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1984. 9. 28. 금야

 

본문: 누가복음 16장 10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요사이 아침으로도 늘 이 말씀을 서로 생각하는 것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 는 큰 데도 큰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다. 위에는 지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  지극히 작은 충성이라, 지극히 작은 불의라 그렇게 지극이라는 말이 거기에  위에만 붙어 있고 선두에만 붙어 있고 그 다음에는 지극이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문법상으로나 문리상으로 그 지극히라는 말은 그 밑에도 다  연속적으로 붙어 있는 말씀입니다. '지극히 작은 데 충성 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데 불의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불의하니라' 그렇게  지극이라는 그 말씀이 다 아래 위에 다 붙어 있는 뜻을 위에서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면 지극히 작은 것은 어떤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가? 이것은 평소, 평소,  평상시, 평소와 평상시를 가리켜서 지극히 작다 그렇게 말씀을 한 것이고, 또  지극히 크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과도기 또 비상시 아주 극도의 것 그런 것을  가리켜서 지극히 크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평상시에 평상시에 충성하는 자는 과도기, 아주  역경 비상시, 그 극난의 때, 극난의 때 그때도 충성할 수 있다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또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아주 쉬운 그 평상시에 평소 때  평상시에 충성하지 아니한 사람은 과도기, 역경, 대환난 그런 때는 의례히  충성하지 못하게 되고 불의를 행하게 된다. 그러면, 여기에 우리에게 아주  쉽고도 어려운 말씀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지극히 작은 지극히 쉬운 아주 평소 평상시 쉬운 일을 하면 지극히  어려운 일도 하게 된다. 또 평소 평상시에 믿음을 지키면 대환난 때도 믿음을  지키게 된다. 아주 평소 평상시에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지키지 못하면, 지극히 큰 데도 불의하게 된다. 아주 비상시  과도기, 절정기, 대환난 때 그때도 불의하게 된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요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평상시 평소 때에 이럴 때에 우리가 믿음을 지키는 그것이  막바로 대환난 때에 믿음을 지키게 된 그것이다. 우리는 온 전국 사람들이 다 그  환난에는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또 세계 사람들이 다 기독자들이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아주 그런 어려운 때 참 그때 믿음을 지키기만 지키면 그 영광은 지극히  커서 교회의 기둥이 돼서 하나님의 성전, 세계 교회의 기둥이 돼서 그 사람을  세워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받들게 하고, 또 주도하게 하고 이렇게  주관하도록 이렇게 하는 그 최고의 승리. 아주 대대 승리, 큰 승리, 참 교회의  교인이 몇 만 명이 돼도 나중에 가서 승리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수도 있고  혹 몇 사람 있을 수도 있는 이런 아주 값비싼 승리, 아주 대승리 그 승리를 하고  나면은 하나님이 교회의 기둥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모든 새 이름, 지나간 모든  것은 다 지나갔는데 미래적으로 미래적으로 이루어질 모든 일 그런 것을 다 그  사람에게 맡겨 가지고서 일하게 하는 그런 지극히 큰 영광스러운 승리입니다.

 과거에 왜정 말년 때 우리 조선 나라는 다 우상 숭배를 해서 교회들은 완전히  다 죽었습니다. 일본 교회도 완전히 죽었습니다. 그랬는데 그때에 몇 명  성도들이 그 환난을 이겨서 그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조선 교회를 맡기셔 가지고  다시 복음 운동을 시작해서 한국 교회가 이렇게 번성하게 됐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평소에도 은혜를 끼치는 그런 하나님의 종이지마는 그 때 그거  가지고는 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주지를 안했습니다.

 그러나 평양서 일본 모든 경찰들, 군인들이 옹위해 가지고 신사 참배 안 하는  사람들은 다 죽이기로 그렇게 결정을 하고 위협과 협박과 박해를 가 하고 있는  그런 때에 그 사람들이 총회장 노회장 뭐 이 장자 붙은 사람들은 다 찾아 가  가지고 이번 이 신사 참배를 결의할 때에 네가 결의를 하겠느냐, 부정을  하겠느냐? 부정하면 너는 가정도 교회도 돌아보지 못하고 너는 감옥에서 썩든지  죽든지 할 것을 알고 해라, 또 기어코라도 그 신사 참배를 시키고야 말 것이다,  이라니까 뭐 총회장도 노회장도 전부이 사석에서 다 허락을 했습니다. 허락을  하고 워낙 그 위협이 크고 고문과 고형이 많으니까 몇 번 끌려 들어가 가지고서  고문과 고형을 당하고 또 위협이 많고 이러니까 그만 신사 참배 하겠다. 그렇게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평양서 총회가 열렸을 때에 자 신사 참배에 대해서 어떻게 하냐? 하니까  거기에서 저거끼리 짠 대로 고만 노회장 총회장 하는 사람들이 '신사 참배하기로  동의합니다.' '재청합니다.' '그러면 이의 없습니까? 가하면 예 하십시오.' 그래  가지고서 결의를 했습니다. 그 결의를 하려고 할 때에 결의하기 전에 주 기철  목사님이 외치면서 신사 참배는 우상 숭배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위반돼서 그거는 할 수 없다. 신사 참배는 우상 숭배의 죄가 된다. 그러면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안하시고 하나님의 교회는 다 우상 숭배하게 되면 다  절단나게 된다 이라면서 반대를 했습니다. 그때에 반대한 그 한 마디 외치고 또  감옥에 가 가지고 얼마 동안 고생을 당하고 한 그것이 승리가 돼서 뭐 주 기철  목사님이라고 하면은 참 한국에서는 제일 머리로 여길 만치 그렇게 다 존귀히  여기고, 고만 그때 세상을 떠서 그렇지 있었으면 그런 분들이 다 한국 교회를  주장을 했을 것입니다.

 그때 그 주 기철 목사님 장례 지낼 때에 일본 사람들이 그때 아주 제 이차  대전에 아주 심히 맹렬해 가지고 있는 그런 때이기 때문에 경제에 심히 곤란을  당하고 하니까 그런 무슨 길흉사간에 그렇게 낭비를 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아주  엄금한 때입니다. 엄금한 때인데, 사람도 어떻게 많이 모았는지 누가 어떻게 뭐  군인들 경관들이 암만 다 들어봤자 처리하지도 못하고, 또 돈은 어디서  들어오는지 돈이 얼마를 그 돈이 어데서 들어 온지도 모르고 그렇게 들어 와서  장례로 말해서는 우리나라에 과거에 국상이 있었지마는 왕이 죽으면 국상이  있지마는 왕이 죽은 국상보다도 훨씬 아주 영광스럽게 그렇게 치뤘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그렇게 그 영광스러운 때 그런 때가 말하자면 지극히 큰 충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극 히 큰 충성이 됩니다.

