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9 01:54
12. 유치장 이동
낮에는 틈틈이 형사들이 찾아와서는 한 반시간씩 앉았다 가기 때문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 형사들은 공연히 할 일도 없이 앉았다가는 돌아가고 하는데 그들을 보면 언제나 기분이 나쁘고 불쾌했다.
여름철이 되어 덥기도 하고 핑계삼아 큰 집 한 채를 얻어서 이사를 했다. 그러고는 경찰에 알리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이때부터 성도들은 낮이나 밤이나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었다. 경찰서에 구속되었던 성도들도 특별히 항일 사상 문제에 관계되지 않은 모든 성도들은 다 풀려 나왔으므로 일본인에게 아양을 떨고 신사참배를 하는 목사와 장로들은 풀이 꺾이고, 그 위신이 떨어졌다. 그러나 담대히 신앙을 주장하고 경찰에서의 고문을 이겨내어 정절을 지킨 성도들은 무한한 존경을 받고 높임을 받았다.
아직 날도 밝기 전인 이 첫새벽에 유형사가 찾아온 것은 어떤 중대한 일이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순간 나는 마음의 각오를 하면서나는 때가 왔구나 하는 각오를 하면서 그의 얼굴을 쳐다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경찰서로 잠깐 같이 가십시다.”
하고 그는 냉정히 명령하듯이 말했다. 나는 때가 왔구나 하는 각오를 하면서도 가슴은 쾅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마루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서 어머니 앞으로 편지를 몇 자 써 놓았다.
“어머니, 경찰서에서 오라고 해서 갑니다. 너무 염려 마시고 주님만 쳐다보며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숙.”
이라고 쓴 편지를 어머니가 들어오셔서 곧 찾아볼 수 있도록 바닥에 놓고 앞으로 다가올 추위를 미리 생각해서 옷을 든든히 껴입고 모포를 가지고 형사를 따라 나섰다.
대문 밖으로 나서자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았으나 어둠은 가시기 시작해서 동쪽하늘이 밝아오고 있다. 새벽별들이 유난히도 반짝거리며 자기들끼리의 대화를 속삭이는 듯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다. 형사를 따라 걸어가는 나는 시편 23편을 암송하고 그리고 마음속으로 찬송을 불렀다.
나는 백50장이나 되는 많은 찬송가와 백 장이 넘는 많은 성경 구절을 외운 것이 모두 내 가슴에 꽉 차 있어서 큰 힘이 되었다. 마음은 조용해지고 무언지 적진을 향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야 내가 정말로
‘사망의 골짜기로 주님을 따라가는구나! 나 같은 가치 없는 인간이 그 영화로우신 주님을 위해 죽다니!’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거룩해지고 감격이 마치 물같이 나를 씻어주는 것 같았다. 나는
“때가 왔어요, 주님 ! 바로 이때가 왔어요, 하나님!”
하면서 주님을 의지하면서 형사를 따라갔다. 경찰서에 들어서니 이렇게 새벽 시간인데도 벌써 잡혀 온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정복한 순사와 형사들은 눈에 살기를 띠고 분주히 들락날락하고 흰옷을 입은 수많은 성도들은 모두 어린양과 같이 순하게 잡혀 와서 어떤 이는 담대히 기도하고, 어떤 이는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고, 어떤 이는 불안한 눈초리로 두루 살피기만 하고, 어떤 이는 조용히 미소지은 얼굴로 서 있기도 했다. 고등계 사무실로 들어가니 거기도 벌써 성도들로 꽉 차 있었는데 형사들은 성도들을 발길로 차며 뺨을 때리기도 하는 살풍경이 벌어져 있었다. 발길로 채고 뺨을 호되게 얻어맞고 있는 성도들은 모두가 아무런 반항도 없이 어린 양 모양으로 그냥 기도만 했다. 불안과 공포에 가득 찬 이 사무실 안은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 자랑하는 것도 같았다.
이 유치장 간수도 한국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 전에 나를 유치장까지 데려다 준 형사와는 딴판으로 무지했고 험상스럽기만 했다. 감방으로 들어온 나는 먼저 꿇어앉아 기도부터 했다.
