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 목사님 옥중편지와 설교 (3)

2007.05.2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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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목사님 옥중편지와 설교 (3)
선지자선교회

손양원목사설교/기도하는 사람이 되자

기도하는 사람이 되자
눅 11:1-13,살전 5:17

ㅁ서 론ㅁ
기도란 하국(何國)에나 하인(何人)이라도 하기는 하나 진정한 기도 란 기도의 주인이시었던 주께서 가르치신 대로 하는 기도만 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기도는 오직 기독교에서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인생과 기도와의 관계
인생은 신령적 동물(神靈的 動物)이기 때문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아니 영적 인간은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는 것처럼, 새가 공기를 떠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에는 사이비(似而非)한 기도가 있으니 인간적 기도인데 그것은 위급(危急)할 때에만 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란 신, 인간(神, 人間))의 교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유무(罪有無), 사업(事業)의 성패(成敗), 감정(感情)의 희비(喜悲)를 불고(不顧)하고 해야할 것은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도로서 성취하며 인생의 진가는 기도 유무(有無) 에 관계됩니다.

2. 구해서 얻어 쓰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는 주실 것이로되 약속하신 말씀이 있으니 '구하 라' '찾으라' '두드리라'하시었고 "구하라 그러면 너회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삼 대의(三 大義)가 있으니 즉,
1. 영교하게 하기 위함이요
2.구해서 쓰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함이요
3.귀한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에서 과연 부족한 것도 많고 죄악도 맹렬하고 구할 일도 하도 많은데 어찌 탄식만 하겠느냐! 불만한 것에 탄식하는 자 많으나 간구하는 이 드물고, 죄악이 넘침에 겁내는 이 있으나 이길 능력 주시라고 기도하는 이 적고,사업 계획을 세우는 이 많되 완성하여 주시기를 진정하게 믿으며 구하는 이 적습니다.
옛날부터 유명한 기독 인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모든 일 의 방법은 별것이 아니라 모두가 구하므로 주시어서 얻은 것에 불 과합니다.

신자(神子)이신 예수께서도 재세시(在世時)에 잡수시기를 잊고 주 무시기를 잊으시면서 구하시는 생활을 하셨는데 우리들이랴!
사백 오십명을 단신으로 이겨낸 엘리야도 기도로써 했고 천병만마 (千兵萬馬)를 홍해 속에 몰아 넣은 모세도 기도로 이루었습니다. 만나를 주신 것도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된 것도 기도에서였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 나는 것도 기도였으니 믿지 못함은 기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고아원의 대 성공자로 알려진 죠지 뮬러는 기도로써 이 일을 이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 중에 대죄는 기도하지 않는 죄입니다. 개인적으로 기독자의 성패가 기도에 있고 기독교의 흥망이 기도에 있으니 실로 기도 여하에 좌우된 주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대의 기도를 하시었습니다.

3. 기도 안하는 것이 죄 되는 이유
(1) 불순종의 죄가 됩니다.
기도는 자유가 아니라 임무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대사(二大事)가 있나니 '하라'와 '말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라'하는 것을 안하는 것이 죄요, '말라'하는 것을 하는 것이 죄가 됩니다. 성경에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고 항상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까 지 해서 명령하신 것인데 이를 행하지 않는다면 벌써 죄인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내가 하겠다는 자만죄(自慢罪)가 되는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 으로 어떤 무엇을 이루어 주시기를 고대하는 것인데 기도가 없다면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요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이기 때문에 마치 탕자와 같은 자입니다. 만사 만행에 기도는 머리가 되어야 하고 꼬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기도하지 않는 자는 자만죄에 빠지게 됩니다.
저 유명한 자연주의자 룻소는 그의 종교관에서 이런 의미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다른 진리를 믿음과 같이 신을 잘 믿는다. 왜냐하면 신과 불 신은 이 세계에서 내 뜻을 가지고 지배키 어려운 까닭이고 내 이성이 동요됨을 따라 내 신앙이 장구히 휴지(休止)키 불능한 연고니라.나는 신과 더불어 말하고 그의 신적 본질로써 나의 모든 능력을 침범(侵犯)한다. 저의 은혜를 기다리고 그 은사를 감사한다. 그러나 나는 신에게 기도하지 아니한다. 내가 저에게 무엇을 원하겠느냐? 나를 위하여 일의 진행을 변할 수 있겠느냐? 나를 위하여 기적을 행하시겠느냐? 완전 무결하신 저의 지혜로 건설되고 저의 섭리로 말미암아 유지되는 질서를 사랑할 처신인데 도리어 질서를 어지럽게 되기를 원할 것이냐? 이러한 조폭(粗暴)한 기원(祈願)은 상찬보다도 벌함이 당연하다. 자애(慈愛)하시며 선하신 신이시여 내가 당신을 신뢰하는 바이오니 당신의 의지대로 성취코저 함이 나의 무상한 소원이외다」 하였습니다.

이는 일견 신앙적인듯 하나 실은 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월신교(超越新橋)라는 파의 사상을 벗어나지 못한 감이 있는 것입니다.

(3)하나님과의 절교의 죄가 됩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기도의 줄을 놓으러 오셨습니다. 즉 신 과 인간사이에 연결하고 교제하게 하려고 오셨는데 기도하지 않으면 이것이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결코 자기 소원성취를 구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영적 교제까지 나가야 합니다. 기도는 그래서 영적 호흡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교 없으면 벌써 죽은자입니다.

