냐? 없습니다. 전부 세상하고 한 덩어리입니다. 세상과 다를 것이 없소.

 

이름만 교회라 이름을 가졌지 실상은 세상

 

이름만 교회고 세상이지 실은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원하는 것도 그렇고 또 평가하는 것도 세상에서 가치 있다 하는 것 교회도 가치 있다, 세상에서 가치 없다 하는 것 교회도 가치 없다, 세상과 교회가 가치를 삼는 것도 같고, 비판하는 것도 같고, 대우하는 것도 같고, 소원하는 것도 같고, 부러워하는 것도 같고 꼭 세상입니다.

 

뭐 세상이지 이름만 교회라 이름을 가졌지 실상은 세상입니다. 이것이 왜 그러냐? 진리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라 하는 말입니다.

 

8·15 해방 전 신신학이 들어와

 

과거 8.l5 해방 전에는 그때 우리나라는 조선 나라인데 조선 나라에 있는 모든 교회뿐 아니고 세계의 교회들이 다 그때 그만 참 방종하고 모두 이 세상 전쟁이니 이런데만 생각을 가졌지 교회라 하는 것은 아주 허무했습니다. 한국 교회도 그때에 신신학이 들어와 가지고 한국 교회를 완전히 더럽혔습니다.

 

8·15 해방 후 개혁

 

그러다가 팔월 십오일 해방 후에 조선 교회가 '이래 가지고 안 됐다' 해 가지고 개혁을 했습니다. 그 개혁할 때에 신사참배 하고 안 한 그걸 가지고 '한 것은 잘못됐다, 안 한 것은 바로 됐다' 이래 가지고 신사참배 가지고 개혁을 했고 또 교리와 신조 개혁은 약간 있었지 그렇게 많이 있지를 못했습니다.

 

그런 말이 지금은 싹 종자가 없어졌어요

 

그래 가지고 개혁을 했었는데 이 개혁한 해방 후의 교회들이 오늘에는 해방 직후와 지금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때는 뭐 어데든지 은혜 있는 집회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전부 막 뭉쳐서 길을 못 찾을 만치 그렇게 모여들어 가지고 진리를 구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때는 뭐 인본주의 신본주의 다 알았어. 그건 인본주의다! 이건 신본주의다! 그거는 기독교 정치주위다! 기독교 도덕주의다! 그거는 기독교 유물주의다! 뭐 이렇게 모두 다 말했지만 그런 말이 지금은 싹 종자가 없어졌어요.

 

아이구 듣기 싫은 소리한다

 

강단에서 그런 말합니다. 그런 말하면 벌써 교인들이 다 상을 찡그립니다. 다 찡그리고 '저거 또 지금 아이구 듣기 싫은 소리한다' 교인들이 상을 찡그리고 듣기 싫어하지, 그 설교 오래하면 그 목사가 쫓겨나가게 되지 배척 당하게 되지,

 

, 목사도 사람인데 자꾸 그런 설교 많이 하면 뭐 사과 한 개도 안 가져오지, 생선 한 마리도 안 사 가지고 오지, 쫄쫄 곯지, 뭐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게 차차 차차 그게 없어집니다. 없어지고 이제 꼭 세상과 같은 놀음으로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실은 오늘은 세상에 빛이 없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신학교 질을 높이자

 

한국에 '이 신학교 질이 낮으니까 신학교 질을 높이자' 이랬는데 '그러면 신학교 질을 높이면 어떻게 질을 높이노?' '신학교 질을 높이는 데에는 다 신학생들은 전부 대학을 졸업 맡은 사람으로서 전부 신학생들이 돼야 되지' 세상 학문이 낮다고 해서 그것으로써 신학의 질을 삼아 가지고 그 세상 학문이 적으면 질이 낮다, 그 학문이 많으면 질이 높다, 그래서 그 질을 높이자 하는 데에서 바짝 서둘러 가지고 모든 신학교가 신과대학이 되고 대학원이 됐습니다.