“주여! 이제야 사자굴에 맹수가 우글거리는 곳으로 끌려왔습니다. 주의 손과 지팡이로 꼭 나를 지켜 주시고 어떠한 순간에도 멀리 가시지 말아 주소서.”
그리고 집에 홀로 남아 있는 어머니를 위해서도 간곡히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얼굴을 들어 옆의 감방을 살펴보니 모두가 유치장생활에 시달려서 그런지 누구나 다 유순한 사람들만 같아 보였다. 여자감방은 두 방이 있었는데 한 방은 일반 파렴치범을 또 한 방은 사상범을 비롯한 국사범으로 구별해 쓰고 있었다. 내가 들어간 국사범 방은 텅 비어 나 혼자 있게 되었다.
나는 혹시나 이 유치장에도 성도들이 갇혀 있지 않을까 해서 건넛방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남자 감방 제일 끝 방에 수염이 하얗게 난 노인이 나를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도 자세히 건너다보니 그 노인은 이기선 목사였다. 60이 넘은 이 목사는 수염이 길게 자란 채 얼굴은 희고 조용한 태도로 앉아 있었다. 나는 너무도 반가워서 엎드려 절을 했더니 그도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나는 가슴이 타올랐다. 그는 박천 내 고향인이다. 잠깐 동안이지만 우리는 그 얼마나 서로 만나서 간증을 하면서도 힘을 돋우며 서로 격려해 왔던가? 그는 내가 동경에서 경고 후 돌아왔을 때 2년 만에 석방되어 숨어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 간증하고 같이 순교하자고 격려해 주시던 분이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나와 같이 오늘 검거되어 이 유치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일과 앞으로 닥쳐올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대로 될 것이고 나는 주님의 은혜에 힘입어서 주와 같이 이 험한 길을 가고야말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에서 나의 모든 일, 주님의 손에 맡겨 그저 믿고 순종의 하루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험한 길이다. 그러나 거기 주의 권능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그것을 내 몸소 경험하는 것이다. 이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나는 더 큰 은혜의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하는 믿음이 마음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같았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주님의 손에 매달려서 원수와 사자들이 덤비는 이 캄캄한 굴을 지나가야 한다. 나는 주님의 능력을 내 몸소 보고 경험할 것이다. 이 큰 시험대에 올라선 나는 도마에 올려놓은 생선과 같으면서도 또 내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되고 다니엘이 되고 다윗이 되고 이스라엘의 출애굽기가 되어 보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깊은 밤 유치장의 이 신음 소리와 한숨 소리는 마치 생지옥에서 들려오는 벅찬 숨소리 같았다. 고통의 밤은 가고 아침이 왔다.
<내일은 온다>라는 시를 쓴 그 청년은 이 아침을 제정신으로 맞이하고 있을까? 옳다! 일본이 패망하고 이 땅에서 물러갈 때에는 우리민족에게는 밝은 아침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 나라의 아침이야말로 영원히 계속되는 밝은 아침이라는 것을 이 청년은 알고 있을까?
죄인을 찾으시는 예수님은 그들의 영원한 어둔 밤을 면하게 해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십자가는 죄인들에게 아침을 맞게 해주며, 주님 자신이 그 아침이시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았다.
“죽는 일은 사는 일이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오! 죽어야만 사는 것이다. 죽자! 죽자! 죽자!”
하고 나는 고함을 치면서 용기를 얻으려고 애썼다.
고등계 사무실에 들어간 나는 어머니를 보고 깜짝 놀라서 반가움과 기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머니는 내가 갈아입을 옷과 음식을 가지고 왔는데 어머니 얼굴을 보니 아무런 근심스러운 빛이 없고 자랑스러움에 넘쳐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고 기뻤다. 어머니는
“나는 네가 그렇게 기쁜 얼굴을 하니 참 하나님이 힘을 주신 것을 알고 무척 감사한다”
“저는 어머니가 아무런 걱정 없이 있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오셨으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감사하고 힘이 나는지 알 수 없어요.”