에덴 동산이 좋았던 것도 하나님과 사귀는 곳이었기 때문이고 천당이 좋다는 것도 하나님과 함께 살게되는 까닭인 것입니다.

(4) 향상심(向上心)이 없는 자가 됩니다.
기도해야 영적 생명이 자라는데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영적 생명이 자랄 수 있겠는가? 믿음 없다고 탄식하는 이도 있으나 탄식만 하지 말고 기도하라.

영적 생명이 자라 갈수록 기도가 더욱 많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힘 얻도록 기도해야 하고 기도의 힘 잃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4. 기도에 취(醉)해서 사는자 되자
나의 안락은 기도에 있습니다.
나는 기도로 살다가 기도로 마치려고 합니다.
하루의 모든 생활 중 제일 가치 있는 시간도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시간과 장소의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바빠서 기도 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 자여 어느 것이 더 급하며 더 요긴한 사건인지 생각해 보라.
일 중에서 제일 큰 일은 기도하는 일이며 죄 중에 가장 두려운 죄는 기도 안하는 죄입니다.
모든 일에 원동력은 기도이어야 하며, 모든 죄악이 발생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가 있어도 실패를 했더라도 슬퍼도 쉬지 말고 기도하 면 그 모든 문제를 다시 회복 시킬 수 있을 것이니 기도에 취해서 삽시다.

ㅁ결 론ㅁ
과연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 교제이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되는 길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손입니다. 우리는 나를 잊고 기도에 힘쓰자!






손양원목사설교/하나님께서 바벨탑을 깨트리심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깨트리심
(창 11:1∼9)

서론
1절에 '구음이 하나이다'.
원 시조(原 始祖)아담부터 1천 3백년 후까지 아담과 가인의 죄로 다
수몰(水沒)당하고 중 세조(中 世祖) 노아부터 약 백여년 후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서 생육 번성(生育 繁盛)케 하는 복의 결과로 민족은 크
게 왕성케 되 었다.
그러나 불순대명(不順大命)하고 동방으로 가다가 인공(人工)으로 집
합 생계를 도모하다.
언어 학자는 말하기를 ‥‥‥현재는 만국부동(萬國不同)하나 처음
에는 다 한 곳에서 나온 것이라고 2절 이하에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시날 평지는'유프라데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위치한 곳
인데 대 건물은 주위 2천 백척으로 7층이나 되는 하늘 높이까지 이르
기로 하고 시작한 7층 건물은 7요(曜)의 신으로, 토신(土神)으로 주초
(柱礎)를 하고 최 상층은 월신(月神)으로 해서 지천(至天)하게 설계했
다. 이는 세계 삼대 고적(古蹟中)의 하나이다.
다른 둘은,지나의 만리장성, 애굽의 나일강 하류에 있는 지하 왕
궁이다.

본론

1.왜 하나님께서 파괴(鑛?動하셨는가?
이것은 대 건물이니 많은재물과 인력을 들였을 것인데 애석(哀惜)하
게도 왜 파괴하셨을까? 만물도 말세에다 파괴될 것인데 보기는 아무
리 좋아도 신의(神意)에 거역한즉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동기가
불순 했으니 그 이유가 네가지가 있다.

(1) 불신(不信)의 탑이었다.
'하늘에 닿게 하자' 즉 홍수가 또 와도 면해 볼 수있도록 하자는 것이
었다.
하나님께서 다시 대 홍수안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나 그 약속을 불신
했다. 인간 타락의 원인은 다 신언 불신(神言 不信)에서이다. 아담도.
역대 성도중의 타락자들도 그랬다. 현대 기독교 역시 그렇다. 말하기
를'성경에 그렇게 말했지만‥‥‥하고 믿지를 않는다
우견소행(愚見所行)을 보라. 신 이 망하게 하시려면 거리가 문제 아
니다(시편 137:7∼8). 범죄자여 어디가서 안심을 얻을소냐. 인생활로
(人生活路)는 유일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만 있다.

(2)허영적 명예의 탑이었다.
'우리의 이름을 내고'자자 손손에게 아무 시대 조상때 했다는것을 후
세에 이름을남기자.
타락성(墮落性)의 명예욕이 인간의 본능화(本能化)했다. 이 명예욕
은 아이나 어른이나 각성 각위 각직 각종에 까지 다 있다.
도덕가, 자선가, 심지어 종교가 까지도 그렇다. 그래서 기독교의 영
생이라는 것을 오해 해서 명예나 그 공적을 또는 그 정신을 자손에게
전해 줌으로 영생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물 만인 소행(萬入所行)이
다 신영(神榮)을 위해서만 존재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게 계획
하는 자, 따라서 망하는 자가 많다.
기독교는 주만 영화롭게 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하는 종교다(고
전 10:31).
바울 같이 그리스도 만을 영화롭게 하면 된다. 이것이 인생의 본분이
다.