 십 이 사도들은 사도 요한 외에는 다 순교를 했는데, 순교함으로 그들의 복음  전한 것이 완전히 결실을 맺어서 다 승리를 이루었습니다. 또 다니엘 같은 그런  사람도 순교는 못했지마는 순생은 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다니엘 같은 사람이 그  전국에 어려운 시험을 당해서 다리오 왕이 하루 종일 그렇게 사정을 하면서 이제  다른 데 기도하지 말아라. 이렇게 해도 기도하는 사람은 사자 구덩이에  잡아넣어서 죽인다고 이렇게 해도 다니엘은 그 어려움에 꺾어지지 안하고 왕이  아무리 사정을 해도 짖는 기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 사자 구덩이에  묶여 들어가는 그런 승리를 했습니다. 승리를 하고 나니까 그 이튿날 그  다니엘을 인해서 온 전국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찼고 권위가 차서 온 전국이  하나님을 높이고 이제는 하나님 반대하는 사람이 전국에 하나도 없도록 그렇게  그 다리오 왕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이냐? 지극히 큰 때입니다.

지극히 큰 때.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 비유로 말하면 그것이 밤중입니다.

 그러면 지극히 큰 때. 앞으로도 우리 개인으로 올는지 혹은 단체로 올는지 제가  전인해서 들은 대로 보고 또 책자를 보고 하면 이북에서는 그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지하실에다가 넣어 놓고 거기에서 뭐 고문과 고형을 하는데 껍질을  벗기면서 껍질이 벗겨져 가지고서 지금 피투성이가 돼 가지고서 숨만 빨딱거리는  사람도 있고, 또 혀를 끊은 사람도 있고, 눈을 뺀 사람도 있고 뭐 그래 있는데  있으면서 척 데리고 가 가지고서 이리 썩 데려 가 보이면서 '보라 이것도 우리  시키는 대로 하지 안하고 예수 믿는 것을 고집하기 때문에 이런 그 형벌을  받았다. 봐라.' 쭉 보이면서 '너도 함부래 예수 믿는 그 고집을 그대로 하고  그라면은 이와 같이 될 터이니 이럴 줄 알고 네가 하라.' 이라며 쭉 끌고  다니면서 보이는데 그들은 협박 줄라고 그렇게 하고 이랬지마는 그라는데 이제  다 구경 다 하고 난 다음에는 고함을 지르면서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 끝까지 이기라. 끝까지 이기고, 끝까지 죽도록  충성해서 승리를 이루라.' 이렇게 외치니까 그 모두 가죽 벗겨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힘을 얻어 가지고서 아멘 이라고 모두 힘을 얻어 가지고서 이렇게 하는  그런 것이 지극히 큰 충성입니다. 지극히 큰 충성.

 그러면, 그럴 때에 다 모두 충성을 하지 못하고 그럴 때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또 진리를 배반하고, 또 주님의 공로를 다 배반하고 이렇게 하는데 그때에  주님과 주님의 그 교훈의 진리와 모든 하나님의 약속의 그 계약을 어기지 안하고  그대로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이며 얼마나 권위며 얼마나 권세입니까? 그래  가지고 세상을 떴으면 부활할 때에 심히 영원무궁토록 존영한 그 부활 얻어  가지고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고 만일 그라다가 다니엘처럼 순교를 당하지 못하고  살아나온다고 해도 나오면 그 사람들에게 영광과 권위가 얼마나 있으며 교회에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 모든 새 이름은 네게 쓰겠다. 이제까지 한 일 두고  앞으로 새 일 한 모든 새 일은 다 새 일은 전부이 너거에게 맡겨서 다 너거에게  너희 이마에다가 쓰겠다. 새 일은 너희 경영 너희 경영 너희 생각에게 주권을  맡겨서 너희 생각대로 앞으로 모든 건설은 하게 하겠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영광이 얼마나 참 크며, 영광은 크지마는 어렵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오늘은 예수님 믿으면서 뭐 서로 내가 정통 네가 정통, 내가 진리 네가 진리  이래 쌓는데 지금은 뭐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앞으로 뭣이 진리고 뭐이  어떤 건지 좀 있으면 그런 어려움이 닥쳐옵니다. 이러니까 그 어려움이 와서  세상에서 지극히 큰 승리를 이루든지 이루지 안하든지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큰  승리를 할 수 있는 사람과 하지 못할 사람은 하나님이 다 아시고 그렇게 인쳐  놓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무슨 신사 참배라든지 또 과거 시대 시대에 어떤  어려움이든지 앞으로 공산주의 무신론자들의 그 박해라든지 그런 어려움 그런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 어려움이 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어려움을 이길 사람 못  이길 사람 그것을 몰라서 그렇게 시험해 가지고 합격자 불합격자를 구별하려고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는데 그것은 왜 기독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대환난을 터묵 터묵이 줘 가지고서 그 불시험, 불시험을 우리에게  주느냐? 벼락 시험 불 시험을 우리에게 주느냐? 주는 그것은 그 사람 속에 그  실력을, 실력을 하나님은 알고 계시지마는 이것을 모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똑히 알고 속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하나님이 알리기 위해서 그 불시험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시험은 사람들은 모르지마는 불시험을 이길 만한 그 실력 참 지극히  큰 충성도 할 수 있는 그런 실력 있는 사람을 사람들은 몰라준다 말이오.

사람들은 몰라주기 때문에 그 말이나 잘하고 돈이나 잘 쓰고 언변이나 있고 모두  그 지식이나 많이 있고 하면 그런 사람들, 간판 큰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알아주지마는 아무것도 없어도 그런 거 알아 줘 가지고 그런 사람들에게 총회장  노회장, 뭐 무슨 장 무슨 장 총장, 뭐 신학 교 무슨 교 뭐 교장 뭐 이사장 이래  좀 맡기지마는 속에 진정한 그 신앙의 실력은 사람들이 모른다 그거요.