 

신과대학이 되고 대학원이 됐는데, 신학교로 있을 때와 신학대학이 된 때와 또 신학대학에서 한 걸음 나아가서 신학대학원이 된 때와 그것을 그때와 지금과 꼭 사진을 베껴 놓은 것같이, 사진같이 그 상태를 베껴 놓은 것 같으면 그때와 지금과는 아주 l80도 달라졌습니다 아주 달라졌습니다.

 

그게 자기네들은 그걸 모릅니다. 홀켜 들어가 죽는 자는 몰라요, 그게 어데서 나왔느냐 하면 우리 한국에 신학교 질이 낮으니까 신학교 질을 높이자 하는 거기서 신과대학이 나왔습니다.

 

여기 고려신학교도 그 고신대학이 되고 나서

 

신학대학이 나왔고 신학대학원이 나왔는데 그 나온 때부터 점점 교회는 세상화 돼버리고 말고 이래서 여게 가까이 있는데 여기 00고려 신학교도 그 00고신 대학이 되고 나서, 이제 신학은 그만 신학부로 좀 두고 또 종합대학이 될 때에, 그때 요새는 지금 뭐 의대가 제일 좀 유식한 학생들이 많이 있고 이러니까 의대가 세력을 잡아 가지고 지금 신학교는 그만 저 아주 매몰돼다시피 매물돼 쫓겨서 어데로 가다 시피 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꾸 지금 진리는 아주 가리워져서 어두워집니다.

 

이 구별하는 일이 아주 없어지는 때라

 

어두워지는데 이때에 '이렇게 교회가 여게 저게 서니까 자꾸 이제 참 진리가 충만 한 시대다' 이렇게 보는 사람과 '이 진리가 가리워져서 보이지 않고 지금은 참 그림자가 갈 때라. 흑백을 구별하는 이 구별하는 일이 아주 없어지는 때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내가 올 때에 세상에 믿음을 보겠느냐

 

또 그렇게 생각하면 총을 맞고 욕을 얻어먹고 교인들에게 그런 소리하면 대략 세상에, 세상 돈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부자이고 세상적으로 똑똑한 사람인데 그런 소리하면 그 사람들이 배척이나 하지 뭐 사례도 잘 주지도 않고 또 뭐 대접도 안 하니까 쫄쫄 곤다 말이오.

 

그러니까 교역자들도 또 그렇게 할 필요 없다 해 가지고 좀 그래 돼 가지고 해서 어쨌든지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가 온다 하는 말이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내가 올 때에 세상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말씀을 보면 얼마나 그 믿음이 식어지고 빛이 없을 것을 계시록에도 말했고 총총 말한 그대로입니다.

 

주님 만나려면 어데로 가야 되느냐?

 

이랬는데 지금 오늘 저녁에 말하는 것은 그러면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여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내가' 하는 것은 주님을 말합니다. 그러면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그때는 주님 만나려면 어데로 가야 되느냐 하는 그걸 요게 말하는 것이오.

 

주님 만나려면 어데로 가야 되느냐? 그러면, 해가 기울어 진리가 없고 빛이 없고 전부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이 세상 이 무슨 강의하는 거와 같이 세상 강의지 하나님의 말씀은 이름만 떡 갖다 붙여 놓고 실상 강의할 때 하나님의 도를 강의하는 일은 없고 전부 세상 것을 강의합니다. 이래서 그래도 눈이 어두워 모릅니다.

 

하나님 공부하는 게 신학인데

 

신학은 성경 말씀을 배우는 게 신학이요, 또 성경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 하는 것을 하나님 공부하는 게 신학인데, 요새는 신학은 한 학문이지 성경과 하나님을 공부하는 게 신학이 아니라 할 만치 완전히 변해져 버렸습니다.