(3) 인위모계(人爲謀計)의 탑이었다.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온 지면에서 흩어짐을 면하자'. 즉 인
간의 계획을 말하는 것이다.
인의와 신의가 합해야 만사가 성취 될 것이니 인간 계획 만으로는 불
성(不成)한다. 헛수고 하지 말라.
에스더 3:7에, 하만은 유대인을 다 죽이겠다고 했으나 자기가 죽임을
당했다. 공산주의의 결한 자력갱생. 협동조합, 대동단결이니 하는 단
체의 힘 믿지 말라. 어리석은 자여 만약 무슨 회나 단체 조직시에 주
의 영광 나타
내기나 주의 사명 위해서 하면 가하거니와 만약 무슨 인위 계획이나
자기의 무슨 야심을 이루고저 인간의 단체력을 위함이면 반드시 신에
게 파괴 패망 당하고 말것이니 삼가 조심하라.도야지(돼지) 꿀밤 찾
는 격이다.
위에서 떨어진 줄 모르고 땅만 판다. 아래서 자력을 내서 되는 줄 알
지 말라. 인위 인력으로 되는 줄 아는가?
요한복음 19: 10∼ 11 예수의 대답을 보라.
주의 뜻이 아니면 천만금이 생겨도 거절(拒絶)해야할 것이요 주의
뜻이면 물불을 헤아리지 말아야 한다.
오! 주여 나의 뜻 계획, 생각은 다 깨어지고 당신의 마음 계획, 생각
만이 성취케 하소서. 내것, 인간 것, 땅의것 다 바벨탑 같이 여기게 합
소서. 신의 인의(神意 人意) 합치는 곳에 대 영광 대 사업을할 수 있
다. 빌라도의 실패가 어디 있느냐?
요 18:38에 보면 진리를 깨닫지 못함이다. 진리는 신의 이다.

(4) 자력득구(自 力得救)의 탑(塔)이었다.
총괄적 의미에서 자력적 인간의(人間義) 탑이었다.
① 수양의 노력으로 구원 얻기를 원한 자강불식(自强不息). 정진노력
(精進努力)
②자기 공로의 대가로 득구를 원함(불교. 적선의탑도 파괴)
③도덕적 선행의 의로 득구를 원함(유교 인간 성력도 불급)
④율법의 의식(儀式)을 지킴으로 득구를 원함(유대교, 138장(신편)
찬송가대로 믿음으로만 구해 받음을 알아야 할 것)
2. 진리의 탑을 세우자(눅 74:28)
오늘에 우리의 신앙 - 세계를 파괴하려는 물육(物肉)세계는 장차 파
괴 당할 것이다.
진리는 신의(神意)이다.
창 11:9장에 나오는 바벨탑 파괴는 대풍을 일으켜 파괴케 되었다고
한다. 바벨이란 뜻은 혼란이라고 한다.
과연 인간 의사(意思)충돌에는 대 광풍이 일어나는데 신의와 인치는
그 얼마나 하랴! 인간의 대노도 무서운데 하물여 신의 대.노에 사람이
어찌하며 지구는 누가 감당하랴:
인인공명(人人共嗚)에도 만사성(萬事成)인데 신의 인의 합한 때의
대복(大福)이랴!
진리히 탑을 세우려면 바벨탑이 파괴되기 전에는 불능이요. 인의 인
력 바벨탑을 넘어뜨린 후에 아브라함의 신앙 세계가 나오게 된 것이
다. 신은 신앙 세계를 세우기 위해 불신의 탑을 파괴하신 것이다.
(1)가인의 세계 파괴한 후에 아벨의 영계가 싱립되고
(2)아담, 가인의 죄악을 몰사케 한 후에 중 세조(中世組)노아가 출현
한다.
(3)바벨탑을 깨치시고 나서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을세우시고
(4) 애굽의 자손 멸한 후에 가나안 복지 (福地) 열리었고
(5) 율법종교 다 쇠파한 후에 복음 종교가 재건케 되고
(6)회개 후에 중생 부활의 신 건설 되리니
(7) 물질세계 멸한 후에 신천 신지 전개(新天 新地 展開)이다. 진리의
탑을 세우기 위해 모두들 바벨탑 같은육의 성질 다 파괴하라. 여러분
의 신세계는 지상에서맛보게 되리라.
①혈기 파괴(血氣 破壞)한 후에 온유 겸손한 마음쌓고
② 물욕 정욕 파한 후에 의리의 생활로 들라.
고후 10:4∼5 - 육체에 속한 강한 성도
사 2:11∼12 - 인생의 교만의 탑도 파괴하라.내가 건설하리라.
진리의 탑을 세우자. 생명 성장을 위해서 또 천국 사업 성취 위해서
구약(율법)의 모든 것 다 파괴하고 신약의 모든 의 세우자.
불신탐(不信塔). 명예탑(名譽塔). 인의 계획탑(人意計劃塔), 자력적
인간의 탐(自力的 人間義塔)파괴하자.

ㅁ결론
1. 우 리 는
(1)진리의 탑(눅 14:28)을 쌓자. 아브라함을 택한 후부터는 신앙 세계
가 개시케 되었다.
(2) 돌단을 쌓자 - 야곱 같이
(3)제단을 쌓자- 유대인 같이
신민(神民) 유대 인은 가는 곳 마다 꼭 세가지를 했으니
① 장막(세상 객지니 무소망)
②샘 판것(생수,성경중)
③제단 기도단(祭壇祈禱檀) - 가나안 복지 입시까지
지상은 장막 생활이니 바벨탑 불건(不建)하고 진
리 영생탑 세우자. 만세반석 위에 베드로 같이 마음의 탑을 세우자.
2. 어디다 세울까?
시날 평지나 유프라데스 강변에 말고 마음 위에 세우자.