 그런 것을 대환난을 턱 한번 가서 시험을 치르면 거기에서 사람들이 모르던 그  실력을 다 환하게 나타내서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기 때문에 저가 참, 실력 있는  사람이구나, 저 사람을 신앙의 지도자로 우리가 모셔야 되겠구나. 이렇게 모든  사람이 파묻어놨던 그 실력가를 알게 되고, 또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제가 위대한  것처럼 해 가지고서 온갖 공작 수단 방법 다 써 가지고서 모든 사람들이 참  위대하다 저는 총회장이다, 노회장이다, 시찰 회장이다, 뭐 부흥사다, 어쩐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것이 그만 대환난을 만나니까 곰 같으면 남아 있을 터인데  그것을 풀과 나무로 짚으로 만든 거니까 바싹 타 버렸지. 또 쇠로 만들어도 타  버렸지 구리쇠로 만들어도 바짝 타 버렸지, 또 은으로 만들어도 바싹 타 버렸지,  정금만 남고 나머지기는 다 바짝 타 가지고서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가짜를  모르고 있는 것을 가짜를 알려 주는 것과 진짜를 모르고 있는 것을 진짜를 알려  주는 것과 또 본인에게 너는 이렇게 가짜다, 너는 이렇게 참 너는 진짜니까  안심하고 고대로 계속 살아라 이렇게 하시기 위해 가지고 모든 대환난들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대환난의 시험의 치뤄서 그 시험에서 주님 팔고 주의  이름 배반하고 진리 어기고 온갖 죄지을 대로 다 짓고, 왜정 말년에도 천조 대신  이름으로 저 송도 앞 바다에 가 가지고 세례를 받고 이렇게 한 그것이 이제  얼마나 수치입니까? 이렇게 이 세상에서 대환난을 줘 가지고 그 환난에서 패전을  함으로 그 사람이 모든 사람이 알아주지 안하고 수치를 받은 사람이 됐습니다.

수치스러운 사람이 됐습니다. 혹 생각하기를 그런 대환난이 오기 전에 세상을  떠났더라면 우리가 살아 있으면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런 대환난들이 없으면  이제 그런 수치스러운 일 없을 터인데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지마는  대환난을 당해 가지고서 패전하나 안하나 꼭 같습니다. 사람들 알라고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는 패전 안 해도 알고 패전해도 알고 다 압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환난을 인해서 자기가 신앙 다 패전을 하는 그런  일을 패전자로 통과하든지 그런 일이 없어서 패전자로 통과 안 하고 세상을  떠났든지 꼭 같습니다. 패전 안 하고 떠나서도 가보면 그런 일에 다 패전할 수  있는 자로 하나님이 아시고 딱 정죄해서 그런 것은 다 제거 해 버렸기 때문에  구원을 얻되 부활을 하되 부끄러운 부활 구원을 얻되 부끄러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오늘 저녁에 제가 말하는 것은 제가 하도 좋은 성구라서  말합니다.

 그때에 공산주의자들이 와 가지고서 우리를 감옥에다가 가두고 우리를 꺼꾸로  달고 또 코에다가 소금물을 그 초물을 둘러 마시고, 또 뒤로 팔장 질을 해  가지고서 이 팔을 들면 어찌 되겠습니까? 팔을 이래 뒤로 뽈끈 짜매 가지고서  작대기로 이래 들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되기 아플 건데 나는 그게 문제라.

되기 아플 터인데 어찌 됐던 간에 그때에 아플 때에 뭐 주님이 안도와 주시면  어림도 없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아픈 걸 이기지 못해. 아픈 걸 견디지  못해요. 아픈 걸 견디지 못해서 그 고문과 고형 또 그때에 그 눈을 빼서 모두  눈이 신경이 거석해서 눈만 좀 아파도 그렇고, 아, 이빨만 좀 아파도 그거 뭐 영  정신이 없는데 그렇게 눈을 뺀다든지 또 그들이 제일 신경 좀 예민한 데만 그랄  거라.

 요라니까, 엄지손가락 요 둘을 야전 그 선으로 야전 그 철사줄로 딱 둘을 매  가지고서 다니까 요 가는데 매여 가지고서 온 몸덩이가 달리니까 고래 가지고  십오 분만 있으면 빠닥빠닥 해 가지고 빠닥거리지도 못하고 십 오 분만 있으면  사르르 죽는답니다. 그러면 죽을 상 바르면 또 끌러 내려 놔 가지고서 또 물을  축이고 이래 가지고서 또 약을 쓰고 또 살려 내가지고 항복 받기가 목적이니까  몇 번 죽었다 살아날란지 그렇게 이렇게 할 터인데,  그럴 때에 주님에게 늘 기도하기를 '주님이여 그때 그들이 그 어떤 약을  먹이든지 주사를 하든지 하면은 내가 변해질까 두렵사오니 약을 먹이든지 주사를  놓든지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 두려워하는 거, 주님 높이는 거 주님 사랑하는  거, 주님 바라보는 거, 주님에게 맡기는 거, 의지하는 거, 복종하는 거, 주님을  자랑하는 거 이것이 변하지 안해야 되는데 약이나 주사를 놔 놓으면 그때 이 약  기운으로 인해서 내가 변해질까 심히 두렵습니다. 이러니까 그때 변하지 않도록  이렇게 해 주옵소서.' 이런 기도도 하고 또 그렇게 고문과 고형으로서 눈도 빼고  또 네모배기 기둥 같은 나무를 딱 거석해 가지고서 앞 장기에다가 딱 얹어  놓고서 거기다 딱 고거 몸뚱이를 얹어 놓고 요래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뼈가 딱  자끄러져서. 아주 그만 뼈가 뼈가 딱 잘라지다시피 그래 되니까 그게 얼마나  그런 것도 아플 터인데 그때 참 어찌되나 그게 큰 걱정이라. 그게 큰 걱정이고,  또 외로운 것도 견디기 참 어려운데 저 어데 탄광에다 갔다 집어넣어 가지고서  외롭게 해 가지고서 그와 같이 사람도 없는데다 갖다가 그래 넣어 가지고 이렇게  하면은 그게 어찌되나 그런 거 다 어려운 일인데 어려운 일인데  오늘 저녁에 제가 이 말씀 증거하는 것은 제가 좋아서, 지극히 작은 데에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되다. 네가 평상시 평소 평상시 평소 주님을  팔지 안하면 주님을 배반치 안하면 주님을 사모하면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에게 맡기면 주님을 높이면 주의 명령에 복종하면, 평상시 평소  하면 최고 천하 사람이 못 이룬 최고 절정에 거기에도 이길 수 있다 요게  하나님의 말씀이라 말이오. 이 말씀을 볼 때에 숨이 쉬이고 참 주님이 이렇게  사랑하셔서 아주 쉬운 방편을 주시기는 주었는데 요것도 못 한다면 이거는 참  마땅히 벌을 받아야 되겠고 이거 참 영원히 천물이되어져야 될 거 아니겠는가?  이래서 오늘 서부 교회. 오늘 새벽에는 그런 약속을 했습니다. 안 나온  사람들은 몰라요. 집에서 따뜻하이 잠도 자고 뭐 돈 벌이도 바쁘고 짜다라 제가  바쁘기는 바쁘지마는 그까짓 거 바빠봤자 지금이라도 세상 떠나면 그만이지 뭐,  또 그것 바쁜 그것이 주님 섬길 시간 없고 기회 없고 은혜 받을 기회 없고, 바쁜  그것은 마귀가 준 바쁨이지 그게 하나도 유익된 바쁨은 아닌 것입니다.