 

신학이라는 한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지

 

변해져도 거게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고 학자라 할수록 그 사람들은 다 신학은 신학이라는 한 학문이 있어서 그 신학을 신학이라는 한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지 신학이 어데 성경 공부하며 신학이 어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나님에 대해 공부하는 것 아니라고 그렇게 백의 구십구가 다 그래 말하고, 백의 백인데 '백에 구십구' 하는 것은 하나 끼여 있다는 것은 그저 다 칠 수는 없고 그거 이러니까 구십구는 그렇다 그래 말하는 것이지 그런 시대가 왔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8, 11, 4 금 저녁)

 

17-10. 학교와 병원, 기관선교

 

병원 세워 선교와 학교 세워 선교

 

또 선교한 가운데에 아, 이거 선교하는 데 이거 의술이 필요하니까 병원을 세워 가지고서 선교한 그거, 그 선교가 끝이 별로이 좋지를 못합니다. , 이 선교하는 데는 학교를 이와 같이 해야 되겠다. 학교를 계획해 가지고서 이래 하는 거 좋은 거 같은데 실은 밝은 눈으로 보면은 결과가 좋지를 못합니다.

 

이사장이 누가 되노

 

아마 지금 ○○○교 같은 그런 데서도 무슨 총회가 모이면은, 학교를 경영한 것은 학교에 돈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 벌써 무슨 총회를 모이면은 이번에는 그 학교에 이사장이 누가 되노?, 학교에 돈을 그거 돈을 거머쥐고 누가 지금 이 권리를 이래 하느냐, 이것 때문에 그만 전부 신경은 거게 다 주력합니다. 주력하고, 전부 온, 하나님의 뜻을 쫓는 것보다도 그만 학교의 재정에 대해서 재경치, 재정권에 대해서 사람들이 신경 기울이는 거게다가 전부 주력해 기울인다 그거요.

 

총회가 모였으니 하나님의 뜻이 어데 있느냐

 

그러니까 뭐 이렇고 저렇고 해도 그런 그 기관들 가만히 보면, 총회가 모였으니 하나님의 뜻이 어데 있느냐? , 또 우리의 적이 어데 있느냐? 또 우리가 지금 이와 같이 나가면 어떻게 지금 속화가 돼 나가고 있느냐? 지금 어떤 이단이 들어 왔느냐? 뭐 할 일이 물밀듯 들어 오니가 할 일이 한정 없이 있고, 또 예방할 일이 한정 없이 있는데,

 

진리 싸움이 아니고 돈 싸움

 

그거는 아니고 전부 신경이 전부 그거 돈에 가서 다 기울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시비요. 나중에 가서 보면 또 싸움도 전부 돈 싸움입니다. 싸움도 전부 돈 싸움이라. 이래 놓으니까 돈 싸움 아닌 싸움이 없이 전부 돈 싸움이라. 진리 싸움이 아니고 돈 싸움, 그리 안 하면 감투싸움, 그만 이것으로 완전히 변질돼 버리고 마는 그런 것을 우리가 봅니다.

 

그리기 때문에 처음에는 효력이 있는 거 같았지마는서도 성경에 기록한 이 방편은 갈수록이 변동이 없고 다른 방편은 나중에 가서 폐단들이 많이 생겨집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5, 12, 3 화 새벽)

 

17-11. 부산의 신앙과 고신, 그리고 제명

 

통일교회(문선명)

 

통일교회가 세계에 어느 나라 없이 가서 아주 대흥왕 하는데 한국에서는 근거지지만 한국에는 힘을 못 쓰고 있습니다. 한국 가운데서도 제일 힘쓰는 곳은 서울이고 그 다음에는 대구도 약간 있습니다. 부산이 제일 힘을 쓰지 못합니다. 부산은 왜? 성경대로 이와 같이 지금 깨닫고 살라고 하기 때문에.

 

해방 후에 고신이 부산에서 근거를 잡아 가지고

 

부산은 왜? 이렇게 신앙에 대한 교리와 신조를 똑똑히 알고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그 이유는 해방 후에 고신이 부산에서 근거를 잡아 가지고 고신이 발족했습니다. 그때에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은 신학자들이든지 또 신학자 아닌 무슨 이런 평신도라도 아주 독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때 고신으로 다 몰려들었습니다.

 

신사참배 안 한 것이 그것이 옳다고

 

? 신사참배 안 한 사람들은 다 고신으로 몰려들었고, 신사참배를 한 사람이라도 '신사참배 한 것보다 안 한 게 옳다' 이래 가지고 신사참배 안 한 것이 그것이 옳다고 하는 사람들은 전부 고신으로 다 모았습니다.