손양원목사설교/화목케하는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화목케 하는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마 5: 21 ∼26)

산상보훈은 4대 복음서 중에서도 복음인 것이다. 모세 5경은 이스라
엘 선민들의 장정(章程)이요 이 산상보훈은 기독교의 장정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이 산상보훈은 도저히 우리로서는 행하지 못할 것
이고 그저 도덕의 표준뿐이다:라고하고 또 어떤 이는 이것은 기독교
의 도덕율이라 하여 다만 도덕적 행위로만 고조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산상보훈은 팔복을 음성으로 나타낸 복음 자체이니 예수의
생명으로 중생하게 해서 예수의 생활과 같이 신앙의 실 생활을 하도
록 가르치신 것이다. 즉 중생을 얻는 방법과 중생자의 생활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따라서 중생되지 않은 자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사실이다. (마
5:20.22,26, 28. 3: 48) 그러나 중생된 자라면 반드시 행케되고 행해야
될 사실이다.
팔복의 복이란 영적 복이니 마음속의 복이요 육적이아닌 것이다. 평
강과 희열과 승리와 싱결과 천국의 복을 의미한다.
1. 양심상 화목
화목 한다는 것은 사랑으로 합한다는 것이니 즉 하나님과 사람 사이
나.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무 것도 가리운것이 없는 것,또 끼인 것
이 없는 것을 화목이라고한다.
이제 부자 간이나 부부 간이나 친척 간이나 이웃 간에 무슨 가리운
것이나 끼인 것이 있는가 살필 것이다.
시기심. 남을 없수이 여기는 마음 음탕한 마음 같은 것으로 가리워서
무형 중에 상통치 못하는 것은 즉 화목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참 아들로 사람 앞에서는 형제 자매가 되어 사랑으
로 합하는 것이 화목이다.
산상 보훈의 진리는 영적 방면이요내적 근본 문제인고로 참 화목은
내심부터 생각해 야 된다.
2. 언어상 화목
어떤 사람을 보면 말로서는 형님, 누님, 장로님,선생님 해도속으로
는 이놈 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이 어찌 참 화목이리 형님이라고
입으로 부르나 속에는 노여워하니 무슨참 형제랴. 누님이라 하면서
음욕 색욕이 눈에 가득하니 무슨 참 누님이 될 수 있으랴
감언이설로 입으로는 고운 말로 좋게 하나 속에는 구밀복검식(口蜜
腹檢式)으로 입으로는 꿀 같이 단말을 하나 속에는남을 죽이는 시기
의 독음욕의 독 분노의 독이 쌓였으면 어찌 참 화목이 되리요 이러한
간사한 행동은 가롯유다와 같다. 그가예수님께 와서 선생님이여 안
녕하시옵니까'하고 입맞추면서 친절한 듯 사랑하는듯 인사를 하였지
만은 속으로는 잡아주려는 수작이었던 것이다. 거짓된 인사, 거짓된
화평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지 못한다.
3. 교제상 화목
양심에서부터 가리워 오던 죄가, 언어상에만 거짓과 간사하게만 오
던 것이 나중에는 절교 지경까지 되어 영육 간에 다 사경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형제 간에 절교까지 하게 된 불목의 죄는 하나님 앞에
서 죽는 것이나 같다. 불목은 기독교적 대벌이다. 그것은 십자가는
화목의 큰 길인데 이와 배치가 되는 까닭이다. 사랑의 종교라 하면서
어찌 불화를 용납하겠으며. 하나 되게하는 기독교 진리에서 불목이
어찌 대 죄가 아니겠는가.
사랑의 종교요 평화의 종교요 희락의 증교가 불화불목의 원수를 맺
어 하나님과 사람을 등지고 있게 되니 어찌 일대 죄악이 되지 않겠는
가!
마음속으로부터 근본적으로 철두철미하게 뜨거운 큰사랑이 되어야
한다.
보는 형제 사랑치 않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 뿐이다. 형제끼리 불화하고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니 형제이
니 할 수 있으리요 그것은 불목이고 기도를 해도 헛것이요 예배도 거
짓이요 하나님의 아들도 형제도 아닌 까닭이다. 화목은 예물보다
도 기도보다도 예배보다도 먼저 할 일이다.
불목은 절교요 죽음이다. 십자가의 종교에서 불목은 바로 십자가 아
래의 원수요 대적이 되는 것이다. 십계명을 다 범하는 것이나 같은
것이다.
4. 하나님과 화목하라
입으로는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아버지와 나 사이를 죄로 가로 막아
두었으니 무슨 아버지냐.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너를 구원치 못하랴: 나와 너 사이에 죄악이
가로 막혔으니‥‥: 운운 하였다.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과 불목
하는 자는 자멸을 자취하는 것이니 두렵지 않은가.은밀한 죄가 무엇
이냐? 은밀한 죄를 범하지 말라. 은밀한 중에서 보시는 하나님과
절교하는 것이 되느니라.
5. 화목케 하자.
이제 우리는 이상과 같이 내 자신이 양심적으로 또 실제 남과의 교제
상으로 화목하며 하나님과 화목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남에게까지 화목을 붙이는 자가 되자. 세상에는 이러한 불화 불목이
대 죄인줄 모르고 불목하는 자 많으니 우리는 어서 어서 화목을 붙이
자.먼저 내 자신이 하나럼 앞에서 잘 화목되었는가 살펴보고 그러고
나서 남을 화목 붙이도록 되어야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보면 남의 화목붙이기는 고사하고 남의 의를상케
해서 싸움을 붙이는심술궂은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큰 화를 받을
사람들이다. 우리들은 개인뿐 아니라 가정과 가정 사이에도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온세계 평화가지 경영하는 기독자인데 자기부터 화
목치 못하거나 남에게 싸움을 붙이도록 된다면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이리 불쌍하고 두려운 일인 것이다.
6. 화목자의 복
이렇게 생각 할 때에 화목자의 복은 하나님의 아들의 지위를 받게 되
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큰 화목을 시킨이가 그 누구인가? 독생자 예
수님이 바로 그런 화목의 아들이 아니시던가? 이는우리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참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 하나님 앞에 죽으시
면서 우리를 화목케 하시었다. 33년간 생활은 화목생활 하나님의 아
들이 되도록 가르쳐주는 생활이 아니시었던가.
양심적으로 신 인간 죄악 문제 해결케 하시고 언어상으로거짓과 간
사한 인사의 죄는사하여 주시고 교제상전 교회에 원수된 담을 헐게
하였다. 고로 이제는 우리의 내심에 숨은 죄,거짓된 가식의 죄,형제
에게 불화한죄는 일체 정리하고 참 하나님의 아들이 되자.
이제는 깨끗하게 진실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수 있는 형제 자
매가 되자.