 그 새벽 기도 나온 사람들하고는 그렇게 악속을 했어요. 오늘 종일, 오늘 종일  주님 잊어버리지 않고 주님을 사모하는 것으로서 계속 하도록 한 번 해 봅시다.

또 주님 앞에 주님을 사모하든지 주님 앞에 무슨 감사의 의논을 하든지 잘못된  거 있으면 자복의 의논을 하든지 사정을 서로 의논을 하든지 간구의 의논을  하든지 주님을 사모하든지 주님을 연구하든지 어쨌든지 주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주님을 사모하고 생각하고 그와 관계를 가진 이 관계를 오늘 종일 끊지 안하고  한번 계속 해 봅시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내일 아침에 시험을 치를라 했소. 시험을 치르려고 하기를 그래  목사님들도 내일 아침에 몇 점이나 되는 고 한번 물어 보겠습니다. 오늘 몇 번  주님 잊어 버렸다. 오늘 몇 번 잊어 버렸다. 몇 동가리가 났다, 장로님도 몇  동가리 났다. ○○○장로님도 몇 동가리가 났는지 내일 아침에 한번 시험 칠  요량하고 함부래 준비하십시오. 그렇게 말했고, 저기에 ○장로님도 그렇게  말했고 또 아따 이 나이가 많으면 잘 안 나와요. 교학실에 있는 교학 실장  ○○○목사님한테도 또 이름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다 그의 장로님들도 그랬는데  내일 아침에 어찌될는지 오늘 몇 동가리가 났는지 몇 동가리가 났는지 한 두  동가리가 났는지 열 동가리가 났는지 그래도 동가리 난 그 동가리 수만 알면  희망이 있습니다.

 뭐 그거는 우리가 하루 종일 살고 일년 내 살아도 주님과 연결이 됐는지 안  왔는지 그게 끊쳐졌는지 잇겨졌는지 그것도 모르고 끊쳐진 것도 잇겨진 것도  모르고 그렇게 하루 종일 사니까, 지극히 작은 데서 전체가 다 주님 배반하고 죄  짓고 하나님 말씀 어기고 전체가 지극히 작은 데에서 불의하니. 지극히 작은 데  전체가 불의해 놨으니 큰 데는 의례히 불의할 것은 정한 이치 아닙니까? 지극히  작은 데 불의한 자는 큰 데도 불의하고 이래 놨으니까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는 큰 데도 충성되고 이랬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데에서 지극히 큰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그 준비를 해 주시겠다고 주님이 말씀했으니까 우리는 지극히 작은  것을 상대할 때에 지극히 작은 것으로 상대하지 말고 지극히 작은 거 요거  실패하면은 지극히 큰 최고의 절정인 그 지극이 큰 거 실패하게 된다. 지극히  작은 거 요것만 실패 안하면 지극히 큰 것도 실패 안 한다. 이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절대 변하지 않는다.

 요렇게 지극히 작은 요 평상시라는 요 평상시라는 평소 요것을 우리가 예사롭게  여길 거 아니라 요것이 앞으로 천하 사람들이 다 주를 팔지 안하면 못 견디는  고문과 고형에는 지극히 큰 영광이 영광이 매달려 있는 지극히 큰 환난 불시험  불시험 벼락시험 이 불시험 당할 때에 그때에 우리가 눈이 빼이고 할 때에 그때  그 어려움의 우리가 승리를 어찌 하느냐? 그때 그 승리하는 그 승리를 지금 여기  평상시에 승리하면 그 승리 주님이 하게 해 주시겠다 보장했다 말이오.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했으니까 내가 지극히 작은 평상시에만 요것을 이행하면은 지극히 큰 극단  과도기, 비상시 그럴 때는 당신이 계약해 놨기 때문에 그때에 승리하게 하지  안하면 당신이 거짓말쟁이라 말이오.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마디도 허툴은 말하지 않소. 이러니까 우리는 지극히 작은 요것이  지극히 큰 것인 줄 알고 지극히 큰 것을 지극히 작은 요거 승리로 지극히 큰  것을 승리한다는 요 사실을 우리가 보고서 우리가 굳게 잡습니다.

 저는 거기에 대해서 늘 기도를 해 나왔는데 왜정 말년에는 저는 뭐 신사 참배니  황거 요배니 하나도 하지 안했고, 또 저와 같이 있는 교인들도 하나도 안  했습니다. 또 그 면이 박해는 제일 많은 면입니다. 그 면에 있는 교역자는  잡아다가 끌고 가 가지고서 제주를 먹이고 신사 참배를 강제로 거석해 가지고서  시키고 이렇게 거석해 가지고 꼭 주재소에 불러다가 하나 하나 딱 호출해 가지고  불러다가 그 각서를 다 시키고 도장 꼭꼭 찍도록 이렇게 한 면이오. 이랬는데  그때는 참 하나님 은혜로 뭐 굉장한 말을 하고도 아무 일 없고 승리를 했고,  또 6.25 때도 그 참 평안하게 지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그 점령해 가지고서  내려갔는데 그래도 우리는 집회했습니다. 집회하면은 자꾸 소문 들어오기를 이제  내일은 지금 그 인민재판에서 백 조사를 사형시키려고 지금 거석해 놨으니까  제이호로 있는데 일호는 어데 갔는지 모르고 사람이 뭐 피해서 없어져 버리고 일  호는 그때 지서장이라든가 그라고 이호가 지금 백 조사님인데, 백 조사님 어데  가지 않고 있기는 있으니까 지금 내일 이 인민재판 날인데 이라면서 자꾸 소문이  나오거나 말거나 저거는 하거나 말거나 그 일이 하나도 두렵지도 안하고  염려하지도 안하고 그 중에 하루 세 번씩 집회합니다. 설교만 자꾸하고 저 설교,  집회만 해요. 기쁘고 즐겁고, 그러니까 모두 이럴 때는 아무래도 백 조사 있는데  가야 피난한 다 이래 가지고 각처에서 얼마나 모였든지 위천 예배당이 얼마 안  됩니다. 위천 예배당이 그것이 한 삼십 평 교실만 해요. 국민학교 교실과 같애요  고만한데 사백 명이 모여 가지고서 두 달 동안 계속해서 집회를 했습니다.