우리 모녀의 얼굴과 대화 내용을 듣고 있던 고등계 차석이 자기 옆의 형사에게
“저것 보라구. 참 별스러운 면회인데. 마치 연회장에서 기다리다 만난 모녀의 면회 같지 않아? 유치장에서 끌려나온 사람 같지도 않고 유치장의 딸을 면회 온 사람 같지도 않으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나는 더욱더 용기가 났다.
기쁨과 자랑스러운 마음이 커졌다. 우리 모녀는 기쁨과 웃음으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것을 약속하고 나는 어머니가 준비해 온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옷을 옆방에서 갈아입고는 더 이상 앉아 있을 까닭이 없다는 듯이 어머니에게 돌아가시라고 하고 나는 나대로 유치장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들은 우리의 태도에 또다시 놀라며
“보통 면회를 시키면 울고불고 야단인데 더 앉아서 이야기하시오”
라고 권했으므로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았다. 어머니 얼굴을 쳐다보니 아름다웠다. 또 조용하게 앉아 있는 어머니, 그 속의 신앙을 보니 참으로 진실한 향내가 풍기는 것 같았다. 내가
“어머니는 참 아름다워요”
하니 어머니는 나의 말에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면서
“너는 아직도 그런 소리만 하는구나.” 했다.
“나는 어머니같이 예쁘고 잘생긴 여자를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본 일이 없어요. 그런데 오늘은 어머니가 전보다 더 기가 막히게 예쁘고 아름다워요.”
“나는 네가 그렇게 얼굴에 광채를 띤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하면서 좋아했다. 나는 그의 천사같이 희고 고상해 보이는 얼굴을 내 손으로써 쓸어 보면서
“어머니 얼굴은 우유같이 희고 장미같이 아름다워요”
하고 쳐다보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어머니는 내게 제일 귀한 보배인 줄 아세요.”
어머니는 눈치 있게 일어서서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차석은
“도청의 지시인데 당신에게 며칠 후에 여기 나와서 감상문을 쓰도록 하래요.”
했다. 이날도 고등계 사무실은 매우 복잡했다. 옆방에 취조하는 노한 소리와 고함을 지르는 소리와 우는 소리는 참으로 무시무시했다. 나를 유치장으로 데리고 가던 한국인 형사는 친절하게
“혹시 집에 비밀리 연락할 일이 있으면 연락해 주겠습니다.”
했다. 나는 그 형사에게 물어 보았다.
“당신도 더러 예배당에 가 본 일이 있는가요?”
“한국인으로서 어릴 때 주일학교에 안 가 본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어요. 벌어먹으려니 이 노릇이지요”
“나는 비밀리 연락할 일은 없고 때때로 우리 어머니에게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만 알려 주면 고맙겠어요.” 했다.
구가 경시가 그러한 태도로 말을 하게 된 것이 내 처지를 훨씬 좋게 해주었다. 주임이나 차석이나 형사들로 하여금 나를 특별히 조심해서 취급하도록 하는 아주 좋은 방법인 것임을 나는 눈치챘다. 그는 나에게 아주 가볍게 마치 손님과 대화하듯 물었다.
“기분이 어떻지요?”
“아주 좋습니다.”
“아주 좋다구! 어떤 의미로?”
“왜 그런지 아주 사는 보람이 있는 것 같으니까요.”
“뭐? 사는 보람이 있어? 그래 유치장에서 사는 보람을 느낀단 말인가?”
“지금에 와서야 겨우 나는 나의 신앙이 어떤 것인가를 시험하는 것 같으니까요.”
“죄수가 된 것이 좋다고? 하! 거참!”
하며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하는 구가 경시에게 옆에 있던 주임이
“그러니까 저렇게 아주 기뻐 보이지 않습니까? 참, 이 아가씨는 아직 세상 천지를 모른단 말씀입니다. 경시님!”