손양원목사설교/우리의 사명감  

우리의 사명감(使命感)
-역경자(逆境者)의 복음 -

(요 9: 1∼12(3하)
역경(逆境)에서 진리를 구하라(본문 사실 이야기).
죄인관(罪人觀)-천시(賤視)하여 길거리에서 얻어먹는 눈먼 소경 위해서 아! 무심 하실 일이 있을까?

1.하나님께서 내신 인간이면 모든 만유(萬有)로 예정(豫定)하시고 내신 것이니 역경에서 신을 원망만 하지말고 자포자기 하고 낙오 절망하여 신께 영육간 이중으로 범죄하지 말고 신애(神愛)와 진리를 구하여 불행중에서 위대한 사명을 찾아라.

2.신이 본래 인간을 세상에 낼 때 밥먹고 옷입고 잠자다가 오라고 한것 아니었겠고 또한 우리도 이곳 보내신 것.썩은육체 다시 새롭게 서 세영(世榮)보고살려고 함도 아니겠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병 안주셨겠지 않는가? 다른 병과는 다르다. 기생충 버러지처럼 세인(世人)이 주는것 빨아먹고 또는제비 새끼 처럼 앉아서 밥받아 먹고옷받아 입고 이 몸뚱이 길러서 어디 쓰게요 차라리 데려가심이 피차 편치
않을까? 그래도 보내심은 우리의 위대한 할 일이 있어 이 공장(애양원을가르킴) 이 동산에 보내심이다.

천국공장의 직공으로 포도동산의 일군으로 이 동산에 보내셨다.
우리는 제비새끼 같은 조류도 아니요 유목민(遊牧民)처럼 놀고먹는 자도 아니요 인간의 해충도 아니다.그러니 주께서 보내신 그 위대한 일하고 먹는자 되자.

1. 우리의 정형(情形)
A. (1)고향을 멀리 떠나 외로운 반도(애양원 있는 곳 -편자주)에 서모여 사는 우리들이며
(2) 부모 형제들의 깊고 따뜻한 가정을 떠나온 우리며
(3)세상에 태어났으나 세상에 버린바 되어 한 구석으로 몰려온 우리다.
(4) 이런 비관 낙오의 사람들이 모여서 한 가정을 조직하고 지내니 서로 불쌍히 여길 것 뿐이다.

B. (1) 눈을 잃었으니 세상을 잃었고
(2) 귀를 잃었으니 인간과 절교된 우리고
(3) 손발을 일었으니 실업자된 우리요 대도(大道)에못나갈 자요
(4) 무서운 흉병(凶病)을 가졌으니 인간 사치를 자연히 멀리 떠나게 된 우리들이다.

C. 그러나 고향을 멀리 떠나게 된고로 천당을 내 고향 삼게 되고 육의 부모형제 육정 떠나게 되니 하늘 식구의 한 사람 되고 몇사람의 형제를 잃었더니 1천 7백 2십명이 내 형제가 되었으니 맹상군(孟嘗君)의 식객(食客)이 오히려 부족하지 않은가.
세상을 보던 눈이 어두워짐으로 천당의 영광이 완연케 되었으며. 인간의 소리가 그치게 되매 하늘의 소리를 고대케 되었으며,세인의 교제가 끊어짐으로 하늘을 통하는 길이 완연케 되어진 것이 아닌가? 외로운 반도에 살게 됨은사도요한의 은혜를 받게 됨이로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이런 실패한 자를 찾으시더라. 수족 잃어 세상의 육정 물질에 실업케되니 천국 포도 동산에 일꾼이 되었도다.
눈 귀 어두운 시므온 노인, 84년간 과부된 안나 같은자 성전 떠나지 않고 주 기다렸다.