 이랬는데, 나중에 그만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딱 어기고 하나님을 잊어  버렸다 말이오. 하나님 잊어버리고 난 다음에 점심 먹다가 하나님 잊어 버렸어.

먹으니까 그 교인들이 와 가지고서. 여기 ○○○장로님 저기 와 앉았어.

○○○장로님하고. 모두 떡 와 가지고서 앉아 '뭐 인민군 그거야 두려울 게  없는데' 인민군도 두렵지 않대요. '인민군 그거야 두렵지 안하지마는 공습이  오니까 예배당 지붕에다가 처어취(Church)라고 그래 써 놓습니다.' 나는  거성한다고 '그러면 어찌 쓰는고?' '아 여기 무명베가 있습니다. 이거 쓰면 잠깐  씁니다. 그래 놓습니다. 나는 그것도 생각도 안하고 '그만 그라지' 이랬다  말이오. 이라니까 이것들이 좋아 가지고서 막 뛰어 가서 얼른 쓰고 와 가지고 밥  한 서너 숟가락 떠먹으니까 와 버렸어. 와 버렸어. '다 써 놨습니다.' '다 써  놨습니다.' 하는데 그만 속에서 뭐 학이 나는 것같이 뭐이 그만 확 달아나는 것  같애. 그만 그때 내가 생각하기를 '아, 속에서 야, 이놈아 네가 미국 의지하는  놈이지 하나님 의지하는 놈이 아니지 않느냐? 네가 교회라고 하면은 미국  사람들이 미군들이 공중에 날아다니다. 가서 거기에는 폭탄 안 던질까 싶어서  하니까 네가 미국 의지하는 놈이지 너는 친미파지 하나님 의지하는 놈이 아니지  않느냐?' 아, 요게 오는데 그만 그때 그만 대번에 그때 내가 뭐 뭐 피를 토해  가지고 죽거나 뭐 이랬을 건데 죽진 안했어요. 고만 밥상이고 뭐이고 다 집어  던져 버리고 '빨리 내려라. 빨리 내려라.' 빨리 가 내리기는 내렸지마는  그때부터 하나님이 내게 그만 두려움을 줬어. '네가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을 믿지 안하고 네가 두려움을 가지면 내가 너에게 두려움을 줄 것이다'  이랬어. '내가 두려워하지 말라 했는데 네가 이 세상 모든 그런 것들 보고서  두려워하면 내가 너에게 두려움을 줄 거다. 내가 주는 두려움은 얼마나 클 줄  아느냐?' 하나님이 나에게 두려움 줘서 한 달 동안 참 녹아 났어. 이랬는데  그때는 어쨌는지 그만 그리 돼.

 그런데, 가만히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산골에서 믿기 때문에 그때 그랬어요.

모를 심으면서 모를 심으면서도 주님 생각하고 그저 또 소를 먹이면서도 주님  생각하고 길을 가면서도 주님 생각하고 그저 주님 자꾸 주님을 생각하고 다녔다.

주님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주님 생각하는 걸 그저 끊쳐지지 안했는데, 끊쳐지지  안하니까 지금 생각하니까 그래도 뭐 그걸 몰랐어요. 알고 내가 그래 한 거  아니라. 자꾸 주님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그저 언제든지 주님 사모하는 것뿐이고,  밤마다 이 동리 가서 전도하고 저 동리 가서 전도하고 장 이래 지냈는데, 그래  놓으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그렇게 아주 쉽게 해서 지극히 작은 일에 평상시에  이렇게 하니까, 지극히 큰 그때에 온 뭐 일본 일정하에 있는 사람은 우리 조선의  사람이든지, 일본의 사람이든지 전부 그 신사 참배에 꺾어지지 안한 사람이 별로  없었어. 없었는데, 또 그라고 동방 요배까지 안 한 사람은 참 드물어요.

그랬는데 저는 동방 요배도 하나도 안 하고, 하나님께서 그거 하지 말라 해서.

 가니까, 예배 보러 가니까 장로님이 '다 일어서입시다.' 일어서더니마는 떡  뭐라 하는게 아니라 '어쩌든지 이 뭐 나라서 이래 쌓으니까 이 황거 요배를 안  하면 예배를 못 보게 하고 이라니까 황거 요배는 다 감옥에 들어 있는 그  하나님의 종들도 다 황거 요배는 했다고 이렇게 말하고 '○○○목사님도  ○○○목사님도 했다고 하니까 황거 요배를 그래 하려고 지금 일어섰습니다. 저  일본으로 향합시다.' 이래. 그래 가지고 그 소리를 듣고 나는 그만 퍽 주저앉아  버렸어. '어데 아무리 뭐 감옥에 있는 종들이 한다고 다 우리가 따라 할거가?  어찌 그렇게 저 벌써 수만 리 밖에 있는 그 사람을 신이 아닌데 여기에서 절하는  우상화 신상화 시켜서 그래 할 수가 있느냐?' 그래 안 했어. 그것도 하나님이  그리 지혜를 주셨어요. 그라면 거기에 들어가면 예사로 뭐 할 것 아닙니까?  그때는 그렇게 지금 생각하니까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되다는 주님이 신실히 그 약속을 지켜 주신 것인데 나는 그거 몰랐어요.

몰라서 늘 요새 기도하는 것이 얼마 전 한 보름인가 한 달인가 한 달인가  보름인가 그 전까지 내가 설교는 그래 했어요. 설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하면은 하지 못할 일 하나님이 해 주신다' 그런 설교를 많이 하기는 했어. 많이  하기는 했는데, 그라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하면 하나님이 할 수 없는 거  해 준다 했으니까 할 수 있는 일 열심히 하자' 이라면서도 늘 고문과 고형이  있을 때에 어짜꼬 어짜꼬 영 그것이 걱정이 되고서 그 걱정이 돼서 항상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자꾸 이랬었는데 얼마 전에 나에게 확신을 줘요.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되다. '지극히 작은 게 뭐이냐? 평소 평상시다.

