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8 20:04
제 4 장 신사참배 거부투쟁과 교회의 분열
조수옥: 강경한 불참배파였던 경남의 한상동 목사님이 교회재건을 주장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부산 유치장에 끌려갔을 때 의무관이 진찰해보니 결핵으로 인한 안질로 인해 실명할 위험도 있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보석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한목사님은 병이 깊으셔서 보석으로 집에 가실 수 있으니 나가서 신사에 참배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다른 사람에게 신사에 참배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말만하면 석방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상동 목사님은 그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유치장에 있기로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보석을 거부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말로 대신하였다고 합니다. “목사가 된 사람이 죄악을 보면서, 이것은 죄악이라고 가르칠 수 없다면 이제 나는 목사가 아니지요. 죽는다고 할지언정 옳은 것은 옳다고 가르치고 죽는 것이 목사가 아니겠습니까?”
와타나베: 1940년 당시에 일본에서는 기원 2,600년이라고 해서 가공의 역사를 내세워 크게 소동을 벌인 해입니다. 이것으로 국가주의의 기세를 올리고 그 세력으로 태평양전쟁에 돌입하고자 한 것인데 광기가 본격화한 시기입니다. 국가주의를 더욱 고조시킨 것은 일본 본토에서보다는 총독부 지배하의 조선에서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서 있었던 저항운동의 이야기가 있으면 들려주시지요.
조수옥: 내가 부산 경찰서로 끌려가 하룻밤을 지내고 풀려난 것이 1939년 4월이었습니다.
다른 여러 사람들도 날 수는 다르지만 며칠씩 끌려간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그 후에 운동이 끓어올랐습니다. 1939년 8월에 부산 수영 해수욕장에 모였습니다. 중심은 한상동 목사님이셨고 사모님 김차숙씨, 한정교 목사님과 사모님 이정씨, 윤술룡 목사님), 그리고 이인재 전도사님), 그리고 백영옥 집사님과 김현숙 전도사님, 배학수 선생 그리고 말석에 나 조수옥이었습니다.
낮에는 다른 이들처럼 바다에 들어가 해수욕을 하고 밤에는 모여 회합을 하곤 했는데,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주의했지만 경찰에게는 알려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와타나베: 그러나 그렇게 되고 보니 진리가 보이지 않게 되었군요. 후일에 가서 변명하기를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었다”, “인간의 연약함이었다”고 치부하고 말겠지만, 그때의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고 누군가가 증언하여 진리를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일제에 아부하는 친일파 노릇한 목사, 신사참배 반대파를 밀고한 사건, 총회가 신사참배를 의결하도록 노력하고 일본 경찰에 협력한 사건 등을 증언해야 할 것입니다. 이 증언의 덕분으로 한국교회는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말들은 많이 하였습니다. 보통 신자들 가운데는 신사참배반대 권면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성도들이 어느 정도는 있었습니다. 신사참배반대를 따르는 일에 주저한 사람이라도 이것이 정말 진리라고 깨달은 사람들은 있는 것 같습니다.
조수옥: 그때 두 번째로 의논한 것은, 신사참배에 찬성하는 교회의 예배에는 출석하지 말도록 권면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 말씀이 가라사대 ‘사탄의 회(계 2:9)’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교회에 다니기보다는 차라리 집에서, 혹은 따로 모여 예배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교회에는 가미다나(신주)가 마련되어 있었고 이세신궁의 다이마에 예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거기다 예배당에는 히노마루가 걸려 있고 기미가요(일본 국가로서 천황을 찬양)를 예배 전에 부르고, 그리고 동방요배, 혹은 궁성요배(역자 주 : 일본과 일본 왕궁이 동쪽에 있으니 살아있는 신 일왕에게 경배를 드릴 때 동쪽으로 절한다해서 동방요배, 혹은 궁성요배라고 하였다)를 하고 나서 예배를 드리도록 강요하고 있었으니, 이러한 예배는 참된 예배랄 수 없지요. 일제 기독교가 기독교라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성경에서도 구약은 아예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고 신약도 복음서 가운데 ‘나라’라든지, ‘천국’이란 단어는 다 삭제해 버리고 사용케 하였습니다.
조수옥: 네 번째는 신사참배 한 교회에는 헌금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헌금을 안 한다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교회 운영을 못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당국은 교회의 애국심을 알아보기 위하여 국방 헌금을 요구해 왔습니다. 내지 않으면 국가에 대해 반역하는 비애국자가 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교회는 헌금을 거출 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 사람을 죽이는 무기 구입에 사용되면 안되니까 우리는 헌금을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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