“그래그래, 이 아가씨는 일본까지 가서 전문 교육을 받았지, 또 고생해 본 일이 없지, 그러니 세상 모르는 철부지 아가씨가 될 수밖에. 이런 유치장에서 저 혼자서만 신이 난다는 것은 참 처치 곤란이란 말이야. 전번에 이 아가씨의 일기 쓴 것을 전부 압수해서 읽어보았는데 참으로 그것은 대단한 명문장이더군. 나는 놀랐단 말이야. 그러니 자네들도 똑똑히 정신차려야 해!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 아가씨에게 큰코 다친다는 것을 알아야 해.”
그의 말은 더한층 나에게 유익을 가져왔다. 나는 하나님께서 왜 이같이 하실까? 왜 그들 앞에서 나를 이같이 해주실까? 생각하고 마음이 뜨거워져서 죽도록 충성하기를 또다시 결심했다. 나는 나의 일기가 압수된 것을 모르고 있다가 오늘 구가 경시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악질인 간수는 그를 다시 발길로 차고 따귀를 때리고 그리고 또 그 피 묻은 가죽 혁대로 다시 그 사람을 후려갈겼다. 한자나 뛰어오르면서, 아이구 사람 살리라고 소리를 쳤다. 간수는 또 후려갈겼다. 이렇게 무작정 후려갈기는 가죽 혁대가 그 불쌍한 죄인의 얼굴을 휘감고 지나가자 얼굴에서는 새빨간 피가 쏟아지면서 또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자가 쓰러진 사람을 발길로 차 감방 안으로 들여 넣자 기절하고 말았다. 물을 끼얹어 정신을 차린 죄수를 다시 자기 감방으로 끌고가서 발길로 차서 들여놓았다. 감방은 살기가 가득 찼고 모든 죄수들은 의분심에 얼굴이 불덩이같이 되었으나 누구 한 사람도 담대히 그 악질 간수에게 항의하거나 대드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얼마나 무서웠던지
“이곳이 바로 지옥이로구나!”
나는 고등계 형사가 주는 백지와 연필을 받아들고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날 밤의 일을 처음에서 끝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같이 상세히 정직하게 썼다. 그리고 결론으로 그 사건에 대한 나의 소감을 첨부했다.
“일본이 그 경찰의 기민하고 잘 훈련된 것을 세계에 자랑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성경에서 우리들에게 분명히 가르치신 말씀인 ‘법관에게 순종하라. 네가 잘못하면 그가 너를 책하고 벌할 것이다. 잘못하지 않을 때는 너를 보호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일본 경찰의 우수한 것을 자랑같이 생각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기사만을 읽고 사실 일본 경찰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번에 똑똑히 보고 알게 된 것은 일본 경찰은 잘하고 못한 것을 판단해서 죄 지우는 것이 아니고 그 형사와 취조관의 성격과 비위와 습성과 취미에 따라서 무죄한 사람도 살인 강도보다 더 심한 고문과 욕을 주는 것인 것을 알았다. 나는 나에 대해 담당해서 취조하는 관리들은 교육도 받아 아는 것이 있어서 나에 대해 판단을 하고 대해주는 것을 감사히 생각하지만 어린 양 같고 비둘기같이 순하고 정직한 그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오늘날 그들이 신앙하는 주님 앞에 충성하고 배반하지 않으려는 순정 때문에 잡혀와서 이같이 굶주린 이리떼와 같은 식인야만인보다 더 악한 경관들의 악행으로 그 얼마나 신음하고 죽어 가는가를 생각할 때 미친 맹수와 같은 일본 경관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무섭기만 하다. 일본말도 모르고 야비한 아첨도 모르는 양심적인 기독교 지도자들이 받게 될 앞으로의 환난은 마치 네로 황제 때에 기독교인을 굶주린 사자 밥으로 던진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톱으로 켜고 기름가마에 집어 던지는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이 20세기 문명 시대에 일본인 경찰을 통해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세계에 이 사실을 증명해야 할 책임과 의무감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죽도록 주님에게 충성할 것이고 또한 모든 기독교인들도 나와 똑같이 한마음으로 무지몽매한 일본 경찰을 향해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고 피가 마르도록 박해를 받으면서도 죽도록 충성을 하며 신앙을 사수할 것이다.”