평소 평상시 요것만 네가 충성하면 천하 사람이 다 패전하는 그 어려움이라도  나는 승리한다 하는 요게 대해서 확신을 내가 가졌다 말이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우리가 하루 동안 그것을 해 보자. 그래 가지고 오늘  하루 동안 하고, 해 봐 가지고 또 계속했나 안 했나, 못 했으면 또 내일 아침에  또 할거요. 또 하고 이래 자꾸 계속해서 계속하다 보니 어쨌든지 주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을 계속하고 사모하는 것을  계속하고 의지하는 걸 계속하고 당신을 믿는 것을 계속하고 당신에게 맡기는  것을 계속하고 또 당신을 바라보는 것을 계속하고 당신에게 복종하는 것을  계속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걸 계속하고 당신 높이는 것을 그저 당신만 자꾸  사모해요. 당신만 자꾸 사모해서 이렇게 하면 지극히 큰 데도 다 승리할 수가  있다. 요 도리를 과거에 말했지마는 더 확신 있게 깨달아 버렸소.

 깨달아져서 며칠 전부터 이 설교하는 판인데, 저 ○○○ 장로님이 저 아래  설교하면서 그 말하는데 내게는 그 말에 대해서 또 확신이 있고 은혜가 있었어.

뭐냐 하면은 우리가 자꾸 이 사람들로 자꾸 같이 있으면 친해지고 또 음성도  알아들을 수가 있고 친밀해지는데 남으로서 결혼해 가지고 있지마는 얼마 동안  같이 살게 되면 남편 음성 그 아내가 알고 아내 음성 남편이 다 알지 않습니까?  이래 말하기를, '어데 가서 전화를 하는데 전화를 하는데 자기 부인이 전화할  때에 이렇게 말하니까 누구십니까, 누구십니까 하니까 그 남편이 성을  내가지고서 아, 몇 해나 같이 살아도 내 음성을 몰라! 이라며 야단을 치더라고.'  그런 비유를 말하면서 그래.

 그래 내가 그 말에 은혜가 있어. 옳지 하나님하고 자꾸 같이 구불면 되겠다.

하나님하고 자꾸 같이 이렇게 같이 한솥에 밥먹는 모양으로 밤이고 낮이고  주님만 사모하고 주님만 생각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을 사랑하고 자꾸  주님하고 떨어지지만 안하게 되면 주의 음성도 들을 수가 있고 이제 주님을  사귀는 것이니까 이것이 충성하는 것이니까 충성하는 것이니까 지극히 작은 데  충성하면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되다 하는 그 말에 대해서 북을 돋아서 더 힘을  얻었습니다. 힘을 얻어 가지고 그날 밤에 나는 좀 힘을 더 얻었어요.

 얻어서. 그래 인제 오늘 아침에 했는데, 내일 아침에 물어보지마는 몇 동가리나  끊어졌는지 주님 사모하다가 그 참 어려워요. 어려워. 주님 사모하는데 누구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만나면 그만 만나 가지고 퍽 만나면 깜짝 잊어버리고 그만  주님 잊어버리고 그 사람하고 뭐 한 두 마디 하다 보니까, 아이구! 내가 주님 또  내 버리고 이 사람하고만 있구나. 그래 가지고 주님 도로 찾고 정신 차려 가지고  하면은 실수가 없어요. 이렇게 주님과 끊어지지 안하려고 이렇게 하는데 뭐  얼마나 사건이 와도 뭐 턱 닥치면 사람이 와도 뭐 닥치면 그만 그 일에 마음이  다 기울어 버리고 주님 잊어버린다 말이오.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그 모두 우상  섬기는 것이요 그것이 음행입니다. 그것이 음행. 주님만 사모하고 주님 사모가  계속되고 주님 바라보는 것이 계속되고 주님 의지하는 것이 계속되고 또 주님을  믿는 것이 계속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계속되고 주님 높이는 것이  계속되고 주님의 말씀을 찾아 가 가지고 고대로 하려고 애를 써서 말씀대로 순종  할라 하는 것이 계속되고. 딱 하나님께 명중이야 안 되지요. 명중이 안 되지만  그저 말씀에 위반된 일 안 하고 말씀에 위반된 일 안하고 말씀대로 이와 같이  하면은 말씀을 벗어나서 말씀에 탈선되는 일을 안 하게 되면 말씀을 바로 찾아  가지고서 주의 뜻에 딱 명중할 수 있는고 순서가 또 돼져요.

 이래서, 그렇게 약속 했는데, 오늘 한 번도 변동이 없고 그렇게 있는 사람이면  그러면 참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해결을 얻었어. 지극히 작은 거, 지극히 작은 것은 뭐이냐? 우리가  평상시에 당하는 모든 일이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또 지극히 큰 것은 참 과도기  비상시 뭐 몇 십 년 만에 몇 백 년 만에 있는 거. 역사에 혹 드문 일 그런 것  그런 것이 지극히 큰 것인데, 지극히 큰 데에 충성하면은 영광과 존귀와 상급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는데 상급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는데 많고 좋고 영광이  있지마는 그때 견딜 수가 있지, 눈을 빼도 견딜 수가 있지, 가죽을 다 벗겨도  견딜 수가 있어야지, 꺼꾸로 달아도 견딜 수가 있어야지. 못 견딤이 참 고통이라  말이오.

 이기기만 하면 영광 크고 좋고, 하나님이 권능 줘 가지고서 하나님이  만족하시고, 참 무궁세계의 하나님하고 밀접하게 딱 들어붙어 가지고서  하나님하고 거처할 수 있는 하나님하고 합동해 가지고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충만을 줄 수 있는 이런 영광스러운 승리가 거기서 결정이  되는데, 거기서 그 결정이 되는데 좋은 줄이야 알지마는 그걸 이길 수가  있어야지. 그걸 이길 수가 없으니까 하나님에게 자꾸 '그때에, 그때에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게 해 주옵소서. 그때에 변질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자꾸  이래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거는 얘, 이 어리석은 자야 아, 그렇게  어려운 거, 그거 어려운 거 그거 네가 하려고 하지 말고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되다. 너 평상시 고거 하면 그게 그거다.