 

집회하면 고신으로 돌아오고

 

이러기 때문에 제가 처음에 고신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인도했습니다. 제가 고려신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공부는 별로 못 해 봤습니다. 공부하면 아무 교회가 지금 이거 분쟁이 나 가지고 지금 고신으로 우리는 가입을 하자 안 하자 이 시비가 있으니까 가서 집회를 가라 해서 그 사람들이 집회 청한 데에 가서 집회하고 나면 고신으로 돌아오고, 집회하면 고신으로 돌아오고, 집회하고 나면 한 교회만 돌아오는 게 아니라 그 참여한 사람들이 많은 교회들이 돌아오고 이래서 고신 끌어 모으는 데는 상당히 많은 숫자를 제가 끌어 모았습니다.

 

고신에서 이 교리 신조 때문에 시비

 

이라고 난 다음에 고신에서 이 교리 신조 때문에 시비가 났습니다. 예배당 소송 문제 때문에 시비가 났고, 또 신학에 정치학을 가르치는데 정치학 가르칠 때에 그때 송상석 목사님이 정치학을 가르쳤는데 그 정치학은 꼭 세상 이 정치법과 같은 그 법을 가지고 가르쳐서 믿는 사람은 성경에 가르치는 성경 정치법이 있는데 성경 정치법을 가르치지 안하고 이 일반 이 세상 정치법을 가르치기 때문에 뭐 로마 정치법이나 대한 정치법이나 어떤 정치법이라 할지라도 이거는 신학에서 가르치는 정치법이 아니라는 것을 시비를 해서 제가 단독이 그때 고신 교장으로 계시는 박윤선 목사님 그 사택에 가 가지고 세 시간 논쟁했습니다.

 

세 시간 논쟁 끝에 나중에 합의를 봐서 그 박윤선 목사님이 그러면 이 정치학 그걸 송상석 목사님을 정치학 강사로 삼지 아니하고 다른 분을 정치학 강사로 강사를 갈겠다 그래 그 합의를 봤습니다. 제가 그때 공부하고 있는 중에 있기 때문에.

 

결국은 정치학 강사를 갈기로

 

그 송상석 목사님이 똑똑하고 참 아주 뭐 공로자입니다. . 저 해방 후에, 그때에 해방 전까지는 조선 나라에서는 박형롱 박사가 제일 권위 있는 신학자로서, 신학교장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었는데, 왜정 말년 때에 어려움이 있어서 그분이 일본 가서 피신해 가지고 망명해 가지고 신사참배 안 할라고 일본 가 있다가, 또 일본 가서 그 차차 들나니까 견뎌 내기지를 못해서 거게서 또 망명해 가지고 만주로 가 가지고 있는데 만주 가고 난 다음에 해방이 됐습니다.

 

해방이 됐으니까 그 벌써 삼팔선이 갈려서 그때 소련군이니 중공군이니 이런 사람들이 공산군들이 거게 다 주둔을 하고 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만주에 있는 사람이 나을 수가 없습니다. 나을 수가 없고 거기 있는 사람을 필요는 하기는 한데 그분을 데리고 올라 하는 날이면, 그분을 데리고 와야 한국에 정통 신학을 세우겠고 이랬는데 그분이 정통 신학 교장으로 제일 권위 있는 사람이었었는데 아무도 그분을 오라고 소식 전할 사람도 없고 또 더우기 모시러 갈 사람은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송상석 목사님이 자기가 생명을 내놓고 '어짜든지 내가 가서 모시고 오겠다' 자기 생명 내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권능만 바라고 만주 가 가지고 공산주의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 나와 가지고 박형룡 목사님을 이 부산 고려신학교에 앉혔습니다. 그거 참 큰 공로를 베푼 분입니다.

 

이랬는데 이분을 정치학을 가르치는 정치학 강사로 이렇게 수고하는데, 그 정치학에 대해서 제가 말해 가지고 교장 내나 박윤선 목사님하고 '어떻게 이런 걸 가르치는데 이게 성경적이냐? 이 정치학을 가르치는 게 성경적이 아니지 않느냐?' 이래 가지고 그때 세 시간 논쟁하다가 결국은 정치학 강사를 갈기로 했습니다.