나는 내 의분을 참을 수 없는 그대로 나의 모든 힘을 기울여 20장이나 되는 논문체의 명문을 써 버렸다.
나는 다 쓴 글을 아무런 주저도 없이 고등계 주임에게 주었다. 그는 나의 감상문을 읽는 것이 안 된다고 했는지 읽지 않고 봉투에 넣고 봉한 후 곧 도청 경무과로 보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교대해서 들어온 한인 순사가 감방마다 전부 쭉 훑어보더니 내 감방 앞에 와서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뜨며
“아! 당신이로구만.”
“왜 그러지요?”
당신이 그 유명한 예쁜 아가씨로서 문장을 잘 써서 여기 일인 간수의 목을 잘라 버린 사람이구만요.
“어느 간수가 목이 잘렸는데요?”
“쉬-. 언젠가 밤에 근무한 일인 간수가 유치장에서 미친놈 같은 지랄을 부렸다면서요? 그자가 당장 면직을 당했고 또 경찰서장이 우리들에게 주의시키는 훈시를 내리고 전번에 당신이 쓴 글을 등사해서 경찰서마다 우송했다우.”
나는 가슴이 시원했다. 나는 내가 쓴 감상문이 도청 경무과에 송달되어 선교리 경찰서로 지시가 내려 사실을 조사한 결과 그 사실이 발각되어 그 일인 순사는 면직되고 서장이 훈시까지 한 것을 알았다. 나는 참 기쁘고 통쾌해서 주님께 감사했다. 그 후로 유치장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서장은 물론 일인이었고 퍽 늙은 사람이었으나 인상이 천해 보였다. 주임이 서장에게
“안이숙을 데리고 왔습니다.”
하니 그는 나를 쳐다보고 뜻밖에
“거기 앉으시죠.”
했다. 서장이 나를 중범 취급을 하지 않고 마치 손님 대접이나 하듯이 정중한 태도로 대하는 것을 본 주임은 크게 당황했다. 서장은 나에게
“지금 방금 도청에서 전화가 왔는데 당신을 여기 잘 맡아두라고요.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편리를 봐 주고 또 감상문을 쓰도록 하라는 지시이니 그리 아시오.”
나는 지옥에서 쫓겨난 것 같은 기쁨으로 지금까지 나를 꽁꽁 얼어붙게 했던 두려움은 대번에 풀어 버렸다. 나는 곧 하나님 앞에 먼저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서장에게
“고맙습니다, 서장님!”
했더니 서장은 왕의 행세를 했다. 급사를 불러서 감방 하나를 깨끗이 청소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의자에 앉히고 자기 앞에 있는 서류 결재도 하고 또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갔다 들어왔다 하면서도 나를 크게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버려 두고 있었다. 소사가 들어와 감방 청소가 다 끝났다고 하니 그는 고등계 주임을 불러서 나를 주임에게 넘겨주었다. 주임의 태도는 처음과는 너무도 변했다. 그는 유순하게 나를 유치장으로 데리고 가서 유치장 간수에게 인계했다. 깨끗이 청소된 감방으로 나를 들여보내더니 간수는 쇠를 덜컥 하고 잠갔다.
신앙 문제에 들어가서 나 같은 고등교육을 받은 우수한 여성이 왜 그렇게 깊은 신앙 세계로 몰입했는가 하고 물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설명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신앙을 보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조용하고 집에서는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새벽에 들려오는 그의 은근한 기도 소리에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충성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럴수록 나의 생활은 언제나 승리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예수님께 충성을 다하려는 나 같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고, 이러한 일본을 회개하라고 생명을 걸고 경고한 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나는 지금이라도 거짓말을 한다든지 재주를 부려서 내 마음과 양심을 속이고 당신들이 하라는 대로하면 집에 돌아가서 편안히 지낼 수 있지만 나는 예수님과 한 약속을 거스릴 수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순종해서 한번도 손해 본 일이 없고 그를 거역해서 한번도 좋은 일이 없었습니다. 나는 내 일생이 얼마나 긴 것인지 모르지만 길든지 짧든지 여하간 죽는 날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바로 살기로 결심을 했소. 이 결심이 나를 죄인으로 만들고 죄수가 되게 한 것이오.”