 그러면 평상시를 네가 볼 때에 평상시 고걸 볼 때에 이거는 평상시 일이고 또  과도기 지극히 극난의 불시험 될 때에는 그때고 그렇게 보지 말아라. 내나 지금  평상시 이기기 쉬운 거 요것을 이기면 그때 요것이 들어서 그때 그것을 다  이기게 된다. 이러니까 네가 평상시를 사소한 일 평소에 사소한 일을 만날 때에  사소한 일 사소하다고 네가 생각지 말고 사소 한 일 이것이 눈을 빼고 꺼꾸로  달고 가죽을 벗기고 이렇게 고문과 고형의 이 어려움과 같은 일인 줄 알고 네가  지킬라고 해 봐라. 그러면 그렇게 어려운 일을 일과 같이 생각하고 그렇게  어려운 일과 같이 생각하고 그런 어려운 일과 같은 그런 상급을 지금 얻는  것이니까 이거야 뭐 마음만 먹으면 된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그렇게 힘들여서 내가 전심전력 다 기울여도 할 수 없는 그 일을  아주 수월하게 마음만 먹고 조심만 하고 정신만 차리고 있으면 다 할 수 있도록  요렇게 쉬운 방편으로 줬으니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되게 하겠다 하는 이 말씀이 어떻게 좋은지 어떻게 좋은지, 그래서 자꾸  요새 이 말씀만 자꾸 합니다.

 우리 이렇게 합시다. 고 충성이라 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갔으니까, 충성이라  하는 것은 뭐 충성은 종이 상전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님이 당신의  모든 것을 다 투자 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대속의 공로를 베풀었습니다. 베풀었기  때문에 이 값을 주고 생명과 모든 부요를 다 이 댓가로 주고, 당신이 나를 샀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것이 됐습니다. 우리는 대속의 공로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의 주인이 요 우리 상전이요 상전이기 때문에  이제 이 대속의 공로에게 충성하는 것이, 이 대속의 공로의 주인공인 주님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죄에 충성하는 것이요, 칭의에 충성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그 화친에 충성하는 것이니까 '이 충성하는 것이 사죄에 충성 하는  것이 사죄의 공로를 베푸신 사죄의 주인, 사죄의 주인에게 우리가 충성하는  것이고, 또 칭의에 충성하는 것이 칭의의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이고, 화친에  충성하는 것이 화친의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런고로, 그 칭의는 우리 상전이요, 사죄는 우리 상전이요, 우리는 사죄 칭의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그런 경솔한 거 아니요. 이 하나님이 이렇게 베푸신 이  공로, 이 공로에 우리가 팔렸습니다. 우리는 이 공로의 것이 됐소. 이 공로의  것이 됐기 때문에 이 공로에 대해서 우리가 충성하는 것이 그것이 충성입니다.

이 공로에 사죄에 대해서 충성하는 것이 사죄의 공로의, 사죄의 주인인 사죄의  주인인 주님에게 충성하는 것이요, 우리는 사죄에게 팔렸습니다. 주님의 피에  팔려서 사죄의 공로에 팔렸고 칭의의 공로에 팔렸기 때문에. 이 값을 주고 산  사죄의 공로가 우리를 샀고 칭의의 공로가 우리를 샀고 화친의 공로가 우리를  샀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칭의의 것이 됐고 화친의 것이 됐고 또 사죄의  것이 됐어.

 그러기 때문에 평상시에 평상시에 사죄의 종으로 살고 사죄의 것으로 살고  사죄에 충성하고 칭의에 충성하고 화친에 충성하고 이라면 그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 평소에 이 일만 하면은 우리가 지극한 그 과도기에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충성된다는 요 말씀을  굳게 잡고 우리가 평상시 그것이 지극히 큰 환난 때의 승리라. 평상시 승리가  지극히 큰 환난 때의 승리라. 그러면 지극히 큰 환난 때에 그때에 그 승리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참 교회들을 살리고  영광과 존귀가 있는 그 일이 그때에 이제 지극히 큰 데 거기에 매달릴 수  있는데, 그때에 그 승리 그 승리 그 승리로 주님을 기쁘게 영화롭게 하는 그  승리 그 승리를 하는 것이 뭐이냐? 그 승리를 오늘 이 평상시에 승리하면 그  승리가 됩니다. 그러나 평상시 승리를 우리는 그 승리로 알고 우리가 그 승리로  알고, 그때에 힘쓸 것의 백 분의 일만 써도 이 평상시에는 뭐 이기고도 훨씬  남습니다. 그렇지 안 해요? 그때 쓸 것의 백 분의 일만 써도 남는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얼마나 이 첩경으로 곧은길로서 아주 지름길로 가 가지고서 구원을  쉽게 이룰 수 있는 이런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내일 아침에는 시험을 치를 건데 오늘 ○장로님 몇 점이나  맞을는지모르겠어. 또, 오늘 저녁에도 또 우리가 약속합시다. 이제는 그 주님의  사죄를 잊어버리지 얻도록, 사죄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사죄의 종이 돼 가지고  사죄의 공로의 종이 돼 가지고서 사죄를 모시고, 이 사죄들 우리가 무슨 옷  입듯이 이렇게 다 경솔히 입어? 사죄는 우리보다 큽니다. 사죄는 우리보다 크요.

지극히 큰 하나님의 공심판을 무난히 통과하는, 무난히 통과하는 공심판에서  정죄할 수 없는 이 사죄가 얼마나 권위가 큽니까? 이 사죄를 우리는 섬깁시다.

사죄를 모시고 사죄의 종인 줄 알고 사죄를 모시고 칭의를 모시고 화친의 공로를  모시는데 얼마나 모실 것이냐? 주님이 다해서 나를, 주님이 다해서 나를 산  공로기 때문에, 주님이 다해서 나를 사신 공로기 때문에 이 공로에게 나도  다해서 충성해야 되겠다 그거요. 이러니까 평상시에는 뭐 다 안 해도 되는데  그저 이 평상시에 이래 하면은 다 해야 될 그때도 무난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밤에 우리가 약속해서 오늘 밤부터 이제는 주님의 사죄를  잊어버리지 안하고 나는 사죄를, 사죄의 공로를 입었기 때문에 나는 사죄의  종이라. 사죄의 종이라. 사죄를 베푸신 주님에게 종이기 때문에 그 주님의  공로인 사죄의 종이라. 그 사죄에게 복종. 이래서 사죄를 평상시에 잊어버리지  안하고 언제든지 사죄를 입고 사죄를 섬기는 것으로, 칭의를 입고 칭의를 섬기는  것으로, 화친을 입고 화친을 섬기는 것으로 요렇게 살기로 딱 작정을 하고,  주님을 그라면 얼마나 사모하며 얼마나 바라보며 얼마나 의지하며 얼마나 섬기며  높이며 얼마나 복종하는가, 이렇게 주님 사모하고 주님 모시는 것이 얼마나  계속이 되는가, 요것도 우리가 살펴보고, 또 계속이 되다가 어떤 때 끊어지던가?  끊어지는 고게 들어서 우리 면류관 다 삼키는 그 도적이라 말이오. 끊기는  그것이 끊는 그것이 내 승리의 면류관을 삼킬 원수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어떤 때 끊기는가, 어떤 때 이 주님과 나와 끊어지던가, 주님의 이  삼 대 대속의 공로와 나와 끊어지던가? 요것을, 어떤 때 끊어지던가? 누가와서  잘 끊던가, 무슨 사건이 와서 잘 끊던가? 요걸 딱 알아 가지고서 간판을 딱  붙여서 아 요게 와 가지고 잘 끊더라. 그때는 조심해 또 끊으러 왔다. 끊으러  왔다. 사람이 와도 끊을 사람 왔다, 끊을 사건 왔다 끊을 물건 왔다. 그때는  힘을 바짝 써 가지고서 끊쳐지지 안하도록 요렇게 해서 어디서 끊기더나, 몇  번이나 끊겼나? 이래 가지고 끊겼으면,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회개하겠다면 사해 줘라 하는 그 말씀은 뭐 죄 짓고 또 했다 하는 그런 게  아니고, 이제 우리가 옳은 대로 살라고 하다가 옳은 대로 살라고 하는데 그만  몰라서 실수가 돼 버려. 실수가 됐으면 하루 사백 구십 번 아니라 오백 번이라도  천 번이라도 이제 자기가 잘못 했으면 얼른 일어서라 그 말이오.