2. 신은 차세(此世)에 실패자를 찾으시더 라
세상의 허영에 취해 세상과 살려는 자.세상에서 성공 대접받는 자는 세상으로 타협하며 살게되나 세상에서 실패자가주를 찾게 되며(눅 15:17∼18) 탕자가주려 죽게 될 때 부모집 찾게 되고 또한 세상에서 실패한 자를 주가 찾으시느니라(요 9:35). 눈뜬 소경 쫓겨났단 말 듣 고 찾으셨다.

㉧ 우리의 사명감
(1) 타 종교에서 실패를 당한 자는 자력에서 실패하여 타력인 기독교를 찾아와서 싱공하게 된다.
(2)도덕 생활에서 실패당한 자는 자력과 인간적인 선에서 실패하여 십자가 공로에서 성공한다.
(3) 인간에게 버림당하였으니 하나님의 식구가 되어서 성공한다.
(4)세상에서 실패하였으니 천국에서 성공케 된다. 세상에서 여지없이 실패당해 버려야 참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믿고 바라게되니 진인(眞人)된다.
"슬픈듯 하나 오히려 즐거운 일이요, 모든것 다 잃은 것 같으나 있고도.오히려 남았고 죽는것 같으나 오히려 사는 것이요,절망된 것 같으나 오히려 소망이 더욱위대하다'
세상에서 실패자(失敗者)여 안심하라. 천국의 일거리가 너를 고대중이다. 공연히 낙심하고 길거리에서 방황말라.포도동산 품꾼 구하신다. 지금도 늦지 않다. 성전에서 쫓김 당하였던 눈먼 소경을 찾으신 주님은 당신들 찾으시기에 분망하시다. 찬미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부르자.

3. 기독교는 역경(逆境)에서 위대한 진리를 구하더 라
산에서 보옥(寶玉)을 찾는것 같이 대해(大海) 중에서 진주글 찾는 것처럼 기독교는 역경에서 찾게 되는 것이다.
(1)천로역정(天路歷程)이 어디서 기록되었으며
(2)묵시록 성경이 언제 계시를 받게 되었던가?
(3)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 네 서신은 어디서나왔는가?
나일강변 갈밭 사이에 죽을 줄 알고 버렸던 모세가 이스라엘의 구주 될 줄 뉘 알았으며,고향산천 부모 친척 떠나 웅덩이에 내어버린 요셉이 조국을 구원 할 줄뉘 알았으며. 죽이지는 못해 귀양살이 시킨 밧모섞에 보낸 요한이 천계묵시(天界默示)볼줄뉘 알았으며 나면서 소경된 자 길거리에서 구걸 할 때 그에게서 하나님의 영광 나타날 줄 뉘 알았으며, 모질고 독한 목숨 못죽여 살게 되어 남은 날을 그대로
보내려던 우리 낙오자들이 천국 공장에 직공 될 줄 뉘 알았으며, 귀한 포도원동산 일꾼 될 줄 뉘 알았으며.위대한 책임자 될 줄 뉘알았겠소?
과거의 성자들 보라!
역경에서 진리 구하게 되는 종교인 까닭에 이를깨달아 일부러 있는 것도 바치고 고난 자취자(自取者)로 되지 않았는가! 성 푸랜시쓰, 바울. 모세 등‥‥‥(히10: 24∼ 26) .
우리는 버리기에 힘 들지 않고 잘 되었는데 다시 구하고 싶은가요?
주신 환경에서 큰 일 못하리 나도 지금부터 큰 고대 중이다.