 

송상석 목사하고 나하고 그만 원수가

 

나는 그때 한 뭐 일개의 나는 그때 한 조사, 전도사였습니다. 전도사인데 바른 걸 말하니까 어짤 수 없지요. 그때서 송상석 목사하고 나하고 그만 원수가 됐습니다.

 

원수가 된 데다가 또 거듭 원수가 뭣 때문에 됐느냐? 그분은 예배당 소송에 주동으로서 법을 잘 아니까 소송에 아주 그 권위가 있어서 그렇게 하는데 '예배당은 소송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다' 이래서 그거 때문에 또 나하고 대립이 돼 가지고 아주 원수가 됐었습니다.' 그뭐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이단이라고 정죄해 가지고 끊을라고

 

그래 가지고 나를 끊어 낼라고 팜프렛트를 만들어 가지고 전부 총노회라고, 그때는 노회가 없습니다. 고신이 총노회. 그때 노회 겸 총회겸 조그만한 노회 하나로 시작했었습니다. 그때 총노회 때인데 총노회 때에 거게서 팜프렛트를 거게서 뿌려 가지고 나를 이것을 이단이라고 정죄해 가지고 끊을라고 이렇게 했는데 거기 마침 참 그거를 하나님이 기회를 줘 가치고 그렇게 성경 해석하는 게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을 제가 다시 팜프렛트를 해 가지고 온 교인들에게 뿌려서 그때 그만 그 제가 이단으로 정죄 받아 가지고 제명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라고 그때는 내편이 많았습니다. 한상동, 뭐 한명동, 오종덕, 또 박윤선씨 이런 분들이 다, 이인재 이런 분들이 다 나와 한패였습니다.

 

상회에 불복종하는 이 불복종 죄로

 

이렇지만 차차 차차 자꾸 이게 이 건이 서로 마찰이 돼서 대립되고 저 건이 마찰돼 대립돼 가지고 마지막에는 나를 상회에 불복종하는 이 불복종 죄로 정죄해 가지고 제가 꼭 일곱 노회만에 제명이 됐습니다.

 

뭐 전도사는 당회서 제명하면 돼 버리는 것입니다. 면직하면 면직되는 것인데 총노회 문제로서 일곱 노회를 지내와서 그 노회 촬요가 제게 있습니다.

 

진짜 고신은 여게 있구먼

 

이래서 그때 탁명환씨가 그 사람들 고신에 가 가지고 강사로 다니니까 거게다 촉탁을 받아 가지고 이 서부교회는 이렇다 하는 나쁜 점을 기록했었습니다. 없는 나쁜 점을 기록해서 그때 인제 모든 사람들이 가 가지고 밝히니까, 여기 그 패는 모두 신도범 모두 다 송용조 뭐 이런 사람 다 여기 있을 때입니다. 백태영 이런 분들이 가 가지고 밝히는데 밝힌다고 그 사람들이 듣습니까? 노회 촬요에 그 제명 당했다 이랬는데 그것이 전부 노회 촬요가 있기 때문에 일곱 노회 촬요를 다 가지고 가서 보이니까 그분이 말하기를 '진짜 고신은 여게 있구먼'이라면서 그분이 그라고 난 다음에는 다시는 우리에게 헐지 안하고 제가 집회하는데 참말로 이게 무슨 집회인고 보자 해 가지고 대구에 한번 왔었습니다.

 

대구에 와 가자고 자기서 참석을 해 보고 난 다음에 '진짜 예수교는 여기 있다' 그래 지금도 우리 교회 대해서는 아주 좀 호감을 가지고 있고 또 우리에게 뭐 욕을 하면 그 사람이 달라 들어서 뭘 하고 있습니다.