 일어서서, 주님과 연결이 백 번 끊어겼는데, 백 번이나 끊어져 놓고 또 무슨  체면으로 주님에게 아니야 천 번이 끊어져도 천 번이 끊어져도 우리는 천 번도  더 끊어질 수 있는 사람이라. 이러기 때문에 천 번이 끊어져도 다시 주여 하고  또 들어 붙고 이래 가지고서 어쩌든지 주님을 놓지 말고 잊어버리지 말고 주의  공로를 우리가 잊어버리지 말고 주님의 공로를 사모하면서 공로를 입고 이렇게  사는 요 일이 계속되도록 연습을 해서 요 일만 연습해서 완성된다면 요것이 기름  준비라. 요것이 기름 준비라. 요것만 완성된다면 앞으로 어떤 환난이라도 문제가  없어. 요것만 계속된다면 앞으로 뭐 환난에 암만 공산주의 그런 거, 다른 사람은  그래도 문제도 없이 승리할 거라.

 개명 교회에 공산주의자들이 토벌대의 이름을 가지고 와 가지고서 마구  교인들을 주워 모아 놓고 몽둥이로 뚜드려 대는데 몽둥이로 뚜드려 대는데 전부  몽둥이로 뚜드려요. 다 교인들 뚜드리는데 평소에 주를 위해서 어려움 당한 사람  그런 사람은 그 사람들은 어찌 알겠어? 다 모두 보고서 이상하다, 아무것이 저  사람 이제 되기 맞을 거다. 되기 맞을 거다 한 사람 되기 맞고, 아무것이 저  사람 아마 유월절로 아마 안 때리고 지나갈 거다 그래 가짜고 신앙 좋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처음으로 합니까? 한 사람도 한 개도 맞지도 안 하고 욕도  안하고 다 넘어 가서 이제 아주 믿음 안 지키는 그런 사람들만 뚜드려 맞았어요.

그때 ○○○목사님 많이 맞았습니다. ○○○목사님 많이 맞았어. 맞고, 그 뭐  ○○○집사님인지 또 ○○○집사님 저 ○○○ 그 모친 그런 집사님들 그런  이들은 누가 그 사람들이 압니까? 그 사람들은 아야 무슨 소리를 해도 때리지도  안 하고 때리지도 안 하고 꼭 그때에 다 그 사람들이 어찌 뭐 알까마는 우리는  다 안다 말이오. 아니까 고 딱 때릴 사람 안 때릴 사람 많이 때릴 사람 작게  때릴 사람 그래서 신앙대로 해서 신앙 있는 사람 하나도 안 때려요. 저는 또  그때 또 없었어. 그때 없어 또 다른 데 가서 지금 집회하느라고 뭐 교회마다  다니면서 죽일라 하기 때문에 돌아다니면서 집회하고 이 교회 집회하고, 또  교회에서 소망하면 저기에 가서 집회하고 자꾸 이래 다니는데 그들이 잘 알이요.

 그러기에, 마귀가 하는 거 아니고 그들이 하는 거 아니고 하나님께서 마귀를  시켜서 그들을 시켜서 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거기에 손대지  말아라. 이 어쩌든지 지극히 큰 지극히 큰 환난이라도 그 환난은 그 사람에게는  면케 했으니까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그 환난은 면케 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아예 시험하지 말아라. 그러니까 환난이 와 보지도 안 하고 말았다 말이오.

환난이 와 보지도 안하고. 한번 뺨도 한번 안 맞고 승리한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앞으로 어쩌든지 주님과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면 앞으로는 참  완전 승리, 제일 좋은 승리를 하는 데도 아무 어려움 없이 웃음으로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쩌든지 환난 준비합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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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 충성- 두 가지 비유/ 누가복음 16장 10절/ 1982. 6. 19. 토새벽 선지자 201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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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충성-둘째사망/ 요한계시록 2장 10절/ 1987. 6. 5.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30
749 취득관,복 속에 끼어있는 죄/ 야고보서 5장 1절-11절/ 1983. 7. 24.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30
748 취득의 방식을 바꾸라/ 로마서 11장 35절-12장 2절/ 1980. 4. 17. 목새벽 선지자 2015.12.30
747 치료의 역사/ 야고보서 2장 26절/ 1986. 10. 3.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30
746 치우치면 무익하다/ 로마서 3장 10절-12절/ 1984. 9. 7.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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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 치우치지 않는 법/ 로마서 3장 10절-18절/ 1984. 1. 11. 수새벽 선지자 2015.12.30
742 크신 구원과 사랑, 전능의 인도를 믿자/ 요한복음 14장 1절-6절/ 1981. 3. 28. 토새벽 선지자 2015.12.30
741 타락과 구원의 순서/ 요한복음 5장 25장-27절/ 1980. 12. 7. 주일 오후 선지자 2015.12.30
740 타락의 순서/ 디모데전서 4장 1절-5절/ 1974. 8. 25. 제 34공과 선지자 2015.12.30
739 타락의 요소/ 히브리 12장 1절∼2절/ 1981. 2. 24. 화새벽 선지자 2015.12.30
738 탐심/ 누가복음 12장 13절-21절/ 1976년 45공과 선지자 2015.12.30
737 탐심(사욕)이 원수/ 누가복음 12장 13절∼21절/ 1987. 12. 4. 금저녁 선지자 201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