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목회자의 교계활동관

2019.11.26 23:43

김반석 조회 수:

총공회 목회자의 교계활동관

  선지자선교회

2019. 11. 26 1차 원고

선지자문서선교회 http://www.seonjija.net 김반석 e0691@hanmail.net

 

총공회 목회자는 교계활동관을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가? 총공회 목회자가 조사 즉 전도사 시절에는 교계활동에 대하여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아니한다. 전도사로 나서봐야 누가 알아 줄 것도 아니고 또 그 시절에는 그럴 여력도 없다. 그러다가 이제 목사가 되면 나도 목사가 되었는데 하고 교계 활동이나 모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양육해서 목회자로 세우신 부산서부교회 백영희목사님께서는 우리 진영 총공회를 교계의 교단연합회에 가입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우리 진영 목회자가 지역의 기독교연합회에 참여하는 것을 조심시키셨다. 아니 제한시키셨다가 더 의중에 맞는 말일 것이다.

 

부족한 종은 교계에서 이단이나 사이비교 배격운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교계에 어느 단체와 연합해서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신앙노선이나 활동중심이 맞지 않아서 연합하고 싶지 않거니와 또한 사이비교와 격렬하게 배격운동을 할 때에는 누가 썩 나서지도 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부족한 종은 우리 진영도 교계활동을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우리 진영 목회자들도 저마다 실력이 있어서 지역의 기독교연합회에 참여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애 이 생각을 최근에 완전히 엎어버렸다. 즉 우리 진영이 교계 연합회에 가입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고, 우리 진영 목회자가 지역의 기독교연합회에 참여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겠다.

 

그 까닭은 신앙사상 신앙노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앙사상 신앙노선에 대하여 하나 예를 들면 일제시대 신사참배에 대하여 장로회 총회파는 죄가 되지 아니하는 국가의식이라 하였다. 그리고 신사참배 문제로 장로회 총회파와 분리된 고려파는 제 2계명을 범한 우상숭배라 하였다. 그래서 신사참배 문제로 총회파와 고려파가 1952년도에 분파가 되었다. 그랬다가 합치자 해서 총회파와 고신파가 1960년도에 합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3년 후 1963년도에 총회파와 고려파는 또 다시 분파가 되어 지금까지 오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총회파와 고려파의 분파는 애초에 신사참배 문제였다. 그 근본은 총회파와 고려파가 서로 간에 신앙사상 신앙노선이 각각 달랐던 것이다. 그렇기에 총회파와 고려파가 합동을 했지만 불과 3년 만에 또 다시 분파가 된 것이다.

 

왜 이렇게 총회파와 고려파의 분파에 대하여 예를 들었는가? 그러한 것은 총회파와 고려파는 신앙사상 신앙노선이 다르기 때문에 합동 합치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총회파는 신사참배를 죄가 되지 않는 국가의식이라 하는 신앙사상과 신안노선이고, 고려파는 죄가 되는 우상숭배라 하는 신앙사상과 신앙노선이었던 것이다. 이런 두 성질의 두 갈래의 신앙사상 신앙노선이 합치는 합동을 한들 어떤 사안에 대한 처리에 있어서 신앙사상 신앙노선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로 간에 마찰과 불목과 분파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안이 일반적 사항이 될 때는 어느 정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진리적 사항이 될 때에는 함께 따라가서 범죄에 동참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래서 우리 진영이 교계의 교단연합회에 가입을 했다고 가정을 하면 교단연합회의 다수결 의결에서 만일 진리에 어긋난다고 하면 함께 동참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진영 목회자가 지역의 기독교연합회에 참여를 했다고 가정을 하면 지역의 기독교연합회의 다수결 의결에서 만일 진리에 어긋난다고 하면 함께 동참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진영이 교계의 교단연합회에 가입을 해서 여러 교단들과 함께 하려면 결국 그들 다수의 의결에 따르는 속화가 되든지, 아니면 따르지 않고 버티고 불목 하는 과정을 거치다가 탈퇴를 하든지 둘 중에 한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진영의 목회자가 지역의 기독교연합회에 참여를 했을 경우도 이와 같은 것이다.

 

우리를 양육해서 목회자로 세우신 부산서부교회 백영희 목사님께서는 이런 형편과 이런 과정을 고려파에 계실 때에 너무나 확실히 직접 경험하셨고, 또한 총회파와 고려파가 분파되는 역사와 성격의 과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진영을 교계의 교단연합회에 가입하지 않게 하셨던 그 까닭을 부족한 종은 지금 확실히 깨닫는다. 그리고 우리 진영 목회자로 하여금 지역의 기독교연합회에 참여하는 것을 조심시키시고 제한하셨던 이유도 지금 확실히 깨닫는다.

 

백영희 목사님께서 정립하시고 신앙하시고 교훈하신 교리와 신조와 행정은 참으로 세계 제일이라는 것을 부족한 종은 논리적, 실제적, 세부적으로 하나씩 한 건씩 인식하고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부족한 종은 그동안 우리 진영도 교계의 교단연합회에 가입할 수 있다고 여겨왔었다. 그리고 우리 진영 목회자는 지역의 기독교연합회에 참여할 수 있다고 여겨왔었다. 그렇게 여긴 것은 우리 진영이 실력이 있고 또 우리 진영 목회자가 실력이 있기 때문에 교계와 지역에서 당당히 가입하고 참여해서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랬었는데 지금 현재 확실히 깨닫기로는 만일 그리했다고 가정 했을 경우 교계의 교단연합회에서는 교단마다 신앙사상 신앙노선이 다르고, 지역의 기독교연합회에서는 목회자마다 신앙사상 신앙노선이 다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신사참배에 대하여 총신파와 고려파의 신앙사상 신앙노선이 다르기 때문에 다툼과 불목과 분파와 탈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그런 현상이 불 보듯 빤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진영이 교계의 교단연합회에 애당초 가입할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며, 우리 진영 목회자가 지역의 기독교연합회에 애당초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다. 교계나 지역 교계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불목하자는 것이 아니라 신앙사상 신앙노선의 근본적 이유가 있는 까닭이다.

 

우리 진영 총공회는 고려파에서 분파되었는데 그 동기는 백영희목사님께서 스스로 탈퇴를 한 것이 아니고, 고신측의 반소문제, 유엔군 철수문제, 파수꾼 처리로 진리를 제거, ICCC 가담, 교권 문제 등을 고려파 수뇌부에 진언할 때에 미움을 받아 고려파에서 제명을 당하여 부득이 분파가 된 것이다. 그래서 백영희 목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고신교파에서 나올 때에 고신교파에 내가 나온 것 아니오. 안 나올라 하지만 그분들이 쫓아내서 내가 나왔지 내가 고신교파에 안 나오고 지금도 있으면 지금까지 내가 그 자리서 내가 외치고 있을 것입니다. (백영희목사님 1988. 6. 12. 주일새벽 설교에서)

 

그러므로 백영희목사님께서 중심이 되셔서 세운 총공회는 고려보수 신앙사상 신앙노선이다. 그렇기에 우리 진영이 현재 진정 고려보수 신앙노선이라면, 그리고 우리 진영 목회자가 현재 진정 고려보수 신앙노선이라면 신사참배를 국가의식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신앙사상 신앙노선과는 연합하거나 동참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연합이나 동참을 해보았자 신앙사상 신앙노선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속화를 당하거나 아니면 탈퇴를 하거나 둘 중에 한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아버지시요 목회의 스승이신 백영희 목사님의 교훈을 진실히 감사함으로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