 

해방 후에 진리 운동이 부산에 시작

 

이렇게 이 모두가 다, 그러니까 부산 여기는 그때에 해방 후에 진리 운동이 부산에 시작됐습니다. 부산 고신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이 부산에는 그때 전부 고신뿐이었지 합동측 교회는 몇 교회 안 됐습니다. 그만 그 뒤에 고신이 합동하고 합하자 이래 가지고 범벅을 하는 통에 여기 고신 아닌 교회가 많이 생겼지 그때는 고신 외에 교회는 몇 교회 없었습니다.

 

박태선파 전도관

 

이러니까 여게 제일 성경을 가지고 많이 근거하는 이것이 제일 앞서 있기 때문에 여게는 박태선파가 왔지만 이것이 여게서는 힘을 못 쓰고 다 쪼그라지고 말았습니다.

 

전도관으로서는 제일 왕국이 어디냐 하면 이것이 제일 왕국입니다.(: 서부교회 근처에 있는 박태선 전도관) 제일 왕국인데 차차 차차 쪼그라져 가지고 지금은 뭐 형편이 없습니다.

 

순복음교회 금식기도원

 

또 그러고 저 000순복음 교회 금식기도원이라는 것이 그것이 서울서는 그거 했을 때에 어떻게 많은 사람이 오고 아주 인기가 아주 집중 됐었습니다. 이러니까 부산도 이 아마 금식기도원을 세우면 되겠다 해 가지고 저 금강원에 거기 양로원을 한 달에 오십만 원씩 주고 빌려 가지고 그래 금식 기도원을 하는데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있기는 있습니다만서도 현상 유지가 안 됩니다. 이러니까 그 와 봐야 금식 기도원에 누가 가는 사람이 없고 혹 모르고 지금 가는데 진리 아는 사람은 그런 데 가지를 않습니다. 힘을 못 씁니다.

 

문선명씨의 통일파

 

그러고 여게 문선명씨의 통일파는 여기 부산에 와 가지고 여게 저게 몇 군데 해 봐야 그게 안 됩니다. 안 돼서 여기 부산에는 별로 통일교회가 그렇게 유명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뭐 서울 가면 유명하고, 미국 가면 더 유명하고, 영국 가면 더 유명하고, 독일 가면 더 유명하고, 세계적으로 굉장히 유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별로 많이 힘을 쓰지 못 하고 있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8, 5, 23 월 새벽)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1.02.23-28 김반석 2019.05.26
공지 김반석이 편저한 '백영희 신앙세계' 선지자 2015.07.22
28 (백영희 신앙세계) 편저자 김반석 선지자 2015.09.06
27 (백영희 신앙세계) 23장 서부교회 주일학교 신문기사 선지자 2015.09.06
26 (백영희 신앙세계) 22장 순생의 상급은 순교 선지자 2015.09.06
25 (백영희 신앙세계) 21장 백영희 목사님의 詩 김반석 2008.06.29
24 (백영희 신앙세계) 20장 백영희 목사님의 관 선지자 2008.06.29
23 (백영희 신앙세계) 19장 교회와 총공회 목회 선지자 2008.06.29
22 (백영희 신앙세계) 18장 신학교와 교단 등록 거부 선지자 2008.06.29
» (백영희 신앙세계) 17장 한국 교계의 정황 선지자 2008.06.29
20 (백영희 신앙세계) 16장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 발족 선지자 2008.06.29
19 (백영희 신앙세계) 15장 고신에서 제명 선지자 2008.06.29
18 (백영희 신앙세계) 14장 고신의 신앙속화와 교권주의 선지자 2007.12.09
17 (백영희 신앙세계) 13장 부산 서부교회 부임 선지자 2007.05.15
16 (백영희 신앙세계) 12장 6.25 종전 직후 선지자 2007.05.15
15 (백영희 신앙세계) 11장 6.25 전쟁 시 거창지역 순교자 선지자 2007.05.15
14 (백영희 신앙세계) 10장 순생의 순교자 주남선 목사 선지자 2007.05.15
13 (백영희 신앙세계) 9장 6.25 환란에서 승리 선지자 2007.05.15
12 (백영희 신앙세계) 8장 6.25 전쟁 선지자 2007.05.15
11 (백영희 신앙세계) 7장 국기배례 승리 선지자 2007.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