4. 우리의 위대한 사명이란 무엇인가?
(1) 한가히 놀던 자(마 20:1 ∼16)
(2) 포도원 농부(일꾼)
오늘에 우리 같은 자에게도사명이 있다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이 말이 오늘에 우리에게는 놀랄만한 말이며 세상이 듣고는 비소(鼻笑)하겠다. 그러나 사실인데야!
인간에게 쫓김을 당한 우리, 세상과 절연(絶緣)된 우리,모질고 독한목숨,죽지 못해 살아있어 죽음의 때만 고대하여 못죽어 살고있는 우리에게 무슨 위대한 사업이 있다니 참이냐 거짓 말이냐? 있다면 세상에 첫 소리요,육합의 진리를 깨진 것이며,새로운 세계는 우리 앞 에 광명하게 빛나게 되었다. 이것이 진실로 한센병자의 복음 세계로다.
우리는 오늘까지 세상에 낳으되 세상 맛을 몰랐고, 인간이면서도 금수 같이 천대를 받아 왔고 인생이 되어 세상에 낳다고 고고의 첫 소리를 질렀으나. 오히려 태 어남이 불행이 되었고,자식이 되어 부모의 총애(寵愛)를 받을 것이어늘, 오히려 부모의 가슴에 큰 근심의 못을 박고 말아 부모와 형제간까지 근심과 꺼림을 받아 왔으니 하물며 타인에게랴!
자!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 합시다.
우리에게는 천직의 사명이 있답니다. 금생에서 소망없는우리는 내세에 영복이나 얻기 위해 기독자가되었더니 금세에도 위대한 사명이 있다니. 우리는 이를 위해서는 남은 여생을 뼈를 갈고 피를 짜서 이런 성업에 진충갈력(盡忠竭力)함이 마땅하겠다. 아! 진실로 기독교는 이상한 종교이며 위대한 종교이며 유일의 종교이다.
자! 이제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가? 우리의 천직을 찾자.
놀라지는 말라. 의심치 말고 믿으라. 하나님은 무소불능하시다. 사람은 능히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①돌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는 신,
②해변(海邊)의 어부도 높이 올려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시고
③ 살인 강도.도 도적도 하늘에 들어올려 주와 함께 낙원에 앉게 하신 주,
④ 고기 배속에 들어간 요나도 끌어내어 좋은 선지자 로 만드시는 하나님은 오늘에 우리 한센병자를 통하여서는 위대한 일을 못시키실까? 보다도 기독교는 그 자체가 역경 중에 더욱위대한 진리를 찾게 되는 종교며, 인생의 삼대 모순을 해결해 주는 종교며, 보라! 장인(匠人)의 버린돌이 도리어 대중의 요긴한 돌이 되게 하신
종교가 아니더냐. 고로 하나님은 한센병을 주어서 세 인이 못하는 일, 범인(凡人)이 하기 어려운 일, 세상에 제일 위대한 그 일을 오늘의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나는 확실히 보아왔다. 옳지! 이것이 합당한 일도 같고 당연하 다고도 나는 생각한다.
하나님은 본래부터 약자를 택하여 강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못난 자를 택하사 잘난 자를 뒤 떨어지게 하시고, 무식한 자를 들어서 유식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죄인을 택하사 의인을 시기케 하신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못난 우리 인생에게 버림을 받게된 우리를 도리어 세상에서 큰 일을 행케 하심은 신의 성의이시며 합당한 진리인가 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의 발자취인 동시에 인의 인력(人意
人力)이외에 신의 지혜와능력을 나타내신 연고이시다.
자!받으시요 당신의 사명,여러분의 천직!놀라지 말라. 세상에서 대사중 대사는 기도하는 일이며. 난사중난사는 기도하는 일 밖에 없다.
기도는 육정과 세상과 악마로 싸우는 일대 전쟁이니라. 안일과 건강과 생명을 바쳐 하는 일은 기도리라.기도하는 일 보다 더 큰 일이세상에 어디있느냐. 모든 만사만행에 근본되는 원동력은 기도이다. 기도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어디 있더냐?
공중에 대권을 잡은 악마와 싸우는 역사인 연고이다.
오늘에 조선 건국사업에도 모두다사리 사욕에 치우쳤으니 이는 실패이다.
그러나.우리는 세상에 실패 단념하였다. 우리의 기도는 참이다. 오늘의 교계 내도 보라. 모두다 인의(人意)인력,시비,당파(黨派), 아무리해도 신이 하실일 하시고말 것이니 기도.만이 제 일이다.
우리는 한국을 살리는 대동맥(大劾暖)의 심장(心臟),호흡기관 곧 기도하는 곳이며, 한국을 운전하는 기도의 발전소(發電昕)가 되자.



손양원목사설교/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마태복음 26:36-46

이 기도는 우리 주님 일생의 최대의 기도요 동시에 최후의 기도입
니다. 주님의 일생이 십자가의 생활이였으나 그 중에 3대 고통이 있
었습니다.

①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 당하시던 고통이
그 첫째이요
②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같은 땀을 흘리면서 드린 기도의 고통
이 그 둘째이며
③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고통이 그 마지막입니다.
그런데 이 3대 고통 중에도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가장 중요한 것
이었습니다. 또한 광야 40일의 시험 고통을 이기신 것도 주님의 기
도 이었고, 앞에 있을 십자가의 사고(死苦) 대성공도 기도로 하셨습
니다.

겟세마네의 기도의 고통은 십자가 전의 십자가였습니다. 이 기도
는 피땀의 고개를 넘기는 기도였습니다. 일 중에 큰 일이요, 난사
(難事)중에 난사였습니다. 이 기도는 일대 전쟁이었습니다. 사실로
육이 죽느냐 영이 죽느냐의 전쟁이요, 악마가 이기느냐 그리스도가
이기느냐의 전쟁이었습니다. 이 기도의 2대지(大旨)는 「만일 합당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와 「그러나 나의 원
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입니다.

1.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모든 시험은 기도하지 않는 기회를 타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제자들
에게 있어서 주님이 잡히심과 돌아가심은 여간 큰 일이 아니요, 따
라서 시험 중에 혀대의 시험인 것입니다. 이런 시헙을 이기는 방법
은 기도 이외에는 얼는 것입니다. 기도에 실패하면 만사에 실패합니
다. 악마는 기도 밖에 겁내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기도하
지 않는 틈을 타서 들어옵니다. 제자들이 주를 버리게 된 것도 이때
기도를 안한 까닭이었습니다. 「깨어 있어 기도하라」
(2)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이 뜻은 육체적 의지를 강하게 하여 마음의 원을 이루게 하라시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육신의 괴로움을 이기게 합니다. 아담의 후손으
로 성질을 죽이는 데는 기도 뿐입니다. 기도는 세상 모든 생각을 물
리치게 합니다. 가나안 7족속을 쫓아내고 이스라엘 선민이 들어가게
하듯 합니다. 기도는 마귀를 정복합니다. 결사적으로 하지 않고는
패배하기 쉽습니다.