그는 내 말을 받아쓰던 것을 멈추고 듣기만 했다. 듣다가 내가 목이 타는 듯 기침을 하면 벌떡 일어나서 차를 가져다 부어 주며
“어서 마십시오.”
그 고등계 주임은 처음에는 “너”라고 했고 다음에는 “자네”라고 하던 어조를 고치고 이젠 존대를 했다.
그는 내 손에 있는 성경을 쳐다보더니 좀 보겠다고 말했다. 내가 빨간 연필로 표시한 구절을 뒤지면서 읽더니 나를 보면서
“이 표시한 구절만 내가 좀 읽을 수 있을까요?”
나는 어찌나 기뻤던지
“좋구말구요. 빨간 연필로 표시된 구절만이라도 전부 읽어보세요,”
나는 그에게 성경을 빌려 주었다. 감방으로 돌아온 나는 고등계 주임을 위해 기도했다. 그가 성경을 읽는 동안에 성신이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며칠이 지나도 고등계에서 나를 불러내지 않았다. 하루는 서장이 유치장으로 오더니 내 감방 앞에 와서 간수더러 내 감방에 낮에는 쇠를 잠그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때부터 나는 쇠를 잠그지 않기도 했지만 또한 나를 죄수 취급하지 않는 것을 알고 방을 나가고 싶으면 내 마음대로 나가고 방에 있고 싶으면 방에 들어가고 훨씬 자유롭게 지냈다. 감방문을 잠그지 않게 된 후로는 나는 신발을 신고 유치장 밖으로 나와 경찰서 뒷동산 언덕에 올라가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순사나 간수가 때때로 와서 내가 있는가 없는가를 살피는 고로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들에게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그들이 경찰서 안에서도 나를 볼 수 있도록 조심해서 먼데 가지 않고 꼭 한자리에만 앉아서 지냈다. 날씨는 차차 쌀쌀해지지만 공기는 깨끗하고 신선해서 내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하늘을 쳐다보며 부르는 내 노래는 아름답게 내 심령에서 울려왔다. 나는 내가 부르는 찬송에 감격이 되어서 언제나 눈물이 두 뺨을 적시고 주님을 향한 사랑이 언제나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기뻐 이 몸과 마음을 주님께 바치게 하신 이도 주님이신 것을 분명히 아는데 그것을 더욱 아름답게 보시고 나를 너무도 은혜롭게 대접해 주시는 것이 말로 할 수 없는 감격이 되었다. 일생을 감옥에서 살아도 만족하다는 자신이 생겼다.
왜! 나는 일생만을 가졌던가? 만일 내가 일 개의 생이 아니라 백 개의 생이나 천 개의 생을 가졌더라면 이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드려 순종했을 것이 아닌가.
나는 내 희생이 너무도 적은 것을 한탄했다. 바치고 또 바쳐도 오직 부족하기만 한 것 같았다.
하루는 어머니가 면회를 왔다. 나는 어머니가 차멀미를 심하게 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으나. 한편 또 밤낮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심정은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를 만나자 너무도 반가워서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데굴데굴 굴렀다. 나는 어머니가 차멀미로 해서 얼굴색이 병자같이 변했을 줄로 알고 염려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보고 다시 놀랐다.
“어머니! 멀미가 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머니는 기쁨이 충만해지면서
“그러게 말이야! 나는 네가 순천으로 옮겨갔다는 소식을 형사로부터 듣고 곧 오려고 했으나 도청에 가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또 몇 날을 걸려 허가를 받았는데 차멀미 때문에 걱정을 몹시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전차를 타도 기차를 타도 아무렇지가 않구나. 참으로 큰 기적이다. 주님이 내 평생의 병을 고쳐 주셨다.”
하면서 감격에 넘쳐 했다.
서장이 직접 내주는 용지를 받아든 나는 감상문을 쓰겠다고 하면서 내용은 구가 경시 앞으로 글을 썼다.