이 뜻은 다시 마음은 강하나 육신이 약하다는 것도 됩니다. 마음
에 원하는 것이라면 될 수 있으나 이것의 됫받침이 될 육신이 감당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럴 수도 있으나 이것을
핑계로 삼는 수도 있으니 우리는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
기도는 최대한 강력한 기도가 되어야 이런 모든 시험을 극복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육신적인 모든 생각을 버리고 육체를 이기고 악마를 호령하는 듯
한 위엄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2. 천사의 조력(눅 23:43)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힘쓰
고 애쓰는 자의 뒤를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주신
만큼의 힘대로 요구하십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자기의 힘을 다해서
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한냥중 준 자에게는 한냥중 만큼 요구하실
것입니다. 주께서도 피땀 흘리시며 하시는 기도이기 때문에 사자가
와서 도와서 일을 이루시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최후의 위안이 되는 법입니다. 처음에는 고민하시
고 하시였습니다. 그러나 사자의 조력으로 위로를 받으시고,숭리를
거두 셨습니다. 세번씩이나 같은 기도를 하신 것은 과연 그 문제가
중대 문제요 동시에 적극적으로 싸우신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이기
고 육의 세력을 극복하고 마귀를 정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
다. 내가 기도한다고 해서 혼자 이긴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
다. 주 앞에서 주와 함에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는 바로 주님의 슬하요 주님의 품속인 줄 알고 따라서 기도의
보좌에는 안심이 있고 기쁨이 넘칩니다.

3. 세 제자를 기도에 동참케 하심(35, 37)
주님의 기도에 동참 한 자는 누구냐?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 3인이었습니다. 이 3제자는 변화산 상에 동참제 하신
제자들이었습니다. 영광의 자리에 동참케 하신 주님은 또한 이 고배
(苦杯)를 받으시는 데도 동참케 하십니다. 문자 그대로 동고동락입
니다.

사제지간의 아름다운 정리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영광자리에
앉기를 원하거든 주님의 고배의 자리에도 동참해야 합니다. 세상에
는 주님의 영광 자리는 탐하면서도, 주님과 함께 고난 받기는 싫어
하는 이가 있습니다.

「나와 함에 깨어 있으라」 하시었는데 그 뜻은 주님이 얼마나 어떻
게하시는 것을 보게 하시려는 뜻도 있습니다. 과연 기도라는 것은
저렇게 하는 것이로구나, 기도란 저렇게 힘이 드는 것이로구나, 힘
쓰고 애써야 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보이려 하심도 있습니다.
어떤이는 기도를 5분 혹 10분에 끝마치려는 이가 있는데 참 이상합
니다. 내경험에도 어떤 때는 한 시간 두 시간 해도 기도가 안되어
애를 쓰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터져 나오게 됩니
다.

우리 주님이 행하신 일은 다만 대신 행하심만이 아닙니다. 모범도
되십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과 행하심, 대신과 모범,중생과 가르침,
은혜와 인내하게 함과(他力) 해야함(自力), 예정과 자유:.. 이렇게
양면을 보여 주셨는데 여기에서 세 제자들을 깨우신 것은 대신하시
는 기도를 제자들도 모범하게 하심이었습니다.
즉, 제자들의 의무를 실행하게 하심이었습니다.
우리들도 그런 기도에 동참해서 주님의 뒤를 따르자.

4. 우리 애양원 동산이 겟세마네의 기도 동산이 되게 합시다.
지금은 꼭 겟세마네 기도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때입니다. 만사 다
떨치고 기도 동산에 모입시다.
「겟세마네」라는 뜻은 「감람 기름을 짜는 틀」이란 뜻입니다. 과
연 기도는 인간의 진액을 짜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드는 일이냐. 눈
물이 흐르고 땀이 내리고 피를 쏟으면서 짜는 것이니, 우리를 살리
기 위하여 얼마나 주님의 진액을 짜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진액으로 우리 자신과 나라를 살리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
애양원은 기도의 동산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짜낸 감람유는 그
용도가 많습니다. 식용(食用)약품, 향료, 화장용등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기도도 이렇게 다방면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ㅁ결 론ㅁ
우리 동산은 유명무실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즈음 새벽 기도나 낮
기도(애양원에서는 정오에도 기도를 한다:‥편자 주)보니 유명무실
될까 두렵습니다.
기도에는 반드시 이적이 따릅니다. 어떤이는 말하기를 건강상 새벽
기도는 해롭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 모르는 소리입니다. 기
름짜는 것 보니 그 자체가 깨져야 기름이 나오더라.몸을 아끼면 아
낄수록 더 쇠약해집니다. 내 경험으로 보아 신경쇠약이 나은 것도
기도에서 였습니다. 죽기 각오하고 기도하니 병까지 낫더라. 기름이
타야 빛이 발해지고, 소금이 녹아야 맛을 내듯이 회생적 기도가 있
으면 놀라운 기적이 따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에 사는 길이 생깁니
다. 기도의 이적을 맛보자. 기적적 기도를 하자. 주님께서는 일생동
안 기도하셨고, 최후 승리도 기도로 거두셨습니다. 40일 금식 후 승
리도 기도로 거두셨습니다. 십자가의 대승리도 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거두셨습니다. 우리 애양원 동산의 승리도 주님을 본받는
기도 이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