“나를 순천 경찰서같이 깨끗하고 조용한 곳에서 자유롭게 지내게 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이렇게 날짜만을 보내는 것은 법을 무시하는 처사로서 나는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만일 내게 죄가 있다면 그 죄를 가지고 법대로 죄명을 붙여서 처리할 것이고 아니면 아닌 대로 처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평양 본서에 갇혀있는 여러 기독교 지도자들과 똑같은 생각과 태도를 가진 사람이며 같이 모여서 신앙을 지키는 일을 한 사람이니 나만 혼자 이곳에 둘 것이 아니라 나도 마땅히 평양 본서 유치장에 감금해서 다른 기독교지도자들과 같이 취조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장 원하고 기도하는 것은 평양 본서 유치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이곳에 이대로 있게 된다면 어떠한 의미에서 큰 위험을 빚어 낼 우려가 있다는 것을 첨가합니다.”
라고 써서 보냈다. 이 감상문을 쓴 지 사흘만에 도청에서 구가 경시와 형사가 왔다. 고등계 주임은 쩔쩔매면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구가 경시를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이 늙고 조그마한 할아버지는 그 무식한 일반 경관들과 비교하면 전혀 딴판이고 경관 냄새가 없고 마치 국민학교 교장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아가씨, 어떠세요?”
그의 음성과 말은 참으로 경관 같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인사한 후 내게 어떤 말을 할 것인가를 주목했다. 그는 감상문 끝에 쓴 ‘큰 위험성’이란 무엇인가를 조용히 물었다.
나이 많으신 최권능 목사님이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고 주기철 목사님이 몇 번이나 기절을 했다니 이기선 목사와 다른 성도들이 그 지독한 고문을 어떻게 견딜까를 생각하니 내 가슴속에 불이 붙는 것만 같이 타고 아팠다. 그리고 오랫동안 보지 못한 최 목사가 아버지같이 보고 싶었다. 나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서 밤이나 낮이나 감방 속에서 또는 산언덕에서 주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나를 보내 그들을 돕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했다. 하루는 고등계 주임이 나를 불러내어 자기 사무실로 갔다. 그의 태도와 인상이 너무도 평소와는 달라진 것에 나는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그는 왜 그런지 어물어물하는 태도가 할 말이 많지만 말을 못 해 답답하다는 표정같이 보였다. 나는 그를 찬찬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계 사무실에는 한쪽에서 사무 보는 순사가 한 사람 있을 뿐이었다. 그는 나를 의자에 앉도록 한 후에 나를 쳐다보면서 무슨 중대한말이라도 할 듯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나서 한마디한마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곳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뜻하지 않았던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라서
“사직 한다고요?”
하고 다시 물었다. 그는 조용하게 그러나 어떤 결심을 보이면서
“이제는 그냥 이대로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도 한번 사람이 달라져서 좀 달라진 생활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하면서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가 파면을 당했는가 해서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긴 것 아닙니까?”
“아니오. 내 자신이 사직서를 내려고 결심한 것입니다. 말로 못 할 변화가 나의 마음속에 일어났습니다. 형식상으로는 폐가 나빠서 고향으로 가서 정양한다고 한 것이지만 실은 나는 이 직업이 싫어졌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전혀 다른 새로운 생활을 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내게서 빌려 갔던 성경을 내 앞에 보이면서
“부탁이 하나 있는데 다름 아니고 이 성경을 나에게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가슴에 큰 충격을 받았다.
“오히려 제가 부탁하고 싶은 일인데요 어서 사양치 말고 그 성경책을 가지고 읽어 주세요. 나는 지금까지 주임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해 왔습니다.”
그는 눈을 크게 뜨면서
“기도해 주셨습니까? 아! 참 그렇군 그래….”
하면서 감격어린 목소리를 내고 머리를 숙이면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를 동산 언덕바지까지 데려다 주면서 여기서 쉬라고 하고 돌아가는데 그 뒷모습은 어쩐지 불안해 보였고 허둥지둥하는 걸음은 무슨 큰 충격이라도 받은 사람같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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